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이 흔들리고 있다. 탈탄소를 가장 강하게 밀어붙이던 유럽이 지금은 오히려 ‘기름값 낮추기’에 나섰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 이후 국제 유가가 급등하자, 각국이 앞다퉈 연료세 인하 카드를 꺼내 들었다. 스페인, 폴란드, 이탈리아 등 최소 10개국이 이미 감세를 결정하거나 검토 중이다.
유럽연합(EU)의 휘발유 가격은 ℓ당 1.87유로까지 올라 한 달 새 14% 상승했고, 경유는 30% 급등하며 2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고유가 문제가 아닌 유럽 경제의 근간을 흔드는 ‘에너지 충격’에 가깝다. 애초 유럽은 기름값을 낮출 생각이 없던 지역이다. 휘발유 가격 절반이 세금일 정도로, 탄소 감축을 위해 의도적으로 가격을 높여온 구조였다.
그런 유럽이 지금 그 세금을 다시 깎고 있다. 탈탄소 정책과 민생 안정이 정면으로 충돌한 결과다. 선택지는 많지 않다. 기름값이 오르면 물가가 뛰고, 물가 상승은 곧 소비 위축으로 이어진다. 이미 경기 둔화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에너지 가격까지 겹치면 산업과 가계가 동시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꺼내 든 해법이 ‘한시적 감세’다. 시장 가격은 유지하되 세금으로 충격을 흡수하는 방식이다. 가격 자체를 억누르는 한국식 보조금 정책과는 결이 다르다. 다만 이 선택이 갖는 의미는 세제 조정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이 장면은 한국, 더 정확히 말하면 포항의 상황과도 맞닿아 있다. 포항 철강 산업은 에너지 비용에 가장 민감한 구조다. 전기로와 고로 모두 막대한 전력과 연료를 필요로 한다. 전기요금은 지난 몇 년 간 큰 폭으로 올랐고, 유가와 환율까지 높은 수준으로 흔들리고 있다. 중동 리스크까지 더해지며 부담은 더욱 커졌다.
유가 상승은 연료비는 물론 물류비와 원료비, 전력비까지 연쇄적으로 파급된다. 철강은 이 세 비용이 동시 작용하는 산업이다. 원가가 올라가면 수출 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가격을 올리면 수요가 줄고, 가격을 올리지 못하면 수익성이 무너진다.
지금 포항 철강이 마주한 구조적 딜레마다. 유럽이 연료세를 낮추는 이유와 포항이 긴장해야 하는 이유가 겹친다. 에너지 가격이 흔들리면 산업 전체가 흔들린다는 점에서다.
문제는 정책 대응의 여지다. 유럽은 세금이라는 완충 장치를 갖고 있다. 상황에 따라 올리고 내리며 충격을 흡수할 수 있다. 반면 한국은 전기요금, 유류세, 보조금이 얽혀 정책 선택의 폭이 넓지 않다. 결국 기업이 비용 상승을 직접 떠안는 구조다.
특히 철강은 가격을 자유롭게 올리기 어려운 산업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수출 품목이기 때문이다. 에너지 비용 상승은 즉시 철강경쟁력 저하로 이어진다. 이번 사태가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에너지 문제는 더 이상 환경이나 정책의 영역에 머물지 않는 산업 생존의 문제라는 것을.
유럽은 탈탄소라는 방향을 고수하면서도 속도를 조절하기 시작했다. 이상을 포기하지 않되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선택이다. 포항 역시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탄소를 줄이면서도 버틸 수 있는가, 그리고 그 비용을 누가 감당할 것인가.
결국 답은 하나로 모인다. 탈탄소는 피할 수 없지만 속도 조절은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금 세계 경제는 ‘친환경’이 아니라 ‘버틸 수 있는 친환경’을 요구하고 있다.
/김진홍 경제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