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소극적 누나와 적극적 동생의 콜라보 사진에 영양을 담아요”

박순원기자
등록일 2021-07-27 20:22 게재일 2021-07-28 17면
스크랩버튼
경북에 청년이 산다<br/>영양 단듸랩스튜디오  허진희·허진수
단듸랩 스튜디오의 작품들.
단듸랩 스튜디오의 작품들.

경상북도 영양군 영양읍 동서상가 3층 ‘단듸랩’. 있어 보이는 이름 만큼이나 아기자기한 또는 이쁘게 꾸며진 스튜디오로 생각했다. 실상은 오래된 건물에 오래된 화장실, 바로 옆에 아이들을 위한 작은 교습소가 있는 곳이었지만 말이다. 이곳에 현실남매 허진희(32)·허진수(30) 씨가 꿈을 키워가고 있다.

“조금 스튜디오가 그렇죠? 영양에서 스튜디오를 구할 때, 군청 주무관님과 함께 돌아다녔지만 한정된 예산에 넓은 장소로 구할 수 있는 곳이 많이 없었어요. 그래도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생각하면, 나쁘지는 않아요.”

‘건물 외관과 스튜디오가 다르다’는 기자의 말에 웃으면서 대답한 진희 씨의 말이다. 실제로 ‘단듸랩’의 스튜디오는 외관과 달리 흰색 배경을 바탕으로 넓직하게 꾸며져 있었다. 사진을 위한 배경 공간과 아기자기한 탁자 등 여느 사진관과 큰 차이는 없다.

‘단듸랩’은 ‘단디해라(제대로 해라)’라는 경상도 방언에서 따왔다. ‘단듸랩’은 가족사진과 단체사진, 증명사진 등 인물사진부터 제품사진, 스냅샷, 광고편집 디자인 등 전문 사진촬영·편집을 제공하는 스튜디오다. 현재는 인물사진보다는 제품의 스냅샷 등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고….

 

‘누나와 동생’ 현실남매의 영양살이 2년째

사진촬영·편집 전문 스튜디오 ‘단듸랩’ 운영

동생 진수씨는 고추농사도 시작 지역민과 소통

‘인싸’ 동생 덕에 농산물 등 상품사진 의뢰 잇따라

“독특한 콘텐츠 개발 지역관광 활성화 힘 되고파”

경북 영양군 영양읍에 마련된 단듸랩 스튜디오 내부.
경북 영양군 영양읍에 마련된 단듸랩 스튜디오 내부.

“저희가 어려서 그런지 영양분들이 잘봐주시는 것들도 있더라구요. 물론 제품의 스냅샷과 광고편집 디자인 같은 것은 지금까지 영양을 비롯해 경상북도에 흔하지 않은 사업이었어요. 그래서인지 대부분 의뢰해주시는 분들이 만족해주시더라구요. 저는 감사할 뿐이죠.”

‘단듸랩’의 작은 성공에는 동생 진수 씨의 몫도 크다. 누나인 진희 씨의 말로는 ‘인싸(인사이더)’의 교과서라는 진수 씨다. 진수 씨에 따르면, 우선 하루 커피 두 잔은 기본이다. 동네 형님(?)들과 함께 하는 축구 모임은 필수고 골프도 수준급이며, 지난해에는 산나물 축제위원회 추진위원도 맡았다. 처음에는 난생 처음 보는 외지인이 나타났으니 “저 녀석들은 누구야?”라는 텃세 아닌 텃세를 겪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가 형님이다. 사실은 아버지뻘의 나이지만 말이다. 그래도 ‘농사짓는 형님’, ‘비료 장사하시는 형님’ 등 영양군 곳곳에 형님들이 포진해 있으니 사진과 디자인 관련되는 일만 있으면 무조건 ‘단듸랩’이 추천 대상 1순위인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단듸랩 스튜디오의 작품들.
단듸랩 스튜디오의 작품들.

“요즈음 고추농사도 시작했어요. 500평 정도 되죠. 아! 물론 아는 형님께서 추천해주신 거죠. 매일 새벽에 나가서 고추를 돌보고 있어요. 벌레가 먹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고, 농작물의 수확이 좋지 않을까 걱정을 하죠. 애착이 가기도 하고, 이미 시작했으니 결과가 좋아야죠.”

동생 진수 씨의 고추 농사 이야기에 누나 진희 씨는 “동생은 이미 영양 사람 다 됐어요”라고 했다. 그 말대로, 영양에서 2년을 넘기지 않은 진수 씨의 얼굴은 검게 타 있었다. 손가락 역시 도시 청년의 그것은 아니었다. 여기저기 그을려지고 상처가 있는 손가락이었다.

단듸랩 스튜디오의 작품들.
단듸랩 스튜디오의 작품들.

□꿈이 현실로… 영양에서 차근차근

현실남매인 허진희 씨와 허진수 씨는 서울 인근인 고양시 출신이다. 영양에는 어떠한 연고도 없다. 이들이 시골 중의 시골인 영양에 자리를 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진희 씨는 서울 상수동과 여의도 벤처기업에서 마케팅 업무를 했다. 출퇴근을 위해서는 매일 1시간 이상 지하철에서 보내야 했던 시간이었다. 특히, 마케터로서의 일 자체는 즐거웠지만, 자신이 부품 취급을 당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기도 했다. 미래가 불안정하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고, 그로 인해 우울해지기까지 했다. 그러던 가운데, 떠오른 곳이 영양이었다.

“물이 너무 깨끗하고 공기도 좋잖아요. 분위기도 좋고요. 늘 생각했던 것이 영양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거였죠. ‘단듸랩’도 마찬가지에요. 옛날부터 사진을 취미 이상으로 했어요. 회사 생활을 하면서 제품 사진 정도는 찍었으니 취미 수준은 아니었죠. 다만, 소극적인 성격이 문제였어요. 그래서 동생이 필요했구요.”

소극적인 진희 씨와는 달리 적극적인 진수 씨는 남매의 사업에는 적격이었다. 대학에서 체육과 관광을 전공했고 천성이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며, 단체에 소속되어 일하는 것을 좋아한다. 심지어 과일 장사, 유아 체육 강사, 스키강사, 회사 영업사원 등 그동안 해온 거의 모든 일이 활달하고 유쾌하지 않으면 못하는 일이었다. 어찌보면 누나와의 사업 궁합은 좋은 셈이었다. 가족 관계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매일 싸워요. 늘 사소한 문제로 투닥거리죠. 그래도 일하는 것에는 완벽해요. 서로 조율해야죠. 누나도 마찬가지고 저도 목표가 있거든요.”

진수 씨의 말대로 현실남매의 목표는 영양에서 기반을 잡는 것이다. 미래를 위한 수입을 안정화하는 것. 그래서 진희 씨와 진수 씨의 사업도 다각화 중이다. 열심히 하겠다는 각오가 통한 것일까. 처음 1년 1천500만원으로 잡았던 매출이 매달 평균 400만원의 매출로 껑충 뛰었다. ‘단듸랩’이 생각하는 사진 콘셉트를 영양분들이 받아들이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기분 좋은 오산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만족하지는 않는다. 이제 32살과 30살의 청년이 영양에서 미래를 꿈꾸기 위해서는 말이다.

“고추 농사를 시작한 것도 목표를 이루기 위한 것이죠. 이제는 영상 쪽으로 발을 넒히고 싶어요. 준비도 하고 있구요. 또 관광과 관련한 일도 생각하고 있어요. 대체적으로 지역의 축제는 농산물 판매에 초첨이 맞춰져 있어요. 물론 저도 그것을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축제 자체를 즐길 수 있고, ‘꼭 오고 싶은 영양’을 모토로 지역 관광을 활성화하고 싶어요. 독특한 콘텐츠로 무장하면 분명히 가능할 것 같아요. 영상 디자인이 그 중의 하나일 수도 있구요.”

단듸랩 스튜디오의 남매 허진희(오른쪽)·허진수 씨.
단듸랩 스튜디오의 남매 허진희(오른쪽)·허진수 씨.

□영양에 청년들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경북의 오지라고 불렸던 영양에서 기반을 만들어가고 있는 허진희 씨와 허진수 씨. 이미 두 사람은 스스로를 영양 사람이라고 부르고 있다.

“아직 서울이나 수도권에서는 영양에 대해서 잘 몰라요. 저희가 택배를 주문한 적이 있는데, 택배 기사분이 전화가 오더라구요. ‘강원도인데 단듸랩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씀이셨죠. 택배기사분이 경북 영양을 강원도 양양으로 착각하신 거에요. 친구들도 영양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도 같구요. 그런데 저희가 이곳에 내려오고, 영양에 다녀갔던 친구들이 많아요. 그리고 영양의 자연과 주위를 보고 반한 친구들도 많구요.”

그래서 진희 씨와 진수 씨에게 물었다. ‘영양으로 온 것에 대해 만족하고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이들의 대답은 단호했다.

“만족하고 있어요. 물론 아직 넘어야 하는 산이 많은 것도 사실이죠. 그래서 더욱 노력하고 있는 것이구요. 서울의 남자친구에게 이야기를 했어요. 이후의 일이지만, 주말부부도 생각하고 있구요. 근본적으로는 남자친구와 결혼하게 되면, 영양에 살고 싶어요.”

경북 영양군 영양읍에 마련된 단듸랩 스튜디오 내부.
경북 영양군 영양읍에 마련된 단듸랩 스튜디오 내부.

“저도 여자친구에게 영양에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여자친구의 조건이 연봉 5천만원이더라구요.(웃음) 처음에는 불가능할 것 같았지만, 지금은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더 커요. 농사를 짓고, 앞으로 계획하는 일이 제대로 된다면 분명히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마지막으로 진희 씨와 진수 씨에게 질문을 던졌다. 영양에 청년들이 많아졌으면 하냐고 말이다. 이들은 말했다.

“당연하죠. 청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아는 사이에 동업은 절대 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그것도 현실남매라면 오죽하랴. 하지만 서로를 밀어주고 끌어줄 수 있다면 ‘동업’도 나쁘지는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각자가 가진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 시너지 효과를 내고 하나가 되면, 또 다른 사업을 시작할 수 있으리라. 진희 씨와 진수 씨 남매처럼 말이다. 처음에는 도시 생활에 대한 염증으로 시작한 영양 생활. 그저 영양의 자연이 좋고, 행운이 가미되었던 귀농 생활. 하지만 스스로가 어떻게 풀어내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까.

/박순원기자 god02@kbmaeil.com

경북에 청년이 산다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