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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ㆍ특집

영원한 낭만주의자 눈물의 시인

일찍이 미당 서정주 시인이 그의 7시집 `떠돌이의 詩`(민음사,1976)에서, 또 서정춘 시인의 3시집 `귀`(시와시학사, 2005)에서 `박용래`라는 제목의 시가 수록될 만큼 한국의 서정 시인들에게 널리 사랑을 받는 박용래 시인의 전집을 다시 읽는다. 그가 남긴 시 전집은 요즘 우리가 흔히 보는 보통 시집 분량보다 조금 더 두꺼운 한 권으로 되어 있다. 그는 우리 한국 시단의 영원한 낭만주의자요, 눈물의 시인이다.“여름 한낮/비름잎에/꽂힌 땡볕이/이웃 마을/돌담 위/軟?로 익다/한쪽 볼/서리에 묻고/깊은 잠 자다/눈 오는 어느 날/깨어나/제상 아래/심지 머금은/종발로 빛나다”(`연시`전문)지금쯤 내 고향 청도에는 마을마다 집집마다 감나무에 감이 등불처럼 붉게 익어가겠다. 그는`먼 바다`라는 한 권의 시 전집을 남겨놓고 우리 곁을 떠나갔다.충청도의 후배 시인인 이면우는 그의 시집을 얼마나 읽었는지 시집 겉표지를 수십 번 바꿔 붙인 것을 내게 보여준 적 있다. 단 한 권의 시집으로 후배 시인들에게 이렇게 많은 영향을 끼친 시인도 드물 것이다.`땡볕→연시→종발`로 이어지는 시상 전개에 군더더기 하나 없다. 그리고 그가 남긴 시편들은 후배 시인들의 가슴에 빛나는`종발`로 남아 오래도록 빛나고 있다.끝/이종암(시인)

2011-09-21

水墨으로 번져가는 노래들

11년 전, 장석남의 넷째 시집`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을 읽고 나서 나는 한동안 가슴이 얼얼했다. 시와 노래를 담아두고 스스로 즐기다가 가끔 퍼내기도 하는 내 오른쪽 가슴이 불에 데인 듯 십일월의 가을바람이 들어찬 듯 서늘했다. 통증이었다. 그러나 아름다운 노래의 흥분에 휩싸이는 행복한 통증이었다. “번짐,/번져야 살지/꽃은 번져 열매가 되고/여름은 번져 가을이 된다/번짐,/음악은 번져 그림이 되고/삶은 번져 죽음이 된다/죽음은 그러므로 번져서/이 삶을 다 환히 밝힌다/또 한번-저녁은 번져 밤이 된다/번짐,/번져야 사랑이지”(`水墨 정원 9`부분)시집 속에는 `수묵 정원` 서시를 비롯하여 `수묵 정원1`에서 `수묵 정원9`까지 모두 10편의 연작시가 있다. 장석남 시인이 물(水)과 먹(墨)으로 만든 그의 정원은 소슬(蕭瑟)하면서도 품격 높은 것이다. `번짐`이라는 말이 이 노래의 매개항이다. 시인은 “번져야 살지” “번져야 사랑이지”라고 노래한다. 또 “꽃은 번져 열매가 되고/여름은 번져 가을이 된다”고, “음악은 번져 그림이 되고/삶은 번져 죽음이 된다”면서. `번짐`이 사랑과 예술, 삶과 죽음을 깁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노래한다. 네게로 번지는 내 노래를 너는 듣고 있는가?/이종암(시인)

2011-09-07

제1회 연암문학상 수상작

몇 달 전에 모 일간지에서 표성흠 소설가가 제1회 연암문학상에서 장편소설 `뿜뱀`으로 수상한다는 기사를 읽고 바로 책을 사서 보았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뿔 달린 뱀은 용이 된다고 한다. 용은 여의주를 물고 불을 내뿜을 수 있는 초능력으로 전설적인 존재가 된다. 그러나 용이 되지 못한 뿔뱀은 이무기가 되어 영원한 어둠 속에서 남에게 해코지나 하는 짐승으로 전락하고 만다고 한다. 아니면 잠룡이 되어 다시 천년을 기다려 여의주를 얻어 용이 될 기회를 기다린다고 한다.표성흠 작가는 연암 박지원을 그리면서 이러한 뿔뱀을 하나 만들어 냈다. 아니 엉덩이에 뿔난 뱀을 하나 그렸다고 했다. 이 뿔뱀이 용인지 이무기 인지는 독자가 가려낼 일이라고 한다.연암 박지원은 `열하일기`를 써서 남긴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실학자이다. 이 `뿔뱀`은 특히 박지원이 안의(함양)에서 현감으로 지낸 것을 주무대로 삼아 그렸으며, 박지원의 실사구시 정신과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의 선구자적 고뇌가 잘 나타나 있다. 박지원은 자신이 다스리는 마을의 실물경제와 흐름을 관찰하여 타 마을과 협력하여 잘사는 마을 만들기에 힘을 기울인다. 천연지형을 이용해서 마을의 물길을 막아 저수지를 만든다거나 물레방아를 만들어서 정미소의 기능을 강화한다거나 하여 마을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얻게 된다. 그러나 순탄한 길을 마다하고 굳이 세상과 맞서 시대의 아웃사이더가 된 인물이라 할 수 있다.역사를 보면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를 알 수 있다고 하듯이 `뿔뱀`을 통해서 지금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를 알아냈으면 한다./이정희(위덕대 일본언어문화학과 교수)

2011-08-30

결 고운 명주 같이 따뜻한 산문집

천양희 시인의 산문집`그래도 사랑이다`는 촘촘하게 직조된 결 고운 명주처럼 곱다. 그리고 맑고 깊은 우물처럼 시인이 바라본 이 세상의 풍경과 내면세계가 웅숭깊게 그려져 있다. 시인은 자신보다 앞서 살다 간 수많은 예술가, 철학자들이 남긴 경구(警句)나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예술가들의 언어에 자신의 사유를 펼쳐놓으면서 세계의 비의와 삶의 곡절들을 하나하나 풀어내고 있다. 인간의 삶을 마부의 인생을 통해 반추하고 있는 부분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인간은 덜커덕거리는 수레를 끌고 무한대의 길을 가는 지친 마부이다. 고삐는 마부의 삶을 결정한다. 누구나 수레에 탈 수는 없다. 고삐는 사람의 마음이다. 마음이 기우뚱거릴 때 고삐는 느슨해진다. 삶은 견디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다. 사랑 또한 이와 같다. 사랑은 믿음으로 튼 둥지이다. 둥지 속에 가득 찬 알은 곧 믿음이다. 믿음이나 사랑이 보이지 않는 집은 숲 속의 빈 새장과 같다.” 시인은 우리의 삶이나 사랑은 돌이킬 수 없는 흐르는 강물 같은 것이어서 한번 흘러가 버리면 누구도 손댈 수 없다고 한다. 데이비드 호킨스의 말을 빌려 사람이 일생동안 노력해야 할 것은 `가지기 위해`,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에 있으며 그래야 무엇이 진정한 성공인지, 보람된 삶인지 깨닫게 된다고 말한다. 그렇다. 사랑은 매우 넓고도 두꺼운 것이다. 우리의 삶과 이 세계를 떠받치고 있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그래서 이 세상 가장 아름다운 이름, 그것은 사랑이다. /이종암(시인)

2011-08-23

세상의 모든 딸들을 위한 동화

오랜만에 유쾌한 이야기를 읽었다. 바로 `흑설공주 이야기`이다. 어느 날 초등학생인 딸이 `흑설공주`니 `개구리 공주`니 하면서 그런 책이 있다며 읽고 싶다고 해서 구입을 했다. 우선 먼저 내가 읽어 보았다. 그랬더니 왠지 통쾌하기 조차한 내용에 그만 빨려들어 가고 말았다. 어차피 황당무계한 이야기는 원작이나 패러디한 작품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이 `흑설공주 이야기`에는 작가의 재치와 통찰력으로 리얼리티와 진실함이 담겨져 있었다. 그래서 인지 원작보다 더 흥미진진하고 감동적이다.`흑설공주 이야기`에는 `백설공주`를 패러디한 `흑설공주`, `개구리 왕자`가 아닌 `개구리 공주`, `미녀와 야수`가 아닌 `못난이와 야수`, `벌거벗은 임금님`이 아닌 `벌거벗은 여왕님` `인어공주`는 `막내 인어공주` 등의 이야기가 14편이 수록되어 있다.`흑설공주`의 새엄마는 헌명하고 착한 왕비로 등장하고, `막내 인어공주`에서는 왕자가 자상하고 인어공주가 목숨을 구해 준 사실을 믿고, 결국에는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로 마무리 되었다. `벌거벗은 여왕님`의 여왕은 사기꾼 재단사에게 속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크게 뉘우치고, 재단사 역시 남을 속이는 행위에 대해서 깊이 반성한다.이 이야기는 옛 동화에 나오는 새엄마는 나쁘고, 여자는 예뻐야 백마 탄 왕자님이 나타나 행복해 질 수 있다는 구도를 과감히 깨고, 특히 여성을 폄하하려는 내용의 동화들을 여성의 시각으로 새롭게 꾸몄다./이정희(위덕대 일본언어문화학과)

2011-08-17

적막의 속삭임을 듣자

정현종 시인의 근작 시집`광휘의 속삭임`을 읽고 좋아라고 서너 편을 내 공책에 옮겨 적은 시 가운데 한 편`이어떤 적막`이다. “좀 쓸쓸한 시간을 견디느라고/들꽃을 따서 너는/팔찌를 만들었다./말없이 만든 시간은 가이없고/둥근 안팎은 적막했다.//손목에 차기도 하고/탁자 위에 놓아두기도 하였는데/네가 없는 동안 나는/놓아둔 꽃팔찌를 바라본다.//그리로 우주가 수렴되고/쓸쓸함은 가이없이 퍼져나간다./그 공기 속에 나도 즉시/적막으로 一家를 이룬다-/그걸 만든 손과 더불어.” 시에서 말하는 `어떤 적막`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불완전하고 한계적 존재인 인간의 근원적인 외롭고 쓸쓸함의 한 모습을 시인은 `어떤 적막`이라 말하고 있는가. `너`와 `나` 사이에 들꽃을 따서 만든 `팔찌`가 있고, “네가 없는 동안” 그 비어있는 둥근 꽃팔찌를 바라보는 내 마음의 무늬가 시의 내용이다. 그 무늬는 공기를 타고 번져가는 마음인데, 작은 꽃팔찌의 안팎은 물론 내 마음의 안팎과 가이없는 우주에까지 수렴되고 퍼져나가는 것이다. 무늬의 속 빛은 근원적인 외로움과 쓸쓸함인 `적막(寂寞)`이겠다. 이 적막(寂寞)은 어떻게 해야 내 마음에 잘 재워두는 것인가? 알 수 없어라. 허나 사람도 세상도 꽃의 빛이었으면 좋겠다./이종암(시인)

2011-08-10

시집 속에 부처와 예수를 함께 모시다

황동규 시인이 지금껏 펴낸 여러 권의 시집 가운데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시집이 바로`꽃의 고요`이다. 표제시 `꽃의 고요`를 읽어본다.“일고 지는 바람 따라 청매(靑梅) 꽃잎이/눈처럼 내리다 말다 했다./바람이 바뀌면/돌들이 드러나 생각에 잠겨 있는/흙담으로 쏠리기도 했다./`꽃 지는 소리가 왜 이리 고요하지?`/꽃잎을 어깨로 맞고 있던 불타의 말에 예수가 답했다./`고요도 소리의 집합 가운데 하나가 아니겠는가?/꽃이 울며 지기를 바라시는가,/왁자지껄 웃으며 지길 바라시는가?`/`노래하며 질 수도……`/`그렇지 않아도 막 노래하고 있는 참인데`/말없이 귀 기울이던 불타가 중얼거렸다./`음, 후렴이 아닌데!`”`꽃의 고요`를 두고 부처님과 예수님이 한 자리에서 친구처럼 말씀들을 나누고 계신다. 부처와 예수가 함께 등장하는, 그것도 서로 농하듯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시로 만들어진 것은 우리 문학사에서 황동규 시인의 13번째 시집 `꽃의 고요`가 처음이 아닌가 싶다. 종교 간의 반목과 질시도 심한 우리 시대에 부처와 예수가 한 `생명`에 관한 말씀을 나누고 있는 이 장면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자신의 시 속에 부처와 예수의 말씀을 빌려오는 것을 황동규 시인은 어떻게 생각해냈을까. 그 말씀들로 미혹(迷惑)하고 한계적 존재인 우리 인간의 삶과 죽음의 깊은 문제를 실감나게 그려내고 있는 시집 `꽃의 고요`가 나는 참 좋다. 꽃이 진다는 것은 한 생명이 다른 생명으로 건너감이다. “고요도 소리의 집합 가운데 하나가 아니겠는가?”라는 예수님의 말씀과 꽃이 질 때 “노래하며 질 수도…”라는 부처님의 말씀에 내 마음의 모든 문을 열고 놓고 오랜 생각에 잠긴다./이종암(시인)

2011-08-03

문화가 바뀌면 유전인자도 변형된다

꼬박 1년 동안 읽은 책이 있다. 물론 그 사이에 이런저런 다른 책도 읽었지만서도 말이다. 1년 전 여름방학 때, 미국 시애틀에 있는 워싱턴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조카가 일시 귀국해서 자신이 번역한 것이라며 건네준 책이다. 바로 `유전자만이 아니다`라는 책이다. 책의 쪽 수가 500쪽이 넘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번역 소개된 진화사회과학 책으로, 출판된 그 다음해에 대한민국학술원에서 선정하는 기초학문분야 우수학술도서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내가 이해하는 사람의 유전인자는 그 사람의 모든 것을 결정짓는 요소이며, 내 조상들의 오랜 경험의 기억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결정체라 생각한다. 내 몸 속에 흐르고 있는 유전적 정보가 지금의 나를 만들어 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서 사람을 사람이게 한 것은 유전자의 영향이기도 하지만, 문화적 또는 환경적 요인이 더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니까 유전자만으로 사람의 행동을 분석하기에 턱 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바로 문화라는 유전인자로 인해 그 양상이 다르게 나타난다고 할 수 있겠다. 즉 문화는 인간 사회의 모든 경험이 만들어낸 산물인 사회적 유전자인 셈이다. 문화가 변형되면 우리의 유전인자도 변형을 일으키게 되고,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우리 인류는 진화해 왔고 또 앞으로 끊임없이 진화해 갈 것이다.이 무더위에 인간의 본성 및 문화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론이 제시된`유전자만이 아니다`와 함께 하는 것도 더위를 잊게 하는 한 방법일지도 모르겠다./이정희(위덕대 일본언어문학과 교수)

2011-07-27

극렬 감정분자가 부르는 노래

김달진문학상과 소월시문학상을 수상한 박정대 시인, 그는 현재 `무가당 담배 클럽`이라는 정체모를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무슨 결사대 같은 그 동인이 어떤 모임인지 정체는 알길 이 없다. 박정대 시인이 부르는 노래는 술과 담배와 음악을 밑불로 하여 끝없이 타오르는 센티멘털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는 스스로 “담배를 피워 물고 저녁마다 감정의 확산을 꿈꾸는 나는 자생적 감정 빨치산”이라고 한다. 이러한 “극렬 감정분자”의 노래는 새들이 추위를 피해온 북 호텔과 리스본 야간비행, 백남준의 노트, 추락한 천사들의 가슴속, 알제리 기타, 갈라파고스 고독의 제도, 가우디 아파트, 체 게베라, 라벤더 안개 등 시간과 공간의 단절을 뛰어넘어 흘러가고 존재한다. 박정대는 `가우디 아프트`에서 “사랑은 그 누구나 꿈꿀 수 있는 아름다운 건축 그러나 아무나 꿈꿀 수 없는 갸륵한 심장의 건축물”이라고 한다. “순서도 없고 배열도 없”는 감정의 `백야 무한증폭기`같은 박정대의 노래는 “두서없이” 출렁대는 술처럼, 흘러가는 담배연기처럼 독자의 가슴속으로 파고든다. 이러한 박정대의 노래는 “세상의 모든 음악으로도 감싸 안을 수 없는 본질적 고독은 어디로부터 오는가”에 대한 물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니 그 물음에 대해 박정대 시인 스스로의 답을 구하려 떠돌아다닌 항적의 결과물이다./이종암(시인)

2011-07-13

우리의 마음을 닦는 고진하의 노래

고진하 시인의 새 시집`거룩한 낭비`가 6년 만에 출간됐다. 목회자와 시인으로서의 자의식으로 우주와 소통하고 거기 충만해 있는 생명의 흐름을 생동감 넘치는 언어로 그려낸 64편의 시가 귀하다. 특이하게도`거룩한 낭비` 표제시가 두 편이 나오는데, 모두 하느님이 주인공이다.“적설 30cm, 때아닌/폭설에 갇혀 모처럼 쉬다//그렇게 맥 놓고 쉬는데,/또 난분분 난분분 뜨는/창밖의 잔눈송이들 보며/詩情에 드니 모처럼 시다//오늘따라 낭비를 즐기시는 하느님이 맘에 든다/흰 눈썹을 낭비하고,/흰 섬광의 시를 낭비하는 하느님이 맘에 든다/내리는 족족 쌓이는 족족 공손히 받아 모시는/겨울나무들처럼//나 두 팔 벌려 하느님의 격정을 받아 모 신다/받아 모시니,//시다!”(`거룩한 낭비`전문)문학평론가 유성호는 그의 시를 “이십여 년 전 거칠고 황막한 `빈 들`에서 시작된 고진하의 고독하고도 가난한 시작(詩作)은 자연 사물에 편재적으로 깃들인 신성(神聖)을 찾아가는 형이상학적 탐색 과정으로 심화되어 왔다. 이 과정에서 시인은 우리에게 결핍된 신성과 생명에 대한 외경을 통해 사물 속에 충일하게 번져 있는 `거룩한 것(the sacred)`의 형상을 노래해 온 것”이라 평하고 있다. 사물과 인간, 하늘과 인간이 서로 소통하는 범우주적 언어로 노래하는 고진하의 시들이 더 많은 독자들의 가슴속으로 자리하기를, 그리하여 반생명적인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닦고 눈가를 적셔주기를./이종암(시인)

2011-06-08

우리 아이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늘 아침에 일어나서 신문을 읽는 것으로 하루가 시작된다. 이것을 본 딸아이가 어린이들이 보는 신문은 없냐고 해서 어린이 신문을 구독해서 읽기 시작한 것이 벌써 3년째 접어든다. 딸아이는 어린이 신문을 보면서 새로 나온 책 소개를 열심히 본다. 그 중에서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사서 본다. 얼마 전에 딸아이가 읽고 싶다고 해서 구입한 책이 바로 뉴욕 타임즈 베스트셀러 작가인 앤디 앤드루스의 `세상을 바꾼 아이`였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내 딸도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아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 은근히 읽어 보라고 종용했을지도 모른다.내용은 등장인물 4명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행한 작은 행동이 세상을 바꾸었다는 이야기로 나비효과 이론을 바탕으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미국의 한 농장에서 태어나 자란 노먼 볼로그는 옥수수 밭을 보면서 이 옥수수를 배고픈 사람들에게 먹일 방법은 없을까 하고 생각한 끝에 슈퍼 씨앗을 개발하여 굶주린 수많은 사람들을 구했다. 그런데 이 노먼에게 이 슈퍼 씨앗을 개발하도록 한 사람은 헨리 웰리스였고, 헨리에게 식물에 대한 다양한 지식을 전해준 것은 어린 시절에 만난 조지 워싱턴 카버였다. 그런데 부모를 잃은 조지를 가족으로 받아들여 키운 사람은 모리스 카버였다.그럼 모리스 카버가 부모를 잃은 어린 조지를 데려다 키우지 않았으면 헨리에게 식물에 대한 다양한 지식을 전해 줄 수 없었을 것이었고, 나아가 노먼은 슈퍼 씨앗을 개발하지도 못했을 것이다./이정희(위덕대 일본언어문화학과 교수)

2011-06-01

소리없이 강한 김광규의 詩

우리에게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 `라는 시로 잘 알려진 김광규 시인의 열 번째 시집이다. 한양대학교 독문학과를 정년하면서 펴낸 시집 `시간의 부드러운 손`(문학과지성사, 2009)이후 4년만이다. 우리의 소시민적 삶과 우리 시대의 부정적 징후들을 포착하여 풍자와 비판적 시선으로 그려낸 그의 시 세계가 아홉 번째 시집부터 조금씩 그 변모를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시인의 가족과 자기 삶에 대한 회고와 성찰, 자연에 대한 깊은 응시에서 길어 올린 삶의 예지라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최근 김광규 시인의 노래는 과거에 비해 좀 더 내면적이고 관조적 성격을 띠고 있다.“복실이가 뒷다리로 일어서서/창틀에 앞발 올려놓고/방 안을 들여다본다/아무도 없는 줄 알았나 보다/오후 늦게 마신 커피 덕분에/밀린 글쓰기에 한동안 골몰하다가/무슨 기척이 있어/밖으로 눈을 돌리니/밤하늘에 높이 떠오른/보름달이 창 안을 들여다본다/모두들 떠나가고/나 홀로 집에 남았지만/혼자서는 아닌 셈이다”(`나 홀로 집에`전문)인용한 시가 우리에게 조용히 말해주는 것처럼 우리의 인간의 삶은 혼자서가 아니라 함께하는 것이다. 자연을 비롯한 주변의 존재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을 우리가 인식한다면 마감의 시간으로 치닫는 지구의 삶도 다시 생명의 길로 이어갈 것이다. 김광규 시인의 이번 시집을 나는 어느 회사의 광고 문구를 빌려 “소리 없이 강하다”고 평하고 싶다. 자연의 미미한 기척이나 우리 사회의 작고 약한 존재의 삶에 대한 깊은 응시로 삶의 존재적 의미망을 조용히 노래하는 김광규의 시는 참으로 소중하다./이종암(시인)

2011-05-25

성장통 겪는 청춘에게 전하는 희망메시지

베스트셀러의 자리에까지 오른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학생들 지도를 위해 읽고 싶었던 책 중의 한 권이었다. 이번에 다 읽고 나서 수업시간 마다 이 책을 학생들에게 꼭 읽어 보라고 권유하고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돌이켜보니 나 역시 절망 속에서 20대를 보낸 것 같다. 당시 정치, 사회 문제를 내 문제인양 고민하고 아파했다. 이에 해답을 찾으려고 문학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20대에 문학에 인생을 걸었다.그런데 난, 여전히 아파하고 있다. 아직도 청춘인가 보다. 뛰어난 실적을 갖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해 취업을 못한 후배들, 아직도 무엇을 해야 할지 방황하는 제자들, 부모와 다투고 집을 나와 친구 집에서 학교를 다닌다는 A군, 간암이라는 병마와 싸우고 있는 시어른,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내 마음이 아프다.`아프니까 청춘이다`는 대학 교수가 특히 대학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보편적인 이야기를 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지만, 필자도 언급했듯이 책상머리에 앉아 손끝으로 쓴 글이 아니라, 직접 만나 상담하고 설문조사를 통해 젊은이들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파악하려 했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진심으로 함께 아파한 내용들이어서, 설득력 있게 내 가슴에 와 닿는다./이정희(위덕대 일본언어문화학과 교수)

2011-05-18

사물과의 상응으로 피어난 무늬들

이하석 시인의 제9시집 `상응`은 좀 특별나다. 아담한 크기의 시집 판형과 거기에 수록된 시편도 고작 32편이어서 독자들에게 편안하게 다가간다. 기다란 시나 산문시가 60편을 넘어 70편에 가까운 일반적인 시집들과는 비교가 된다. 부피가 작고 수록된 편수도 적지만 그의 시들이 내장하고 있는 의미는 자못 깊고도 크다. 그 가운데 `청도 냇가에서 대 무늬진 돌을 주워 동풍`이라 이름 짓고`라는 좀 길고 독특한 제목의 시 한 편을 읽어본다. “속속들이 두근대는 동부새에, 상기 성깔 남은 소소리바람에, 짐짓 명랑한 듯 퍼덕이는 동풍에 휘는-꼿꼿하게 휘는-겨울, 대나무들. 누워서도 안간힘으로 버티면서 마디마디 곧게 설레는, 동부새에 소소리바람에 동풍에 눕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마디마디 한 마디로 일어나는 대나무들의 푸른 물음들. 봄으로 쓸리는, 서걱대는, 헛될 수 없는 말의 카랑카랑한 잎사귀들. 동부새를 소소리바람을 동풍을 안으려 흰 겨울 비탈에 서는 이가 그렇게 온몸 흔들리며 안간힘 하며 휘젓는 칼날의 춤. 마구, 또 기어이 일어나 제 온몸의 빗자루로 서서 성긴 적멸의 어둠을 쓴다.”사물과 사람 그리고 시간의 상응(相應)으로 빚어진 삶의 비의가 깊이 새겨진 작품이다. “세상은 여전히 어둡지만, 사랑의 말은 여전히 동튼다고 쓴다.”라는 시인의 말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다./이종암(시인)

2011-04-27

지적 쾌락주의자가 되자

늘 책읽기를 장려하는 내게 서점에서 한 눈에 들어 온 책이 바로 `리딩으로 리드하라`였다. 우선 책 제목이 내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정말 책 제목을 참 잘 지었다고 생각한다.이 책이 하고 싶은 말은 두말 할 것도 없이 “책을 읽자, 좀 더 많이 책을 읽자”이다. 세상을 지배하는 0.1퍼센트의 천재들이나 부자들은 모두 인문 고전을 읽었다고 그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아인슈타인, 에디슨을 비롯하여, 자본주의 세계의 최고의 승자들인 카네기, 워런 버핏, 이병철, 정주영은 모두 엄청난 인문 고전 독서가였다. 치열한 인문 고전 독서로 두뇌의 수준을 한 차원 높힌 뒤에 얻는 사고력과 통찰력이야말로 그들의 평범한 손을 황금 손으로 만든 것이다.세상에 있는 책을 두 부류로 구분하고 있다. 하나는 고전이고 또 하나는 비고전이다. 고전을 짧게는 1백~2백 년 이상, 길게는 1천~2천년 이상 살아남은 책을 말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천재들이 지은 책이라 할 수 있다. 만일 앞으로 이 천재들이 지은 책을 10년 동안 매일 2시간씩 이 천재들과 대화를 나눈다면 어떻게 될까. 저자는 두 말 할 것도 없이 잠재되어 있던 천재성이 드러나 천재적인 사고를 하게 될 거라고 했다. 인문고전을 통해 새로운 것을 익히고 알아가는 것에 희열을 느낄 수 있다면 우리는 더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게 될 것이다./이정희(위덕대 일본언어문화학과 교수)

2011-04-20

詩로 그린 세계 속 자기 존재의 의의

지난 2001년 `세계의문학`으로 등단한 신인 김민의 첫 시집 `길에서 만난 나무늘보`는 자못 충격적이다. 등단한 지 6년 만에 펴내는 그의 첫 시집에 수록된 86편의 시가 모두 한 줄짜리 작품으로 되어있다. 이런 시집은 우리 문학사에서 전무후무(前無後無)한 것이리라. 세계에서 가장 짧은 시 형식인 일본의 하이쿠(俳句)를 연상시키는 1行에 김민 시인은 세계 속의 자신의 존재 의의를, 자아와 세계의 소통을 압축·집약시켜놓고 있다. “노을이 갈대 사이로 흘렀네 내 굽은 손으로는 뭘 뿌려야 하나” (`자화상1`) “난수표를 풀어야 나를 읽을 수 있다니”(`자화상2`) “집어등 켜지는 시간 삐쩍 마른 오른손 탄불에 구워 들고 한 잔”(`자화상3`) “죽음을 주우러 다니는 넝마주이”(`자화상4`) “아유, 이거 손 좀 많이 봐야 되겠는데요”(`자화상5`) 시 `자화상`은 시인이 세계 속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자기 존재의 의의를 스스로 그려놓은 그림이다. 그는 세계 속 자신의 모습을 “내 굽은 손” “죽음을 주우러 다니는 넝마주이” “손 좀 많이 봐야”하는 존재로 그려놓고 있다. 그리고 도저히 풀어낼 방법이 없는 난수표, 이 “난수표를 풀어야 나를 읽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비극적 슬픔에 깊이 몸 베인 자아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이종암(시인)

2011-0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