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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ㆍ특집

기회를 놓치는 기회 주의자가 되지 말자

수서양단(首鼠兩端) 수서양단(首鼠兩端), 구멍에 머리만 내놓고 주위를 살피는 쥐의 모습, 곧 진퇴의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는 상태, 혹은 두 마음을 가지고 기회를 엿보고 있는 상태를 비유해서 하는 말이다. 사기(史記) `위기무안후열전(魏其武安侯列傳)`에 나온다.전한(前漢) 무제(武帝)때, 위기후(魏其侯) 두영과 무안후 전분이라는 인물들이 있었다. 둘은 모두 황실의 외척이었는데, 평생 동안 사이가 좋지 못했다. 두영은 전분보다 연장자였으므로 훨씬 일찍이 대장군이 됐으나, 후에 반대로 전분이 신진 재상으로 막 세력을 펴고 있을 대 두영은 이렇다 할 활약이 업는 고참 대장군으로서 인생의 내리막길에 접어들고 있었다.어느 날 두영의 친구인 관부(灌夫) 장군이 고관대작이 모인 잔치자리에서, 두영을 무시한 한 고관을 힐책했다. 그런데 전분이 나서서 그 고관을 두둔하자, 관부가 전분에게 심하게 항의했다. 일단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대든 것은 듣지 않았다. 결국 이 일은 조정에까지 올라갔다.양쪽 주장을 다 듣고 난 무제는 중신들에게 물었다.“과연 어느 쪽에 잘못이 있다고 보오?”그러나 누구도 어느 한 편을 두둔하거나 비난하며 나서는 자가 없었다. 이편을 들자니 저편의 눈치가 따갑고, 저편을 들자니 이편의 눈치가 맵기 때문이었다. 무제가 중신들의 이러한 태도에 실망해 화를 내며 자리를 뜨고 말자, 이에 자리를 물러난 전분이 화가 나서 한안국에게 분통을 터뜨렸다.“그대 장유(한안국의 字)도 다른 자들하고 한통속이었구려. 어찌 똑같이 `구멍에서 머리만 내밀고 좌우를 살피는 쥐`처럼 눈치만 보고 있었던게요?”이 말에 한안국은 한동안 대꾸를 못하고 머리만 긁적였다.기회를 엿보다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있다. 망설이지 않고 소신과 원칙주의로 살기란 어렵다. 참으로 어렵고 힘이든다. 왜 인간에게 이렇게 어렵고 힘든 숙제가 있는지 정말 궁금하다. 그냥 누구에게나 중용의 마음으로 소신을 펼치며 자신 있게 살아야 하는데 그러나 신은 인간에게 극복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 같다. 잘못된 생각을 위대한 생각으로 바꾸어 살라고 말이다.기회주의자에서 소신과 원칙주의자로 탈바꿈할 수 있는 기회는 지금뿐이다. 기회를 놓치는 기회 주의자가 되지 말자./쌍산 김동욱한국서예퍼포먼스협회 상임고문

2011-12-28

옳고 그른 것을 바로 보는 지혜를 가지자

옥석혼효(玉石混淆) 옥석혼효(玉石混淆). 옥과 돌이 뒤섞여 있음. 곧 훌룡한 것과 쓸데없는 것, 또는 선(善)과 악(惡), 현(賢)과 우(愚)가 뒤섞여 있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포박자(抱朴子)` `상박(尙搏)`편에 나온다. 비슷한 말로 `옥석구분(玉石俱焚)`이라는 것이 `서경(書經) `윤정(胤征)`편에 있는데 이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이 모두 함께 망해버리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포박자`는 동진(東晋) 시대의 도사(道士)인 갈흥(葛洪:호는 포박자, 283~343)이 쓴 도가(道家)의 책이다. 그 `상박`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시경(詩經)`이나 `서경(書痙)`을 대해 (大海)라고 한다면 제자백가서(諸子百家書)는 그흐름에 합류되는 지류라고 할 수 있다. 옛사람들은 재주 얻기 어려움을 한탄해, 곤륜산(崑崙山)의 옥(玉)이 아니라 해서 야광주(夜光珠)를 버리거나 성인(聖人)의 글이 아니라 해서 수양에 도움이 되는 말을 버리는 일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한(漢), 위(魏) 이래 본 받을 만한 좋은 말이 많이 나와 있는데도 그것을 추려낼 만한 성인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식견이 좁은 사람들은 깊은 뜻은 살피지 못하고 글자의 해석에만 급급하거나, 소도(小道)이므로 전혀 돌아볼 가치도 없다거나, 너무 넓고 깊어서 사람들의 정신을 어지럽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티끌이 쌓여 태산이 되고, 많은 빛깔이 모여 찬란한 아름다움을 이룬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또 천박한 시부(試賦)를 감상하는가 하면 뜻깊은 제자백가의 서(書)를 가볍게 여기며 유익한 금언(金言)을 하찮게 생각하며, 깊이가 없는 공허한 말들에 감탄한다.그래서 참과 거짓이 전도되고 `옥과 돌이 뒤섞이며`, 사광(師廣:樂師의 이름)의 정악(正樂)과 상(桑)의 속악(俗樂)을 같은 것으로 보고 용장(龍章)의 아름다운 옷도 누더기로 보니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여기에서 유래해 훌륭한 것과 나쁜 것이 섞여 있는 것을 `옥석혼효`라고 일컫게 됐다.`옥석혼효`의 뜻대로 바로보는 지혜를 갖기란 참으로 힘이 든다. 인간사에는 능력보다는 학연 혈연 지연 우선시 하다보니 모른일이 잘못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전문성이 배제된 사회구조의 모순으로 정치, 경제, 문화, 행정이 뒤걸음질하고 국가 발전과 국민 정신건강을 위해 전문성을 갖춘 인재를 찾아야만 한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에게도 돌과 옥이 있다는 현실에 자꾸만 먼 허공을 바라보게 된다./쌍산 김동욱한국서예퍼포먼스협회 상임고문

2011-12-21

멀리 내다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아주 귀한 보물이니 투자할 만하다. 이 말은 여불위(呂不韋)가 진 나라의 공자였던 자초(子楚)를 보고서 한 말이다. 지금은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훗날 자신에게 큰 이득을 줄 만한 인물이라고 판단해 그에게 투자해 놓는 일을 말한다. 사기 여불위전 자치통감 등에 보인다.전국시대 말엽이다. 조(趙)나라 한단은 나라가 쇠퇴해 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러 나라 사람들이 오고가는 변화한 도시였다.한(韓)나라 호상(豪商)인 여불위(呂不韋) 역시 장사일로 해서 자주 한단에 들렀다. 하루는 우연히 그곳에 진나라 태자 안국군의 서자 인 자초가 인질로 잡혀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당시 진나라가 조나라를 자주 침범했기 때문에 자초는 그곳에서 몹시 괄시를 받아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여불위는 그를 보고 투자해 둘 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장사꾼의 계산속은 빨리 돌아갔다. 자초에게 잘 투자해 두면 훗날 자신에게 큰 이득이 되리라고 판단한 것이다. 여불위는 곧 자초의 낡은 거처로 찾아가그의 후원자가 되겠다는 뜻을 보였다. 스스로를 홀대받고 있는 인질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던 자초는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여불위는 목소리를 낮춰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소양왕(昭襄王)이 이미 연로하니 오래잖아 곧 당신의 아버지이신 안국군께서 진왕이 되실 것입니다 그러나 정비인 화양부인에게는 아들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당신까지 합해 이십여 명이 넘는 서자들 가운데 누구를 태자로 택하시겠습니까 아시다시피 당신은 그리 유리한 입장이 아닙니다. 그건 그렇지만 이제 와서 어찌할 도리가 없지 않소 자초는 계속 어리둥절한 채 반문했다. 여불위는 눈을 빛내며 자초에게 돈을 대주겠다고 제안했다 그 돈을 자금으로 화양부인의 환심을 살 선물을 사보내는 한편 널리 인재를 모으라는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여불위는 직접 진나라로 가서 자초를 태자로 책립하도록 힘을 써보겠다는 이야기였다. 자초는 당신 말대로만 된다면 그때에는 함께 진나라를 다스리도록 합시다라고 맹세했다. 과연 여불위의 모사로 자초는 왕위에 오르고 여불위는 정승이 됐다. 우리는 당장 눈앞의 이익에 가려 훗날의 큰 이익을 놓칠 때가 많다. 멀리 보는 지혜를 찾을 때가 바로 지금이다./쌍산 김동욱한국서예퍼포먼스협회 상임고문

2011-12-14

어렵고 힘들더라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

공휴일궤(功虧一?) `공휴일궤(功虧一?), 흙을 돋우어 산을 만들 때, 높이 쌓은 공이 한 삼태기의 흙때문에 이지러뜨려질 수 있다는 뜻.즉 잠깐의 사소한 방심으로 해서 다된 일이 실패로 돌아감을 말한다.`서경` `여오`편에 나오는 말이다. `논어` `자한`편에도 이와 비슷한 말이 나온다. `서경` `여오`편에 이런 기사가 있다. 무왕이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주왕조를 열고 나서 얼마 후였다.주의 위세가 나날이 떨쳐지게 되자 변방 여러 만족들이 다투어 공물을 헌상했다.그중에 여라는 나라로부터 헌상된 오라는 진귀 한 개가 있었다.오는 키가 4척에 이르는 큰 개로서 사람의 뜻을 잘 아는 여물이었다. 무왕은 이 선물을 앞에 놓고 크게 기뻐했다.그것을 본 아우 소공석이 그따위 것에 마음을 빼앗겨서 정치를 소홀히 하면 안된다고 무왕에게 간하였다.소공은 사람을 희롱하면 덕을 잃고 물건을 희롱하면 뜻을 잃는다는 완인상덕 완물상지의 경고를 하고 이어서, “아아 밤낮으로 덕에 뜻을 두지 않을손가 작은 일이라도 삼가지 않는다면 끝내 대덕을 이루지 못하리니, 산을 만드는 일에 구인의 공을 한 삼태기의 흙으로 이지러뜨린다”라고 노래함으로써 무왕을 경계하였다.산을 만드는 데 아홉 길의 높이까지 이뤘다 해도 얼마 안되는 한 삼태기의 흙이 부족하면 산이 완성되지 않는 것처럼, 주 왕조 창업의 위대한 공적도 단지 한 마리의 개에 마음을 빼앗겨 잠깐 방심한다면 그르칠 수 있다는 것을 깨우친 것이다.한편 `논어` `자한`편에도 다음과 같은 공자의 말이 기록되어 있다. (학문하는 것을) 비유하자면 산을 만듦에 마지막 흙 한 삼태기를 (붓지 않아 산을) 못 이루고서 중지하는 것도 내 자신이 중지하는 것과 같으며 비유하면 (산을 만드는 데) 평지에 흙 한 삼태기를 붓는 것이라 하더라도 나아감은 내 자신이 나아가는 것과 같다.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우리 속담이 있다. 차근차근 시작함이 중요하다는 말이다.`공휴일궤`라는 말은 마지막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을 말한다. 천릿길의 시작은 처음 한 걸음부터이지만, 그 길의 완성 또한 마지막 한 걸음인 것이다./쌍산 김동욱 한국서예퍼포먼스협회 상임고문

2011-12-07

인간끼리의 싸움은 하찮고 부질없는 것

`와우각상쟁(蝸牛角上爭)`, 달팽이 뿔 위에서의 싸움. 곧 달팽이의 머리 위에 난 촉각끼리의 싸움이란 말로써 좁디좁은 세상에서의 부질없는 싸움, 애써 다퉈 봤자 얻을 수 있는 것이 극히 적은 싸움을 비유할 때 쓰는 말이다.`와각지행`이라고도 한다. 당대 백거이의 시구에 있는 말인데, 그 내용은 `장자` `측양`편에서 나오는 우화에서 유래한다.중국의 전국시대는 여러 제후들이 패권을 잡기 위한 얽히고 설킨 전쟁으로 해가 뜨고 해가 지던 때이다. 그 지긋지긋한 싸움터에서 이 이야기는 출발한다.위의 혜왕은 제의 위왕과 동맹을 맺었으나 위왕이 맹약을 배반하자 이에 분개, 제나라에 자객을 보내 위왕을 암살하려고 했다.그러자 대신들 가운데에는 암살은 비겁한 수단이므로 정정당당히 군사를 일으켜 싸우자는 의견이 나오기도 하고 이에 반대하여 백성을 수고롭게 하는 전쟁은 하지 말자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그런가 하면 아예 전쟁의 발상부터가 잘못이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화자가 그 주장의 주인공이다. 화자는 앞서의 주장들을 듣고 얼굴을 찌푸리며 임금 앞에 나섰다.“제나라를 정벌하자고 하는 자도 세상을 어지럽히는 자이고 정벌하지 말자고 하는 자도 세상을 어지럽히는 자입니다. 또 정벌하자거나 정벌하지 말자거나 하는 자는 세상을 어지럽히는 자라고 주장하는 자 역시 세상을 어지럽히는 자입니다”이 소리를 들은 임금은 가슴이 답답했다.“그럼 대체 어찌하란 말인가?”“임금께서는 시비의 분별을 버린 도를 구하시기만 하면 그뿐입니다”혜왕은 도무지 알 수 없는 소리라는 뜻으로 멍한 얼굴을 지었다.그때 재상혜자가 그 말을 듣고는 현자로 알려져 있던 대진인을 임금에게 나아가게 했다. 대진인은 임금에게 나아가 먼저 질문부터 했다.“임금께선 달팽이를 아십니까?”“물론 알지”“달팽이의 왼쪽 뿔에는 촉씨의 나라가 있고 오른쪽 뿔에는 만씨의 나라가 있사온대 서로 자기의 영토를 넓히려고 싸우고 있습니다. 그 싸움에서 죽은 자가 수만이요, 달아나는 적을 추격하기를 보름에 걸쳐 했던 적도 있다고 합니다”임금은 한동안 망연해 있었다. 자기의 치열한 싸움은 결국 달팽이 뿔 위의 싸움과 다를 것이 없게 되고 만 것이다.이 우주에 비기면 인간이란 얼마나 작은 존재이며 그런 싸움 또한 얼마나 하찮은 짓거리에 불과하단 말인가.

2011-11-30

사람의 앞날은 요원하다 잠시 쉬어가는 여유도 가지자

붕정만리(鵬程萬里) 붕조가 만리를 날아감, 곧 머나먼 여로나 앞길이 아주 양양한 장래를 뜻하는 말이다.`붕곤`이니 `붕도`니 하는 말도 여기서 비롯된 말들이다. 장자 소요유 편에서 시작된 말이다.전국시대 도가의 대표자 장자는 `소요유`편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북해의 끝에는 곤이라는 이름의 큰 물고기가 살고 있다. 곤의 크기는 몇천리가 되는지 모른다. 그 곤이 화해서 붕이라는 새가 된다.붕의 등도 몇천리의 길이인지 모른다. 이 붕새가 한번 날개를 탁 하고 쳐서 솟아오르면, 그 날개는 하늘을 구름처럼 덮어버리고 바다가 출렁거릴 큰 바람이 일어나는데, 단번에 북해 끝에서 남해의 끝까지 날아간다. 세상의 신기한 일을 적어놓은 제해에 의하면, 붕새는 한번 바닷물을 차올리는데 3천리나 되는 회오리바람을 타고 오르며 9만리를 여섯 달 동안 쉬지 않고 난 후에야 비로소 그 날개를 한 번 접고 쉰다고 한다`장자는 자연속에 묻혀 대상과 내가 하나가 되는 `물아일체`의 경지를 꿈꾸던 인물이다.그가 이 엄청난 새의 이야기를 한 것은 세속의 상식을 뛰어넘어 무한의 자유의 세계에 거니는 위대한 자의 풍모를 말하려던 것이다.여기서 유래되어 `붕곤`, `곤붕`이라 하면 상상할 수 없을 만치 큰 것을 의미하게 되었고, `붕배`, `붕익`도 역시 거대한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쓰이게 됐다.붕익은 특히 항공기를 형용하는 말로도 쓰인다. 또한 `붕박`, `붕비`, `붕거`라는 것은, 크게 분발해 어떤 일을 하려는 기세를 비유하며, `붕도`는 웅대한 계획이나 포부를 의미한다.때로는 우리가 늘 접하는 일상에서 벗어나 정신을 쉬게 하고 싶을 때가 있다.우리가 늘 접하는 범위란 다름아닌 우리 일상사의 범위이다. 나의 가족, 나의 사회, 나의 나라, 나의 세계로 넓혀 보아도 모두 우리라는 울타리에 지나지 않는다.아주 멀리 우주가 뻗는 곳까지 정신을 날아오르게 하여, 그 까마득한 곳에서 다시 우리가 사는 곳을 내려다보기도 하고, 그대로 시선을 멀리멀리 뻗어 가게 놓아두기도 해보자. 그것이 휴식이다.우리는 우리의 정신을 그런 무한한 휴식 속에 놓아둘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그곳에서 아마 붕새나 혹은 나비가 되어 날고 있는 장자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쌍산 김동욱한국서예퍼포먼스협회 상임고문

2011-11-23

의심하는 마음을 갖지 말자

의심암귀(疑心暗鬼) `의심암귀(疑心暗鬼)`, 의심하는 마음이 있으면 있지도 않은 귀신을 낳는다. 곧 의심하는 마음이 있으면 갖가지 무서운 망상이 솟아나 불안해진다는 뜻이다.올바른 판단을 그르치는 선입관의 해를 경계하는 속담으로서 `의심생암귀`가 원말이다.`열자` `설부`편, `한비자` `세난`편 등에 이와 관련된 고사가 있다.어떤 사람이 도끼를 잃어버렀다. 틀림없이 누가 훔쳐갔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아무래도 이웃집 아이가 수상쩍었다.아까 길에서 자기와 마주쳤을 때도 흘끔거리면서 도망치듯 가버렸었다. 그 표정이나 말투도 어쩐지 어색했다.`틀림없이 저 녀석이 내 도끼를 훔쳐갔다` 이렇게 속으로 믿고 괘씸하게 여기고 있던 어느날 그는 지난번 나무하러 갔다가 발두렁에 도끼를 놓고 온 것이 문득 떠올랐다. 가보니 도끼는 그대로 있었다.그가 도끼를 들고 집에 돌아와서 이웃집 아이의 거동을 다시 보니 이번에는 그 태도가 조금도 수상하게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이런 이야기도 있다.어떤 사람의 집 마당에 있던 오동나무가 말라 죽었다. 그런데 이웃의 노인이 오동나무가 죽으면 운수가 나쁘다고 충고했다. 그 바람에 주인은 급히 나무를 잘라버렸다.그랬더니 그 노인이 찾아와 땔나무로 쓰게 달라고 했다.“옳거니. 땔나무로 쓰기 위해 날 속여 나무를 자르게 했구먼 이웃지간에 이럴 수 있는 겁니까!” 주인은 이렇게 화를 벌컥 냈다.정말로 노인의 속셈이 그랬다면 모르겠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공연히 친절히 충고해 줬다가 터무니없는 의심을 산 셈이 됐던 것이다.또 이런 이야기도 있다.`한비자` `세난`편의 이야기다.송나라에 한 부자가 있었다. 한번은 장마가 져서 토담이 허물어졌는데, 아들과 이웃집 사람이 그것을 보고 빨리 수리하지 않으면 도둑이 들겠다고 충고했다.그런데 그날 밤 과연 도둑이 들어 재물을 훔쳐갔다.그러자 부자는 아들에 대해서는 선견지명이 있다고 칭찬하면서, 이웃에 대해서는 수상하다고 의심했다는 것이다.사람의 마음은 이와 같다. 의심하려 들면 끝이 없다.일단 한번 의심하기 시작하면 그 목소리도 도둑이요, 그 행동도 도둑이요, 그 웃는 모습도 도둑이요, 그 눈빛도 도둑이라는 것이 되고 만다. 그러니 공연히 사람을 의심하지 말 일이며 의심받을 일도 아예 하지 말 일이다./쌍산 김동욱한국서예퍼포먼스협회 상임고문

2011-11-16

부질없는 어짊

송양지인(宋襄之仁) `송양지인(宋襄之仁)`, 송나라 양공의 어짊. 자신의 처지를 모르고 분수도 없이 남을 동정하는 것을 비웃어 하는 말에서 시작돼, 소용없는 동정을 일컫는다.춘추시대 송나라 양공이 쓸데없는 인정을 베풀었던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춘추좌씨전` `희공` 22년 조, `십팔략` 권1 등에 소개돼 있다.춘추시대 주나라 양왕 2년(B.C.650) 송의 환공이 죽자 여러 공자가 서로 왕위를 다투면서 나라가 어지러워졌다.이 혼란을 마무리지은 것은 송나라 양공이었다.그는 환공으로부터 부탁을 받고 있던 태자소를 조, 위, 주군과 연합해서 추대했으니 그가 제의 효공이다.양공은 패자의 후사를 제 힘으로 정한 데 고무가 돼 패자가 될 야망을 품고는 기원전 639년 가을에는 송, 제, 초 세 나라를 불러모아 그 맹주가 되려다 초의 성왕의 강력한 반발로 망신을 당했다.그러나 이에 굽히지 않고 양공은 이듬해 정나라가 초에 굴복하자 이를 책망하여 정나라를 쳤다.그러자 그해 겨울 11월 초, 초나라는 정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대군을 파병했다.양공은 초군과 홍수를 사이에 두고 대치했다. 이때 이미 송나라 군대는 전열을 다 가다듬고 있었는데 초나라 군대가 강을 건너고 있었다.이를 본 공자 목이가 이렇게 건의했다.“적들은 많고 아군은 적습니다. 그러니 아직 다 건너기 전에 공격하게 해주십시오”그러나 양공은 허락하지 않았다.얼마 후 강을 다 건넌 초군은 전열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사마가 다시 건의했다.“아직 전열을 다 가다듬기 전이니 공격 명령을 내려주십시오”그러나 양공의 대답은 같았다.“아직 아니다”그리고는 초군의 전열이 완전히 갖추어진 다음 공격을 시작했다.결과는 물론 열세였던 송군의 참패였고 양공도 허벅다리에 부상을 깊게 입었다. 여러 사람이 원망하자 양공은 이렇게 말했다.“군자는 다친 군사를 또 공격하지 않으며, 늙은이를 포로로 잡지 않는다. 옛날 싸우던 방법에서는 험난한 지형을 이용하지도 않았으니, 과인이 비록 망한 나라의 후예이긴 하지만 아직 진영이 갖추어지지 않은 군대를 공격하는 비겁한 짓은 하지 않는다”그러나 양공은 결국 이 입은 상처로 이듬해 죽고 말았으니 세상에서는 이 일을 가리켜 양공의 `부질없는 어짊`이라고 말하면서 조소했다./쌍산 김동욱한국서예퍼포먼스협회 상임고문

2011-11-09

일을 시작하는 것은 쉬우나 지키는 것은 어렵다

창업수성(創業守成), 글자 그대로 하면 일을 시작하는 것과 이룬 것을 지키는 것이지만 원말은 `창업이 수성난` 혹은 `이창업 난수성`으로서 일을 시작하는 것은 쉬우나 지키는 것은 어렵다는 말이다.`당서` `방현령전` `정관정요` `군도`편 등에 보인다.무리한 대운하 공사와 고구려 정벌의 패배로 극도로 피폐해진 수나라는 이연과 이세민 부자에게 나라를 넘겼으니 곧 당나라 왕조의 건국이었다.당나라 초기에는 특히 안정된 정치와 탄탄한 군사력으로 성세를 누리게 되는데, 후세에는 그것을 당초 3대의 치세라고 불렀다. 정관의 치, 영휘의 치, 개원의 치가 그것이다.그중에서도 특히 태종의 정관의 치는 치세의 모범처럼 됐는데, 이때 태종은 널리 인재를 모으고 내정을 충실하게 했으며 국토황장에도 힘써, 백성들은 편안하고 안정된 생업을 유지할 수 있었으며 적절한 교화의 덕으로 도둑도 없는 태평세를 누렸다.그런데 태종의 치세는 두여회, 방현령, 위징, 왕규 등 뛰어나고 현명한 신하들이 조정에서 태종을 잘 보필했기 때문이기도 했다.오긍이 편찬한 `정관정요`는 태종과 여러 신하들의 문답을 모은 것으로 제왕학의 교과서처럼 읽히는 책이다.어느 날 태종은 신하들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창업과 수성은 어느쪽이 더 어렵소?”방현령이 이렇게 대답했다.“처음에는 군웅이 서로 각축하여 싸워서 항복받고, 전쟁을 해서 이겨서야 이루는 것이므로 창업이 어렵다고 하겠습니다”그러나 위징은 달리 대답했다.“천하를 처음 얻을 때에는 온갖 고초 끝에 얻었다가도 일단 천하를 얻고나면 교만과 안일 속에 빠져 그만 읽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수성이 어려운 줄로 압니다”이 말을 듣고 태종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했다.“현령은 나와 더불어 천하를 평정할 때 창업의 온갖 어려움을 겪었고, 위징은 나와 함께 천하를 안정시키고자 하면서 수성이 쉽지 않음을 겪었소”이제는 창업의 어려움은 이미 지나갔으니, 바야흐로 수성의 어려움을 공들과 함께 조심하고자 하오./쌍산 김동욱한국서예퍼포먼스협회 상임고문

2011-11-02

원칙은 지키되 융통성이 있는 사람이 되자

미생지신(尾生之信) `미생지신(尾生之信)`은 미생의 신의, 즉 앞뒤 재어보지 않는 막무가내의 어리석은 믿음이란 말로서, 미생이란 사나이가 신의를 지키다가 어리석게 죽고 만 고사에서 비롯됐다. `장자` `도척`편과 `사기` `소진`전 등에 나오는데, `장자`에는 비웃는 것으로, `사기`에는 칭찬하는 것으로 소개돼 있다.장자는 유교적인 윤리의식을 비판한다.인의니 의니 하는 것이 인간 본래의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억지로 인간을 재단하여 그 틀 속에 꿰맞추려는 것으로서, 인간의 삶에 해가 된다고 하는 것이다.그와 같은 주장을 그의 책 장자 곳곳에서 볼 수 있는데 여기 소개하는 내용도 그런 것이다.그는 유교의 대표인 공자와 당시의 큰 도둑 도척과의 대화를 상정해 놓고 도척의 입으로 자신의 주장을 편다.도척의 말 가운데 미생의 신의에 대한 우화가 인용된다.옛날 노나라에 미생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고였는데 한 서생이었으므로 미생이라고 한다.그는 매우 정직한 사람으로 한번 약속한 일이면 절대로돼어기는 법이 없었다.어느 날 그는 사랑하는 여인과 냇가의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그는 어찌된 일인지 약속 시간이 되어도 사랑하는 여인은 오지 않았다.그러나 미생은 약속을 철석같이 믿었다. 어쨌든 자신만큼은 약속을 굳게 지킨다는 생각으로 약속된 자리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고 서 있었다.온다던 여인은 영 오지 않고 냇물이 슬슬 불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조숫물이 차오는 것이었다.처음에는 미생의 발등을 적시더니 나중에는 무릎까지 올라왔다. 미생은 차오르는 물이 야속했지만 그래도 자리를 뜰 줄 몰랐다.결국 다리의 기둥을 붙잡고 간신히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물이 목까지 차올랐지만, 미생은 이를 악물고 버텼다.그러다 결국 미생은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도척은 이같은 미생의 우화를 얘기하고 난 다음 이렇게 비판했다.“이런 것들은 못박혀 죽은 개나 물에 떠내려가는 돼지나 깨진 그릇을 들고있는 거지와 같이 쓸데없는 명목에 목숨을 걸고 소중한 생명을 천하게 굴리는 사람이요 진실로 삶의 길을 모르는 무리들이다”장자의 말처럼 유교가 쓸데없는 명목에 목숨을 거는 부질없는 가르침은 아니다. 명목을 소중히 여기기는 하지만, 그것이 쓸데없는 것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자기 생명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자 했던 장자의 여유도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람은 원칙은 지키되 융통성이 있어야 한다. 미생의 생각은 나쁜 것이 아니라 어리석은 일이다./쌍산 김동욱한국서예퍼포먼스협회 상임고문

2011-10-26

견문을 넓혀 더 멀리 보는 식견을 가지자

정중지와(井中之蛙) `정중지와(井中之蛙)`, 우물 안의 개구리. 식견이 매우 좁은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우물 안 개구리는 대해가 있음을 모른다`는 말에서 따온 것이다. 정와 정저와 감정지와도 같은 말이다.`장자` `추수`편, `후한서` `마원전` 등에 나온다.전한을 멸하고 등장한 신나라 말경의 일이다.농서땅의 외효는 처음에는 광무제와 손잡고 세력을 유지했었으나 점차 광무제의 세력이 강대해지자 불안을 느껴 촉땅의 공손술과 연합하려 하고 있었다.공손술은 그 무렵 촉 땅에 성이라는 나라를 세우고 황제를 참칭하고 있었는데 촉 땅은 원래 물자가 풍부하고 천험의 요새로 되어 있어 세력을 키우기에 알맞는 곳이었다.외효는 먼저 그가 어떤 인물인지 알아보기 위해 마원을 촉에 보내기로 했다. 마원은 무릉 태생으로 왕망이 죽자 난을 피해 농서로 옮겨온 후 외효의 청을 받아들여 그 참모역을 맡고 있었는데, 마침 공손술과는 어릴 때부터의 고향 친구이기도 했다. 마원은 공손술이 반가이 맞아주리라 믿고 잔뜩 기대를 안고 찾아갔다.그러나 마원은 뜻밖의 냉대를 받았다.성 땅의 군주가 된 지 4년째인 공손술은 천자국의 조정에서처럼 위의를 갖추고 높은 계단 위에서 거드름을 피우며 그에게 관위를 베풀려고 했다.물론 마원은 서둘러 발걸음을 돌렸다.“천하의 승패는 아직 결정되지도 않았는데, 유능한 인재를 예를 다하여 맞아들여 국가의 대계를 물으려고도 하지 않고 허세만 잔뜩 부리고 있구나”이런 자와 더불어 천하를 도모할 수 없다. 그는 교만한 우물 안의 개구리다. 뜻을 동방에 두는 것이 낫겠다. 돌아오는 길에 수행원들에게 이같이 말한 마원은 외효에게도 역시 이같이 권했다.“그는 우물 안의 개구리였습니다. 그런 자는 상대할 것 없이 한에 기대하는 것이 좋겠습니다”이로써 외효는 공손술과 연합하려던 생각을 바꾸어 후에 후한의 시조가 된 광무제와 수호하게 됐다.“우물 안 개구리가 바다에 대해 말할 수 없는 것은 자기가 살고 있는 곳에 구애받고 있기 때문이다. 여름 벌레가 얼음에 대해 말할 수 없는 것은 여름 한철밖에 모르기 때문이다. 식견이 좁은 사람과 도에 대해 말할 수 없는 것은 그가 자기가 배운 것에 속박되어 있기 때문이다”/쌍산 김동욱한국서예퍼포먼스협회 상임고문

2011-10-19

근본으로 돌아가면 선택의 기로서 잃을게 없다

`다기망양(多岐亡羊)`, 여러 갈래 길에 이르러 양을 잃었다는 뜻이다. 달아난 양을 찾으려는데 길이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는 바람에 양을 놓치고 말았다는 말이다. 원래는 학문의 길이 너무 여러 갈래여서 너무 다방면에 걸쳐 지나치게 섭렵하거나 반대로 지엽적인 것에 구애되거나 하면 아무것도 얻을 수없다는 비유로 쓰인 말이다. 오늘날에는 선택할 대상이 너무 여러 가지가 있어 어느 것을 택할 것인지 곤욕스러운 경우에도 이 말을 쓴 다. 또는 지시하는 방침이 많아 갈 바를 모르는 경우를 비유할 때도 쓰인다. 열자(列子) 설부(說符)편에 나오는 고사에서 비롯됐다. 전국시대 도가계열의 사상가로 양주(楊柱)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당시 겸애설(兼愛說)로 유명한 묵적(墨翟)과 함께 흔히 양묵 이라고 통칭될 만큼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고 있었다. 양주는 묵적과는 달리 개인주의를 주장했다. 그는 내 몸의 터럭 한개를 가지고 세상을 구할 수 있다 하더라도 나는 뽑지 않겠다고 말한 것으로 유명하다 어느날 양주의 이웃집 양 한 마리가 달아났다 그래서 그 이웃 사람은 자기집 사람들을 다 동원해 양을 찾으러 나서게 하고서는 양주에게 찾아와 사람을 보내달라고 도움을 청했다. 그러자 양주는 이렇게 물었다. 허허 양 한 마리 찾는데 어째서 그렇게 많은 사람이 필요하오. 이웃 사람이 대답했다. 양이 갈림길이 많은 쪽으로 달아났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들은 양주는 갑자기 근심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하루종일 말도 하지 않고 웃지도 않았다. 한 제자가 그에게 물었다. “선생님 양 한 마리는 그렇게 중요한 물건이 아닙니다. 또 선생님 소유의 양을 잃어버린 것도 아닌데 어찌 말도 않으십니까” 하지만 양주는 가만히 말이 없었다. 그래서 맹손양이란 제자가 선배인 심도자를 찾아가 앞서 있었던 일을 말해 주자 심도자는 맹손양과 함께 양주를 찾아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며 자문을 구했다. 옛날에 같은 스승을 모시고 유가의 도(道) 곧 인의(仁義)를 배워 돌아왔다. 그 아버지가 인의에 대해 물었다. 대답은 각각 달랐다. 이처럼 그 세 사람의 입론은 다르지만 모두 유가에서 나온 것입니다. 곧 큰길에는 갈림길이 많기 때문에 양을 잃어버리는 것처럼 학문도 원래 근본은 하나인데 다방면에서 배우기 때문에 본성을 잃는다. 따라서 근본으로 돌아간다면 잃는 것도 없다./쌍산 김동욱한국서예퍼포먼스협회 상임고문

2011-10-12

큰 인물 되기 위해선 꾸준한 노력과 시간 필요

대기만성(大器晩成) 대기만성(大器晩成), 큰 그릇은 늦게 만들어진다, 크게 될 사람은 늦게 이뤄진다. 혹은 만년(晩年)에 성공한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대재만성(大才晩成:큰 재주는 늦게 이뤄진다 )이라는 말도 쓴다. 노자 41장에 나오는 말이다.노자 41장에 이런 말이 있다.“큰 네모는 모서리가 없고 큰 그릇은 늦게 만들어지며 큰 소리는 시끄럽지 않고 큰 모양은 형체가 없다. 사실 여기서 대방(大方)대기(大器)대음(大音)대상(大象)은 모두 道(도)를 비유한 것이다. 대기만성만 따로 절장취의해서 보자면 큰 인물은 짧은 시간에 만들어질 수 없으니 사람이나 사물을 볼 때 긴 안목으로 보아야 한다는 뜻으로 새길 수도 있다”대기만성과 관련된 고사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먼저 삼국지 위지최염전의 이야기다중국 삼국시대 때 위나라에 최염 이란 장수가 있었다. 그는 풍채도 좋아 사람들로부터 대접을 받았으며 무제의 깊은 신임도 있었다. 그런데 그에게 최림이라는 사촌동생이 있었는데 최림은 사촌형과는 달리 외모도 변변치 않고 출세도 못하고 있어 일가친척들로부터 무시를 당했다. 하지만 최염만은 최림의 인물됨을 알아보고 늘 이렇게 말했다. 큰 종이나 큰 솥은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큰 인물도 그리 쉽사리 완성되는 것이 아니고 오랜 시간을 들여야 만들어지는 것이다. 나의 동생 최림도 이와 같이 대기만성형의 인물이다. 끝내는 필경 대단한 인물이 될 것이다. 과연 이 말대로 최림은 마침네 뒤에 삼공(三公)이라는 높은 자리에 올라 천자를 보좌하는 대임(大任)을 맡았다. 대기만성 형이란 솜씨 좋은 목수는 산에서 막 벌채해 온 거친 재목이라도 시간과 노력을 들여 자기 마음대로 물건을 만들 수 있는 좋은 재목으로 다듬어낸다. 누구나 재능을 살려 꾸준히 노력하면 큰 인물이 될 수 있다. 자기 개발에 끊임없이 노력해 역사에 남는 걸출한 인물이 돼보자./쌍산 김동욱한국서예퍼포먼스협회 상임고문

2011-10-05

배우는데는 높고 낮음이 없다

노마지지(馬之智) 노마지지(馬之智)는 산길에서 길을 잃고 괴로위할 때 늙은 말을 풀어 그 뒤를 따라가서 길을 찾아냈다는 고사에서 온 것으로 어디에서고 배울 점이 있다면 대상이 어떻든 간에 배위야 한다는 비유이다. 노마지교(馬之敎)라고도 한다. 한비자의 설림(說林)편에 나온다. 제나라 환공(桓公)의 재상 관중은 어느 봄날 대부 습붕과 함께 환공을 따라 고죽이란 나라를 징벌하기 위해서 행군한 적이 있었다. 겨울까지 오래 끄는 싸움이었는데 도중에서 길을 잃고 말았다. 이때 관중이 말했다. “이런 때에 늙은 말의 지혜를 써야 합니다(馬之智加用也)”그리하여 말을 풀어 그 말이 가는 곳을 따라감으로써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또 어느 땐가는 산속을 거닐다가 마실 물이 떨어졌다. 이때 습붕이 이렇게 말했다. “개미는 겨울에 산의 양지쪽에 살고 여름에는 북쪽 그늘에 있는 법입니다 그리고 개미집이 땅 위 한 치 높이에 있으면 그 여덟 자 밑에서 받드시 물이 있습니다” 물론 그 말대로 개미집을 찾아 땅을 파서 물을 얻을 수 가 있었다 한비자는 이 이야기를 하고는 그 끝에 이렇게 설명을 덧붙였다.관중이나 습붕처럼 성인이란 말을 듣고 지혜가 깊다는 소문이 난 사람도 자기가 모르는 것 미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늙은 말이나 개미일지라도 수치를 느끼지 않고 길잡이로 삼아 선생으로 모신다. 그러나 오늘날의 사람들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고대 성인의 지혜를 스승삼아 배우려 하지 않으니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배우는 데 있어서는 관중이나 습붕처럼 겸손해야 한다. 또 열심히 배울 점을 발견해 내야 한다. 늙은 말이건 하찮은 미물이건 간에 배울 점은 배워야 한다. 늙은 말이나 개미 등은 그 오랜 경험과 본능으로 많은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연륜이 쌓여서 경험이 풍부한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어떤 분야에서 놀라운 재능을 보이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또는 자기 자신은 특별히 알고 있다는 의식조차 없이하는 행동인데 옆에서 가만히 살펴보면 눌랄 만한 깊은 이치를 배울 수 있는 경우도 있다. 그 경험의 진리를 부지런히 찾아서 배우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지혜롭고 현명한 사람이라 하겠다.인간은 위대하다. 지혜를 배우려고 노력하는 자는 더욱 위대하다./쌍산 김동욱한국서예퍼포먼스협회 상임고문

2011-09-28

마음으로 덕을 베풀고 자신 돌아보는 삶 살자

명경지수(明鏡止水) `명경지수(明鏡止水)`는 맑은 거울과 고요히 머물러 있는 물, 곧 티없이 맑고 고요한 심경(心境)을 이르는 말이다. `장자` 덕충부 (德充符)편에 실려 있는 말이다.공자의 고국이었던 노()나라에 왕태라는 학자가 있었다. 그는 일찍이 발을 잘리는 형벌을 받아 외짝 발만 있는 외짝다리 였으나 워낙 학식과 덕행이 훌륭해 평판이 높았다. 그 문하에 모여드는 제자도 많아 공자의 제자와 거의 맞설 정도였다. 공자의 제자인 상계는 그 점이 마음에 마땅치 않아 공자에게 불만을 토로했다.“스승님, 저 외다리는 어떤 인물입니까” 그러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해 주었다.“그분은 천지자연의 실상(實相)을 환히 들여다보고 바깥 물건에 끌려서 마음을 옮기는 일도 없고 만물의 변화를 자연 그대로 받아들여 도(道)의 본원을 지키는 분이니라”“수양이 그렇게 깊다 하다고 해도 어째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흠모를 받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그의 마음이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고 고요하기 때문이니라” 대개 사람들이 제 모습을 물에 비춰보려고 할 때에 흐르는 물보다 조용히 정지되어 있는 물을 거울로 삼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오직 언제나 변함없는 부동심(不動心)을 가진 사람이라면 남에게도 마음의 평안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마음의 평정한 상태를 고요히 머물러 있는 물(止水)에 비유한 것이다.이밖에도 장자에서는 현자(賢者)의 깨끗한 마음이나 지인(至仁:지극한 덕을 가진 사람)의 차별없고 흔들리지 않는 마음씀을 명경에 비유했다. 덕충부 편에 나오는 말씀이다. 모든 것은 마음 씀씀이에 달려있다. 마음에 따라 움직이며 마음 가짐에 따라 모습도 달라진다. 배우고 읽히고 열심히 노력하여 마음의 지혜를 찾아 덕을 베풀고 악을 멀리하여 인류사회에 기여하는 인생을 살아보자. 그리고 항상 자기를 돌아보는 삶을 살아야한다. 남의 결점 보다는 자기의 결점이 무엇인지 거울삼아 언제나 마음을 맒은 물에 비추어도 오염되지 않는 길을 가자./쌍산 김동욱한국서예퍼포먼스협회 상임고문

2011-09-21

필요때 대접 받다가 쓸모없을 땐 도외시 되는…

추지선(秋之扇) `가을부채` 가을이 돼 쓸모없게 된 부채를 가리킨다. 곧 여름에 시원한 바람을 일으켜 줘 주인에게 사랑받았지만, 가을이 되자 쓸모없게 돼 한구석으로 밀려나고 만 처지를 말한다. 이에 비유해, 사랑을 잃게 된 처지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 반첩여의 `원가행(怨歌行)` 이라는 시에서 비롯됐다. 반첩여의 전기는 `한서(漢書)` 속에 그의 유명한 `자상부(自傷賦)`와 함께 실려 있으며 `원가행(怨歌行)`은 `문선(文選)`과 `옥대신영집(玉臺新詠集)` 등에도 실려 있다.“새로이 제(濟)나라의 흰 비단을 재단하니,희고 깨끗하기가 상설(霜雪)과 같다.마름질하여 합환(合歡)의 부채를 만드니둥글둥글하여 명월(明月)같다.임의 품과 소매 드나들면서움직일 때마다 미풍을 일으킨다.어느덧 두려운 가을이 오면서늘한 바람이 더위를 빼앗아가니장롱 깊숙이 버려지는 신세가 되어은정(恩情)은 도중에 끊어지는도다”이것이 `원가행(怨歌行)`이라는 시 가운데 나오는 `가을 부채`이다. 이에 얽힌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한(漢)나라 성제(成帝) 때 이야기이다.성제의 후실인 반첩여가 황후 허씨(許氏)와 짜고. 임금의 사랑을 받고 있는 후궁들을 저주하고, 또 임금에 대한 중상과 욕을 했다는 혐의로 하옥되는 사건이 벌어졌다.그러나 사실은 임금의 총애를 독점하고 있던 조비연(趙飛蓮) 자매가 일을 꾸며 허황후와 반첩여를 무고하게 옭아넣었다는 소문이었다.소문대로 죄가 없다는 사실이 밝혀진 후 반첩여는 자신의 신세를 곰곰이 생각해 본 끝에 후궁살이를 떠나야겠다고 결심했다. 이미 임금의 총애도 옛날 같지 않고. 질투의 소용돌이에 언제 또 휩싸일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반첩여는 장신궁(長信宮)으로 들어가 황태후를 모시며 지내겠다고 원해 성제의 허락을 받았다. 황태후는 성제의 모후(母后)로서, 반첩여가 후궁으로 들던 무렵 그를 귀여워해 주었다. 장신궁으로 들어가 황태후의 말 상대로 호젓하고 쓸쓸한 나날을 보내던 반첩여는 성제가 죽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이 40여세로 조용히 죽었다.장신궁에 있으면서 반첩여가 자신의 심정을 노래한 시가 바로 `원가행`이다. 이 시는 옛날 임금의 총애를 받던 시절을 그리면서, 지금의 처지를 가을이 돼 쓸모없게 된 여인을 비유하는 말이 되었다.한때 쓸모 있어 사랑받다가 쓸모 없게 된 후에 버려지는 일은 예나 지금에나 흔하디 흔한 일이다. 인간이 매정한 것은 필요한 때에는 요긴하게 썼다가도 필요 없어지면 가차없이 고개를 돌리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데 있다. 그렇다고 자신이 있을 자리가 아닌데, 옛정을 생각해 달라며 눌러붙어 있는 것도 딱하고 염치없는 일이다.사람의 일은 마무리가 중요하다. 혹 다음에 쓰일 것을 생각해서 잘 갈무리해 두든지, 아니면 그것이 쓰일 새로운 쓰임새를 찾아 놓아주든지 하는 것이 사람을 관리하는 지혜가 될 것이다./쌍산 김동욱한국서예퍼포먼스협회 상임고문

2011-09-07

성공은 자질의 차등 아닌 노력으로 이뤄진다

생이지지(生而知之) `생이지지(生而知之)`란 나면서부터 앎, 곧 태어나면서부터 도(道)를 아는 성인(成人)의 경지를 표현한 말이다. `중용`, `논어`, `술이`편의 말이다.`중용` 20장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혹은 태어나면서부터 이것(道)을 알고, 혹은 배워서 이것을 알고, 혹은 곤궁하여 이것을 아는데, 그 앎이라는 것에 미쳐서는 똑같다. 혹은 편안히 이것을 행하고, 혹은 이롭게 여겨 이것을 행하고, 혹은 억지로 힘써 이것을 행하지만, 그 성공하는 데 미쳐서는 똑같은 것이다”이는 지(知)와 행(行)에 있어서 인물의 차등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즉 사람에게는 태어나면서부터 세상의 이치를 꿰고 나온 사람이 있기도 하고, 배워서 알게 되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 어렵게 힘쓴 뒤에야 아는 사람이 있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깨닭음이라는 것에 도달하고 나면 그때는 똑같은 것이다. 각각 다른 도리, 다른 이치를 깨닭은 것이 아니라 모두 한가지로 깨닭은 것이다.또한 앎을 실현하는 데 있어서도 상등(上等)의 사람은 앎과 행동이 편안히 이뤄지지만. 혹은 그렇지 못하고 실천이 이롭다고 생각해 그렇게 행하는 사람도 있고, 혹은 억지로 그렇게 행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어떤 길을 택했건 그 성공한 결과에 이르고 보면 그 공은 다 같은 것이 된다. 그러므로 자질이나 방법에 따라 힘이 들고 덜 들고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수양의 결과로 얻는 것이 모두 같은 것이라는 말이다.이 구절에서 강조되는 것은 `자질에 있어서 차등이 있음`이 아니라 바로 `그 결과의 같음`이다. 곧 어떤 경로를 통하든지간에 완성 단계에 있어서는 모두가 동일한 상취를 얻는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이다.이와 관련하여 공자의 다음 말을 새겨둘 만하다.공자는 이렇게 말했다.“나는 나면서부터 안 자가 아니라, 옛것을 좋아하여 부지런히 그것을 구한 자이다”공자는 모두 생이지지(生而知之)의 성인으로 추앙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사람들은 면려(勉勵)해 주기 위한 것과 학문의 완성은 자질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부지런히 배우는 것으로 이뤄진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뜻에서이다./쌍산 김동욱한국서예퍼포먼스협회 상임고문

2011-08-31

권력 앞이 아닌 참된 우정과 의리를 찾아 나서자

문전작라(門前雀羅) 문 앞에 참새떼가 놀고 새 잡는 그물이 쳐졌다. 방문객이 끊어져 한산한 상태를 말한다. 문전성시(門前成市)나 문전여시와 상대 되는 말이다.사마천은 사기의 `급정열전`(汲鄭列傳)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하고 있다.한 무제 때 구경의 지위에까지 올랐던 급암과 정당시는 모두 체면을 지키며 의리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로서 집에 찾아오는 사람들을 극진히 대접할줄 알았다. 높은 벼슬자리에 올라 있을 때에도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을 귀천을 가리지 않고 반겼으며 항상 겸손했다. 따라서 그들의 집 문 앞은 항상 방문하는 손님들로 부산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벼슬길은 모두 부침(浮沈)이 심했다. 급암은 소탈한 성격의 인물로서 항상 솔직한 말로 임금에게 간언을 했으므로 결국 무제의 미움을 사서 중앙관직에서 밀려나 멀리 회양군의 태수가 되기도 했다. 정당시 역시 자기가 돌봐준 사람의 죄에 관련되어 서민이 됐다가 나중에는 여남군 태수로 끝을 보았다. 두사람은 벼슬자리에서 물러났을 때는 집안조차 가난했으므로 찾아오는 사람이 날로 줄어들어 결국에는 아무도 방문하지 않게 됐다 사마천은 이 급암과 정당시의 전기를 쓰고 난 뒤 그 끝에 이런 말을 덧붙였다.대개 급암 과 정당시 같은 현인이라도 세력이 있을 때에는 손님이 열 갑 절 은 됐지만 힘이 없어지면 모두 떠나가 버린다. 하물며 보통 사람에 있어서랴. 또 적공의 경우도 그가 정위의 벼슬에 있을 때에는 그 방문객이 문 앞에 넘쳐 부산스럽기 그 지 없었다. 그가 벼슬을 떠나자 방문객은 끊어져 문 앞에는 참세떼가 모여들어 새를 잡는 그물을 문앞에 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적공이 다시 정위 벼슬을 하게 되자 방문객은 다시들끓게 됐다. 그를 본 적공은 대문에 다음과 같이 크게 써붙였다. “한번 죽고 한번 살게 됨에 사귐의 정을 알고 한번 가난하고 한번 부자가 됨에 사귐의 실태를 알며 한번 귀하고 한번 천하게 됨에 사귐에 정을 알 수 있다네 이 어찌 슬픈 일이 아니랴” 이로써 문전작라 라고 하면 가난 하거나 세력이 없어 찾아오는 사람이 없는 경우를 뜻하게 됐다. 또는 그저 쓸쓸하고 한산한 상태를 말할 때에도 이 말이 쓰인다. 인간의 간사함에 나를 돌아 본 다. 권력 앞에는 인간의 인격은 없다. 우정과 의리를 찾아 길을 나서자./쌍산 김동욱한국서예퍼포먼스협회 상임고문

2011-08-24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은 뛰어야 한다”

비육지탄(?肉之嘆) `비육지탄(?肉之嘆)`은 넓적다리에 살이 찐 것을 탄식함 곧 할 일 없이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는 신세를 한탄 한다는 뜻이다. 삼국지의 주인공 유비의 일화에서 비롯된 말이다.장비 관우와 함께 한왕조의 부흥을 외치며 달리던 유비는 한때 힘이 모자라 조조에게 몰린 적이 있다. 그는 각지를 전전하다가 형주(荊州)의 유표에게 신세를 지게 되었다. 이때 유표는 조조 원소 원술 등의 세력 다툼에서 벗어나 형주에 독립 왕국을 구축하고 있었는데 자기를 의지하고 찾아온 유비 등을 한 작은 고을에 주둔시켰다.유비가 싸움터에서 벗어나 고을에 머문 지 몇 년이 흘렀다. 어느 날 유표는 유비를 초대해 주연을 베풀었다. 연희 도중에 화장실에 가던 유비는 문득 자신의 넓적다리에 군살이 찐 것을 발견하고는 “난세에 태어나 활을 차고 말을 달리며 천하에 서려고 한 내가 이렇게 기개 없이 살고 있다니”라고 탄식하며 눈물을 흘렸다.연희 자리에 돌아온 유비에게 유표는 운 까닭을 캐묻자 유비는 이렇게 말했다.지난 시절 저는 항상 말을 타고 돌아다녔기 때문에 넓적다리에 군살이 붙을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한동안 말을 타지 않아 군살이 찌고 말았습니다. 노년에 가까운 지금 천하에 이름을 날리지도 못하고 기개 또한 옛만 같지 않아 그저 슬플 뿐입니다. 이 유비는 한탄에서 `비육지탄`이라는 말이 유래됐다. 이후 이 말은 천하태평으로 실력을 발휘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일을 탄식하거나 세상에 나와 공을 이루지 못하고 허송세월하는 것을 한탄하는 비유로 쓰인다. 뭔가 세상을 경륜할 큰 포부가 있는데 그것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군살이 찐 다리를 보면서 눈물을 흘릴 정도라면 그 심정이 얼마나 깊이 사무친 것인지 알 만하다. 요즘 공무원들이 복지부동(伏地不動)한다고 해서 손가락질 받고 있다. 그들의 비생산적 태도를 보면서 먼 옛날 비육지탄을 금치 못하던 유비의 기개를 생각해 본다. 또한 지금 이 세상에는 과연 얼마쯤이나 되는 제2, 제3의 유비들이 비육지탄을 발하고 있을지 몸도 일어나고 생각도 일어나야 한다. 인생에 내일은 없다. 모두가 타고난 재능을 발휘해 살아온 발자취를 남겨야 한다. 후손들에게 부끄러운 조상이 되지 말아야 한다.다시 한번 유비의 눈물을 보며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은 뛰어야 한다”는 나의 좌우명을 마음에 담는다./쌍산 김동욱한국서예퍼포먼스협회 상임고문

2011-08-17

인간사 정성을 다하면 안되는 것이 없다

삼고초려(三顧草廬) 삼국시대 유비가 제갈공명을 세 번씩이나 찾아갔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로서 사람을 맞이함에 있어 진심으로 정성을 다하는 것을 비유한다. 삼국지 촉지 제갈량전에 나온다. 후한말 관우 장비와 의형제를 맺고 한실부흥을 기치로 군사를 일으킨 유비에게는 조조에게 맞서기 위해 우선 훌륭란 군사가 필요했다. 그러던 중 유비는 어느날 서서라는 사람의 방문을 받은다음 유비에게 다음과 같은 권유를 했다. 제갈공명은 “와룡(臥龍)과 같습니다 장군께서 그를 한번 만나보시지요”, “그런가. 그렇다면 당신이 한번 같이 데리고 와주시오” 인재에 목말라 하던 유비는 귀가 번쩍 트여 이렇게 말했으나 서서는 고개를 저었다. 그 사람은 가서 만나볼 수는 있겠지만 불러들일 수는 없을겁니다. 장군께서 몸소 찾아 가시지요. 이에 유비는 당장에 예물을 가지고 제갈공명의 초가집을 찾아갔다. 그러나 제갈공명은 마침 집에 없었다. 며칠 후 유비는 다시 찾아갔다. 역시 제갈공명은 집에 없었다. 무례하다고 불평하는 관우와 장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유비는 다시 세 번째로 제갈공명의 초가집에 찾아갔다. 제갈공명은 유비의 열의에 감동해 마침내 군사가 되기를 승낙했다. 이후로 제갈공명은 과연 기대대로 적벽대전에서 조조의 100만 대군을 격파하는 등 수많은 전공을 세웠으며 그의 지모와 용맹 충성심의 활약상은 역사상 길이 빛나는 대단한 것이었다. 그리고 인재를 얻는 일에 정성을 다했던 유비는 그후 제갈공명의 계책에 따라 위의 조조, 오의 손권과 더불어 천하를 삼분하고 한 왕실의 맥을 잇는 촉한을 세우게 됐다. 지모와 지견이 뛰어난데다 충성심까지 깊은 제갈공명은 그 제상이 됐다. 이로부터 삼고지례(三顧之禮)라고 하면 세 번이나 찾아가 예의를 갖추면서 까지 인재를 초빙하는 것을 말하게 됐다. 인간사에 정성을 다하면 안되는 것이 없다. 상대방을 대할 때는 봄 바람같이 대하고 자신을 대할 때는 가을 찬 서리 같이 하라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좌우명이 생각난다. 모든일에 예의를 갖추고 진실하게 처리하면 어떤 난관도 성공으로 가는 현실적 지혜다./쌍산 김동욱한국서예퍼포먼스협회 상임고문

2011-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