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기획ㆍ특집

대왕암 휘감는 파도는 문무대왕의 넋 달래는 듯

아침 9시 30분. 포항~구룡포의 14번 국도를 따라, 감포읍 양북면 대왕암을 향했다. 연분홍 자귀꽃 우거진 아름다운 산길이다. 푸른 바닷길이 나타난 것은 한 시간 후. 곧이어 검붉은 바위돌 무더기가 펼쳐진다. 대왕암이다. 신라(新羅) 제30대 문무대왕의 `수중릉(水中陵)`으로 알려지고 있는 사적 제158호의 모습이다.문무대왕 `수중릉` `일본망명설` 등현재까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감은사 터 삼층석탑거침없는 남성적 매력 발산불국사 석가탑과 쌍벽 이뤄대왕암 바라보는 정자 이견대도해수욕 시즌도 아닌데, 벌써 모래밭에는 도시락을 펴고 있는 관광객도 더러 보인다. 파도소리와 함께 바닷바람이 풍겨온다. 바닷가 식당 주면에는 오징어·미역·다시마 장수 아줌마들이 진치고 있다. 대왕암 바닷바람에 말렸다는 부드러운 피데기(덜말린 오징어) 여섯장을 1만3천원에 샀다. 지나가는 관광객이, `비싸다`, `오징어도 대왕값이다`며 야유한다. 대왕암이 `수중릉` 또는 `경주 문무대왕릉`이라 불리는 까닭은, 문무대왕이 이 바다 속 바위 밑에 매장 되었을 것이라는 사학자들의 주장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여러차례에 걸친 조사 결과, 바위 밑에는 어떠한 무덤 장치도 없다는 것이 밝혀짐으로써 `왕릉설(王陵說)`은 일단 자취를 감춘 형편이지만, 아직도 일부 학자들은 수중릉(바다 속에 세워진 왕릉)설을 고집하고 있고, 정부 당국에서도 `경주 문무대왕릉`이라 호칭하고 있다. 그러나 문무대왕은 돌아간 후 곧바로 화장(火葬)되었고, 그 재를 일부 이 대왕암 바위 위에 뿌려 제사지냈다고 알려져 있으므로, 문무대왕과 전혀 관계 없다고는 하지 못할 듯하다. 특히 문무대왕에게는 오래 전부터 `일본 망명설`이 제기되어 오고 있어, 이 부분을 명확히 밝히지 않는 한, `문무대왕의 수수께끼`는 말끔히 풀기 어려울 것이라 한다.일본 왕가(王家)의 역사에는 `문무천황(文武天皇)`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등장한다. 서기 697년에 왕위에 올라, 서기 707년까지 10년간 집권, 78세에 생을 마감한 임금이다. 일본 최초의 법율집 대보율령(大寶律令)을 제정했고, 일본 최초로 대학(大學)을 두었고, 일본 최초로 도량(度量)을 만들어 백성에게 나누워 주었고, 험한 산길을 열어 백성을 도왔으며, 무쇠 광맥(鑛脈)을 열어 얻은 무쇠조각들을 서라벌에 보내 신라를 돕기도 했던 문무천황. 그가 바로 신라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천황이 된, 문무대왕 바로 그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글은, 필자가 일본에서 펴내고 있는 격월간 잡지 `마나호(`진실`이라는 뜻의 일본어)`에 만 15년간에 걸쳐 집필해 왔다. 기회가 있으면 우리말로 옮겨 보고자 한다. 대왕암을 내려다보는 해안 들판에 건축된 두개의 삼층 석탑은 국보 제112호. 지금은 모습을 볼 수 없는 감은사(感恩寺) 마당에 세워져 있다. 보는 이를 압도하듯 거침없는 힘을 느끼게 하는 이 탑은, 장중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선다. 경주 불국사의 석가탑과 함께 쌍벽을 이루고 있는 조형물이다. 석가탑이 세련된 정제함을 지니고 있는데 비겨, 감은사 삼층탑은 거침없는 남성적 힘을 느끼게 한다고나 할까. 바닷가 파도와 잘 어울리는 탑이다.대왕암 이웃 모래밭에 세워진 이견대(利見台)는 대왕암을 바라보는 언덕위에 지어진 정자다.▲ 이영희 교수문무대왕의 아들 신문왕(神文王)은, 대왕암이 잘 보이는 자리에 이 정자를 짓고, 죽어서 용이 된 문무대왕의 심부름꾼이 오기를 이곳에서 기다렸다고 전해진다. 신문왕이 세운 이견대는 없어졌으나, 1970년 발굴로 건물터를 확인, 신라의 건축양식으로 다시 지은 것이라 한다.끝/글·이영희(작가·전 포스코인재개발원 교수) 사진·이창훈(명스튜디오) 캘리그래피·제일커뮤니티

2015-07-02

아홉마리 용이 승천했다는, 고래 지나가는 바닷가

`구룡포`라는 지명에는 전설이 따른다.신라 진흥왕 때, 장기 현감이 여러 마을을 돌아보고 다니는 중 폭풍우를 만났다. 그 비바람을 뚫고 용(龍) 열마리가 승천(하늘에 오름)하는 것을 보았는데, 현감 눈앞에서 용 한 마리가 애석하게 떨어져 죽었다. 열 마리 중 아홉 마리 용만이 승천했다 하며, 그때부터 이 바닷가 이름을 `구룡포(九龍浦)라 불러왔다고 한다. 바닷가 마을 가운데, `용(龍)`자 이름을 지난 곳은 매우 드물다.장길리 무인도 `보릿돌`경치 아름답고 물고기 잘 잡혀부위 다양한 고래고기 맛 일품일본인 많이 살았던 동네`구룡포 근대역사관`으로 가꿔구룡포 바다에서는 물고기가 잘 잡힌다.특히 구룡포 장길리에 있는 무인도(無人島) `보릿돌`은 경치가 아름답고 물고기가 많이 잡히는 작은 섬으로, 낚시꾼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다. 높이 10m의 희망등대도 세워져 있어 관광객의 발길도 잦다. 구룡포 앞바다는 고래가 지나가는 길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따금 구룡포 바닷가 바위에는 고래가 부딪혀 죽어있는 것을 보게 된다. 구룡포 바닷가에 고래고기 식당이 더러 보이는 까닭이다. 고래고기는 맛있고, 그 부위(部位)도 매우 다양하여 특히 술꾼들의 인기를 모으고 있다. 고래고기 매운탕의 맛도 구수하다. 점심 시간에는 여성들의 발길도 잇따른다.30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모모식당`도 그 중 한 가게다. 밍크고래고기 전문점이다. 주인은 김언형씨. 구룡포 4리 956의 9번지, 본점의 전화번호는 054-276-2727. 부산점의 번호는 051-508-2146. 휴대폰으로도 연락된다. 016-508-2146, 010-9193-2727. 2와 7을 합치면 9가 된다. `구룡포`의 `구`를 상장히는 숫자이다. 아무튼 구룡포의 고래고기는 매력있는 영양음식이다.  구룡포 143번길에는, `구룡포 근대역사관(近代歷史館)`도 있다. 일정(日政) 때 일본인들이 살던 동네를 고스란히 보존하여 보여주고 있는, 희한한 주거지대다. 우리나라를 통틀어 이런 동네는, 아마도 이곳 한 군데 뿐일 것이다. 일본은, 1910년부터 1945년 8월 15일 이전까지 36년간 한국을 강압통치했다. 당시 우리나라 방방곡곡 일본인이 지배하지 않은 고장은 없었지만, 포항 구룡포에는 특히 많은 일본인이 살고 있었다. 당시 구룡포 바다에서는 정어리가 많이 잡혔다. 일본인이 특히 즐겨먹는 생선이기도 하지만, 당시 일본군부(軍部)에서는 이 정어리를 짜서 만든 기름을 대량 거둬 군용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석유나 휘발유 대신 쓴 것이다.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전쟁탓으로 해외에서부터의 석유 유입길이 막혔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다에서는 생선을 잡아서 짠 기름, 산에서는 소나무 가지에 맺히는 송탄(松炭)을 짜서 거둬모은 기름으로 대용(代用)하곤 했던 것이다. 구룡포에 일본인이 많이 살게 된데는, 이 바닷가에서 정어리가 많이 잡힌 탓인지도 모르겠고, 구룡포항이 일본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까닭인지도 모르겠다. 이 일본인 마을을 `구룡포 근대역사관`으로 가꾸어, 근대사의 진실을 오늘날의 한국인과 일본인에게 보여주고자 노력하고 있는 여성이 있다. 일찍 일본 오사카(大阪)의 한국영사관에 일하고 있던 여성 박주연씨다. 일제시대(日帝時代) 구룡포의 면모와 한·일관계사의 실상을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라 한다. 미혼(未婚)이고 미인(美人)인 박씨는, 구룡포 143번길 일대의 가옥을 사들여, 당시의 일본인의 생활모습을 통해 한·일관계사의 진상을 일본인들을 불러 알려주고자 노력하고 있다 한다.실제로 이 마을에 살고 있었던 일본인의 자손들과, `일본인 마을`에 관심을 갖게된 일본인들이 요즘도 이곳을 적지않이 찾아온다고 한다. 일본의 문화를 잘 알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젊은 세대들도, 서울 등 각자에서 자주 찾아온다.“젊은 세대에게 강점기 때의 일을 일러주는 일은 아주 긴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어떻게 강점기시대를 고통속에 살아왔는지, 또 일본사람들의 나쁜 점, 좋은 점에 대해서도 올바로 일러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영희 교수열등우월의식(劣等優越意識)은 한국인에게도 일본인에게도 있다. 이 콤플렉스를 동시에 넘어서는 노력이, 두 나라 국민에게 주어진 숙제가 아닐까. 구룡포의 근대역사관 길을 걸어가며 새삼 생각했다./글·이영희(작가·전 포스코인재개발원 교수) 사진·하홍걸(디지털 희망칼라) 캘리그래피·제일커뮤니티

2015-06-25

개통하자 북적였던 포항 KTX역도 메르스 찬바람

서울에서 동해 바닷가 포항시로 직행하는, 코레일 기차역이 오픈했다. 최초의 포항역장(驛長)은 부산 출신의 전(前) 조치원 역장. 24년째 코레일에 근무해왔다는 김기춘(金杞春)씨다.▲ KTX 포항역의 김기춘 역장내달 10일이면 개통 100일째역내에 지역 농특산물 판매장도인근 달전의 맛집 `금정 민물장어`집마당서 직접 담근 간장 발라참숯으로 갓 구운 맛 `일품`지난 4월 2일 개통한지 70여일이 됐는데, `개통 100일`째가 되는 오는 7월 10일에는 떡이라도 빚어 자축해야겠다고 하면서도, 중동증후군 메르스병 때문에 6월초부터 1천여명이나 여객수가 줄었다며 걱정한다. 예약은 승차일 한 달 전부터 받는다. 최대 30% 디스카운트한다는데, 2주전 예약분에 대해서는 10% 할인(割引)한다고.인기(人氣)시간대는 `밤 9시47분에 포항 도착`, `오후 5시에 서울 출발`하는 기차편이라고. 이 인기시간대에는 좌석이 거의 만석이 된다는 것이다. 특히 금·토·일요일 주말에는 표를 사기 어렵다고 한다.포항역 구내에는 `관광 안내소`가 있어, 포항시에서 파견돼 온 안내원이 포항해수욕장을 비롯한 지역 주요 관광지를 안내를 해 준다. 역내에는 `포항시 농특산물 판매장`도 있다. 질기지 않고 달콤한 오징어 한 봉지와, `홍삼 바이오 소금` 한 병을 샀다. 모두 `영일만 친구`라는 상표가 붙은 포항상품이었다. 포항역 구내에서, 특수한 포항상품을 살 수 있다는 것은 아주 즐거운 일이다. 21개 업체가 만든 상품이 가득히 전시판매되고 있다.KTX포항역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 6㎞의 달전. 흥해읍 도음로 734번지의 `금정(琴亭) 숯불 민물장어집`에서 점심을 들었다. `맛집`으로 소문난 식당이다. 토실토실하게 살이 오른 장어를 즉석에서 구워주는 식당이다. `식당`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별장(別莊)같은 정원 속의 집이다. 아름다운 홍장미가 울타리에 쏟아져 피는 양옥집에, 8개의 객실과 50명을 수용하는 홀이 있는 장어구이 가게. 한때 5월에서 8월까지, 포항바다의 해돋이 구경오는 손님맞이에, `넉 달 일하고 일 년 먹고산 식당`으로 소문난 가게인데, 요즘 경기는 내리막이라고…▲ 흥해읍 `금정 민물장어` 가게 안주인 김홍희 여사.15년째 식당일을 해왔다는 58세의 아름다운 안주인 김홍희씨가, 장어구이 식탁을 차려줬다. 소금구이·간장구이·고추장구이…참숯으로 구운 세 가지 장어구이(한 마리에 2만8천원 가량)가 가즈런히 탁자 한가운데 놓아지는 둘레에, 상추·깻잎·풋고추·생마늘·초생강·명이나물·락쿄·정그지묻침·콩나물·고추·무우지·장어뼈튀김 등…열 가지가 넘는 반찬이 놓아지고, 복분자술병까지 함께 나온다. 정녕 푸짐한 식탁이다. 40㎝ 이상 길이의 장어 한 마리에 3만3천원 가량. 적지않은 값이다.그러나, 참숯으로 갓구운 장어의 맛은 일품이다. 특히 식후에 나온 된장국수의 차가운 맛도 잊을 수 없다. 식탁에 오르는 갖은 채소는, 안주인 김여사가 손수 심어 키운 것이다. 1만3천여평의 둘레 마당과 산비탈에서 정갈하게 가꾼다고 한다.▲ 이영희 교수“시장에서 사온 채소는 하나도 없어요. 모두 우리 마당에서 키운 것들이죠.”장어와 함께 싱싱한 채소의 영양도 드리고 싶다는 안주인의 웃음이 식탁 둘레에 펼쳐진다.마당에서 가꾸어, 마당에서 말렸다는 무우말랭이차(茶)의 그 고소한 맛이, 오래도록 입안에 감돌았다. / 글·이영희(작가·전 포스코인재개발원 교수) 사진·하홍걸(디지털 희망칼라) 캘리그래피·제일커뮤니티

2015-06-18

초여름 낭만의 바닷가엔 붉은 해당화 웃음 머금고

포항의 화진(花津)에서 월포(月浦) 칠포(七浦)로 이르는 동해 바닷가는 아름다운 해안길이다. 특히 해당화(海棠花) 피는 화진 일대의 바닷길은 명품 해안이다.화진~월포~칠포 해안길명품 꽃길 등 즐거움 더해인근 보경사 등 고찰 많아오도 사방기념공원도 구경거리 5월에서 7월에 걸쳐, 초여름의 해안에 화려하게 피어나는 향기로운 꽃무더기 해당화, 정녕 사랑의 꽃이다. 이 아름다운 꽃 속을 가는 초여름의 바닷가 산책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더 이상의 즐거움이 아닐 수 없을 듯하다. 장미과에 속하는 이 진분홍색 꽃은, 8월이면 황적색 열매를 맺는다. 약으로 쓰이는 과실이다. 그래서 흔히 해당화 열매는 남아나지 않는다는 말을 듣는다.해당화 피는 바닷가 모래밭길에는 이따금 `꽃길 복원사업 장려` 간판도 눈에 띈다. □천혜의 자연자원 해당화 자생지 복원 식수포항시 청하면 기청산식물원 이삼우(李森友) 원장 등이 펼치고 있는 `해당화 식수(植樹) 사업`의 일환이다. 아름다운 해당화 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동해 꽃길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해당화는 옛부터 포항바닷가의 `명품꽃`으로 이름이 높았다.화진 바닷가에는, 금계국꽃도 자생(自生)한다.오렌지색 꽃이 모래밭가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동해안 해수욕장화진(花津)에 이어지는 바다 월포(月浦)는 정결한 해수욕장이다.포스코의 깔끔한 수련관도 있어, 여름 한철 알뜰히 휴양처 구실을 하고 있다.월포에 이어지는 바다 칠포(七浦)는 흥성한 해수욕장이다. 여름 밤이면 재즈음악회도 열린다. 화진·월포·칠포로 이어지는 이들 동해 해수욕장 근교에는 보경사 등 옛 절도 있어 좋은 볼거리를 제공해 주고 있다.흥해읍에 있는 천곡사(泉谷寺)도 그 중의 한 사찰이다. 신라 선덕여왕이 이 절의 샘물로 피부병을 고쳤다는 역사가 전해지고 있는 옛 절이다.이 근교 오도(烏島) 해수욕장 가까운 바닷가에 지어진 사방(砂防) 기념 공원도 최근 구경거리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바닷가 산이 모래산이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산 둘레에 나무를 심어 공원화(公園化)한 지대를 가리킨다. 산에 나무를 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본뜬 희귀한 공원이다. □동해안의 맛이 사방 기념공원이 바라보이는 바닷가에 음식점 한집이 있었다. `커피·스테이크·파스타`라고 영문(英文) 표기한 하얀 빌딩 가게이다. 가게 이름은 `피렌체`.피렌체(프로렌스의 이태리말 명칭)란, 르네상스의 발상지를 가리키는 명칭이다.▲ 이영희 교수이 바닷가 요리집에서 주문한 요리는 메뉴는 해물 스파게티, 돈(豚)카스, 해물라이스 각 1만원씩 세접시.1997년에 개업, 현재까지 영업해 왔다고 한다.`피렌체`의 주소는, 포항시 북구 흥해읍 해안로 700 죽전리(전화번호 252-5255). 가게로 꼭 들려달라는 간절한 하소연 번호인가./글·이영희(작가·전 포스코인재개발원 교수) 사진·하홍걸(디지털 희망칼라) 캘리그래피·제일커뮤니티

2015-06-11

영덕 강구 바다엔 명물 대게, 오십천 맑은 강엔 은어가

대나무 마디처럼 이어져 대게(竹蟹)고소한 맛 게장볶음밥은 별미몸에 흰 테 두른 물고기 은어향기 뛰어나 임금에 진상약수터·풍력단지도 관광거리영덕지방의 특산물은 뭐니뭐니해도 `영덕 대게`다. 껍질이 얇고 살이 많으며 맛이 달고 구미를 돋우는 명물로 이름이 높다.그런데, `대게`라는 그 이름은 `큰게(大蟹)`라는 뜻이 아니고, 대나무 마디와 같이 이어졌다고 하여 `대게(竹蟹)`라 불린 데서 연유한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 펴낸 `대한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 밝히고 있는 사실이다.이 대게의 서석처는 영덕군 대진(大津) 앞바다에서 포항시 구룡포(九龍浦)와 경주시 감포(甘浦) 바다에 걸쳐져 있다. 그러나 아무 때나 게를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법률상의 어획기간은 12월에서 다음해 5월 31일까지이다.이 기간에 잡힌 것이 살이 깊고 맛도 좋다고 한다. 6월에서 11월까지는 금획기간이다. 또한 몸 너비 12㎝ 이하의 어린대게와 암컷대게(일명 빵게)는 연중 잡을 수 없게 금지하고 있어, 이를 어길 경우 `수산물 어획법`에 의하여 처벌을 받게 된다고.1930년대에는 무진장이라할 만큼 많이 잡혔는데, 1960년대에 들어서는 어획량이 점차 줄기 시작, 현재는 어획량이 극히 줄어들어, 명물 대게가 자취를 감출까 우려되고 있다 한다. 영덕대게 거리`영덕 대게 거리`에 들렸다. 수 많은 대게 가게가 줄이어 있다. 그 가게 수족관마다 갇혀 있는 산 대게의 수효는 얼마나 될까. 대게 거리만이 아니다. 강구 풍물거리 지하층에도 대게가게는 줄이어 있다.그 중의 한 가게 `미리횟집`에 들렀다. 73세의 할머니가 혼자 꾸려가고 있는 대게 가게. 강구 2동 바닷가 낚시터에 집을 지어 19년째 영업해왔다고 한다.“대게는 11월부터 나오는데 2월이나 3월에 나오는 게가 그중 맛있어요. 5월말 이후에 나오는 게는 수입산으로 봐야 할 겁니다.”임이출 할머니의 말이다.날카로운 칼로 싹뚝싹뚝 게다리를 잘라 쟁반에 가득히 담은 다음, 게장볶음밥을 비벼 1인분씩 공기에 담아낸다. 게장볶음밤이란, 방금 지은 하얀 밥에다 게장, 김가루, 참기름을 부어 섞어 담아주는 밥이다. 게와 김과 참기름이 어울려, 고소한 향기가 넘치는 별미밥이다.4만원짜리 게 3마리에 서비스로 따라나오는 홍게 한마리와 게장볶음밥으로 네사람이 저녁상을 마주하는데, 강구 바닷가에는 초저녁 무지개가 걸려 있었다. 오십천 은어와 약수터 영덕군 강구 바다에는 대게가 있고, 오십천(五十川) 맑은 강에는 은어(銀魚)가 있다. 몸에 흰 테를 두른 이 물고기는 향기가 좋아, 일찍이 임금에게 일등 진상품으로 바쳤다해서 이름이 높다.군내에는 손꼽히는 약수(藥水)도 많다. 창수면의 가산(佳山) 약수, 강구면의 화전(花田) 약수, 남정면의 남정약수, 묘곡약수, 영해면의 초숫골약수, 축산면의 대곡약수, 지품면의 삼화약수, 달산면의 서점약수 등 약수터가 많아, 여름철을 전후하여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그래서인지 과수원도 많다. 복숭아, 사과, 배 등 과실들도 풍성하게 열매를 맺는다.▲ 이영희 교수4월이 오면 `복사꽃잔치`도 화려하게 열린다. 그리고 영덕군에는 풍력(風力) 단지가 있어, 적잖은 전력(電力)을 발전하고 있다. 발전기 수는 24기.이 풍력발전기에서 생산되는 전력을 한국전력공사에 일괄 공급하고 있다고 한다. 연간 전력 생산량은 2만가구 이용량이다. 주목할만한 시도가 아닐 수 없다./글·이영희(작가·전 포스코인재개발원 교수) 사진·하홍걸(디지털 희망칼라) 캘리그래피·제일커뮤니티

2015-06-04

백두대간 수려한 자연 곳곳마다 사찰·불상 문화재

청량사 유리보전·취서사 등 유명특산 송이요리 화려한 밥상 `눈길`천연기념물 열목어 보기 힘들어져오지 누비는 백두대간 협곡열차겨울 분천에선 산타할아버지 축제 아름다운 봉화의 산과 물봉화(奉化)의 산수(山水)는 아름답다.1982년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명소(名所)와 명산(名山)의 고장이다.봉화국립백두대간수목원, 청옥산자연휴양림, 봉화 목재문화체험장, 산수유마을을 비롯하여 태백산, 문수산, 옥석산, 선달산 등 산세(山勢)도 여간 수려하지 않다. 신라의 명승(名僧) 원효스님이 663년 창건한 청량사(淸凉寺) 유리보전(琉璃寶殿) 즉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7호를 비롯하여, 666년 의상(義湘) 스님이 창건한 축서사(鷲棲寺), 676년 원효스님이 세운 각화사도 있고,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보아지는 삼층석탑도 있다. 불상도 많다. 봉화북지리마애불좌상(국보 제201호) 외에, 입상(立像)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가 2점이나 된다. 이밖에 석탑도 수두룩하다. 하나의 군(郡) 내에 참으로 놀라운 수효의 보물수가 아닐 수 없다. 산수가 아름다운 곳에는 이같이 사찰도 많이 지어졌던 모양이다. 사찰만이 아니라 생물도 많이 자랐다.가장 두드러진 것이 열목어(熱目魚)라는 물고기였다. 천연기념물 제74호로 손꼽힌 이 물고기는 20℃ 이하의 강물에만 사는 희귀종 어물(魚物)이어서, 주로 봉화 백천(栢川) 계곡에만 서식했는데, 요즘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고 한다.관광객이 더러 열목어를 낚아가곤 했다고들 한다. 열목어는 천연기념물 제74호로 잡을 수 없는 물고기로 지정되어 있는데, 사실이라면 안타까운 이야기다. 은어 잡이와 송이 캐기은어 잡이는 해마다 7월의 마지막 토요일에서 8월 첫 토요일까지 8일간 봉화읍의 내성천 일원에서 열린다. `은어 맨손잡이(`반두잡이`라고도 한다)`, `은어 야간 잡이`, `은어 숯불구이` 행사는 먹거리장터를 개최하는 가운데 밤낮을 통틀어 연다고 한다.먹거리 장터에서는 봉화의 농·특산물을 대대적으로 전시 판매한다고 한다.송이축제도 해마다 9월말의 4일간, 봉화읍 내성천 축제장과 송이산 일원에서 개최한다. 송이 축제장에서는 송이 경매도 열린다. 송이 채취 체험도 하게 한다. 봉화 특산 송이 요리를 찾아봉화 특산 송이 요리의 맛을 찾아 인하원을 찾았다. 봉화군청의 관리가 일러준 송이 요리 전문점이다. 토실토실한 뺨에 웃음을 머금고, 안주인이 손수했다는 요리법을 설명해 준다. 밥상 한가운데 놓인 송이 구이는, 얇게 썰어 소금·술에 아주 잠시 담궜다 불에 쬔 송이 구이. 뚝배기에 담은 송이탕은 송이 향기 가득한 영양탕이었다. 둘레의 열다섯가지 작은 접시에 담긴 것은, 산나물 채소 김치 등 갖가지 반찬, 화려한 밥상이었다. 송이를 이렇게 단번에 먹기도 어려운 일이다. 백두대간 순환·협곡 열차를 타자면아름다운 봉화의 산 속을 달리는 `백두대간 협곡열차`는 분천·양원·승부·철암을 왕복 3시간, 하루 세 번 달린다.편도 27.7㎞. 운행 운임은 분천역에서 철암역 간 편도 8천400원, 왕복 1만6천400원.12월 20일부터 2월 20일까지 분천에서 열리는 산타할아버지 축제는 하루 평균 1천명이 몰린다고 한다. 한달 동안에 12만 명의 관광객이 모이기도 한다고.분천역 앞에서는 산나물 비빔밥, 곤드레밥, 국밥 등을 파는 식당이 있다.    /글·이영희(작가·전 포스코인재개발원 교수) 사진·하홍걸(디지털 희망칼라) 캘리그래피·제일커뮤니티

2015-05-28

숙종 임금과 정철·정선·김시습도 반한 수려한 산천

경북상북 울진군(蔚珍郡) 군청에 들리자, 크고 작은 각종 안내 책자를 한보따리 안겨 주었다. 컬러사진과 함께 소상한 역사·지리를 꼼꼼히 정리 소개한 안내서였다. 우선 반갑고 고마웠다.관동별곡, 망양정으로 대미 장식국보 242호 지정 봉평 신라비포항 중성리비보다 21년 늦게 제작월송정과 덕구·백암온천도 유명관동팔경 유람에 나선 송강 정철이 `관동별곡`의 대미를 장식한 곳이 울진의 망양정이요, 겸재 정선이 `망양정도`를 그린 곳도 산천이 수려한 울진이다. 숙종은 관동팔경 중 울진의 망양정이 으뜸이라며 친필 편액 `관동제일루`를 하사했다. 울진의 산천이 그만큼 수려했기 때문이다. 이곡, 김시습 등 걸출한 선비들이 불원천리 울진에 발걸음을 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같은 말머리로 시작하는 안내 책자 `나는 울진으로 간다`(지은이 박강섭)는 4·6배판 261페이지에 이르는 큰 서적이다. 울진군 울진문화원이 펴낸 책자의 존재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손바닥 크기의 소책자 `울진에 빠지다`(울진군 문화관광과 제작·114페이지)도 쓸모있게 편집되어 있어 눈길을 끌었다. 울진군 문화관광과 멤버의 우수성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스토리가 있는 울진 해안길을 가다`와 일본어·중국어의 2개 나라말로 엮은 안내책자 `자연이 살아 숨 쉬는 울진`(4·6배판 58페이지 컬러판)의 친절한 솜씨에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 지역에서도 이같은 `고장 안내서`의 존재는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서기 524년에 세워진 울진 봉평 신라비전문지식이 요구되는 `울진 봉평 신라비(新羅碑) 전시관` 안내서도 간편하고 소상하여 읽기 편했다.국보 제242호인 이 신라비를 위해 드넓은 전시관이 세워진 것은 2011년, 신라비 가 제작된 것은 524년이다. 포항시 북구 신광면에도 신라비가 존재한다. 503년에 제작된 신라비다. 그러나 포항시의 신라비는 지금껏 전시관을 갖추지 못한 채 신광면 사무소 마당 한구석의 작은 정자에 갇혀 있다. 역시 포항시 흥해면에서 출토된 국보, 중성리 신라비는 현재 경주의 연구원에 갇혀 있는 신세다.울진 신라비와 포항 신라비의 차별 대우 차이를 어떻게 보아야할지 답답할 따름이다.◆울진 봉평 신라비 전시관의 개관 및 관람시간 : 3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 10시부터 18시까지(입장 마감 16시), 11월 1일부터 2월 말까지 - 10시부터 17시까지(입장마감 16시).◆휴관일은 매주 월요일(공휴일일 경우 그 다음날), 1월 1일, 설 및 추석 연휴. 제1전시실의 전시품 - 울진 봉평리 신라비의 실물과 탑본을 전시하고 있다. 신라비의 발견 경위, 국보 지정 과정, 울진 신라비의 현황과 원문 및 해석, 비에 나오는 인물, 신라비의 가치, 신라 고구려 백제의 비에 나오는 신라 법흥왕의 업적, 법흥왕 당시의 영역, 울진의 자연환경과 인문지리, 울진의 자랑스런 문화 유산, 울진의 역사 등을 소개하고 있다.제2전시실에서는, 신라·고구려·백제 등 삼국의 주요한 비 10기(신라 6기, 고구려 1기, 백제 3기)를 실물 모형으로 제작하여 전시하고 있다. 한국 일본 중국의 석비 및 석비의 원류 등을 소개하고 있다. 제3전시실에서는, 선사시대 그림에서 문자로의 발달과정을 소개하고, 한글의 미래 등을 소개한다. 야외 비석공원에서는 광개토왕릉비를 비롯한 우리나라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국보·보물급 33기의 석비를 실물모형으로 제작하여 우리나라 지도 모양으로 지은 전시공원 내 비의 발굴 위치에 맞게 전시해 놓았다. 월송정은 써늘한 휴양다락`숲의 소나무를 기둥으로 이용하고 대나무로 바닥과 난간을 만들어 10여명이 앉을만한 크기로 다락을 완성했다.그리고 이웃 노인들을 초청해 보리로 빚은 술을 마시며 낙성식도 가졌다. 언제나 솔바람이 서늘하게 불고 그 시원한 기운이 뼈 속에 스며들어 아무리 드센 더위도 기승을 부리지 못했다` 아계 이산해는 평해 귀양살이 중 여름이 오면 무더운 복더위를 견딜 수 없어 이웃집에 사는 이와 상의하여 소나무 숲에 높은 다락을 매달고 피서생활을 누렸다. 이산해가 만든 다락이 울진군 평해읍 월송정(越松亭) 자리에 위치했다 한다. 현재 1만 그루의 소나무가 거대한 숲을 이루고 있다. ▲ 이영희 교수울진에는 덕구온천과 백암온천도 있다. 백암온천으로 가는 길목에는 장미빛 백일홍이 흐드러지게 핀다./글·이영희(작가·전 포스코인재개발원 교수) 사진·이창훈(명 스튜디오) 캘리그래피·제일커뮤니티

2015-05-21

조선후기때 존재 알려진 환선굴, 아직 길이 가늠 못해

환상적 동굴 환선굴과 대금굴삼척시(三陟市) 신기면 대이리 산117. 해발 500m와 415m 지점에, 거대한 동굴이 둘씩이나 있다.환선굴(幻仙窟)과 대금굴(大窟)이다. 대금굴이 발견된 것은 2003년 2월이지만, 환선굴의 존재가 알려진 것은 1600년대의 조선조 후기의 문신(文臣)이요 학자인 허목(許穆) 선생이, 그의 저서 `척주지(陟州誌)`에 밝힘으로써 알려지게 되었다. 한자 이름 그대로 아주 아름답고 신비로운 동굴이다.동굴 내부 수많은 바위·강물 조화환선장님딱정벌레 등 4종 `고유종`환선굴 이웃 대금굴 2003년 발견국내서 유일하게 모노레일 이용환선굴의 길이는 약 3㎞. 총 연장이 8㎞ 이상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아직까지 그 길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고 한다. 동굴 내부는 수많은 바위와 강물로 이루어져 있고, 동굴진주 동굴산호 등이 흘러내리는 동굴물과 조화를 이루며 화려한 장관을 보여 주고 있다.지금까지 환선굴에서 발견된 동굴동물은 모두 47종. 이 중 환선장님딱정벌레 등 4종이 오직 환선굴에서만 발견되고 있다 한다.관박쥐 외에, 장님굴새우, 장님굴가시톡토기, 긴다리장님좀딱정벌레 등 장님 동물이 많은 것은 깜깜한 동굴 속에 사는 탓인가.환선굴을 돌아오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2시간 가량이다. 동굴까지 왕복 1시간, 동굴 내부를 관람하는 데 약 1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꼭 알아 둬야할 일이 있다. 계절 따라 관람시간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동절기 즉 겨울철인 11월에서 2월 사이의 관람시간은 오전 8시30분부터 16시(오후 4시)까지요, 하절기 즉 여름철인 3월과 10월 사이의 관람시간은 오전 8시부터 17시(오후 5시)까지이다.관람료는 어른 4천원, 청소년·군인2천800원, 어린이 2천원, 단체(30명 이상) 오른 3천500원, 청소년·군인 2천500원, 어린이 1천700원. 주차료 대형차 2천원 소형차 1천원, 경차 500원이다.평지에서 환선굴까지 관람객을 실어나르는 모노레일은, 성인 왕복 7천원, 어린이 왕복 3천원.깜깜한 동굴 안에는 전등이 켜져있어 신비한 동화의 나라에 온 기분이다. 곳곳에 무쇠 다리와 난간이 깔려 있다. 미끌어지지 않는 구두나 운동화를 신고 다녀야 할 것 같다.환선굴은 `천연기념물 제178호`로 지정되어 있다. 보배로운 존재인 것이다.대금굴에는 모노레일을 타고 굴안까지 갈 수 있다환선굴 이웃에 있는 대금굴은 2003년 2월에 발견된 굴이다.항상 많은 물이 솟아나 있어 `물골`이라 불리고 있던 지역을 탐색한 끝에 발견될 굴이다. 동굴 안에 흐르는 물의 양이 풍부하여, 대규모 폭포와 종유석, 석순, 석주 등 동굴 생성물이 잘 발달되어 있고, 현재까지도 자라고 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모노레일을 이용하여 동굴 내부 140m 지점까지 들어가 관람할 수 있는, 아름답고 섬세한 동굴이다. 환선굴과 비슷한 시기에 형성된 석회암 동굴로 보아지고 있다.이 동굴 안에서 자라고 있는 서식생물은 15가지. 굴안 기온은 8℃ 내지 14℃. 습도는 95% 이상. 수온은 10℃에서 12.2℃. 대금굴안 모노레일 운행(610m, 41인승)은 동절기(11월~2월) 오전 9시~오후 4시(30분 간격 1일 15회), 하절기(3월~10월) 오전 8시30분~오후 5시(30분간격 1일 18회).관람료는 어른 1만2천원, 청소년·군인 8천500원, 어린이 6천원, 단체(30명~40명) 어른 1만원, 청소년·군인 7천500원, 어린이 5천원.대금굴의 경우는 인터넷으로 사전에 예매해야만 관람이 가능하다고 한다.매달 1일 오전 10시30분부터 다음달분 예매를 할 수 있고, 관람일 하루 전까지 예매가 가능하다고 한다.문의는 삼척시 대이동 굴관리소 033)541-7600·9266으로 하면 된다. 삼척이 자랑하는 `맛`은 꿀이다`강원도지사 품질인증 제17-33호`라는 `삼척꿀벌농장 꿀`. 생산자는 김학도·장은경씨다.청자도자기들이 야생화꿀은 한단지에 6만9천원. 유리병들이 아카시아꿀 값은 5만원이다. 둘다 꿀의 향기로움이 입안에 번진다.알이 굵은 포도도 삼척이 자랑하는 `맛`이다. 5월부터 한철이다. 삼척의 포도원 봉지 속에서 출하를 기다리고 있다.▲ 이영희 교수끝으로 삼척시(033-570-3354)가 추천하는 10군데 `착한 가격 우리동네가게`맛집을 소개해 둔다. △남양 한우실비식당(갈비살) 033-574-3399△남천주물럭(갈비찌개) 033-574-5070△다래정(된장찌개) 033-575-8057△보리끌돈이(보리밥) 033-572-1615△송죽오리(김치찌개) 033-572-9277△숯불마당갈비(돼지갈비) 033-573-8431△우리한우식육식당(등심) 033-575-5959△중앙식당(보리밥) 033-572-9337△태성갈비(삽겹살) 033-574-6646△홍도식당(김치찌개) 033-574-3593글·이영희(작가·전 포스코인재개발원 교수) 사진·하홍걸(디지털 희망칼라) 캘리그래피·제일커뮤니티

2015-05-14

수로부인 설화·장미공원·남근 조각… 사랑 품은 삼척

수로부인 헌화공원강원도 삼척시(三陟市)에는 특수한 삼대(三大) 공원이 있다. 수로부인(水路夫人) 헌화공원과 장미공원, 그리고 해신당(海神堂) 공원이다. 모두 역사와 얽히는 특수한 공원이다.우리나라 역사책 `삼국유사` 수로부인 대목에 등장하는 신라 최고의 미인이, 당시 강릉 태수(太守)의 아내 수로였다. 당시의 수도 경주(즉 서라벌)에서 강릉까지 머나먼 길을 아내를 동반하여 애써 간 것은, 아내 즉 수로부인이 제사장(祭祀長)직을 맡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제철(製鐵)작업을 하기 전에 올릴 화입(火入) 제사의 제사장(祭祀長)은 반드시 여성이 맡고 있었다. 수로부인은 뛰어난 미인이었다. 따라서 험한 바닷가 길을 가면서 수로부인은 여러차례 유괴를 당했다. 바다를 가던 큰 배의 선장이나, 산중의 제철 우두머리에게 납치되어간 적도 여러차례 있었다. 그때마다 나타나 수로부인을 구해 준 노인 하나가 있었다. 그가 산꼭대기의 꽃을 꺾어 수로부인에게 바친 노인이다. 진달래꽃과 함께 그 노인이 수로부인에게 바친 노래 `노인 헌화가`는 신라 향가(鄕歌) 중의 하나로 유명하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수로부인은 동해 바다의 용에게 납치돼 갔었다고 한다. 용궁에서 며칠 지내다 돌아온 수로부인에 의하면, 그곳은 아주 향기롭고 음식도 매우 맛있었다고 한다. 수로부인을 납치해갔다가 풀어준 `용`은 당시 만주와 연해주(沿海州) 일대에 나라를 세우고 번성했던 발해국의 고위 관료였었던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당시 발해는 왜(倭)와 빈번히 교역(交易)하고 있었다. 삼척시 원덕읍 임원리 산 323-1번지 일대 바닷가에 세워진 헌화공원 수로부인상은 세계 최초로 천연오색 대리석으로 제작된 조형물이라 한다. 광화문 광장 세종대왕 동상의 1.5배 크기. 삼척시가 긍지를 가지고 제작한 기념물이다. 세계 최대의 장미공원삼척시 오십천(五十川) 둔치에 세계 최대의 장미공원이 있다.약 8만5천㎡ 규모의 땅에 220종, 16만주(株), 약 1천만송이의 장미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향기로운 공원이다. 맨발공원, 자전거길, 인라인스케이트장, 바닥분수 등의 시설도 마련되어 있어, 5월 10일부터 11월 20일까지 낭만적인 사랑의 공간을 제공해 주고 있다.참고 삼아, 장미의 색깔별 `꽃말`을 소개한다.빨간 장미- 사랑·열정하얀 장미- 존경·순결분홍 장미- 사랑의 맹세·행복한 사랑노란 장미- 질투·완벽한 성취주황 장미- 수줍음·첫사랑의 고백보라 장미- 영원한 사랑이들 각종 장미 재배의 역사는 멀리 고대 이집트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등 여러 지역에서 여러 종류의 장미가 재배되었다는 사실을, 벽화나 각종 기록에서 알 수 있다. 장미가 본격적으로 사랑받기 시작한 것은 로마시대 상류계층의 장식용으로 쓰이기 시작했을 때부터이다. 사계절 피는 유럽 장미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세기 초 나폴레옹이 패권을 쥔 후의 일이다. 특히 대륜장미가 등장한 것은 나폴레옹이 패권을 잡은 후의 일이다. 이 혁명적인 개량종은 유럽 원산의 장미에 동양과 중동의 장미를 교접시킨 것으로, 현대의 수많은 화려한 장미의 시초가 되었다 한다.삼척장미 공원은 공원 전체가 금연구역이다. 공원 내에 오토바이 자동차는 출입할 수 없으며, 데리고 온 애완동물은 반드시 목줄, 입마개를 해야 한다. 남근(男根) 조각 모은 해신당(海神堂)공원삼척은 동해안에서 유일하게 남근(男根) 숭배 민속이 전해져 온 고장이다. 이 고장 신남마을에 해신당(海神堂)과 어촌(漁村)민속 전시관, 성(性)민속공원이 세워져 있다.남근 모양의 나무조각(彫刻)을 숱하게 모아 바닷가 산언덕위에다 전시하고 있는 이색적인 공원이다. 더러는 여성 성기와 남성 성기가 어울어져 있는 형상도 보인다.언덕 기슭 모퉁이에 입장권 파는 오막집이 있다. 어른 3천원, 노인 1천500원. 평일인데도 적지않은 남녀 관람객이 표를 사고 언덕에 오르고 있다.작품은 매우 구체적이다. 목질(木質)이 단단하고 적갈색인 것으로 미루어 적송(赤松)으로 조각한 듯하다.옛날, 신남 마을에 결혼을 약속한 처녀 애랑과 총각 덕배가 살고 있었는데, 처녀가 홀로 애바위에서 해초를 따고 있었는데 풍랑으로 목숨을 잃었다. 그후 이 마을 바다에서는 고기가 잡히지 않았다. 마을사람들은 죽은 처녀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실물 모양의 남근을 만들어 제사를 지냈더니 그 후 고기가 많이 잡히게 됐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지금도 이 마을에서는 해마다 정월 대보름날과 10월 5일에 남근을 깎아 매달아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바닷가의 신당 해신당(海神堂)에는 처녀 애랑의 신상(神像)이 호젓이 걸려 있다. 바닷가 솔밭은 레일 바이크 길삼척 바닷가, 소나무 거목이 우거진 철길은 레일 바이크 오솔길이다. 남녀 한쌍의 아베크족들이 바이크를 열심히 굴리며 철길을 달린다.일찍이 삼척시 궁천에서 용화로 오가던 삼척탄광의 연탄 채굴길을 레일 바이크 길로 고쳐지어 놓은 것이다.철길을 따라 눈부신 감청색 바다가 흰물살과 함께 굽이쳐 이어져 있었다. 삼척 부두의 곰치국 별미▲ 이영희 교수어선으로 붐비는 삼척 부두는 `곰치 부두`다. 이곳의 별미인 곰치국은 `곰치`라는 삼척 앞바다산 생선을 묵은 김치를 넣어 끊여 먹는 매운탕이다.담백하고 개운한 해장국의 일종이다. 부드러운 곰치 살맛이 묵은지와 어울려 산뜻하고 고소하다. 도루묵과 도라지의 고추장 비빔이 곁들여져 나왔다./글·이영희(작가·전 포스코인재개발원 교수) 사진·이창훈(명스튜디오) 캘리그래피·제일커뮤니티

2015-05-07

남매작가 허난설헌·허균, 솔향 강릉에 `문향` 피우다

강릉시 난설헌로 193번길 1-29.백년 묵은 솔밭속에서, 늠름한 사나이 `홍길동`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조선조 당대의 여류시인 허난설헌(許雪軒)의 아름다운 그림도 마주보게 된다. `솔향 강릉`에는 소나무도 많지만 문화재도 많다. 문화재를 창출한 작가가 많은 것이다.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소설 `홍길동전(洪吉童傳)`을 집필한 저자 허균(許筠·1569~1618)과 여류시인 허난설헌(許雪軒·1563~1589)은 조선조의 출중한 남매 작가였다.특히 `홍길동전`은 그 간 책자, 영화, 연극, 창극, 만화 등에 두루 실려 베스트셀러가 되어온 명작이다. 줄거리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파란만장, 활극적(活劇的)이다. `홍길동전`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글로 쓰여진 조선조 때의 작품이다. 주인공 홍길동은 조선조 세종 때 서울에 사는 홍판서가 용꿈을 꾸고 낳은 아들이라는 데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홍판서는 용꿈을 꾸고나서 본부인을 가까이하려 했으나 부인이 응하지 않았으므로, 시비 춘섬과 관계하여 낳은 서자(庶子)가 홍길동이다. 서자 길동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한을 품는다.가족은 홍길동의 뛰어난 재주가 장래에 화근이 될까 두려워하며 자객을 시켜 길동을 없애려고 한다. 그러나 길동은 위기에서 벗어나 집을 나서 방랑의 길을 떠난다. 그러다가 도둑의 소굴에 들어가 힘을 겨루어 두목이 된다. 먼저 해인사의 보물을 탈취했고, 활빈당(活貧黨)의 도목이라 자칭, 지방 수령들이 도둑질하며 모은 재물과 곡식을 빼앗아 가난한 백성에게 나누어 주고, `돈과 곡식을 빼앗아온 자는 활빈당 당수 홍길동이다`는 방을 붙인다. 조정이 길동을 잡으려 팔방으로 힘썼으나 둔갑술을 부리는 길동의 초인적인 힘을 당할 수 없다. 그러자 조정에서는 길동의 아버지 홍판서를 시켜 길동을 병조판서로 임명한다. 그 뒤 길동은 고국을 떠나 산수(山水)가 아름다운 `율도국`이라는 나라를 발견, 그곳에 잡혀있던 미인과 만나 행복하게 살게 된다는 이야기. 이상향(理想鄕)을 그린, 낙원(園)사상의 소설이다. 이 소설이 겨눈 강한 현실비판을 외면하고, 그후 단순한 사랑의 문학으로 퇴화시킨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라 여기는 평론가들이 많다. 허균은 12세 때 아버지를 잃었으나, 임진왜란 당시의 정승이요 대학자인 유성룡(柳成龍)에게 학문을 배웠고, 시(詩)는 삼당시인(三唐詩人)의 한명인 이달(李達)에게 배웠다 한다.허균과 동복(同腹) 남매인 허난설헌(許雪軒)은 조선 중기의 여류시인이다. 허균은 이 손위 누이의 시(詩)를 `깨끗하고 장하며, 높고 고와서 그 이름이 중국에까지 전파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아버지 허엽(許曄·1517~1580)에 대하여, 아들 허균은 `문장과 학문과 반뜻한 언행은 사람들에게 크게 존경받았다`고 평가했다. 강릉시 난설헌로에 있는 `허균·허난설헌 기념공원`안에는 이들 허씨 부자녀(父子女)의 시비석(詩碑石) 5기(基)가 세워져 있고, 이들 부자녀가 살았었다는 한옥 가옥이 에둘러 건축되어 있다.기관차 속에 채워진 `시간 박물관`강릉에는 또 하나의 색다른 박물관이 있어 관광객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정동진 시간 박물관`이다.정동진 바닷가 기차 선로에 나란히 서있는 이 `시간 박물관`에는 세계의 갖가지 시계와 `시간`에 대한 과학적 설명을 곁들인 공간이 펼쳐져 있다. 기관차 열차 안에 시간 박물관이 전개되어 있는 것이다.옛 증기기관차를 비롯하여 뮤지엄 숍, `시간`에 대한 얘기를 소개하는 공간, `시간과 과학`에 대한 코너 공간, `시간과 예술`에 대한 코너, `시간과 추억`에 대한 코너, `시간과 열정`에 대한 코너, `함께 한 시간, 함께할 시간` 그리고 동해 바다를 바라보는 전망대 공간 등 9개 공간으로 나뉘어 색다른 시계와 시간에 대한 설명들이 줄지어 소개되고 있다. 시간과 시계의 역사와, 세계사 속의 갖은 시계들을 실물로 직접 볼 수 있는 희한한 공간이다. 유명한 타이타닉호 침몰 순간에 멈춘 회중시계 등 희한한 실물들을 특별 전시하고 있어 관람객의 관심도 모으고 있다. 기관차 열차를 깡그리 시계와 시간 전시장으로 만들어 색다른 박물관을 형성해 주고 있는 것이다. 증기기관차 1대와 8대의 열차로 형성된 희한한 박물관이다.세계 각국에서 사모아진 여러 시대의 희귀 시계도 놀라울만큼 숱하게 전시되고 있다. 예술의 경지를 넘어선 놀라운 작품시계도 적지 않다. 어떻게 이처럼 아름다운 시계, 값진 시계를 거둬 한자리에 모았을까 절로 감탄의 소리가 새어나온다. 증기기관차부터 마지막 기차까지의 길이는 180m. 놀라운 `시간`의 길이가 아닐 수 없다. 열차 앞 모래밭에는 대형 모래시계가 구성 전시되고 있다. 1년에 한번 돌아가 시간을 가리키는 시계이다. 이 시간 박물관 안에는, 시간과 시계의 역사에 밝은 박선경 총괄실장이 대기하고 있어서 관객의 질문에 소상히 응해주고 있다. 이 박물관 관장은 최승운 사장이다. 참 희한한 분인 것 같다.관람시간은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연중무효. 주소는 강릉시 강동면 헌화로 990-1, 정동진 모래시계 공원내. 033-645-4540. 정동진 시간 박물관.새로 생긴 김동명 문학관강릉시에는 최근 또 하나의 문학관이 생겼다.(강릉시 사천면 샛돌길 30-2, 033-640-4270)`초허 김동명(金東明) 문학관`이다.`내 마음` `수선화` `파초` 등의 시로 유명한 김동명 시인은 강릉 출신으로 1900년 2월 4일생. 8세 때까지 산 초가 가옥 생가를, 고증을 거쳐 재건립하여 문학인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어낸 것이다.도서실, 독서실, 집필실 등 문필인을 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세미나실도 있다. 입구에는 김동명 시인의 시를 작곡한 명가곡 `내 마음은 호수요….` 등 LP판도 비치되어 있다.김동명 시인은 한국신학대학, 이화여자대학 교수를 거쳐 참의원에 당선, 정치활동도 했다. `파초` `3·8선` `진주만` 등 시집 6권, `모래 위에 쓴 낙서` 등 수필집 2권, `나는 증언한다` 등 정치평론집 3권, `암흑의 장` 등 수기집 2권을 펴냈다.강릉 먹거리 `갯방풍 기정떡`과 생막걸리강릉에서 손꼽히는 먹거리로 `갯방풍 기정떡`과 `갯방풍 생막걸리`를 들 수 있다.강릉 바닷가 모래사구(砂邱)에 자생하는 갯방풍(방풍초) 잎 분말을 멥쌀가루에 섞어, 여기에 막걸리를 넣어 반죽하고 발효시켜 만든 떡이 기정떡이다. 표준어로 `기주떡`이라 한다. 갯방풍은 동해안 모래 언덕에 자생하는 식물이다. 성질이 따뜻하고 달면서 매우며, 수명을 길게 해주는 풀이라 하며 장명초(長命草)라고도 불린다.▲ 이영희 교수갯방풍 기정떡은 달콤하고 부드러워 아주 먹기가 좋다. 허균이 지은 조선 최초의 음식 품평서인 `도문대작(푸줏간 앞에서 입맛을 다시다)`에도, 갯방풍죽의 향기로운 맛을 잊을 수 없다고 쓰여 있다. 갯방풍 생막걸리도 강릉의 명품술로 꼽히고 있다. 강릉쌀에다 누룩, 갯방품나물 가루를 섞어 빚어내는 술이다. 싱그럽고 달큼한 맛이 여성의 입맛에 잘 어울리는 것 같다.글·이영희(작가·전 포스코인재개발원 교수) 사진·하홍걸(디지털희망칼라) 캘리그래피·삼우애드컴

2015-04-30

솔향 고을, 향토음식 이어온 팔순의 손맛이 아름다웠다

강릉(江陵)시청은, 스스로 `솔향(松香) 강릉`이라 부르고 있다. 영어 명칭은 `파인·시티(Pine City)`라나….정녕 소나무 우거진 도시다. 가로수는 물론, 시내 곳곳에 소나무공원이 즐비하다.조선조(朝鮮朝) 성종 때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강릉의 당시 이름은 `강릉대도호부`로, `철국(鐵國)` 또는 도원경(挑源京), 북빈경(北濱京)이라고 불렸다 한다. 도원경은 `이상적인 아름다운 서울`, 북빈경은 `북쪽 바닷가의 서울`을 가리킨 명칭으로, 당시의 선비들이 강릉을 크게 칭송했음을 짐작케 된다. 강릉은 일찌기 이상향(理想鄕)이었던 셈이다.초당두부, 김치와 먹으면 환상의 콤비순두부 청국장·감자옹심 명품 먹거리사임당·율곡 출생 `오죽헌` 잘 보존돼커피농장·커피박물관 색다른 볼거리강릉이 당시 철국(鐵國)이라 불렸던 것은 이 고장에서 무쇠가 캐지고, 제철(製鐵)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고대의 강릉에서 철광석이 발굴되었던 것이다. 고대의 무쇠는 보물이었다. 무쇠를 가진 자가, 권력을 차지하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생선이 풍성하게 잡히는 아름다운 바닷가에서 무쇠까지 캐지니, 당시의 강릉은 `이상향(理想鄕)`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따라서 고을사람들의 인심도 좋았다. `강릉대도호부(江陵大都護府)` 대목의 풍속편에, 고을 사람들은 성실하여 욕심이 적어, 청탁하거나 구걸하지 않는다고 적혀있다. 삼(麻)을 심고 누에를 치며, 옷감도 만든다고 덧붙이고 있다. `학문을 숭상하여 다박머리 때부터 책을 끼고 스승을 따른다. 게으름 부리는 자는 여럿이서 함께 나무라고 꾸짖는다`고도 쓰여져 있다. `노인을 공경하여, 좋은 계절을 맞이하면 나이 70세 이상 된 노인을 청하며 경치 좋은 곳에 모셔 위로한다….`고도 적고 있다. 토산품도 풍성하게 소개해 놓았다. 모시·활을 만드는 뽕나무, 잣, 오미자, 송이버섯, 인삼, 벌꿀, 소금, 미역, 김, 해삼, 전복, 문어, 방어, 대구어, 연어, 도로묵 등등.`소금`을 만든다는 데 눈이 번쩍 뜨인다. 그 옛날, 강릉 바닷가의 어디서 소금을 만들었을까. 강릉은 아주 개화된 고을이었던 것이다. 무쇠와 소금은, 고대 정부의 으뜸가는 귀중품이었다.일찌기 `경호(鏡湖)`라 불린 경포대(鏡浦台) 소개도 소상히 하고 있다. 조선조의 태조(太祖)와 세조(世祖)는 감탄하며 순행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신라 때 울릉도(당시 `우산국`)을 합병했을 당시, 가짜 사자 여러 마리를 만들어 배에 싣고 가 “항복하지 않으면 사자를 섬에 풀어 죽이겠다”고 협박, 항복을 받은 이사부(異斯夫)의 일화도 덧붙이고 있다.서기 512년(신라 지증왕 13년) 때의 일이다. 강릉은 역사적 인물의 풍성한 산지(産地)이기도 했다. 우선, 우리나라 여성 특히 어머니들의 사표(師表)가 되는 사임당(師任堂·1504~1568) 신씨(申氏)가 태어난 고장이요, 그의 아들 율곡(栗谷) 이이(李珥·1536~1584)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현재 강릉시 죽헌동에 있는 오죽헌(烏竹軒)은 신사임당이 태어나고 율곡도 탄생한 고옥(古屋)으로 보물 제165호로 삼아져 보존되어 있다. 신사임당이 그린 그림과 수예품을 비롯하여 일용품까지 여기에 알뜰히 모아 전시하고 있다.신사임당은, 5만원짜리 고액 화폐에 그려진 인물이다. `신사임당`하면, 5만원권의 대명사처럼 여겨져 있기도 하다. 신사임당의 5만원권에 앞서 만들어진 1천원권의 인물상은, 아들 율곡의 얼굴이다. 놀랍게도 어머니와 아들이, 조폐공사가 만든 우리나라 화폐에 함께 그려져 있는 것이다. 화폐에 이들 모자(母子)를 그린 화가는 이종상(李鍾祥)씨. 초대 서울미술관장을 지냈다. 오죽헌 안에는 5만원권을 커다랗게 촬영, 비치해 놓은 코너가 있다. 신사임당의 얼굴 부분만 도려내어져 있어, 그 얼굴 부분 뒤에 앉아 사진을 찍으면 `5만원권의 주인공`이 되도록 꾸며 놓은 것이다. `여러분도 화폐의 인물이 되어 보세요`란 글이 5만원짜리 지폐 사진 위에 쓰여져 있다.간수 대신 바닷물 넣어 만드는 초당두부강릉 향토 음식의 명품으로 손꼽히고 있는 것은 두부요리이다. 특히 `초당 두부`가 유명하다. 강릉 바닷물을 간수로 써서 만든 두부 요리이다.강릉 출신, 조선 때, 최초의 한글소설 `홍길동전`을 쓴 허균(許筠)의 아버지 허엽의 호는 `초당(草堂)`이었다. 조선조 광해군(光海君) 때, 당파 싸움의 화를 입어 강릉 바닷가로 피해 온 허엽은 강릉산(産)의 콩으로 두부를 만들게 된다.두부를 만들자면 간수가 필요하다. 그러나 바닷가에선 간수를 구할 수가 없었다. 콩 즙(汁)에 간수를 넣어야 두부가 만들어지는데, 간수가 없으니 궁리 끝에 간수 대신 정갈한 바닷물을 콩 국물에 넣어봤더니 콩즙(汁)이 잘 굳어지고, 맛있는 두부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그 후, 강릉(江陵) 산 두부는 간수 대신 신선한 바닷물을 써서 만들게 되었다 한다. 그 연유로 강릉산(産) 두부는 바닷물을 간수 삼아 쓰는 `초당 두부`라 일컬어지게 되었고, 지금도 초당마을의 명산품으로 손꼽히고 있다.그러나 두부에도 단점이 없지않다. 비타민A 성분이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두부를 먹을 때는 비타민A와 비타민C까지 함유한 당근을 함께 넣어 조리하면 좋을 것이라 한다. 김치 역시 비타민A와 비타민C가 풍부해, 두부와 김치는 환상의 콤비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순두부 청국장도 강릉 명품 요리순두부를 곁들인 청국장도 강릉명산 음식의 한가지이다. 점심시간에 200여명의 고객을 맞이한다는 `차현희 청국장` 가게를, 강릉시청 관광과의 소개를 받아 찾아갔다. 가게 주인 차현희씨는 늘씬한 키의 미인이다. 순두부를 썰어넣은 청국장과 세가지 생선구이, 생두부 김치와 미역무침, 강릉 콩잎무침 그리고 막걸리 한병까지 곁들인 점심 밥상이 딱 벌어지게 펼쳐진다. 1인당 1만3천원. 막걸리 한병 값이 3천원이니, 이 진수성찬 1인분 가격은 1만원인 셈이다. 결코 저렴하지 않다. 그래도 발디딜 자리가 없다. 가게 옆에 덧붙여 지은 순두부 제조공장은 가히 목욕탕급이다. 특허번호 10-0834719호. `강릉순두부`의 미래는 마냥 밝다고나 할까. 미인이 활짝 웃고 인사했다. 강릉 특산 감자 옹심의 쫄깃한 맛강릉시 토성로 171번지에 자리한 감자옹심 가게도 성업중이었다. 강릉 특산의 감자를 생강과 함께 빻아 반죽한 다음, 옹심으로 만들어 쪄서, 육수물에 끓여 먹는 강원도 특산 음식이다. 만두처럼 쪄서 먹는 감자 송편도 쫄깃하여 맛있다. 감자 옹심국 한사발에 8천원, 감자 송편 13개에 4천원, 막걸리 한사발에 5천원이다. 오후 3시가 되었는데 발 디딜 자리가 없다. 81세의 주인 김순자씨는 30년째 딸과 함께 가게를 꾸려왔다 한다.손님 방과 이웃한 부엌 옆방에서 종일토록 옹심 빚는 작업에 분주하다. 고향의 토산품으로 고향 음식을 평생 만들어온, 그 팔순의 손이 아름다왔다. 국내 최초의 커피 농장·박물관이 강릉에국내 최초의 커피 생산농장에서 커피 열매가 열리고 있다.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왕산로 2171-19 산중에 있는 이색 농장이다. 커피 뮤지엄도 있고, 커피 식물원에서는 빨간 커피 열매가 열리고 있다. 아주 신기하다. 커피나무도 처음 만나게 되고, 빨간 커피열매도 처음 본다. 커피열매가 새빨간 작은 공 모양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커피박물관에서는 각양각색의 커피 도구와 만나게 되고, 신기한 커피의 역사도 알게 된다. 이를테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커피를 마신 사람이 19세기초의 고종황제라든가하는 일까지 알게 되고, 섬세하고 아름다운 커피잔 셋트가 많은 데도 놀라게 된다. 아무튼 모르고 있던 것을 알게 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리고 아름다운 것을 보게 되는 것은 더욱 고마울 일이다.글·이영희(작가·전 포스코인재개발원 교수) 사진·하홍걸 작가

2015-0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