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 ‘능행(能行)’ 대표 권세라·권은아
경상북도 성주의 한 외딴 지방도. 이곳에는 수제 아이스크림을 파는 곳이 있다. 가게 이름은 ‘능행’이다. ‘임금이 능에 행차한다(陵幸)’라는 왠지 거창한 이름은 아니다. ‘能(능할 능)’과 ‘行(행할 행)’의 ‘할 수 있다’라는 뜻이다. 어쩌면 청년이기에 지을 수 있는 가게의 이름이라는 생각도 든다.
대구 토박이 자매 권세라·권은아 씨
성주서 아이스크림 제조·판매 ‘능행’ 운영
지역특산품 참외 활용 수제아이스크림 생산
12가지 맛 ‘능행 젤라또’ 온라인 판매로 정착
“가공식품 아이스크림에 천연재료 가득∼
여유롭고 조용함 원한다면 로컬로 오세요”
‘능행(能行)’의 주인장은 두 사람이다. 동생인 권은아(37) 대표가 언니인 권세라(41) 대표와 함께 하고 있다.
이들은 ‘시골에 사는 아이스크림’이라는 프로젝트명으로 성주에서 참외를 활용해 아이스크림을 만들며 6차 산업을 향하는 길에서 징검다리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가공식품인 아이스크림이 ‘시골’에서 만들어져 더 천연에 가깝고, 자연 친화적인 느낌을 주어 건강한 아이스크림 컨셉을 전달하고 싶었어요. 여기에 아이스크림을 의인화해 시골에서 살고 있다고 표현을 했고 친근함을 담았어요. 사업명을 저희 컨셉으로 설정하고 상호명은 모든 뜻을 함축한 ‘능행(能行)’이라고 짓게 됐죠. 진정한 행함을 위해서는 수많은 노력과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모든 것을 감내하고 나아가려는 저희의 진정성을 담고 싶었어요.”
그래서 ‘능행(能行)’ 아이스크림의 주된 재료는 참외다. 그동안 참외를 이용한 아이스크림은 수제 젤라또 가게에서 참외 샤베트를 만드는 정도로 밖에 접할 수 없었다. 참외가 수분이 많고 향이 약한편이라 샤베트 형태로 만들 수 밖에는 없었다. 참외를 이용한 아이스크림은 지난한 연구의 결과물이었다. 성주군 농업기술센터에서 참외향이 풍부한 참외동결건조분말을 개발했다. 이를 우유와 접목하니, 3가지 맛의 아이스크림이 탄생했다.
아이스크림에 대한 평가도 좋다 보니, 사업도 확장됐다. 아이스크림을 판매하는 가게의 형태에서 공장이라는 제조업으로 발을 넓힌 것이다.
“처음부터 제조업을 계획하고 창업을 시작했어요. 아이스크림은 특히, HACCP 인증이 필수죠. 단순히 잘 팔리는 제품을 만들어서 많이 팔면 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품을 위생적이고 안전하게 만들어서 많이 팔아야 하는 거죠. 이 부분을 한결같이 유지 및 관리를 해야 한다는 것은 힘든 일인 것 같아요.”
다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능행(能行)’의 행보에 제동을 걸고 있다.
“코로나19는 정말 타격이 커요. 올해 초에는 과감하게 가게 문을 닫기도 했어요. 직원 보호도 있지만, 저희 가게에서 발생할 수 있는 고객 간의 교차 전염을 막는 목적이었죠. 하지만 당장의 고정비들이 나가는 저와 같은 자영업은 힘들죠. 정말 월급 받는 분들이 부럽기도 했어요. 매출이 약간의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던 시점에서 판매가 거의 차단되어 버리니, 그동안의 홍보에 든 비용과 노력 또한 ‘0’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서 참 마음이 쓰렸죠.”
□ 대구 토박이 자매… “시골이 편해요”
본래 권세라·권은아 자매가 창업을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권은아 대표는 1년 정도 스낵 및 식품 제조회사에서 직장생활을 했지만, 단 한 번도 창업을 생각하지는 않았다. 여느 직장인과 마찬가지로 회사에 충성하고 팀원 역할에 충실했을 뿐이다. 퇴사를 결심했지만, 어학연수를 떠날 계획을 세웠을 뿐이었다.
“학교에서 석사까지 마친 후 대기업 제과회사에 입사했어요. 당과와 스낵류 연구개발이 주된 업무였죠. 이후에는 사촌 오빠가 대구에서 비정제 사탕수수당 회사를 시작했고, 저는 품질연구 업무의 책임자로 스카웃되어 5년간 일했어요. 가족이 하는 회사다 보니, 맡고 있는 업무 외의 전반적인 경영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됐어요. 아마 창업에 대한 실전 경험이 저도 모르게 쌓인 것 같아요. 그래서 퇴사 후 다양한 갈림길 앞에서 3년 전부터 저에게 요청을 하셨던 거래처가 있으셨는데, 판로가 어느 정도 확보된 아이스크림 제조업을 하고자 하게 됐죠.”
언니인 권세라 대표도 영어에 능통하면서 식품 업계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함께 창업을 할 수 있는 믿음직한 동료가 됐다. 그렇게 해서 처음 제품화한 것이 ‘능행 젤라또’였다. 12가지 맛을 볼 수 있는 이 제품은 온라인을 통해 판매되고 있다.
그렇다면 왜 하필 경상북도 성주였을까. 사실 이들 자매는 성주에 아무런 연고가 없다. 이들의 말에 따르면, 사투리를 진하게 사용하는 ‘대구 토박이’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는 물론 대학교와 대학원도 대구에서 마쳤다.
“식품의 근간은 땅이잖아요. 땅은 도시보다 시골에 있지요. 지금까지 해왔고, 앞으로도 해나갈 식품업이라면 땅과 가까운 것이 당연한 것 같아요.”
물론 더욱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전체 아이스크림 시장은 축소되고 있지만, 카페 등 외식산업이 성장하면서 ‘젤라또’와 같은 고급 아이스크림 시장은 점점 늘고 있는 추세였어요. 그러나 ‘고급 아이스크림’의 공급 업체는 국내에서 손에 꼽히며, 특히, 남부지방 쪽에서는 생산업체가 전무했어요. 그래서 저는 이러한 공급업체로 성장하고 싶었죠. 하지만 당장 큰 공장을 차려서 운영을 하기에는 여러 가지 부담이 컸어요. 제가 생각한 방향은 수제 아이스크림 가게에서부터 시작해 제조업으로 점점 키워나가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높은 유지비의 도시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죠. 성주는 접근성이 뛰어나요. 외부 지역민의 유입도 많구요. 특히, 성주에 참외 생산 및 GAP 시설을 보유하고 있는 외사촌이 있어서 성주의 제1특산품인 ‘참외’를 아이템으로 정했어요.”
이렇게 고향인 대구를 떠나 성주의 삶을 이어간 자매. 이들은 시골에서의 삶에 만족하고 있을까?
“도시 사람이 시골로 가면, 소위 말하는 텃세가 있다고 하잖아요. 저희는 젊은 사람이 와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서 그런지 텃세가 없어요. 오히려 저희 집주인 어르신부터 이장님까지 모두가 너무 잘해주셔요. 하나라도 팔아주시려고 하고, 소문도 내주시고 많은 도움을 받고 있죠. 물론 도시와 시골의 패턴은 너무나 다르죠. 다만, 이곳에서는 몇날 며칠을 일에 몰두할 수 있고, 쉬고 싶을 때는 여유롭게 시간을 안배할 수 있어요. 제 일에 대한 책임감이 훨씬 막중하지만, 제가 적극 개입하는 생활 패턴 오히려 더 마음의 여유를 주는 것 같아요.”
□ 가치를 지키고 고민하고 실행할 수 있는 시간
권세라 대표와 권은아 대표는 청년들의 시골 정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그래서 조금은 철학적일 수 있는 질문을 던졌다. 도시의 삶과 로컬의 삶이 어떻게 다른지 말이다.
“(로컬은)조금 더 여유롭고 깊으며 폭넓은 사고를 할 수 있어요. 도시에서의 생활은 당장의 생활에 쫓기듯 살아가야 하죠. 눈앞의 생활비와 유지비 등 경제적인 문제가 가장 크죠. 하지만 로컬에서의 삶은 달라요. 제가 하고 싶은 것과 잘할 수 있는 것. 제가 추구하는 가치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실행할 수 있는 시간과 여건이 있죠. 팔리기 위한 제품이 아니라 의미와 추구하는 가치를 중심으로 고민할 수 있어요.”
문제는 비전이었다. 청년들이 로컬에 들어와 삶을 이어갈 수 있는 가치가 있느냐의 문제였다.
“분명 개인의 성향과 관계가 많은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저와 같이 여유롭고 조용한 생활을 원한다면 추천을 하죠. 하지만 빠른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할 사람들은 맞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아직 고민 중에 있는 분들에게 말씀을 드리자면, 도시에서 하는 창업보다 시골 지역에서의 창업은 또 다른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시골 지역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지역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고, 그 네트워크가 큰 힘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사업에 참여를 하게 된다면, 오픈 마인드로 타 사업팀들과 적극적인 교류를 해서 탄탄한 네트워크를 쌓으면 좋을 것 같아요.”
말 그대로였다. ‘능행(能行)’의 두 자매는 여러 가지 지역 사업에 참가하고 있었다. 클래스 1010 신사임당 강의에 나가기도 하고, 성주와 대구 및 김천의 플리마켓에 참가했다. 또 지역민들과 함께 ‘능행(能行)’의 동행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앞으로의 계획이요? ‘능행(能行)’이라는 브랜드에 대한 고객의 무한신뢰를 확보하는 거죠. 이를 위해, 저희의 진실된 이야기를 알리고 인지시키고 싶어요. 또 저희의 방식을 오픈해서 많은 청년들과 공유하고 싶기도 하구요.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기에, 미래에 소신과 철학을 잃지 않는 행보였다는 평가를 받고 싶어요.”
/박순원기자 god02@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