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한복과 비단의 결합… 전통의 아름다움을 말하다

박순원기자
등록일 2021-09-07 19:58 게재일 2021-09-08 17면
스크랩버튼
고령 ‘한국의 비단’ 대표 박윤주
고령에서 한복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있는 박윤주 대표.

여기 어려움을 이겨내고 시골에서 새로운 도전을 즐기는 사람이 있다. 경북 고령에서 한복을 활용한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의 비단’ 박윤주(32) 대표가 주인공이다.

“대구가 고향이에요. 원래 대구에서 요식업 사업을 했었죠. 사고로 인해 발목 골절 수술을 받고 건강상의 이유로 요식업 사업을 계속 이어갈 수 없었어요. 수술 후 재활을 받으며 꿈을 잃었다는 생각에 낙심도 했구요.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잖아요. 어렸을 때부터 손재주가 남달랐다는 말을 많이 들었고, 한국의 미에 대한 관심이 많았어요. 특히, 한복에 매료됐죠. 한복을 짓고 남은 자투리 원단을 버리기 아까웠어요. 그래서 이것저것 생활 소품을 만들면서 사업 아이템을 구상하게 됐죠.”

큰 교통사고로 1년 동안이나 입원했었다는 박윤주 대표.

요리를 좋아했던 그녀는 2개의 분식점을 운영했었다. 누구보다 활발하게 활동했던 그녀는 큰 수술을 받고, 쪼그려 앉지도, 계단을 오르내리기도 힘든 신세가 되었다고. 그것도 20대의 젊은 나이에 말이다. 1년이라는 절망의 시간을 보내고, 그녀의 머리를 스친 것이 바로 한복이었다고 한다.

“인터넷으로 알아보니 대구에서 한복을 가르치는 아카데미가 딱 한 곳 있었어요. 그때 너무 간절해서 선생님께 말했어요. ‘저는 정말 죽을 때까지 먹고 살 수 있는 기술을 배우고 싶어요. 혹시라도 제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해 아무 일을 못하더라도 제가 먹여 살릴 수 있는 그런 기술을 배우려고 해요’라고 말이죠.”

그렇게 시작한 것이 지금의 ‘한국의 비단’이다. 현재 한복 원단으로 패션잡화와 액세서리 등 다양한 생활 소품을 디자인하고 제작한다. 이는 온라인으로 판매하며 출강과 공방을 함께 운영 중이다. 특히, 오프라인 출강은 한복 원단을 활용한 원데이 클래스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지역 주민들의 관심이 아주 많다고 한다. 매출도 상당했다. 지난해에는 기대하지 않았던 제품의 판매량이 많아지면서 최고 매출을 찍었다.

 

고령서 한복 원단 활용 패션잡화·액세서리 등

다양한 생활소품 디자인·제작, 출강·공방 운영

온·오프라인 판매… 지난해엔 최고 매출 기록

우연한 기회로 정착한 고령, 도약의 발판으로

시골이 주는 여유·아늑함 등 자연환경에 매료

“청년들 찾아오는 비전의 로컬이 되기를 바라”

박윤주 대표가 제작한 한복.
박윤주 대표가 제작한 한복.

□에너지를 주는 로컬의 삶

대구를 기반으로 살고 있던 박윤주 대표가 로컬인 고령으로 내려온 까닭은 무엇일까. 어차피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한복 원단 제품이라면 시골보다는 도시가 더 좋지 않을까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들 수 밖에 없다. 그녀 역시도 “고령은 사업 아이템 원재료 부자재 시장이 멀다. 인터넷으로 자재를 배송시키지만, 값을 더 치러야 한다. 배송까지 2~3일이 소요되어, 불편하더라도 자재는 시장에 구매하는 편”이라면서 “시장 가는 날은 하루를 완전히 비워야 다녀올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박윤주 대표는 귀농과 귀촌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시골살이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은 없었지만, ‘한복의 비단’은 대구에서 시작을 고려하고 있었다.

“남편의 직장이 이곳에 있었어요. 결혼을 앞두고 신혼집을 의논하던 중에, 출근 지옥에 시달리고 싶지 않다는 남편의 바람으로 이곳에 정착했어요. 개인적으로 이곳에 와서 도시에서 느껴보지 못한 신선한 바람과 여유로움, 조용함, 아늑함이 저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도시에서는 누군가 쫓지 않아도 쫓기는 느낌이 들었죠. 그런데 고령에서의 삶은 일상이 여유로워 정신이 건강해지고 있다는 것을 많이 느껴요. 장날 시장에서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대형마트보다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고, 가끔 콩나물 서비스도 주시는 장날이 더 좋아요. 거짓말이 아니라 도시에서 1년에 2~3번은 걸리던 감기가 고령에서는 한 번도 걸린 적이 없어요.”

그렇게 그녀는 고령에 사업장을 마련하고 다양한 아이템을 만들어 SNS에 올리고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대표적인 핸드폰 액세서리 중 하나로 관련 인기 상품 목록 10위권에 드는 제품도 수두룩하다. 소비자의 의견도 반영했다. 제품 자체가 화려해서 좋다는 사람도 있지만, ‘지나치게 화려하다’는 의견을 반영해 버전도 달리했다.

“사실 한복이 요즘 뜨는 원단도 아니고, 시장 가치가 과연 있겠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하지만 저는 생각이 달랐죠. 오로라와 같은 고급스러운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고, 유행에 동요하지 않는 청아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특히, 한복 원단으로 기성품과 거의 차이가 없는 제품을 만드는 사람은 아마도 저밖에 없지 않을까요?”

그래서 궁금했다. 그녀는 지금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까.

“요즘 새로운 제품 제작 때문에 조금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어요. 지금 생활과 이곳에서의 삶은 100%와 1천% 만족하며 살고 있어요. 도시에서 있을 때와 지금을 비교하자면, 삶이 너무나 많이 바뀌었어요. 먹는 음식부터 공기와 분위기, 정신적인 여유로움, 조용함 등이요. 그리고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고, 그로 인해 행복해지면서, 정신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을 건강하게 해서 몸도 건강해지는 것 같아요.”

한국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각종 제품들.
한국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각종 제품들.

□청년들이 ‘나도 도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가졌으면…

이러한 그녀에게는 한 가지 소망이 있다. 청년들이 자신의 스토리를 보고 ‘나도 도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가졌으면 하는 것이다.

사실 그녀는 정부의 지원사업에도 관심이 없었고, 경험도 없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 막막했다. 경북경제진흥원에서 진행하는 사업계획서 발표에도 달랑 A4지 한 장만 들고 갔다고 한다.

“혼자 쭈뼛쭈뼛 발표할 내용을 적은 A4지 달랑 들고, 너무 부끄럽고 주눅이 들었죠. 다른 팀에서는 노트북을 활용한 PPT도 준비하시고 레이저도 들고 멋지게 하시더라구요. 이렇게 멋지고 프로페셔널하게 준비를 하시는 분들에게 죄송할 정도였죠. 얼마 후 문자로 온라인에서 합격 여부를 확인하라는 메시지를 받고, 1%의 기적을 생각하며 확인했죠. 그런데 제 이름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눈물이 폭포처럼 쏟아지더라구요.”

이렇게 고령에 정착한 그녀는 과거 교통사고의 후유증에서 거의 벗어났다. 그간 몸을 활발하게 움직이기 힘들어 운동량이 대폭 줄어들었지만, 이제는 몸과 마음에 활력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향후 그녀는 주얼리와 한복 원단을 결합하는 또 다른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귀걸이와 반지, 팔찌 등에 한복의 아름다움이 결합하면 제품군도 늘릴 수 있고, 수요층도 더 넓어질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주얼리 공방에 다니면서 주얼리의 제품 특징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여러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중이라 출시가 더디지만, 전통을 일상으로 녹아드는 제품을 제작하는 것이 저의 사업 목표죠. 그에 걸맛는 대중적인 작품이 나올 것 같아요. 또, 고령군 내 공예가 선생님들과 ‘수재들’이라는 작은 모임에 참여하고 있어요. 손으로 직접 만든 ‘수제’와 손재주가 있는 사람들이라는 뜻에서 가져온 팀명이죠. ‘수재들’팀과의 협업도 계획 중에 있어요.”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청년들이 로컬에 오기 힘든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말이다. 또 청년들이 로컬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말이다.

“통상적으로 청년들은 꿈을 쫓아 도시로 가는 것 같아요. 저의 경우처럼 청년이 꿈을 로컬에서 키울 수 있는 지원사업이 꾸준하게 활성화되면, 많은 청년들이 꿈을 쫓아 로컬에 정착하지 않을까요? 물론, 저는 우연한 기회에 고령에 정착했어요.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도시에서의 삶보다 이곳에서의 삶이 더 나은 삶이라는 확신이 정착의 계기가 된 것 같아요. 피치 못할 사정이 없다면, 저는 도시로 다시 가고자 하는 생각은 전혀 없거든요.”

“저는 로컬에 비전이 충분하게 있다고 생각해요. 문화 활동이나 여가시설, 편리한 소셜 서비스 등에는 제한이 있죠. 하지만 저의 경우에는 불편함보다 좋은 점들이 더욱 많아서 한 번도 도시가 그리워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어요.”

‘우리의 전통을 지켜가야 한다’는 당위적인 말을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것을 꾸준하게 염두에 두고 현실을 지켜나가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것도 기반시설이 거의 전무한 시골에서 말이다. 그래서 그녀의 도전이 더욱 빛이 나는 것이 아닐까.

/박순원기자 god02@kbmaeil.com

경북에 청년이 산다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