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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 가입보다 청구가 중요”

김진홍 기자
등록일 2026-05-12 17:32 게재일 2026-05-1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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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홍 경제에디터

보험은 참 묘한 존재다. 가입할 땐 미래를 대비하는 든든한 안전장치처럼 느끼지만, 정작 보험금을 받으려면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절차와 마주친다. 특히 실손보험은 그랬다.

병원 진료가 끝나면 일단 영수증에 진료비 세부내역서도 떼고, 약 처방전까지 챙겨 보험사 앱에 사진을 올리는 과정은 번거롭기 그지없다. 금액이라도 크면 몰라도 감기 몇천 원, 물리치료 몇만 원 때문에 시간을 들여 청구하는 게 귀찮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보험료는 꼬박꼬박 내면서도 정작 보험금은 청구하지 않는다.

금융 당국에 따르면 이런 식으로 매년 청구되지 않고 사라지는 실손보험금이 수천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보험에 가입한 소비자가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셈이다. 금융위원회가 최근 ‘실손24’라는 전산 청구 시스템을 확대하고 나선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필요한 병원 서류를 일일이 챙기지 않아도 스마트폰 앱 하나로 보험금 청구가 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실손보험 가입자는 약 4000만명에 이른다. 사실상 국민 대부분이 가입한 생활형 금융상품이다. 그런데도 그동안 보험산업은 가입할 땐 엄청 친절하고 적극적인 데 반해 지급 청구할 때의 불편함은 소비자에게 떠넘긴 측면이 적지 않았다. 
보험사 입장에서야 소액 보험금 청구가 줄어들수록 유리하다. 소비자는 “귀찮아서” 포기하고, 보험사는 지급 부담이 줄어드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실제 주변을 보면 아이 병원비, 약국 영수증, 도수치료비 등은 그냥 넘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손24 같은 전산시스템이 확대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병원에서 보험사로 서류가 자동 전송되면 소비자는 클릭 몇 번만으로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게 된다. 특히 네이버나 토스 같은 익숙한 플랫폼에서도 사용할 수 있게 연계시킨다는 점은 의미가 크다. 보험이 어렵고 복잡한 것에서 일상 속 생활 서비스로 바뀐다는 신호다.

물론 아직 갈 길은 아직 멀다. 현재 실손24와 연결된 의료기관 비율은 30%도 안된다. 동네 의원 상당수는 여전히 시스템에 불참하고 있다. 병원 전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EMR 업체들의 참여도 걸려 있다. 정부는 올해 안에 연계율을 80~90%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실손보험 시장은 지금 심각한 갈등 구조 속에 있다. 소비자는 보험료가 너무 빨리 오른다고 불만이고, 보험사는 과잉진료와 과다청구로 손해율이 크다고 말한다. 도수치료와 비급여 진료를 둘러싼 논란이 반복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번 시스템 개선은 갈등 구조 해소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어떤 병원에서 어떤 진료가 얼마나 반복되는지 데이터가 축적되면 허위·과잉 청구를 걸러내는 데도 도움이 된다. 결국 정상 가입자는 더 쉽고 빠르게 보험금을 받고, 비정상적 청구는 줄어드는 방향으로 효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본래 금융의 본질은 복잡한 상품이 아니라 소비자가 쉽게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도록 하는 데 있다. 아무리 좋은 보험이라도 가입은 쉽지만 정작 필요시 보험금 청구가 어렵다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좋은 금융서비스가 아니다. 실손24의 의의는 보험이 이제서야 “팔기”보다 “돌려주기”를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김진홍 경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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