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기행에세이작가 박시윤의 ‘경주는 흐른다’ <15> 서출지와 이요당
■소란을 품은 정적의 연못
한여름이 깊숙이 내려앉은 연못이 숨을 죽인 듯 고요하다. 그러나 고요함 아래, 물풀은 사방으로 뻗고 연잎은 서로의 몸을 밀치며 자리를 넓힌다. 나무는 그늘을 짙게 드리우고, 바람은 유영하듯 잘도 지난다. 아무도 없으니 고요하고, 아무도 없기에 많은 생명은 제 뜻대로 자란다. 고요하다는 건 멈춤이 아니라, 소리 없는 확장이 된다.
연못 둑을 따라 뿌리내린 나무는 제 그림자를 물 위에 드리운 채 기세를 세운다. 한쪽으로 기운 듯하지만 단단하고, 굽은 등줄기엔 시간이 층층이 내려앉아 물기 어린 흙을 힘껏 끌어당긴다.
매미는 고요를 뚫고 터지듯 운다. 서출지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울음을 받아낸다. 숨이 막힐 지경인 한낮의 열기 속에, 연못은 한치 흔들림 없이 가라앉아 있다. 수면은 팽팽한 긴장을 머금었다 풀어지며 하늘을 담는다. 연못 물은 고인 듯 살아 있고, 가늠할 수 없는 깊은 고요가 오히려 연못을 더 넓게 보이게 한다.
소란한 매미도, 바람의 숨결도 물속에 스며들 뿐, 연못은 가만가만 모든 것을 품는다. 나보다 먼저 바람이 다녀간 흔적이 연잎 위에 남는다. 잎들은 가볍게 흔들리며 그늘과 빛 사이를 나누고, 틈마다 빛은 제 몸을 풀어 번진다.
연못 가장자리에 물풀들이 빼곡히 자리 잡았다. 수면 아래에 몸을 숨긴 물고기들이 미세한 흔적을 남긴다. 개구리 한 마리가 놀란 듯 움찔하며 물속으로 뛰어든다. 그럴 때마다 연못은 가볍게 숨을 쉰다. 부레옥잠과 연꽃은 서로의 자리를 침범하지 않는다. 저들만의 질서를 잘 이루어 사는 듯하다.
신라 소지왕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
동남산 자락 완만한 기슭의 서출지
낮은 터에 남산 계곡서 흘러든 물 고여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연못으로 알려져
배롱나무•소나무 등이 주변을 감싸고
안쪽에는 연꽃 같은 수생식물이 자라
동쪽에 자리잡은 정자 이요당과 함께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풍광을 자아내
■글이 나온 연못 서출지
서출지(書出池)다. 경주 남산동, 동남산 자락의 완만한 기슭에 자리 잡은 연못이다. 동서로 누운 자그마한 연못은 주변에 비해 터가 낮아 물이 모이기 좋은 위치다. 남산 계곡에서 흘러든 물이 고이는 곳이니, 예로부터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연못으로 알려졌다.
배롱나무와 소나무, 잡목들이 조밀하게 연못을 감싸고, 아래로는 수로가 이어져 물이 흐르도록 되어 있다. 연못 안쪽에는 붓꽃, 부레옥잠과 연꽃 같은 수생식물이 자라며, 둑을 따라 연못을 한 바퀴 돌 수 있도록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동쪽에는 이요당이 있어 연못과 함께 아름다운 풍광을 자아낸다. 이 가만가만한 공간은 남산 품 안에서 사계절 내내 다른 표정을 띠며 숨을 쉬는 공간이 된다.
8월 한낮의 햇살이 살갗을 파고든다. 연잎은 땡볕을 받아내며 얇은 그림자를 품는다. 물풀은 제각각의 자리에 번져 있고, 그 사이로 연꽃 한 송이가 조심스레 얼굴을 내밀었다. 수면이 미세하게 떨릴 무렵, 물결 위엔 오래된 전설이 한 겹 얹힌 듯 연꽃이 나를 부른다. 서출지는 처음부터 이야기를 담고 태어난 연못이다.
‘書出池(서출지)’, 한자를 풀어 보면 ‘편지가 나온 연못’이다. ‘삼국유사’ 권제2, 기이 제2, 소지왕조(炤知王條)에는 서출지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정월 보름, 소지왕(신라 제21대 왕)이 행차를 나섰다. 남산 자락, 양피촌 들녘을 지나던 왕의 수레에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뒤를 따라 쥐 한 마리도 나타났다. 놀랍게도 쥐가 말을 했다. “저 까마귀를 따라가십시오.” 기이한 기운을 느낀 왕은 장수를 보내 까마귀를 쫓게 했다. 까마귀는 남산 남쪽, 못 가로 장수를 이끌었다. 그러나 그만 까마귀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장수가 아쉬움에 못 가장자리에 멈춰 선 그때, 물 한가운데서 거칠고 푸른 풀 옷을 입은 노인이 나타났다. “이 글을 반드시 왕께 전하시오.” 장수에게 봉투를 건네고 노인은 물속으로 사라졌다. 장수는 왕에게 봉투를 전했다. 왕은 봉투를 펼쳤다. “이 봉투를 열면 두 사람이 죽고, 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는다.” 왕이 무슨 뜻인지 몰라 하자 옆에 있던 신하가 말했다. “두 사람은 백성이옵고, 한 사람은 왕이시옵니다. 부디 열어보소서.” 왕이 봉투를 열자 단 세 글자가 쓰인 편지가 있었다. “射琴匣(사금갑). 거문고 갑을 쏘라.” 왕은 대궐로 돌아와 왕비의 침실로 향했다. 침실엔 작은 거문고 상자가 있었다. 왕이 활을 들어 상자를 향해 시위를 당기자 왕비가 말렸다. ‘뚝’, 활에 맞은 나무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비명 소리가 났다. 상자 안에 승려가 죽어 있었다. 왕비와 함께 반역을 꾀했던 승려였다. 왕은 죽음을 면했고, 왕비는 곧 처형되었다.
글이 물에서 나왔다 하여 이 연못은 ‘書出池(서출지)’라 불리게 되었다. 정월 대보름날 소지왕을 살려준 까마귀에게 찰밥을 주는 ‘오기일(烏忌日)’이라는 풍속이 생겼다고 한다. 경주 지역에서도 정월 대보름날 아이들이 감나무 밑에 찰밥을 묻어두는 ‘까마귀 밥주자’라는 풍속이 있었다고 한다.
신라 불교 공인 이전, 토착신앙과 새로운 사상의 충돌의 암시가 이 연못에 서린 까닭일까. 까마귀와 쥐는 전통 신앙의 화신처럼 등장했고, 풀 옷 입은 노인은 미래를 예언하는 매개자였을 것이다. 노인의 기이함 속에서 생명은 구원되고 왕권은 이어졌다. 이 이야기는 신라사의 균열을 보여주는 듯하다.
연못 가장자리 둑을 천천히 걷는다. 발밑엔 잔돌이 깔려 있고, 풀잎은 바람 따라 낮게 고개를 젖힌다. 한낮의 햇살이 연잎 위로 내려앉고, 수면은 고요하다 못해 멈춘 듯하다. 그 물 위로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든다. 검은 그림자가 연못을 가로지른다.
문득, 풀 옷을 입은 노인이 봉투를 내밀고, 다시 물속으로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가 누구였는지, 왜 하필 왕에게 글을 보냈는지 알 수 없지만, 이 연못엔 여전히 노인의 신비스러운 기척이 남아 있는 듯하다.
잔잔한 수면 아래, 전설은 마치 오래된 유물처럼 가라앉아 있다. 배롱나무 꽃잎 하나가 바람에 날려 물 위로 떨어진다. 그 붉은 조각이 천천히 돌며 퍼져나간다. 까마귀와 쥐는 신이 보낸 전령이었을까. 왕비와 승려의 음모를 막은 글귀는 정말 이 물속에서 떠올랐던 걸까. 산책 끝에 다시 연못을 바라본다. 뜨거운 여름빛 아래, 서출지는 여전히 고요하다. 오래된 이야기처럼 아무도 없는 연못엔 영험한 기운이 감도는 듯하다.
■이적의 선행이 깃든 물 위의 정자 이요당
이요당은 연못 끝자락 물 위에 있다. 물과 나무 사이, 빛과 바람이 스쳐 가는 자리에 마루를 얹고 기와를 이고 앉아 있다. 유연한 지붕, 아름다운 곡선에 얹힌 시간을 가늠해 본다는 건 무의미한 일일 테다. 모든 곡선이 부드럽고, 모든 직선이 오래되어 고풍스럽다. 낮은 마루, 묵은 기둥, 모든 것이 서출지에 반영되어 한껏 품격 있는 아름다움을 더한다.
건물은 물 위에 올려져 있고, 처마는 연못을 향해 열려 있다. 수면 위를 따라 흐르는 바람이 마루를 통과하고, 연잎의 흔들림은 건물 그림자와 맞닿는다. 이요당은 물과 함께 숨 쉬는 살아있는 집이다.
이요당(二樂堂)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조선 현종 5년(1664년)에 임적(任適, 1612~1672)이 지은 정자다. 서출지 연못가에 돌을 쌓아 건물을 올렸다. 당초에는 3칸 규모였으나 이후 다섯 차례 중수를 거쳐 지금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에 ㄱ자 모양을 띠게 되었다. 남산 능선을 등진 정자는 서출지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앉아 있어 연못을 훤히 내다보는 구조다.
이요당이라는 이름은 ‘요산요수(樂山樂水)’에서 비롯되었다. 산을 즐기고 물을 즐긴다는 의미를 지닌 말로, 자연 속에서 벗처럼 지내는 선비의 삶을 담아낸다. 정자는 격식을 갖추되 화려하지 않다. 기둥은 차분히 아래로 향하고, 처마 선은 남쪽으로 부드럽게 그어진다. 마루 아래로는 연못의 기운이 스며들고, 그 기운은 다시 처마로 오른다.
임적은 남산 아래 양피촌에 살던 선비였다. 가뭄이 극심할 때, 땅속 깊은 물줄기를 찾아내어 자신의 마을은 물론, 이웃 마을까지 물이 부족하지 않도록 살폈다. 임적은 평소에도 가난한 이들을 돌보며 의복과 식량을 나누었다 전한다. 그의 덕망은 마을 사람들로부터 존경받았다. 이요당은 그가 자연을 벗 삼아 머물며 마음을 가다듬던 자리다.
이요당은 단순한 정자가 아니라 서출지의 전설을 내려다보는 자리이자, 삶의 물줄기를 함께 나누던 인물의 정신이 머문 공간이다. 정자에 올라 바라보면, 연못의 수면에 배롱나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계절마다 연꽃이 피고 진다. 기와지붕 아래 남긴 선인의 삶은 가만가만하지만 분명한 울림으로 남는다.
이요당 건너편, 남쪽 언덕에 그의 아우 임극(任極)이 지은 산수당(山水堂)이 자리하고 있다고는 하나 오늘은 여기서 멈추기로 한다. 두 형제가 나란히 남산 자락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던 삶은 오늘날까지 연못을 거닐며 보는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정자는 시간이 흘러도 기울지 않고, 정자에 깃든 선행과 겸허함은 여전히 바람결에 실려 전해진다.
가만가만 걷기 좋은 연못이다. 서출지와 이요당은 숨겨둔 마음을 꺼내보기에 좋은 자리다. 나무 그림자에 들고, 물풀 사이를 스치고 오는 바람에 젖다 보면, 어느새 잊고 지낸 누군가의 얼굴과 그리움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물풀 옷을 입은 선인이 전하듯, 마음 깊숙이 가라앉아 있던 연서 한 장이 나를 향해 조용히 떠오를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