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대응 패러다임 전환] 불 앞에 선 이웃들, 자율의 힘으로 맞서다⑦ <<<인터뷰- 티아고 올리베이라 AGIF 이사회 의장 농업•환경•에너지 등 연계해 정책의 축 설계… 어린이•청년 세대 장기적 교육 수립 ‘안전 마을 만들기 프로그램’ 운영으로 주민들 스스로 집 주변 나무•연소물질 정리 ‘압력과 인센티브 병행’ 보상 등 지원과 함께 법제화 통한 강제 의무는 참여율 높여 중앙정부•지자체•지역민 협력 시스템 구축해 실제 산불 발생 감소 효과로 이어져
“포르투칼 국민이 문제다”
포르투칼 화재와 관련한 직언이다. 포르투칼에서 발생하는 모든 화재 중 98%는 인위적 발화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나온 말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다. 올해 초 방대한 면적의 산간을 집어삼키며 국민들의 속까지 타들어가게 만들었던 대형화재는 성묘객의 라이터불에서 시작됐다. ‘설마’라는 생각조차 하기 힘든 작은 행동이 어마어마한 피해로 이어진 것이다. 때문에 산불 등 대형화재를 막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인식’과 ‘교육’이 꼽힌다. 인구 대비 인위적인 화재 발생 건수가 불균형적으로 높기로 악명높은 포르투칼 역시 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포르투칼은 120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2017년 대형 산불 이후 AGIF라는 농촌 화재 통합 관리 기관을 설립하고 산불 뿐 아니라 산림과 인접한 농촌까지 아우르는 ‘농촌 화재’를 예방하고 관리하고 지원하는 체계를 구축했다. 무엇보다 주민 교육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티아고 올리베이라(Tiago Oliveira) AGIF 이사회 의장은 “AGIF는 산불을 단순 자연재해가 아닌, 주로 인간의 활동에서 발생하는 ‘인재(人災)’로 본다. 비의도적, 반복적, 구조적인 인재가 산불의 주된 원인이라는 의식을 갖고 있다”면서 “우리가 다루고 있는 이 파괴는 인간이 만든 것이다. 때문에 더 많이 교육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간의 행동 변화야말로 산불 예방을 위한 필수적인 전략이라는 것이다. 올리베이라 의장은 다양한 부처가 힘을 모아 기후변화, 산불, 토지 관리, 자원 연계 등을 포괄하는 다차원적 교육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면서 “교육은 단순 캠페인이 아닌 정책의 기둥”이라 말했다. 이어 “AGIF는 교육을 단순한 정보 전달이나 캠페인 이상, 정책적으로 가장 중요한 축 중 하나로 본다. 이와 관련해 농업·환경·에너지 정책을 수립하고 어린이와 청년 세대에 대한 교육을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전략으로 집중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AGIF는 주민들이 정책을 수용하는 수동적 입장에 그치지 않고 ‘행동하는 주체’가 될 수 있도록 교육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한국에서는 단속, 홍보 위주로 산불 예방 교육이 전개되고 있는 반면, 포르투칼은 보다 체계적이고 총체적인 교육을 통해 시민 행동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는 셈이다. 이는 실제 산불 발생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올리베이라 의장은 “2023년부터는 예방 투자에 따른 효과가 가시화됐다는 평가가 있다”면서 “AGIF는 주민들이 스스로 자기 집 주변과 거주지를 관리하는 ‘공동체 기반’ 구조를 설계하고 운영하는 것을 목표로 각 마을 단위에서 직접 화재 위험을 줄이기 위한 예방 활동을 주민 주도로 시행하도록 안내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안전 마을 만들기 프로그램(Vilas Seguras)’이 있는데 산불에 취약한 지역의 나무를 미리 없애거나 집 주변 (연소 물질 등)을 정리하는 식이다”라고 설명했다.
포르투칼은 주민들의 의식 고취와 적극적 행동을 위해 주민들이 나무 벌목, 잡초 제거, 위험 지대 정비 등 실제 작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자금을 지원하고 있으며, 군경과 시골경찰이 직접 고령자 가구들을 방문해 불법행위 예방과 안전 안내를 실시한다. 지자체는 고령 주민 및 취약계층을 위해 직접 나서 산불 방지를 위한 정비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인구 감소 및 고령화가 심각한 지역의 경우 AGIF의 기술인력이 직접 투입돼 지역 맞춤형 전략을 세우고 실행한다. 이와 함께 지자체 공무원 역량 강화 교육도 실시한다는 설명이다. 또 성공적으로 화재 예방 시스템이 안착된 지역이 다른 지역과 교류하고 알려줄 수 있도록 하는 워크숍도 진행하는 등 유사한 조건의 지자체가 경험과 전략을 공유하고 협력하도록 돕는 역할도 하고 있다.
무엇보다 AGIF는 산불 예방을 위해 주민과 지자체 참여를 높이기 위한 방책으로 “압력과 인센티브의 병행”을 꼽았다. 단순한 ‘홍보’나 ‘캠페인’이 아니라 강제 및 지원이 결합된 정책을 추진해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마을 및 가구 단위로 일정 반경(통상 50~100m) 내 연료 제거 의무를 법제화하고, 이를 위반할 시 실제 수백 유로 수준의 벌금을 부과하는 방식이다. 사유지의 경우 소유주가 직접 청소를 하지 않을 경우, 정부나 읍·면·동 단위에서 대체 집행 후 비용 청구를 하기도 한다.
이와 함께 주민 자원봉사 등을 통해 이들의 실적에 따라 수당이나 마일리지를 제공하는 등 보상책도 병행하고 있다. 단순한 인식 개선을 넘어 법제화를 통한 강제력과 의무 발생으로 효과를 높이는 방책이다.
이같은 정책은 실제 효과를 발휘하기도 했다. 지난 2022년 포르투칼 북부 브라간사(Bragança) 지역이 연료 감소 및 주민 행동 전략을 도입했는데 이듬해 여름 발생한 대규모 산불을 막을 수 있었다. 당시 산불 초기만 해도 대형산불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확산됐지만 마을 인근에서 화재 확산이 차단된 것이다. 해당 화재 후 지역 주민 다수가 “초기에는 불안했지만 처방화(prescribed fire·숲의 연료를 사전에 없애는 전략)가 마을을 지켜줬다”고 평가했다는 후문이다.
AGIF는 산불 예방을 위해 명확한 정책 프레임을 구성하고, 이를 실현할 수 있도록 기술·제도·행정·교육·인센티브 결합을 통해 주민과 주체의 현실적 참여를 이끌어냈다. 이는 중앙정부와 지자체, 주민이 협력하는 시스템을 구축한 덕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AGIF는 지금까지의 화재 예방 정책과 방향을 유지·강화해나간다는 방침이다.
AGIF 올리베이라 의장은 “기존 정책 방향과 전략을 유지하면서 더 많은 예산확보를 통해 실행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목표”라면서 “이를 위해 민감 산림 소유자들의 참여를 확대시키는 한편 정치권의 지원과 지지도 확보해 더욱 효과적인 정책과 제도를 실행해나갈 것”이라 밝혔다.
AGIF가 정부와 정책, 지자체와 주민을 활용하는 방식은 국내에서도 배울 점이 적지 않다. 한국 역시 고령화 및 인구감소가 심각한 지역들이 늘어나고 있는 만큼 지금까지처럼 안일한 단속·경고 시스템으로는 화재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산불이 발생한 후 진화단계에 대한 대응이 주로 논의되고 있는 단계를 뛰어넘어 산불 예방에 대한 보다 심도깊은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또 재정적 유인으로 사회 구성원들의 책임의식 고취와 능동적 활동을 이끌어내는 제도 시행, 인구감소 및 고령화에 따른 인력 부족을 대체할 수 있는 방법, 지역과 지역 간 연계를 통한 효율적인 예방 교육 및 전략 실행 등 다각도에서 대응 전략을 구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박형남기자 7122love@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