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국제유가를 설명할 때 우리는 흔히 ‘공급 부족’을 떠올린다. 그러나 일어나는 상황은 조금 다르다. 원유 자체보다 더 크게 흔들리는 것이 있다. 바로 ‘운송’이다. 중동발 군사 충돌로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막히면서 글로벌 원유 시장은 가격 이전에 물류가 먼저 붕괴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바다 위에서 포착된다. 일본과 한국, 중국 등 아시아에서 출발한 초대형 유조선(VLCC)들이 원유를 싣지 않은 채 미국 멕시코만으로 향하고 있다. 평소의 두 배를 훌쩍 넘는 70여 척이 ‘빈 배’로 대서양을 건너는 이례적 장면은 해운 분야만의 이슈가 아니다. 이는 ‘어디서 실어 올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해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신호다.
문제는 거리다. VLCC는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지 못한다. 결국 말라카 해협을 지나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을 돌아 미국까지 가야 한다. 편도만 약 60일, 지구의 3분의 2를 도는 항로다. 과거 중동에서 2~3주면 들어오던 원유가 이제는 두 달 가까이 걸린다. 이 시간의 공백은 그저 시간이 늦어진다는 지연에 그치지 않고 비용으로 연결된다. 운임은 오르고 재고는 늘어나며 공급망은 느려진다.
이 변화는 우리가 그동안 효율과 생산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익숙해진 ‘적시 생산(Just-in-time)’ 체계를 흔든다. 제조업은 그동안 빠르고 효율적인 물류를 기본 전제로 깔고 있었다. 하지만 운송 시간이 두 배 이상 늘어나면 기업들은 더 많은 재고를 쌓아야 하고 이는 자금 부담으로 이어진다. 결국 에너지 가격보다 산업 전반의 비용 구조 변화가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다.
미국은 이번 사태의 최대 수혜자로 보인다. 중동산을 대체할 공급처로 부상하며 수출은 급증하고 에너지 패권은 강화되는 흐름이다. 실제 미국 원유 수출은 7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물론 낙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증산에는 시간이 필요하고, 수출 확대가 국내 연료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면 정치적 부담도 커진다.
결국 이번 사태는 ‘원유 부족’이 아니라 ‘운송 병목’이 만든 위기다. 그리고 이 병목은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렵다. 해상 물류망은 한 번 꼬이면 풀리는 데 시간이 걸리고, 그 사이 비용 압박은 산업 전반으로 확산된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는 더욱 뼈아픈 변수다.
포항 철강산업 역시 예외가 아니다. 철강은 대표적인 에너지 다소비 산업이다. 유가와 해상 운임이 동시에 오르면 수익성은 이중 압박을 받는다. 더 큰 문제는 불확실성이다. 원료 도착 시점과 운임 상승의 상한선을 예측하기 어려워지면 생산 계획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정답은 구조 전환밖에 없다. 다행히 포스코의 수소환원제철(HyREX)은 에너지 구조를 바꾸려는 시도다.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추고 에너지 조달을 다변화하면 지금처럼 공급망 충격의 영향도 최소화할 수 있다.
하지만 산업과 기업이 아무리 정답을 알고 있어도 쓸 수가 없는 것이 문제다. 여전히 산업용 전력요금이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유조선의 행렬은 신기한 해상 풍경이 아니다. 하루빨리 산업의 근간인 철강 부문의 족쇄인 전기요금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경고다.
/김진홍경제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