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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과의 싸움 변수는 ‘하늘’ 美 통합 대응 전략서 배운다

박형남 기자
등록일 2025-11-11 18:22 게재일 2025-11-12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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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 대응 패러다임 전환] 산불과의 싸움 변수는 ‘하늘’…미국 대응전략서 배운다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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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IFC와 계약한 민간 항공기를 개조한 소방 항공기.  /공동취재팀

지난 3월 말, 영남권을 휩쓴 역대 최악의 대형 산불은 초속 25m/s의 강풍을 타고 불길이 삽시간에 확산되며 수천 헥타르의 산림을 삼켰다. 산불발생지역 지자체는 각자도생해야 했고, 진화 헬기 투입은 늦었다. 그 사이 화마는 밤낮을 쉬지 않고 번졌고, 불길이 지나간 자리의 모든 것은 속절없이 스러졌다.

대형 산불, 그것도 산악 지형이 험한 한국 특성상 헬기가 필수 요건이나 열악한 장비는 산불 진화에 어려움을 키웠다. 한국은 산불의 헬기 진화율이 80%에 달할 만큼 산불 진화에서 핵심 역할을 하지만 지난 영남권 산불 때 산림청 보유 헬기 50대 중 35대만 현장에 투입될 수 있었다. 러시아제 8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부품 수입이 끊겨 운용이 불가능했고, 7대는 1980~90년대 도입한 600리터급 소형 헬기라서 대형 산불 현장에 투입할 수가 없었다.

헬기가 필수인 지형의 한국이 갖가지 이유로 현장 투입이 어려운 상황과 달리 미국은 민간과 계약을 통해 산불 관리 항공 인력을 효율적으로 운용 중이다. 한국이 대형 산불에도 헬기 운용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실태와 함께 이와 다른 미국의 시스템을 소개한다.

 

 

항공기·인력 등 조정·배분하는 ‘NIFC’

1~5단계 대비 데이터 기반 우선순위 정해

언제든 투입 가능한 민간항공기와 계약
전문소방대원 ‘스모크점퍼’도 현장 급파


美 전문가들 “韓, 산림청·소방청·지자체 
헬기 통합 운용 컨트롤타워 필요” 조언

 

헬기 운영 한계 드러낸 우리나라

현재 국내 산불 진화에 투입되는 헬기는 △산림청 산림헬기 △소방청 소방헬기 △지방자치단체 임차헬기로 나뉜다.

산림청 소속 헬기는 2025년 2월 기준 총 50대인데 기령 20년 이상인 헬기가 44대(88%)에 달해 노후화 우려가 심각한 상황이다. 소방청 소속 헬기의 경우 총 32대로 이중 8대만이 2천~4천L급 담수 능력을 갖추고 있다. 지자체는 총 81대의 임차 헬기를 민간항공업체로부터 빌려 사용하고 있지만 기령 20년 이상이 74대에 달하며, 그마저도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는 임차조차 어려운 상황이라 노후 기종이라도 계약할 수밖에 없는 열악한 상황이다.

운영체계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산불은 초기에 진화하지 못하면 급속히 확산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행 대응 체계에서는 산불이 발생하면 시장·군수·구청장이 초기 진화를 지휘하고 관할 헬기만 투입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지자체 임차헬기만으로 조기 진화를 감당하기 어렵게 만든다. 지난 3월, 경북 의성에서 강풍과 함께 넘어온 산불에 맞닥뜨려야 했던 영양군은 당시 임차 보유 중이던 진화헬기 1대를 임차 업체 소속 조종사와 함께 현장에 투입했다. 그마저도 30년전 생산된 노후헬기로 산불과 사투를 벌여야 하는 현실이었다.

이에 대해 산림청 관계자는 “전국적으로 동시에 산불이 발생할 경우, 산림청과 지자체 헬기만으로는 감당이 불가능하다”며 “야간운항이 가능한 헬기가 3대뿐이라는 점도 치명적”이라고 말했다. 산불 대응시에는 신속한 대응이 우선이나 법체계마저 이를 가로막는다. ‘항공안전법’상 야간 산불진화는 비행안전 확보를 위한 특별 운항제한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는데 국토교통부 고시 「회전익항공기를 위한 운항기술기준」 제10절(회전익항공기 야간 산불진화 추가기준 10.3.1.가)에서는 회전익항공기의 야간 진화가 ‘주간부터 해당 지역의 지형·장애물을 숙지한 경우’에만 허용된다. 결과적으로 야간 산불은 헬기로 진화할 수 없는 시간대가 되기에 산불 진화 어려움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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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OKE JUMPER 대원들의 장비.  /공동취재팀

미국의 상황 “항공 자원, 하나의 시스템으로 전국 단위 배분”

산림청과 소방청, 각 지자체가 알아서 대응해야 하는 국내 시스템과 달리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체계적인 산불 대응 시스템으로 꼽히는 NIFC(National Interagency Fire Center) 운영을 통해 모든 항공 자원을 한 개 시스템 하에 두고, 전국 단위로 배분하는 극효율의 체계를 운영 중이다.

여러 기관이 모여 서로의 자원을 공유하고, 정보와 인력을 통합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NIFC는 전국단위로 필요한 항공기나 인력을 모두 센터에서 조정해 배분하고 있다. 실시간으로 자원을 조정하는 담당처는 NIFC 내에 있는 전국 산불 조정센터(NICC·National Interagency Coordination Center)다. 주로 국토부와 산림청 소속 직원들로 구성돼 있어 관계 부처 간 대응과 협력이 신속히 이뤄질 수 있다.

NICC관계자는 “산불 발생시 로컬 디스패치(비상 상황시 화재 진압 소방대원 투입 조정센터)에서 자체적 해결이 가능한 경우 외에 전국적으로 필요한 상황이 발생할 시 인적 및 장비 요청을 진행한다”면서 “1~5단계까지의 준비상태(Preparedness Level)를 거치는데 기상청, 정보기관, 산불 관리 담당 등 세 곳이 협력해 정보를 통합하고 결정한다. 산불이 여러 곳에서 발생할 경우 헬기, 항공기, 인력 같은 대규모 자원 배분을 어떻게 할지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단순히 감으로 판단하는 게 아니다”라며 “데이터 기반으로 어느 지역에 헬기를 우선 배치할지, 어떤 규모의 인력을 투입할지 결정한다”고 덧붙였다. 각 지자체 및 기관부처가 초기 대응을 도맡는 한국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특히 NICC가 보유한 항공 자원의 경우 정부 소유 항공기보다 민간 소유 항공기가 더 많이 계약돼 있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이는 필요할 시 언제든 투입이 가능한 항공기 수량이 항시 확보돼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NICC 관계자는 “NICC가 보유한 대부분 항공기는 개인소유, 민간항공사다”면서 “계약기간 동안 민간 계약자들은 상시 대기 상태로 있다가 우리가 필요할 때 언제든 항공기를 제공하며 출동 시 추가 비용을 지급받는다”고 설명했다.

항공기와 함께 전문 훈련을 받은 인력이 투입된다는 점도 산불 대응력을 높인다. NIFC에 소속된 기관중 미국 산림청(USFS)이 직접 운영하는 Great Basin Smokejumper Base(스모크 점퍼들의 훈련·출동·보급 거점)에서는 산불 현장에 투입되는 인력을 훈련·교육하고, 항공 출동을 지휘한다. 이들은 산불 전문 소방대원인 스모크점퍼(Smoke jumper)로, 비행기에서 낙하산을 타고 뛰어내려 산불 현장에 투입되는 전문대원이다. 주로 도로나 접근로가 없는 깊은 산속에서 산불 초기 대응을 하는 데 적합한 인력인 이들은 낙하 후 불길 근처에서 방화선을 만들어 불이 번지지 않도록 가연물을 제거하거나 작은 불길을 직접 진화하는 등 불길을 끊어 내며, 산불이 대형 재난으로 번지지 않는 데 효과적인 역할을 한다.

이 역시 한국의 상황과 확연하게 다르다. 한국은 크게 산불특수진화대, 산불예방진화대, 공중진화대로 나눠 산불 진화대를 운영하고 있다. 이중 산불예방진화대가 대부분 비중을 차지하는데 6개월~1년 계약을 체결한 기간제인데다 전문적인 직무 교육도 받지 않는다. 미국이 빠르게 초기 진압을 가능케 하는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반면, 국내 산불예방진화대는 주로 산불 예방과 잔불 정리 작업을 맡는데 지난 영남권 산불과 같은 대형 산불에는 진화에 직접 투입된다. 그만큼 위험성이 높다. 실제 당시 경남 산청에서는 창녕군청 소속 예방진화대원 3명이 작업 도중 목숨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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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항공기를 개조한 소방 항공기 내부./공동취재팀

국내도 모자라다, 국제 협력 체계 갖춘 미국

미국의 NIFC 시스템은 확실하게 산불을 진화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여준다. 민간 계약자들과 계약을 통해 산불 현장에 지체없이 투입할 수 있는 항공기를 확보해두고, 이 항공기를 이용해 스모크점퍼들과 같은 전문 인력을 현장으로 보내 산불 악화를 막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

이로도 모자라 캐나다, 멕시코, 뉴질랜드, 포르투갈 등과 국제 협력 체계를 갖추고 있다. NIFC 관계자는 “1982년부터 NIFC와 협력을 시작했다. 이들 국가와 협력을 위해 공통적으로 ICS(Incident Command System)라는 표준화된 대응체계를 공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NIFC와 협력관계를 맺은 이들 국가는 화재 발생시 인적 자원 등을 지원한다. 미국 NIFC 역시 호주 화재 발생시 인력을 투입했고, 올해도 캐나다로 600명의 소방관을 지원했다. 이에 더해 NIFC 관계자는 “필요한 경우에 따라 군과도 밀접한 연락을 해 도움을 받기도 한다”면서 “또 산불만이 아니라 허리케인 등 다른 자연재해에도 투입될 수 있는 훈련을 한다”고 설명했다.

미국은 군(軍)과 민간, 정부 기관이 명확히 역할을 나눈 통합 구조를 운영중이며, 산불 대응에서 나아가 허리케인, 대형 산업화재, 원전 사고 등에도 동일한 체계가 작동할 수 있도록 훈련하고 대비하고 있다. 한국의 상황을 들은 미국의 전문가들은 “한국도 장기적으로 산림청·소방청·지자체의 헬기를 통합 운용할 컨트롤타워를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국은 예측과 협력, 훈련을 통해 ‘책임론’에서 벗어나 통합 체계를 구성했고 ‘누가 움직일 것인가’가 아니라 ‘함께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를 고민했다. 그리고 산불과의 싸움에서 이겨나가고 있다. 견고한 대비 체계를 구축해 시간을 확보한 덕이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박형남기자 7122love@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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