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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ㆍ특집

대구 ‘자갈마당’ 사례 처럼 포항도 이제 본격 재정비 나서야

대구에서 110년간 성업했던 성매매업소 집결지인 ‘자갈마당’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지 약 6년이 지났다. 이곳은 현재 원도심 개발사업을 통해 대규모 주거단지가 들어섰다.이전 성매매 현장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성매매집결지가 평범한 주택가로 변화하기 까지는 수많은 시련이 있었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반발과 반대 집회,  철거에 이르는 과정 등 시행착오를 겪은 후 지금의 모습으로 변모했다. 현재 이곳은 주거복합단지에 입주가 한창 진행 중이며, 원도심의 개발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대구시 성매매 집결지 ‘자갈마당’ 정비의 역사를 살펴보고 포항시 성매매 집결지 ‘중대’의 개발 대책을 모색해봤다. △습지 메우려 자갈 깐 것이 지명유래자갈마당은 1909년 중구 도원동 일대에 설립된 성매매집결지를 말한다.원래 이곳은 1900년대 초 일본인들이 몰려와 집단 거류지를 형성할 때 공창을 함께 들여온 것이 시초라고 한다.자갈마당이라 불리게 된 것은 집창촌 여인이 달아나면 잡으려고 자갈을 깔아 소리가 나도록 한 데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또 다른 해석으로 자갈마당을 ‘넓은 마당’이라고도 했다. 저습지대로 쓸모없는 황무지였다고 한다. 그러나 6. 25사변 이후 대구로 점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게 됐다.이곳은 대구의 북쪽 관문구실을 한 교통의 중심지가 돼 이 일대 전체가 넓은 장터로 변했다. 그래서 한때는 ‘넓은 마당’이라고 부르기도 했던 것이다. 특히 이곳은 땔감(주로 소나무 잎)과 구들장을 팔기 위해 인근 시골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었다.그러나 비만 오면 땅이 질어 대단히 불편했다. 주민들은 대구읍성을 철거할 때 나온 돌로 비만 오면 질퍽한 습지를 메워서 자갈을 많이 깔아놓게 됐다. 그 후에 사람들은 ‘넓은 마당’ 대신‘자갈마당’이라고 부르게 됐다고 한다.자갈마당은 대구시의 대표적인 성매매 집결지인 데다가 집결지에서 300m도 채 안 떨어진 곳에 대구 수창초등학교가 있고 인근의 옛 전매청 자리에 대구역센트럴자이 아파트가 당시 신축 중인 지라 대구시 및 많은 시민들이 폐쇄를 원했다. △성매매 특별법 이후 쇠락의 길 걸어 자갈마당이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2004년 성매매방지 특별법이 시행되면서부터다. 특별법 제정 이전에는 약 350명이 일할 정도로 규모가 컸으나, 제정 이후에는 100여 명으로 규모가 줄어들었다. 2015년부터는 도시철도 3호선 개통과 대규모 아파트 건설로 인해 집결지 주변의 유동인구가 늘면서 ‘자갈마당’의 폐쇄를 요구하는 민원이 빗발쳤고, 이는 집결지 정비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대구시는 도심부적격시설(1만 4000㎡)과 상가 등 1만 9000㎡를 재개발해 주거시설과 공원을 조성하려고 했다. 대구시에 따르면, 당시 ‘자갈마당 재개발’에는 민영과 공영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지만, 대구시는 ‘민영·공영 병행’이라는 강수를 던지며 사업 추진에 나섰다. 그 결과 2019년 1월 ㈜도원개발이 부지를 매입해 사업 승인을 신청하며 본격적인 개발에 발을 뗐다. △폐쇄를 위한 노력시가 재정비에 착수하자 자갈마당에 위치한 건물주들은 쉽사리 수긍하지 않았다. 저항도 심했다. 하지만 시의 의지는 확고했다. 물러서기보다 각종 제제 수단을 내세워 압박하며 강력한 정비 의지를 내세웠다. 지속적인 대화가 오갔고, 결국 중구 도원동 일대를 민간 주도로 재개발한다는데 합의를 이끌어 냈다. 건물주 80% 이상 매수 동의를 받은 시는 이후 재개발에 속도를 냈고, 성공적으로 일대를 깔끔히 정비했다.당시 시는 건물주와는 민간개발로 합의를 했지만 성매매 여성들은 어떻게 할 것인지를 놓고 고민이 많았다. 생존권을 내세운 이들이 반발한다면 정비도 쉽지 않지만 해결에 시간이 많이 소요될 것이 뻔해서였다. 예민한 문제이기도 했고 조심스럽기도 한 이 사안에 대해 시는 과감한 지원이라는 카드를 꺼냈다.먼저 시는 2016년 자갈마당을 폐쇄하기 위해 성매매 피해자 자활 지원 조례를 제정했다. 성매매 피해 여성에게는 10개월간 생계유지비 월 100만원, 훈련비 300만원, 주거 이전비 700만원 등 최대 2000만원을 지원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이외에 타 기관의 이런저런 지원책도 함께 제시되며 힘을 보탰다. 그 결과, 순조롭게 관련 일이 추진됐다. 대구시에 따르면, 조례 제정 이후 2018년까지 57명이 상담을, 27명이 자활 지원을 받았다. 전체 성매매 여성 추정인원 110명 중에서 4분의 1 정도는 시의 지원을 받은 후 현장을 떠났고 5명은 새로 취업에 성공하기도 했다.대구 여성인권센터 관계자는 “성매매 자체가 불법이다 보니 개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전부터 자활 사업을 통해 성매매 여성의 정착을 유도하고 있었는데 시 지원책이 나오니 순순히 그걸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고 전했다. 이는 자갈마당 사업장 철거 전에 이미 성매매 여성 이주가 모두 완료된 것에서도 확인된다. 110여년을 버티어 온 자갈마당은 그렇게 해서 2019년 5월 모든 영업을 중단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자갈마당의 현재 모습대구시는 이 일대의 대구 도심부적격시설(1만4000㎡)과 상가 등 1만9000㎡를 재개발해 주거시설과 공원 조성을 계획했다. 2019년 6월 4일, 시행사 ㈜도원개발에 의해 자갈마당 철거 작업이 시작됐다. 1달가량 진행된 철거 현장에는 많은 주민들이 나와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당연 찬반 논쟁이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호사가들이 한잔 후 내뱉는 입담에 불과했을 뿐 개발은 계획대로 진행됐고, 자갈마당 부지에는 현재 주상복합아파트가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역사 속 자갈마당은 과거 부정적인 이미지와는 별개로 이 일대 원도심 개발의 원심력 작용을 하기도 했다. 그간은 그곳이 대구 지역 최고 번화가인 동성로로 도보로 이용이 가능하며 대구역도 인접해 있어 대구 지역에서도 마지막 남은 노른자위지로 입지를 평가받았었지만 자갈마당 존재 때문에 일대 개발은 엄두도 못낸 채 있었다. 그러나 자갈마당이 없어지면서 일대는 입지적인 장점 때문에 재개발, 재건축, 도시정비사업 등이 잇따랐고 지금은 대구 신흥 주거지역으로 거듭나고 있다. △포항도 과감한 결단을포항 성매매 집결지 ‘중대’ 역시 많은 인구가 거주하고 있는 중앙동에 있어 대구 ‘자갈마당’과는 얼추 비슷한 환경에 처해 있다.그러나 이 문제 처리에 있어선 대구시와 포항시 간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대구시는 철거 원칙 아래 대책을 수립한 후엔 과감하게 또 속전속결로 이 사안을 정리했다. 반면 포항시는 다소 미지근하다. 현재의 성매매집결지를 그대로 놔두고 3m 길 바로 건너편 구 포항역사에 70층 높이의 주상복합 건물, 그것도 5성급 호텔 까지 입주를 내용으로 하는 인허가를 내줬다.기자는 이번에 포항성매매 집결지를 취재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에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서고 호텔이 문을 열면 외국인들이나 관광객들이 바로 눈앞에 보이는 성매매 실태를 보고 포항을 어떻게 생각할까’ ‘성매매 집결지 건축주는 그렇더라도 그 주변에 살고 있는 주민은 또 뭔가. ‘왜 다른 곳은 다 정리하는데 포항은 미진할까’ 참으로 난해한 질문들이 수없이 오갔다. 그러나 취재 기간 내내 어디 한군데서라도 속 시원한 답을 듣지 못했다.성매매집결지는 그 도시의 품격 및 품위와도 연결된다.여성친화도시 포항, 100만 포항을 기대한다면 이제 포항성매매집결지 정도는 정리할 때가 됐다. 현장에 답이 있다고들 했다. 글로벌 포항을 외치는 이면에는 아직도 60∼70 대 여성이 성을 파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 포항이다. 그런 점에서 대구의 자갈마당 사례는 포항에게 좋은 시금석이다./김재욱 기자·성지영 인턴기자끝

2024-08-26

불어나는 이자에 얽매여… 서른부터 지옥 같은 22년 세월

22일 오후 기자는 영등포와 포항 등지에서 22년간 성매매를 하며 살아온 65세 한 여성을 만났다. 아래는 인터뷰를 통해 그녀에게 들은 이야기를 독백 형식으로 재구성한 것이다.▲9세 때부터 시작한 식모살이나는 성매매 여성이었다. 태어난 곳은 강원도 오지마을, 네 남매 중 둘째로 위로 오빠 한 명과 밑으론 여동생 한 명, 남동생 한 명이 있다. 우리 집은 처음부터 가난했다. 노름을 좋아한 아버지는 어머니와 우리에게 빚만 남기고 일찍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를 원망할 틈도 없이 나는 대처(大處)로 식모살이를 떠나야 했다. 어머니의 장사를 돕기 위해서다. 그때 내 나이 겨우 9살, 나는 그 집 아기를 보살폈다.지금 생각하면 아기가 아기를 키운 꼴이다. 그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7년을 꼬박 일했다. 남들 다 다니는 국민학교(초등학교)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식모 생활을 하면서 꾸준히 엄마에게 돈을 보냈지만 턱없이 부족했다. 나는 또다시 큰 오빠를 따라 서울 변두리 봉제공장으로 갔다. 어렸을 때부터 옆집 바느질거리를 조금씩 맡아오며 밥을 얻어먹은 터라 곁눈질로 배운 손기술로 잠시 그곳에서 일할 수 있었다. 그래도 돈은 늘 부족했다. 워낙 없던 살림이라 돈을 보내도 겨우 굶주림을 면할 정도였다. 결국 엄마는 23살이 되던 해에 나를 시집보냈다. 한 명이라도 군식구를 줄이겠다는 심산이었을 것이다. 결혼 상대는 장사하는 집 아들이었다. 기구한 팔자는 타고난 것일까? 남편은 평소에는 멀쩡한데 술만 마시면 날 때렸다. 하루는 뺨을 얼마나 세게 때렸는지 고막이 나가버렸다. 그날부터 소리가 점점 들리지 않게 되더니 지금은 거의 들리지 않는다. 의사는 일찍 병원에 갔으면 이 정도로 심해지지 않았을 것이라 했다. 그땐 그럴 수 없었다. 남편은 심장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나에게 남겨진 두 아이 때문에 원망할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나는 더 큰 돈이 필요했다.봉제 공장을 다니던 중 내 사정을 아는 동료 하나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영등포 신세계백화점 너머로 가면 큰돈을 만질 수 있어. 정 급하면 그곳으로 가봐.” 나는 그곳이 어딘지 알고 있었다. 내 나이 서른살이었다. ▲영등포에서 포항으로 오기까지처음 내가 영등포에서 했던 건 ‘나까이’(호객꾼) 일이다. 나이가 많은 탓에 직접 성매매를 시키기보단 손님을 호객하는 역할을 준 것이다. 그 일도 쉽지 않았다. 돈도 많이 벌지 못했다. 직접적으로 성매매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빌린 돈이 있으니 견뎌야 했다. 선불금 2000만 원, 나는 2000만 원을 벌기 위해 5년 동안 일을 했지만 매달 10%씩 불어나는 이자 탓에 돈을 다 갚지 못하고 포항으로 내려왔다. 포항은 직접 성매매를 할 수 있어 돈을 더 벌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갚아야 할 돈이 남아 있었지만, 자식들에게 생활비를 보내야 했기에 나는 또 업주에게 5000만 원을 빌렸다. 지옥 같은 22년은 그 5000만 원으로부터 시작됐다.▲온갖 욕설을 들어야 했던 포항포항 뱃사람들이 거칠다는 것은 영등포에서 일할 때부터 알고 있었다. 그래도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하루는 술을 마시고 온 남자 손님이 잠자리가 마음에 안 들었다면서 욕설과 함께 내 목을 졸랐다. 나는 속옷도 입지 못한 채 거리로 뛰쳐나왔다. 주위에 있던 여성들이 급하게 수건과 담요를 가지고 나와 나를 감싸 안고 업소 안으로 들어온 적도 있었다. 관계 가진후에 화대를 주기 싫어서 경찰에 신고하겠다며 돈을 돌려받으려던 남성, 특이한 성적 취향을 강요한 남성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일들을 겪었다. 하루에 적게는 5명, 많게는 10명의 남성들과 관계를 가졌다. 남성들은 툭하면 나를 바보로 불렀다.초등학교도 못 나온 탓에 글을 읽을 수도 없었고 귀가 어두워 불러도 대답을 못했던 탓이다. 업주들은 이런 나의 상황을 교묘하게 이용했다. 일한 만큼 돈을 주기 시작한 것은 내가 달력에 작은 동그라미를 그려 하루에 받은 남자 손님들의 수를 세기 시작한 때부터다. 억울했지만 바보 같은 내 자신을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나는 포항에 와서 성매매에 뛰어들어서야 업주들에게 빌린 돈을 다 갚을 수 있었다. 돈을 다 갚고 나니 업주가 오히려 나에게 20만 원을 돌려줬다. 위로금인지, 양심에 찔린 건지 모르겠으나 그날을 절대 잊지 못한다. 빚을 다 갚은 뒤에도 약 19년간 더 성매매를 했다. 그것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50대 초가 되니 점점 몸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원래도 하혈을 자주 하긴 했지만, 자궁을 적출해야 할 수준까지 간 줄은 몰랐다. 나는 모아둔 200만 원을 들고 병원에 갔다. 병원에서는 보호자의 동의가 있어야 수술이 가능하다고 했다. 수술은 해야겠기에 어쩔 수 없이 아들에게 연락해다. 그렇게 5년 만에 아들을 만났다. 아들을 본 순간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아들은 지금까지도 내가 성매매를 했다는 사실을 모른다. 알게 되면 나를 사람처럼 보지 않을 것 같다는 두려움에 혼자 모든 시련을 견뎠다. ▲내 꿈은 공주방을 가지는 것나는 57세에 성매매를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집결지 주변에 여성상담센터가 있는 줄은 알았지만, 포항에 온 지 10년이 훌쩍 지나고 나서야 그곳을 방문했다. 그곳에 있는 상담 선생님들은 너무나 착했다.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웃어주고 내 사연을 궁금해 했다. 나는 그들을 따라 착실히 공부했다. 1년간 낮에는 자격증 공부를 하고 밤에는 성매매를 했다. 1년의 피나는 노력끝에 기술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길로 나는 22년간 몸담았던 업소에서 짐을 싸서 나왔다. 업소를 나오기까지 큰 결단이 필요했다. 10년 넘게 함께한 동료의 곁을 떠나야 한다는 게 두렵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곳을 나왔다.그곳을 떠나고서야 알았다. 집결지에 있는 동료들이 왜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지를. 사실 이곳에 있으면 세상이 온통 3평 하늘처럼 보인다. 우물안 개구리가 되는 것이다. 떠나면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와락 겁이 나기도 한다.하지만 동료나 동생들에게 이야기 해주고 싶다. 하루빨리 그곳을 빠져나오라고. 너희가 보는 세상이 다가 아니라고. 사실 나도 이곳을 떠났지만 요즘도 마음이 답답해지면 여기있는 친구들과 이야기 하곤한다. 이곳은 어쩔 수 없이 나의 고향이자 친정같은 곳이 되었으니까.성매매 집결지를 떠나 8년의 세월이 흐르고 지금은 중앙동 주변에 집을 얻어 살고 있다. 새벽 4시에 출근해 2시간 가량 차를 타고 농촌마을로 가 사과를 따기도 하고, 섬으로 가서 밭일을 돕기도 한다. 그래도 8년 전보단 행복하다. 아무도 나를 바보라 부르지 않기 때문이다.내 꿈은 ‘공주방’을 얻는 것이다. “육십이 넘은 할머니가 웬 공주방이냐”고 하겠지만, 식모 생활하던 시절 주인집 딸의 방이 아직도 눈앞에 아른거린다. 하얀색 레이스 침대에 분홍색 캐노피 커튼이 달린 방을 가지고 싶다. 모든 근심과 걱정을 벗어버리고 그방에서 고운 꿈을 꾸고 싶다. 오순도순 가족들과 모여사는 행복한 꿈을./성지영 인턴기자 thepen02@kbmaeil.com

2024-08-22

“성매매 여성의 심리·경제적 자립 지원 최우선 과제”

성매매 집결지 정비를 둘러싸고 지방자치단체마다 홍역을 앓았다. 포항시도 예외는 아니었다.포항시의 성매매 집결지 3곳을 밀어내고 도시재생차원의 환경을 조성하고자 했다. 하지만 성매매집결지를 둘러싼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이 충돌해 이렇다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후 옛포항역 성매매집결지 주변에 69층 규모의 주상복합단지를 조성하자는 개발흐름이 진행됨에 따라 적극적인 정비의 필요성이 높아졌다.이에 포항시는 2024년 1월 18일, 옛 포항역 성매매 집결지 정비 테스크 포스(이하 TF)를 발족했다. 장상길 부시장을 단장으로 구성된 TF는 1단 2팀(자활지원팀, 도시정비팀) 4반(피해여성지원반, 지도단속반, 공간정비반, 운영지원반)으로 구성되었으며, 집결지 정비 완료 시까지 협업 체제로 운영될 예정이다. TF는 현재까지 두 차례 회의를 진행했으며 연구용역을 통한 집결지 실태조사와 도시개발과 관련한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본지는 포항시 성매매 집결지 정비를 전담하고 있는 포항시 여성가족과 양성평등문화팀과 포항시의회 김은주 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의 인터뷰를 통해 집결지 정비를 위한 포항시의 현재까지의 노력과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봤다. “시민과 집결지 걸으며 ‘성매매’ 인식부터 바꾸려 노력” 인터뷰 정연학 포항시 여성가족과 과장  - 성매매집결지 정비를 위해 시 차원에서는 어떤 노력을 해왔는가. △포항시는 2021년부터 꾸준히 성매매 집결지 정비를 위해 힘쓰고 있다. 같은 해 4월 민관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성매매 집결지 지역 협의체를 발족했다. 2023년 4월부터 6개월간 연구용역을 통해 ‘포항시 성매매집결지 대책 기본계획’보고서를 제작했다.보고서에는 성매매집결지 현황 분석, 국내외 성매매집결지 정비 사례분석, 성매매집결지에 대한 시민의식 조사, 옛 포항역 성매매집결지 일대 도심 활성화를 위한 기본구상, 성매매피해여성 자활지원 방안 연구 등이 담겨져 있다. 올해 4월에는 집결지 정비의 세부적인 업무를 논의하게 위해 관련부서 팀장들로 구성된 실무협의체를 구성하여 운영하고 있다. 이외에도 성매매집결지 걷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성매매집결지 걷기 운동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달라. △집결지 정비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려면 시민들을 대상으로 정비의 필요성과 성매매 여성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를 제대로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성매매집결지 걷기 운동은  시민들이 성매매 집결지를 직접 보고 걸으며, 성매매집결지 정비와 성매매피해여성 자립지원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걷기 활동은 올해 4~6월까지 진행했다. 집결지 걷기 운동은 포항시 부시장을 비롯한 행정기관도 함께 했다. 시민 대상으로는 현재까지 5개 단체 100여명이 참여했다. 걷기 활동을 마치고난 시민들은‘옛날부터 있었던 성매매집결지가 현재까지 영업 하는 줄 몰랐다’, ‘하루빨리 성매매집결지는 정비되어야 한다’는 등의 다양한 반응과 함께 집결지 정비에 대해서 함께 공감했다. -포항 성매매집결지 정비에 있어 어떤 점이 가장 힘든가. △성매매 집결지 정비 사업은 정비유형에 따라 여러 사업들이 균형 있게 추진 되어야 하기 때문에 중장기적인 사업이 되는 경우가 많다. 타 지역의 정비 사례를 보더라도 짧게는 10년 길게는 20년이 걸리기도 한다. 하지만 현재까지 포항시는 구체적인 청사진이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이 점이 가장 힘들다.포항시는 여건에 맞는 최적의 정비 계획이 나올 수 있도록 각 부서와 더 긴밀한 협의를 통해 세부계획을 완성해 나갈 계획이다. 또 다른 어려움이 있다면 성매매 집결지가 없으면 ‘성매매 범죄 발생률이 높아질 것이다’, ‘성매매는 필요악이다’라는 일부 사람들의 인식 때문이라 할 수 있겠다. -경찰 단속과 같은 강력한 방법으로 정비를 할 수는 없는 것인가? △현재 집결지 정비에 있어 경찰 단속은 중요한 부분 중 하나다. 현재 경찰의 입장은 집결지 폐쇄를 위해 적극적으로 단속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성매매집결지 정비 문제의 경우 여러 가지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있어 무조건적인 단속이 답이 되지 않는다. 타 지자체 사례를 살펴보아도, 공간정비·지도단속·피해여성지원 등 3가지 중점과제를 가지고 함께 진행을 했을때 완전한 집결지 정비가 가능했다. 만약 경찰 단속만 강행할 경우 성매매 여성이 중앙동 공간에서만 사라질 뿐, 다른 지역 성매매 업소로 여성들이 유입되는 양상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때문에 성매매 여성의 자활지원 조례 제정이 중요하다. 조례를 제정하고 나면 여성들이 시 차원의 보호를 받고 성매매 자연스럽게 그만둘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포항시는 관련 조례안 발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집결지 정비계획 수립되면 자활 지원 조례제정 속도” 인터뷰 김은주 포항시의회 민주당 비례대표 - 포항시 성매매 집결지 정비를 위해서는 집결지 인근의 도시 개발 계획과 성매매 여성들을 위한 자활 조례 제정이 시급한 것으로 안다. 자활 조례 제정에 관련한 진행 상황은 어떠한가.  △올해 안으로 포항시에서 성매매 집결지 정비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한다면 그와 동시에 성매매여성에 대한 자활 지원 조례 제정도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라 본다.지난해 포항시에서 성매매 집결지와 관련해 용역을 실시했다. 용역 결과 중에 성매매여성들에게 자활에 대한 의지를 물었을 때 ‘자활 지원이 된다면 탈성매매를 하겠다’라는 결과가 있었다. 이로써 조례 제정의 필요성이 이미 증명 되었다.성매매 시장에 유입되는 여성의 경우에는 학력, 가정형편 등 사회적 자본이 취약하기 때문에 유입되는 경우가 많다. ‘쉽게 돈 벌기 위해서 성매매를 한다’라는 성매매에 대한 통념을 ‘성매매 여성의 몸을 기반으로 쉽게 돈을 버는 포주나 공간제공자’로 바로 세우는 인식 변화도 수반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또한 성매매여성에 대한 자활 지원 조례를 제정하는 것과 동시에 이제는 포항시에서는 성매매 집결지 정비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수립해야 할 시점이다. -성매매 집결지 정비에 대한 논의를 지금까지 진행하면서 시의회 안에서나 시와 소통하면서 겪은 과정을 평가한다면. △의회에 들어오기 전부터, 그리고 시의원으로 성매매 집결지 관련해 공론화하는 과정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하지만 지금까지 성매매에 대해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왜곡된 인식들, ‘쉽게 돈 벌기 위해서 성매매한다.’, ‘성매매는 필요악이다’, ‘성매매가 없어지면 성폭력이 증가할 것이다’라는 통념을 하나하나 이해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나는 전공자이기도 하고 여성운동가 출신이라 다른 분들과 이해의 스펙트럼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충분히 설명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하겠다.앞으로도 포항시와 의회, 그리고 지역사회와 함께 협력해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역할을 다 하겠다. -앞으로 포항시가 성매매 집결지 정비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성매매 집결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모두의 협력이 최우선 되어야 한다.포항시와 포항시의회는 물론이고 포항시민들이 함께 성매매 집결지 문제에 대해 더 이상 외면하거나 회피하지 말고,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추진해야 할 것이다. 또한 경찰과 검찰, 세무서, 소방서 등 관련 공공기관의 협력도 중요하다./성지영 인턴기자 thepen02@kbmaeil.com

2024-08-21

70년 함께한 포항역 사라졌지만, 업소 30여 곳은 여전히 영업

그곳에 켜진 붉은 등은 아직 꺼지지 않고 있다. 해가 지고 밤 8시쯤이 되면 낮엔 커튼으로 가려져 있던 조그만 가게들의 대형 유리창이 빨간 조명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포항시 중앙동 성매매 집결지 속칭 ‘중대’다.현재 포항시에는 약 35개의 성매매 업소가 남아 있다. 1950년대 6·25전쟁 직후 옛 포항역 주변에 형성된 것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70여 년 세월이 흐르며 변화된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어째서 이곳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걸까?성매매 집결지 운영은 포항만의 문제는 아니다. 각 지자체의 공통적인 문제였기에 서울, 부산, 대구 등 대도시에서는 시 차원의 집결지 정비 사업을 진행 중이거나 완료했다. 하지만, 포항시는 집결지 지척에서 도심 개발을 진행하면서도 해당 구역을 개발 구역에 포함하지 않는 등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다.본지는 2004년부터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되고 있음에도 사라지지 않는 포항의 성매매 실태를 파악하고, 사회적 대안을 모색하는 기획기사를 3회에 걸쳐 연재한다. ▲ 성매매 집결지 6·25 직후 포항역 주변에 형성 지루한 폭염이 지속되는 여름밤, 옛 포항역 주변에 있는 중대 거리를 찾았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니 말로만 듣던 유리방(성매매 업소)이 다닥다닥 모여 있었다. 일반인들은 다니기가 꺼려지는 골목길이었다. 각 업소마다 한 명 또는 두 명의 여성이 유리방에 앉아 소위 ‘손님’을 기다렸다.  이런 곳에 누가 올까. 의문도 들었지만 그 사이, 옷깃을 여민 한  남성이 유리방 한 곳으로 재빨리 들어가는 광경이 눈 앞에 들어왔다. 포항시 성매매 집결지는 70여 년 전인 6·25전쟁 직후 포항역 주변에 하나 둘씩 형성됐다. 당시 남편을 잃은 여성들과 생활 형편이 어려운 여성들이 모여들면서 성매매 업소들이 생겨났다. 이후 미군 부대가 포항에 주둔하고 대형 공장이 들어서면서 100여 곳까지 불어나기도 했다. 오랜 기간 그 지역에서 살던 주민 A씨는 “성매매 업소가 많을 때는 골목을 넘어 대로변까지 붉은 조명이 넘실거릴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2015년 포항역이 중앙동에서 흥해읍으로 이전했고, 옛 포항역은 2021년 완전 폐쇄됐지만, 성매매 업소들은 아직도 거기 남았다. ▲ 군산 성매매 집결지 화재로 폐쇄 논의 확산  2000년 9월. 전라북도 군산시 성매매 집결지에서 일어난 화재 사건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전국에 산재한 성매매 집결지 폐쇄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계기가 됐다.  당시 군산 성매매 여성 15명은 철문과 쇠창살로 폐쇄된 방에 감금된 상태였기에 불길을 피하지 못하고 거기서 목숨을 잃었다. 이 사건으로 사람들은 성매매 집결지의 실태를 보다 정확하게 알게 됐고, 2004년엔 성매매에 대해 형사 처벌을 대폭 강화한 특별법이 시행되기에 이르렀다. ‘성매매 피해자 지원을 위한 현장상담센터협의회’에 따르면 성매매방지특별법이 시행된 2004년부터 2023년도까지 폐쇄된 전국의 중요 성매매 집결지는 총 14곳. 연도별로 살펴보면 △2006년 강원도 춘천시 장미촌 △2010년 강원도 동해시 동해부산가 △2013년 춘천 난초촌 △2014년 부산시 범전동300번지 및 해운대 609 △2020년 인천시 숭의동 옐로하우스 대구시 자갈마당 △2021년 서울시 청량리 588 등이다.  그 결과 현재 전국에 남아 있는 성매매 집결지는 10여 곳 정도로 줄어들었다. 대표적인 곳이 서울 영등포와 부산 완월동 등이다.  포항 중앙동 성매매 집결지도 성매매특별법 제정과 코로나19 사태의 여파로 운영되는 업소 수가 줄었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은 상태다. ▲ 민관이 힘 모아 문제 해결한 대구 ‘자갈마당’ 성매매 근절에 노력하는 단체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포항시는 성매매 집결지 정비의 의지를 보이고 있지 않다’는 것. 사실일까? 포항시가 그동안 성매매 집결지 문제에 손을 놓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책이 늘 미온적이다 보니 실효성을 거두지 못했다. 포항시가 성매매집결지 바로 앞, 구 포항역 일원에 개발하고 있는 사업이 대표적이다. 시는 이곳 땅을 용도 변경, 69층 규모의 주상복합건물 건립이 가능토록 해줬다.  하지만, 성매매 집결지 공간을 사업 대상 구역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시가 업소 건물주 및 업소 대표들과 협의에 나섰으나 불발되자 개발대상에서 제외했다. 다만 시는 대형 주상복합건물이 세워지면 주변 땅값이 상승해 ‘중대’가 자연스레 사라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포항시가 간과한 것이 있다. 타 지역 성매매 집결지 폐쇄 사례 가운데 ‘자연 도태’ 방식으로 정비가 이루어진 곳은 없다는 게 바로 그것이다.  지금까지 폐쇄된 성매매 집결지에 대한 정비 사업 유형을 살펴보면 경찰 단속 등의 자율 정비가 6곳, 도시환경 정비 사업이 2곳, 도시계획시설 사업이 2곳, 도시재생사업 2곳 등이다. 유형들 모두가 시가 정비의 주체가 돼 이해관계자들과 소통하고 경찰과의 협업을 통해 정비한 점이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성매매로 인해 경제적 이익을 얻는 알선자들을 지속적으로 압박하고, 성매매 집결지 주변의 물리적 환경 개선으로 집결지를 서서히 사라지게 한 것이다.  대구 도원동(자갈마당)은 대표적인 사례다. 대구시는 민간개발업체(도원개발)와 함께 대대적인 도시개발 사업을 진행했다. 당시 자갈마당 부지 소유주들이 시세보다 높은 땅값을 요구하거나 매매 비용을 일시불로 요구하는 등 개발사와 갈등이 있었다. 그런 상황이었음에도 민간개발업체는 대구시와의 업무협약을 통해 행정적, 금전적 지원을 받아 이를 토대로 정비 사업을 추진해 냈다.  그 과정에서 대구시는 집결지 폐쇄 기한을 정해 그곳 건물주와 성매매 여성들에게 이전의 필요성을 설득하는 한편 집결지 주변 CCTV 추가 설치(6대), 현금인출기(ATM) 2대 철거, 보안등 47개 교체 등 환경 개선에 집중했다. 또 성매매 방지 홍보물(전단지 8000매, 포스터 300장)을 제작·배포하고, 대구외국인력지원센터에서 외국인 근로자 600명을 대상으로 성 인식 개선교육을 실시하기도 했다. 성매매 여성들의 자활을 위한 금전적 지원도 해줬다.  대구시는 광역자치단체로는 최초로 성매매 여성 자활 지원 조례를 제정해 성매매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여성에게 1인당 최대 2000만 원까지 지급하며 자활을 도왔다.▲포항 성매매 집결지 정비 TF 구성그렇다면 포항은 성매매 집결지 정비를 안하는 걸까 못하는 것일까.포항은 지난 2021년 ‘포항시 성매매 집결지 대책 지역협의체’를 발족하고 그간 성매매 집결지 대책 마련에 관한 각계의 의견을 듣고자 했다. 또, 옛 포항역 개발 결정 후인 올해 초엔 ‘포항시 성매매 집결지 정비 TF’를 만들었다.올해 초 결성된 ‘포항시 성매매 집결지 정비 TF’역시 그간 2차례 회의를 진행했지만, 실효성 있는 대책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성지영 인턴기자 thepen02@kbmaeil.com

2024-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