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기획ㆍ특집

소나무 기운 한가득 품은 가을미식의 王

뜨거운 햇살에 달아오른 아스팔트와 건물이 한밤중에도 식지 않는 여름. 그 폭염이 지나고, 밤 기온이 이슬점 이하로 내려가면 푸른 풀잎에 이슬이 방울방울 맺히는 백로(白露)가 온다. 영덕 사람들은 누구보다 이 백로를 기다린다. 무엇 때문일까?경북 영덕에서 20년째 송이버섯을 채취하며 살아가고 있는 함정식(54)씨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백로를 기준으로 3일을 전후해 송이버섯의 포자가 형성됩니다. 그로부터 1주일 정도가 지나면 버섯을 채취할 수 있어요. 올해는 9월 7일이 백로이니 벌써부터 그 날이 기다려집니다. 돈을 투자하지 않고, 자연에서 자라는 송이버섯을 채취해 적지 않은 수익을 올리고 있으니, 송이버섯은 우리 영덕군의 가을 보물과 다름없습니다.”표고버섯, 능이버섯 등과 함께 한국인의 식탁을 풍요롭게 해주는 송이버섯. 소나무의 잔뿌리에 자라는 송이버섯은 여타의 버섯과는 구별되는 독특한 향으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가을 송이를 맛보지 않고 미식을 논하지 마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영덕의 송이버섯은 유백색 몸체에 짙은 갈색의 갓 빛깔이 돋보이고 쫄깃한 맛을 지녀 예부터 진상품으로도 이름이 높았다. 이와 관련 `세종실록지리지`는 “영덕의 가장 주요한 공물 중 하나가 송이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임금까지 매료시킨 영덕 송이의 맛과 향은 어디에서 왔을까.“영덕은 동해안 태백산맥 자락에 위치해 있습니다. 바닷바람이 영향을 미쳐서인지 다른 지역의 송이보다 향이 뛰어납니다. 우거진 소나무 숲과 버섯이 자생하기 좋은 토양도 식이섬유가 풍부하고 식감이 좋은 송이를 만들어내는 한 요인이겠지요.” 함정식 씨의 말에 영덕군산림조합 임진광(56) 상무가 한마디를 더 보탰다. “비단 향과 맛만이 아닙니다. 송이버섯은 영양학적으로도 높이 평가되는 음식이에요. 식물성 단백질과 탄수화물이 풍부한 것은 물론, 비타민B도 다량 함유하고 있습니다. 체력과 면역력을 높여주고, 몸속 장기의 기능도 향상시켜준다고 알려져 있지요. 또한, 어떤 버섯보다 항암효과가 크다는 학계의 보고도 있었습니다.”이에 덧붙여 임 상무는 영덕의 `가을 보물` 송이버섯의 판로개척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도 설명했다. ◆송이 자생환경 개선사업의 추진 ◆소나무재선충병 확산의 조기 차단 ◆다양한 송이버섯 요리 발굴을 위한 시연회 개최 등이 바로 그것.“경북도와 영덕군이 중점 추진하고 있는 산림버섯 테크노파크 조성사업과 병행해 영덕 송이축제를 개최하고, 송이버섯 체험장과 가공식품의 개발에도 공력을 들이고 있다”는 것 역시 임 상무의 이어지는 부연이다.묵직한 주제의식과 곁눈질 하지 않는 일관된 작품 활동으로 한국문단에서 이름이 높은 시인 이승철(58)은 서울의 한 식당에서 깜짝 놀란 적이 있다고 한다. 음식점 주인이 단골에게 주는 서비스라며 라면을 끓여왔는데 거기에서 평소에는 맡아보지 못한 냄새를 느낀 것이다.“서비스 음식이 겨우 라면이라니...”라는 혼잣말을 하던 이 시인은 냄비 속에서 엄지손톱만한 크기의 버섯 한 조각을 발견했다. 바로 그게 영덕에서 채취돼 트럭에 실려 서울로 올라온 송이버섯이었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조그만 버섯 한 조각의 향이 작지 않은 식당 전체에 진동했다”는 게 이승철의 전언이다. 이처럼 전국적으로 그 맛과 향을 인정받는 영덕의 송이버섯이니 그로 인해 거둬들이는 영덕군민들의 수입도 만만찮다. 지난해 영덕의 산림조합에서는 모두 35t의 송이를 수매했다. 금액으로 따지면 57억7천400만원에 해당하는 양이다.보통의 농작물은 씨를 뿌리고, 나무를 심고, 관리하는 과정까지를 모두 거쳐야만 수확에 이를 수 있다. 하지만, 송이는 자연 그대로의 상태에서 자란 것을 채취하는 것이기에 노동력 이외에는 다른 투자가 필요하지 않다. 그럼에도 다른 농작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것이 송이 채취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영덕군의 인구가 큰 폭으로 감소하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도 송이버섯이 하고 있지요”란 임진광 상무의 말에 동의의 고개 끄덕임을 보낼 수밖에 없을 듯하다.생의 절반에 가까운 시간을 송이버섯과 함께 울고 웃어온 함정식 씨는 말한다.“1년에 길면 한 달, 짧으면 20여일 송이를 캡니다. 한 푼의 돈도 들이지 않고 순전히 내 노력과 땀만으로 가계에 적지 않은 보탬을 주고 있으니, 송이는 내 삶에 내려진 축복이지요. 눈앞으로 다가온 백로를 기다리는 매년 이 시기가 제게는 누구보다도 달콤합니다.”하지만, 송이를 채취해 그 수익으로 자식을 키우고 부모님을 모신 함 씨에게도 어려움은 없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물었다.“버섯을 채취하고 판매하는 과정에서 힘든 점은 없습니까? 또, 군청이나 산림조합이 어떤 부분을 도와주면 영덕 송이가 더 잘 알려지게 될까요?”출하는 임산물유통센터를 통해 하고 있으므로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는 함 씨는 마지막으로 영덕 송이의 적극적인 홍보와 마케팅을 관련 기관에 부탁하며, 향후 영덕 송이의 대중화를 위한 방안까지 제시했다.“지금도 영덕의 송이버섯은 나름의 유명세를 타고 있습니다. 전국에서 생산되는 송이의 40% 가량이 우리 지역에서 나오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조금 더 효과적인 마케팅 전략을 세워 홍보를 해줬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덕은 대게로도 유명합니다. 영덕 대게는 TV의 갖가지 음식관련 프로그램에 수십, 수백 차례 소개됐습니다. 영덕 송이도 그만한 매력을 가진 음식이니 더 큰 사랑을 국민들에게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우리도 장기보관법을 연구하고, 소량 포장의 제품도 만들어 많은 이들이 더 쉽게 송이버섯을 맛볼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여야하겠지요.” `세계 3대 진미`와는 또 다른 매력 지닌 영덕 송이`숲 속의 다이아몬드` 트러플도 안부럽다네세상에는 그 맛과 향기, 색채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음식이나 식재료가 적지 않다. 그중에서도 뛰어난 풍미를 지닌 것들을 `진미(珍味)`라고 부른다. 이른바 `맛과 멋에 죽고 사는` 미식가들은 진미를 맛보는데 돈을 아끼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진미의 가장 앞줄에 서는 것은 어떤 것일까. 사람의 식성은 천차만별이라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정확한 답을 내놓기는 어렵지만, 많은 이들이 푸아그라와 캐비아, 트러플을 `세계 3대 진미`로 손꼽는다.`기름진 간`을 의미하는 푸아그라는 미식가들의 나라 프랑스에서도 최고로 치는 식재료다. 일정기간을 두고 거위나 오리에게 강제로 사료를 먹여 인위적으로 크게 부풀린 간을 먹는다는 게 어떻게 보면 `잔인한 행위`처럼 보이지만, 남프랑스에서 생산된 최상급 푸아그라는 서민은 맛볼 수 없을 정도로 비싼 가격에 팔린다. 부드럽고 깊은 맛이 나는 푸아그라는 식욕을 돋우기 위해 전채요리로 먹는 게 일반적이지만, 버터처럼 가공해 빵에 발라 먹기도 한다. 프랑스인들은 기름기가 많은 푸아그라에 곁들이는 포도주의 선택에도 공을 들인다.트러플(송로버섯)은 강렬한 향기로 사람들을 입맛을 자극한다. 다른 버섯과 달리 땅 속에서 자라는 트러플은 떡갈나무나 헤이즐넛나무 인근에서 자주 발견된다. `숲 속의 다이아몬드`라고 불리는 이 버섯은 인공적인 재배가 불가능해 훈련된 돼지를 이용해 채취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흙이 잔뜩 묻은 돌덩이처럼 보이는 트러플은 그 모양새와는 전혀 다른 매력적인 향을 지녔다. 1kg당 600만원이란 높은 가격에 거래됨에도 유럽의 미식가들은 트러플이 지닌 향기를 포기하지 못한다. 너무 비싼 식재료인 탓에 고급 레스토랑 주방에는 트러플을 보관하는 금고도 있다.철갑상어의 알을 염장한 캐비아 역시 고위층의 결혼식이나 생일파티에서 샴페인과 함께 즐기는 최고의 진미 중 하나다. 러시아 사람들은 캐비아를 두고 “조그만 알 하나하나에 깊은 바다의 맛이 담겼다”고 말한다. 많은 양이 카스피해 인근에서 생산되기 때문에 러시아인들과 더불어 이란의 부자들도 캐비아를 즐긴다.고대 페르시아의 왕과 귀족들까지 매혹한 캐비아. 일부 미식가들은 그 본연의 맛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 금으로 만든 숟가락으로 떠먹기까지 한다. 캐비아는 산도가 높아 다른 금속으로 만든 식기를 사용하면 특유의 식감이 사라진다.이처럼 `세계 3대 진미`라고 불리는 푸아그라, 트러플, 캐비아는 보통 사람들은 맛보기가 쉽지 않은 음식이다.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엄청난 돈과 사전준비가 필요하다. 그에 비하면 송이버섯은 보다 `친숙한 진미`라고 할 수 있다. 푸아그라처럼 살아있는 동물을 학대해서 만든 게 아니고 캐비아를 먹을 때처럼 금 숟가락이 필요하지도 않으며 트러플에 비해서는 훨씬 저렴한 송이버섯.다가오는 가을엔 한 번쯤 영덕 송이버섯의 향과 맛을 즐김으로써 소박하게나마 `한국의 미식가`가 돼보는 건 어떨까?끝/이동구·홍성식기자

2016-08-17

영덕 복숭아 달콤한 속살 한입 깨물면 샘솟는 꿀물

경상북도 안동에서 태어난 시인 이육사는 고향의 여름을 이렇게 읊었다.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역사에는 `만약...`이란 게 없다지만, 만약 육사가 영덕에서 태어난 작가라면 “내 고장 칠월은 복숭아가 익어가는 시절”이라 노래하지 않았을까?비단 시인만이 아니다. 인간 모두에게 유년의 기억은 지울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섭씨 35도를 오르내리는 뜨거운 여름. 가만히 앉아 있어도 셔츠가 땀으로 젖는 계절이다.열대야로 인한 불면증을 호소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 여름이 더없이 반가운 사람들도 있다.바로 영덕의 복숭아 재배 농민들.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분홍색으로 예쁘게 익어가는 복숭아를 보면 한여름 더위와 스트레스가 모조리 날아가 버린다.25년째 복숭아 농사를 짓고 있는 박형식(53)씨는 `영덕의 진미`인 잘 익은 커다란 복숭아를 들어 보이며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한 번 보세요. 다른 곳에서 이런 복숭아를 본 적이 있습니까? 영덕 복숭아는 크기도 크기지만, 당도가 높아서 한입 깨물면 꿀물을 마신 것 같습니다.”어렵지 않게 수질 좋은 농업용수를 구할 수 있는 천혜의 환경.거기에 적당히 불어오는 바닷바람과 풍부한 일조량은 영덕의 복숭아를 아삭아삭한 식감과 뛰어난 풍미로 익어가게 만든다.맛과 향기로 입과 코를 동시에 자극하는 복숭아는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여름 과일의 여왕`이다.“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도와 복숭아 농사를 지었습니다. 멋도 모르고 털복숭아를 옷에 문질러 먹다가 두드러기가 나기도 했지요. 그래도, 그 시절이 좋았습니다.” 복사꽃 피는 언덕에서 보낸 유년이 떠오른 듯 이제는 중년의 사내가 된 박형식 씨의 표정에 그리움이 묻어났다. 영덕 농민들의 자랑거리 중 하나인 복숭아가 타 지역에서 재배되는 복숭아보다 맛있고 향기로운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이를 일조량의 차이로 해석한다. 아래는 영덕농협 복숭아공선회 이공규(62) 회장의 설명이다. “통상 전국 연평균 일조량은 대략 2300여 시간입니다. 그런데, 영덕은 2700시간이 넘습니다. 거기다가 비도 적게 내리는 편입니다. 당도가 적당하고 비타민C 함유량이 높은 영덕 복숭아는 이런 재배조건에서 탄생하는 겁니다.”자연적인 조건 외에도 영덕군은 복숭아의 품질 향상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관수시설 확충과 버팀대 개량 등의 재배환경 개선사업을 지원하고, 우량 품종의 복숭아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더 나은 맛과 향을 가진 복숭아를 생산하려 애쓰고 있지요”라는 게 이 회장의 부연이다.영덕 복숭아의 미래를 위한 투자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공동선별을 통한 품질의 균일화와 지역 복숭아 브랜드를 통합해 명실상부한 특산품으로 자리매김 시키려는 시도는 오늘도 현재진행형이다. 사실 복숭아는 오래 전부터 `신선의 과일`로 불렸다. 하얗고 긴 수염을 기른 신선들이 학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바둑을 두던 계곡. 그 계곡에 들어서 서늘한 그늘을 만들어주던 게 바로 복숭아나무였다.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아름다운 이상향이나 별천지를 `무릉도원`(武陵桃源·`桃`는 복숭아 또는, 복숭아나무를 의미)이라 부른 것만 봐도 옛사람들 또한 복숭아를 진귀한 과일로 생각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무속인들은 복숭아나무 가지로 만든 회초리가 악귀를 쫓는다고 믿었다.신선이 아끼는 신성한 나무이니, 사악한 기운을 가진 잡스러운 귀신이 이를 두려워할 것이란 이유에서였다.복숭아의 원산지는 고대 중국이다. 일부 중국인들은 복숭아의 외형이 미인의 풍만한 엉덩이를 닮았다고 믿었다. 해서, 농담처럼 복숭아를 “양귀비의 둔부”라고 칭하기도 했다. 실크로드를 따라 페르시아와 유럽으로 전해진 복숭아는 동서양 사람들에게 두루 사랑받았다.한국에서도 예부터 복숭아를 길러 먹었으나, 판매를 위한 상품으로 본격적인 재배가 시작된 것은 1900년대 초반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영덕에서도 복숭아와 관련된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이야기가 전해져온다.1959년 거대 태풍 `사라`(Sarah)가 한국을 덮쳤다.영덕 역시 태풍의 위력 앞에 완벽하게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농경지 대부분이 침수됐고, 논밭은 밀려온 모래와 자갈로 인해 황무지로 변했다.그러나, 전화위복이었을까? 사질토로 변한 토양이 복숭아 재배에는 최적의 조건이 돼주었다.영덕이 `향기로운 복숭아의 고장`으로 이름을 높인 배경에는 아이러니하게도 태풍 사라가 있었던 것이다.이처럼 수난 속에서 찾아온 기회를 영덕군청과 농협연합사업단은 놓치지 않았다. 영덕 복숭아의 전국화를 위해 `복사꽃선녀 선발대회`와 `영덕 복사꽃 큰잔치` 등의 홍보 이벤트를 열었고, 수도권에서 시식행사도 수차례 개최했다. 세상사 모든 일 속에는 명암이 더불어 존재한다. 영덕의 복숭아 농가에도 어두운 그늘은 있다. 갈수록 줄어드는 농촌 젊은이들로 인한 노동인력의 고령화는 작지 않은 문제다.복숭아 재배에선 순차적 작업이 중요한데, 부족한 일손으로 인해 작업의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빈번해지고 있다.이런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영덕군과 영덕농협 복숭아공선회 등은 복사꽃이 피는 시기와 복숭아 수확시기에 필요한 인력수급 대책에 골몰하고 있다.이는 면역력을 높이고, 어혈(瘀血)과 변비를 예방하며, 니코틴을 포함한 몸 속 독소제거에도 효과가 있는 품질 좋은 복숭아를 만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햇빛 눈부신 영덕의 야트막한 산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어디선가 환청처럼 노랫소리가 들려올 것 같다.고전·현대 아울러 많은 시인들에게 시심(詩心) 선물한 복숭아탐스럽고 매혹적인 생김새와 여름날 더위를 잠시나마 잊게 만드는 싱그러운 향기, 거기에 달콤한 맛까지 삼박자를 갖춘 과일 복숭아. 세상과 사물을 예민하게 관찰하고, 그 결과를 문장으로 옮기는 걸 업으로 삼는 시인묵객(詩人墨客)이 복숭아를 지켜만 봤을 리 만무하다.복숭아는 고전과 현대문학 속에 무시로 등장해 독자들의 마음을 연분홍 빛깔로 설레게 했다. 당나라의 시인 백거이(772~846)는 大林寺 桃花(대림사 도화)를 통해 복사꽃을 노래한다.人間四月芳菲盡(인간사월방비진) 山寺桃花始盛開(산사도화시성개) 長恨春歸無覓處(장한춘귀무멱처) 不知轉入此中來(부지전입차중래). 풀어 쓰면 이런 내용이다. “사람세상의 꽃은 이미 졌는데 / 산중의 복사꽃은 이제야 피었구나 / 가버린 계절을 안타까워했는데 / 봄이 여기서 몸을 숨겼을 줄이야.”복숭아가 열매 맺기 전 피는 복사꽃 한 떨기를 봄 전체로 은유한 백거이의 시는 고대 중국 낭만적 시풍(詩風)의 한 절정을 보여준다. 자연을 통해 삶의 본질을 읽어내는 보기 드문 절창이 아닐 수 없다.대구 출신의 시인 이상화는 관능을 키워드로 복숭아를 관찰한 듯하다. 1923년 발표된 `나의 침실로` 서두를 읽어보자.“마돈나, 지금은 밤도 모든 목거지에 다니노라, 피곤하여 돌아가련도다. / 아, 너도 먼동이 트기 전으로 수밀도(水蜜桃)의 네 가슴에 이슬이 맺도록 달려오너라.”모두가 알다시피 수밀도는 복숭아를 달리 이르는 단어다. 애틋하게 그리는 여인 혹은, 조국을 복숭아 닮은 가슴으로 표현한 이 작품에선 이상화 초기 시들에서 발견되는 탐미성과 전위성을 확인할 수 있다.경북대학교에서 독문학을 공부한 시인 송찬호는 제목부터가 `복숭아`인 시의 마지막 연을 이렇게 쓴다. “식탁 위에 놓여있는 한여름 밤의 꿈.”수많은 과일을 맛볼 수 있는 여름철에 복숭아 하나만을 독점적으로 지칭해 `한여름 밤의 꿈`이라 노래했으니, 복숭아의 향기와 맛이 얼마만큼 큰 힘으로 시인을 매료시켰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원로시인 이생진(87) 역시 복사꽃을 특별히 아낀 것 같다. “나는 가끔 오래된 혼백과 이야기하는 수가 있다 / 북한산 유일한 복사꽃 나무 밑에서처럼...(중략) / 이걸 못보고 봄이 왔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찬란한 봄의 기운을 온몸으로 빨아들이는 시간이 지나고, 이윽고 여름이 오면 꽃이 떨어진 자리에서 탐스런 과일로 익어가는 복숭아. 이생진은 누구도 함부로 거부할 수 없는 시간의 도저한 흐름을 복사꽃송이에서 본 것이다.무궁무진한 시의 소재. 그 속에서 시인들의 특별한 사랑을 받아온 복숭아와 복사꽃. 앞으론 어떤 젊은 시인이 복숭아 향기롭게 익어가는 여름을 노래해줄까.영덕 /이동구기자/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16-08-03

수중군자 에게선 `수박향`이 난다

원로 문학평론가 김윤식(80)은 은어를 두고 “존재의 시원(始原·사물이 시작된 처음)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라고 했다. 작가 윤대녕의 `은어낚시통신`이란 소설집을 평하며 한 말이다. 은어는 보기 드물게 한국문학사를 대표할만한 평론가와 중견작가로부터 `상찬`을 받은 물고기가 된 것이다.그러나, 은어를 높여 추켜세운 건 두 사람이 처음이 아니다. 우리의 옛 조상들도 깨끗한 물에서 기품 있게 헤엄치는 은어의 자태에 반해 `수중군자`(水中君子·물속에 머무는 군자) 혹은, `청류(淸流)귀공자`라 불렀다. 게다가 몸통에서 은은하게 풍겨오는 달큰한 수박의 향기까지 품고 있으니, 은어는 `물고기의 귀족`이라 칭해도 모자람이 없다.비단 한국에서만이 아니다. 유럽에서는 `품격 높은 단맛을 낸다`는 의미로 `스위트 피시`(Sweet fish)라 부르며 많은 미식가들의 사랑을 받았고, 중국에선 `물고기에서 좋은 향기가 난다`고 하여 `유향어`(有香魚)라는 이름을 얻기도 했다. 영덕은 바로 이 은어가 헤엄치는 오십천(五十川)으로 유명하다. 특히, 오십천에 서식하는 은어는 가슴지느러미에 선명한 타원형의 황금색 무늬가 있어 예로부터 `황금은어`라 불렸다. 다른 지역에서 발견되는 은어에 비해 그 형상이 보다 유려한 것.왕이 나라를 통치하던 시절. 두말 할 나위 없이 가장 좋은 식재료와 진미는 왕이 사는 궁전에 바쳐졌다. `군자의 풍모를 갖춘` 영덕의 황금은어는 조선의 왕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다. 때에 맞춰 은어를 진상하는 것이 영덕을 다스리던 관리들의 가장 큰 임무 중 하나였다.요즘처럼 냉장시설이 갖춰진 트럭이 없던 시절. 상하기 쉬운 물고기를 먼 한양까지 가져가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랬기에 황금은어를 제대로 진상하지 못해 벼슬에서 물러난 이들도 있다는 웃지 못 할 이야기까지 생겨났다.영덕에서 은어 전문요리점 화림산가든을 운영하는 박재훈(58) 대표는 자타가 공히 인정하는 `은어박사`다. 오랜 경험을 통해 직사광선을 싫어하는 은어의 생태를 파악했고, 이를 감안하여 햇살의 각도까지 보면서 낚싯대를 내리는 수준. 올해로 20년째 은어를 직접 잡아 식당을 운영하는 박 대표에게 물었다.“오십천 황금은어가 다른 지역의 은어와 다른 점이 뭔가요?” 잠시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향입니다. 영덕 은어에게선 잘 익은 수박향이 납니다. 사실 전라도 섬진강과 함경도 청진에도 은어는 삽니다. 하지만, 영덕 은어의 향을 따라올 수는 없을 겁니다. 왜 옛날 임금들이 유독 영덕 은어를 즐겨 먹었겠습니까. 바로 향 때문이에요.” 말을 마친 박 대표가 방금 잡아온 은어를 눈앞에 내밀며 “향기를 맡아보라”고 했다. 은은한 수박향이 풍겨오는 듯도 했다. 그렇다면 어째서 영덕 은어에서는 다른 지방의 은어에서 맡을 수 없는 향기가 날까? 영덕은 토질이 좋기 때문에 송이버섯의 주산지이기도 하다. 바로 그 영양분 가득한 흙이 비가 내리면 오십천으로 흘러든다. 여기에 오십천에 쏟아지는 풍부한 일조량과 적절한 수온이 합쳐져 은어가 좋아하는 `청태`를 잘 자라게 한다. 이 청태를 먹고 자라기에 영덕 은어는 독특한 향을 지내게 된다는 것.`황금은어`라는 별칭을 얻게 된 영덕 은어의 지느러미 무늬 빛깔은 투명할 정도로 맑은 오십천의 깨끗한 수질에서 연유했다. 이처럼 “영덕 황금은어의 역사적 유래와 생태를 알게 되면 누구나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다”는 게 박 대표의 설명이다.그렇다면 그가 추천하는 `최고의 은어요리`는 뭘까? “제가 간장게장에 착안·응용해 만든 은어간장절임입니다. 이걸로 명인 인증까지 받았죠.” 강산이 2번이나 바뀔 만큼 긴 시간을 은어와 함께 해온 사람이 가장 자신 있게 권하는 요리가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다.맛과 더불어 은어의 영양가도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하는 부분이다. 은어는 내장을 빼지 않고 회로 먹는다. 튀기거나, 굽거나, 끓인 것도 내장째 먹기 때문에 버릴 게 없는 생선인 동시에 부족한 칼슘 섭취에 좋다.또한, 하천의 규조류를 먹고 자라기 때문에 내장에 다량의 영양분을 함유하고 있는데, 이것이 편도선 관련 질환에 효과를 보이기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해 박 대표는 “우리가 어릴 땐 손자·손녀가 목이 아프다고 하면 할아버지가 은어를 말려 가루로 만든 걸 먹이곤 했다”고 부연했다.사실 한국의 산과 강이 적잖게 오염되면서 `청정수`에서만 살 수 있는 자연산 은어의 숫자도 차츰 줄어들고 있다. 이의 대안으로 영덕군은 황금은어 치어를 양식해 방류함으로써 황금은어가 그 맥을 이어갈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은어에 관해서라면 영덕군청 직원들도 할 말이 많은 것 같았다. 곧 오십천 일원에서 열릴 `영덕 황금은어 축제` 준비에 눈코 뜰 새가 없는 군청 공무원 김경훈(42)씨. 그는 영덕을 찾는 관광객과 피서객이 불편함 없이 축제를 즐길 수 있도록 개인 시간까지 희생하며 일에 몰두하고 있다.“맑고 깨끗한 하천과 바다가 있는 우리 군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지역에서 힘들게 식당을 꾸려가는 분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라 힘든 줄 모르겠습니다. 은어축제가 영덕을 대표하는 것이 아닌, 한국을 대표하는 흥겨운 축제가 됐으면 좋겠습니다”라는 김 씨의 얼굴엔 웃음과 땀방울이 동시에 번졌다.“축제현장을 자연과 어우러지게 만들어 가족단위 관광객들이 진정한 힐링을 하고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죠. 그래서, 축제 프로그램도 가족과 연인, 친구들이 직접 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것 위주로 준비 중입니다. 물론, 맛있는 영덕 황금은어도 드실 공간을 마련할 것이고요”라는 게 이어진 김경훈 씨의 설명이다.옛날엔 임금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았고, 예술가들의 글과 그림에서도 그 모습을 드러내며, 가족들이 함께 즐기는 영양가 높은 요리로도 이름을 알린 은어. 영덕의 여름이 기다려지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황금은어`다. 올 여름 휴가는 `영덕 황금은어`와 함께 엄마·아빠와 함께 반두잡이 체험온 가족 잊지못할 추억 만들어요아이들의 방학과 직장인의 하계휴가가 겹치는 7월 하순. 가족들이 고민에 빠질 시기다. “이번 여름휴가는 어디에서 뭘 하며 보내지?” 이런 질문을 아내와 아들·딸에게 던질 아버지가 있다면 그 답을 영덕에서 찾아보면 어떨까.영덕군은 “올해도 어김없이 황금은어와 함께 하는 신나는 여름축제가 영덕읍 오십천 둔치 일대에서 펼쳐집니다”라고 말했다. 오는 28일부터 31일까지 3일간 진행될 `2016 영덕 황금은어 축제`가 바로 그것.송이버섯, 복숭아, 대게 등과 함께 `영덕의 4가지 진미`로도 불리는 황금은어. 이 은어를 테마로 한 축제는 지난 1999년 처음 시작됐다. 조용하고 편안하게 휴식을 즐길 수 있도록 시끌벅적한 일회성 공연을 지양하고, 아버지세대에겐 옛 기억을 돌려주며 아이들에겐 흥겨운 즐길거리인 `반두(작대기와 그물을 이용해 물고기를 잡는 도구)잡이 체험` 등을 도입해 영덕을 찾는 피서객들에게 즐거움과 웃음을 선사해온 `황금은어 축제`.지난해에만 5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이 축제를 즐기기 위해 영덕을 찾았다. 올해도 축제 준비를 위해 영덕군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지역상권 활성화를 돕고, 방문하는 이들에게는 잊지 못할 추억을 안겨주기 위해서다.올해는 예년에 비해 보다 더 풍성한 프로그램이 `황금은어 축제`를 채운다.◆황금은어 반두잡이 체험을 필두로 ◆어린이를 위한 물고기 맨손잡기 체험 ◆황토민물고기 맨손잡이 체험 ◆숯불 은어구이 체험 등 온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4대 체험행사`가 방문객을 기다리고 있고, 축제현장 곳곳에 물놀이 기구를 설치해 더위를 떨칠 수 있게 했다. 여기에 오토캠핑장과 야영장도 마련해 요즘 아이들은 쉽게 경험하지 못하는 `야외 숙박`의 매력도 느끼게 해줄 계획이다. 수상 자전거 체험과 수중생태 체험도 주목할 만하다.피서객들의 불편함이 없도록 화장실과 샤워시설을 확충하고, 영덕이 내세울 수 있는 먹을거리를 효과적으로 소개하는 것도 군청이 신경을 쏟고 있는 부분이다. 이를 위해 관광홍보관과 지역특산물 판매장도 들어설 예정.여기에 낭만적인 강변에서의 영화 상영과 신명나는 난타 공연, 통기타와 오카리나 연주에 `황금은어 노래자랑`까지 다양한 문화·예술공연이 펼쳐진다니 이번 여름휴가를 `2016 영덕 황금은어 축제`와 함께 할 가족들은 후회할 일이 없을 듯하다.관련문의: 054)732-4411(황금은어축제추진위원회)/이동구·홍성식기자

2016-07-20

몸안 가득 영양가로 채워진 '미식의 절정'

육당 최남선의 저서 `조선상식문답`엔 “그 사람이 먹는 음식이 그 사람을 말해준다”는 구절이 등장한다. 개화기 역사학자이면서 언론인으로도 이름이 높은 호암 문일평의 책에도 음식 이야기가 적지 않게 나온다. 탐식(貪食)이 아닌 여유롭게 즐기는 차원의 미식(美食)이라면, 먹는다는 행위 자체가 지탄받을 일은 아니다. 깨끗한 바다와 짙푸른 산이 함께 하는 경북 영덕엔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독특한 음식이 적지 않다. 본지는 4회에 걸친 연재를 통해 `맛과 멋의 고장` 영덕의 진미를 소개함으로써 `영덕 문화의 일부`를 깊이 있게 살펴보고자 한다.살 꽉찬 2~3월엔 게장도 가득 차 최고의 맛 8개 다리가 대나무처럼 뻗어 `죽해`라 불리기도강구~축산서 잡히는 `박달게` 타지역 비교 불가두터운 껍질·주황색 몸통·연노랑 배로 진품 구별아미노산·타우린 풍부 `음식이자 藥` 귀한 대접바닷가의 겨울바람은 맵차다. 새파란 수면에서 차갑게 부서지는 파도 위로 새하얀 눈이라도 쏟아질라치면 그 추위에 몸을 떠는 건 비단 거친 바다와 싸우는 어부만이 아니다. 해변을 거니는 관광객 역시 절로 몸을 움츠리게 된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미식가라 자처하는 이들은 동쪽바다의 한적한 마을 영덕에 겨울이 오기를 기다린다. 왜일까? 답은 간명하다. 대나무처럼 쭉쭉 뻗은 늘씬한 다리와 몸 안 가득 영양가 풍부한 탱탱한 살을 담은 영덕대게를 맛볼 수 있는 제철이기 때문이다.음식전문가들은 말한다. “담백하고 특유의 향미를 간직한 대게는 2월과 3월에 맛보는 것이 제격이다. 그때가 되면 겨울바다의 냉기를 이겨낸 게들의 몸에 살이 꽉꽉 들어찬다.” 여기에 이런 말을 덧붙인다. “넘실대는 파도를 눈앞에서 보며 고소하고 달콤하기까지 한 영덕대게를 맛볼 수 있는 강구항과 축산면 경정리(차유마을)는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미식의 공간”이라고.그 시기가 되면 방송국 리포터와 신문사 기자들의 앞다투어 영덕을 찾는다. 그리고는 묻는다. “대게는 왜 대게라고 부르나요?” 스물여섯 젊은 나이에 대게잡이 배를 타기 시작해 올해로 20년째 영덕 바다와 삶을 함께 해온 쌍용호 선장 이재복 씨는 말한다. “대부분은 커다란 몸집 탓에 대게라고 부른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아닙니다. 몸통에서 뻗어나온 8개의 다리가 대나무처럼 곧다고 해서 대게라고 하지요. 한자로 쓰면 竹蟹(죽해)입니다.”대게가 죽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에는 유래가 있다. 조선 초기. 왕에게 바칠 진귀할 음식을 찾던 신하가 죽도(竹島)라 이름 붙은 섬에서 대게를 발견한다. 궁궐로 돌아온 그가 이 사실을 고하자, 임금과 학자들은 대나무 섬에서 찾았고, 몸에 6개의 마디가 있으며, 침을 가진 바다 속 생물이라는 사실에 착안해 `죽육촌침해어(竹六寸針蟹魚)`라 불렀다. 이것이 오늘날 죽해 즉, 대게가 된 것이다.각각의 지역이 “우리 고장에서 판매되는 대게가 진짜 최고상품”이라고 말한다. 이른바 `원조 논쟁`이 벌어지는 것이다. 영덕대게가 사람들에게 그 이름을 알린 것은 이미 오래 전이다. 1945년 해방 직후부터 영덕 강구항은 대게의 집산지로 유명했다. 특히 강구에서 축산에 이르는 5.5km 구간에서 포획되는 대게는 그 맛과 품질이 빼어나 `박달게(살이 박달나무처럼 야물다는 의미)`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성난 파도와 겨울바람에 시달릴 때면 힘들기도 하지만, 대게가 배 위로 올라와 퍼덕거리는 것을 보면 피로를 싹 가신다”고 말하는 이재복 선장은 “당신에게 동해와 대게란 어떤 의미인가”라는 질문에 “바다는 삶의 터전이고 대게는 거기서 캐내는 보석”이라는 시인 같은 대답을 내놓았다. 건강한 노동이 그의 육체는 물론 정신까지 환하게 밝힌 게 아닐까.시청자들에게 높은 인기를 끌었던 TV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의 무대인 영덕 강구항에는 167개의 대게 전문식당이 영업하고 있다. 이 거리에서 `이가 대게`를 운영하는 이소미(42) 씨는 식당운영 18년차의 베테랑 요리사. 이 씨에게 “겨울에 잡히는 대게가 맛있는 이유가 무엇인가요”라고 물었다. 망설임 없이 대답이 돌아왔다. “수온이 낮아져 육질이 좋아지고, 산란기가 끝난 시기라 게장이 가득 차있기 때문이죠.”사실 대게는 어족자원 보호 차원의 금어기가 있다. 산란과 탈피를 하는 6월부터 10월까지는 대게를 잡을 수 없다. 그렇다면 그 기간에는 어떻게 생계를 이어갈까? “금어기에는 수입산 대게와 킹크랩, 홍게와 바닷가재 등을 판매합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저희 가게의 대표상품은 영덕대게를 이용한 코스요리죠. 찜과 회, 튀김 등이 골고루 제공되니 손님들이 그 맛에 놀라요.”맛도 맛이지만, 대게는 영양 측면에서도 `양질의 먹을거리다`다. 단백질이 풍부하며, 지방이 적고 필수 아미노산을 다량 함유한 게살은 한참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특히 좋다. 옛날 의서(醫書)에 따르면 “열을 내리고 술기운을 없애주는 데도 효험이 있다”고 한다. 그런 까닭에 해열제가 귀하던 한국전쟁 이전에는 열이 나는 아기에게 게 삶은 물을 먹이기도 했다. 여기에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떨어뜨리고, 동맥경화증에도 효과를 발휘한다니 영덕대게는 음식인 동시에 약인 셈이다.귀하고 비교적 비싼 가격 탓에 `유사 식품`도 많은 게 또한 대게다. 바닷가 마을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아니라면 수입산 대게와 `진품 영덕대게`를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이재복 선장과 이소미 씨 등 대게 전문가들이 살짝 귀띔해준 `진짜 대게 구별법`은 아래와 같다. “대게는 껍질이 두껍고 몸통 부분이 주황색이며 배 부분은 연한 노란색입니다. 또한, 박달게는 보통의 것들보다 다리가 더 길고 눌러보면 단단해 속살이 꽉 들어차 있다는 걸 일반인도 쉽게 알 수 있어요. 개흙이 없고 모래로만 이뤄진 바다 속 환경이 좋은 대게를 기르는 것이죠.”게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영양성분의 하나가 바로 `타우린`이다. 지친 간을 회복시켜주고, 담즙염 대사에 관여하는 타우린은 생체리듬을 조율하고 미용에도 효과를 나타낸다. 다른 지역에 비해 게가 흔한 영덕은 얼마 전부터 대게의 껍질을 이용해 `타우린 달걀`을 생산하고 있다. 지역특산품으로 품질인증까지 받은 타우린 달걀은 잘 알려진 영양학적 가치로 인해 경북 일대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게 영덕군청의 설명이다.동해는 하늘이 영덕군에 내려준 선물이라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니다. 한여름 바닷가가 시원스런 풍경으로 피서객을 유혹한다면, 겨울의 영덕 바다는 보석처럼 귀한 음식 대게를 선물한다. 그것들로 인해 동해안 작은 도시 영덕은 일 년 내내 아름답다. 영덕대게 제대로 즐기는 방법다리 고정시켜 뜨거운 증기에 쪄 먹어야깨끗한 바다에서 귀하게 잡히는 해산물이니 대게는 어떻게 먹어도 맛있다. 그러나, 보다 더 감칠맛 나게 즐기는 방법은 어디에나 있는 법. 이 방법을 영덕 인근 대게식당 업주들에게 어렵사리 물었다. 아래는 `귀한` 대게의 제대로 된 맛을 온전히 즐기기 위한 몇 가지 노하우다.1. 영덕대게의 다리에 주목하라꿈틀거리며 생명력을 드러내는 대게를 살아있는 상태로 찜통에 넣어서는 안 된다. 뜨거운 온기에 몸을 뒤채는 게가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다리를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대게를 요리하기 전 다리가 떨어지지 않도록 고정시키고, 짧은 시간에 꿈틀거림을 멈추도록 뜨거운 증기를 입에 흡입시키는 것이 싱싱한 대게의 맛을 즐기기 위한 첫 번째 방법이다.2. 대게는 삶는 것이 아니라 `찌는` 것라면이나 국수는 물을 끓인 후 삶는 음식이지만, 대게는 수증기로 찌는 것이 자연 그대로의 맛을 즐길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이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게의 배를 위로 향하게 해야 한다는 것. 그렇지 않고 배가 아래를 향하면 맛있는 게장이 찜통 안으로 흘러내리게 된다. 찌는 시간도 대게의 맛을 좌우한다. 작은 것의 경우엔 15분 안팎, 큼직한 대게라면 20~25분간 뜨거운 수증기를 쏘이는 게 좋다.3. 뚜껑을 자주 열어선 안 돼자연 그대로의 게살은 액체 상태다. 우리가 먹는 대게는 액체 상태의 살이 식으면서 고체화된 것. 그런 이유로 요리 중에 자주 뚜껑을 열면 게의 몸속에 있는 살이 다리 쪽으로 흘러가 그 부분을 검게 변색시킨다. “보기 좋은 것이 먹기에도 좋다”는 말을 믿는다면, 다소간 시장하더라도 대게찜이 완료되기 전에는 찜통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하는 것은 금물이다.4. 찜이 아닌 `회`로 즐기는 것도 한 방법싱싱하지 않은 해산물은 날것으로 먹기가 어렵다. 게는 그 특유의 생명력으로 포획된 후에도 오랜 시간 생존한다. 꿈틀거리는 대게의 두툼한 다리를 회로 먹는 것은 영덕과 같은 생산지가 아니면 힘든 일이다. 차가운 얼음물에 살짝 담갔다가 고추냉이를 섞은 간장에 찍어 먹는 대게의 살은 `미식의 절정`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준다. 여기에 곁들이는 알싸한 소주 한잔은 그야말로 화룡점정(畵龍點睛)./이동구·홍성식기자

2016-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