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만복기획’ 대표 정유영
경북 영천에는 고향을 디자인하는 아가씨가 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한창이었던 지난 5월에는 첫 채용 공고도 냈다. 그 한 달 전에 진행한 플리마켓에서는 청년들과 지역민들과의 만남의 장을 만들기도 했다. 그것도 펜션 체험권과 경품을 퍼준다는 주제를 걸고서 말이다. 만복기획의 정유영(35) 대표는 자신이 좋아하는 디자인과 굿즈 제작으로 눈을 돌리고 영천에 정착한 청년이다.
“처음에는 모션 그래픽 분야의 외주 중소기업에 근무했어요. 모션 그래픽이 뭐냐구요? 요즘 TV에 많이 쓰이죠. 자막에서부터 각종 기호의 움직임, 실제 인물과 그래픽의 합성 등이 대표적이에요. 보통 모션 그래픽이 많이 사용되는 분야는 선거방송이죠. 온갖 화려한 그래픽이 등장해 선거 득표 현황을 중계해요. 그런데 촉박한 시간 안에 정교한 움직임을 구현해야 하기 때문에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어요. 7년을 일하면서 말도 못하게 힘든 시절을 겪었어요.”
일이 힘들어 프리랜서로 전향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전망도 밝아 보이지 않아 자신의 미래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한다.
“처음 시골이라는 곳에 내려간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대가 심했어요. ‘이제 겨우 손발을 맞춰 놨더니 시골로 내려가냐’면서 심하게 타박하기도 했죠. 그런데 더 이상 서울에서 버틸 힘이 없었어요. 더 이상 제가 소속된 도시의 디자인 시장에서 이룰 것이 없을 것 같다는 불안함과 도시의 소모품으로 사는 것 같은 생활패턴에 염증을 느끼던 평범한 청년 디자이너였죠.”
고향 영천서 ‘만복기획’ 운영하는 정유영 씨
캐릭터 상품·패브릭 포스터·멜로디 카드 등
나만의 디자인·굿즈로 제품 기획·제작 성과
지역 청년들과 ‘두레반’ 활동, 지역 정착에 힘
□지역 콘텐츠, 정착을 위한 사업 아이템으로
“처음 서울에서 일할 때는 자존감이 완전히 바닥이었어요. 함께 일하는 PD와 손발도 안 맞고, 제 작업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계속해서 재작업을 요청했죠. 차라리 화라도 내면 좋겠는데, 화도 내지 않고 재작업을 시키니까 너무 힘들었어요. 사흘 밤을 새는 일도 허다했죠. 그렇게 서서히 제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데 무려 3년이라는 세월이 걸렸어요. 힘들게 이뤄온 경력인 만큼 그 분야에서 저의 영역을 구축해야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문제는 서른 살이 넘어서도 감당하기 힘든 생활이 계속되었다는 점이었어요.”
그나마 경북 영천은 그녀의 고향이었다. 보통 고향이 주는 이미지는 무엇일까? 푸근함과 안정감, 그리고 휴식이다. 여기에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는 곳이 고향이 아닐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어도, 또 반대로 무엇인가를 시작하려고 해도 ‘근거를 알 수 없는 자신감(근자감)이 힘을 주는 곳’이 바로 고향이다. 정유영 대표도 아마 그런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그렇게 정유영 대표는 고향 영천과 자신의 장점인 디자인·굿즈를 접목시키기 시작했다. 그녀의 애초 꿈도 굿즈 제작이었기에, 재미도 있었다. 자신이 만든 디자인 제품을 사람들이 마음에 들어 하고 사용하는 것이 좋았다.
그 결과가 만복기획의 첫 시작이었던 ‘영천문구점’이었다. 왠지 조금은 식상해 보이는 이름. 다만, 영천이라는 지역을 배경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해 굿즈와 문구를 만들고, 아이디어 상품을 개발하겠다는 의도는 좋았다. 특히, 지역 콘텐츠를 살린다는 점에서는 독특한 접근이었다.
“영천의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하는 스토리와 우리나라 토종 동물 캐릭터를 이용한 ‘영천 프렌즈 캐릭터 상품’, 실생활에 쓰임새가 있는 패브릭 포스터, 추억이 담긴 엽서를 만드는 ‘고향풍경’이라는 브랜드도 생각했어요. 또 도시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담긴 멜로디 카드, 정겨운 경상도 사투리가 담긴 사투리 머그잔도요. 아마 제 고향이 영천이라 기획할 수 있었겠죠?”
그녀의 이러한 지역 친화적이고 독특한 기획이 통한 것일까. 1년 반 정도가 지나자 그녀의 사업은 번창하기 시작했다. 자체 디자인을 통한 굿즈 제작도 순조로웠지만, 지역 업체 여기저기서 디자인 의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SNS를 보고 서울에서도 연락이 왔으며, 서울에서 살고 있는 그녀의 친구가 시골에 오고 싶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그리고 그녀는 경제적인 부분에서도 성공적이라고 자평한다. 프리랜서를 할 때는 한 달에 많으면 400만원, 적으면 200만원 정도를 벌었다. 그런데 로컬에 내려와 2020년에는 월 평균 600만원 정도고 올해는 매출 1억원을 목표로 했다. 물론 코로나19의 장기화로 목표를 살짝 수정한 것은 ‘안비밀’이다.
“사실 처음 고향에 왔을 때만 해도 자체적인 디자인 수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은 하지 못했어요. 그저 시골의 스토리를 잘 반영해서 원하는 디자인과 굿즈를 만들면 좋다고 봤죠. 그런데 막상 부딪혀 보니 상상 이상이었죠. 농사짓는 분들조차 예쁜 농산물 박스를 만들고 싶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시골에서 디자인 수요가 많다는 것을 알았어요.”
□또래와 함께 하는 두레반 활동
그렇다면 그녀는 고향, 로컬에서의 삶에 만족하고 있을까. 아무래도 아직 젊은 아가씨의 문화적 만족도를 떨어트리고 있지는 않을까.
“물론 없지는 않아요. 가족끼리도 말이 잘 안 통해서 ‘영천 사람들 원래 그렇다’는 우스개 소리를 할 만큼, 소통이 어려운 지역이라는 것은 알죠. 직접 사회인으로 겪어 보니 더 힘들었어요. 청년 창업가를 바라보시는 주변의 시선이 곱지 않다는 이야기도 들어서, 1년 정도는 몸을 사리기도 했구요.(웃음) 그리고 지역 내에 청년들이 즐길 수 있는 문화행사나 커뮤니티가 없는 상황이었죠. 막상 지역에서 살아보니 청년에 대한 정책과 교육, 활동 등은 거의 없었구요. 결국 소수의 지역 청년들이 먼저 모여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작은 행사들을 만들며 2~3년을 버틴 셈이죠.”
그녀의 말대로였다. 지역의 청년들은 ‘영천 청년네트워크 두레반’으로 모였다. 또래 친구들이 없는 것에 갈증을 느끼던 영천 친구들이 만나고 연대하기 위해서 시동을 건 셈이다. 정유영 대표는 두레반 친구들의 “영천에서 친구들이 떠나는 게 싫다. 우리끼리 의미 있는 재미를 만들어 가면서 여기서 오래 살아보자”는 말이 기억에 남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 친구들은 현재 ‘문체부 지역문화우리 - 영천 노포 기록 프로젝트’와 ‘경북 청년 공동체 활성화 프로젝트’를 통해 영천에 사는 청년 친구들과 지역을 기록하고 공동체를 활성화하는 일을 함께 하고 있다.
“이렇게 의미 있는 일에 힘을 보태고, 그것이 수익창출로 이어지기까지 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어요. 도시에 있을 때, 저와 같은 업종에 있는 선후배들과 함께 열정을 불태웠던 시간이 소중했었고, 지금은 제 에너지를 필요한 곳에 쓰고 있다는 것에 만족하죠. 아무래도 도시에서의 삶은 속도와 경쟁에 휩쓸려 제가 무엇을 하고 사는지 모르고 지나가던 시간이었는데, 지금은 어느 하나 잊어버리기 싫은 좋은 순간들을 살고 있어요.
“바쁜 걸로만 따지면 서울에서나 지금이나 큰 차이는 없어요. 그래도 이곳 영천에서는 스트레스를 훨씬 덜 받아요. 미팅을 위해 움직일 때마다 차창 밖으로는 산과 나무를 볼 수 있고, 맑은 공기가 있어 기분이 좋아지죠. 더욱이 시골 생활에서는 내가 잊고 있었던 것을 다시 느끼고, 음미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어요. 제가 ‘인심’이라는 단어를 자주 쓰고 있더라구요. 말할 때도 그렇고, 일기에도 그렇구요. 제가 시골에 와서 인심을 많이 느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래서 물었다. 그녀가 생각하는 로컬과 청년의 교집합은 무엇일까. 그리고 청년들이 로컬에 오기를 꺼려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도시에서 누리던 문화나 기술을 빠르게 접하지 못한다는 두려움 때문인 것 같아요. 실제로 그런 환경이 맞죠. 그래도 너무 두려워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익숙한 이야기 속에서 지역의 것을 발견하려는 노력이 있다면 로컬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지 않을까요? 비전이요? 로컬은 유니크해요. 누구나 다 하는 그런 일들이 아니라, 지역에서 지역만의 색깔을 가지고 재창조할 수 있는 것이 지역에서의 비전이 아닐까요? 물론 도시에 대한 향수는 많죠. 그래도 제가 살고 있는 곳이 어디에 있건, 정성을 들인다면 문제들은 본인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포기하지 말고 주변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좀 더 자세히 보시면, 생각보다 지역의 발달되어 있는 문화가 있더라구요.”
/박순원기자 god02@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