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밑 머리에 흙이 붙어 있으면, 성공한 농부야. 손에 있는 흙을 털어내는 것은 하수야. 빗소리가 처마를 쿵쿵 치는데도 집안에만 있으면, 농부라고 할 수 있나”작고한 아무개 선생님이 막걸리 한 잔을 들이키며 하던 소리다. 스스로 평생을 ‘촌구석’이라고 부르던 곳에서 은거하던 그는 농사 예찬론자였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너도 촌에 와서 살아라”였다.경상북도 영양군은 아직도 ‘오지’라고 불린다. 상주와 영덕을 잇는 고속도로가 생겼지만, 고속도로를 나가면 굽이굽이 1차선 도로를 1시간 이상 통과해야만 도착할 수 있다. 마을 주민들도 낯선 차량의 등장에 한참을 쳐다보는 그런 곳이고, 자동차 길 안내도 오류를 일으키는 곳. 그곳에 청년 농부 이강우 대표가 산다. 아직 어린 멜론의 모습. 이강우 대표는 지난해부터 멜론 재배를 시작했으며 올해가 2번째다.
영양군에 정착한 이강우 대표는 ‘촌에 와서 사는 사람’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도 안산에서 쭉 자랐던 89년생 이강우가 ‘촌’에 와서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제가 농사를 짓게 될지는 전혀 몰랐어요. 하지만 창업에 대한 꿈은 항상 가지고 있었죠. 다만, 경제적인 부분이 창업을 막았고, 취업을 했어요. 영양이라는 곳은 잘 몰랐는데, 지역에 있는 연구소로 1년 정도 발령을 받아 일을 했죠. 그런데 제가 도시생활을 했다 보니까 농촌에 대한 경험이 거의 없었어요. 1년 정도 살다 보니까 너무 좋은거에요. 사람이 너무 많은 환경에서 살다가, 시골이라는 환경이 너무 좋았죠. 다행하게도 회사에서 와이프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됐죠. 또 ‘내가 원래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는 과정에, 경상북도의 청년 창업 촉진 공고를 보면서 창업을 하게 됐어요.”이야기를 나누며 얼핏 그의 얼굴을 살폈다. ‘서울내기’라고는 할 수 없을 정도의 검게 그을린 얼굴에 농부의 상징인 밀짚모자가 어울리는 모습이다. 옷에도 군데군데 흙이 묻어 있는 작업복 스타일. 그럼에도 경상도 사투리가 아닌 서울말을 쓰는 그는 ‘서울내기’였다. 그래서 조심스레 ‘텃세’에 대해 물었다. ‘텃세’에 대한 그의 대답은 “제가 느끼지 못한 것일까요?”였다.“사실 저는 주위분들이 농민이다 보니까 텃세에 대해서는 많이 들었어요. 귀농·귀촌을 하고 한 곳의 마을에 정착하기까지 일종의 관계가 있잖아요. 도시에서는 아파트 옆동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살다가 사람과 사람의 인프라가 발전한 농촌에서 살기 위해서는 일종의 적응기간이 필요하겠죠. 그런데 저는 이러한 텃세를 전혀 느껴보지 못했어요. 이유가 무엇인지 고민을 해봤는데, 영양에 사는 분들의 저를 보는 인식이 ‘서울 토박이’, ‘서울내기’라는 식의 첫인상을 들지 않게 했던 것 같아요. 주위의 어르신분들께도 저는 한 번도 제 주장을 나타낸적이 없어요. 저는 항상 배우려는 입장에서 그분들을 응대했고, 존중했어요.”정말 ‘텃세’가 없었던 것일까. 귀농·귀촌을 꺼리는 이유의 가장 상단에 위치한 것이 ‘텃세’인데, 이강우 대표에게 자세하기 물었다.“처음 이야기하는 것인데, 사실 제 주거지가 영양 읍내에요. 영양에서는 가장 번화가죠. 마을단위에서 살면 텃세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아직 겪지를 못했어요. 운이 좋은 것 같기도 해요. 하지만 단 한 번도 영양에 와서 (사람 문제로)힘들었던 적은 없었어요.” □초보 농부? 멜론으로 승부수를인터넷에서 이강우 대표의 사업체 이름인 ‘신아푸드’를 검색하면, 곳곳에서 그의 소식을 알 수 있다. 이강우 대표의 아내인 황사원 씨가 직접 ‘멜론농사이야기’라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멜론이 자라는 과정과 방법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은 덤이다. 그런데 영양에서 멜론이라니….“아직 애기농부죠. 제가 원래는 ‘새싹땅콩’이라는 농산물로 처음 창업을 했어요. ‘새싹땅콩’은 수경재배기라는 기계를 통해 재배를 하는 것이니, 정식 농부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어요. 특히, (직업상)농부로 인정을 받으려면 농업경영체 등록을 해야 정식 농업인이 되는 과정이 있거든요. 그런데 ‘새싹땅콩’으로는 농업인으로 등록이 되지 않는 과정이 있었어요. 사실 실질적인 농사라고 하는 활동은 작년 여름부터에요.”그의 말대로 스마트팜 한켠으로는 덜자란 멜론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그러고보니 인터뷰를 하는 사무실 책상에도 반으로 잘린 ‘아기 멜론’이 있다.“작년부터 멜론을 키우고 있어요. 진짜 후회하고 있기도 하고요(웃음). 멜론이라는 작물이 진짜 어려워요. 손도 무지하게 많이 가고요. 멜론은 진짜 어려운 작물인 것 같아요. 경험치가 쌓이고 있지만, 멜론은 2번 째 작기에요. 너무 애기죠? 농업인으로 치면 너무 애긴데, 배워가는 과정이고 제 노하우를 만들고 있는 과정이더라구요, 제가 직접 해보고 실패하더라도 해보고 망하는 것이 누군가 원망을 하지 않게 되잖아요. 논문만 보고, 그런걸 해서 유도리있게 변화시켜가면서 해보고 있는 중이에요.”이강우 대표의 이야기대로, 그는 여전히 공부 중이다. 농업에 대한 지식이 떨어진다고 생각한 이 대표는 근처의 안동대 원예육종과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0.1%도 안되는 30대 농부, 많아졌으면 해요”한동안 계속되는 이강우 대표의 ‘멜론 예찬론’에 제동(?)을 걸기 위해, 그의 농장을 둘러보았다. 마침 나타난 손님들. 근처에서 멜론을 재배하는 분들이라고 한다. 얼핏보기에도 나이가 지긋한 손님들은 온실에서 재배되는 멜론들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갖가지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한참 손님들과 이야기를 마친 이강우 대표는 “농사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운 시스템이죠. 저에게 스마트팜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기회가 오고, 연결되면서 길을 개척하고 있다는 것. 힘든 시기가 찾아오니까 기회도 찾아온거죠. 물론 멜론을 한다고 해서 바로 상품성 있는 멜론이 나오는 것은 아니에요. 재배기술을 익히는 것에만 몇 년 걸린다고 하니까 그것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하는 거죠. 지금 오신 분들은 근처 밭에서 멜론을 재배하시는 분들인데, 온실에서 재배하는 멜론에 대해서 공부하러 오신거에요. 미진한 기술이지만 이렇게 서로 공유를 하는 거죠.”그러면서 그는 농촌의 현실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5% 남짓 인구의 농촌. 그나마도 대다수가 고령 인구인 농촌에 대해서 말이다.“제가 농업대에서 학문을 배우고 재배를 하다보니 현실이 보이더라구요. 저희 농업 인구가 전 국민의 5% 이내죠. 고령화된 농부들이 많으니 향후 10년 이내에 은퇴를 하시는 분들도 많을 거에요. 어느 한 논문에서 미래에 농업인들의 수가 2%대로 떨어진다는 통계도 본적이 있어요. 30대 농부는 0.1%도 안될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농업의 길을 택했어요. 하루하루가 힐링이 되는 느낌을 아시나요? 힘은 들죠. 하지만 뭔가 재미있어요.
제가 재미있는 것을 하는 것이 잘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죠. 또 적성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것이 재미있어요. 한 분야에 대해서 내가 랭커가 되듯이 기술자가 되는 길은 순탄하지 않아도 육성의 재미를 느끼고 작물의 생육 시스템이라든지, 환경 자체를 컨트롤하고 이해하고, 공부할 수 있는 부분이요.”이강우 대표와의 이야기 말미, 그의 미래에 대해서 물었다.“아직 아이들은 없어요. 그렇다고 나중에 아이가 생겨도 도시로 내보내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제가 제 아이의 길을 정해주고 싶지는 않아요.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을 해주고 싶지만, 생각해보지는 않았어요. 나중에 자녀가 생기면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은 그래요.”“10년 후요? 저와 같은 청년들을 돕고 싶어요. 체험도 시켜주고, 실습도 시켜주고요. 앞장서서 영양군에 청년을 늘려주는 방법도 찾을 것 같고, 멜론을 영양군의 대표 특산품으로 만들고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 노하우를 전파하고 있지 않을까 해요. 지역에 또 하나의 길을 만드는 것이 제 꿈이죠.”/박순원기자 god02@kbmaeil.com
2021-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