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숙련기술인을 만나다<br/>스스로에 끝없는 질문 던지는계측제어 전문가<br/>(10) 포항제철소 EIC기술부 계장정비섹션 이경재 명장
자동차를 운전할 때 운전자는 계기판을 보고 속도를 조절한다.
여기서 계기판에 표시된 속도가 ‘계측’이라면, 속도를 내거나 줄이는 게 ‘제어’이다.
우리의 일상은 알고 보면 ‘계측과 제어’로 구성돼 있다.
정육점에서 고기를 살 때도 저울의 눈금을 보고, 주유소에서 주유할 때도 기름의 양을 숫자로 본다.
산업현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일상보다 현장의 계측은 더욱 빈번하고 극도로 정밀하게 이뤄진다.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계측제어 전문가인 포항제철소 EIC기술부 계장정비섹션 이경재(60) 포스코 명장을 만나 섬세함을 배워 본다.
4만5000여대 계측기 작동 진단·교정
분산제어시스템 문제해결 업무 맡아
특수강 생산 위한 프로그램 개선 등
생산 현장의 획기적 기술발전 이뤄내
‘소프트웨어’ 전국 첫 자주관리대회 수상
눈에 보이지 않는 개선의 중요성 알려
“모르는 것을 묻지 않는 것이 창피한 것”
명장 된 후에도 삶의 지침 지키며 근무
- 현재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 맡고 있는 업무는.
△포항제철소에는 계측기가 무려 4만5000여 대가 있다. 이 모든 계측기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작동해서 유량, 압력, 온도, 레벨, 무게 등을 정확히 측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계측기는 사람이 정량화하지 못하는 많은 종류의 설비 상태를 숫자로 보여준다. 나는 이 계측기가 오차 없이 정확하게 측정하는지 진단하고, 교정하는 일을 한다. 계측기를 제어하는 DCS(분산제어시스템)에 대한 문제 해결 및 개선 방안 도출 등의 업무를 맡고 있다. 또한 기술 검토 및 사양 설계, 후배 양성교육 등 기술 전수 활동에도 매진하고 있다.
- 업무를 하면서 잊지 못하는 에피소드는.
△제철 공정 중 연주설비는 용강을 천천히 흘려보내면서 냉각수를 분사해 고체 슬라브를 만들게 된다. 냉각수의 분사량에 따라 슬라브의 품질이 결정된다. 냉각수가 많으면 급격히 냉각돼 크랙이 발생하고, 적으면 블랙아웃이 발생하거나 강도가 약해진다. 2016년, 우리는 쇄빙선 선두의 철판이나 컨테이너선 갑판에 사용되는 후판 400㎜ 특수강 주편 생산을 해야 했다. 특수강 생산을 시도했지만, 냉각수의 미세 유량 제어 문제로 인해 품질 불량이 자주 발생했다. 이에 따라 수요자는 구매를 꺼리기 시작했고, 제조 원가 손실도 증가했다. 운전, 정비, 기술부서가 모여 대책을 검토한 결과, 84대의 제어밸브를 교체해야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기존 제어밸브는 15~80% 범위에서 사용됐지만, 특수강 조업에서는 5~10% 범위에서 제어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주설비 구성상 모두 교체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나는 제어밸브의 특성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연주공정의 냉각 조업 패턴은 몰랐다. 그래서 기초부터 조업 기술을 파악하고 실적을 분석했다. 제어밸브 동작 특성을 5~60%로 바꾸고, 특수강 제어용 PID 제어 프로그램을 따로 만들면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일반강 품질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문제가 남아 있었다. 50일간 밸브 특성을 개조하고 프로그램을 개선해 미세 유량 제어 문제를 해결했다. 그 결과, 크랙 발생 품질 불량을 0.8%로 낮추는 획기적인 개선을 이뤄냈다. 모두가 변화를 두려워할 때, 그간 쌓아온 밸브 특성과 제어 이론의 전문지식, 새롭게 습득한 조업 이론을 접목시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어떤 문제든 관심을 가지고 조사하며, 모르는 것을 알아내려는 평소의 지론이 성과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 현장 관리자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왜?”라는 질문을 통해 근본적인 원인을 찾는 것이다. 스위스 치즈 모델이라는 안전 이론이 있다. 이는 모든 현상이 하나의 원인에서 기인하지 않기 때문에 가장 깊이 숨어있는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케이블이 자주 끊어지는 고장이 발생할 때, 단순히 해당 부위의 환경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수리 방법을 찾기보다는, 그 환경에서도 끊어지지 않는 재질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모든 것을 이론부터 먼저 파고들어야 한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소통이다. 아기가 울 때 엄마는 배가 고픈지, 기저귀가 젖었는지 아이의 입장에서 알아차리고 돌보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소통이다. 직장은 학교나 군대와 달리 단기간에 관계가 끝나는 곳이 아니라, 수십 년 동안 관계를 이어가는 집단이다. 따라서 후배라면 선배의 입장에서, 선배라면 후배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먼저 다가가는 소통 방식이 중요하다. 이는 직장 생활의 보람을 배가시키는 요령이라고 확신한다.
- 배드민턴 불모지 포항에 생활체육 클럽 31개를 만들었다고.
△내 자신을 내세울 수 있는 특기를 가지라고 권장하는 편이다. 나 역시 배드민턴을 취미이자 특기로 즐기고 있다. 처음에는 당구, 탁구, 테니스를 하다가 일본 유학 시절 학교 동아리 활동을 통해 배드민턴을 처음 알게 됐다. 그때 배드민턴이 대중적인 스포츠라는 것을 느끼고, 다른 운동을 모두 그만두고 배드민턴에만 몰두하게 됐다. 한국에 돌아온 뒤, 포항에서 배드민턴을 하려고 보니 중앙고등학교와 포항공대 체육관에서 소규모 인원으로 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1997년 6월, 12명을 모아 포항시 첫 생활체육 클럽인 ‘포스피드’를 만들었고, 주변 학교를 설득해 생활체육 배드민턴 연합회까지 탄생시켰다. 지금은 엘리트 체육과 생활 체육을 합쳐 31개 클럽, 3000여 명의 회원이 활동하는 포항시 배드민턴협회 수석 부회장을 맡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가정과 회사생활, 배드민턴 활성화까지 노력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첫째가 5살, 둘째가 100일 지난 시점부터 시작했으나, 아내와 수많은 갈등도 있었다. 심지어 애꿎은 라켓을 부러뜨리며 다시는 배드민턴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내의 이해심 덕분에 지금의 큰 협회를 만들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려 아내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배드민턴을 통해 남 앞에 서는 것을 꺼렸던 성격이 바뀌었고, 회사생활의 스트레스도 풀 수 있었다. 그래서 후배 숙련기술인에게도 자신의 특기를 가지라고 적극 추천하고 싶다.
- ‘소프트웨어 개선’으로 전국 최초 자주관리대회 동상 수상 이야기를 들려달라.
△1989년, 입사한 지 5년 정도 됐을 때였다. 당시 제강 탈가스 공정의 설비를 담당하고 있었다. 이 공정은 쇳물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여러 종류의 합금철을 투입해 용강의 성분을 맞추는 작업이다. 매일 현장 설비 점검을 마치면 운전실에서 조업하시는 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조업 방법이나 불편사항, 설비 성능 개선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러다 보니 운전과 조업에 대해 깊이 알게 됐다. 가끔 직접 조업에 뛰어들기도 했다. 어느 날 용강 성분을 조정하기 위해 3~8종류의 합금철을 한 종류씩 투입하는 것을 보고, 문득 ‘한꺼번에 투입하면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한꺼번에 투입해도 성분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고, 프로그램 개선을 시작했다. 운전부서의 협조를 받아 수차례 테스트를 거친 결과, 투입 횟수를 1~2회로 줄여 탈가스 공정의 경처리 조업시간을 20분대에서 10분대로 단축할 수 있었다. 이 경험을 통해 단순히 제어 시스템의 프로그램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최고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업 방법에 대한 이해도와 완벽한 제어의 균형을 통해 실질적인 기술 개선이 이뤄질 수 있다. 당시 경북도, 전국 대회를 거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소프트웨어 개선이었기 때문에 “진짜 개선된 것이 맞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이에 “기계장치나 전기설비 등 눈에 보이는 개선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프로그램을 활용한 개선이 더 큰 성과를 가져오고 절실히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국내 최초로 설비 소프트웨어 개선의 중요성을 알리는 계기였다고 생각한다.
- 인생철학과 비전이 있다면.
△나만의 지침을 만들어 늘 체크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포스코에 입사한 후, 나는 1제강 공장에서 계장정비 업무를 맡았다. 이때부터 “모든 것에 관심을 가져라”, “작은 것도 소홀히 하지 마라”, “내가 하는 업무에 최고가 되어라”, “대인관계는 나를 위한 것이다”, “하루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며, 후회하는 행동은 두 번 이상 하지 않겠다”라는 셀프 지침을 세우고 실천해 왔다. 명장이 된 후, 6년이 지난 지금도 “모르는 것을 묻지 않는 것이 창피한 것이다”라는 단순한 지침을 추가해 그 틀을 벗어나지 않으려 노력하며 살고 있다.
- 앞으로의 포부는.
△포항제철소는 스마트팩토리 구축, 4차 산업혁명 등 기술의 변화에 맞춰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계측제어는 안전, 품질, 생산, 에너지 등 모든 분야의 기초이다. 어떤 종류의 AI, 빅데이터라도 계측제어를 통해 기초 데이터의 신뢰성이 높고 정확해야 성공할 수 있다. 고급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가 집이라면, 건물의 기초가 바로 계측제어의 역할이다. 탄탄히 다진 기초 위에 새로운 집을 지을 수 있다. 오차가 크고 수시로 흔들리는 데이터로 집을 짓는다면 그 집은 쉽게 무너지고 말 것이다. 특히 겉으로 쉽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소홀해지기 쉽지만, 눈에 보이지 않기에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재 하고 있는 계측제어 분야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동시에 계측제어에 대한 인식의 저변을 넓히는 일에도 힘쓰고 싶다. 또한 이제 시작되는 수소환원제철 공법의 수소안전관리를 위한 기초를 다지는 데에도 앞장설 계획이다. 그것이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숙제이자 사명이다.
포항제철소 EIC기술부 이경재 포스코 명장은
△포항제철공고 졸업(1984년)
△전국자주관리대회 동상(1989년)
△전사 제안왕(1990년)
△일본 산업기술단기대 졸업(1997년)
△포스코 명장(2018년)
△위덕대학교 신재생에너지공학과 기업전문교수(2020년)
/이부용기자 lby1231@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