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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함을 더한 ‘작은 실천’ ‘원리 향한 집념’ 실력 키워”

김진홍 기자
등록일 2025-09-14 19:01 게재일 2025-09-15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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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숙련기술인을 만나다··· 2025년 포항제철소 신재석 명장(名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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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석 명장이 포항제철소 설비를 살펴보고 있다.

- 포스코 명장으로 선정된 소감과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포항제철소 압연설비2부 STS압연정비섹션에서 근무하고 있는 신재석이다. 1987년 포스코에 입사해 어느덧 38년째 압연정비 분야에서 한 길을 걸어왔다. 올해, 포스코 명장이라는 영예로운 자리에 오르게 되어 감회가 남다르다. 명장이라는 타이틀은 내게 큰 자부심이자, 동시에 무거운 책임감을 안겨준다.

사실 명장이란 목표는 나에게도 한때는 너무 멀고 막연하게만 느껴졌다. ‘명장이 되겠다’는 거창한 꿈을 품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는 매일매일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다. 오늘 내가 현장에서 개선할 수 있는 한 가지, 이번 달에 꼭 이루고 싶은 작은 변화, 올해 반드시 남기고 싶은 성과 이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 결국 명장이라는 자리까지 오게 된 것 같다.

포스코에서의 시간은 결코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수많은 기계 설비와 마주하며, 때로는 예상치 못한 상황, 그리고 현장에서 크고 작은 난관들을 겪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으로 한 걸음씩 나아갔다. 명장이라는 자리는 결코 혼자만의 힘으로 오를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함께 땀 흘린 동료들, 선배와 후배, 그리고 나를 믿어준 회사 덕분에 오늘의 내가 있다.

냉연정비과에서 ‘정비인의 길’ 시작
문제 설비 직접 조립하며 원리 터득
현장에서 부딪히며 ‘기술 본질’ 이해

 

2022넌 냉천 범람 당시 침수 제철소
‘비상 복구용 다용도 유압장치’고안
발전기에 전기공급 위기 해결하기도

 

노하우·경험쌓은 후배들큰성장위해
해외법인 현장근무도 적극 권하고파

- 어린 시절과 포스코 입사 전 성장 스토리도 말해달라.

나는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에서 태어났다. 상동은 낯익은 곳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두메산골도 아니었다. 당시 상동은 텅스텐 광산촌으로, 속된 말로 ‘잘나가는 곳’이었다. 그러나 그곳의 생활상은 두 갈래로 나뉘었다. 광산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수입이 좋아 자녀들이 과외수업을 받을 정도였지만, 광산에서 일하지 않는 이들은 농사를 지어 광산촌에 납품하며 빈곤한 생활을 이어갔다.

나 역시 광산과는 거리가 먼 농가에서 9남매 중 여덟째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의 농사일을 도와야 했다.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부터 하교 후 곧바로 소에게 풀을 먹이는 일을 맡았다. 소를 데리고 산에 오르는 길에는 달리 할 일이 없어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을 할 때마다 생각의 틀, 방법의 틀을 만들게 되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틀에 꾸준함을 더해 성과를 이뤄내는 습관이 자리 잡았다.

고향인 상동을 떠난 것은 포철공업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포항으로 오게 되면서였다. 포철공고를 선택한 이유는 가정형편 때문이었다. 가난한 농부인 아버지와 많은 식솔을 생각하면 대학 진학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포철공고를 졸업할 때쯤 자연스럽게 포스코 입사를 결심했다.

- 포스코에서의 첫 시작은 어땠는지?

나는 포스코 압연정비부 냉연정비과에서 정비인의 길을 시작했다. 당시에는 설비를 새로 구축하고 안정화하는 시기여서, 선배들도 모든 것을 완벽히 아는 상황이 아니었다. 지금처럼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이 갖춰진 상태도 아니었기 때문에, 설비에 문제가 생기면 직접 뜯어보고 조립하면서 원리를 스스로 터득해야 했다. 단순히 고장 난 부품을 교체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고쳐서 다시 사용하는 일이 많았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그만큼 현장에서 부딪히며 배우는 경험이 나를 성장시켰고, 기술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해줬다.

- 현장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무엇인가?

이처럼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며 얻은 경험을 통해, 나는 기술개발에서 ‘원리를 이해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단순히 주어진 방법을 따르기 보다는, ‘왜 이렇게 되는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원인을 파악하려고 했다. 실제로 기름 농도를 측정하는 센서를 활용해, 냉각수에 섞여 나온 기름의 양을 알아낸 적도 있다. 이런 응용이 가능했던 건 센서의 원리를 잘 이해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후배들에게도 항상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직접 부딪히고 고민하면서 원리를 스스로 터득하라”고 조언한다. 이런 과정에서 진짜 실력이 쌓이고, 작은 성취라도 스스로 의미를 찾으면 힘든 일도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내면의 힘과 지혜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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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석 명장이 압연 설비에 관해서 설명하고 있다.  

-  제철소가 침수된 위기 상황에서 ‘비상 복구용 다용도 유압장치’를 고안해 문제를 해결했다고 들었다. 이런 발상의 전환은 어떻게 가능했는지?

2022년 냉천 범람으로 인해 제철소가 침수되고, 전기가 끊기면서 유압 시설까지 멈춰버린 현장을 마주했을 때 정말 큰 충격을 받았다. 제품이 설비에 그대로 물려 있는 상태라, 전기가 복구되더라도 바로 시운전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때 떠올린 것이 ‘비상 복구용 다용도 유압장치’였다. 설비에 임시로 유압을 공급할 수 있는 장치인데, 비상용 발전기를 연결해 전기를 공급하면 이동식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이 장치 덕분에 설비에 물려 있던 제품을 안전하게 빼내고, 전기를 복구해 바로 시운전을 할 수 있었다.

사실 이 장치가 획기적인 기술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위기 상황에서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방법을 떠올릴 수 있었던 건, 평소에 현장 문제를 깊이 고민하고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는 습관 덕분이었다. 정비업무를 하면서 늘 ‘만약 이런 상황이 오면 어떻게 대응할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고,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대안을 머릿속에 그려왔다. 이번에도 그 경험이 발상의 전환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위기 속에서 현장을 지키는 사람으로서, 늘 새로운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보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느낀다. 

- 명장이 된 이후, 후배 양성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최근 들어 후배 양성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다. 가능하다면 후배들이 해외에 나가 현장을 직접 경험해보길 권하고 싶다. 설비에 대한 노하우와 경험이 쌓이면 해외 법인에서 근무할 기회가 주어지기도 하는데, 막상 현지에 도착하면 상황이 절대 녹록지 않다. 본사에서는 문제를 함께 풀어줄 동료와 전문가가 많지만, 해외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오롯이 혼자서 해결해야 한다. 문제가 생기면 모두가 나만 바라보는 상황이 펼쳐진다.

이런 상황은 실로 엄청난 부담이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내가 포스코 대표, 더 나아가 국가대표’라는 책임감을 절실히 느꼈다. 자연스럽게 ‘최고의 전문가가 돼야겠다’는 각오가 생기고, 실제로도 큰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그래서 요즘은 ‘이 소중한 경험을 어떻게 하면 더 많은 후배들에게 전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 앞으로도 후배들이 책임감을 느끼고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선배로서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고, 지식을 나누는 데 힘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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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석 명장이 현장에서 후배들과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 기술 특허, 수상 경력, 그리고 자격증까지 화려한 성과를 이루었는데, 그 원동력은 무엇인가?

'멈추지 않고 작은 실천들을 행하는 것’이 내 삶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말했듯이, 현장에서 마주치는 문제를 그냥 넘기지 않고, 조금씩이라도 개선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압연기능장, 용접기능장, 산업안전기사 등 여러 자격증을 취득했고, A등급 7건을 포함해 총 69건의 특허도 출원했다. 이런 성과들이 쌓일 때마다 스스로도 자부심을 느낀다. 또, 오랜 시간 불우 아동을 1대1로 돕는 자원봉사를 하면서, 나눔의 기쁨과 책임감도 배우고 있다. 앞으로도 내 삶에서 작은 실천들을 이어가며 주변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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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명장으로서 앞으로의 목표와 다짐은 무엇인가?

‘명장’이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는 단순히 기술력이나 경력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것 같다. 이제는 나의 경험과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하고, 현장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며, 더 나은 포스코를 만들어가는 데 힘을 보태야 한다는 사명감이 더 크게 다가온다. 
앞으로도 늘 그랬듯,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에 집중하며, 현장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다하고 싶다.

‘포스코 명장’  신재석 포항제철소 압연설비2부 STS압연정비섹션 부장은…
△ 1968년 1월 5일생  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 졸업   △ 1987년 7월 입사 (근속연수 38년) △ 2006년 포스코 창립기념 모범사원 선정 △ 2021년 경상북도 최고장인 선정 (기계분야) △ 2023년 대한민국 우수숙련기술인 선정 (기계분야) △ 2023년 국회의원 표창장 (봉사 부문) △2025년 포스코 명장


/김진홍경제에디터 kjh25@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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