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관광의 미래 ‘동해선’ 로컬 매력을 잇다 - 강릉시
공학자들은 ‘바퀴’를 인류 역사를 괄목상대시킨 효과적인 발명품으로 지목한다. 비행기가 생기기 전 바퀴 달린 수레는 인간과 물품의 이동 편의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켰다.
여기에 증기기관에 더해지면서 기차가 등장한다. 1804년. 영국 리처드 트레비식(Richard Trevithick)이 만든 증기기관차가 하얀 연기를 뿜으며 달리는 모습은 그 자체로 진귀한 구경거리였다.
그리고, 221년의 시간이 흘렀다. 이제 한국도 도시 곳곳을 기차가 연결하고 있다. 시속 300km에 육박하는 속도로 달리는 고속열차도 흔해졌다. 8개월 전엔 부산(부전)과 강원도 강릉을 잇는 동해선도 완전 개통됐다.
지난달 중순. 동해선 기차를 타고 울산을 출발해 8박9일간 포항, 영덕, 울진, 삼척, 동해, 정동진을 거쳐 강릉까지 취재여행을 했다. 기차에 편안하게 앉아 푸른 파도 부서지는 해변을 바라볼 수 있었고, 각 지역이 동해선 개통 이후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지 눈으로 확인했다.
수도권 관광객 북적이던 ‘강릉 커피거리’
부산•경북 사투리도 심심치 않게 들려와
바다와 가장 인접한 구간은 강릉~정동진
상행선 오른쪽•하행선 왼쪽 창가가 ‘명당’
글 싣는 순서:
1. 철도 왕국 일본에서 찾는 ‘지역 관광’의 미래
2. ‘당일치기 여행’ 맞춤 일본 철도
3. 관광으로 인구 소멸 위기 ‘호쿠리쿠’ 살리기
4. 일본 기차 여행의 꽃이 된 ‘도시락’
5. 울산, 이제는 ‘유잼(U-재미) 도시’다
6. 철도 불모지 경북, 동해선 개통 후 새 역사 시작
7. 이번 역은 “천만관광 해양도시 삼척입니다”
8. 강릉, ‘철도 날개’ 달고 동해안 비상
▲동해선 철길 지나는 도시들, 사회·경제적 상승효과 기대
아직은 시작 단계지만 동해선 철도의 역이 만들어진 대도시는 물론, 중소도시도 크건 작건 ‘철도 개통 특수’를 누리고 있었다. 향후 더 큰 사회·경제적 상승효과를 기대하는 건 불문가지.
일본 간사이대학 아베 세이지(安倍 誠治) 교수의 논문 ‘일본 고속철도의 미래’는 향후 동해선이 지나는 도시가 어떻게 발전할 것인지를 추측해볼 수 있게 해준다. 이런 대목이다.
“(일본 고속철도) 신칸센의 효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도시 재개발 효과다. 신칸센은 도시간의 시간거리를 단축시켜 사람들의 행동권이나 상권의 확대를 가져왔다. 신칸센의 개업에 의해 가장 변모한 것이 신칸센역 주변이다. 신칸센역의 개설에 따라 역 주변의 터미널 기능이 향상되고, 거기에 동반해 도시 구조가 변화하고, 교통 체계의 재편이나 중심 업무지역의 형성이 촉진됐다.”
강릉에 도착한 첫날. 창해로 일대를 지칭하는 고유명사가 된 ‘강릉 커피거리’를 찾았다.
제법 큰 규모의 커피숍을 운영하는 40대 남성은 “지금까진 서울과 경기도에서 오는 손님이 대부분이었는데, 올해 1월 동해선 개통 이후론 가게에서 부산과 경북 사투리가 자주 들을 수 있다”며 웃었다.
다음날 산책을 하고 점심도 먹을 겸 들른 경포대해수욕장에선 우즈베키스탄 부자(父子)를 만났다.
아버지는 대구에서 직장을 다니고, 아들은 대구 한 대학에서 한국어를 공부한다고 했다. 둘은 대구를 출발해 포항과 삼척을 거쳐 강릉으로 휴가를 온 터였다. 강릉과 정동진의 해변에선 동해선 열차 탑승자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앞서 언급한 아베 세이지 교수의 논문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기차가 지나는) 역 주변 땅값이 올랐는데,토카이도 신칸센의 연선 중 가장 변모한 곳이 신요코하마역과 신오사카역 주변이다. 게다가 신칸센역에 인접한 호텔이나 백화점,다양한 점포가 신설돼 활기찬 공간이 만들어졌다. 새로운 수요가 개척되는 것과 동시에 새로운 거리의 매력도 만들어졌다. 토카이도 신칸센의 개업은 연선지역의 도시 재개발과 지역 개발의 촉진제가 됐던 것이다.”
지가(地價) 상승과 고급 숙박시설의 신축, 늘어나는 상점이 가져올 지역경제 활성화, 여기에 도시 재개발의 촉진…. 일본의 과거 사례는 동해선이 지나는 여러 도시들의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아직은 지켜봐야 할 단계이긴 하지만.
▲옆구리에 바다를 끼고 달리는 즐거운 경험을 해보려면…
동해선 기차의 매력은 무엇보다 달리는 기차의 창밖으로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바다를 볼 수 있다는 게 아닐까? 특히 갓 연애를 시작한 젊은 연인이나 신혼부부라면 이를 돈으로도 바꿀 수 없는 낭만으로 느낄 듯하다.
그런 사람들이 비단 연인과 부부만은 아니리라. 그러니, 9일간 10번 이상 동해선 기차를 타고 남북을 오르내린 기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유용한 정보 하나를 제공하려 한다.
바다와 가장 인접해 동해선 기차가 달리는 건 정동진-강릉 구간이다. 10분 가까이 출렁이는 해변을 옆구리에 끼고 달린다. 기차 객실에서 바다가 보이는 건 물론이다. 동해-정동진 구간과 묵호-동해 구간에서도 짧은 시간 바다와 만날 수 있다.
상행선 기차의 경우 오른쪽 창가 좌석, 하행선일 경우엔 반대로 왼편 창가 좌석이 ‘바다 전망 명당’이다. 그러니, 동해선 기차를 예약할 때 참조하시기를.
삼척∼강릉, 기차와 자동차 중 어떤 게 빠를까?
‘ITX 마음’·‘누리로’ 1시간 소요
휴가철·명절엔 열차 이용 편해
올해 1월 1일 개통된 동해선을 운행하는 기차는 편안함과 속도 2가지 면에서 모두 자동차를 압도할 수 있을까?
소박한 실험은 이런 단순한 의문에서 시작됐다. 마음먹었으니 미룰 것도 없었다. 아침을 먹고 삼척역으로 차를 몰았다. 운전은 경력이 30년에 가까운 지인에게 맡겼다. 삼척역에서 강릉역까지의 거리는 약 60km.
지난 7월 중순의 평일 낮. 교통 정체가 거의 없는 상황이었다. 삼척역을 출발한 자동차는 1시간 6분 만에 강릉역 앞에 도착했다. 교통 법규와 규정 속도를 정확하게 지키며 달렸음은 물론이다.
그렇다면 기차의 삼척역-강릉역 구간 운행 소요 시간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자동차와 거의 비슷하다. 하루 8편이 운행되는 이 구간을 ‘ITX 마음’과 ‘누리로’ 열차는 빠르게는 1시간 1분, 느린 경우 1시간 7분이면 달려간다.
물론, 동해안 휴가철이거나, 설과 추석 등 명절이면 자동차보다 기차를 타는 게 시간을 절약하는 유효한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평소라면 “기차가 훨씬 빠르다”고 확언하기 어렵다는 걸 실험의 결과가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편안함과 안락함 차원에서 보자면 기차의 손을 들어줄 이들이 더 많을 듯하다. 출렁이는 푸른 바다를 옆에 끼고 시원한 맥주나 사이다 한 잔 마시며 유유자적 풍경을 즐길 수 있다는 건 기차여행이 자동차여행을 압도하는 부분이 분명하다.
동해선 개통 이후 주말은 물론이거니와 평일에도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은 자동차를 집에 두고 동해선 기차에 오른다. 오랜 세월 함께 해온 부부가 같은 곳을 바라보며 빙그레 짓는 웃음. 이건 깨끗하고 연착 없는 ITX와 누리로 열차가 만들어준 미소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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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