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패러다임 전환] 한국, 미국·캐나다·포르투칼 산불대응 체계에서 배울점은 ⑧
지난 3월 의성·안동·청송·영양·영덕 등에서 발생한 영남권 산불이 발생하면서 신불 진화 체계에 대한 논의가 뜨거워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산불 진화 체계 문제에 대해 “대통령실에서 역점을 두고 정비 중”, “산림청, 소방청, 지방정부의 역할을 명확히 하고 통합 지휘체계를 운영하며 산불 발생 시 일사천리로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평소 산불 예방이 제대로 되지 않아 대형 산불로 번졌다고 진단한 뒤 해외 산불 대응 시스템을 벤치마킹해 ‘한국형 산불대응 체계’를 갖출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통합 지휘체계 필요…“명령체계 가까운 법적 권한”
전문가들은 하나 같이 통합 지휘체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지성 경남연구원 연구위원은 “산림청과 소방청 등으로 나뉜 산불 대응 체계가 초동 진화에 혼선을 불러왔다”며 “재난안전관리법과 산림보호법 등 법령을 일치시켜 지휘체계에 법적 근거를 명확히 하고 지방정부가 운영하는 산불방지센터에 인력과 장비 동원 권한을 위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산림청, 소방청, 국방부, 지자체가 사전 협약에 따라 지원 공유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며 “현행 ‘협조’ 체계를 ‘명령’에 가까운 법적 권한으로 격상시키는 국가 차원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고기연 한국산불학회장은 “사무실에 자리한 컨트롤 타워는 현장을 통제하기보다 법적 지휘권자인 자치단체장 임무를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며 “대응 과정에서 일관성이 유지되고 참여기관간 역할 분담이 명확히 나뉘도록 중앙기관은 지원 기능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미국의 국가산불센터(NIFC·National Interagency Fire Center)와 같은 통합 지휘 체계와 함께 한국 특성에 맞게 ‘현장 중심 지휘체계’도 마련돼야 한다고 언급했다. 고 회장은 “NIFC 기능에 더해 미국 산불 사고지휘시스템(ICS·Incident Command System) 코디네이션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ICS는 대형산불 발생 시 여러 기관 간 대응 실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된 표준화된 현장 지휘 관례 체계다.
그는 또 “산림청과 산불과 관련된 예방, 진화에 필요한 정보 체계는 상황실에서 비슷한 역할을 하기에 NIFC를 참조할 만하다. NIFC 내 각 기관 대표가 참여하는 국가 다기관조정그룹(NMAC·National Multi-Agency Coordinating Group)은 현장에서 효과적으로 구현되고 있다”며 “코디네이션은 산불이 일어났을 때가 아니라 그 전에 대응 기관별 교육 훈련 등을 강력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NIFC는 대형 산불이 발생하면 NMAC 조정 아래 기관 대표들이 헬기, 진화 인력, 장비 배치 우선순위를 결정한다.
진화 중심에서 예방 중심으로 변화
특히 진화 중심 대응 시스템에서 예방 대응 시스템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포르투칼과 캐나다는 ‘산불은 반드시 발생한다’는 전제로 예방과 피해 최소화 전략 중심으로 정책을 전환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여전히 진화 중심, 사후 복구 중심 구조에 머물러 있다.
이에 대해 이 연구위원은 “국외 사례와 마찬가지로 장기적으로 진화중심에서 예방·피해 최소화 중심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며 “주택 방어, 주민 교육, 산림 구조를 바꿔 화재 및 피해를 낮추는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산불 발생 전 연료관리 등 위험 요인 제거와 산불 감시·예찰 인원을 확충해 예산을 우선 배정할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고 회장도 형식적인 재난 대응 훈련이 아니라 초대형 산불에 대비한 실제적인 예방 훈련이 이뤄져야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산불이나 침수 피해 관련, 좋은 장비와 통신 시스템이 있다 해도 이를 쓸 줄 아는 사람이 없어 제대로 된 대응이 되지 않거나 사고가 더 커지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게 문제”라면서 “평소 실전과 같은 훈련, 연습이 있어야 실제 상황에서 적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런 측면에서 캐나다의 파이어스마트(FireSmaet) 프로그램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산불 예방에 있어 ‘주민참여형 연료 관리’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파이어스마트는 캐나다 전역 산불 위험을 줄이고 지역사회 산불 탄력성을 높이고자 고안된 종합프로그램이다. △교육 △식생 관리 △법률 및 계획 수립 △개발 시 고려사항 관리 △주택과 기반시설 생존 가능성을 높일 개발 규제 도입 △기관 간 협력 △교차 훈련 △비상계획 수립 등 7가지 핵심 원칙 하에 운영되고 있다. 이는 각 지역 파이어스마트 코디네이터와 지역 대표 등이 주도하고 실행한다.
포르투칼 역시 시민 행동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산불통합지휘기관인 AGIF를 중심으로 예방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주민들이 스스로 자기 집 주변과 거주지를 관리하는 공동체 기반 구조를 설계하고 운영하는 것을 목표로 각 마을 단위에 직접 화재 위험 줄이기 위한 노력을 주민 주도로 시행하고 있는 것이다. ‘안전 마을 만들기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이와 관련, 이 연구위원은 “주민이 주도적으로 집 주변을 안전하게 만들고, 지자체가 지원하는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며 “주민과 지자체가 공동으로 연료 제거, 주택 방어 등을 계획하고 모의 훈련을 실행 등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산불 위험도가 높거나 과거 산불 피해가 높았던 지역을 중심으로 캐나다와 같은 파이어스마트 시범 사업 추진도 좋은 방향으로 판단된다”면서 “또 주민이 집 인근지역 산불 위험요인을 신고하고, 지자체가 즉각 대응하는 커뮤니티 기반 경보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른바 ‘한국형 파이어스마트 프로그램’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고 회장도 “산불방지학은 불이 일어나는 3요소로 화원, 연료, 기상을 꼽는다. 숲을 드나드는 사람이 많은 현실에서 화원과 기상은 대처가 어렵다 해도 연료 관리는 반드시 필요하다”며 “불이 붙지 않고 또 불이 번지더라도 피해가 커지지 않도록 불의 매개와 사람이 사는 공간을 이격하는 등 평소에도 관리를 하면 좋은데 한국은 관련 정책 제도가 미흡하다. 연료를 평상시 관리하지 않는 건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당국의 임무 소홀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무엇보다 주민들이 산불 경각심을 알리고 연료 관리에 참여하는 거버넌스 구축이 필요하다”며 “캐나다의 파이어스마트 프로그램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나아가 98%가 사유지인 포르투칼이 공공 개입이 가능하도록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사례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이 연구위원은 “산불위험이 높은 사유림을 대상으로 지자체가 일시적으로 진입해 연료 제거 및 방화선 설치를 할 수 있는 조례를 개정하고, 사유림 소유자에게 보상금, 세금 감면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며 “산업조합, 지자체, 마을단위에서 연료 관리계획을 수립하고 사유림주 동의 시 소유권을 유지한 상태에서 공공이 관리하는 방안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산림 구조 다변화 필요성 제기
산림 구조의 다변화 필요성도 제기된다. 포르투칼 산불통합지휘기관인 AGIF 이사회 의장인 티아고 올리베이라는 한국 화재 시스템을 조언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단일 수송 식생 구조는 화재 확신을 빠르게 만드는 위험 요인”이라며 산림 구조의 다변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 연구위원도 “단순히 숲가꾸기에 대한 환경단체의 비판보다는 최근 대형 산불을 교훈삼아 참나무 등 내화수종과 혼효림으로 전환하는 숲가꾸기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임도 주변과 마을에 인접한 산지는 주민과 함께 연료를 제거하고, 산불 확산이 우려될 때 일부 구역을 계획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온난화 등 영향으로 한국 숲 식생이 침엽수에서 활엽수로 바뀌고 있다며 초대형 산불 피해를 줄이려면 침엽수 위주 인공조림이 아닌 자연식생을 유지하는 게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정정환 지리산사람들 운영위원은 “국립공원은 산림청 손을 타지 않기 때문에 숲이 자연스럽게 활엽수로 변했다”면서 “활엽수가 많아 산불이 발생할 경우 지표화로 땅으로만 가게 된다. 수관화도 비화 현상도 없어 피해가 크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수관화란 나무의 잎과 가지가 타는 불로, 지표화에서 시작해 수간을 거쳐 수관으로 강한 화세로 퍼지는 위험한 산불을 뜻하는데 혼효림이 조성된 숲은 활엽수가 습기를 많이 머금고 있어 가지들이 수증 역할을 하면서 수관화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외에 산불 예방 장기 로드맵을 수립할 필요성도 거론된다. 이 연구위원은 “포르투칼 사례와 같이 5년 혹은 10년 단위 산불 관리 계획을 수립해 임도·조림·토지이용 규제 등 구조적 변화를 단계적으로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박형남기자 7122love@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