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에 청년이 산다<br/>문경 ‘바이올리니스트’ 고경남
경북 문경에 바이올리니스트가 있단다. 그것도 독일에서 15년 동안이나 아티스트로 활동을 한 그 바이올리니스트가 말이다. 바이올리니스트? 우아한 유럽식 인테리어 배경과 함께 비싼 악기를 가지고 선율을 뽑아내는 예술가가 일반적인 사람들의 시선이다. 특히나 시즌제를 통해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에서는 상류층의 전유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바이올리니스트가 아닌가.
“바이올린이요? 물론 전문적인 것은 수억원 이상하죠. 하지만 연습용이거나 일반인들이 즐길 수 있는 바이올린은 20만원도 안해요. 어쩌면 기타보다도 가격이 싼 게 바이올린이에요.”
장마가 오기 전,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문경에서 만난 ‘클래식 한 스푼’ 고경남 대표는 ‘바이올린을 배우기 위해서는 돈이 많이 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정말이었다. 포털에서 검색한 바이올린의 가격은 4만원대에서부터 시작하고 있었다. 레슨용이나 조금 비싼 것이 50만원 안팎에서 판매되고 있었다.
독일서 15년 바이올린 연주자 활동 후 2019년 문경 정착
‘클래식 한 스푼’ 운영하며 색다른 공연으로 관객과 소통
“50대 아마추어 등 연주자들 많아 문화 길라잡이 역할 등
고급스럽단 선입견 버리고 지역민과 함께 무대 서길 기대”
□ 행복을 찾아 왔죠
‘클래식 한 스푼’의 대표이면서 바이올리니스트인 고경남 씨는 지난 2019년 클래식 음악 공연장의 오픈과 함께 문경에 정착했다. 경상북도에서 추진하고 있는 ‘도시청년시골파견제’의 도움을 받았다. 그렇다고 그녀의 이력이 나쁜 것은 아니다. 독일에서 자브뤼켄 국립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다양한 연주활동과 바이올린 연주자로서 독일 순회공연을 가지기도 했다. 또 대구의 경북예술고등학교와 대구가톨릭 대학교 평생교육원 초빙교수로도 활동했다. 그런 그녀는 왜 문경에 왔을까.
“독일에 살면서 남편을 만나 아이를 낳았어요. 행복한 시간이었죠. 그러다 한국에 들어왔어요. 몸이 안좋아진 이유도 있었구요. 서울에서 1년 정도 있었는데, 조금 답답한 마음이 들었어요. 이것이 행복일까 하는 생각이었죠. 다행하게도 남편과 아이들이 이해를 해줬어요. 문경이라는 곳이 마음에 들기도 했구요. 물론, 문경에 연고는 없었어요. 문경이 대도시에 비해 문화적으로 기반이 취약하지만 시민들의 공연이나 문화·예술에 대한 욕구는 많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문경이라면 제 꿈과 행복을 마음껏 펼칠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고경남 대표의 말대로, 그녀는 지금 주말부부다. 남편과 초등학교 5학년·1학년의 아이들은 모두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다. ‘주말을 이용해 서로 서울과 문경을 오가고 있다’는 고 대표다. 하지만 두 아이의 엄마인 그녀에게 지금의 상황이 힘들지는 않을까. 그래서 넌지시 물었다. ‘행복하냐고’ 말이다.
“음…. 지금은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려운 점이 없지는 않아요. 또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 생활하면 가질 수 있는 기회도 많겠죠. 하지만 문경이라고 다를 바는 없다고 생각해요. 우선 답답한 것이 없잖아요?”
그러고보니 지난 2년 동안 그녀는 문경에서 많은 일을 했다. ‘쓴 커피에 달콤한 설탕 한 스푼처럼, 음악으로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는다’는 뜻의 ‘클래식 한 스푼’처럼 말이다. 경상북도와 문경시 등에 따르면, 고 대표의 ‘클래식 한 스푼’은 로컬에서 수준 높은 공연과 색다른 기획 공연으로 관객과 소통하고, 바이올린이라는 악기를 다루며 지친 일상에 신선한 즐거움을 나누는 활동을 한다. 또 기획한 소공연을 통해 문경에서 접할 수 없었던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클래식 한 스푼에서 바이올린을 접하고 있는 분들 대다수가 아마추어에요. 이렇게 아마추어 바이올린 연주자들이 어우러져 연주도 하고, 다양한 음악 공연을 통해 클래식 음악을 가까이 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문화 길라잡이 역할을 할 수 있어 참 행복하죠.”
□ 시골 바이올린? 의외로 많아요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아무래도 문경을 비롯한 시골 구성원의 연령대는 대도시에 비해 높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
“그렇지가 않더라구요. 코로나19 이전에 저와 함께 하시는 문경분들이 40명 정도 됐어요.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20명 정도지만요. 그런데 생각보다 바이올린을 접하신 분들이 엄청 많으시더라구요. 어린 시절에 바이올린을 배웠던 분들도 계시고요. 음…. 어떤 분은 결혼 전에 바이올린을 오래하셨던 분인데, 이곳에 사시면서 바이올린을 접었던 분이에요. 그런데 ‘클래식 한 스푼’이 생기면서 다시 바이올린을 꺼냈다고 해요. 그리고 그런 사람들 가운데 50대 이상인 분들도 많죠. 문경이 서울보다 시설적으로 뒤지지만, 예술에 대한 욕구마저 뒤진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방과 후 아이들도 생각보다 예쁘구요.”
실제로 고 대표는 문경읍 갈평리에 있는 용흥초등학교에서 전교생을 대상으로 방과 후 수업으로 바이올린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녀에 따르면, 문경 생활에서 축복이라고 할 정도로, 학교로 가는 길도 아름답고 아이들도 해맑고 수업에도 열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학교에 갈 때마다 항상 반겨주고 도시 아이들보다 순수하고 예쁜 모습.
“정이라고 하죠? 서울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죠.”
하지만 여전한 궁금증이 있었다. 일반인이 바라보는 클래식에 대한 선입견이었다. 고급스럽다거나 어렵다거나 하는 식의 선입견 말이다.
“일부 음악가들은 MR(Mastering Record, 음악반주)를 사용하지 않아요. 그런데 저는 가끔 공연에서 쓰거든요. 그만큼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혼자서 예술적인 부분을 강조한다면, 어디 조용한 산속으로 들어가서 바이올린만 켜고 있지 않겠어요? 바이올린이 어렵다고 하지만, 실제로 그렇지는 않아요. 연습을 하면 누구나 할 수 있죠. 얼마전에도 연습하신 분들과 함께 공연을 했는데, 엄청 좋았거든요.”
그랬다. 고 대표의 계획은 꾸준하게 공연예술 기획을 하며, 바이올린 아카데미도 성장시켜 아마추어 앙상블 단체로 활동하는 것이다. 또 지역 문화에 또 다른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과 지역에서 배출된 여러 예술인을 비롯해 문경으로 오고 싶은 예술인들과 모여 예술·문화도시 문경을 만드는 것이다.
□ 자립하는 예술인… 생활이 가능하다면 예술인 귀농도?
그렇다고 어려움은 없었을까. 그녀에게 물었다.
“요즘 저를 원장님이라고 부르는 곳이 있더라구요. 저는 원장이 아닌데 말이에요. 저는 바이올린을 교습하는 학원을 오픈한 것이 아니거든요. 물론 저희 ‘클래식 한 스푼’에서 바이올린을 배우는 분들이 회비를 내지 않는 것은 아니에요. 아무리 예술가라고 하지만 지역에서 정착하기 위해서는 먹고 살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져야 하는 것 아닌가요? 공연도 마찬가지죠. 저는 외부에서 공연 요청이 오면 대부분 수락을 해요. 특히, 회원들과 함께 하는 공연이라면 더욱 좋죠. 그런 회원들에게 성취감을 느끼게 해주고 싶거든요. 적은 수준의 정성이지만, 회원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줄 수 있잖아요.”
그랬다. 현재 고경남 대표의 ‘클래식 한 스푼’은 위치가 모호한 상태다. 마을기업이나 협동조합도 아니면서, 학원과 같은 교습소도 아니다. 그럼에도 지역의 주민들과 함께 앙상블을 하겠다는 그녀의 의지는 확고한 상태다. 그런 그녀에게 현재 예술가들이 겪고 있는 상황에 대해 넌지시 이야기했다.
“일부죠. 다른 직업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음악인들도 어려움이 많아요.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들어가는 것이 가장 좋은데 가장 어렵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음악을 포기하기도 하구요. 여기 문경에서 다시 시작한 분들이 있듯이 말이에요. 그런데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서는 기회가 많이 없어요. 제가 답답함을 느꼈듯이요. 문경과 같은 로컬에서 음악인, 예술인들이 자립할 수 있는 환경이 된다면 이들의 귀농·귀촌도 있지 않을까요?”
/박순원기자 god02@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