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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ㆍ특집

신속한 피해 수습… 無에서 有를 창조하다

경북 제1의 도시 포항에 큰 상처를 가져 왔던 11·15 포항 지진. 지진은 지역민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놨다. 그리고 이를 겪으며 축적된 경험을 통해 하나하나 지진 대응책을 만들어 가며 포항은 無에서 有를 창조하고 있다. 포항시는 우선 피해를 입은 시민들을 위해 전국 최초로 지진 전담부서인 ‘지진대책국’을 신설해 운영하고 있으며, 단순히 지진피해 복구와 수습을 넘어 지진에 강한 도시로 거듭나기 위해 △선제적 지진방재 대책 △피해지역 특별도시재생 및 재건 △이재민들의 안정적 주거실현에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 특히 포항만의 지진대응 대책이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포항형 365 선제적 지진 종합대책’ 4대 플랜(예측·예방, 사전대비, 지진발생 시 대응, 조사·복구)을 마련해 지진으로부터 시민들의 소중한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방재안전도시로 도약하고 있다. 또한, 지진 피해지역에 국가방재교육공원과 다목적 대피시설, 트라우마 치유센터 등 방재인프라를 구축하고, 현장센터를 통한 시민들과 소통으로 특별도시재생 뉴딜사업과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다.市, 전국 최초 지진전담부서 신설영일도서관 등 학교·도서관 11곳에스마트지진방제시스템 구축재난구호소·국가방재교육원 등방재선구도시 도약 교두보 마련도시재생뉴딜사업도 ‘잰걸음’□ 포항형 365 선제적 지진방재 종합대책 수립포항시 지진대책국은 ‘포항형 365 선제적 지진방재 종합대책’을 현실화시켜 시민들이 불안감을 떨쳐버리고 편안하게 일상에 전념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먼저 주목할 것이 첨단 ICT기술을 접목한 ‘스마트 지진방재시스템’이다. ‘스마트 지진방재시스템’은 ‘포항형 365 선제적 지진방재 종합대책’의 주요시책 중 하나로, 광·무선통신을 이용한 광센서가 시설물의 주요부분에 설치돼 지진이나 여진으로 인한 미세한 진동과 균열을 감지하는 역할을 한다. 이를 통한 조기경보로 학생과 시민들의 생명을 보호하는 첨단시스템으로, 흥해 영일도서관에 전국 최초로 운영되며 추가적으로 포항시 피해지역 총 11곳의 학교와 도서관에 설치된다.이를 위해 포항시는 앞서 KT와 ‘스마트 지진방재시스템 구축 업무협약’을 체결했으며 시스템 준비기간과 현장 조사를 거쳐 수집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시스템 구축에 들어가 오는 8월까지 마무리할 계획이다.이 시스템이 구축되면 각 시설마다 설치된 감지센서들의 데이터 값이 포항시 지진대책국과 각 학교 교무실, 당직실 등에 실시간으로 모니터링 되고 위험단계의 진동이나 흔들림이 감지되면 즉각 대응할 수 있어 앞으로 첨단기술을 활용한 지진교육과 대피훈련을 통해 학생들이 지진 발생 시에도 신속하고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는 체계가 갖춰질 것으로 기대된다.또한, 흥해읍 일원에 ‘다목적 재난구호소’가 건립되면 평상시에는 주민 체육 및 여가공간으로 활용하고 지진이 발생하면 재해요원활동과 구호물자 수송 등 핵심시설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 더해 역사적 가치와 지진방재전문가 양성, 실질적 방재 시스템을 갖춘 ‘국가방재교육원’을 설립해 대한민국 대표 ‘방재선구도시’로서 우뚝 일어설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할 예정이다.‘국가방재교육원’은 우선 역사적 가치 보존을 위해 파손된 일부 건축물을 선별 전시해 현세대는 물론 미래세대에 지진에 대한 위험성을 전달함과 동시에 재앙에 대비할 수 있도록 경각심을 느끼도록 할 것이며, 실질적인 방재대책과 체험시설 등을 완비해 타지역과 차별화된 체험형 방재시설로 만들어진다.또 지진뿐만 아니라 화재 및 태풍과 같은 풍수해, 지진해일까지 연구 분야를 확장해 고차원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재난을 이해하고 극복 방안을 제시할 수 있는 ‘방재전문가’ 육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이 밖에도, 포항시는 지난 5월에 보건복지부로부터 국비 3억4천만원의 예산을 확보해 흥해 보건지소를 리모델링하고 10명의 정신건강전문요원을 채용해 ‘포항시 재난 심리지원 센터’를 개원했다. ‘포항시 재난 심리지원 센터’는 지진과 여진으로 인한 트라우마와 스트레스로 일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주민들의 심리 회복을 돕는 등 정신건강증진을 위한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센터는 추후 재난 발생 시 긴급하고 체계적인 심리지원으로 심리적 고통을 경감시키고 재난 전 일상으로 빠른 회복을 위한 각종 마음건강 프로그램도 진행할 예정이며, 이와 함께 포항시는 정부 100대 국정과제인 ‘국립트라우마치유센터’ 포항 유치에도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 도시재생 뉴딜(New Deal) 사업 추진지진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포항 흥해지역에 대한 ‘도시재생 뉴딜사업’이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국내에서 처음 추진되는 ‘특별재난형 도시재생사업’으로 포항시가 중앙정부에 강력하게 건의한 사업이다. 앞서 포항시는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국무총리가 피해현장을 방문했을 때 ‘도시재생 뉴딜사업’특별지역 지정을 건의했다. 이에 대해 대통령과 총리는 모두 적극 검토를 약속했고, 정부는 후속조치로 대규모 재난피해를 입은 지역을 대상으로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특별재생지역 제도’를 신설해 근거를 마련했다.이어서 김정재(포항 북구) 국회의원은 흥해읍이 특별재생지역으로 지정될 수 있도록 도시재생특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지난 3월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개정된 도시재생특별법으로 흥해읍을 중심으로 한 포항 지진 피해지역은 특별재생지역으로 지정돼 LH(한국주택공사)와 함께 용역을 실시하고, 그 결과가 나오면 하반기부터 도시재생 사업에 박차를 가할 전망이다. 총 사업비는 국비 2천145억원과 지방비 489억원, 민간과 공공기관 3천866억원 등으로 6천500억원 이상이 투입된다. 현재, 추진하고 있는 ‘도시재생 뉴딜사업’이 일반 도시재생사업과 비교해 볼 때 가장 큰 차이점은 기존 개발이익 중심의 전면 철거방식을 원칙적으로 배제한다는 점이다.‘도시재생 뉴딜사업’은 도시공간을 혁신적으로 활용해 삶의 질 향상 및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마련됐다. 특히, 주민과 지역이 주도적으로 사업을 추진해 나가면서 공동체 회복 및 사회통합에 이바지할 수 있으며, 노후 주거지를 쾌적한 주거환경으로 정비하고 쇠락한 구도심을 혁신 거점 공간으로 조성해 지역 기반의 도시재생으로 지역경제 생태계 회복과 함께 상가 내몰림 현상(젠트리피케이션 부작용)에도 적극 대응할 수 있다.이러한 흐름 속에서 포항시도 흥해 ‘도시재생 뉴딜사업’의 성공적인 추진을 위해 ‘흥해 도시재생 주민협의체’에 참여할 주민을 공개 모집하고 있다.이들은 뉴딜사업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주민 대표로서 주택정비와 도시 재생 활성화 방안 등 두 분야로 나눠 지역 주민이 주체가 돼 추진하는 상향식 모델이며, 정부와 포항시가 주민들의 활동을 적극 지원한다.또한, ‘주민참여컨설팅단’에 소속된 도시재생분야 전문가들이 직접 흥해읍 주민들과 만나 도시 부흥에 대한 의견을 수렴해 지역 주민들이 직접 ‘새로운 흥해’를 설계하도록 돕고 있다.이밖에도 한동대나 포항대, 선린대 등 지역 대학생들의 집합체인 ‘흥해 아이디어 발굴단’을 통해 대학생들이 보고 느낀 아이디어를 수집해 도시계획에 반영한다. 아울러, 이강덕 포항시장은 지난 6월 28일 지역주민이 원하는 특별재생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흥해 주민들과 만나 허심탄회하게 토론하고 당면 문제를 함께 풀어가기 위한 소통 간담회를 마련했다. 이는 한신·아와지(고베) 대지진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중앙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지자체 및 주민들의 협력이 이뤄지면 소통을 통한 당면 과제 순차적 해결과 주민 의견 적극 반영으로 성공적인 도시재건은 물론 지역의 독자적인 문화가 형성되고 지역주민의 공동체 의식이 높아지기 때문. 이를 통해 도시경쟁력이 높아지고 도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지난 연말 정부의 ‘도시재생 뉴딜 시범사업’의 대상지역으로 선정된 중앙동 일원 지역 도시재생도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중앙동은 지역경제에 새 바람과 함께 지역발전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올해부터 5년간 국비와 지방비, 기금 등 1천176억이 투입될 예정이어서 흥해읍과 함께 총 7천700여 억원의 사업비를 도시재생 뉴딜사업에 투자할 수 있게 됐다.중앙동 일대는 전통적으로 포항시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해 왔으나 인구가 도심 외곽으로 빠져나가는 도심공동화 현상이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침체돼 온 지역으로, 지난 11.15 지진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은 북구청사를 비롯해 일부 공공기관 건물과 노후 주택들이 붕괴가 우려될 정도로 피해를 입으면서 함께 도시재생 사업의 필요성이 제기된 지역이다. □ 지진 피해 극복과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지난해 11월 15일 지진 이후 반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포항시는 지진이라는 위기를 기회로 변화시키고 새로운 성장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도심재생 뉴딜사업’을 통해 전국 제일의 ‘안전한 도시 포항’으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이 민선7기 출범과 함께 더욱 가속화 될 전망이다. 특히,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흥해 일원의 급속한 도시공동화와 서민경제 붕괴를 막기 위해 ‘특별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하고, 이재민들의 주거안정을 위한 주택정비와 공급, ‘지진방재 종합대책’ 수립 등 실질적 방재계획들을 착실하게 추진해 전국 최고의 안전한 도시를 만듦과 동시에 새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포항시 지진대책국 관계자는 “이미 지진전문가 3명을 채용했으며, 하반기에는 방재직 공무원도 추가할 계획이다”며 “단국대와의 관학 협력을 통해 건축물 리모델링을 통한 내진성능 향상 기술을 개발해 접목하는 등 지진 대응을 위한 신기술 개발과 도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한편, 시민과 학생들에게도 체험형 교육과 훈련을 현장에서 지속적으로 실시해 지진에 대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전준혁기자 jhjeon@kbmaeil.com끝

2018-08-16

지진으로 틀어진 이해관계, 도시 재건으로 화해해야

단 한 번의 지진에서 파생된 상황은 수백이 넘는다. 피해 주민 개개인마다 상황과 피해규모 등이 달라 이를 최대한 만족시킬 해결책이 필요하다. 다양한 이해관계 조정이 시급한 이유다.11·15 포항지진으로 진앙지 인근인 포항시 북구 일대는 건물이 기울어지고 일부가 파손되는 등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상대적으로 포항시 남구는 혼란이 적었다. 또 북구에서도 흥해읍과 인접한 장성, 양덕동 일대에 피해가 집중됐다. 전파 판정을 받은 건축물이 대부분 흥해, 필로티 구조의 악몽을 떠올리게 했던 곳이 바로 장성, 양덕동이다. 양덕동에는 신축된 지 몇 년 되지도 않았던 고층아파트 외벽에 심각한 균열이 일기도 하는 등 지진의 직격탄을 맞았다.포항시는 지진 발생 초창기 수많은 민원과 신고 전화로 혼선을 빚고 업무가 마비되는 등 적절한 대처를 못했다. 지난 2016년 경주 지진을 겪은 포항시였지만 ‘간접적’이었을 뿐이었다. 대외홍보성 지진정책 발표와 달리, 막상 지진을 겪었을 때 준비된 무엇 하나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다. 이는 중앙정부나 시민들도 마찬가지였다.□ 포항지진 복구포항시는 지진이 발생한 뒤 응급복구 작업으로 시작으로 항구 복구대책을 추진해오고 있다.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지진의 예측과 예방, 사전대비 및 지진발생시 대응, 지진피해조사 및 복구 등의 계획을 수립했다.그 중에서도 현재 피해지역에 대한 항구적 복구 대책이 가장 시급한 과제가 되고 있다. 시는 4급 국장을 비롯한 3과 8팀 27명으로 지진대비 전담조직인 ‘지진대책국’을 신설해 △선제적 지진방재 대책 추진 △교육·훈련 △방재 인프라 구축 △트라우마 치유 △피해지역 도시재생 △이재민 장기 주거지원 등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시는 이와 함께 지열발전소 공동연구단 구성을 통한 철저한 원인규명, 건축물 내진보강 국비지원, 피해보상 현실화를 위한 특별법 제정, 중소기업·소상공인 지원 확대, 이재민 장기 주거대책 마련 등의 종합적인 대책을 추진 중이다.무엇보다 폐허가 되다시피한 지진피해지역을 어떻게 재건할 것인냐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흥해도시재생의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중이지만 여러가지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합치된 의견으로 모아갈지가 최대 과제가 되고 있다. 문제는 정부나 기초자치단체의 지진 피해복구과정에 대한 불신이 깊이 패여 있어 조정이 쉽지 않아 보인다. 애초 지진 피해 조사와 판정 부실, 피해보상을 위한 법규미비 등에서 불신이 시작됐다. 사상 초유의 강진에 대응하는 사전 메뉴얼이 만들어지지 않은 상황이어서 곳곳에서 대혼란이 일어났다.지진 피해주민들의 불만은 가장 큰 혼란은 재난지원금의 지급에서 나타났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따라 건물의 피해정도를 전파, 반파, 소파로 구분했다. 이를 두고 가구마다 천차만별로 다른 상황을 단 3가지로 구분해 기준을 적용했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20평형 아파트와 70평형 주택에도, 그 반대도 전파 기준에 따라 모두가 획일화된 900만원의 재난지원금을 지원받는다. ‘복지행정’이 아닌 ‘행정상 편의’를 위한 법령으로밖에 볼 수 없다. 가구 수부터 건물 규모 등 이재민들의 상황이 다름에도 ‘재난법’에 이재민들의 상황을 끼워 맞추는 식이다. 양방향이 아닌 ‘일방통행 행정’에 지진 피해 이재민들은 오히려 행정에 대한 불신이 깊어졌다. 기존 재난지원금이 실제 주택 보수 비용과 동떨어진다는 지적에 따라 정부는 지난달 24일 정부는 자연재난 복구비용 산정기준을 기존보다 44% 인상했다. 그러나 꾸준한 물가상승과 비교해 재난지원금은 아직 ‘주고도 욕먹는’ 수준이라는 반응이다. 도시를 중심으로 평당 1천만원을 훌쩍 뛰어넘는 고층아파트부터, 높은 지대를 유지하고 있는 시가지나 번화가 일대의 땅값과 비교했을 때 지금과 같은 재난지원금은 현실과의 괴리가 남아있다. 백분율을 활용해 전파는 매매가격의 최대 30%까지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등의 더욱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법령의 제정을 이재민을 바라고 있다.흥해읍 이재민 A씨는 “평수가 넓은 단독주택이 평수가 작은 아파트와 같은 기준을 적용받았다”며 “모두가 같은 이재민이라도 각자 복구비용부터 자재값, 주변 환경 등 조건이 다 다르다. 지금의 재난지원금은 현실과 동떨어진 선심성밖에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해관계 조정산적한 과제 중에서도 선결돼야 할 1순위는 피해주민들의 다양한 요구를 어떻게 아우를 것이냐이다.지난해 11·15 포항 지진 이후 각 읍면동에 접수된 사유시설 피해신고건수만 4만5천여 건에 달했다. 4만여 건이 소파에 해당했고, 상가건물에서도 3천여 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포항 인구 대비 지진으로 약 1/10 정도가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셈이다.아직까지도 이재민 중 일부는 지자체와 갈등을 빚고 있다.전파 판정에 포함되지 않은 한미장관맨션 주민들을 중심으로 한 불만의 큰 줄기는 ‘현재의 집에서는 생활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전파나 반파나 파손 유무가 동일한 상황에서 불안감 등으로 더는 집에서 살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미 수차례의 민원과 집회 개최 등 행정기관과 이재민 사이에 갈등의 골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건설적인 방향으로 도시를 재건하기 위한 ‘중간자’역할이 필요한 시점이다.주민들과 가장 가까운 시의원과 지역구 국회의원을 필두로 한 민·관·정계 대타협 조정기구를 구성해 현재 포항지진과 관련해 산재해 있는 각종 사안을 집중적으로 풀어나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흥해읍 개발구역에서 제외된 일부 가구들 사이에서는 벌써 뒷말이 나오는 상황이다. 구체적인 기준안부터 하나씩 설정해가면서 묶인 실타래를 풀어나가야 한다.□ 일본의 지진피해 복구엄밀히 말하자면, 일본은 지진으로 파손된 사유재산 보상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이는 행정기관 주도의 정책 등 그 나라의 문화에서 비롯한다는 분석이다.방재 선진국으로 강력한 지진을 비롯한 각종 풍수해 등 재해·재난을 수차례 겪은 일본의 방재정책은 무엇보다 ‘자조’와 ‘풀뿌리’에 충실해 있다.최악의 지진으로 기억되고 있는 ‘한신·아와지대지진(사망 6천434명, 부상 4만3천792명. 우리에겐 고베지진으로 더 잘 알려졌다)’이 발생한 이후 일본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파괴된 항만, 철도와 같은 사회간접자본(SOC)을 원상 복구 수준 이상으로 재건했다.도시 재생과 재개발·건축 등 주거지를 중심으로 한 피해복구는 시민 주도로 이뤄졌다. 각종 협의체와 추진위원회가 구성돼 의견을 모았으며, 공공의 이익에 목적을 뒀다.가장 큰 역할을 담당한 건 시민단체들이었다. ‘한신·아와지대지진’ 직후부터 전국에서 몰린 자원봉사자들이 구조작업부터 복구작업까지 함께하면서 공권력의 한계를 극복한 사례로 소개된다.특히, 자원봉사활동이 활발히 이뤄지면서 지진 이후 약 10년 뒤인 지난 2006년에는 고베시가 있는 효고현 내 NPO(특정비영리활동)법인이 1천개를 넘어서면서 전국 6위를 기록하기도 했다.정부역할과 시민의 역할이 정확하게 분리돼, 전국에서 몰린 자원봉사자들과 시민단체 등 민간 주도의 정책적 방향이 ‘허물어진 도시 고베’를 새로운 관광지로 재창조했다. 지진 이전 일본 최대의 물류항이었던 고베시는 지진을 겪고 나서 전 세계적으로 지진을 극복하고 이겨낸 일본 최고의 방재도시가 됐다.일본은 현재도 자주방재시스템 구축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자율방범대, 유·소년, 부인방재클럽 등 지역별 자주방재단체를 조직해 생존교육을 이어가고 있다.일본 오사카시 소방국 관계자는 “지진이 났을 때 가장 중요한 점은 살아있는 것이다. 생존은 안타깝게도 자신의 문제다. 이를 위해 국가에서 방재교육을 의무화하고 있다. 우리(소방국)가 할 수 있는 건 지진 이후 생존자들을 최선을 다해 구조하고 2차 피해를 막는 것”이라고 말했다./이바름기자 bareum90@kbmaeil.com

2018-08-14

대형 지진 컨트롤 타워, 지자체 역량으론 ‘한계’

‘11·15지진’은 대한민국이 얼마나 지진에 무관심했는지 그 민낯을 가감없이 보여줬다. 지진발생 수 분이 지나서야 도착하는 재난문자, 어디에서도 정보를 찾을 수 없는 재난대피소, 내진(耐震)과는 동떨어진 필로티 구조 건물 등 많은 문제점이 고스란히 드러났고 시민들은 분노했다. 논란이 컸던만큼 가이드라인과 대책 마련이 나름 신속하게 진행됐고 현 시점에서 뒤돌아보면 많은 개선이 이뤄졌다.반면, 아직 상대적으로 성에 차지 않는 부분도 있다. 바로 복구와 관련된 분야다.‘재난 예방 및 대처’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면 ‘재난 복구’는 소도 잃고 부서진 외양간도 그대로 방치하고 있는 격이랄까.지진 전문가는 많아도지진 수습 전문가는 태부족광역단체급 전담 조직 필요짧은기간·적은인원이 피해 파악불공정·부실조사 개선책 마련 절실◇지진의 특수성을 간과한 피해 진단과 복구“옆집은 소파 판정이 났는데 우리집은 왜 안 되는 건가요. 누가 보더라도 우리집이 피해가 더 심한데 제대로 진단한 것이 맞나요?”“퇴근은 잊고 살고 있습니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라요. 원래 업무에 지진 업무까지 더해져 과부하 상태입니다.”지진이 발생하고 복구와 관련해 피해 조사를 진행하는 단계에서 드러난 문제점은 지진관련 법규가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줬다.지진이 홍수 및 산사태 등과 동일한 자연재난에 포함되어 있는 법의 문제점이 드러났다. 이 규정에 따라 2주 안에 국가재난정보관리시스템(NDMS)에 피해 현황 입력을 마쳐야 한다.현실은 어떨까. 진앙지에 근접해 가장 피해가 컸던 흥해읍을 포함하고 있는 북구의 피해조사를 자세히 들여다보자. 구청 소속 2인 1조의 6개 팀이 2주라는 짧은 기간에 모든 조사를 마무리해야 했다. 각 지역에서 300여명의 전문가가 파견돼 업무를 도왔지만 이들은 급한 대로 거주 가능 여부만 알려주는 것이 전부였다. 최종 판단은 포항시가 내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여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접수된 피해조사 건수는 총 2만여건. 2주 전부를 오롯이 조사에 집중하더라도 하루에 1천400여건을 처리해야 하는 업무량이다. 이를 팀당으로 나누면 230여건이 된다. 하루 24시간을 꼬박 조사해도 시간당 10건 정도에 이른다. 이동시간을 포함해 가구당 6분만에 조사를 끝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주민들의 부실 조사에 대한 비판과 함께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피해 파악을 포항시는 어쨌든 해냈다. 그리고 이듬해 2월 규모 4.6의 여진이 또다시 발생했고, 피해신고는 4만건이 넘었다. 이번에도 같은 절차가 역시 반복됐다.◇복구 관련 광역단체급 전담 조직 필요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포항시는 이재민 관리부터 주거안정, 응급복구, 대피소 운영 등 모든 복구 관련 사항들을 스스로 판단하고 처리해나가며 지진 복구의 역사를 새롭게 써나가고 있다. 지난 3월에는 전담조직인 ‘지진대책국’을 신설했다. 상황 발생 시 상황실 운영 등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전문 인력도 임기제로 채용했다.하지만, 포항시의 이러한 대처는 인구 52만의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지자체라 가능했다는 평가다. 언제 어디에서 발생할지 모르는 것이 자연재해이기 때문에, 현 상태와 같이 지자체에 모든 것을 전담하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그 미래는 참담하다는 것이 지진 관련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다.즉, 만약 인구가 수만명에 불과한 소규모 지자체에 지진이 발생할 경우 이를 해당 지자체가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가까운 일본만 보더라도 고베지진이 발생했을 때는 도단위 광역지자체인 효고현(兵庫縣)이, 오사카지진 때는 마찬가지로 광역지자체인 오사카부(大阪府)에서 나섰다. 광역지자체가 내진설계와 자가발전이 가능한 위기관리실을 운영하고 있다. 복구와 관련해 피해 지역으로 파견할 수 있는 30여명의 운용 가능 전문가도 보유하고 있다.포항시 관계자는 “지진 복구는 단기간에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다. 이재민의 재건축과 재개발 등에 짧게는 10년, 길게는 15년이 걸린다”며 “기업이나 정부 차원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전준혁기자 jhjeon@kbmaeil.com

2018-08-10

주인 잃은 보금자리… 갈 길 먼 복구작업… 뒤숭숭한 여름

‘11.15지진’직후 ‘기울어진 아파트’로 유명세를 탄 대성아파트는 9개월이 지난 동안 많이 변해 있었다. 7일 찾은 현장은 주인들이 모두 떠나고 건물에 사람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은 ‘유령의 집’처럼 적막했다.출입이 통제된 D·E·F동은 풀색만 짙어가고 있었다. 화단에는 사람의 손길이 전혀 미치지 않아 강아지풀 등 잡초만 무성했다. 한켠에는 누군가가 버리고 간 소파와 의자가 널려있고, 넓은 주차장은 남은 것 하나 없이 텅 빈 상태다. 무엇하나 정상이 아니었다.지진 이후 초창기 정·관계 인사들과 건축 전문가들로 북새통을 이뤘지만, 현재는 흡사 전쟁통에 방치된 폐허처럼 을씨년스럽기만 하다.아파트 입구에서 출입을 통제하던 경찰이동초소에도 주인이 사라진지 오래다. 무너져내린 담장 주변으로는 출입금지를 알리는 ‘폴리스라인’만 뒤엉켜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인근의 경림뉴소망타운 역시 마찬가지. 우거진 풀숲 너머로 인적을 찾아볼 수 없는 주차장에는 누군가가 버리고 간 장롱, 이불, 옷가지 등만 널브러져 있다.지진으로 기울어진 ‘아파트’버려진 물건들·텅빈 주차장에인적 끊기고 잡초만 무성‘유령의 집’ 연상 폐허 방불정부·지자체 참여 뒷전 속전파 5곳 주민들 새단장 준비‘필로티 구조’ 안전성 논란에9월부터 3층이상 건축물 대상시공과정 영상촬영 의무화 추진市, 이재민 전기요금 감면 연장“예고없는 지진에 철저한 대비를”대성아파트 인근 주민 김모씨는 “초창기에는 짐을 가지러 몰래 들어가는 주민들이 더러 눈에 띄곤 했는데, 최근에는 이런 모습도 보기 어렵다”며 “인적이 끊긴 지 오래”라고 말했다.최근 이곳은 또다른 우범지대로 전락한 실정이다.사람의 발길이 끊긴 틈을 타 이곳에서 이재민들이 남겨둔 물품 등을 훔치던 좀도둑이 경찰에 붙잡혔다. 일당 두명은 새벽시간을 틈타 경림뉴소망타운과 대성아파트에 들어가 에어컨 구리케이블을 훔쳐 달아나다 붙잡혔다. 100여 만원도 되지 않은 피해였지만, 장기간 방치해 둘 경우 또다른 범죄가 발생할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이재민들은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건축물에 대한 활용방안이 구체적으로 계획된 것이 없는 점이 걸리는 대목이다. 큰 틀에서 흥해지역 도시재생 뉴딜사업과 관련한 재개발·건축으로만 논의되고 있을 뿐, 최종 합의가 도출된 단계까지 접어들지 못했다. 저당잡힌 집이 있는 등 각 세대마다 소유관계가 달라 실제 건물 철거 합의를 보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재민들이 짧게는 2년, 길게는 수년 동안을 기약없이 무주택자로 살아야 할 처지다.포항지진으로 안전성 논란에 휩싸인 ‘필로티 구조’ 건물도 여전히 그대로다.필로티는 주차장 확보를 위해 1층을 비운 채로 기둥만 세우고 2층부터 건물을 짓는 방식이다. 지진 이후 장성동 일대 필로티 구조의 건물 기둥에 심각한 균열이 생겨 구조 안전성에 대한 지적이 있었다. 건물 기둥이 으스러지면서 붕괴위험까지 생겨 경찰관이 배치돼 주변인의 출입을 통제하기도 했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크리스탈 원룸은 지진 발생 이후부터 현재까지 휀스로 둘러쳐져 접근이 막혀 있다.다행히 지진 당시 피해를 입었던 장성동 일대 필로티 구조 건물은 대부분 1층 기둥을 두껍게 추가 시공하거나 기둥 수를 늘리는 등 조치가 취해지고 있다. 피해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대다수의 건물들은 여전히 추가 시공없이 그대로 남아있다. 앞으로 언제 닥칠지 모르는 지진에 대한 대비가 없는 셈이다. 특히, 설계도면과 다르게 시공해 나중에 부실공사의 의혹이 생기더라도 ‘잃어버렸다’는 식으로 잡아 때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노리고 있는듯하다. 복구작업은 이제 첫 삽을 뜬 걸음마 단계다. 갈 길이 멀다.느린 걸음이지만 지난해 11월 15일 규모 5.4 지진으로 피해가 난 공동주택 가운데 처음으로 철거되는 곳이 나왔다. 지난 6일 지진 피해로 사용 불가 판정을 받은 포항시 북구 환호동 대동빌라 철거에 들어갔다. 주민이 구성한 재건축사업추진위원회가 지난달 26일 포항시와 협의를 거쳐 건물 철거 작업을 시작했다. 대동빌라는 지진으로 건물 전체가 심각하게 파손돼 사용 불가 판정을 받아 그동안 건물 출입이 통제됐다.전파 판정은 대성아파트와 경림뉴소망타운, 대동빌라, 해원빌라, 대웅파크 등 5곳에 내려졌다.정부나 지자체가 아닌 주민들의 주도적인 참여로, 폐허나 다름없는 건물이 지진 이후 약 9개월만에 새단장을 준비하고 있다.추진위는 주택을 담보로 금융권에 설정한 근저당을 스스로 해지하는 한편, 조합설립을 진행해 앞으로 자신들의 새 보금자리를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조합설립인가 이후부터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참여형 주택정비사업을 할 예정이다. 약 1억1천만원으로 알려진 공동주택 신축비용은 주민이 부담한다. 주택도시기금 저리융자 지원 혜택을 받을 수 있고, 철거비나 주민공동이용시설 설치비를 국비로 지원받는다. 포항시는 주민 분담금을 줄이기 위해 설계비 30% 감면과 원가 수준의 시공비로 맞춰 이재민들의 새 보금자리 마련에 발맞출 계획이다. 필로티 건축물 안전성을 강화하기 위해 국토교통부는 건축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지난 5일 입법 예고했다. 이르면 오는 9월부터 3층 이상 필로티 건축물 시공 과정을 동영상으로 남기도록 의무화한다는 내용이다.포항 지진을 겪은 뒤 구조전문가들의 안전점검에서 설계도면과 다르거나 철근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 등 부실 시공 정황이 드러난 점을 바로잡기 위한 조치다. 이번 개정안으로 특수구조 건축물은 매 층이 올라갈 때마다, 3층 이상 필로티 건축물은 기초공사와 기둥, 바닥부재의 철근 배치를 끝낼 때마다 동영상을 촬영해야 한다.3층 이상 필로티 건축물은 설계·감리 과정에서 건축구조기술사의 확인을 반드시 거쳐야 하는 조항도 신설됐다.현행 건축법에는 5층 이하 건축물은 건축사가, 6층 이상 건물을 건축구조기술사가 설계토록 하고 있다. 건축구조기술사는 건축사와 달리 안전분야를 전문적으로 다루기 때문에 새로 만들어진 조항으로 필로티 구조 안전성을 더욱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이와 함께 시공사가 공사 과정에 따라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해 보관하고 감리·건축주에게 제출하지 않으면 처벌을 받는 조항도 검토 중에 있다. 동영상 촬영이 ‘의무화’됐지만 조항을 어겼을 때 처벌 규정이 따로 없다. 이 외에도 필로티 건축물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국토부는 ‘필로티 구조설계 가이드라인’을 제작·발간했다.이재민들의 여름나기는 관계기관의 협조로 조금 수월해졌다.한국전력은 우선적으로 산업통상자원부와 협의를 거쳐 포항 지진피해 이재민 임시주거시설의 전기요금 감면 기간을 3개월 연장한다고 밝혔다.포항지진피해지역이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면서 한전은 ‘재난지역 특별지원 기준’에 따라 이재민 대피장소인 임시 가건물의 전기료를 복구 기간 최대 6개월까지 감면해주고 있었다. 최근 일부 임시주거시설의 전기요금 감면 기간이 만료됐고, 폭염으로 전기사용량까지 늘면서 이재민의 요금 부담이 증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포항시는 겨울철부터 한전과 수차례 협의를 진행, 추가 전기세 감면 등 대책이 필요하다고 요청해왔다. 한전은 이에 지진피해 복구의 경우 주택 재건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고, 포항 임시주거시설 이재민 대부분이 고령자와 저소득층인 상황을 고려해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특히 최근 폭염에도 전기료 부담 때문에 이재민이 거주하는 임시 가건물의 냉방시설 사용을 자제하고 있어 이같은 조처를 했다.한전 관계자는 “포항시 홍해읍 등 지진피해 이재민이 임시 거주하는 시설을 개별 방문해 특별재난지역 선포에 따른 전기요금 감면 기간 연장 안내활동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이바름기자 bareum90@kbmaeil.com

2018-08-08

망각에 묻힌 아픔… 하는 일도 되는 일도 없는 현실

“인간의 기억은 시간의 제곱에 반비례한다.”19세기 독일의 심리학자 헤르만 에빙하우스가 16년간 연구한 ‘망각곡선 이론’에 의하면 인간의 망각은 학습 후 10분이 지나면서부터 시작된다. 1시간 뒤에는 50%, 하루 뒤에는 70%, 한 달 뒤에는 80%를 망각하게 된다. 아무리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는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바로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우리 주변에는 생존을 위협하는 변수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매년 교통사고, 폭행, 테러 등에서부터 지진, 태풍, 화산폭발과 같은 자연재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건·사고가 현실세계에서 발생하고, 이 때문에 많은 소중한 생명이 사라져간다. 사건·사고가 발생한 이후에는 늘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잠시동안일 뿐, 이내 ‘망각’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사건·사고에 대한 기억은 잊혀진다.포항지진이 그렇다. 포항시민은 물론, 전 국민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대형지진이 발생한 지 불과 9개월 남짓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대다수 국민들에게 지진은 수년, 수십년 전의 희미한 기억의 한 조각 정도에 불과하다.쉽게 잊혀진 만큼 후속조치도 흐지부지되는 모양새다.수백가구가 보금자리를 잃었고, 일부는 현재까지도 이재민 생활을 하고 있지만 수습의 책임은 오롯이 포항시와 피해주민들에게만 전가되고 있다.정치권과 중앙정부 인사들이 지진발생 직후 수없이 쏟아낸 지원방안들은 대부분 공염불이 되고 말았다.지난해 11월15일 발생 9개월째피해지역 일부 아직도 ‘이재민 생활’끊이지 않던 정치권 인사들 발길 ‘뚝’갈라지고 무너진 위험천만 속 수습은포항시·피해주민들 책임만으로 ‘답답’포항, 특별재난지역 선포 후…정부·정치권 지원·협력 약속마저 무색입법안 13건 중 ‘도시재생’ 법안만 통과주택 전파 관련 복구비 지원 확대 등‘재난·안전관리 기본법’ 등 개정안 시급市 “피해 지역민들에 관심과 희망을”◇그 많던 정치권 인사들 발걸음 뚝포항지진이 발생한 다음날인 지난해 11월 16일부터 정치권과 중앙정부의 수많은 인사들이 피해현장을 찾았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조속한 피해복구와 재정적 지원 등을 위해 협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더불어민주당 우원식 당시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재난지원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특별지원금과 교부세 등을 지원하기 위해 당정이 협의에 앞장서겠다고 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당시 대표는 당 차원의 ‘포항지진특별지원대책팀’을 긴급 구성해 피해실태 조사를 비롯해 피해복구, 이재민 지원 등 분야별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당시 대표도 지진관련 예산문제를 초당적 협력을 통해 진행해 주민피해를 최소화하겠다고 약속했고, 바른정당 유승민 당시 대표도 포항시 재정에 도움을 줘서 피해복구가 빨리 이뤄지도록 돕겠다고 다짐했다.정부에서는 이낙연 국무총리가 포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8개월여가 지난 현재, 이들의 약속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피해주민들이 실질적으로 체감하는 혜택은 정부가 관련법에 근거해 전달한 지진피해 주택복구 지원금(최대 900만원)과 국민들이 직접 모금한 지진피해 성금에 따른 의연금(최대 500만원)을 제외하면 미미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태산동명 서일필(泰山動鳴鼠一匹)이란 말처럼 계획과 약속은 거창했지만 결과는 보잘 것 없는게 현실이 되고 있다.먼저 국회 재난지원특별위원회는 지진이 발생한지 9일 뒤인 지난해 11월 24일 재난안전대책특별위원회라는 명칭으로 출범했다.더불어민주당 변재일(충북 청주 청원) 의원을 위원장으로 총 18명의 위원으로 구성돼 포항지진, 제천화재 등 재난안전에 대한 국민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입법, 예산 등 국회 차원의 지원대책을 마련하겠다는 것이 목적이었다.지난 5월 29일까지 약 6개월간 활동한 재난특위는 21개 기관의 정부부처를 대상으로 4차례의 업무보고, 1차례의 공청회 등을 거쳐 7건의 입법안을 공동발의했으나 현재까지 단 1건도 소관 상임위 상정조차 하지 못했다.자유한국당이 자체적으로 구성키로 한 포항지진특별지원대책팀도 2명의 포항지역 국회의원을 제외하면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아 뚜렷한 성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지원과 협력을 약속한 나머지 정당들도 지진복구보다는 정쟁에 집중했고 포항을 향한 발길과 관심을 뚝 끊어버렸다.정부가 포항지진이 발생한지 5일만에 선포한 특별재난지역도 지자체 재정에는 일부 도움을 줬지만 주민들이 피부에 와닿는 지원책은 되지 못하고 있다.이렇다보니 피해지역 주민들의 불만만 커지고 있다.포항지진 최대 피해지역인 흥해에 거주하는 주민 김모(61)씨는 “처음에 지진이 발생하고 나서는 너나할 것 없이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듯이 떠들더니 지금은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고 있다”며 “애초에 약속이나 하지 않았으면 상실감이 덜할텐데 모두 거짓말이었다고 생각하니 우롱당한 기분”이라고 하소연했다. ◇입법안 13건 중 통과는 고작 1건지진을 비롯한 국가적인 대형 재난을 지원·수습하기 위해서는 국회 입법을 통한 법률적 근거 마련이 반드시 필요하다. 가장 시급한 과제인 예산확보를 위해서는 관련 법률을 제·개정하는 작업이 수반돼야 하기 때문이다.포항지진의 경우 지난해 11월 20일 이후 9건의 법령을 13차례에 걸쳐 제·개정하자는 제안이 발의됐으나 현재까지 공포가 완료된 법안은 지역구 의원인 자유한국당 김정재(포항 북) 의원 등 10명이 발의한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일부 개정안 1건이 전부다.나머지 12건 중 11건은 아직도 각 상임위 법안심사소위에서 계류 중이다. 지난 2월 1일 유일하게 상임위에 상정된 ‘긴급복지지원법’일부 개정안도 6개월이 넘도록 법안통과를 위한 후속절차를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현재 피해주민들이 가장 시급하다고 주장하고 있는 법안은 지난해 11월 20일 김정재 의원 등 13명이 발의한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일부 개정안과 지난해 11월 27일 김정재 의원 등 30명이 발의한 ‘지진재해로 인한 재난복구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제정안 등 2건이 꼽힌다.‘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일부 개정안은 자연재난 중 지진으로 인한 주택 전파와 관련된 복구 부담액을 최대 3억원으로 높이고 국비 부담률을 80%로 상향조정하는 내용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현행법령은 지진에 의해 주택이 전파될 경우 최대 900만원을 복구비로 지원하도록 하되, 내진설계 반영 여부에 따라 국고, 융자 및 자기부담 등의 부담률을 달리 정하고 있다.개정안은 “주택 전파는 주택 주요 구조부가 50% 이상 파손돼 개축하지 않고는 사용이 불가능해 막대한 복구비용이 뒤따를 수밖에 없는데 900만원이라는 상한액은 현실을 반영치 못해 보완이 요구되고 있다”고 제안이유를 설명하고 있다.‘지진재해로 인한 재난복구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제정안도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안을 발의한 김정재 의원 등은 기존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이 지진이라는 특수한 재난에 대한 지원 및 복구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기보다는 풍수해 전반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어 지진으로 인해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지역에 한정해 풍수해보험가입 지원, 국고보조 등 지원책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할 필요성이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법안의 주요 내용으로는 현행 ‘자연재난 구호 및 복구 비용 부담기준 등에 관한 규정’이 지진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주택의 파손 정도를 소파, 반파, 전파 3등급으로 구분하는 것과는 달리 2등급으로 구분해 지원토록 하고 있다.지원규모는 50% 이상 파손돼 개축이 필요한 주택은 최대 3억원 한도로 국가가 80%를 부담하고, 파손정도가 50% 미만이지만 수리가 필요한 주택은 최대 1억원 한도로 국가가 전액 부담토록 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피해주민들은 이 2건의 법안이 지진복구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아직 위원회 심사조차 열리지 않고 있는 두 법안이 본회의 상정을 넘어 최종 공포까지 이르려면 넘어야 할 산이 한 두개가 아니다.만약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소급 적용이 가능한 지에 관한 문제가 또 하나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앞서 지난 5월 24일 행정안전부가 포항지진시 나타난 미비점을 보완한 ‘지진방재 개선대책’에서 자연재난 복구비용 산정기준을 기존보다 44% 인상했지만 정작 포항지진에는 소급 적용되지 않은 사례를 비춰볼 때 새로운 법안이 만들어지더라도 소급 적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포항시 관계자는 “지진이 발생한 지 9개월 가까이 지났음에도 아직까지 피해지역 주민들은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며 “재난 발생 초기 정부와 정치권이 보인 관심의 10분의 1이라도 신경을 써준다면 피해 주민들이 조금이라도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박동혁기자 phil@kbmaeil.com

2018-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