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황리단길 업그레이드, 태국 방람푸에서 배우다
-글 싣는 순서
1. 젊은 여행자들의 핫 스폿 태국 방람푸의 형성과 전성기
2. 오늘날, 방람푸와 카오산로드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
3. 세계가 주목한 황리단길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4. 경주와 인근 관광지를 불법 약물 없는 ‘청정 여행지’로
5. 방람푸와 황리단길, 뭘 배우고 어떤 걸 경계해야 할까
아주 오래전부터 태국은 대마와 양귀비를 특정 질병의 치료와 통증을 줄이는데 사용해왔다고 한다. 실제로 태국은 마약인 아편의 원료가 되는 양귀비의 주요 재배지이기도 했다.
삼각형 형태를 이룬 태국·라오스·미얀마의 접경지역은 한때 ‘골든 트라이앵글’로 불리며 양귀비의 아시아 주요 생산지로 지목됐다. 재배된 양귀비는 아편과 헤로인으로 만들어졌다.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이 지역이 경제특구로 바뀌기는 했지만, 그곳에 들어선 리조트와 카지노 등에서 외국인 납치와 불법 도박 등의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해 현재까지도 심각한 국제 문제가 되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이러한 사회·문화적 분위기 탓에 2022년 태국의 대마 합법화가 전격적으로 이뤄졌다고 판단하기도 한다. 태국 국민들 사이에선 대마초가 심각한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는 마약이라는 의식이 다소 약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2022년 대마 합법화...지난해부터 규제 강화 움직임
태국의 대마 합법화와 문제점 발견 이후 규제 강화 과정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2018년 말 태국 의회가 의료용 대마가 합법화했다. 이는 아시아 국가 최초로 의료와 연구 목적의 대마 사용을 합법화한 사례다. 이 시기엔 의료기관과 의사의 통제 속에서 환자에게만 처방된다는 단서 조항이 있었다.
그러던 것이 2022년엔 실질적인 합법화로 바뀐다. 그해 6월 태국 정부는 대마초를 제5종 마약류 지정에서 제외했다. 대마초의 재배와 소지, 유통과 소비를 범죄로 보지 않게 된 것.
방콕과 파타야 등 태국 주요 관광지에 대마 판매점과 대마초를 흡연할 수 있는 카페가 우후죽순 생겨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대마 합법화에 따른 부작용은 빠르게 확산됐다. 치료와 통증 완화 목적이 아닌 즉물적인 쾌락을 위한 대마초 사용이 늘어났다. 청소년들의 대마초 흡연도 작지 않은 문제였다.
2023년 여름엔 태국의 해변 관광지로 유명한 파타야에서 대마 성분이 함유된 차(茶)를 마시고 호흡 곤란을 호소하던 50대 외국인 여행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에 대마 성분을 섞은 각종 음료와 과자의 위험성이 부각됐다.
태국 정부의 집권당이 교체되자 ‘코로나19 사태’로 침체된 관광업을 활성화해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방편의 하나로 시행된 ‘대마 합법화’가 도마 위에 올랐다. “대마초를 다시 마약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지난 2025년 이후 태국은 의료 목적에 한정해 대마초를 허용하고 있다. 의사의 처방전이 있어야 구매할 수 있고, 1인당 구매량도 30일분에 한정시키고 있는 것.
그런데, 이런 규제가 현실에서 잘 지켜지고 있을까? 기자는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5월 초. 태국을 방문해 방콕에서 외국인 관광객이 가장 많이 몰리는 방람푸와 카오산로드를 4일간 돌아봤다. 그 결과 7~8군데의 대마 판매점과 3~4곳의 대마초 흡연 카페를 발견한 것.
“좋은 품질의 대마를 팝니다”라는 광고 문구를 내걸고 영업하는 판매점 앞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대마초 흡연 카페에도 드문드문 손님이 보였다. 태국인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 외국인 여행자들이었다.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잠시 이야기를 나눈 20대 프랑스 청년은 “대마초를 대량으로 판매한다면 처벌 받는다. 하지만, 소량을 소지하거나 피우는 게 프랑스에선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멀리 아시아까지 여행 와서 대마초 한 번 피우는 게 무슨 죄냐”라는 뉘앙스였다.
젊은 시절에 태국으로 건너가 20년 이상 식당업을 해온 한국 교민은 “태국인들은 대마를 진통제 정도로 여기는 경향이 없지 않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대마초 흡연으로 폭력 등의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는 별로 보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조심스레 대마 판매점과 대마초 흡연 카페의 사진을 몇 장 찍으며 ‘혹시 한국인이 있나’ 유심히 지켜봤다. 다행히도 기자가 돌아본 판매점과 카페엔 없는 듯했다.
경북경찰청 마약 수사 관계자는 “쉽고 편하게 구할 수 있다고 호기심과 여행자의 느슨해진 기분으로 태국에서 대마초를 피웠다간 큰 낭패를 볼 수 있다”고 잘라 말한다.
모두가 알다시피 한국은 마약 사용에 관해 ‘속인주의’를 택하고 있다. 자국민이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범죄가 발생한 곳이 어디건 본국의 법을 적용한다는 것.
그러니 태국에선 대마초 흡연이 합법이라 해도, 한국인에겐 엄연한 불법 행위다. 대마초를 피우거나 대마 성분의 함유된 음료와 과자를 태국에서 먹은 후 적발되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처벌과 약물 중독의 위험성, 태국에선 대마초 피해야
‘들키지만 않으면 되지’라는 안일한 생각을 가지면 곤란하다. 대마의 성분은 사용 후 3~4개월이 경과해도 소변 검사와 모발 검사를 통해 확인이 가능하다. 태국 관광지 곳곳에서 판매되는 대마 성분이 섞인 음식과 음료수를 조심해야 하는 이유다.
“한국 아저씨, 여기 좋은 대마초 있어요”라고 호객하는 이들이 나타난다면 조건을 달지 않고 피하는 게 좋다.
대마는 긴장을 풀어주고 진정 작용을 한다. 하지만, 심각한 부작용이 동반될 가능성 또한 농후하다.
앞서 언급된 외국인 여행자의 경우처럼 호흡 곤란을 가져올 수 있고, 구토를 유발하며, 극심한 환각 상태에서 자신도 모르게 불법적인 사건과 사고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는 약물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그러니, 태국 여행 중 괜한 호기심에 대마초에 손을 대서는 곤란하다. 처벌은 물론, 돌이킬 수 없는 약물 중독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백형의(을지대학교), 이송희(서울시 복지재단), 이주용(성남시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이 공동 저술한 논문 ‘마약류 중독자 예방 및 사회재활서비스 개발 위한 일본·태국 사례와의 비교’를 눈여겨 읽어볼 필요성이 있다.
마약 중독 예방과 사회 재활서비스의 정책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위 논문을 쓴 저자들은 “국내에서는 특히 젊은층의 마약류 범죄가 증가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2020년 마약류 심각성에 대한 국민인식도’ 조사 결과에서도 20대의 마약류 심각성에 대한 인식도가 가장 낮은 것으로 보고됐다”고 지적한다.
덧붙여 “국내 의료용 마약류의 경우 불법, 중복 처방 등 부작용도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났는데, 국민의 2.7명 중 1명이 마취제, 진통제, 식욕억제제 등을 사용한 경험이 있다고 보고됐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가 형사처벌만으로는 마약류 사용자의 재범 방지가 어려운 수준에 도달했음을 의미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경주의 황리단길을 위시해 경상북도 곳곳의 유명 관광지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경주시에 따르면 한 해 180만 명이 넘는 외국인이 경주를 찾아오고, 그들의 절대다수가 황리단길과 인근 대릉원 등을 돌아본다고 한다.
중국과 러시아, 대만과 일본, 미국과 캐나다, 영국과 호주 등 경주 여행객의 국적 또한 다양해지고 있다. 이는 높아진 한국의 문화적 위상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호사다마(好事多魔).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선 언제든 좋지 않은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대마초 등의 불법 약물 사용도 그런 문제 가운데 하나가 분명하다.
황리단길은 과연 ‘마약 없는 청정 관광지’라는 현재의 위상을 앞으로도 지켜갈 수 있을까?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있어야 할까?
<계속>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