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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ㆍ특집

한폭의 수채화 풍경과 마주한 선비의 품격

현대인이 잊고 사는 전통문화가 계승되는 공간인 동시에 선비의 품격이 존재하는 도시. 안동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다. 물론 맞는 말이다.하지만, 그것뿐일까? 그렇지 않다. 안동은 전통문화와 선비정신 외에도 여행자가 매료될만한 여러 가지 것들이 적지 않은 곳이다.‘코로나19 사태’가 한국의 관광산업을 피폐화시키기 이전인 2019년 두 차례에 걸쳐 안동시를 찾았다.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인 안동한우, 헛제삿밥, 국수 등을 먹고, 안동댐과 임하댐을 둘러봤으며, 고색창연한 종택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도 했다.안동엘 갔으니 당연지사 하회마을의 고즈넉한 풍경 속을 걷기도 했으며, 월영교의 낭만적인 야경을 감탄하며 바라보는 즐거움도 누렸다.◆ 고요한 물안개를 만들어내는 댐의 도시 안동도산면 가송리 농암종택(聾巖宗宅)에서 맞은 아침 풍경은 2년이 지난 아직까지 기억 속에 선명하다. 농암종택은 어떤 곳일까. ‘두산백과’엔 이런 설명이 실렸다.“농암 이현보(1467~1555)의 종택(宗宅)이다. 이현보는 1504년(연산군 10년)에 사간원정언으로 있다가 임금의 노여움을 사 안동으로 유배된 인물. 1976년 안동댐 건설로 원래 종택이 있던 분천마을이 수몰되었다. 안동의 이곳저곳으로 흩어져 이건돼 있던 종택과 사당, 긍구당(肯構堂)을 영천 이씨 문중의 종손 이성원이 한곳으로 옮겨 놓았다.”지척에 조그만 강이 흐르는 농암종택에서 밤을 보내고 새벽이 밝았다. 도시에선 들을 수 없는 새 소리와 찰랑거리는 물소리. 거기에 낮게 깔린 물안개가 여행자를 환영하고 있었다.번잡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농암종택 주변을 산책하며 어디에서도 맛보기 힘들었던 ‘평화롭고 아늑한 아침’을 느꼈다. 이는 안동이 복잡한 일상을 허위허위 살아온 기자에게 준 선물 같았다.매년 다시 찾아 또 다른 매력을 느끼고 싶은 안동. 그러나 세상은 사람의 마음대로 움직여주질 않았다. 누구도 반긴 적이 없건만 슬그머니 찾아와 1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여행자들의 발을 묶어놓은 코로나19 바이러스.2020년 초반부터 시작된 ‘코로나 광풍’은 1년 4개월 가까이 단체관광객을 실은 버스를 사라지게 만들었고, 가족과 친구, 동창과 동호인들의 봄맞이와 단풍놀이를 멈춰 세웠다.◆ 월영교를 거닐며 느끼는 안동의 매력여행의 트렌드가 ‘언택트 관광’으로 바뀐 것도 이미 오래다. 한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은 찾아오는 관광객의 안전과 방역수칙 준수에 고심하고 있다.어쨌건 바이러스가 인간의 삶을 온전히 멈출 수는 없는 법. 안동시 역시 코로나19 감염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한 언택트 관광지를 알리고 안내하는 일에 힘을 쏟고 있다.그렇다면 언택트 시대 안동의 관광명소는 어딜까? 월영교는 코로나 시대 안동의 대표적 언택트 관광지로 떠오르고 있는 곳이다.눈부신 햇살 일렁이는 낙동강 물결 위에 놓인 월영교를 거니는 것도 좋고, 지척 안동댐 민속촌의 한적한 풍경과 마주하는 것도 매력적이다. 개목나루로 여행자를 마중 나온듯한 황포돛배를 보는 기쁨도 크다.안동시는 6천여 점의 유물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안동시립민속박물관과 국무령 이상룡의 생가인 임청각, 낙강물길공원, 유교랜드, 안동공예문화전시관 등도 가볼만한 여행지로 추천하고 있다.“안동 보조댐을 둘러싼 월영교, 월영공원, 성락교, 개목나루로 이어지는 원형의 둘레길은 은은한 조명과 함께 조화롭게 이어져 한 폭의 수채화 같은 풍경으로 감탄을 자아낸다”는 것 역시 안동시 관계자의 부연이다.‘언택트 시대 안동 관광 1번지’로 떠오른 월영교는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다리일까? 이 궁금증에 안동시 문화관광 홈페이지가 답을 들려준다.“낙동강을 감싸듯 하는 산세와 댐으로 이루어진 울타리 같은 지형이 밤하늘에 뜬 달을 마음속에 파고들게 한다. 달을 강물에 띄운 채 가슴에 파고든 아린 달빛은 잊힌 꿈을 일깨우고, 다시 호수의 달빛이 돼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으려 한다. 월영교는 자연 풍광을 드러내는 조형물이지만, 그보다 이 지역에 살았던 이응태 부부의 아름답고 숭고한 사랑을 오래도록 기념하고자 했다. 먼저 간 남편을 위해 아내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한 켤레 미투리 모양을 다리 모습에 담았다. 그 위에 올라 그들의 숭고한 사랑을 우리의 사랑과 꿈으로 승화시키고자 한다.”◆ 안동이 고향인 시인의 시를 떠올리며 하회마을로낭만 넘치는 월영교를 돌아본 후 어디를 가야할까를 고민하는 관광객이라면 하회마을을 추천하고 싶다. 거기로 가기 전 안동에서 태어나 안동에서 살고 있는 시인 안상학(59)의 시 한 편을 읽어보는 건 어떨지. ‘얼굴’이란 제목의 작품이다.세상 모든 나무와 풀과 꽃은그 얼굴 말고는 다른 얼굴이 없는 것처럼늘 그 얼굴에 그 얼굴로 살아가는 것으로 보인다나는 내 얼굴을 보지 않아도내 얼굴이 내 얼굴이 아닌 때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꽃은 어떤 나비가 와도 그 얼굴에 그 얼굴나무는 어떤 새가 앉아도 그 얼굴에 그 얼굴어쩔 때 나는 속없는 얼굴을 굴기도 하고때로는 어떤 과장된 얼굴을 만들기도 한다진짜 내 얼굴은 껍질 속에 뼈처럼 숨겨두기 일쑤다내가 보기에 세상 모든 길짐승, 날짐승, 물짐승도그저 별 다른 얼굴 없다는 듯늘 그렇고 그런 얼굴로 씩씩하게 살아가는데나는, 아니래도 그런 것처럼, 그래도 아닌 것처럼진짜 내 얼굴을 하지 않을 때가 많다나는 오늘도쪼그리고 앉아야만 볼 수 있는 꽃의 얼굴과아주 오래 아득해야만 볼 수 있는 나무의 얼굴에 눈독을 들이며제 얼굴로 사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세상에 존재하는 다른 생명들과 달리 가식과 위선의 얼굴을 가진 인간. 정직하고 과장 없는 얼굴로 사는 길을 함께 고민하자고 권하는 시인의 목소리가 봄날 햇살처럼 따스하다.‘쪼그리고 앉아야만 볼 수 있는 꽃의 얼굴과/아주 오래 아득해야만 볼 수 있는 나무의 얼굴에 눈독을 들이며/제 얼굴로 사는 법을 배우는 중’이라는 안상학의 고백에 담긴 의미를 생각하다보면 어느새 하회마을에 닿아 있을 것이다.그 옛날 선비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하회마을. ‘한국민속대백과사전’이 소개하는 하회마을을 아래 요약한다.“낙동강이 마을 전체를 동쪽과 남쪽, 서쪽 세 방향으로 감싸 도는 빼어난 터에 자리 잡은 풍산 류씨 동성 마을이다. 지형은 풍수학적으로 태극형·연화부수형·행주형이라고 한다. 낙동강이 마을을 감싸고 흐른다 하여 하회(河回)라는 이름이 붙었다. 안동 하회마을은 대체로 허씨와 안씨 등 유력한 씨족이 살아왔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1635년 기록에 따르면 류씨가 가장 많이 살았다고 한다. 낙동강 상류인 화천(花川)이 흐르며, 그 둘레엔 넓은 모래밭이 펼쳐져 있다.”하회마을을 한 번이라도 찾아본 사람은 누구나 알고 있다. 때론 현재보다 과거가 아름답다는 사실을.야트막한 지붕의 초가와 멋스런 기와집이 공존하고, 아스팔트가 아닌 흙길에 봄 햇살이 넉넉하게 뿌려지는 곳. 평화로운 고요함 속에서 살아온 생을 돌아볼 수 있는 곳이 바로 하회마을이다.‘코로나19 시대’가 오기 전 그리 멀지 않은 우리의 과거가 그리운 요즘. 하회마을과 월영교, 조용히 밀려드는 안동댐의 새벽 물안개가 코로나19가 준 상처를 다독여주는 풍경과 만나보길 권한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1-05-11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잎… 꽃비 되어 내리다

“화개천지홍(花開天地紅).”세상 어떤 꽃보다 먼저 봄을 알린다. 분홍빛 고운 ‘계절의 전령사’라 부를 만하다. 게다가 귀하게 피어 몇몇 사람만을 기쁘게 하는 게 아니다. 흔하디흔한 골목길에서부터 야트막한 산기슭, 심지어 청춘들 발길 분주한 대학 교정에까지 지천으로 피어나 바람에 꽃이파리 날리는 낭만과 서정. 그러니 ‘서민들의 꽃’이라 해도 좋으리라.벚꽃이 피어나는 3~4월이면 야박한 사람들 인심과는 무관하게 잠시잠깐 세상이 환하다.그래서다. 일찍이 선현들은 ‘꽃이 피니 하늘은 물론 땅까지 온통 붉다’고 감탄했다. ‘화개천지홍’이다. 여기서 ‘꽃’이란 분명 ‘벚꽃’일 터.그러나 대부분의 아름다움이 그러하듯 그것이 지속되는 시간은 지극히 짧다. 미인이 그러하고, 미인의 메타포로 곧잘 사용되는 꽃 또한 그러하다.한 시인은 “난분분 난분분 떨어지는 벚꽃 잎을 보니, 이번 봄도 꼬리를 감추고 있음을 이제야 알겠구나”라고 노래했다.2021년 올해도 마찬가지. 활짝 핀 벚꽃 아래서 밀어를 속삭이던 연인들, 지난 사랑을 추억한 중년 부부들, 환한 웃음으로 아버지와 어머니를 기쁘게 하던 아이들. 이들 모두가 영원히 곁에 두고 싶던 ‘벚꽃 시즌’이 끝나간다. 아쉽지만 누구도 붙잡을 수 없다.“화락천지정(花落天地靜).”피는 꽃이 ‘절정의 아름다움’이라면, 꽃이 진 자리엔 ‘고요한 아름다움’이 조용히 들어선다. 4월 첫 주말 경북 일대를 적신 봄비와 제법 차가웠던 바람이 벚꽃을 가만두지 않았다.바로 그 날씨의 변화에 후드득 소리 내며 쏟아지는 소나기처럼 점점이 고운 분홍빛으로 떨어지던 벚꽃 잎 아래를 우산 받치고 걸어보았다. 가는 봄이 아쉬운 사람은 비단 기자 하나만이 아니었던지, 제법 많은 이들이 떨어지기 직전의 꽃을 매단 벚나무 곁을 서성이고 있었다.‘화락천지정’이란 글귀가 의미하는 바를 제대로 깨닫기 위해선 축적된 삶의 경험이 필요하다.꽃은 누가 피라고 해서 피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수만의 사람들이 떼를 쓰며 읍소한다고 해도 결국은 지고야 만다. 그게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순리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지 않다.꽃은 ‘순환의 시간’을 산다. 하지만, 인간의 시간은 매 순간이 단 한 번뿐이다. 우리가 벚꽃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건 인간에겐 부재한 ‘다음’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내년에 피어날 벚꽃은 더 아름다우리라벚꽃이 경상북도 전체를 빛나게 밝혀주던 봄이 아쉬움 속에 등을 돌리고 있다.지척에 푸른 바다가 일렁이는 포항과 영덕, 곳곳이 신라와 조선의 문화재로 가득한 경주와 안동, 여기에 김천, 예천, 문경….어디 그뿐인가. 경북 23개 시·군 거리를 가리지 않고 반갑게 여행자들과 인사하던 벚꽃은 봄을 봄답게 만들어준, 비용 지불하지 않은 귀한 선물이었다.‘코로나19 사태’가 한국을 덮친 지난해와 올 봄 이전엔 하루라도 빨리 벚꽃을 만나려는 관광객들이 주말이면 수십 만 명씩 자동차와 버스, 기차를 타고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왔다.오죽하면 만발한 벚꽃으로 이름 높은 경주와 경남 진해 사람들이 이렇게 말했을까. “봄이면 우리 동네 거리가 서울 사투리(?)로 가득하다”고.바로 이 벚꽃에 관한 낭만적인 해석을 담은 책이 있다. 살림출판사에서 간행한 ‘쁘띠 플라워’다. 아래 일부를 인용한다.“꽃이 피고 지는 과정은 우리의 삶과 무척 닮아있다. 인간이 젊음의 한 순간을 정점으로 늙어가듯 모두의 눈길을 사로잡던 화려한 꽃 역시 조용하고 쓸쓸하게 지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중략) 벚꽃은 피어 있는 모습이 화려해 일본에선 매년 꽃놀이를 즐길 정도다. 벚꽃은 피어 있는 모습 못지않게 떨어지는 모습이 인상적인 꽃이다. 꽃잎이 유독 얇고 하나하나 흩날리듯 떨어져, 꽃비가 내리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또 금세 활짝 피어 화려하게 물드나 싶다가 봄비가 내리면 잎만 푸르게 남는다. 잠깐 숨 돌리는 사이 사라져버리고 마는, 가장 아름다운 순간 느끼는 덧없음이랄까…(하략)”그렇다. 벚꽃은 피어있을 때 물론 예쁘지만, ‘잠깐 숨 돌리는 사이 사라져버리고 마는’ 순간조차도 숨 막히게 아름답다. 꽃이 진 자리의 고요와 적막은 그래서 마냥 쓸쓸한 것만이 아니다. 거기엔 약속이 망울을 맺는다.2021년에 피었던 벚꽃은 2022년, 아니 2032년에도 같은 계절 같은 자리에서 등불 밝히듯 환하게 피어나 ‘봄의 사자(使者)’로 역할 할 것이 명약관화하다. 해서, 그 기다림은 슬프지 않다.◆ 꽃이 떨어졌다고 서러워하지 마라동서고금 많은 시인묵객들이 꽃에 관해 노래했다. 그런데 재밌는 건 시인과 화가를 더 큰 힘으로 매혹한 건 개화(開花)가 아닌 낙화(落花)였다는 사실이다. 활짝 피어 향기를 뿜어내는 꽃보다, 소리 없는 비명으로 떨어지는 꽃을 편애偏愛) 한 그들의 마음속엔 어떤 미학관이 들어서 있었던 걸까?경북 영양에서 태어나 국문학자로도 명성이 드높았던 시인 조지훈(1920~1968) 역시 개화보다 ‘낙화’에 눈길을 주던 사람이다. 그랬기에 다음과 같은 절창을 남길 수 있었을 터.꽃이 지기로서니바람을 탓하랴주렴 박에 성긴 별이하나 둘 스러지고귀촉도 울음 뒤에머언 산이 다가서다촛불을 꺼야 하리꽃이 지는데꽃 지는 그림자뜰에 어리어하이얀 미닫이가우련 붉어라묻혀서 사는 이의고운 마음을아는 이 있을까저어하노니꽃이 지는 아침은울고 싶어라.반갑게 맞았던 짧은 봄과 몌별해야 하는 오늘 우리의 심정도 한 시대 이전 낙화를 바라보던 조지훈과 크게 다르지 않다.누구나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다’. 그러나, 그 꽃을 데려간 바람과 비를 탓한들 무엇 하랴. 이미 2021년의 벚꽃은 기억 속에서나 불러올 수 있는 아스라한 추억이 됐을 뿐인데.◆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개화를 기다리며…수백, 수천 그루의 벚나무가 만들어내는 ‘꽃 잔치’는 봄날을 산책하는 여행자의 심장을 설렘으로 두근거리게 만든다. 이건 누구도 부정하기 힘든 사실이다.3월부터 4월 초순.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연분홍 ‘벚꽃 비’를 맞으려는 사람들이 수만, 수십만 명에 이른다는 게 그 사실을 증명한다.하지만, 안타깝게도 벌써 2년째 벚꽃과 온전히 포옹하지 못하는 봄을 보내고 있다. 코로나19 방역수칙 준수와 감염 예방을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 탓이다. 해서 꽃을 바라보는 마음이 이전의 봄날처럼 마냥 기껍지만은 않다.내년 봄엔 경북의 벚꽃 명소들마다 ‘방문을 자제해 주세요’란 플래카드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꽃보다 환하게 웃는 여러분을 환영합니다’라고 쓰인 현수막이 걸리기를./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1-04-06

외나무다리 위 古色蒼然(고색창연)… 잊을 수 없는 여행의 美

안개와 외나무다리. 영주시 무섬마을을 떠올리면 눈앞에 그림처럼 펼쳐지는 2개의 잊을 수 없는 풍경이다.기자가 영주를 여행한 것은 지금까지 모두 3번. 2012년엔 시인·소설가 20여 명과 함께 문학답사를 위해 찾았고, 지난 2019년엔 경북 지역 23개 시·군의 유명 관광지를 소개하는 기사를 쓰기 위해 방문했다.최근 그곳에 다시 가본 이유는 앞선 2번의 여행을 통해 고색창연한 영주의 매력에 푹 빠졌기 때문이었다.여러 종류의 나물로 맛깔나게 차린 저녁을 먹고 일찍 잠든 다음 날 새벽. 숙소를 나와 무섬마을을 느린 걸음으로 산책했다. 가장 먼저 여행자를 반긴 건 안개였다.여자의 속눈썹을 적실 정도로 촉촉한 물기를 머금은 부드러운 안개. ‘무섬’이란 마을 이름은 ‘물 위에 뜬 섬’을 의미한다.잔물결 치는 내성천(乃城川)의 고요함 속에서 마주하는 안개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가라앉히는 힘이 담겼다. 그 때문일까? 그날 영주 무섬마을의 풍경은 현실과 초현실의 사이에 있었다.◆ 무섬마을, 영주시 남쪽에 자리한 보물 같은 여행지영주시 북쪽에 소수서원과 선비촌이란 이름난 관광지가 있다면, 영주 남쪽을 대표하는 보물은 누가 뭐래도 무섬마을. 가족 단위 여행객들은 물론, 젊은 연인들도 많이 찾고 드물지 않게 ‘나 홀로 여행자’도 눈에 띈다.남녀노소 모두에게 거부감을 주지 않는 편안한 여행지인 이 마을의 유래와 풍경을 ‘두산백과’는 아래와 같이 서술하고 있다.“영주시 문수면 수도리(水島里)에 위치한 전통마을로 국가민속문화재 제278호다. 무섬마을은 물 위에 떠 있는 섬을 뜻하는 ‘수도리’의 우리말 이름.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이 마을의 3면을 휘돌아 흐르고, 안쪽으로 넓게 펼쳐진 모래톱 위에 마을이 똬리를 틀고 앉았다. 그 모습이 매화낙지(梅花落地) 또는, 연화부수(蓮花浮水)의 형상이라 길지(吉地) 중 길지로 이야기된다. 17세기 중반부터 사람이 정착해 살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저마다의 멋을 간직한 38동의 전통가옥이 고풍스러움을 자랑한다. 이중 16동은 지은 지 100년이 넘은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사대부 가옥이다. 옛 선비 고을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마을. 이곳에 세워진 김규진 가옥, 김위진 가옥, 해우당고택, 만죽재고택 등은 문화재이기도 하다.”신발을 통해 발끝으로도 느껴지는 부드러운 모래의 감촉을 만끽하며 물가를 서성이던 때.아직 아침잠이 많을 나이일 텐데 일찍 일어나 무섬마을 외나무다리 앞에서 밀어를 속삭이는 20대 중반의 젊은 남녀 한 쌍을 만났다. 분명 연인일 터.멀찌감치 서서 둘을 바라보니 소곤소곤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꼭 잡은 그들 두 손의 온기가 아직은 차가운 초봄 새벽의 찬 기운을 멀리로 떨치고 있었다. 부럽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다.바로 전날 저녁엔 70대 노부부가 같은 자리에서 다정하게 앉아 있는 광경을 봤다. 무섬마을 외나무다리엔 오랜 정(情)은 더욱 두텁게, 새롭게 시작하는 사랑은 뜨겁게 만드는 어떤 힘이 있는 것일까?◆ 사랑 시를 떠올리게 하는 ‘무섬 외나무다리’생각이 거기까지 미쳤을 무렵. 기자가 20대에 읽은 잊을 수 없는 사랑 시(詩) 한 편이 영화 속 장면처럼 내성천 물결 위에 갑작스레 그려졌다. 서럽고도 아픈 옛이야기 같은 미당 서정주(1915~2000)의 ‘신부(新婦)’였다.신부는 초록 저고리와 다홍 치마로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신랑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신랑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서 냉큼 일어나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 돌쩌귀에 걸렸습니다그것을 신랑은 생각이 또 급해서제 신부가 음탕해서 그새를 못 참아서뒤에서 손으로 잡아당기는 거라고그렇게만 알고 뒤도 안돌아보고 나가 버렸습니다문 돌쩌귀에 걸린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오줌 누곤 못 쓰겠다며 달아나 버렸습니다.그러고 나서 40년인가 50년이 지나간 뒤에뜻밖에 딴 볼 일이 생겨이 신부네 집 옆을 지나가다가그래도 잠시 궁금해서 신부방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신부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초록 저고리 다홍 치마로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습니다.안스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 재가 되어폭삭 내려앉아 버렸습니다.초록 재와 다홍 재로 내려 앉아 버렸습니다.신부가 음전하지 못하다는 오해 탓에 사랑으로부터 도망친 신랑이 그 오해를 풀고 신부를 이해하기까지는 자그마치 반세기가 걸렸다.서정주는 이 시를 통해 아무리 짙고 희뿌연 안개가 진실을 가리더라도 인간이라면 진실을 발견할 줄 아는 지혜로운 눈을 가져야한다고 말하고 있는 건 아닐지….◆ 영주 북부의 보물 소수서원과 선비촌을 찾아무섬마을의 안개와 외나무다리, 미당의 절창까지를 가슴에 담고 영주시의 북쪽을 향해 차를 몰았다.나이 지긋한 영주시의 어르신들은 이렇게 말한다. “영주는 선비의 고장”이라고. 여기엔 당당한 자부심이 담겼다. 그들은 또 이런 말을 덧붙인다. “재물을 모으는 것보다 학식과 덕을 중요하다 여기며 사는 게 바람직한 인간의 길”이라고.영주시 순흥면에 자리한 소수서원(紹修書院)은 이런 영주시민들의 긍지가 그냥 나온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곳이다.소수서원은 최초의 사액서원(賜額書院). 사액서원이란 임금이 직접 편액을 써서 내린 사원을 지칭한다. 영주시 문화관광 홈페이지엔 소수서원에 관한 설명이 상세하게 쓰였다. 이를 간략하게 요약한다.“조선 중종 38년(1543년) 풍기군수 주세붕이 세워 서원의 효시이자 최초의 사액서원이 됐다. 건립 당시엔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으로 불렸는데, 퇴계 이황이 풍기군수로 부임한 후 조정에 건의해 소수서원으로 사액됐다. ‘소수(紹修)’란 명칭은 학문 부흥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사원 안에는 강학당(보물 제1403호), 문성공묘(보물 제1402호)가 있고, 안향 초상(국보 제111호), 대성지성문선왕전좌도(보물 제485호) 등의 유물도 소장돼 있다.”머리를 맑게 해주는 소나무 향기가 여행자들의 몸과 마음을 동시에 편안하게 하는 소수서원 일대를 천천히 거닐어 보았다. 수백 년 전 조선 선비들의 단아한 체취가 자연스레 느껴졌다. 이는 비단 기자 한 사람만의 감흥은 아니었을 것이다.경자바위 아래 깨끗한 연못과 품격이 느껴지는 학자수(學者樹) 군락을 만나고, 숙수사지 당간지주까지 두루 돌아본 후 근처 선비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수서원과 연결된 선비촌은 앞서 말한 ‘영주의 선비정신’을 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기에 전통문화에 관심을 가진 관광객들의 인기를 모았다.“아직 끝나지 않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다수의 여행자가 모일 수 없는 상황이기에 예전의 ‘선비 체험’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는 것이 영주시 관계자의 이야기.한국 유교문화의 중심지로서 그 정신을 잇고, 사라져가는 전통문화를 재현해 관광활성화를 모색하고 있는 영주시. 소수서원과 선비촌은 그 역할을 수행하는 ‘영주 북부의 보물’이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듯하다.영주시는 코로나19의 횡포가 온전히 사라져 무섬마을과 소수서원, 선비촌에 관광객들의 환한 웃음이 다시 꽃 필 날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 날이 머지않아 오기를 영주시민과 함께 기원한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1-03-30

그 시절의 노래와 그 시절의 추억… 그곳에 그가 살아 있었다

그가 세상에 머문 시간은 겨우 32년. 안타까운 죽음으로부터도 이미 2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럼에도 아파서 더 아름다웠던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사람들의 기억 속에 뜨거운 눈물처럼 선명하다. 몹시 드문 사례다.한국엔 통기타 연주와 서정적인 노랫말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런 이들에게 대구광역시는 가수 김광석(1964~1996)의 고향으로 기억된다.또한, 대구시 중구 방천시장에 조성된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은 어디서도 받을 수 없는 선물 같은 공간으로 그들에게 다가온다. 지금 40~60대인 생활인들이라면 누구랄 것 없이 청춘의 어느 한때 귓가를 맴돌던 김광석의 노래 한 소절쯤은 기억할 터.지난해부터 지루하게 이어지는 ‘코로나19 사태’가 준 기억이 잊을 수 없는 환멸이라면, 김광석의 속삭임 같은 호소는 다른 형태의 잊을 수 없는 애틋한 기억이다.겨울이 지루했던 막을 내리고, 2021년 봄이 분홍빛 무대를 준비하는 3월. 많은 여행자들이 대구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을 찾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2주 연속 그곳에서 주말을 보낸 기자 역시 그랬다. 거긴 ‘일’을 위해서가 아니라, 잊을 수도 없고, 잊어서는 안 될 ‘청춘의 추억’을 반추하기 위해 찾는 공간이다. ‘김광석 길’의 한복판. 대구의 독특한 먹을거리인 납작만두를 안주로 소주 한 잔 마시기 위해 들른 노천식당. 30년 전 듣던 김광석의 노래가 스피커를 통해 머리가 아닌 가슴을 울리며 들려왔다. ‘기다려줘’였다.난 아직 그대를 이해하지 못 하기에그대 마음에 이르는 그 길을 찾고 있어그대의 슬픈 마음을 환히 비춰줄 수 있는변하지 않을 사랑이 되는 길을 찾고 있어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그대 마음에 다다르는 길찾을 수 있을까 언제나 멀리 있는 그대….◆ 2014년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대통령표창 추서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수 김광석에 관해선 많게 혹은, 적게 어느 정도 알고 있다. 하지만, 특정 공간을 여행하기 위해선 사전 지식이 필요하다.그게 여행을 더욱 풍요롭게 해주는 동시에 일정 짜기에도 도움을 주니까. 세상 모든 건 ‘아는 만큼 보이는 법’. 김광석은 어떤 사람일까?‘위키백과’는 짧고 뜨거웠던 이 사내의 삶과 죽음을 아래와 같이 요약하고 있다.“한국의 싱어송라이터. ‘가객’ 또는, ‘노래하는 철학자’로도 불린다.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로 상경해 1982년에 명지대에 입학했고, 대학연합 동아리에 가입하면서 가요 공연을 시작했다. 1984년 김민기의 음반에 참여하면서 데뷔했다. 이후 밴드 ‘동물원’의 보컬로 활동하면서 이름을 알렸다.1996년 1월 6일 죽었으나, 사망 원인과 관련된 논란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2007년 그의 노래 ‘서른 즈음에’가 음악 평론가들이 선정한 ‘최고의 노랫말’이 됐다. 2008년 1월 12주기 추모 콘서트와 함께 대학로 학전 블루소극장에서 노래비 제막식이 열렸다. 2014년엔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대통령표창이 추서됐다.”일반적으로 시집엔 50편 이상의 시가, 소설집엔 10편 안팎의 소설이 실린다. 그럼에도 거기서 독자들의 기억 속에 잊히지 않고 오랫동안 남는 건 1~2편 혹은, 3~4편에 불과하다.그런데, 김광석의 노래는 어떤가? 그의 팬들은 “모든 곡이 사람들 감수성의 창고에서 언제든지 꺼내볼 수 있는 빛나는 보석”이라고 말한다. 이런 견해가 몇몇 사람들만의 터무니없는 과장일까? 그렇지 않은 듯하다. 다음에 언급되는 김광석의 노래를 보자.‘서른 즈음에’ ‘거리에서’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사랑이라는 이유로’ ‘바람이 불어오는 곳’ ‘이등병의 편지’ ‘기다려 줘’ ‘사랑했지만’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나의 노래’ ‘먼지가 되어’ ‘그날들’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그녀가 처음 울던 날’….◆ ‘김광석 길’에서 더 뛰어난 예술가가 만들어지길...적지 않은 것들을 나열했음에도 대부분이 ‘현대의 고전’으로 불러도 좋을 통기타 명곡이 아닌가. 김광석은 164cm의 작은 키에 조그만 손, 해사한 10대 소년의 얼굴로 세상과 인간을 끌어안으려다가 일찍 우리 곁에서 사라졌다.은유로 이야기하자면 앙투안 생텍쥐페리(Antoine Marie Roger De Saint Exupery)가 쓴 ‘어린 왕자 같은 삶’이었다.대구시가 그가 가진 가치와 의미를 일찌감치 발견해 사람들과 더불어 요절한 가인(歌人)을 추모하고, 함께 기억할 수 있는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을 조성한 건 탁월한 판단이었다고 생각된다.그렇다면 바로 이 ‘김광석 길’은 어떤 과정을 통해 조성된 것일까? 대구광역시 중구 홈페이지가 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은 방천시장 문전성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만들어졌다. 대구시 중구 달구벌대로 450길은 거리 조성 이전엔 사람이 드물 정도로 어둡고 슬럼화 된 공간이었다. 이 길은 김광석이 대봉동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에 기초해 조성됐다. 명칭은 김광석이 1993년과 1995년에 각각 발표한 음반 ‘다시 부르기’에서 착안했다.‘그리기’는 김광석을 그리워하면서(Miss), 그린다(Draw)는 중의적인 의미를 담았다. 2010년 11월 90m 구간이 처음 오픈됐고, 이후 계속해서 영역을 늘려갔다. 2014년 가을엔 전면적으로 재단장을 했다. 대중음악인의 이름을 딴 거리는 전국에서 최초다. 대구시는 이 길이 창작을 통해 태어난 거리인 만큼 여기서 김광석보다 더 뛰어난 예술가가 만들어지길 기대하고 있다.”◆ 다양한 먹을거리와 함께 이색적인 카페도 적지 않아‘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은 슬픈 목소리를 가졌던 맑은 얼굴의 가객(歌客)을 기억하는 중년만이 아니라, 청년들도 즐겨 찾는 공간으로 이미 자리를 잡았다. 거기엔 먹을거리와 즐길거리가 적지 않다는 것이 한몫했다.김광석의 이름이 붙은 거리 골목마다엔 대구를 대표하는 음식인 곱창전골과 막창구이, 납작만두와 매운 갈비찜을 만들어내는 식당이 줄을 지어 서있다. 각자의 취향과 입맛에 따라 ‘골라 먹는’ 재미가 있는 곳이 ‘김광석 길’이다.어묵과 부침개를 파는 분식집에서 김광석의 노래가 흘러나온다는 것도 팬들에겐 빼놓을 수없는 매력.최근엔 어떤 카페가 방문자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는지 묻기 위해 20대 커플 두 쌍을 만났다.‘코로나19 시대’임을 잘 알고 있기에 화사한 색깔의 마스크로 코와 입을 꼼꼼하게 가린 그들이 지목한 곳은 수제 맥주와 화덕 피자가 맛있다는 ‘대도양조장’.확인을 위해 그곳에 들러 맥주와 피자를 주문했다. 적절한 가격에 다양한 향을 지닌 맥주를 맛볼 수 있었고, 치즈와 베이컨, 채소 등으로 깔끔하게 토핑 된 피자도 나쁘지 않았다. 역시 젊은이들의 감각은 어디서건 쿨하고 정확했다.돌아올 무렵. ‘김광석 길’ 카페 차양막으로 비가 한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덤덤한 사람들의 가슴도 흔들리게 만드는 고운 봄비였다. 그 낭만적인 거리를 배경으로 김광석의 노래가 다시 흘러나왔다. ‘그날들’이었다.그대를 생각하는 것만으로그대를 바라볼 수 있는 것만으로그대의 음성을 듣는 것만으로도기쁨을 느낄 수 있었던 그날들그대는 기억조차 못하겠지만이렇듯 소식조차 알 수 없지만그대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눈물이 흐르곤 했었던 그날들잊어야 한다면 잊혀지면 좋겠어부질없는 아픔과 이별할 수 있도록잊어야 한다면 잊혀지면 좋겠어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대를….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기어코 봄이 왔다. 독자들 모두의 뜨거운 심장에 ‘영원히 잊히지 않을’ 이름 하나씩이 새겨지기를 기대한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1-03-16

찬란한 대가야 역사 속에서… 夜한밤 힐링

‘관광과 여행의 계절’로 불리는 봄이 눈앞에서 손짓하는 3월도 어느덧 중순으로 접어들었다. 경북의 각 지방자치단체들은 코로나19 시대의 대세로 자리 잡은 비대면·비접촉 여행 관련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대가야의 찬란한 역사를 간직한 고령군도 이런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지산동 고분군, 대가야수목원을 포함한 여러 가지 역사·문화유산을 간직한 고령은 “청정 자연이 숨 쉬는 다양한 비대면 관광지를 안전한 공간으로 만들어 간다”는 큰 그림을 그려놓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코로나19 걱정 없는 쾌적한 언택트 관광’을 지향하는 고령군의 올해 관광 정책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다.◆ 확 바뀐 여행 트렌드에 발맞추는 고령군지난해에 이어 올 2021년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위협’이라는 예전에는 겪어보지 못한 전대미문의 재난으로 관광과 여행 산업 전반에 대단히 큰 변화가 생겨났다.한국의 전 지역이 이런 상황을 감안해 봄 관광 코스를 설계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고령군도 다르지 않다.대폭 변화된 환경과 방향이 바뀐 관광시장에 맞춘 체계적이고 신뢰성 높은 관광 트렌드 분석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를 토대로 고령 지역 관광을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를 맞은 것이다.‘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될 때까지는 관광의 주요 트렌드가 언택트 방식으로 지속될 전망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인구밀도가 낮고 안전이 확보된 청정한 비대면 관광지로 여행자들이 향할 것이란 분석. 또한 단체여행이 흔했던 이전과는 달리 가족 단위 또는, 소규모 개별 관광객이 대세를 이룰 것으로 예측된다.고령군을 포함한 한국의 지방도시는 지난해 코로나19로 인해 유료관광지의 입장객 수는 다소 줄었으나 캠핑·차박·비대면 관광지·MTB 도로를 찾는 여행객들은 예상과 달리 오히려 증가했다.고령군 관계자는 “대구시에 인접한 고령군은 청정한 자연과 비대면으로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역사·문화 관광 명소들이 즐비하다”고 말한다.유네스코 세계유산 최종 등재 대상이며 ‘경북 겨울 비대면 관광지 23선’에 선정된 지산동 고분군을 필두로, 고령은행나무숲(2020년 가을 비대면 관광지 100선 선정), 대가야수목원, 어북실, 부례관광지, 개경포공원, 미숭산 자연휴양림 등은 ‘코로나19 시대’의 빼놓을 수 없는 힐링 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온·오프라인에서 동시 진행될 ‘고령 대가야문화재 야행’올해 고령군의 관광 슬로건은 “코로나19로 인한 관광산업의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한 ‘위드(with) 코로나 시대 뉴 노멀(New Normal)’ 준비”로 요약될 수 있다.이를 위해 고령은 먼저 안전이 확보된 관광지의 수용 태세 개선을 기본으로 온라인·비대면 관광콘텐츠 개발과 야간 관광, 체류형 관광을 활성화하기 위한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펼치고 있다.그 실례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신청 대상에 선정된 대가야의 대표 유산 지산동 고분군을 기반으로 ‘지역 특화 콘텐츠 개발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우수한 역사·문화 자원을 활용한 관광콘텐츠를 개발 중이다.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각광받을 것으로 전망되는 ‘고령 대가야문화재 야행’은 2020년 10월 처음 개최돼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쳤다.이는 고령의 야간관광과 온라인을 통한 랜선여행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올해 고령 대가야문화재 야행은 ‘고분에 걸린 달빛소리 Ⅱ’라는 부제로 진행될 예정이다.이 행사는 문화재가 집적·밀집된 지역을 거점으로 해서 특색 있는 역사·문화자원을 활용한 문화재 관람, 체험, 공연, 전시 등으로 꾸며져 관광객들을 매혹하게 된다. 또 여기에 더해 ‘야간 문화 실감 콘텐츠형 프로그램(8夜)’도 기획·운영할 계획이다.오프라인에서 진행되는 야간 여행을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한 라이브 생중계로 즐길 수 있는 이 프로그램은 현장 참여를 하지 못하는 관광객들에게 대리체험의 즐거움을 선사한다.“고령 대가야문화재 야행을 온·오프라인에서 동시에 진행함으로써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넘어 우리 지역을 야간관광 명소로 자리매김 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게 이와 관련한 고령군의 설명.◆ 5가지가 변화하는 고령 ‘대가야 체험축제’고령군이 지역의 대표 축제로 내세우는 ‘대가야 체험축제’는 코로나19 사태가 지속되는 올해 일회성 축제가 아닌 ‘일상의 축제’로 전환된다.이에 대해 고령군청은 “대가야 문화와 생태를 접목한 융복합 콘텐츠 구현으로 스토리 강화, 생산력 강화, 지역문화 재구성에 궁극적인 가치를 부여하겠다”는 약속을 내놓았다.2021년 대가야 체험축제는 크게 5가지가 달라진다. 이를 요약하면 △개최 시기는 봄에서 가을로 변경 △장소는 테마관광지 일원에서 생활촌·안림천 일대로 확장 △역사와 체험 중심에서 문화와 경관 중심으로 변화 △대규모·일회성 행사에서 분산화·일상화된 축제로 재편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축제로 추진이라 할 수 있다.특히 축제 개최 예정인 9월 말에서 10월 중순까지는 ‘고령 문화관광 주간’으로 운영될 예정이라는 게 관계자의 부연이다. “이를 통해 관광객을 유치해 지역경제 활성화도 함께 도모하겠다”는 것이 고령군의 복안.고령군청과 군민들은 축제, 야행 등의 대표 행사 외에도 비대면 여행지의 수용 태세 개선과 홍보 역시 더욱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이를 위해 사계절 청정 자연을 품은 고령군의 대표적 비대면 관광지로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내내 안전한 여행이 가능하도록 관광 공간을 깔끔하게 방역·정비하고 있다.실질적인 군의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사계절 산책과 트레킹이 가능한 지산동 고분군을 거점으로 ‘대가야박물관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을 통한 비대면 관람을 정착시키는 것도 그중 하나.여기에 대가야 역사테마관광지와 대가야 생활촌 투어, 안림천에서의 피크닉과 산책로 개선을 통해 ‘대가야 역사테마 비대면 코스’ 보완도 진행 중이다.“성큼 다가선 봄과 다가올 가을은 대가야 수목원과 회천변의 어북실을 연계한 벚꽃투어 코스를 만들고, 핑크뮬리와 코스모스 단지를 비대면 드라이브 투어 형식의 개별관광 코스로 운영할 예정”이라는 것도 고령군의 올해 세부 관광정책 중 하나다.◆ ‘밀레니얼 세대’와 ‘MZ 세대’ 위한 마케팅에도 주력더불어 고령군은 그간 주류를 이루던 단체여행과 단체관람을 지양하고, 개별 관광객 맞춤의 가족 단위 소규모 시설과 프로그램 활용에도 힘을 쏟고 있다.사실 ‘코로나19 사태’ 이후의 여행은 온·오프라인의 경계가 무너지고, 관광객들의 안전이 확보된 소규모 개별여행이 주를 이루고 있다.그렇기에 주요 관광 전략의 우선순위 또한 ‘안전’과 ‘비대면·비접촉’을 기본으로 설계될 필요성이 대두된다. 이를 중심에 둔 관광 인프라 개선과 프로그램 개발이 요구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언택트 여행지 홍보 방안은 ‘고령 힐링 여행’을 콘셉트로 지역의 안심관광지 홍보 이벤트를 적극적으로 펼쳐나가고, 크리에이터가 제작한 영상을 고령군 SNS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지속적으로 알리는 것.또한 생활관광으로 즐기는 신개념 ‘트렌디 북’을 제작해 드라이브 스루 여행지, 사회적 거리두기가 용이한 야외 활동, 가족 단위의 소규모 여행, 트레킹, 캠핑 등에서의 유용한 방법을 알리게 된다.이는 자신의 생활권역 내에서 일상과 연계된 관광을 즐기는 생활관광의 활성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게 관광 전문가들의 전망이다.또한 고령군은 지역 고유의 역사자원인 지산동 44호 고분을 이용한 애니메이션·캐릭터 개발과 관광기념품 생산에도 매진하고 있다.“지역 대표 캐릭터의 문화·관광 상품화로 산업과의 연계, 경제 활성화와 지속가능한 가치를 창출해 나갈 예정”이라는 게 고령군의 향후 계획이다.이에 더해 고령군은 자유롭고 개성이 강한 밀레니얼 세대와 디지털에 능숙해 SNS를 생활의 중심으로 옮겨온 MZ세대를 위한 다양한 ‘디지털 플랫폼 온라인 마케팅’에도 주력하게 된다./전병휴 기자 kr5853@kbmaeil.com

2021-03-09

산줄기 따라 1천26m 고갯길자연과 하나되는 나를 찾다

드물게 ‘빼어난 경관’이 그 지역의 명칭보다 유명한 경우가 있다. 문경시의 ‘새재’(경북 문경과 충북 괴산 사이에 있는 높이 1천26m의 고개)가 그렇다. 아찔한 바위산과 울울창창한 숲이 어우러진 새재의 풍경은 ‘문경’이란 도시의 명칭을 보다 드라마틱하게 만들어주고 있다.4년 전 한 번, 지지난해 또 한 번 문경새재를 찾았다. 여름엔 시원스런 그늘을 만들어 선물하는 것으로 관광객과 문경시민의 휴식처가 되고, 오만가지 꽃이 피는 봄이면 그 향기가 깊은 골짜기까지 진동하는 곳.여행하는 이들이 드물어 조용한 겨울에도 더없이 낭만적이고, 단풍놀이 즐기는 중년남녀들에겐 가을의 문경새재가 사랑받아 왔다. 사계절 가리지 않는 매력 가득한 여행지.‘한국 지명 유래집’은 문경새재의 다른 이름인 조령(鳥嶺)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조선시대 영남 지방에서 서울에 이르는 영남대로에 위치한 마지막 고개다. 일제강점기에 이화령에서 충주 수안보로 통하는 3번 국도가 뚫린 후 새재 길은 옛길로 남게 되었다. 1981년 이 지역을 도립공원으로 지정했다. ‘고려사 지리지’에선 조령을 초점(草岾)이라 불렀다.임진왜란 후 경상도에서 서울로 통하는 요충지인 조령에 1관문인 주흘관, 2관문인 조곡관, 3관문인 조령관이 설치됐다. 국방의 요충지이기도 했던 것이다. 조령은 우리말로 새재다. 지명의 유래는 여러 가지다.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라는 뜻에서 왔다는 설이 있고, 억새가 우거진 고개라는 뜻에서 연유했다는 의견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새로 생긴 고개’이기에 새재라고도 한다.”‘문경새재 도립공원’은 문경시가 가장 앞서 내세우는 지역 최고의 관광지다. 실제로 찾아오는 이들도 많다. 문경을 여행하면서 새재를 돌아보지 않는다면 팥소가 빠진 찐빵을 먹는 것처럼 싱겁다.기자 역시 문경시를 찾을 때마다 문경새재 도립공원에서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받았다. 초여름엔 입구에서부터 천천히 걸어 올라가며 차가운 물에 발을 담그는 호사를 누렸고, 가을엔 형형색색 단풍에 마음을 뺏겼다.하지만, 여름과 가을의 문경새재는 봄날의 문경새재가 지닌 위상을 따르지 못한다는 게 개인적 생각이다.◆ 조선시대엔 한양으로 가는 큰 길… 지금은 관광 명소가까이에서 만나는 진달래는 그 진분홍 색채를 관능적으로 뽐내고, 불어온 따스한 바람에 놀라 저 먼 산에 화들짝 핀 봄꽃들은 이름을 다 알지 못해도 존재 자체만으로 보석처럼 빛난다.풍치가 이러하니, 문경이 어찌 ‘새재’를 엄지손가락 치켜세우며 자랑하지 않겠는가? 문경시 문화관광 홈페이지엔 보다 상세한 문경새재 도립공원에 관한 정보가 소개돼 있다. 아래 인용한다.“한국의 큰 산줄기인 백두대간(白頭大幹)은 태백산, 소백산을 거쳐 경상도와 충청도에서 경계를 이룬다. 죽령을 지나 대미산, 포암산, 주흘산, 조령산, 희양산, 대야산, 청화산, 속리산으로 이어지니 이게 바로 소백산맥이다. 삼국시대와 고려 때엔 문경 관음리에서 충북 중원군 수안보로 통하는 큰길인 계립령이 있었고, 문경 각서리에서 괴산군 연풍으로 통하는 작은 길 이화령은 1925년 개척돼 지금의 국도3호선이 됐다. 옛날엔 이화령과 충북 괴산으로 연결된 불한령, 문경군 농암에서 충북 삼송으로 다니던 고모령 등이 있어 신라와 고구려, 신라와 백제의 경계를 이루었다. 이곳이 영남에서 한양으로 통하는 조선시대의 가장 큰 길이었고, 지금도 원터, 교귀정, 봉수터 등이 남아 있다. 조령 길의 번성을 말해주듯 주변엔 관찰사와 현감의 공적을 새긴 불망비와 송덕비 여러 개가 존재한다. 지금은 자연 환경이 잘 보존된 관광 명소다.”◆ 봄날 언택트 여행지에서 떠올린 ‘사라지지 않는 것들’드넓은 공간에서 즐기는 새재에서의 산책은 코로나19 시대가 요구하는 ‘언택트 관광’에도 잘 어울린다. 가능하면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을 줄이고, 가족, 연인, 친구가 함께 하는 봄날의 소박한 피크닉이 가능한 곳이 바로 문경새재 도립공원. 볼거리도 적지 않아 공원 내에 자리한 옛길박물관, 자연생태박물관, 힐링 휴양촌, 오픈세트장, 도자기박물관을 돌아보는 즐거움도 크다. 그 가운데 추천하고 싶은 건 ‘문경 생태미로 공원’이다.문경시 관계자는 이 공원을 “자생식물원 형태로 유지돼 오던 것을 도자기, 연인, 돌, 생태를 주제로 한 4개의 미로와 전망대, 산책로, 연못 등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것”이라고 알려줬다.코로나19 바이러스가 인간의 생존을 위협했던 긴 겨울이 가고 어느새 우리 곁에 다가온 봄이 푸른 희망의 노래를 속삭이는 생태미로 공원.여기서 기자는 ‘사라지는 것과 사라지지 않는 것’을 빼어난 문장으로 독자들에게 설파한 이영진(65) 시인의 시 ‘풀들은 늙지 않는다’를 조용히 읊조렸다.집들은 스스로 허물어져 빈자리를 만들었어무너지는 것들은 제 속을 비우고대지를 향해 몸을 맡겼지기울어진 토방마루를 지나뒷산 이름 없는 묏등으로 가는 길구절초며 흰 찔레꽃꽃 피는 모든 것들의 의지가 눈부셨어그대가 길 떠나간 뒤사람의 온기가 바람에 닳아 식어가는 동안등 뒤에 남은 것들의 쓸쓸함은 깊어만 가고무너진 빈자리마다 풀이 자랐지바람이 불 때마다 들렸어지친 발걸음을 인도하던 그대 거역할 수 없는 목소리우리는 세계를 떠돌며끝내 자라지 않는 뿌리의 통증을 견뎌야 했어땀과 눈물의 자리에 함께 서 빛나던 소금 같은 사내들더불어 공유되던 것은 무엇이었을까그대 떠도는 생애보다 짧은 저녁노을이여노을은 떠온 산이 붉어 와도아무도 서로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해다가오는 어둠 앞에서도끝내 늙지 않는 풀들만 푸르를 뿐그대 썩지 않는 예언이여오늘 누군가는 또 집을 떠나야 하리라.◆ 문경 돌리네 습지,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 못지않은 풍경3월 봄바람에 들뜬 마음을 조용히 가라앉히는 좋은 시 한 편을 떠올린 후엔 문경의 또 다른 ‘비대면·비접촉 관광지’ 돌리네 습지로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돌리네(Doline)’란 석회암지대에 생성된 접시 모양의 움푹 파인 땅을 지칭하는 것이다. 습지 형성이 어려운 지형적 특성상 국내에선 문경이 유일한 돌리네 지형이다. 어디서도 쉽게 볼 수 없는 독특한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건 돈 주고도 하기 힘든 호사.혼자서 고독을 곱씹으며 걷는 것도 좋지만, 아이들과 함께라면 웃음까지 선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물속을 재빠르게 헤엄치는 수달과 담비를 보며 깔깔거리지 않을 애들은 없을 테니까.돌리네 지형으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여행지는 동유럽 크로아티아의 플리트비체 국립공원(Plitbice National Park)일 것이다. 기자는 10년 전 그곳을 다녀왔다. 어땠냐고? 물론 아름답고 인상적이었다.문경의 돌리네 습지는 플리트비체와는 다른 매력으로 관광객을 반길 것이다. 기자의 견해를 뒷받침하듯 문경시 관계자가 말한다.“좁은 면적임에도 731종의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하는 곳이 돌리네 습지다. 초원 생태계와 육상 생태계가 공존하는 이곳에선 꼬리진달래, 낙지다리, 들통발, 쥐방울덩굴 등의 희귀식물과 만날 수 있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1-03-02

그래도, 봄은 오고… 가는 겨울 새 옷 입고 날 반기네

기어코 왔다. 봄이다. 그러나, 이 봄이 마냥 반겨 맞을 귀한 손님 같지 않은 것은 무슨 이유에선가?이미 수천 년 전 이런 노래가 세상을 떠돌았다.“호지무화초(胡地無花草)이니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몹쓸 오랑캐들이 사는 땅에는 향기로운 풀도 아름다운 꽃도 피지 않으니, 봄이 왔지만 진정한 봄처럼 느껴지지 않는구나’라는 뜻.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말이다.‘호지(胡地)’는 오랑캐(야만적인 이민족)의 땅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이라면 호지가 특정 지역을 가리키는 명사가 될 수 있었겠으나, 이젠 창졸간에 출현한 바이러스가 수억 명 인간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는 지구 전체가 호지로 불릴 위기다.가볍게 봐 넘길 수 없는 상황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것.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봄이 왔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봄은 아주 오래전부터 ‘희망’과 ‘다시 시작함’의 은유였다.발 빠른 위기대처 능력을 가진 국가들은 이미 많은 수의 국민들에게 코로나19 백신을 주사했다. 부작용 등의 흉흉한 소문이 없지 않지만, 현재로선 백신에 거는 기대가 어느 나라건 클 수밖에 없다. 다른 뾰족한 해결책이 부재한 까닭이다. 한국도 곧 순차적으로 백신 접종이 이어질 것이다.지난 2020년 한 해 내내 ‘코로나19 사태’의 춥고 어두운 그늘 속을 걸어온 우리들에게 성큼 다가온 2021년 봄은 특별하고도 특별하다. 앞서 말한 ‘다시 시작돼야 할 희망’을 거듭 강조하는 이유다.희망을 엔진 삼아 ‘새롭게 시작할 삶’이라는 항해에 힘이 더해지려면 재정비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 재정비에 봄나들이 만한 게 있을까?봄을 더욱 의미 있게 맞으려 준비하는 이들이 잠시잠깐 마음의 짐과 바이러스가 주는 스트레스를 내려놓을 특별한 비접촉·비대면 여행지 한 곳을 소개하려 한다. 바로 서정과 인심이 여전히 살아있는 청도군이다.◆ 시골 넉넉한 인심을 맛보며 아름다운 사찰 ‘운문사’로몇 해 전 청도를 찾았을 땐 밭은 물론 거리에도 발갛게 잘 익은 감이 지천이었다. 젊은이들이 줄어들면서 감을 제대로 수확하지 못한 탓일까? 아까운 감이 땅에 떨어져 굴러다니는 게 안타까웠다.동행한 선배와 함께 비구니 사찰 운문사를 찾아가던 길. 딱히 빼어난 화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붓을 잡으면 색깔 고운 수채화 한 점쯤은 그려낼 듯한 풍경에 빠져 잠시 차를 세우고 감나무 아래를 서성였다.그때다. 저만치서 나타난 나이 지긋한 어르신 한 분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그 감나무 우리끼요. 따 잡사도 돼. 마이 따서 먹어봐요. 청도 감이 맛있다니까.”각박한 도시에서만 살아온 기자에게 그런 시골 인심은 초등학교 다니던 40년 전 외가에서나 본 것이라 어색했지만, 동시에 더없이 반갑고 훈훈했다.인사를 하고 감 하나를 맛봤다. 달콤한 맛도 맛이지만, 밀려오는 어린 시절 추억에 가슴이 더워졌다. ‘인심’과 ‘서정’이란 두 단어로 청도를 기억하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내처 길을 달려 운문사 입구에 닿았다. 절까지 올라가는 길이 절경이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실려 오는 꽃향기. 막 연애를 시작한 젊은 연인들이라면 없던 정도 생길 법한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운문사 초입.◆ 운문사를 산책하며 읊조린 백석의 절창 ‘여승(女僧)’운문사가 어떤 내력을 가졌는지 궁금하신가? 그렇다면 청도군 문화관광 홈페이지를 클릭하면 된다. 이런 설명이 이어진다.“운문면 호거산에 있는 사찰이다. 557년(신라 진흥왕 18년) 한 승려가 작은 암자를 짓고 3년 동안 수도해 도를 깨닫고 이후 동쪽에 가슬갑사, 서쪽에 대비갑사, 남쪽에 천문갑사, 북쪽에 소보갑사, 중앙에 대작갑사를 창건했다. 현재 남아 있는 곳은 운문사와 대비사. 600년(신라 진평왕 22년)엔 원광국사가 중창했다. 신라가 낙동강 서남부로 국력을 키워가던 때 운문사 주위는 병참기지로 역할했다.‘삼국유사’에 따르면 왕건이 후삼국의 혼란을 수습한 후 대작갑사에 ‘운문선사’라는 사액을 내렸다. 이때부터 대작갑사는 운문사로 불렸다. 지금은 260여 명의 비구니 스님들이 경학을 배우는 터전이다. 운문승가대학은 국내 승가대학 중 최대 규모. 천연기념물 제180호 ‘처진 소나무’ 등 보물 일곱 점을 간직했고, 고승대덕(高僧大德)의 영정과 문화재 등도 절 안에 다수 산재돼 있다.”터가 널찍한 운문사는 ‘언택트(Untact)’하게 산책하기 그저 그만인 사찰이다. 걸음을 빨리 할 필요 없이 느긋한 마음으로 경내를 어슬렁거리다보면 기대하지 않았던 봄꽃들의 속삭임도 들을 수 있고, 조심스런 발걸음으로 오가는 비구니들의 맑은 눈빛도 만나게 된다.여승이 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여자로 살아본 바 없고, 승려가 되겠다는 마음 역시 가진 적 없으니 기자는 평생 알 수 없는 일. 그러나, 추측이 불가능하진 않다. 이미 한 세기 전 한반도 남북을 통틀어 가장 명민했던 시인으로 불린 백석(1912~1996)의 절창 ‘여승’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다.여승은 합장을 하고 절을 했다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나는 불경(佛經)처럼 서러워졌다평안도의 어느 산 깊은 금덤판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여인은 나이 어린 딸아이를 때리며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섶벌 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이 갔다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산 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산 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마음만 같지 않은 봄을 위로하는 ‘공암풍벽’의 목소리모두가 같은 삶의 풍파를 겪고 동일한 아픔 속에서 여승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리라.하지만 다종다양한 인간의 삶 중에서 유독 성직자를 택한 이들이라면 분명 어떤 내밀한 사연 하나쯤은 다들 간직하고 있을 터. 운문사는 그러한 ‘생의 비밀’을 곰곰 생각하게 해준다.이런 상념에 잠긴 여행자라면 운문사를 나와 발길을 옮길 곳이 빤하다. 그는 분명 공암풍벽(孔巖楓壁)으로 향할 터. 운문사보다 더 조용하고, 더 적요한 공간.외로운 인간의 본질을 보다 가까이에서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다.‘한국 향토문화 전자대전’은 공암풍벽을 아래와 같이 묘사하고 있다.“청도8경 중 하나다. 사계절에 따라 운문천의 맑은 물과 조화를 이루는 절벽. 1985년에 운문댐이 조성돼 지금은 ‘바라보는 절경’이지만 과거엔 경주로 가는 도로 옆에 위치했다. 높이 30m의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주변을 둘러싸고 있어 공암풍벽이라 불린다.아래로는 동창천이 절벽을 휘감아 돌고, 울창한 수림 사이엔 용혈(龍穴), 학소대(鶴巢臺), 석문(石門)이 자리 잡고 있다. 봄에는 꽃향기에 취하고, 여름엔 녹음 우거진 맑은 물이 더위를 잊게 하며, 가을에는 만산홍엽 단풍이 불타고, 겨울엔 눈 쌓인 절벽에 매달린 고드름이 햇살에 반짝이는 기기묘묘한 경치다. 이에 관광객들은 넋을 잃는다. 수몰된 대천리와 공암리 주민들에겐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풍경이기도 하다.”공암풍벽을 찾았던 날. 기자 또한 세상의 모든 소음을 삼킨 듯 괴괴한 침묵 속에서 조용한 수면을 오래오래 바라보았다.이미 떠나간 계절과 다시 돌아올 계절을 예감하며. 올 봄 청도 공암풍벽을 찾는 여행자들도 아마 그러할 것이다.운문사와 공암풍벽에서의 봄맞이로도 만족을 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면 차를 돌려 화양읍에 자리한 ‘청도 와인터널’을 찾아가보길 권한다. 만약 당신이 모주가라면 만족감이 배가 될 것이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1-02-23

옛이야기 품은 우리의 강과 산으로 봄마중

경상북도 북부를 여행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유사한 말을 듣게 된다. 상주시, 안동시, 예천군 주민들은 “우리 고장이야말로 조선 유학(儒學)의 본산(本山)”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틀린 이야기가 아니다. 물론 터무니없는 과대 포장도 아니다. 이 지역이 배출한 유학자의 숫자와 학문적 성취로 일가를 이룬 선조의 숫자, 곳곳에 산재한 서원(書院)을 볼 때 지역민들이 가지는 긍지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상주시를 여행했던 몇 해 전. 경천대를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거기서도 산책 나온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 몇 분에게서 앞서 언급한 이야기를 들었다.“조선 문반 오분의 일은 우리 동네에서 나온 기라. 거짓말이 아이데이.”실제로 그랬다. 낙동강이 한눈에 조망되는 무우정(舞雩亭)에 올라 내려다보니 그 풍광이 중국 고전소설을 읽으며 만나던 선경(仙境)이었다. 뿐인가. 빽빽하게 들어선 소나무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절로 곧은 절개의 선비를 떠올리게 했다.적지 않은 시인묵객이 경천대를 지칭해 “길고 긴 낙동강에서 만나는 최고의 풍경”이라고 상찬했다. 그래서다. 경천대는 부정할 수 없는 ‘낙동 제1경’으로 자리 잡았다.◆ 인간이 아닌 하늘이 만들었다는 의미의 ‘자천대(自天臺)’로도 불려이런 산세와 풍치를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랐으니 시서화(詩書畵)에 능한 이들이 많을 수밖에 없을 듯했다.독일 철학자 카를 마르크스(Karl Marx·1818년~1883)를 인용해 조금 유식하게 이야기하자면 “모든 인간의 의식은 존재에 규정당하는 것” 아닌가.문장 뛰어나고, 글씨 좋고, 그림에도 빼어난 이들이 부지기수로 살았던 상주시. 그 상주시 관광의 최정점에 서있는 경천대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권장되고 있는 비접촉·비대면 여행에도 썩 잘 어울리는 곳이다.상주시청 문화관광 홈페이지는 바로 이곳 경천대를 아래와 같이 간략하게 안내하고 있다. 읽어보자.“낙동강변에 위치한 경천대는 태백산 황지에서 발원한 낙동강 1천300여 리 물길 중 경관이 가장 아름답다는 ‘낙동강 제1경’의 칭송을 받아온 곳으로 하늘이 만들었다 해서 자천대로도 불린다. 낙동강 물을 마시고 하늘로 솟는 학을 떠올리게 하는 천주봉, 기암절벽과 굽이쳐 흐르는 강을 감상하며 쉴 수 있는 울창한 소나무 숲과 전망대, 조선 인조 때 대학자 우담 채득기가 은거하며 학문을 닦던 무우정, 임진왜란 때의 명장 정기룡의 전설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전망대, 야영장, 출렁다리, 드라마 ‘상도’ 세트장 등이 갖춰져 있고, 정감 있는 돌담길과 108기의 돌탑이 어우러진 산책로도 관광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지척엔 도남서원도 자리하고 있다.”이른바 언택트 관광이 가능하려면 ‘다수의 대중이 밀집된 공간에서 동시에 즐기는 행위’를 경계해야 한다. 경천대는 그게 가능한 여행지다. 여기에 하나를 더하자면 경천섬도 빠뜨릴 수 없는 최상의 언택트 관광지. 상주시청 문화관광과 관계자는 경천섬을 이렇게 이야기했다.“낙동강 상주보 상류에 위치한 20만㎡의 하중도(河中島)다. 섬을 둘러싸고 흐르는 잔잔한 강물과 비봉산 절벽이 하모니를 이뤄 절경을 만들어내는 생태공원이다.”곧 다가올 봄이면 여기에 피는 유채꽃이 젊은 연인은 물론, 중년 부부까지도 매혹한다. 나이를 불문하고 꽃을 본다는 건 청춘으로의 복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여기에 상주시민들의 이런 설명이 덧붙여진다.“봄만이 아니다. 가을엔 코스모스와 메밀꽃이 그저 그만이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올 수밖에 없다. ‘학 전망대’에 올라 경천섬 주위 풍경을 만끽하는 건 상주 여행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석양 무렵을 기다려보라. 도시에선 결코 맛볼 수 없는 매력적인 해넘이에 기가 질릴 것이다.”◆ 호남의 시인을 매료시킨 영남의 절경 경천대주민들이 이야기가 마냥 과장된 것이 아님을 문병란(1935~2015)의 시가 증명하고 있다.문병란은 김지하, 조태일, 이성부 등과 함께 호남의 대표하는 시인.민족적 서정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절창으로 20세기 한국 문단에서 이름이 높았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경천대를 돌아보고는 다음과 같은 시를 썼다. ‘낙동강에 보내는 무등산 노래’다.낙동강은 거기 있고무등산은 여기 있다거기 있는 마음 여기 오고여기 있는 마음 거기 간다오가는 마음 서로 만나고만나는 마음 서로 사랑이 꽃핀다.어기어차 노를 저어라낙동강 칠 백리 두둥실 달이 밝으면율려 개천 송 큰 할아버지 말씀홍익인간(弘益人間) 이화세계(理化世界)동방고문화국 지혜의 하늘 넓게 열리고눈빛 고운 사람들 모여 태양을 모시었다.흥부는 맑은 마음 나누어 놀부 가슴 다스리고놀부는 참회한 마음 나누어 흥부의 가슴 채워주고햇빛 달빛 별빛 놀빛 모두 불러 모아흥부 놀부 다시 만나 형제 사랑 노래한다.하나이면서 둘둘이면서 하나시작은 끝도 없이 영원무궁무등산에 올라 부르는 백두산 노래여낙동강 들과 꽃에 보내는 그리움이여.무등산을 짊어지랴 낙동강을 들이키랴산노래 들노래 서로 만나 어우러져니캉 내캉 나누는 마음 합치는 마음무문대도 남북통일 태극세상 밝혀내자.다 드러내고도 부끄러움 없는 밝음꽃은 꽃끼리 사람은 사람끼리닫힌 것 열고 막힌 것 뚫고한글 세상 삼천리 사랑시를 읊으리라두둥실 두리둥실 우리 모두 하나 되자.영남의 낙동강과 호남의 무등산을 소재로 동서화합을 넘어 남북의 통일까지를 문장 안에 숨긴 문병란의 이 작품은 ‘아름다운 풍경은 성정이 다른 인간들을 서로 포옹하게 만드는 힘까지 지녔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남북과 동서의 갈등이 없는 하늘로 떠난 시인을 추모한다는 뜻에서 경천대와 경천섬을 돌아보며 마음속으로 조용히 읊조려 보면 좋을 시다.◆ 임금이 편액 내린 도남서원에도 곧 봄이 올 터굳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끝이 난다. 고통 또한 그렇다”는 루이제 린저(1911~2002)의 진술을 인용할 것까지도 없다.코로나19 바이러스가 어떤 강력한 힘을 가졌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인간에 의해 그 기세가 꺾일 것임을 우리는 안다. 최근에는 각국에서 백신 접종도 시작됐다.겨울이 가면 봄이 온다. 이것은 누구도 막지 못할 자연의 흐름. 한국 역시 2021년의 봄이 분명 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상주를 찾아 경천대와 경천섬을 유유자적 산책하고 멀리 보이는 도남서원까지 가보자.그곳은 정몽주, 김굉필, 정여창, 이언적, 이황, 노수신, 류성룡, 정경세, 이준의 위패를 모신 사액서원(賜額書院)이다. 사액서원이 뭔가? 왕이 이름을 지어 편액(扁額·이름을 쓰거나 새긴 액자)을 내림으로써 그 권위를 인정한 서원이다.도남서원은 조선 숙종 때 사액서원이 됐다. 1871년엔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안타깝게 허물어졌으나, 지난 1992년 뜻을 모은 상주 유림들의 힘으로 복원된 공간.거기서 도도하게 흐르는 낙동강을 바라보며 21세기 우리가 잊고 살았던 인간답게 사는 길과 윤리와 도덕의 본질을 한 번쯤 생각해보는 시간은 누가 뭐래도 분명 가치 있는 일이 아닐지./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1-02-16

겨울엔 산타, 봄엔 백두산호랑이… 상상 그 이상의 짜릿함

‘경북의 오지(奧地) 중 오지’로 불리는 봉화군. 코로나19 사태가 있기 전에도 봉화는 한적한 여유로움을 추구하는 여행자들이 즐겨 찾는 곳이었다.북적거리는 인파와 현란한 네온사인을 피해 유년의 기억 속에 아름답게 남아 있는 ‘시골 마을에서의 며칠’을 꿈꾸던 관광객들은 봉화군의 피할 수 없는 매력에 빠졌다. 기자도 마찬가지였다.부산과 서울, 대구와 광주 등 인구가 최대 1천 만 명에서 최소 100만 명이 넘는 대도시에서만 살아본 이들에게 겨우 몇 만의 주민들이 1970~80년대의 따스한 공동체적 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봉화군은 그 자체로 신비한 공간이다. 접촉과 대면을 가능하면 줄이자는 게 여행의 대세로 자리 잡은 지난해와 올해.봉화군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최고의 언택트 관광지’로 주목받고 있다. 그 중심에 ‘국립 백두대간수목원’과 ‘분천역 산타 마을’이 자리한다.코로나19로 인해 전국을 거미줄처럼 잇던 여행 경로가 끊기기 이전인 2019년 봉화군을 찾아 이틀을 머물렀다. 그때의 기억이 아직 선명하다. 먼저 국립 백두대간수목원 이야기다.◆ 백두대간수목원에서 선물 받는 즐거움과 치유의 시간사람들 상상의 영역을 훌쩍 비껴난 5천179ha의 광대한 땅에 2천200억 원이 넘는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고, 7년의 시간을 들여 조성한 백두대간수목원은 누가 뭐래도 봉화군을 대표하는 관광지.도시에선 쉽게 보기 힘든 동물과 식물을 보며 느끼는 즐거움과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제공하는 교육적 효과, 여기에 탁 트인 숲에서 느끼는 ‘힐링의 시간’까지 함께 하는 공간. 봉화군청 홈페이지는 이곳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2008년 9월 대통령 주재 국토균형발전위원회의 결정으로 백두대간을 체계적으로 보호하고 산림·생물자원의 보전과 관리를 위해 백두대간수목원 조성의 역사가 시작됐다. 기후대별·권역별 국립수목원 확충 계획의 일환으로 기후 변화에 취약한 산림생물 자원의 안정적 확보와 보전, 연구를 목적으로 설립된 게 바로 백두대간수목원. 이는 국가 광역 경제권 30대 선도 프로젝트 중 문화·생태·관광기반 조성의 핵심 사업이기도 하다. 다가올 2030년엔 아시아 최고의 수목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금도 여러 가지 노력이 지속되고 있다.”식상한 표현이지만 ‘광활한 땅’에 세련되게 조성된 각종 숲과 정원, 거기에 식물원과 휴게 공간까지 들어선 백두대간수목원은 편안하게 트램에 올라 한 바퀴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관광객들에게 작지 않은 만족감을 선물한다.◆ 백두산 호랑이, 기다림을 주는 존재가 있다는 행복감여기에 더해지는 즐거움이 ‘호랑이 숲’이다. 쇠창살이 시야를 가리는 좁은 우리에 갇힌 호랑이가 아닌 드넓은 초지 안에서 어슬렁거리는 호랑이를 볼 수 있는 곳이 한국에 몇 곳이나 있을까?게다가 백두대간수목원에서 만나는 호랑이는 몸집이 작고 볼품없는 인도나 방글라데시 호랑이가 아닌 ‘백두산 호랑이’다. 백두산 호랑이는 여타 호랑이와 어떻게 다르냐고? ‘시사상식사전’을 펼쳐보자. 이런 설명이 나온다.“한국 호랑이를 가리키는 말로, 조선범·시베리아 호랑이·아무르 호랑이·동북호라고도 불린다. 백두산 호랑이는 육중한 체구, 둥근 머리, 작고 동그란 귀가 특징. 앞발과 어깨의 근육이 매우 발달했으며 힘이 세다. 19세기 중엽 동북아시아 일대의 사냥꾼들은 백두산 호랑이를 가장 용맹하다고 증언했다. 20세기에 들어서며 총기를 이용한 사냥이 보편화되었고, 다른 야생동물처럼 감소세를 보였다. 현재 백두산 지역·자강도 와갈봉·강원도 고산군 일대 호랑이 서식지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되고 있다.”기자는 소규모 동물원 창살 안에 고양이처럼 웅크린 호랑이가 아닌 널찍한 평지에서 사방 백 리를 장악하며 포효하는 호랑이를 본 적이 없다.그래서였다. 지난번 봉화 여행에선 1시간 넘게 백두대간수목원의 호랑이를 지켜봤다. 지금 생각해도 그 시간이 아깝지 않다.그리고, 그 와중에 40년 전 할머니에게서 들었던 ‘호랑이 이야기’를 떠올렸다. 이런 것이다. 현실감을 더하기 위해 사투리를 그대로 옮긴다.“이거는 내가 동네 아지매한테 들은 이야긴데... 일제시대 때 왜놈들이 조선 사람들을 사가꼬(고용해서), 오만 좋은 물건들을 가지고 부산으로 갔다카대. 그란데 해가 뉘엿뉘엿 할 때 산을 넘어가는데 호래이(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난기라. 스무 명도 넘는 장골(성인 남성)이 모조리 바지에 오줌을 지맀다카더만. 그날 딱 여섯 명이 죽었는데, 모조리 왜놈들인기라. 조선 사람들은 하나도 안 죽있다카데. 그 호래이가... 조선 호래이는 다 아는 기라. 냄새만 맡아도 안다. 왜놈인지 조선 사람인지.”조모는 1915년에 태어났다. ‘매일신보’ 기사에 따르면 한국에서 호랑이가 마지막으로 포획된 게 1924년 강원도에서라고 하니, 이 땅에서 호랑이와 함께 살아본 경험이 있는 할머니 말에는 신뢰성이 담긴 게 아닐까? 어쨌건.한 가지 매우 아쉬운 점이 있다. “호랑이가 살고 있는 공간의 이동로 확장과 보수를 위해 공사가 진행 중이니, 호랑이와의 재회는 4월 1일이 될 듯하다”는 게 백두대간수목원측의 설명.여기에 웃으며 이런 말을 덧붙였다.“이번 설 연휴엔 수목원에서 식물들과 만나고, 봄이 오면 한 번 더 봉화를 찾아 백두산 호랑이와 인사 나눠주면 좋겠다. 기다림은 만남의 기쁨을 더 크게 해주는 것 아닌가?” 맞다. 틀린 말이 아니다.◆ 즐거움 넘치는 공간으로 진화하는 분천역 산타마을백두대간수목원에서 청정한 공기를 마음껏 맛봤다면, 이제 발길을 분천역 산타마을로 옮길 시간이다.여기선 아이들은 물론 어른도 너나없이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선물이 가득 든 커다란 자루를 멘 흰 수염 할아버지 산타클로스를 믿었던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 때문일 터.여기에 눈까지 내리는 날이면 핀란드나 노르웨이 같은 북유럽 어느 한적한 산골 마을 풍경이 봉화군에서도 그대로 연출된다. 눈싸움을 하며 뛰어다니는 가족 단위 여행자들의 웃음이 그치지 않는다. 산타마을 방문을 권하는 봉화군 관계자의 자랑을 들어보자.“백두대간 협곡열차, 낙동강 세평하늘길, 분천역 인근 빼어난 경치 등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새로운 관광명소로 만들 목적으로 2014년 조성이 시작됐다. 산타열차와 눈썰매장, 레일바이크와 산타우체국 등이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인기다.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이전 겨울이면 정말 많은 분들이 찾아줬다. 그 결과 한국관광공사 주관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됐고, 2015~2016년 한국지역진흥재단의 겨울 여행지 선호도 조사에서 2위에 올랐다. 또한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성화 봉송지이기도 하다. 코로나19가 빨리 진정 국면에 들어서서 그런 영광이 재현되기를 기대하고 있다.”기자가 봉화군을 여행한 때는 지지난해 늦여름. 그때도 분천역 산타마을은 ‘여름 무더위를 이기게 해줄 산타마을의 겨울 풍경’이란 콘셉트로 관광객들을 유혹하고 있었다.그 여행에서 ‘겨울이 오면 또 한 번 분천역을 찾아 산타마을의 진면목을 보고 싶다’는 바람을 가졌다. 동행한 선배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이곳은 여름과 겨울 구분 없이 가족과 연인이 즐거움과 웃음을 나눌 수 있는 관광지다.최근 봉화군은 산타마을을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더욱 많은 곳으로 진화시키려는 청사진을 사람들 앞에 내놓았다.앞으로 3년간 25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분천역 산타마을을 ‘한국의 겨울왕국’으로 자리매김 시키겠다는 게 봉화군의 계획. 이를 위해 올해는 산타의 집, 대형 크리스마스트리, 산타클로스의 길, 순환산책로 등의 시설이 들어선다.이어 다양한 세대의 입맛을 고려한 식당들이 영업을 시작하고, 기념품 가게를 포함한 편의시설도 대폭 확충될 예정. 여기에 더해 “가상현실 체험관이 신설되고, 주차장도 넓힐 것”이란 게 봉화군청의 설명이다.보다 편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봉화를 즐길 수 있도록 관광 관련 인프라는 오늘도 진화 중이다. 봉화 여행을 준비하는 이들에겐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1-02-09

역사 공부하듯… 고대왕국의 옛 흔적 따라 떠나볼까

인간에겐 지금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고난이나 어려움이 세상 무엇보다 크고 아프게 느껴진다. 그건 사람의 한계이기도 하다.1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19 사태’. 2021년 오늘을 사는 우리에겐 그보다 더 큰 비극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당연하다.그러나 과연 그럴까? 지금 숨 쉬며 살아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아득한 먼 옛날. 문자로 기록되지도 못한 시절부터 인간은 언제나 고통과 수난 속에서 살았다. 그걸 당신이 인정하건 그렇지 않건.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더 멀리는 중동과 아프리카에 고대국가가 존재했다. 의학기술이 현대처럼 발달했을 턱이 없다. 그래서다. 같은 물을 마시던 마을과 도시 전체가 요즘이라면 가볍게 넘어갈 수 있는 수인성 전염병으로 ‘몰살’당하기도 한다.이른바 의료선진국이라 불리는 미국과 서유럽, 한국과 일본이라면 콜레라와 장티푸스 따위야 지금은 병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 그러나 고대엔 그 병으로 인해 왕과 왕비도 죽었다.그럼에도 인간은 그러한 병(病)들에게 굴복하지 않고, 그것들에 대항할 백신을 만들고 치료제를 개발해왔다. 그게 인류의 역사다. 어떠한 병원균과 바이러스에게도 온전히 항복하지 않았던.고대왕국의 유적지를 어슬렁거려본 여행자는 안다. 거기서 보고 듣게 되는 건 장구한 역사가 선물하는 낭만만이 아니라, 각종 질병으로 고통 받던 백성들의 비명까지란 걸. 그런데, 그게 마냥 고통스럽고 아프기만 한 기억이고 기록일까?◆ 의성, 조문국의 옛 흔적 사이를 거닐며….의성엔 사라진 고대왕국의 흔적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대부분의 영남 사람들 기억엔 고대왕국이라 하면 신라만이 뚜렷하게 떠오를 터. 하지만 때론 사라진 것들도 아름다울 수 있는 법. 강력했던 인근 국가 신라에 2천 년 전 복속(服屬)된 의성 일대의 조문국(召文國)을 ‘두산백과’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삼한시대 초기 경북 의성군 금성면 일대에서 세력을 형성했던 부족국가로 규모가 작은 나라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185년 신라 벌휴왕 때 파진찬 구도와 일길찬 구수혜가 조문국을 정벌해 군(郡)으로 삼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고려사’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조문국에 대한 기록이 전해진다. 금성면 일대에는 조문국 지배자들의 묘로 추정되는 대형 고분들이 있다.”‘코로나19’가 경상북도 일대를 침탈해 들어오기 직전이다. 의성을 찾아 찬바람 부는 금성산 고분군 일대를 거닐었다. 혼자였고 쓸쓸했다.‘내 눈앞에서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크고 작은 저 무덤들의 주인은 누구였을까?’라는 물음이 절로 떠올랐다.아무도 정확한 답을 줄 수 없기에 막막하고 허망해 보이는 질문 앞에 선 기자의 머릿속으로 김천에서 태어나 대구 영남대에서 오랫동안 학생들에게 문학을 강의했던 이동순(71) 시인의 시 한 편이 흘러갔다. 멀지 않은 강원도를 여행하며 썼을 것으로 보이는 ‘아우라지 술집’이었다.그해 여름 아우라지 술집 토방에서우리는 경월소주를 마셨다구운 피라미를 씹으며 내다보는 창 밖에종일 장맛비는 내리고깜깜한 어둠에 잠긴 조양강에서남북 물줄기들이 서로 어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수염이 생선가시같이 억센뱃사공 영감의 구성진 정선 아라리를 들으며우리는 물길 따라 무수히 흘러간그의 고단한 생애를 되살리고 있었다.사발 그릇 깨어지면 두셋 쪽이 나지만삼팔선 깨어지면 한 덩이로 뭉치지요한순간 노랫소리가 아주 고요히강나루 쪽으로 반짝이며 떠가는 것을 우리는 보았다흐릿한 십 촉 전등 아래 깊어 가는 밤쓴 소주에 취한 눈 반쯤 감으면물 아우라지고사랑 아우라지고우리나라도 얼떨결에 아우라져 버리는강원도 여랑 땅 아우라지 술집.◆ 기록된 역사와 기록되지 못한 옛이야기 속에서남한의 강과 북한의 강이 어우러져 함께 흐르는 통일세상을 꿈꾸던 노시인의 간절한 바람이 가감 없이 전해지는 절창 ‘아우라지 술집’은, 조문국이란 나라가 존재했던 1천900년 전 고대와 21세기 현대도 결국은 어떤 사슬과 관계망으로 어우러져 우리의 인식 속에 함께 존재한다는 걸 알게 해줬다.아주 미세한 흔적만을 남긴 채 사라진 고대왕국. 그 왕국에서 울고 웃었던 사람들이 묻힌 고분 위에 하얀 눈이 쌓였다.봄이 턱밑까지 다가온 늦겨울. 존재와 소멸, 고대와 현대, 기록된 역사와 기록되지 못한 옛이야기를 떠올리며 걷기에 이보다 더 좋은 여행지가 있을까?의성군청 관계자는 아래와 같은 말로 금성면 고분군 방문을 제의한다.“금성면 대리리, 학미리, 탑리리 일대엔 조문국의 370여 기 고분들이 관광객들을 반깁니다. 제1호 고분인 경덕왕릉 앞엔 ‘고분 전시관’이 있어 역사에 관심 있는 학생들의 궁금증을 해소해 줄 겁니다. 지난 2009년 발굴된 대리리 2호분 내부엔 출토 유물도 전시돼 있습니다. 지금도 아름답지만 작약 활짝 피는 봄에도 좋으니 꼭 한 번 와주세요.”◆ 가야산 만물상과 ‘성밖숲’이 손짓하는 성주군으로대구에서 지척인 성주군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참외’를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당도가 높고 아삭거리는 식감으로 전국 미식가들에게 사랑 받는.그런데, 성주엔 대면과 접촉을 최소할 할 수 있는 빼어난 여행지도 적지 않다. 초여름엔 맛좋은 참외로 전국을 매료시키는 성주군. 이 계절엔 최상의 ‘언택트 관광지’로도 역할하고 있다. 성주군이 ‘성주 8경’ 중 하나로 내세우는 ‘성(城)밖숲’의 설경은 겨울 여행을 선택한 이들에게 놀라움과 평화로움을 동시에 선사한다. 성주군청의 이야기를 들어보자.“경산리 성밖숲은 성주읍성 밖에 조성한 숲이다. 수령이 300~500년에 이르는 왕버들 53그루가 웅장함을 자랑한다. ‘경산지(京山志)’와 ‘성산지(星山誌)’의 기록에 따르면 이곳 아이들이 이유 없이 죽어가는 등 흉한 일이 이어지자, 사람들이 정성을 모아 이를 방지하기 위해 조성됐다고 한다. 성밖숲은 노거수 왕버들로만 구성된 단순림(單純林)으로 학술적 가치도 있다.”왕버들이 하늘거리는 성밖숲은 여름엔 커다란 그늘을 만들어줌으로써 사람들에게 휴식의 공간을 제공한다. 보랏빛 맥문동에 반하는 여행자도 적지 않다.하지만, 겨울날 왕버들도 관광객들에게 서정과 낭만을 안겨준다는 차원에서 보자면 여름날의 역할 못지않다. 취향에 따라 방문 시기를 선택할 수 있기에 오히려 더 좋다.성밖숲에서 늦겨울 운치를 즐겼다면, 이제 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보자. 경치 좋은 성주군에서도 군민들이 엄지를 보여주며 최고로 손꼽는 가야산 만물상이다. 성주군청 문화관광 홈페이지의 설명부터 읽어보자.“만물상은 북녘 금강산에만 있는 게 아니다. 성주 가야산 만물상은 2010년까지 약 40년간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됐던 탓에 알려지지 않았을 뿐, 금강산 만물상에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오랫동안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아 원시의 신비로움을 간직한 절경이 겨울 산행객들에게 반긴다.”말 그대로 ‘기암괴석(奇巖怪石)’ 가득한 가야산에선 고래와 두꺼비, 불상(佛像)과 코끼리를 닮은 바위를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등산을 좋아하는 아버지와 딸, 어머니와 아들이라면 손잡고 함께 올라보는 게 어떨까?/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1-02-02

자작나무 숲길 걸으며… 봐요, 밤하늘 수놓은 별들의 낭만을

지난해 초. 갑작스레 출현한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전 인류에게 환멸과 공포를 가져다줬다. 동시에 지구의 주인인 것처럼 오만하게 행세했던 인간이 실상은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를 무섭게 가르쳤다.그러나 100가지 나쁜 점 속에서도 굳이 찾아내자면 그 가운데 한두 가지 좋은 점은 반드시 있는 법. 코로나19는 우리에게 조용히 사색하는 시간을 제공하고 있다.한 해에 수백 만 명이 해외여행을 떠나고, 그보다 몇 배 더 많은 숫자가 국내관광을 하는 한국. 하지만, 지난해부턴 외국은 물론이고 이웃 동네로 가는 것조차 조심스럽다. 2020년 봄에는 전국 대부분의 사람들이 ‘코로나19 감염자’가 다수 발생한 대구·경북 거주민들을 꺼렸고, 이후 여름엔 서울, 이어서 올 겨울엔 수도권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타 지역의 친척과 친지들을 방문하려면 눈치를 봐야했다.관광산업의 흐름도 크게 바뀌었다. 버스를 대절해 봄엔 꽃놀이, 여름엔 물놀이, 가을엔 단풍놀이를 다니던 패턴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혼자 또는 연인이나 가족이 단출하게 떠나는 여행이 증가하고 있다.변화한 그 흐름에서 새롭게 주목받는 경북의 ‘언택트 관광지’도 늘고 있다. 영양군과 영천시도 그런 도시다. 두 지역이 가진 공통적인 매력은 차가운 겨울밤 하늘에서 꿈처럼 빛나는 수많은 별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여기에 더해 눈 쌓인 인적 드문 산 속 숲에서 유유자적 산책과 묵상을 즐길 수 있다. 사람들간 접촉을 최소화해야 할 코로나19 시대에 맞춤한 여행지가 아닐 수 없다.◆ 영양, 밤하늘과 자작나무가 선물하는 치유의 시간2년 전이다. 영양을 여행하며 산나물로 차려진 늦은 저녁을 먹고 홀로 숲길을 걸은 적이 있다. 약간의 과장을 보탠다면 올려다본 하늘에서 주먹만한 별들이 당장 눈앞으로 쏟아질 것 같았다.그보다 몇 해 전. 이란의 중부 사막도시 야즈드(Yazd)의 숙소 옥상에서도 큼지막한 별들의 군무(群舞)에 기가 질린 기억이 있다. 영양이나, 지금은 여행하기가 더욱 어려워진 이란의 야즈드나 별이 전해주는 낭만은 유사했다. 그때 자연스레 떠올린 정호승(71)의 시 한 편이 있다. 시도 그렇지만 감수성 넘치는 안치환과 시니컬한 목소리를 가진 장필순의 노래로도 유명한 ‘우리가 어느 별에서’다.우리가 어느 별에서 만났기에이토록 서로 그리워하느냐우리 어느 별에서 그리워하였기에이토록 서로 사랑하고 있느냐사랑이 가난한 사람들이등불을 들고 거리에 나가풀은 시들고 꽃은 지는데우리가 어느 별에서 헤어졌기에이토록 서로 별빛마다 빛나느냐우리가 어느 별에서 잠들었기에이토록 새벽을 흔들어 깨우느냐해 뜨기 전에가장 추워하는 그대를 위하여저문 바닷가에 홀로사람의 모닥불을 피우는 그대를 위하여나는 오늘밤 어느 별에서떠나기 위하여 머물고 있느냐어느 별의 새벽길을 걷기 위하여마음의 칼날 아래 떨고 있느냐.◆ ‘슬로시티 영양’에서 옛 추억을 불러내보면 어떨까?‘슬로시티(Slowcity) 운동’이란 게 있다. 1999년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청정한 자연을 친구 삼아 전통적인 문화를 보호함으로써 공해와 오염에 찌든 현대인들을 치유하자는 뜻에서 출발했다.영양군은 이 슬로시티 운동의 회원으로 가입된 고장. 그 중심에 영양 ‘국제 밤하늘 보호공원’이 있다. 영양군은 이곳을 아래와 같이 소개한다.“영양에서 가장 깨끗한 하늘을 만날 수 있는 곳. 국제 밤하늘 보호공원은 수비면 수하계곡 왕피천 유역 자연경관보존지구 지역을 포함하고 있다. 반딧불이 생태공원 일대 390만㎡가 국제밤하늘협회(IDA)로부터 2015년 아시아 최초로 국제 밤하늘 보호공원으로 지정받았다.”당연한 이야기지만 꼭 이 공원에서만 별들이 보이는 건 아니다. 영양 어디에서도 소년·소녀시절의 애틋하고 아름다웠던 기억을 소급하는 낭만적인 별과 만날 수 있다. 이는 영양군에 가봐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그리고 하나 더. 영양 관광의 ‘새로운 별’로 떠오르고 있는 자작나무숲을 빼 놓으면 섭섭하다. 큰길에서 한참 떨어진 한적한 지역에 북유럽 동화 속에 등장할 듯한 풍경으로 존재하는 숲.찾아가는 것부터가 ‘작은 모험’에 가까운 영양군 죽파리 자작나무숲을 걷노라면 겨울 찬바람에 손과 발이 시릴 수 있지만, 그것조차도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여행의 즐거움으로 받아들여진다. 가보면 이 말이 사실임을 알게 된다.영양군청 관계자 하나가 자부심 가득한 눈빛으로 죽파리 자작나무숲에 관해 이야기한다. 들어보자.“1993년부터 식재한 30.6ha 규모의 자작나무숲이다. 2km의 산책로가 만들어져 있고, 한 번 온 사람은 반드시 다시 찾는 매력을 지녔다. 찾아가기가 쉽지 않지만 일상을 떠난 여행에선 그것도 재미 아닌가? 깊은 숲 속에선 핸드폰도 작동하지 않는다. 그러나 복잡한 일상을 떠나 세상사 시름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다는 매력이 불편함을 충분히 감수할 수 있게 해준다.”◆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영천 보현산의 별과 설경(雪景)한때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가졌던 영국은 자신들 나라의 문화·예술적 자존심을 이렇게 표현하곤 했다.“가장 큰 식민지 인디아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영국 극작가)와 바꾸지 않겠다.”영천시 보현산에서 눈 쌓인 겨울밤 별을 올려다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약간의 오만함마저 묻어나는 영국 사람들의 말을 이렇게 바꿔볼 용기가 생길 것 같다.“영천 보현산의 설경과 그 위에서 빛나는 별들이 만들어낸 경치는 영국과도 바꾸지 않겠다.”아래 보현산에 관한 ‘한국 민족문화대백과’의 설명을 인용한다.“경북 영천시 화북면과 청송군 현서면에 걸쳐 있는 산이다. 높이는 1천124m. 모자산(母子山)이라고도 불린다. 중앙산맥 중앙부에 자리했고, 이 산이 하나의 맥을 이루기에 그 자체를 보현산맥이라 칭한다. ‘화산지(花山誌)’엔 ‘중턱엔 중복에 생겨 말복에 없어진다는 빙혈(氷穴)이 있다’고 기록돼 있다. 산삼을 캐내 남편의 병을 고친 아내가 평생 모은 재산으로 산삼을 캤던 자리에 지었다는 법룡사도 보현산에 위치했다.”이처럼 건조하고 짤막한 문장만으론 보현산의 겨울 풍경이 여행자들에게 전하는 위로와 위안을 설명하기엔 턱없이 모자란다. 여러 차례 직접 가본 기자이기에 서슴없이 이렇게 말할 수 있다.영천은 해마다 여러 차례 폭설이 쏟아지는 강원도나 경기도 북부에 비해 눈이 자주 내리지는 않는다. 그래서다. 보현산의 설경은 더욱 귀하게 관광객들에게 다가선다. 흔하게 볼 수 없는 풍광이기 때문이다.하얀 눈이 만들어낸 동양화 화폭 속에서 천천히 산길을 오르며 초롱초롱한 별과 향기를 뿜어내는 갖가지 나무와 만난다는 건 재론의 여지없이 행복한 일이다.보현산에서라면 프랑스 시인 로트레아몽(1846~1870)의 “나무는 자신의 위대함을 모른다”는 문장이 어떤 의미인지를 해석할 수도 있을 듯하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1-01-26

눈앞 한폭의 동양화… 산에서는 누구나 예술가가 된다

‘코로나19 사태’가 지구를 덮친 지난해. 사람들은 죽음이 삶과 얼마나 가까운 곳에 도사리고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됐다. 동양인과 서양인, 노인과 청년, 여자와 남자 구분 없이 언제든 다가설 수 있는 절멸의 공포.그 속에서 우리는 발견했다. 삶은 죽음 속에, 죽음은 삶 속에 웅크리고 있으며 결국 살아간다는 건 죽음을 향한 과정이란 걸. 슬프지만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그러나, 공포가 모든 일상을 온전히 파괴할 수는 없는 일. 인간이 죽을 줄 알면서도 열심히 살아가는 건 자신이 소멸하는 존재라는 걸 가끔은 잊고, 때로는 의도적으로 잊으려하기 때문이다.여행 역시 일상의 한 부분. 21세기 현대인들의 스트레스와 갑갑함을 풀어준 ‘여행’도 ‘코로나19 시대’가 지속되며 그 패러다임(Paradigm)에 변화가 생겼다. 비접촉, 비대면으로 혼자 떠나거나, 소수와 함께 하는 여행의 대세를 이루고 있는 것.전세버스에 동창과 동네주민들 수십 명이 타고, 또는 비행기 좌석 30~40개쯤을 미리 구매해 우르르 몰려다니던 관광 방식이 큰 변화를 맞고 있다. 이처럼 변화된 여행 패턴은 앞으로도 제법 오랜 기간 지속될 것으로 추측된다.어쨌건 앞서 2주간 경북의 ‘낭만적인 겨울바다’를 소개했다.여행지의 선택은 개인의 취향에 의해 좌우된다. 이를 감안해 포항과 경주, 영덕과 울진의 바닷가를 돌아봤으니 이젠 경북의 산으로 가볼까 한다.◆ 산 자가 바라보는 죽은 자의 영역 ‘지산동 고분’예부터 ‘지자요수 인자요산(智者樂水 仁者樂山)’이라 했다. 그렇다고 바다나 강을 좋아하는 모든 사람이 똑똑한 건 아니고, 산을 좋아하는 사람만 어진 것은 아닐 터. 이는 인간이 여행을 통해 무엇을 배워야 할 것인지를 에둘러 표현한 문장이라고 짐작된다.그렇다. 여행은 인간에게 현명하고 어질게 사는 방법을 고민하게 하고, 때로는 말없이 이를 가르친다.고령군은 인구 3만 명 안팎의 조그마한 소읍이다. 대구에서 멀지 않은. 적지 않은 여행자들은 “그 조그만 도시에 뭐 볼 게 있겠어”라고 생각하기 쉽다.하지만 천만에. 고령 시외버스터미널 인근 야트막한 산에 올라 1천500년 전 조성된 고령 지산동 고분군(高靈 池山洞 古墳群 )을 마주하게 된다면 선입견은 얇은 와인 잔이 깨지듯 단숨에 사라진다.시인 이영진은 25년 전 ‘숲은 어린 짐승들을 기른다’라는 제목의 빼어난 시집을 출간한다. 거기서 이렇게 말한다. 저자 서문을 통해서다.“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지만 세상에 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단지 산 자의 영역보다 죽은 자의 영역이 나날이 넓어지고 있다는 것만이 유일한 진실일 뿐.”우리가 눈 쌓인 지산동 고분을 바라본다는 건 ‘산 자가 죽은 자의 영역을 넘나드는 것’과 유사한 행위다.앞서 말했듯 삶과 죽음의 경계는 너무나 허술하고, 때로 죽음은 삶의 일부이기도 하다. 시인을 포함한 예술가들은 이 자명한 사실을 알고 있다.◆ 아득한 옛날 만들어진 무덤이 전하는 위로의 말살아간다는 것이 힘겹고 비루하게 느껴져 어떤 것에서도 희망을 찾기 힘든 이들, 아픔과 고통의 시간을 겪고 있는 이들, 허무와 덧없음에 불면증에 시달리는 이들이라면 고령군을 향하는 버스를 타보길 권한다. 높낮이를 달리하며 솟아오른 지산동 고분군은 당신을 이렇게 위로할 것이다.“저 아득한 1천500년 전에도 사람들은 삶 속에서 웃었고, 죽음 앞에서 통곡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어느 한순간도 세상이 멈추거나 망한 적이 있는가? 그렇지 않다. 모두가 겪는 일이다. 너만 아픈 게 아니다. 그러니 어깨 펴고 힘을 내라. 네 곁엔 아끼고 사랑해야 할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봄과 여름, 두 차례 지산동 고분군을 찾은 적이 있다. 인간을 사색의 시간으로 이끄는 힘이 그 공간엔 존재한다. 누구라도 철학자나 시인의 마음을 가지게 하는 지산동 고분군이 지닌 매력을 ‘한국 민족문화 대백과’는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고령군 대가야읍 지산리에 있는 삼국시대 대가야의 고분군으로 사적 제79호다. 지산동 고분군에서는 대량의 토기와 함께 금동관, 갑옷, 투구, 긴 칼, 꾸미개류 등이 출토되고 있고, 이를 놓고 볼 때 4∼6세기경에 축조된 대가야 지배 계층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대가야읍 서편에 위치한 주산(主山) 봉우리에는 대가야의 산성인 주산성이 있고, 남쪽으로 뻗은 주능선과 동남쪽 사면에 대규모로 고분군이 분포한다. 주능선과 지맥의 정상부를 따라 직경이 20m가 넘는 대형분과 10∼15m가량 되는 중형분이 줄지어 분포하고, 경사면엔 그보다 작은 중소형 봉토분들이 밀집·분포돼 있다.◆ 주왕산 눈을 밟는다는 건 ‘꿈’에 다가서는 일“영국은 비틀즈고, 비틀즈는 곧 영국이다”란 말이 있다. 그러니 다음과 같이 말해도 과장은 아닐 듯하다.“청송은 주왕산이고, 주왕산은 곧 청송이다.”세칭 ‘단풍놀이’를 좋아하는 한국 관광객들 중 주왕산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이가 있을까? 없을 게 분명하다. 그런데, 가을 주왕산이 아닌 겨울 주왕산의 매력을 알고 있는 여행자는 얼마나 될까? ‘그것이 알고 싶다’.기암괴석과 향기로운 나무들이 손짓해 부르는 절경 중 절경 주왕산. 최근엔 눈이 자주 내렸다. 만약 당신이 청송을 여행할 때 눈을 만나게 된다면 조금 춥더라도 반드시 눈 덮인 주왕산 인근 숲길을 산책해봐야 한다.주왕산 눈길을 걷는다는 건 꿈에 보다 가까워지는 경험을 해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게 기자의 생각. 거기선 이런 시 한 편쯤 읊어보는 것도 좋다. 윌리엄 예이츠(William Yeats·1865~1939)의 ‘하늘나라 옷감’이다.나는 가난하여가진 것은 꿈뿐이니그걸 당신 발아래 놓습니다밟고 가소서 그대거기 부서지는 것은 내 가난한 꿈일지니….주왕산 바위와 소나무 위에 점점이 쌓인 ‘눈’은 예이츠가 말한 ‘꿈’의 은유로 읽힌다. 당신이 대단한 감수성과 시적 감각을 갖추지 않았더라도 짐작만으로 알 수 있지 않은가? 맞다. 청송의 설경(雪景)은 보통 사람도 예술가로 만드는 힘을 가졌다.주왕산은 1976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한국의 3대 암산 중 하나. ‘택리지(擇里志)’를 쓴 이중환은 “돌로써 골짜기 동네를 이뤄 마음과 더불어 눈(目)까지 놀라게 하는 산”이라고 상찬했다.◆ 꽁꽁 언 주산지와 얼음골이 선물하는 청량함청송에 가서 주왕산하고만 인사 하고 돌아선다면 그처럼 우둔한 일이 없다. 왜냐? 지척에 주산지와 얼음골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주산지는 주왕산이 품고 있는 용모 수려한 자식이기도 하다.주산지는 1721년 조선 경종 때 만들어진 농업용 저수지. 그러나, 현대인들은 이곳을 ‘최고의 사진 촬영지’로 기억할 것이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엔 일 년 내내 사진작가들의 발길이 이어졌다.저수지 안에서 자란 왕버들 20여 그루가 이곳 풍광을 ‘전설 속 공간’처럼 연출하고 있다. ‘아름답다’는 형용사만으로는 그 풍경을 다 묘사할 수 없을 정도.얼음골 또한 겨울에 제맛을 느낄 수 있는 여행지다. 청송군 주왕산면 내룡리에서 동쪽으로 5리쯤 거리에 위치한 얼음골은 여름엔 시원함으로, 겨울엔 깎아 세운 듯한 빙벽(氷壁)이 관광객의 환호와 탄성을 자아낸다.“날씨가 맵찼던 1월 둘째 주 토요일과 일요일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얼음골을 찾아 방역지침을 지키며, 청량한 겨울 청송의 매력을 즐기고 돌아갔다”는 것이 청송군청의 설명이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1-01-19

아름다운 풍광·먹거리가 유혹하는 여행의 색다른 맛

한국 사람들에게 ‘해외여행 자유화’가 시작된 때부터 지금까지 대략 50~60개 나라를 여행한 선배와 영덕의 해변을 돌아본 적이 있다.1990년대만 해도 한국인 관광객을 찾아보기 어려운 외국의 여행지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심지어 이 선배가 필리핀 보라카이의 화이트비치를 찾았던 땐 그 아름다운 섬의 80% 이상 지역이 전기 없이 살았다고 하니. 최근엔 어떠냐고? 필리핀 대부분의 해변은 거의 부산 해운대 수준으로 한국인이 넘쳐난다. 거기에 중국인들까지 합류한 게 이미 오래 전이고.사파이어 색채로 빛나는 태평양의 낭만? 이제 보라카이엔 그런 것 없다. 비단 그곳만이 아니다. 발리, 푸켓, 코사무이, 나트랑, 다낭, 시아누크빌…. 동남아 대부분의 해변 휴양지가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 ‘코로나19 사태’가 끝나면 다시 그 풍경이 재현될 게 분명해 보인다. 바이러스가 창궐해 각 나라가 국경을 봉쇄하고 있는 이 시기엔 해외여행의 꿈은 잠시 버려둬도 좋을 듯하다. 북적이는 외국 바닷가 이상으로 아름다운 해변이 한국에도 적지 않으니.◆ 지중해가 아름답다고? 그렇다면 영덕 해변에서 보는 바다는?“바다 빛깔만으로 이야기하자면 여기가 지중해보다 더 멋진 걸.”앞서 언급한 선배가 영덕 방파제에 앉아 가장 먼저 던진 말이다. 기자 역시 코발트블루 색채로 반짝이는 이탈리아 아말피와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해변에서 며칠을 머문 적이 있다.누군가 “그래서? 한국 동해의 바다 색깔은 유럽만 못한 것이냐”라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이렇게 답하겠다. “아니, 그것들 못지않다. 때론 더 아름다운 것 같다.”우열을 가리기 힘든 영덕의 해변들이라 어느 곳을 내세워 먼저 안내해야 할지 어려운 수학 문제를 받아든 중학생의 심정이다. 그래도 할 건 해야지.먼저 대진해수욕장의 일출을 빼놓으면 영덕군민 모두가 서운해 할 터. 그 도시 북쪽에 자리한 영해면 해안 대진리를 중심축으로 펼쳐지는 가슴 탁 트이는 풍경은 현대화 된 거대 도시에서 갑갑한 일상을 견뎌온 여행자를 소풍 앞둔 아이처럼 들뜨게 한다.해수욕장의 경사가 급하지 않고, 수심도 야트막해 여름철엔 가족 단위 피서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물의 맑기? 그런 건 새삼스럽게 물을 필요도 없고, 구구절절 답하기엔 입이 아프다.밝아오는 새벽. 이곳에 차를 세우고 떠오르는 해를 본다면 지난 1월 1일 ‘관광객 통제’로 어느 해변에서도 일출을 쉽게 보지 못한 아쉬움이 단숨에 사라지지 않을까? 6개의 해안마을이 어깨를 맞댄 영덕 병곡면. 여기에 8㎞의 근사한 모래벌판이 존재한다. 사람들은 그곳의 이름을 낭만적이게도 ‘고래불해수욕장’이라 부르고 있다. 이미 전국적으로 이름이 잘 알려져 여름철엔 숙소 예약이 어려울 정도. 그러나 낭만을 아는 여행자라면 ‘겨울 고래불’에서 더 큰 매력을 느낄 수도 있을 터. 당연지사 숙소를 잡기도 수월하고, 식당에서 제대로 대접받기도 더 좋은 시즌이 지금이다.◆ 영덕 바다를 헤엄치던 고래를 본 고려 충신 목은 이색은….‘고래불’이란 명칭은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와 함께 끝끝내 절개를 지킨 고려의 충신 목은 이색(1328~1396)이 근처 산에 올라 커다란 고래들이 용의 기세로 헤엄치는 걸 보고 만든 것이라 전해진다.자신의 아들과 딸이 장쾌하고 드넓은 기상을 가지길 원하는 아버지와 어머니라면 꼭 한 번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함께 가보길 권한다. 울울창창 사철 푸른 기상을 간직한 주변 소나무 숲 또한 장관이다.남정면 장사리에 자리한 장사해수욕장은 잊어선 안 될 한국 현대사의 기억이 서린 곳이다.근처 부경온천에서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거나, 모래가 신발에 잘 붙지 않는 해변을 유유자적 산책하는 것도 좋지만, 장사상륙작전을 통해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해낸 어린 학도병들의 숭고한 뜻을 새겨보지 않는다면 서운한 여행지다.서울과 대전 등에서 기차를 이용해 포항으로 오는 관광객이라면 포항역에서 기차를 갈아타고 40~50분 바닷가 풍경을 만끽하며 장사해수욕장에 가도 좋다. 이 역시 영덕 여행이 주는 색다른 맛이다.이외에도 영덕엔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바다 빛깔 곱고 사람들 친절하며 맛깔스런 음식이 가득한 해변이 다수다. 오보해수욕장과 경정해수욕장, 하저리해수욕장과 남호해수욕장 등이 그렇다.◆ 신경림의 시가 절로 떠오르는 울진의 바다 풍광영덕에서 좀 더 북쪽으로 올라가면 곧 만나게 되는 게 울진군 후포항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먹음직한 겨울 진객(珍客) 대게와 얼큰한 생선매운탕으로 전국 각지의 미식가들을 유혹하는 공간.그런데 이처럼 아름다운 바닷가에서 먹을거리만을 떠올린다면 좀 아쉽다. 조태일, 이성부, 정희성 등과 함께 한국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시인 신경림(85)은 그 옛날 후포 바다에 와서 이런 시를 썼다. 함께 읽어보자.동해바다-후포에서친구가 원수보다 더 미워지는 날이 많다티끌만 한 잘못이 맷방석만 하게동산만 하게 커 보이는 때가 많다그래서 세상이 어지러울수록남에게는 엄격해지고내게는 너그러워지나 보다돌처럼 잘아지고 굳어지나 보다멀리 동해 바다를 내려다보며 생각한다널따란 바다처럼 너그러워질 수는 없을까깊고 짙푸른 바다처럼감싸고 끌어안고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스스로는 억센 파도로 다스리면서제 몸은 맵고 모진 매로 채찍질하면서.아스라한 수평선이 인간에게 선물하는 귀한 것 중 하나가 ‘용서와 화해’다. 신경림은 자신에겐 너그럽고, 남들에겐 엄격하게 살아온 삶을 돌아보며 “(왜 나는) 동해처럼 너그러워질 수 없을까”라고 자문한다. 망망대해 앞에 선 시인다운 태도가 아닐 수 없다.바로 이 시의 탄생지가 후포다. 울진 가장 남쪽에 자리 잡은 해수욕장으로 비교적 짧지만 서정 넘치는 250m의 백사장은 밀어를 속삭이는 연인들이 손잡고 걷기에 모자람이 없다.데이트의 큰 즐거움이라 할 ‘맛집 찾기’도 걱정할 필요 없다는 게 울진군청 관계자의 설명이다. 게는 물론 생선도 좋고 조개도 맛있단다. 이름난 ‘자장면 맛집’도 있다니 인터넷을 뒤져 찾아보는 재미를 느껴보시길.울진군 북쪽 끝에서 여행자를 기다리는 건 나곡해수욕장이다. 여름에도 사람들이 크게 붐비지 않는 고적한 곳이니 조용하게 자신을 돌아보며 해변을 산책하고 싶은 이들에게 제격이다.“기암괴석이 만들어내는 경치가 멋지고, 왕에게 올린 미역으로도 유명하며, 근사한 다이빙 포인트가 적지 않아 다이버들의 사랑을 받는 해수욕장”이라고 주민들은 입을 모은다.근남면 망양정해수욕장은 관동팔경(關東八景) 중 하나인 망양정(望洋亭)과 왕피천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2006년엔 전국 최초로 트라이애슬론 경기가 열린 곳이기도 하다.기성면에 숨겨진 보물처럼 빛나고 있는 구산해수욕장은 평해읍에서 10리 북쪽에 위치했다. 우거진 소나무 숲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째서 울진이 ‘소나무의 고장’인지 절로 깨닫게 된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1-01-12

푸른 바닷길 거닐며 조용하게… 한적한 해변서 힐링

노벨상을 받은 미생물학자와 세균학자, 방방곡곡에 이름을 알린 미래학자와 ‘명의(名醫)’로 칭송받던 의사들…. 그들 중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또한,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해 1년을 끙끙댔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이야기다.지난 2020년은 바로 그 바이러스가 지구 전체를 공황과 공포 속으로 몰아놓은 해였다. 누구도 이 명백한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첨단화된 의료 시스템과 최고의 의료진을 갖춘 미국과 서유럽부터 속된 말로 ‘박살이 났다’.전 세계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던 휘황한 도시 뉴욕과 파리, 로마와 런던에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돼 사망한 이들의 시체가 쌓였다. 물리적 죽음과 함께 경제에도 강위력한 ‘쓰나미’가 닥쳤다. 관광업과 여행업에 종사하던 노동자는 물론, 소상공업자들에게도 인생 최악의 수난이었다. 앞으로는 또 어떤 사람들이 이 거센 파도에 휩쓸릴지 예측이 어렵다.하지만 어떤 험난한 상황 속에서도 인간의 삶은 이어진다. 이란의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Abbas Kiarostami)의 영화 제목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처럼.인간은 유럽 인구의 1/3을 죽음으로 몰고 간 페스트의 와중에도, 지구 전체가 포연에 휩싸였던 제1·2차 세계대전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한국의 작은 도시들은 지역민 삶의 적지 않은 부분을 ‘관광업’과 ‘여행업’에 기대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관광객과 여행자가 모두 사라진다면, 그곳에서 식당과 기념품 가게, 카페와 숙박업소 등을 운영하며 살아온 주민들은 대체 어떤 방법으로 삶을 이어갈 수 있을까?경북의 지방자치단체들도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내놓고 말하지는 못하지만 “철저하게 국가가 조언하는 방역수칙을 지키며, 안전하게 우리 시·군으로 오시라”고 호소하고 있는 실정.‘바이러스 확산 통제’와 ‘지역경제 지키기’라는 두 가지 명제가 충돌하고 있는 2021 신축년 벽두. 가능하면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을 줄이고, 혼자 또는, 가족들이 조용하게 찾을 수 있는 경북의 ‘언택트(Untact·비접촉) 관광지’를 소개한다.당연한 이야기지만 향후 ‘코로나19 사태’가 종료된다면 우리의 표정을 타의에 의해 감추게 만들었던 마스크를 벗고 환하게 웃으며 단체여행을 즐길 수 있는 경북의 관광지도 소개할 예정이다.◆ 도심 속에서 즐기는 ‘바닷가의 낭만’ 영일대해수욕장부산에 해운대해수욕장이 있고, 강릉에 경포대해수욕장이 있다면 경북 포항엔 영일대해수욕장이 있다. 이 세 곳 해변의 가장 큰 장점은 접근성이 뛰어나다는 것.역이나 고속버스터미널을 통해 그 도시에 도착한 관광객들은 택시로 10~20분, 버스로도 30분이면 겨울 바다의 근사한 풍광과 만날 수 있다. 자가용이 아닌 대중교통을 선택한 여행자가 좋아할 수밖에 없다.1천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생활하는 서울. 전국 각지로의 여행을 원하는 이들이 많다.서울 젊은이들은 바다라면 선입견처럼 강원도와 부산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KTX 열차를 이용해 3시간이면 편의시설 잘 갖춰진 현대화된 비치에 가닿을 수 있다는 매력 때문이다.하지만, 경북의 바다가 주는 매력은 아쉽게도 아직 부산과 강릉만큼 알려지지 못하고 있다. 포항시 차원의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해 보인다.한 번 와본 여행자라면 이미 알고 있다. 서울역에서 포항역까지는 KTX로 2시간 30분 남짓. 포항역에서 영일대해수욕장은 택시로 15~20분이면 도착이 가능하다.해변엔 저렴한 게스트하우스부터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호텔까지 다양한 숙소가 있고, 20~30대가 선호하는 브랜드 커피숍도 여러 개다. 싱싱한 회부터 삼겹살과 곱창을 판매하는 식당도 즐비하다.뿐인가. 해수욕장 거리는 물론 인근 죽도시장에 가면 겨울철 동해의 별미로 이름 높은 ‘대게’와 ‘과메기’를 다른 어떤 도시보다 싼 가격에 맛볼 수 있다. 말 그대로 ‘원산지’니까.물론 올해 영일대해수욕장의 겨울 낭만을 안전하게 즐기려면 ‘마스크’와 ‘거리 두기’는 필수. ‘두산백과사전’은 영일대해수욕장의 매력과 정보를 아래와 같이 요약하고 있다.“백사장 길이 1천750m, 너비 40~70m, 면적 3만7천207㎡로 포항의 대표적인 해수욕장으로 알려져 있다. 1975년 개장해 포항 북부해수욕장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다가, 2013년 6월부터 영일대해수욕장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포스코와 영일만이 바로 앞에 보이며, 백사장의 모래가 고와 가족 단위 여행지로 적합하다. 예전엔 포항 사람들의 해수욕장으로만 이용되다가 여객터미널에서부터 북쪽으로 1.5㎞ 해변을 따라 횟집과 레스토랑 겸 카페, 노래방들이 줄지어 들어서면서 사철 사람들로 붐비며, 저녁 무렵이면 지역민들의 산책 코스로도 이용되고 있다. 인근에는 송도해수욕장이 있다.”◆ 맛깔난 ‘과메기의 고향’ 구룡포해수욕장지난해 말. 포항 구룡포는 크나큰 시련을 겪었다. 갑작스레 증가한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진자로 인해 주민 전체가 코로나19 감염 검사를 받는 상황이 벌어진 것. 다행히 포항시의 발 빠른 대처와 확진자 통제, 여기에 구룡포 주민들의 적극적인 방역 협조로 현재는 상황이 나아지고 있는 상태다.한국에서 생산되는 과메기의 2/3 이상을 만들어내고 있는 조그만 소읍이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빠져나오려 애쓰는 형국. 지역 상인들도 깊어진 한숨을 멈추고, 상권 부활에 힘을 쏟고 있다.구룡포는 탤런트 강하늘과 공효진 등이 열연한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인기에 힘입어 2년 전부터 여행자들의 발길이 부쩍 증가한 곳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구룡포와 인근 호미곶을 찾는 관광객들이 1년 내내 적지 않았다.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이유가 궁금하다고? 어부들이 먹던 음식을 그대로 재현해 차려내는 모리국수는 오징어와 조개, 미더덕과 게가 듬뿍 들어간 포항의 특미. 꽁치나 청어를 깨끗한 해변에서 바닷바람에 말린 과메기의 인기는 말할 것도 없다. 여기에 알싸한 소주 한 잔이면 세상사 시름이 절로 떨쳐진다.더불어 구룡포해수욕장이 선물하는 겨울 절경까지 더해졌으니 누구라도 매혹되지 않기가 힘들었을 터. 지난해부터는 포항역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구룡포를 향하는 급행버스가 생겨 접근성도 나쁘지 않다.“어서 오이소” “대게 잡수시면 홍게는 한 마리 서비스로 드릴께예” “이자뿌지 말고 내년에도 꼭 다시 오이소”라는 정겨운 인사를 건네는 구룡포 상인들은 도시의 숨겨진 매력이다. 포항시 문화관광 홈페이지는 구룡포해수욕장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우리나라 지도에서 호랑이 꼬리 부근, 호수 같은 영일만을 업고 있는 구룡포해수욕장은 포항에서 24km, 구룡포읍에서 1.5km가량 떨어져 있다. 반달형의 백사장은 길이 400m, 폭 50m, 넓이 6천 평이다. 해안선을 따라 형성된 경관이 수려하고 영일만 해돋이와 바다낚시를 즐길 수 있는 여건이 잘 구비돼 있다.”◆ 경주에는 ‘양남 주상절리’가 있다.인간이 인위적으론 절대 만들 수 없는 바닷가 풍광. 포항에서 지척인 경주에는 기기묘묘한 형상의 바위들이 초현실적인 풍경을 만들어내는 주상절리(柱狀節理)가 있다. 주상절리란 ‘뜨거운 용암이 냉각돼 응고되면서 만들어진 기둥 형태의 암석’.제주도 중문의 주상절리도 절경이지만, 경주 양남의 주상절리도 결코 이에 뒤지지 않는다. 제주도 것이 웅장하고 장쾌하다면, 경주의 것은 소박하고 정겹다. 경주시는 양남 주상절리의 매력을 이렇게 설명한다.“양남 주상절리군(群)에서는 위로 솟은 주상절리뿐만 아니라, 부채꼴 주상절리, 기울어진 주상절리, 누워있는 주상절리 등 다양한 형태의 주상절리를 관찰할 수 있다. 발달 규모와 형태의 다양성을 인정받아 2012년 천연기념물 제536호로 지정되었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펴진 부채 모양과 같이 둥글게 펼쳐진 부채꼴 주상절리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아주 희귀한 형태다.”양남 주상절리를 친구나 연인처럼 옆에 끼고 경주 읍천항에서 하서항까지 1.7km의 바닷길을 여유롭게 걸을 수 있는 해안 산책로 ‘파도소리길’은 코로나19시대 최고의 언택트 관광지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1-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