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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권 대형산불, 예방부터 진화까지 ‘구멍난 시스템’ 화 키워

박형남 기자
등록일 2025-11-09 18:45 게재일 2025-11-10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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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 대응 패러다임 전환] ① 산불 피해, 대응은 제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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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5일 새벽 성묘객 실화로 발생한 의성군 대형 산불이 나흘째 이어지는 가운데, 의성군 안평면 기도리 인근 야산의 불길이 밤새 민가를 위협하고 있다. /경북매일DB

지난 3월 의성·안동·청송·영양·영덕 등 경북 5개 시·군은 물론 울산, 경남 지역에서 산불이 확산되면서 영남권 전역이 산불로 뒤덮였다. 2000년 동해안 산불의 4배가 넘는 규모로 문화재 손실 등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다. 산림과 주거지의 경계가 밀접하고 강풍 통로와 급경사 지형, 고령화된 인구 분포, 불법 소각과 관리 사각지대 등이 겹쳐 산불 피해가 유난히 컸다. 이번 초대형 산불을 진화하는 과정에서 대형 살수 헬기 부재 등 우리나라의 산불 대응 체계의 총체적인 문제점을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본지는 기획 시리즈로 이번 우리나라 산불 대응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우리와 마찬가지로 초대형 산불을 맞닥뜨렸던 포르투칼·캐나다·미국 지역의 산불 대응 방안이 주는 교훈과 대책도 면밀히 살펴봤다.<편집자주>

 지난 3월 의성 등 영남권 삼킨 ‘괴물 산불’ 
산림청•소방청•지자체 등 따로따로 대응
대피경보조차 제대로 전달못해 혼선 빚어 
산불 피해지 복원에 대부분 ‘침엽수’ 식재
‘불쏘시개’ 된 소나무가 ‘불의 통로’ 만들어
진화헬기•장비•인력부족까지 총체적 난제 
“예방 중심 대응책 등 장기적 로드맵 필요”  

우리나라 산불 발생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산림청 자료에 따르면 봄에 주기적으로 비가 내려 산불 발생이 적었던 2024년을 제외하고는 2017년부터 해마다 대형 산불이 발생했다. 특히 산불 위치정보를 토대로 산림청이 만든 산불다발지역 지도는 서울, 인천, 대구 등 인구 밀집 지역에 산불 위험이 높다고 평가하고 있으며, 대형 인명 피해 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경고한다.

그런데 이 같은 경고도 불구하고 지난 3월 의성 등 영남권 전역을 집어삼킨 산불이 발생했다. 이른바 ‘괴물 산불’로 불린다. 사망자 27명을 포함해 총 183명의 인명피해와 10만 4004ha의 산림이 불에 탔고, 주택 3848동과 농어업시설 6106건, 농기계 1만7158대 등에 피해를 입혔다. 이 외에 의성에 있는 고운사 등 전통사찰, 국가유산 등의 피해도 상당했다. 정부는 재난 대응 최고 단계를 발령하고, 전국의 소방 인력과 장비를 총동원해 진화 작업을 전개했지만 강풍과 건조한 날씨로 인해 진화 작업이 장기화됐다. 산림 훼손에 따른 주거지 파괴 등은 지방소멸이라는 위기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수도권 일극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컨트롤타워 부재로 현장은 ‘혼선만’

이번 영남권 산불에서 드러난 문제점은 상당하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재난 대응 체계를 문제삼고 있다. 우선적으로 컨트롤타워 문제가 꼽힌다. 지역의 한 소방 소장은 “산불이 나면 산림청 지휘를 받아야 한다”며 “산림청의 산불대응은 소수 인력에 불과해 산불 대응 체계가 너무 빈약하다”고 진단했다. 산림청·소방청·지방자치단체 간 산불대응체계 개편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실제 국회 입법조사처의 ‘최근 산불대응 관련 주요 쟁점 및 향후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산불대응 주관기관은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과 해당법 시행령에 따라 산림청이 맡고 있다. 문제는 산불 규모에 따라 달라진다. ‘산림보호법’ 제37조 및 제38조에 따르면 중·소형산불의 경우 특별자치시장·특별자치도지사·시장·군수·구청장 또는 국유림관리소장이, 대형산불의 경우 시·도지사가 각각 산불현장 통합지휘본부장을 맡는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과 산림보호법이 산불대응 주관기관을 서로 다르게 규정하고 있어, 일선 현장의 지휘체계 혼란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현행 산불대응 발령 기준에 따르면 시·군·구 차원의 초기 대응이 어려울 뿐 아니라 적기에 협조를 받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번 영남권 산불이 대표적이다. 산불 초기 당시 강풍이 불면서 확산세가 컸고 이로 인해 현장에선 시·군·구, 산림당국, 소방관서 간 혼선이 발생했다. 산불 피해를 직접 겪은 주민들 사이에서도 “컨트롤타워가 없었다”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이는 주민 대피 체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불길이 번지는 상황에서도 주민들에게 대피 경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해 대피명령이 지연된 사례가 있다. 산불 현장을 지켜봤던 민영권 산청난개발대책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은 “마을에 산불이 내려와 주민들이 불을 끄러 가는데도 ‘대피 명령’ 하나가 안내려 왔다“며 “재난 대응 관련한 대응 메뉴얼이 있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산림은 산림청, 산불 대응은 소방청이 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정정환 지리산사람들 운영위원은 “산림청에서 말했던 산불 대응 시스템, 모니터링하는 시스템들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이쪽에서 ‘이쪽으로 가라’, 저쪽에서는 ‘저쪽으로 가라’ 이런 식이다. 이렇게 되면 서로 소통이 되지 않으면서 산불 대응을 빨리 하지 못한다“며 “일원화가 되지 않으면 서로 다른 얘기를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현장에서 봤을 때 불에 대한 전문가는 소방청”이라며 “산불 관리에 대한 모든 권한을 소방청에 이관하는 게 낫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같은 주장은 지난 10월 24일 이재명 대통령이 참석한 ‘대구의 마음을 듣다’ 타운홀 미팅에서도 나왔다. 지난 3월 산불 진화작업에 투입됐다 순직한 대원의 장녀가 이 대통령에게 “아버지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산불 진화 업무가 제대로 된 체계로 관리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요청드린다”며 산불 진화 업무를 소방청으로 이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은 “산불 진화 체계 재정비 문제는 대통령실에서 역점을 두고 정비 중”이라며 같은 대형 화재 참사를 막겠다고 약속했다.

 산림 정책 ‘숲 가꾸기’ 대형 산불 원인으로 지목

 산림청의 소나무 단순림 숲가꾸기 정책도 대형 산불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수분이 적고 건조한 환경에서 자라는 소나무는 활엽수에 견줘 산불 발생 시 1.4배 더 뜨겁게 타고 불 지속 시간도 2.4배 길다. 소나무보다 활엽수가 불에 강하며, 산불 확산을 막는 데에는 활엽수림이 더 유용하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산림당국은 산불 피해지 복원 등 인공조림 땐 침염수를 더 많이 심고 있다. 산림당국의 2014년부터 2024년까지 인공조림 현황을 수종별로 살펴보면 소나무를 포함한 침엽수는 13만5000ha를 차지한 반면 활엽수는 9만ha에 그쳤다.

정 운영위원은 “소나무 이파리는 불이 붙으면 숯처럼 빨갛게 날림 상태로 번지고, 불을 머금은 솔방울은 수류탄처럼 터져 인근 숲과 강 건너까지 불을 확산시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국립공원은 산림청 손을 타지 않기 때문에 숲이 자연스럽게 활엽수로 변했다”며 “활엽수가 많아 불이 지표화로 땅으로만 가지 수관화도 비화 현상도 없어 피해가 크지 않은 것”이라고 진단했다.

관리용 임도가 불을 키웠다는 주장도 나온다. 민 집행위원장은 “이번 산불에도 임도를 따라 불이 번지는 모습이 자주 목격됐다”며 “불을 끄기 위한 길이 오히려 불의 통로가 됐다”고 지적했다.

정 운영위원도 “소나무림은 불이 수관화해 임도를 덮어버린다”며 “내부 온도가 1600도 이상으로 치솟아 진입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산림 당국이 진화를 위해 임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얘기다. 이 외에도 진화 헬기와 장비 부족, 인력 부족 등도 문제점으로 드러났다.

산불은 대형화되고, 산불 발생 빈도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 산불 진화 체계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전문가들은 지금 산림 정책으로는 산불을 막을 수 없을 뿐 아니라 대형 산불이 또 다시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 때문에 커지는 산불 위험에 대응할 체계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이지성 경남연구원 박사는 “기후 변화 등으로 대형 산불이 많이 나고 있다”며 “장기적인 로드맵 같은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박사는 산불 대응이 산림청과 소방청으로 나뉘어 있어 초동 진화에 혼선이 생긴다는 점을 거론하며 “재난안전관리법과 산림보호법 등 관련 법령을 일치시켜 지휘체계의 법적 근거를 명확히 하고, 지방정부가 운영하는 산불방지센터에 인력과 장비 동원 권한을 위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다른 산림 전문가들은 단편적인 대응을 넘어선 구조적인 전환, 즉 기후 현실을 반영한 예방 중심의 재난 대응 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런 차원에서 산불 위험이 높은 나라들의 산불 대응 정책을 벤치마킹해 ‘한국형 정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박형남기자 7122love@kbmaeil.com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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