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대응 패러다임 전환] 포르투칼은 왜 ‘산불’을 ‘농촌 화재’로 바꾸었을까⑥
불이과(不貳過). 같은 잘못을 두 번 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한 번 저지른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같은 마음가짐은 대형 재난 및 사고에 꼭 필요한 태도지만 실제 이행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포르투갈은 달랐다. 2017년 백여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한 대형 화재 후 포르투갈은 두팔을 걷어붙였다. 지중해성 기후의 영향으로 여름철이 되면 고온 건조해져 산불 발생 위험이 매우 높은 포르투갈은 ‘불이 나면 진화한다’는 시스템에서 벗어나 ‘산불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단순히 ‘산불’ 개념이 아닌 ‘농촌화재’로 영역을 확장하면서 더 많은 이들이 역할을 나눠 화재에 대응할 수 있게 됐다. 산불통합지휘기관인 AGIF를 필두로 포르투칼은 화재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방법을 찾아나가고 있다.
본지는 지난 7월 포르투갈 리스본을 찾아 포르투갈이 운영 중인 농촌 화재 통합 관리 기관(AGIF)을 찾아 포르투갈이 대형 화재 후 어떻게 변화했고, 어떤 정책으로 화재와 맞서고 있는지에 대해 살펴볼 수 있었다.
농지는 물론 도시 외곽까지 아울러
산림부·농업·환경부·지자체 이어
토지소유자까지 책임·역할 부여
전국적 위험도 지도화 작업 실시
한국 현장대응 체계 잘돼있지만
재발방지 위한 방법은 부재 상태
티아고 올리베이라 AGIF 의장
“소나무 중심 식생 빠른 확산 요인
수종 다양화 등 구조적 관리 필요”
포르투갈은 유럽에서 산불 위험도가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로 꼽힌다. 고온, 강풍, 낮은 습도 등 극단적인 포르투갈 기후와 산림과 주거지역이 혼재된 지역적 구조는 산불이 발생하기 좋은 환경이다. 이에 더해 농촌인구감소가 영향을 미쳤다. AGIF 이사회 의장인 티아고 올리베이라(Tiago Oliveira)는 “농촌에서 도시로 인구가 이동하면서 토지 이용에 변화가 많았고, 방치되는 농림 지역도 늘어나면서 산림관리 및 화재 계획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민간 화재 대응과 달리 미흡했던 산림 화재 시스템까지 더해지며, 결국 대형사고가 일어났다.
AGIF는 2017년을 ‘비극의 해’로 기억한다. 당시 산불은 포르투갈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피해를 야기했다. 포르투갈 당국은 전국적으로 1700명 이상의 소방관을 파견했지만 페드로강그란드 도로를 덮친 화마를 막지 못했고, 이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차량 안에서 화염에 휩싸여 숨졌다. 사망자는 무려 120여 명.
이 사건에 대해 AGIF 측은 “사건 이전까지는 다들 진화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그 사고를 기점으로 ‘우리가 잘못하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됐다”고 설명했다.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사고를 계기로 들여다 본 시스템의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AGIF 측은 “과거 20년동안 포르투갈 소방 시스템에 대한 다양한 검토를 시작했다. 소방대, 감독관 등의 전문지식이 부족했고 화재 전술이 미흡했으며 컨트롤타워 부재도 심각했다. 천연자원 관리부터 화재발생시 지원체계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왔고, 산불예측서비스 또한 실질적 도움이 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이에 대해 AGIF 측은 “미흡한 점을 시정할 수 있는 기회는 수년간 존재해 왔지만 실질적인 진전은 미미했다”면서 “2017년 실태조사 후 발화방지, 화재의 재료가 되는 연료감소방법, 산불화재 경계 통제 전술과 전문지식 탑재 등을 중점에 둔 새로운 정부기관이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AGIF가 탄생했다”고 밝혔다. 이후 AGIF는 단순히 화재 진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예방 중심’의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목표로 했다. 특히 AGIF는 산불 뿐만이 아니라 농촌 화재까지 개념을 확장했다. 포르투갈 내에서 실제 발생하는 화재의 대다수는 ‘산림 내부’가 아닌 ‘농촌 지역’ 또는 ‘산림과 인접한 비산림 지역’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특히 사람들이 거주하는 마을 근처에서 일어난 화재가 인명 피해로 이어지는 사례가 많다는 점에서 단순히 ‘산불’ 개념만으로는 실제 화재 발생시 대응 전략의 효율성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게 AGIF는 개념전환을 시도해 산림뿐 아니라, 목초지, 방치된 농지, 도시 외곽까지 아우르는 다각도의 예방 대응 체계를 구축했다. 무엇보다 정책 프레임도 전환시켰다. ‘산불’은 산림부 문제로 치부됐지만 ‘농촌화재’는 농업부, 환경부, 지자체, 민간토지소유자까지 다양한 다수의 주체에게 책임과 역할을 부여했다. AGIF는 “개념 전환이 처음부터 매끄러웠던 것은 아니지만 실제 화재 데이터 분석 결과를 통해 ‘농촌화재’ 개념의 필요성을 명확히 제시하고 EU 및 OECD와의 정책 공유를 통해 ‘다른 선진국들도 이 용어를 채택하고 있다’는 공감대와 정책전환 필요성을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포르투갈 내에서 정착된 ‘농촌화재’는 단순한 표현 변경을 넘어 위험도에 대한 인식 자체를 재설계하는 시작점이 됐다. 통합 농촌 화재 관리 시스템을 국가 전략 전반에 체계적으로 반영했고 위험이 도사리는 모든 농촌공간을 관리 대상으로 확장했다. 전국단위로 위험도 지도화 작업을 실시해 ‘어디에 사람이 거주하며, 더 위험한 곳은 어디인가’를 찾고 위험 구역을 재설계했다. 또 화재 대응과 예방을 위한 활동에는 산림청, 농림부, 환경부 외에도 내무부(공공안전, GNR(국가헌병), 지방경찰), 교육부, 언론, 지자체, 민간 소유주 등 다양한 주체가 조직적으로 참여하도록 재구성했다. 내무부와의 협업을 통해 경찰 등 공공안전 조직도 예방 활동에 적극 참여하게 했으며, 교육 및 언론과 협력해 화재 인식 전환 캠페인도 병행했다.
무엇보다 농촌화재를 예방하기 위해 적극적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위험도가 높은 지역에 대해 인력, 장비, 훈련, 보조금 등 각종 공공자원을 차등 배분했고 ‘정책적 긍정차별’을 활용, 물리적·사회적으로 취약한 지역일수록 더 적극적으로 배정했다. 실질적인 안전 확보와 구조, 사후 복원 등 모든 관점에서 자원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무엇보다 포르투갈 산림의 97%가 민간 소유라는 점을 감안한 정책을 추진한 점이 눈길을 끈다. 숲정비 비용 등 관리 실적에 따른 보조금을 지원하고, 에너지 작물, 방재용 수액채취, 특용작물 도입 등 생태계 서비스를 제공하며 화재가 발생할 요인을 줄이고 화재 시 대형화 방지에도 힘썼다. AGIF는 “O proprietário para limpar tem que receber dinheiro, tem que ter um investimento.(소유자가 정비하려면 반드시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말로 적재적소 보상이 적극적 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소방적 관점에서는 진화중심에서 예방중심으로 전환했다. 2017년 화재 당시 당시 소방력, 장비 등 진화 자원이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극단적 기상조건, 인적자원 소진 등으로 대형 산불 확산을 막지 못했던 경험을 발판삼아 산불이 퍼지지 않게 만드는 구조적·생태적·사회적 조건 자체를 바꾸는 해법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예방이 진화보다 비용 절감 효과가 높다”는 경제적 설득과 “불을 끄는 게 목적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게 목적”이라는 목표의식도 함께였다. 이같은 모든 변화는 데이터와 기술 전문성, 중립성에 기반한 신뢰와 객관성, 국제사회의 기준과 외부 평가를 활용한 설득력 있는 접근 방식을 통해 이뤄질 수 있었다.
화재에 대한 패러다임 전환부터 대대적인 시스템 전환, 적절한 지원정책 등 구체적 시행까지 포르투갈은 AGIF를 주축으로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는 국내 시스템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화재 전문가들이 보는 한국의 시스템은 현장 진화와 대응에 집중하는 체계는 잘 구축돼 있지만 화재 재발 방지를 위한 방법은 부재한 상태다. 단순히 화재 발생 시 진화하는 방법론을 넘어서 ‘화재를 막는 법,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등 근본적 문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보인다.
AGIF 이사회 의장인 티아고 올리베이라는 국내 화재 시스템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기자에게 “한국처럼 소나무 중심의 단일 수종 식생 구조는 화재 확산을 빠르게 만드는 주요한 위험 요인”이라면서 “특히 단일수종의 밀식림에서 화재가 빠르게 확산되기 때문에 산림 구조의 다양화, 방화대 조성, 사전 연료 제거 등의 ‘구조적 관리’가 핵심이 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단순히 진화 자원을 증강하는 방식은 한계가 있다. ‘불이 나기 전에 어떻게 막을 것인가’ 라는 시각으로 대응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박형남기자 7122love@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