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국수공장-구룡포의 바람과 햇살 그리고 굽은 손가락③
이순화 여사는 노동을 감당하지 못할 나이에 이르면서 사업을 아들에게 물려주었다. 그리고 업장에 앉아 국수를 판매한다. 문명의 이기에 익숙하지 않아 다방면으로 역할을 수행할 수는 없지만 ‘홍보대사’ 역할은 마다하지 않는다. 돈이 크게 되지는 않지만 필생의 사업을 포기할 수 없다는 자신의 뜻을 받아들인 아들이 고마웠다. 돈이 우선인가, 소멸되어가는 소중한 가치가 사장되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가장 늦게 시작한 국수시장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명맥을 유지할 수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밥벌이의 지겨움은 스스로 잘 알고 있다. 아들 역시 20여 년 잘 다니던 직장을 정리하고 가업을 이어받은 것이기에 정말 고마웠다.
20여 년 직장 정리하고 가업 잇는 아들
10년 간 어머니 감각 익히며 공부 매진
어머니가 지켜온 가치 훼손 하지 않고
필요한 만큼 생산하고 품질에만 정성
‘버티는 사람이 이기는 사람’ 조언 따라
상표등록·최신 장비 갖추며 준비 ‘착착’
“해풍국수 먹고프면 구룡포로 오시라”
하동대 대표, 지역경제 상생 소명 전해
전통시장에서 상인연합회의 역할은 중요하다. 이순화 여사는 구룡포 전통시장의 현대화는 물론 좌판 상인들의 권리를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현실은 만만하지 않았다. 노후에 이르러 더불어 잘 살아갈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한다. 이런 노력에 아들은 그림자처럼 도움이 되고 있다. 그 많은 국수공장이 사라졌어도 끝까지 자리를 지키려는 이유다.
“모든 어머니가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을까요? 젊었을 적에는 자식들을 위한 희생으로, 나중에는 자신의 삶에 대한 소명으로 일을 그만두지 않잖아요. 그 삶이 고귀해 이 사업을 물려받았습니다. 어머니에게 국수는 남편과 같고 친구와 같고 없는 애인과 같다는 말씀에 도저히 일을 그만두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건강하게 천천히 하고 싶은 대로 하시길 바랄 뿐이지요. 이렇게 소소한 행복을 선물해준 어머니께 진정으로 감사드립니다.”
구룡포를 찾는 사람이 늘어나게 하고 싶어
하동대 대표는 홍보의 중요함을 절감하고 있다. 알아야 면면장(免面牆)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인터넷이나 사회정보 시스템을 활용한 홍보는 일부러 거부하고 있다. 대량생산 시스템을 적용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2억 원가량을 투자해 최신식 장비를 설치하고 최상의 제품을 생산하기 위한 준비를 갖추었다. 언제까지 이 공장을 가동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발전 속도가 느린 사양산업임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멈추지 말아야 할 의무가 그에게 있다. 해풍국수를 맛보고 싶은 사람들이 구룡포를 방문해 해풍국수를 끓이는 점포에서 맛을 보면 좋을 테고, 그렇게 사람을 불러 모으면 구룡포 경제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해풍국수는 직접 방문해 구입할 수 있는데 생산량을 적정하게 조절하다 보니 전화 주문을 하면 시간이 좀 걸리는 편이다. 고객들은 그런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하 대표는 배짱이 아니라 해풍국수를 먹고 싶으면 구룡포로 오라고 말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구룡포의 발전에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한다. 어느 학자의 말을 빌려 그는 말했다.
“인문학은 발걸음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책상에서 공부하고 컴퓨터로 검색하고 모바일로 체험하는 것과는 다른 경지라는 말로 해석되었습니다. 와서 보고 느끼고 감동하고, 건전한 소비를 통해 지역 경제에 기여한다면, 음식만이 아니라 지역의 정서를 고스란히 느끼고, 그다음 자신의 페이지에 그걸 기록하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해요. 그런 경험이 확산된다면 지방 소멸이라는 말이 떠돌아다니지 않을 겁니다. 여행이 관광이 아니라는 사실을 구룡포는 보여줄 수 있을 겁니다. 오세요, 그리고 느껴 보세요. 구룡포는 국수만이 아니라 보고 느낄 것들이 정말 많으니까요. 구룡포 대게도 참 맛있는 음식입니다. 저렴한 생선회는 덤이고요. 구만리 청보리밭을 보는 것은 잊지 못할 경험이 될 겁니다. 만월의 달밤에는 어쩌면 신비한 환각을 느낄지도 모릅니다.”
10년 동안 어머니의 감각을 익혀
하 대표는 자신의 사업만 생각하지 않는다. 구룡포의 발전을 위해, 나아가서는 포항시민들과의 상생을 위해 작으나마 힘을 보태고자 한다. 물론 어머니가 우선이다.
“이제 쉬셔도 되는 연세입니다.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지요. 그러나 어머니는 잠시도 일을 접지 않습니다. 애초에 그럴 생각이 없는 분입니다. 장터가 생활의 터전이기 때문이죠. 4남매 중 제가 장남입니다. 위로 두 누님은 내외가 다 교사로 재직하고 있어요. 남동생도 있지만, 어머니의 인생을 완성하려면 제가 가업을 잇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조금의 후회도 없어요. 다만 더 잘하고 싶습니다.”
하동대 대표는 주어진 소임에 충실하고, 욕심은 내고 싶지 않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필요한 만큼 생산하고, 품질에만 신경을 쓰고 싶기 때문이다. 투자를 하고, 홍보를 강화하고, 대량생산은 아니더라도 적극적인 경영을 하면 훨씬 사정이 나아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각종 규제가 너무 힘들어 그렇게 싸우고 싶지 않다. 상표등록 등 다른 준비는 다 해놓았다. 대기업과 상표를 공유하며 매칭하는 것도 구상하고 있지만 많은 고민이 필요한 일이다. 이 경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어머니가 지켜온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것이다. 구룡포의 바람과 햇살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때까지 잘 살아오지 않았는가. 고생되더라도 어머니의 정신을 지키고, 가업을 이어받은 자신의 존재 의미를 스스로 증명하기 위해서도 해풍국수의 전통을 지키고 싶다. 그리고 그럴 자신이 충분하다. 10년 동안 어머니의 감각을 익혔고, 그걸 기억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공부는 항상 진행형이다.
위기를 맞은 인생음식
구룡포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현저하게 줄었다. 이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길은 기본에 충실하는 것임을 그는 어머니에게 배운다. 국수가 잘 팔리는 날도 있고 파리만 날리는 날도 있다. 버티는 사람이 이기는 사람이라고 어머니는 가만히 말씀해주셨다. 그 많던 국수공장이 다 사라져도, 가장 늦게 시작한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남지 않았느냐, 밥 먹고 산 일이 얼마나 고마운가, 그런 생각을 하면 금세 겸손해진다, 저 간판을 보라, 우체국장이 만들어준 저 간판이 우리의 얼굴 아닌가. 저 간판의 변치 않는 쨍쨍함, 그 어떤 붓글씨 대가의 필체보다 낫고 비바람 맞고 견딘 저 나무의 결만 보아도 마른 눈물이 난다, 나는 내가 자랑스럽고 이 길을 선택해준 네가 더 자랑스럽다, 어머니는 혼잣말하듯 그렇게 말씀하셨단다.
구룡포의 바다는 여전히 푸르고 창망하다. 그 깊이를 아무도 알지 못한다. 이순화 여사의 마음 역시 그 깊이를 아무도 알지 못한다.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소중한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삶이 세대를 뛰어넘어 면면히 유지되는 극명한 이유다.
모든 잔치에 국수는 반드시 등장하는 음식이었다. 그러나 이 인생 음식이 조금씩 소외되면서 위기를 맞고 있다. 대량과 편리, 파격적인 저가로 밀어붙이는 음식들이 식탁을 위협한다. 그러나 라면과 빵, 인스턴트로 대체되는 음식으로 간단하게 우리 인생을 때울 일이 아니지 않은가. 〈끝〉
글 : 이우근(시인) 사 진 : 김 훈(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