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기행에세이작가 박시윤의 ‘경주는 흐른다’ <8_3> 국립경주박물관 (하)
경주박물관, 신라의 도시 경주에서
8월 24일까지 고려청자 특별전시회
유리관 너머 상감청자·상형청자
통일신라 시대 형상토기가 기원
이야기 품은 신비로운 푸른 자기
고려시대 유물 실제로 볼 수 있어
■경외의 비색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시실 앞, 사람들의 발걸음이 잠시 머뭇거린다. ‘푸른 세상을 빚다’, 고려청자 특별전을 마주하기 위한 마음을 가다듬기 위함이다. 제목이 먼저 시처럼 다가온다. 전시실 문턱을 넘는 순간, 모든 소리가 묻힌다. 사방으로 튀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멀어진다. 걸음이 조심스러워지고, 말소리는 낮아진다. 전시실 내부는 고요하지만, 고요는 비워진 것이 아니라 꽉 채워진 무게를 품고 있음을 감지하게 한다. 비색의 기물 앞에서 사람들은 누구랄 것 없이 조용히 머뭇거린다. 침묵이 아니라 경외다.
■1부 그릇에 형상을 더하다
경주박물관은 언제나 새롭다. 그러나 이번은 새롭다는 느낌과는 확연히 다르다. 고대 신라의 숨결이 배어 있는 박물관에서, 뜻밖의 고려 형상과 마주하고 있다. 도록 속 사진으로만 접했던 귀하디귀한 상감청자와 상형청자를 처음 만난다. 유리관 안에 놓인 푸른 도기들은 하나같이 신비롭다. 어떤 이야기를 품은 듯 시선을 강하게 끈다. 흙과 불, 빛깔의 언어로 건네오는 말들 속에 사람과 동물, 식물과 신령한 존재들이 고요히 말을 걸어온다.
전시의 서두는 고려청자의 뿌리를 통일신라의 형상토기에서 찾고 있다. 월지에서, 구황동 원지에서, 딱딱하게 굳은 흙이 되어 누워 있던 사자와 오리, 새와 말의 형상들이 청자의 몸으로 되살아난다. 이런 형상들은 단지 고대의 유산이 아니라, 고려인의 사유 속에서 다시 태어난 기억이다. 지금, 나는 고대의 어떤 시간의 곁을 지나고 있다. 옛사람들의 손끝에서 흘러나온 상상력이 실용을 넘어 조형미로, 조형미를 넘어 삶의 감각으로 번져가는 순간을 생생히 체감하고 있다.
■2부 제작에서 향유까지
시선은 역사의 흐름처럼 아주 천천히 흐르고 있다. 그릇이 아니라 존재다. 조롱박의 부푼 곡선, 복숭아의 매끈한 살결, 석류의 탱탱한 껍질, 오리의 부리와 깃털까지도 지금 눈앞에서 생명처럼 숨을 쉰다. 고려의 상형청자들은 단지 자연을 본뜨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상상하고, 실재하는 그릇의 형상으로 상상을 정교하게 붙잡는다.
귀룡은 비늘마다 왕의 권위를 두르고, 어룡은 물결을 가르듯 유려하게 휘어진다. 기린의 발굽 아래엔 구름이 감기고, 연꽃은 천상의 질서를 따라 피어난다. 신화의 동물들이 흙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는 광경 앞에서, 상상은 실재를 능가한다. 고려인의 조형 세계는 가히 경이롭다. 이처럼 눈앞에 놓인 도자기는 장식도, 단순한 생활 도구도 아니다. 그 안에는 상징과 실용, 욕망과 절제가 절묘하게 공존하고 있다.
무늬는 정교하지만 요란하지 않고, 곡선은 아름답지만 흘러내리지 않는다. 화려함 속에 침묵이 깃들고, 과장이 아닌 균형이 선다. 청자의 선은 고려인의 마음의 질서를 말한다. 삶과 죽음, 신과 속, 세계와 자아가 그 안에서 교차한다. 나는 지금 이 푸른 그릇들 앞에 서서, 고려인의 정신이 빚어낸 또 하나의 우주를 마주한다.
■3부 생명력 넘치는 형상들
고려 사람들은 물가에 사는 오리나 물고기, 흙에서 자라는 복숭아나 조롱박 같은 자연의 형상들을 청자 위에 올려두었다. 형상은 향로가 되었고, 연적이 되었고, 술잔과 주전자가 되었다. 고려 장인들은 형상을 조각하는 동시에 삶을 담아냈다. 상형청자에 등장하는 용, 어룡, 귀룡, 기린, 사자와 같은 상상 속의 동물들은 예로부터 상서로운 존재로 여겨지며, 왕실과 귀족의 권위, 복과 수호를 상징한다. 이러한 청자는 단지 장식품이 아니라, 왕실의 의례에 사용되거나 귀족들의 삶에서 특별한 물건으로 기능했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생명을 형상화하고, 그 형상이 다시 실용의 몸을 입을 때, 고려 청자는 상상과 실용이 만나는 신비로운 그릇이 된다. 아름다우면서도 절제된 곡선 속에 고려인의 마음의 질서가 함께 깃들어 있다. 곡선은 장인의 손끝을 넘어서, 고려인들이 세계를 대하는 방식이자 마음의 형식이다. 그 형식은 지금 우리의 시선 아래에서도 여전히 반짝인다.
■4부 신앙으로 확장된 세상
푸른 빛을 따라 전시의 깊은 곳으로 들어오자, 형체 너머의 세계가 더욱 깊게 펼쳐진다. 불상과 향로, 도교적 상징이 새겨진 기물들이 유약의 광휘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그릇이라 부르기에는 무언가 다르다. 푸른 형상들은 금속도 아니고, 목재도 아닌, 연약하지만 강한 흙과 불로 빚어진 신의 언어다.
신앙이란 무엇일까. 신에게 이르는 길이자, 인간이 자신의 내면을 깊고 넓게 확장해나가는 여정 아닐까. 보이지 않는 존재 앞에서 인간은 손을 모으고, 마음을 다듬는다. 청자 위에 새겨진 곡선 하나, 그리움과 기도 사이에서 태어난 침묵의 문장이다. 신은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기물 하나하나의 조용한 형상 속에, 피어오르는 향의 바람 속에 숨어 있다.
신은 없음과 있음의 경계를 나누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모호함 속에서 인간은 오히려 더욱 자신의 내면을 일깨운다. 고려인은 흙 위에 신을 모시고, 신에게 다가가기 위해 상상과 믿음을 쏟아부었다. 이 믿음이야말로 세상 어디에도 없는 맑고 투명한 청자의 빛을 탄생시켰다. 청자는 신에게 이르는 문이며, 동시에 인간의 가장 내밀한 기도가 스며든 그릇이다.
이 맑은 청빛은 단지 ‘아름답다’는 감탄이 아니다. 인간이 도달한 정신의 가장 높은 경지에서 피어난 하나의 형상이자 빛이다. 현실과 신비, 감각과 초월이 서로 뒤섞인 채로 투명하게 드러나는 기물이다. 그 푸른 빛 앞에서 우리는 문득, 인간의 본성이 가진 가장 정제된 형태의 사유와 감정을 목격하게 된다. 그것은 존재를 초월한 빛이며, 언어를 초월한 고요다.
눈으로 목도한 청빛 속에, 나는 경계를 허물고 내 안의 신을 만나고 있다.
■손으로 느끼는 고려청자
전시의 끝자락, 완성된 상감청자 세 점이 놓여 있다. 손을 올리니 비색의 유약이 매끄럽게 감도는 표면을 따라 손끝이 미끄러진다. 유약의 결은 촉감으로도 반짝인다. 조각된 형상과 무늬의 결마다 고려인의 숨결이 가만히 우러난다. 흙의 기억, 불의 흔적, 시간의 결이 지금 내 손 안에서 살아나는 듯하다.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시대로부터 전해 내려온 도기를 만지며, 나는 어느새 그 시절로 스며든다. 도공이 되어 흙을 빚고 말리고 유약을 발라 가마 앞에 선 듯, 무늬 하나를 새기기 위한 호흡이 내 안에서 다시 살아난다. 청자의 표면을 따라 흐르는 정제된 빛은 그저 유물의 표면이 아니라, 내가 잠시 빌려 쥔 과거의 감각이다. 그 빛 안에, 나는 청자를 빚는 손을 상상하고, 그 안에 깃든 마음을 만지고 있다.
비색의 곡선은 말이 없다. 그러나 그 곡선은 시간을 감싸고 나를 바라본다. 고려의 상형청자는 단지 도자기가 아니라, 감각과 세계관, 그리고 고요한 사유의 그릇이었다. 이번 전시는 그 아름다움 속에서 묻혀 있던 정신의 깊이를 우리에게 비추어준다. 나는 한 줄 청빛을 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