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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외국인이 지탱하는 도시⋯포항은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

단정민 기자
등록일 2025-12-11 14:21 게재일 2025-12-12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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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이민 시대, 지속 가능한 길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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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인구 관련 이미지. /클립아트코리아

포항의 지속가능성을 좌우하는 변수는 더 이상 출산율만이 아니다. 인구 50만 명의 경계가 흔들리는 가운데 외국인 8615명은 산업·교육·지역 공동체 전반에서 이미 도시를 떠받치는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다. 제조업과 수산가공, 항만 물류, 농축산업, 대학 교육 등 도시의 여러 기능이 외국인 인력 없이는 정상적인 운영이 어려운 구조로 변한 지금, 포항이 어떤 방향을 택하느냐는 단순한 인구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 전략의 문제로 이어진다. 이 변화의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 구조적 관점을 제시한 안성조 경북연구원 연구위원,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실질적 과제를 지적한 장흔성 경북 K-드림외국인지원센터 센터장의 의견을 각각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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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조 경북연구원 연구위원. /경북연구원 제공

◇ 안성조 경북연구원 연구위원 “이민은 선택이 아니라 구조적 대응이다”

안성조 경북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의 인구 상황을 “20년 누적으로 형성된 저출생의 결과”라고 진단했다. 그는 합계출산율이 바닥을 찍으며 진정 국면에 들어선 것처럼 보이지만 “대체출산율 2.1과의 격차는 여전히 크다”며 인구구조 변화가 사실상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이라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지방도시의 미래는 감소하는 인구를 전제로 한 대응 전략을 얼마나 정교하게 마련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의미다.

이 지점에서 외국인의 역할은 더욱 분명해진다. 안 연구위원은 “유학생, 산업현장 근로자, 농어업 인력 등 외국인은 이미 도시 기능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 역할을 하고 있다”며 단순한 숫자 보완을 넘어 포항이 유지되는 구조 자체의 핵심 요소로 작동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는 한국 사회가 여전히 외국인을 ‘일시 체류자’로만 인식하는 경향이 강해 장기적으로 함께 살아갈 구성원으로 자리 잡도록 돕는 제도와 문화가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안 연구위원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략을 정착 단계·체류 목적·접근성이라는 세 축으로 설명했다. 그는 “입국 초기, 2~3년 적응기, 장기 정착기 등 단계별로 필요한 지원은 모두 다르다”고 말했다. 이어 “유학생·산업근로자·농축산업 근로자·결혼이민자 등 체류 목적에 따라 서비스가 구분돼야 한다”면서 지금처럼 모든 외국인을 하나의 범주로 묶는 지원 방식으로는 실질적인 정착 기반을 마련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 전략을 뒷받침할 가장 중요한 요소로는 ‘접근성 개선’이다. 안 연구위원은 “언어·정보·생활 서비스를 한 곳에서 안내받을 수 있는 종합 플랫폼이 필요하다”며 지역대학·관공서·센터가 연계한 상시 언어교육 모델 구축을 제안했다. 또 “해외 광역비자처럼 지역 산업구조에 기반한 지역특화형 체류제도를 적극 도입해 포항의 상황에 맞는 인구정책을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포항이 산업도시라는 점을 고려하면 숙련 외국인 인력의 장기 정착은 핵심적 과제로 꼽힌다. 그는 “단기 체류 뒤 귀국하면서 산업현장의 기술이 단절되는 문제가 반복된다”며 장기 근속을 유도할 수 있도록 기술 장인 육성, 10년 이상 근속 지원, 가족 동반 정착 허용 같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산업 생태계의 지속성과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안 연구위원은 가장 시급한 과제로 외국인 주민 실태조사를 제시했다. 그는 “이들이 어떻게 살고 있고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정확한 진단 없이는 어떤 정책도 지속될 수 없다”고 강조하며 “실태 파악이 포항이 이민 시대에 적합한 전략을 설계하기 위한 출발점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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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흔성 경북 K-드림외국인지원센터 센터장. /단정민기자

◇ 장흔성 경북 K-드림외국인지원센터 센터장 “주거문제, 삶의 조건과 정착의 장벽”

현장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본 장흔성 경북 K-드림외국인지원센터 센터장은 외국인이 포항에서 가장 먼저 부딪히는 장벽을 주거 문제로 규정했다. 

그는 “집주인이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계약을 거부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말하며 주거 확보가 단순한 생활 요소가 아니라 취업·이동·건강 등 모든 정착 과정의 출발점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안정된 주거 없이 시작되는 일상은 결국 정착 자체를 흔드는 구조적 위험으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장 센터장은 노동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리스크”라고 표현했다. 그는 “과도한 노동, 휴가 미부여, 사업장 이동 제한, 임금 체불 등 구조적 착취에 가까운 사례가 반복된다”고 말했다. 

특히 여성 외국인 근로자의 경우 상황은 더 취약하다. 그는 “성희롱, 차별, 부당한 급여 지급 등 현실적인 피해가 존재하지만, 문제 제기가 어려운 구조적 환경”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단순한 노동 분쟁이 아니라 기본적인 권리를 확보하기 어려운 환경이 형성돼 있다는 의미다.

비자 제도와 행정 절차에 대한 정보 부족 역시 장기 정착을 어렵게 만드는 또 하나의 축이다. 장 센터장은 “비자 종류가 달라지면 근로 조건도 크게 달라지는데 이를 몰라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고 진단했다. 

의료 접근성 또한 취약하다. 그는 “의료 통역이 없어 의사소통이 안 되고 결국 치료를 포기하는 사례도 있다”고 말하며 정보 접근성이 곧 정착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 요소라고 강조했다.

행정지원 체계가 외국인의 삶에 깊이 닿지 못하는 이유도 구체적으로 짚었다. 그는 “대부분의 외국인은 ‘시에서 도움받은 적 없다’고 말한다. 다문화센터 프로그램 참여 경험이 전부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는 결혼이민자 중심으로 설계된 기존 정책이 노동 목적 체류자가 다수를 차지하는 포항의 현실과 맞지 않는 구조적 한계를 보여준다.

장 센터장은 인식의 문제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외국인을 잠시 머무는 사람이나 부담으로 보는 시각이 여전하다”며 제도 이전에 서로 관계를 맺고 접촉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한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설명했다. 생활체육, 주민 모임, 자조모임 등 자연스러운 상호작용의 기회가 있어야만 문화적 거리감이 줄어들고 통합의 기반이 마련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도시의 변화가 제도보다 한발 앞서가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장 센터장은 “상가 한 블록 전체가 러시아어 간판으로 바뀐 곳도 있고 어떤 학교는 학생 10명 중 8명이 외국인 배경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의 존재가 이미 도시의 일상과 구조를 바꿔놓았지만, 행정은 여전히 과거 방식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다. 결국 포항은 이미 다문화 도시로 진입했지만, 제도와 지원 체계는 이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간극을 안고 있다는 분석이다.

◇ 두 개의 해법, 하나의 방향

두 전문가는 서로 다른 지점에서 출발했지만, 결론은 한 방향으로 모인다. 포항은 이미 다문화도시가 됐고, 외국인은 산업과 지역 공동체를 지탱하는 필수 구성원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정착을 전제로 한 정책 전환 없이 도시의 지속 가능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안성조 연구위원은 저출생으로 인한 구조적 인구 변화를 ‘도시 전략’ 차원에서 재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제도·정책 전반의 재정비 필요성을 제기했다. 장흔성 센터장은 현장에서 외국인이 마주하는 주거·노동·정보 접근의 현실적 장벽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며 구조가 실생활에 닿지 못하는 문제를 지적했다.

이들의 메시지가 교차하는 지점은 분명하다. 외국인을 ‘지원 대상’이나 ‘임시 체류자’가 아니라 포항의 미래를 함께 구성할 이웃으로 인식하는 전환이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 전환의 출발점은 정확한 실태 조사이며 이어 주거·의료·언어·정보 등 기본 생활 기반을 보장하고 공동체와 연결되는 체계적 정착 전략을 마련하는 일이 뒤따라야 한다. 포항이 이러한 변화를 언제, 어떤 방식으로 시작하느냐가 도시의 향후 10년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시리즈 끝>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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