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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포도클립으로 대박… “꿈이 생겼어요”

박순원기자
등록일 2021-08-10 20:03 게재일 2021-08-11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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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 ‘포도클립 영진산업’ 대표 이소민
이소민 대표가 포도클립을 판매하는 영진산업.

지방에서 서울에 정착한 청년들의 꿈은 무엇일까. 어떠한 상황을 바라고 서울로 향하는 것일까. 처음 서울에 올라온 청년들은 부모님에게서 독립했다는 자유로움과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뿌듯함을 가진다. 휘황찬란한 서울의 밤거리를 돌아다니기도 하고, 고단한 일을 마치고 작은 자취방에서 시원한 맥주 한 캔을 기울이기도 한다. 하지만 얼마가지 않아 맞닥뜨리는 것은 ‘생활의 어려움’이다. 한 달마다 찾아오는 서울의 살인적인 월세와 각종 공과금은 차라리 보지 않았으면 한다. 몇푼 벌어보겠다고 새벽부터 지하철과 버스에 몸을 맡기고 출근했지만, 퇴근은 요원한 일이다. 영천에서 ‘포도클립’을 생산하는 이소민(30) 대표도 그랬다.

 

서울서 연예인 매니저 일 접고 고향 영천에 자리잡은 30대 이소민 씨

아버지 개발 ‘포도클립’ 개량 판매… 세계여성발명대회서 ‘금상’ 수상

샤인머스켓 인기로 주문↑… 클립 끼우면 제품 예뻐지고 수확도 쉬워

“포도클립 자체생산 등 여러가지 클립 도전… 해외진출 꼭 하고 싶어”

“영천에 내려온 이유요? 다들 비슷하지 않을까요? 서울에서 살기 힘들어서죠. 얼마되지 않는 월급에 일은 힘들죠. 서울에서 일하는 동안 휴가를 제대로 즐기지도 못했어요. 하루에 2~3시간 이상을 잤던 기억이 거의 없어요. 영천에 와서는 너무 좋아요. 일단 자는 시간이 늘었거든요.(웃음) 월급으로 따지면 들어오는 돈도 늘었구요. 영천에 내려오기를 정말 잘한 것 같아요.”

이소민 대표는 특이한 이력을 가졌다. 20대와 30대 청년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꿈꿨을 연예인 매니저 출신이다. 10대 청소년들의 장래희망 1위라는 ‘연예인’의 화려함을 책임지는 사람들 말이다.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알 만한 연예인이 소속된 매니지먼트 회사에서 근무했던 이소민 대표다. 5년 이상의 매니저 생활로 영천에 내려올 즈음엔 팀장으로 승진도 했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부터 예능 방송과 콘서트를 좋아했기에 일하는 것 자체가 무척 행복했다고 한다. 유명 연예인들을 직접 눈앞에서 보고 함께 대화도 할 수 있으며, 그들을 키운다는 것 자체가 보람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너무 힘들었어요. 아까 말했듯이 잠자는 시간도 거의 없었구요. 스케줄이 많다보니 몸이 견디지를 못했죠. 생활비도 문제였어요. 대부분이 아시겠지만, 매니저라는 직업은 급여가 많지를 않아요. 최저임금은 꿈도 못꾸죠.”

연예인 매니저 생활을 청산하고 영천에 자리잡은 이소민 대표.
연예인 매니저 생활을 청산하고 영천에 자리잡은 이소민 대표.

□ 아버지의 포도클립이 딸의 포도클립으로

2019년 영천에 내려온 이소민 대표. 영천은 그녀의 고향이었다. 부모님도 계시고 5살 터울의 여동생도 영천에 있었다. 다른 귀농·귀촌의 청년들과는 다른 출발이었다. 하지만 할 것이 마땅하게 없었다. 특히, 자신이 매니지먼트 회사에서 길러왔던 다양한 역량을 발휘할 곳이 전혀 없다고도 생각했다. 그러다 ‘포도클립’이 눈에 들어왔다. 사실 이소민 대표의 ‘포도클립’은 지난 2016년 아버지가 개발한 것을 개량한 제품이다.

‘포도클립’은 포도를 재배할 때 줄기를 굵은 철사에 고정하는 클립이다. 이 대표의 말에 따르면, 줄기가 있는 과일을 재배하기 위해서는 클립이 필수라고 한다. 농업 용어로 말하면 ‘포도순 걸이’다. ‘포도클립’을 사용하면 포도순이 Y자 형태가 되기 때문에 포도가 예쁘게 자라고 수확도 매우 쉽다. 그런데 기존의 ‘포도클립’은 1회용인 경우가 많고, 재활용하면 금방 고장 나서 다시 사야 한다.

“사실 도시에 살면 포도클립이 무엇인지 잘 몰라요. 저도 아버지가 포도클립을 개발하셨지만 잘 몰랐어요. 영천에 와서 알았죠. 영천은 포도농업이 매우 발달해 있고,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샤인머스켓 열풍이 불어서 관련 농사를 짓는 분들도 많아요. 아버지가 개발한 포도클립을 개량시켰죠. 마침 서울 생활이 너무 힘든 상황이어서 아버지와 주변 분들에게 조언을 받으며 조금씩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나가기 시작했어요. 만약 아버지가 없었으면 불가능했겠죠. 지금도 아버지가 설계 같은 것은 대부분 해주시거든요.”

이소민 대표와 아버지의 포도클립은 지난 2018년 후반기에 세계여성발명대회에서 금상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 경북경제진흥원의 공모사업에 당선되면서 경제적 지원까지 받을 수 있었다.

“매니저 생활이요? 그때는 힘들었는데, 지금은 많이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매니저들은 연예인의 방송 출연을 위해서 많은 영업을 해야 하거든요. 얼굴에 철판은 기본이죠. 포도클립 영업도 마찬가지에요. 더욱이 포도클립을 이용하시는 분들이 대부분 60대 이상의 고령자세요. 여타의 제품 홍보하는 것과는 다르죠. 그런데 연예인 매니저 홍보보다는 오히려 헐렁한 스케줄이죠. 특이한 것만 빼면요. 도시라면 대부분 영업시간이 정해져 있지만, 이곳에서는 달라요. 아침 6시라도 전화가 와서 ‘지금 갈게’하면 그때가 일이 시작되는 시간이고, 밤 8시라도 ‘내일 아침에 클립 끼워야 하는데’하면 일이 끝나는 것이 아니거든요. 어떻게 보면 ‘막무가내’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게 시골 영업의 매력이죠.”

그렇다면 포도클립을 파는 이소민 대표의 매출은 어떻게 될까. 사실 포도클립의 단가는 그렇게 높지 않다. 작은 포도클립은 개당 9원 정도고, 큰 포도클립은 개당 15원 정도에 팔린다. 2천 개를 팔아야 3만원 정도의 매출이 발생하는 셈이다. 그래서 궁금증이 일었다. 영천에 내려온 이소민 대표는 먹고 살만한 상황일까.

“서울에 있을 때보다 훨씬 낫죠. 지금 생산한 것의 70% 정도는 농협이나 기관에 나가거든요. 30% 정도는 따로 연락오시는 분들에게 팔리구요. 생각보다 많이 나가요. 영천과 상주 지역은 저희 제품이 많이 나가구요. 이제 경기도 쪽으로 진출하고 있어요. 또 요즘 젊은 농부들은 인터넷 검색이 익숙하기 때문에 온라인 홍보물을 보고 많이 연락도 오구요. 최근에는 샤인머스켓이 큰 인기를 끌면서 우리 제품도 덩달아 인기를 얻고 있어요. 이제 포도클립을 넘어서 복숭아와 사과에도 사용할 수 있는 클립을 개발해 이미 시제품이 나와 있는 상황이에요.”

□ 먹고 살 수 있는 길… 로컬도 좋아요

인터뷰의 말미. 이소민 대표에게 질문을 던졌다. 지금 영천에서의 삶이 만족하고 행복하냐고 말이다.

“당연히 만족하고 있어요. 물론 서울처럼 화려한 면은 없어요. 일단 이곳에서는 남는 시간이 없거든요. 다행히 제가 집순이라서 그런지 크게 불편함은 없어요. 결혼도 아직 생각은 없구요. 아마 아버지는 이미 포기하셨을 거에요.(웃음) 집순이라서 문화 생활은 거의 없어요. 단지 조금 외롭다는 것 뿐이죠. 그래도 지금이 더 행복해요. 그리고 이곳이 고향이라 많은 도움이 되는 것도 같아요. 다들 아버지고 삼촌들이거든요.”

이소민 대표의 향후 꿈은 포도클립을 자체생산하고 해외에 진출하는 것이다. 지금 이 대표의 포도클립 생산은 사실상 외주 형태다. 설계한 포도클립을 외부 공장에서 생산해 팔고 있는 것이다. 인근에 일본 농가에 가위를 수출하는 회사가 있어 포도클립을 보내봤는 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고 한다. 다만, 일본에서 포도를 키울 때 쓰는 철사가 한국 제품보다는 얇기 때문에 개선이 필요하다. 이런 부분을 개선한다면 일본 포도 농가에 진출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또 포도 뿐만이 아니라, 복숭아와 메론 등의 클립도 생산이 가능하다.

“자체생산을 넘어서 여러가지 클립에 도전하고 있어요. 지금 개발하는 것도 있구요. 지금 매출도 나쁜 것은 아니지만, 저희와 경쟁하는 제품이 있거든요. 일단 목표는 경쟁 제품을 이기고 저희 제품을 우리나라 점유율 1위로 만드는 거죠.”

이러한 이소민 대표에게 향후 5년과 10년 후의 모습을 물었다. 그리고 로컬에 내려오는 청년들에게 조언도 부탁했다.

“크게 변하는 것은 없을 것 같아요. 일단 목표가 있으니까요. 크게 생각은 해보지는 않았어요. 그래도 열심히 해보려구요. 그래야 목표가 이뤄지지 않겠어요? 조금전에 말했듯이, 저희 제품이 우리나라를 석권하는 것이 큰 목표죠. 아마 될 것 같아요. 열심히 한다면 말이죠.”

“창업 초기에는 불안함이 적지 않았어요.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사업인데다 농업의 실질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잘 몰랐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번 기회에 도전하지 않으면 도저히 서울 생활을 이어나갈 자심이 없었죠. 일단 도전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박순원기자 god02@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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