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적 해석의 전통 오페라동생은 클래식의 본 고장인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세계적 오페라극장에서의 오페라 감상을 제안했다. 단체여행에선 누리기 힘든 호사니 불감청(不敢請)이언정 고소원(固所願)이었다. 동생이 6개월 전에 예약해 둔 세 곳의 극장과 2편의 오페라, 교향악단의 공연에 기대가 컸다. 동생은 미리 오페라 공부해 오라고 당부했지만 대구에도 오페라하우스가 있어 ‘토스카’와 ‘투란도트’를 본 적 있다며 동생을 안심시켰다. 드레스코드가 필요하냐 물었더니 청바지에 운동화보다는 원피스가 좋겠지 해 세 벌의 옷과 구두까지 챙겼다.뮌헨국립오페라극장은 1818년에 세워져 독일 3대 오페라하우스로 명성이 높았지만 제2차세계대전 때 전소, 1963년에 외관은 옛 모습으로, 내부는 현대식으로 재건했다. 화려한 레지덴츠궁전과 거리를 사이에 두고, 가까이엔 맥주와 독일 음식을 즐길 수 있는 식당도 많았다. 시민들의 접근성이 좋은 오페라하우스는 시민과 함께 하는 시민의 문화공간이었다. 생전의 훈데르트 바서 모습. 빈의 쿤스트하우스 미술관 2층에 걸린 사진을 찍었다.
준비해 간 원피스에 스카프까지 둘러 한껏 차려입었다. 좀 일찍 가서 오페라하우스 건너 식당에서 이른 저녁을 먹으며 입장시간을 기다렸다.
멋지게 차려입은 커플들이 팔짱을 끼고 오페라하우스로 가고 있었다. 가벼운 옷차림의 남녀도 없지는 않았지만 나이 지긋한 대부분의 관객들은 성장(盛裝)한 모습이었다. 빈 국립오페라극장, 혹은 오케스트라나 오페라에 대한 묵언의 예의일까. 여기서 갑자기 최근 우리나라에 불어닥친 광기같은 트로트 팬덤 문화가 머릿속을 스친 것은 왜일까.음악과 함께 무대가 열리자 깜짝 놀랐다. ‘토스카’는 1800년의 로마가 배경인 걸로 알고 있는데 간소한 현대식 무대, 등장인물들의 현대식 복장은 정말이지 생경했다. 스토리를 대강 알고 있으니 망정이었다. 무대와 등장인물이 오히려 훌륭한 음악을 방해한다는 느낌 탓에 눈감고 듣기만 할까 생각했다. 음악과 노래가 없다면 영락없이 연극이었다. 우리나라 공연에서 인물들의 과장된 서양식 분장이 거슬려 서양 주인공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기대한 나는 당혹했다.
실망감을 감추지 않는 나와 남편과는 달리 동생을 비롯한 대부분의 관객들은 무대에 몰입한 듯했다. 1막이 끝나자, 실망스러우면 나갈까 기색을 살피는 동생에게 2막과 3막의 유명한 아리아는 듣겠다며 주저앉혔다. 가까이 몇몇 나이든 관객들의 실망스럽다는 대화를 엿들었던지 인터미션 후엔 빈자리도 생길 것 같다고도 했다.
그러나 웬 걸, 그런 일은 없었다. 여전히 객석은 꽉 찼다. 2막에서는 흑백무성영화도 한참 나왔는데 도통 맥락이 안 잡혀 전통오페라를 완전히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거구나 생각하기로 했다. 어쨌든 2시간이 훌쩍 넘는 공연 후 커튼콜이 시작되자 관객들은 20여 분 이상의 갈채로 새로운 버전의 오페라에 아낌없는 성원과 찬사를 보냈다. 감독의 과감한 연출 시도를 응원하고 격려하는 박수리라. 오스트리아의 빈 국립오페라극장은 세계 3대 오페라하우스다. 유명한 빈 필하모닉오케스트라를 전속으로 둔 전통의 극장이다. 해마다 정초가 되면 빈 필의 신년연주와 ‘라데츠키 행진곡’을 찾아 들었던 나는 빈 국립오페라극장을 유난히 동경했다. 저기 저 자리에서 새해를 열면 얼마나 신날까. 이 극장 역시 1945년 완전히 파괴되었다가 시민들의 자발적 성금으로 10년만에 재건되었다고 한다. 모차르트의 음악도시를 반드시 재건해야 한다는 시민들의 열정과 희망에 따라 고색창연한 옛 모습 그대로 복원했다. 7월과 8월을 제외한 모든 달, 모든 날에 잡힌 공연 달력을 보고, 빈 시민의 참으로 두터운 음악 사랑이 부러웠다.빈에서는 제대로 된 시대극을 기대했다. ‘투란도트’는 고대 중국이 배경이니 서양인 배우들의 동양인 분장과 무대의상이 궁금했다. 그러나 연두색 정장을 입고 등장하는 합창단의 첫 장면에서부터 알아차렸다. 이 공연 역시 현대적 버전의 오페라인 것을. 무대 장치가 거의 없는 연극 무대였지만 이미 뮌헨의 경험이 있으니 놀라는 대신 즐겼다. 오케스트라와 성악가의 연주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그런가 하면 빈 모차르트오케스트라는 오히려 18세기 모차르트 시대를 재현한다. 모든 연주자는 한결같이 흰 가발을 쓰고 18세기 궁중복장, 지휘자는 빨간 모차르트 복장이었다. 연주곡은 모두 유명한 모차르트의 넘버였고, 앵콜곡으로 관객과 함께 즐긴 요한 슈트라우스의 ‘라데츠키 행진곡’에 나는 잠시 흥분했고 황홀했다. 순전히 관광객을 위해 특화된 관광상품은 관광객을 열광케 했다. 관객 중 상당수가 중국인으로 보였다. 그래선지 좌석 앞 모니터엔 중국어 자막도 있었다. △ 고건축의 도시에서 만난 현대적 건축물빈에는 쇤브룬 궁전, 벨베데레 궁전, 호프부르크 왕궁, 슈테판 대성당, 성페터 성당 등 수많은 역사유적지와 미술관, 박물관에서 유명한 예술품을 감상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 에곤 쉴레(1890~1918)도 있지만 그 계보를 잇는 전위적 화가이자 건축가인 훈데르트 바서(1928~2000)가 리모델링한 장난감 같은 건축물도 만날 수 있다.
빈은 전통을 지극히 존중하고 자랑스러워하는 도시이지만 동시에 전통을 거부하고 비튼 예술가를 낳고 포용하고 인정한 도시이기도 하다. 빈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거나 혼재하면서 미래의 문화유산이 될 예술을 토닥이고 쓰다듬고 어루만져주는 도시였다. 쿤스트하우스빈은 훈데르트 바서의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친환경주의자이기도 한 그는 직선과 네모는 자연을 거스르는 것이라며 극도로 혐오했다.
네모난 창문은 장난스러운 그림으로 가렸으며, 자연이나 식물의 모양을 닮은 비정형의 건축물과 실내디자인은 독특하되 아름답고, 기괴하지만 매력적이다. 슈테판성당 앞에는 훈데르트 바서를 오마주한 호텔도 있었다. △ 문화의 힘이 국력이다빈 국립오페라극장은 외곽지의 관광지로 가는 시티투어 버스가 출발하는 곳이기도 하다. 노란버스는 싸지만 한국어 해설이 없고, 빨간 버스는 비싸지만 한국어 해설을 들을 수 있단다. 과연 우리가 탄 노란버스엔 영어, 스페인어, 이탈리어, 그리스어, 터키어, 중국어, 일본어도 있는데 한국어는 없었다. 빈 오페라극장의 좌석 앞엔 외국어 자막 모니터가 있다. 거기에도 중국어와 일본어는 있는데 한국어는 없었다. 남편은 국력은 이런 데서 알 수 있다며 분개했다. 극장 가까운 곳에 펄럭이는 태극기를 단 한국문화원을 발견하자 뭐하는 문화원인지 중얼거렸다. K-문화를 자랑해대면서, 정작 이런 것 하나도 못 챙기는 문화외교에 무력감을 느꼈다.김구 선생은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며 우리나라가 “최고 문화로 인류의 모범이 되기”를 바랬다. 경제력이나 군사력보다 문화의 힘을 가져야 아름다운 나라라고 했다. 문화의 힘은 오랜 역사와 전통에 뿌리를 두면서도 새롭게 시도하고, 변화하고, 고뇌하는 예술가를 존중하고, 인정하고, 사랑하고, 아끼는 시민의 힘에서 비롯되지 않을까. 뮌헨과 빈이 아름다운 도시인 이유는 시민들의 자발적 동의에서 얻어지는 영향력, 예술과 문화라는 소프트파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겠다.글·사진/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2024-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