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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 실정 맞는 방재 시스템으로 문화재 살린다

단정민 기자
등록일 2025-09-16 18:45 게재일 2025-09-17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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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화마의 표적이 되다 <5> 한국형(K)-문화재 방재 정책의 방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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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시 북구 죽장면 상옥리 산불조심 깃발 뒤로 설경이 펼쳐져 있다. /경북매일DB

태풍, 홍수, 산불 등의 재난은 지자체 단위로 되풀이되지만, ‘재난지역 선포’와 같은 사후 조치에 집중됐다. 사전 예방 차원의 체계적 방재 시스템이 자리 잡지 못한 것이다. 이번 기획은 지자체 실정에 맞는 문화유산 방재 시스템을 구축 필요성을 제시하고, 농어촌 곳곳의 소중한 유산을 어떻게 지켜낼지를 탐구한다. 고령화 등으로 재난에 더 취약해진 자연 속 국가 유산을 지키는 데 필요한 ‘한국형(K)-문화유산 방재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마련해야 하는데, 일본의 경험을 토대로 경북은 물론, 전국 차원의 정책 수립에 필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예정이다.

<글 싣는 순서>
1. 산불 등 재난에 취약한 국내의 문화유산
2. 실제 재난으로 소실된 지역별 문화유산
3. 일본의 문화재 방재 연구기관 경험
4. 일본의 문화재 방재 정책 성공 사례
5. 한국형(K)-문화재 방재 정책의 방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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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군 단촌면에 있는 천년고찰 고운사. 의성 산불의 화마가 덮치면서 가운루와 연수전이 잿더미로 변했고, 높은 온도에 깨진 범종만 남아 있다. /경북매일DB

◇ 말로만 하는 방재, 현장은 ‘구멍투성이’
2008년 숭례문 화재는 한국 문화재 방재 정책의 분기점이었다. 문화재청은 이후 IoT 기반 무인 경비, 1·2차 감지구역을 활용한 화재·침입 경보, 정기 안전 점검과 재난 유형별 매뉴얼 등 ‘한국형 방재’의 틀을 세웠다. 2030년까지 목조 국가 유산 방재시설을 고도화하고 2040년까지 석조·동산 문화재까지 첨단 설비를 확대한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하지만 2021년 문화재청의 방재환경 모니터링 결과는 냉혹했다. 경북 경주 기림사 대적광전은 감지기와 소화전이 기준에 미치지 못했고 귀래정은 자동화재속보설비와 CCTV가 아예 없었다. 대구 북지장사 지장전은 화재 수신기가 이쑤시개로 고정돼 있었고, 동화사 대웅전은 전기배선 노후와 관제 모니터가 불량으로 방치돼 있었다. 현장 전문가들은 “설비가 있어도 관리 인력이 부족해 유사시 제대로 작동할지 장담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기후 위기까지 겹치며 위험은 더욱 커졌다. 경주는 지정문화재만 900여 건으로 전국 최다를 자랑하지만, 태풍·폭우·산불 등 복합재난에 가장 취약하다. 2016년 지진은 ‘지진 안전지대’라는 인식을 무너뜨렸고 태풍 ‘힌남노’는 불국사·석굴암 인근 산사태를 불러왔다. 산림의 18%가 소나무 재선충으로 고사해 산불 확산 위험도 크다. ‘종이 매뉴얼’에 머문 방재 대책으로는 더는 버틸 수 없다는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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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신라문화유산연구원 김형석 연구원

◇ “문화재도 생명이 있고 유한하다···재난 대비가 곧 생명선”
경주 신라문화유산연구원 김형석 연구원은 문화재 보존을 ‘영원한 가치’로만 바라보는 시각이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문화재를 과거의 고정된 유산이 아니라 “생명이 있고 유한한 존재”로 이해해야 한다며 보존 구역에 있다는 이유로 무조건 생명을 연장하려는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 연구원은 경주의 지형과 산림 구조를 가장 큰 위험 요소로 꼽았다. 그는 경주가 국토의 70% 이상이 산지로 이루어져 있고 지정 문화재만 900여 건에 이르며 산림의 18%가 소나무 재선충 피해를 입어 산불 확산 위험이 특히 크다고 말했다. 

불이 붙기 쉬운 소나무 위주의 식생은 “산불을 키우는 연료가 된다”는 점도 강조했다. 2016년 경주 지진과 태풍, 가을 집중호우가 석굴암과 불국사를 반복적으로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그의 설명이다.

대책을 묻자 김 연구원은 일본의 사례를 언급했다. 일본은 모든 문화재 건조물에 ‘문화재 보존·활용계획’을 세우고 국가·지자체·민간이 협력하는 체계를 갖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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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2일 열린 교토 리쓰메이칸대학 제19회 문화유산과 역사 도시 재해 저감 심포지엄에서 경주 신라문화유산연구원 김형석 연구원이 발표하고 있다. /단정민기자

그는 “문화청이 정책과 재정을, 지자체가 지역 방재계획을, 소유자가 일상 점검을 담당하며 대형 재해가 발생하면 ‘문화재 레스큐’가 즉시 가동된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주민 훈련과 매뉴얼 정비, 방화문·스프링클러 설치, 내진 보강,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이 체계적으로 진행된다는 점도 덧붙였다.

한국이 배워야 할 점에 대해 김 연구원은 한국의 산악 지형이 일본보다 산불 위험이 훨씬 크다고 지적하며 사건 후 특별 예산으로 단기 복구에 나서는 방식은 한계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후변화로 재해는 늘어날 것이며 문화재 방재를 사회적·교육적 가치로 공유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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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대 소방방재학부 백민호 교수

◇ “문화유산도 재난 환경 변화에 맞춰야”
백민호 강원대 소방방재학부 교수는 국가 유산이 지닌 ‘역사성과 장소성’이 오늘날 재난 취약성으로 되돌아오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문화재는 과거의 기후와 사회 조건 속에서 살아남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며 “기후 변화로 재난 양상이 변했고 과거 안전지대였던 입지조차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고 말했다. 또 “문화재를 영원한 존재로만 보는 인식에서 벗어나 구조적·비구조적 대책을 병행하고 관리 인력과 제도를 현실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 교수는 국가 유산이 재난에 취약한 이유에 대해 “역사성과 장소성이 문화유산의 강점이자 약점인데, 사찰·산중 유적처럼 인적이 드문 곳이 많아 전기·소방 등 기반 시설이 부족하고 기후가 변하면서 과거엔 안전했던 입지가 오히려 위험 요소가 됐다”라고 설명했다. 

최근 재난 환경 변화와 관련해서는 과거에는 마을과 산사가 공생하며 숲을 관리했지만, 지금은 인구가 줄고 숲은 울창해져 오히려 불길을 키운다고 지적했다. 그는 “산불은 과거보다 확산 속도가 빠르다. 지진도 더 이상 예외가 아니다”고 경고했다. 백 교수는 “2005년 낙산사 산불, 2008년 숭례문 화재를 계기로 법은 정비됐지만, 문화유산은 전국에 흩어져 있고 환경이 모두 달라 일률적 적용이 어려워서 개별 유산의 특성과 위치를 반영한 맞춤형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자동 소화설비나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려면 관을 매립하고 못을 박아야 하는데 이 과정이 문화재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어 시설 설치가 어렵다고 한 백 교수는 “전력 차단이나 지형 제약으로 실제 화재 때 장비가 작동하지 못할 수도 있어 설치만큼 유지·관리, 현장 대응 역량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또 “일본은 설계·시공·유지관리를 일원화하고 현지 관리자가 장비를 직접 조작·훈련하도록 하는 시스템이고, 우리는 관리 업체가 자주 바뀔 뿐만 아니라 바뀌면서 도면과 현장이 달라지는 데다 장비가 제 기능을 못 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구조적 대책과 비구조적 대책을 병행해야 한다”고 지적한 백 교수는 “물리적 설비를 강화하는 동시에 관리 인력의 전문성을 높이고 매뉴얼을 현실화해야 하고, 문화재는 영원하지 않다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문화재를 과거의 유산이 아닌 현재 살아 있는 존재로 바라보고 국가·지자체·민간이 함께하는 ‘한국형 문화유산 방재 시스템’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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