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일 기자의 일본 탐방 - ② 가가와현
5년전 일본 남부의 가가와현을 방문했을 때 일본인들의 표현을 빌어 ‘다정한 곳’이라고 표현했다. 다시 가가와에 왔을때도 여전히 가가와현은 다감한 느낌이 진하게 풍겨온다. 이름난 명승지도 별로 없고, 교토처럼 관광지도 아니다. 그런데도 은근하게 사람을 반기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가가와현은 일본인데도 일본같지 않은 느낌을 주는 곳이기도 하다. 술을 좋아하고 다혈질인데다 솔직 담백한 성품까지 지닌 사람들이 사는 곳. 일본을 근대국가로 이끈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의 고향이기도 하고 일본 3대 우동 중 하나인 사누키 우동과 도사견의 원산지인 가가와에서 마음을 풀어놓고 느긋한 여행을 즐겨 보면 어떨까?
다카마쓰 시내 위치한 ‘리쓰린 공원‘
연못 6개·언덕 13개·소나무 1000그루
뗏목 배 타고 뱃놀이도 즐길 수도 있어
도쿠시마에 자리한 ‘오츠카 국제미술관’
세계 명화 1000점 똑같이 재현해 전시
작품을 만질 수 있고 사진 촬영 가능해
나루토 해협의 ‘세계 3대 소용돌이’ 등
시코쿠 섬 남쪽 맹견들의 고향 ‘고치현’
일본 3대 우동, 인도·한국요리도 별미
△ 미학의 정점 리쓰린 공원의 절묘한 풍경
가가와현에서 가장 먼저 들린 곳은 다카마쓰 시내에 있는 리쓰린 공원이 있다. ‘밤나무 숲’이라는 의미의 리쓰린 공원은 에도(江戶)시대 초기 사누키(讚岐·가가와의 옛 이름) 지방을 다스리던 다이묘(大命)의 별장이다.
일본 정원의 느낌을 제대로 살린 곳이어서 공원이라기보다 내 집 앞에 있는 정원 같은 느낌이다. 입구에서 정원을 제대로 구경하고 나오려면 적어도 2시간 이상 걸리는 큰 규모인데도 조경감이 뛰어나고 허술한 구석이 없다. 입구의 다양한 형태로 사람들을 반기는 소나무들은 세월에 순응하거나 혹은 세월을 이긴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공원에 있는 소나무만 1000여 그루나 된다.
일본 국가 특별 명승지 중 최대 규모인 리쓰린 공원에는 6개의 연못과 13개의 언덕이 있다. 공원 내 모든 것은 철저한 계획 하에 조성됐는데 그 덕분에 미학적으로 뛰어나다는 평을 얻게 됐다. ‘한걸음마다 하나의 풍경(一步一景)’이란 말이 이곳에서 만들어졌을 정도다.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꽃이 핀다. 봄에는 매화와 벚꽃이, 여름에는 창포와 연꽃, 가을에는 단풍, 겨울에는 동백이 리쓰린 공원을 물들인다.
정원 중앙에는 거대한 연못이 있다. 연못이라고 하기에는 규모가 커 호수가 연상되는 이곳에 뱃사공이 모는 뗏목을 타고 뱃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연못을 따라 천천히 뗏목이 흘러오면 그림자 사이로 일렁거리며 물결이 사방으로 퍼지고 마치 한 폭의 산수화처럼 주변 풍경이 순식간에 멈춰진 것같이 보인다.
리쓰린공원 근처에는 유명한 우동 맛집이 여러 곳 있다. 가가와현의 옛 이름인 사누키는 맛있는 우동의 대명사가 됐다. 사누키 우동은 아키타의 이나니와 우동, 구만의 미즈사와 우동과 더불어 ‘일본의 3대 우동’으로 불린다.
사누키 우동은 버선을 신고 발로 밟아서 만든다. 밀가루 틈에 한치의 기포도 없이 치대면 쫄깃하기 이를 데 없고 차진 맛이 일품인 우동이 나온다. 특히 목으로 넘어갈 때 느낌이 매력적이다. 전통적으로 일본 서부에서는 우동을 먹고, 동부에서는 소바를 즐겨 먹었다.
우에하라야(上原屋) 본점은 사누키 우동 맛집 중 으뜸으로 치는 곳이다. 우동에 어묵, 튀김까지 다양한 토핑을 얹어서 먹을 수 있고, 차게 먹거나 따뜻하게 먹을 수도 있다. 우동으로 이름난 곳이다 보니 이 자그마한 도시에 우동 가게가 900곳이 넘는다.
우동은 소중한 관광자원으로도 기능한다. 사누키우동을 즐기려는 여행객을 위해 다카마쓰 우동버스투어를 운영하고 있다. 나카노우동학교라는 이름의 우동 체험학교에서는 사누키우동 수타 체험을 할 수 있다. 자신이 치댄 우동은 즉석에서 만들어 맛볼 수 있다. 대학에 우동과 관련된 수업이 개설될 정도로 가가와 사람들에게 우동은 면 음식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 세계 명화를 도판에 그려 전시한 오츠카 국제미술관
가가와현 동쪽에 있는 도쿠시마(德島)에는 오츠카 국제미술관(大塚國際美術館)이 있다. 한국에도 지사가 있는 유명 음료회사에서 세운 미술관은 여느 미술관과는 다른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세계 명화들을 도판에 그려서 전시하는 깜찍한 발상이다. 세계 25개국 190여 개 미술관이 소장한 명화 1000여 점을 원본과 똑같은 크기로 재현해놨다.
바티칸 시스티나성당의 성화를 그대로 옮겨왔고 수천억 원에 이르는 고흐의 명작 해바라기도 볼 수 있다. 오스트리아의 천재 화가 클림트의 대표 작품은 물론 피카소의 명작 게르니카까지 있다. 미술관은 무려 4층이나 된다. 계단을 오르내리며 모든 작품을 섭렵하려면 적어도 하루는 걸리지 않을까? 오츠카 국제미술관의 최대 장점은 전시된 작품을 손으로 만져보고 마음껏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점이다.
미술관 작품들이 진본이 아니라 복사본이다 보니 작품을 대하는 사람들의 반응도 천양지차다. 아무리 정교하게 복제된 것이라 해도 가짜는 가짜이니 이런 걸 보려고 멀리까지 왔느냐고 볼멘소리하는 이도 있고, 한자리에서 볼 수 없는 작품들을 볼 수 있으니 감동적이라는 이도 있다.
△ 바다에 생기는 신기한 나루토 소용돌이
오츠카 국제미술관보다 흥미로웠던 것은 미술관 인근의 나루토 해협 한가운데 발생하는 나루토(鳴門) 소용돌이(渦潮·우즈시오)였다. 세계 3대 소용돌이 중 하나로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다.
바다 한가운데 소용돌이가 이는 것은 1.3㎞의 좁은 나루토 해협이 조수 간만 차이 때문에 혼슈·규슈·시코쿠에 둘러싸인 내해인 세토나이카이(瀨戶內海)와 나루토 해협 급류가 만나는 곳에 최대 1.7m의 낙차가 생기기 때문이다. 좁게는 2~3m, 큰 조수가 몰려오면 직경이 무려 20m 이상 되는 거대한 소용돌이가 발생한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소용돌이를 보러 간 날은 때가 맞지 않았다. 소용돌이는 시간과 날씨에 따라서도 세기가 달라진다고 한다. 소용돌이는 에도 시대를 살던 17세기 일본 사람들에게도 신기한 현상으로 느껴졌는지 당대 풍속화인 우키요에에도 그 모습이 남아 있다.
소용돌이는 배를 타고 보는 것이 가장 신비롭지만 소용돌이 위를 가로지르는 오나루토교 위에서도 관람할 수 있다. 오나루토교는 나루토(시코쿠)와 이와지시마(혼슈) 사이를 잇는 2층 다리다. 1985년 개통했는데 전체 길이가 1629m에 이른다고 한다.
위로는 차가 다니고 아래층 우즈노미치(渦の道)는 사람이 관람할 수 있는 통로로 조성돼 걸으면서 소용돌이를 구경할 수 있다. 우즈노미치 곳곳에는 바닥에 투명 유리가 깔린 조망대가 있다. 조망대 아래로 바로 밑 바다가 내려다보인다.
△ 사카모토 료마와 도사견의 고향 고치
시코쿠 남쪽의 고치현은 예전에 도사국이 있던 지역이다. 맹견 도사견의 원산지이기도 하다. 도사견은 재래종에 불도그, 마스티프 등의 대형 개를 교배해 만든 종이다. 시코쿠의 여러 현이 있지만 고치현 사람들은 다른 지역 사람과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다.
다혈질에 술을 좋아하고 직선적이다. 오죽하면 손 안에 1000원이 주어지면 1000원을 더 보태 술을 마신다는 우스갯말이 떠돌 정도다. 고치에서 일본의 근대화를 이끈 사카모토 료마가 태어난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일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인물이기도 한 사카모토는 가난한 하급무사로 태어나 막부체제를 타파하고 근대 국가 건설을 추진한 사람이다.
일본 최초의 벤처기업이라고 평가받는 상거래 회사를 설립해 운영하기도 한 그는 반대파에 의해 33세 나이에 암살당했다. 극적인 삶의 여정 때문에 소설과 영화, 드라마로 무수하게 그려졌다. 그는 일본인답지 않은 거침없는 성격과 자유분방함을 지닌 자유인이었다. 고치시 남부 해안인 가쓰라하마에는 거대한 사카모토의 상과 기념관이 있다.
고치 사람들의 호방한 성격을 확인하고 싶다면 고치에 있는 히로메 시장으로 가보자. 히로메 시장 안에 차려진 테이블에서 맥주 한 잔과 가다랑어 다다키를 먹으며 연신 대화에 빠져든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실내에는 60여 개 식당과 점포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일본 요리는 물론 인도 요리, 한국 요리까지 판다. 평일은 물론 주말에도 오후 11시까지 문을 연다. 이곳에서 파는 가다랑어 다다키는 일품이다. 가다랑어를 볏짚에 살짝 구워 겉은 익고 속은 부드럽다. 여기에 한국인처럼 파나 마늘을 듬뿍 얹어서 먹는다.
/최병일 기자 skycbi@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