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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역사 인재 요람서 시민의 ‘대학거리’를 꿈꾸다

등록일 2024-07-04 19:45 게재일 2024-07-05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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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학과 함께 하는 대학도시
하이델베르크 성에서 내려다 본 하이델베르크대학교 전경.

튀빙겐에 도착했을 때는 캄캄한 밤이었고 강한 비도 내렸다. 당연히 어디가 어디인지 전혀 알 수 없었으나 상관없었다. 동생이 든든하게 옆에 있었고, 여기서 4일을 머물 것이었고, 이 도시와 주변의 도시까지도 둘러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단했던지 단잠을 자고 일어난 아침, 청량한 공기가 반겼다. 낯선 듯 낯설지 않은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단정하고 조용한 동네였다. 남편은 20여 년 전 1년간 살았던 도쿄와 매우 비슷하다고 했고 나도 동의했다. 비온 뒤라 적당히 습했지만 깨끗하게 정돈된 정원이며 가로의 화단과 나무의 수종까지도 비슷하다는 생각이었다.

 

10만이 채 안되는 독일 소도시 튀빙겐

40%가 학생·관계자… 평균연령 35세

도시버스 대부분 튀빙겐大 가로 질러

대학이 중심된 ‘古都의 여유’ 부러워져

일반인 이용 하이텔베르크大 학생식당

노벨상 배출 뮌헨大 대학촌 ‘슈바빙’ 등

지방소멸 위기 지자체 벤치마킹 삼아야

뮌헨대학교 슈바빙거리에 있는 개선문 전경. 개선문 너머에 뭔헨대학교가 있다.
뮌헨대학교 슈바빙거리에 있는 개선문 전경. 개선문 너머에 뭔헨대학교가 있다.

△튀빙겐 시민들의 여유와 자긍심

아침을 먹은 후 튀빙겐 시내로 버스를 타고 갔다. 마침 금요일이라 시청 앞 광장에서 농부들이 직접 나와 채소며 육류, 소시지, 치즈 등을 파는 시장이 열린다고 했다. 직접 식사를 해먹을 작정이었다. 집 가까운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탔다. 정해진 시간에 정확히 오는 버스, 기차와 버스를 탈 수 있는 티켓을 동생이 미리 사두었고, 각자 소지하고 있었지만, 거기 머무는 동안 티켓을 지갑에서 꺼낸 적이 단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었다. 사회적 신뢰가 탄탄하다는 느낌이었다.

시내까진 약 15분 정도 걸렸다. 거기 머무는 동안 하루에도 몇 번을 버스로 다니면서 금방 길을 익히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거의 모든 버스들이 튀빙겐대학교를 가로질러 다닌다는 사실에 놀랐다. 튀빙겐은 마치 도시 전체가 대학 구내라는 느낌이었다. 버스로 대학 투어를 한다는 느낌, 대학 본부 건물 앞에 버스정류장이 있고, 코너를 돌면 도서관이 있었다. 튀빙겐대학교가 1477년 설립되었다 하니 500년이 훨씬 넘는 역사를 가진 이 대학교를 일상의 공간으로 누리는 시민들에게도 크나큰 자긍이 되리라. 동생이 가리키는 이런저런 대학 건물들이 시민들에게는 그저 내가 사는 동네일뿐이라는 건 얼마나 큰 자랑이자 축복일까. 철옹성까지는 아니지만 대학 공간이 왠지 근접하기 어려운 곳인 우리의 대학이 안쓰럽다.

강 위 다리에 버스정류장에서 내렸다. 비온 뒤라선지 누런 흙탕물이 제법 거칠게 흐르는 네카어 강이었다. 플라타너스나무가 섬의 양 옆을 에워싸며 1km나 이어지는 산책로가 있는 좁고 기다란 섬이 있었다. 강 건너 대학이나 구도심의 아름다운 집들을 올려다보면서 걷는 것으로 튀빙겐의 첫 여행이 시작되었다.

야트막한 언덕 위의 11~12세기의 건축물인 호엔튀빙겐성으로 갔다. 튀빙겐대학교 박물관으로 고대 이집트, 그리스, 로마의 유적들이 전시되어있었고, 무려 고고학 전공 박사가 상세하고 전문적인 해설을 해주었다.

고성으로 오르는 길옆 옛 집들은 식당이거나 카페였다. 더러는 학생들이 세 들어 산다고 했다. 인구 10만도 채 안 되는 작은 도시 튀빙겐, 인구의 약 25%가 학생이고 대학 관계자를 포함하면 40%를 차지한다고 했다. 시민의 평균연령이 35세 정도로 젊은 도시로 과연 대학도시였다. 튀빙겐에는 세계 여러 나라로부터 온 학생들이 많아, 시민들은 붙임성있고 개방적이라고 어떤 책에서 읽은 적이 있는데 맞는 말인 듯했다. 대학을 도시의 중심이라고 생각하고, 그곳에서 일상을 사는 시민들의 여유와 자긍심이 보여 부러웠다. 단 며칠이지만 만난 시민들은 온화하되 유쾌했으며 시장은 북적거렸으나 소란스럽지 않았다. 치즈를 팔고 사는 사람과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이 모두 웃으며 얘기하고 있었다. 단 100g 치즈를 사기 위해 10개 이상의 치즈를 맛보여주며 맛보며 일상 대화는 끝이 없었다.

뮌헨대학교 슈바빙거리에 있는 ‘걷는 사람’동상
뮌헨대학교 슈바빙거리에 있는 ‘걷는 사람’동상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서 먹은 ‘학식’

하이델베르크 역시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 하이델베르크대학교를 가진 도시이며 뛰어난 학자와 시인들이 사랑한 도시였다. 대학 도시다운 분위기를 충분히 맛볼 수 있는 도시다. 물론 고성과 박물관 등의 볼거리도 많으며 영화 ‘황태자의 첫사랑’의 배경으로 미국에서 유명세를 타면서 더욱더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었다.

하이델베르크엘 도착하면 가장 먼저 성에 올라가는 리프트를 줄지어 기다려 타고 올라간다. 성에서 내려다본 구시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하이델베르크대학을 조망하기에도 딱 좋은 곳이기 때문이다. 성을 둘러보는 데만 2시간 이상이 걸릴 정도로 볼거리도 많다. 성내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와인술통, 약사박물관도 있다. 전쟁과 낙뢰, 화재로 파괴된 성을 일부 복원했고, 지금도 복원 중이지만, 복원을 보류한 채 그대로 방치해 둔 고성의 전경이 무척 인상적이어서 오랫동안 머물렀다.

시내로 내려오자마자 하이델베르크대학교로 갔다. 점심을 먹기 위해서였다. 하이델베르크대학교의 학생식당(멘자·Mensa)은 홀은 크고 값은 싸서 학생들에겐 성지같은 곳인데, 일반인도 식사가 가능하다고 했다. 학생보다는 비싼 값이지만 바깥 어떤 식당보다도 저렴한 가격으로 먹을 수 있단다. 뷔페 형식으로 원하는 음식을 담으면 무게로 계산을 했다. 홀 크기도 어마어마해서 빈자리가 있지만 바깥에도 식탁이 많았다. 학생들 틈에 앉아 여유롭게 ‘학식’을 즐겼다. 우리나라의 대학 중에도 일반인이 이용할 수 있도록 허용된 학생식당이 있다고 들은 적이 있다. 포스텍도 예전에는 시민 접근이 가능한 카페테리아가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다니 그 이유가 궁금하다.

학생식당 바로 옆은 하이델베르크 인문대 건물이었고, 이곳저곳 어슬렁거리면서 대학 구경을 했다. 이 대학 역시 캠퍼스와 시내의 구분이 없어 도서관을 찾으러 갔다가 카페를 마주치고, 학교 뒤쪽을 나오면 유명한 크리스마스마켓을 만난다. 학교 건물을 쭉 따라 독일에서 가장 긴 골목을 거닐면서 곳곳에 표지된 유명인들의 흔적을 발견하는 기쁨도 누릴 수 있다. 괴테도 헤겔도 이 골목에서 머물며 이 길을 걸었다.

튀빙겐대학교 본부 앞을 다니는 시내버스. 바로 앞에 버스정류장이 있다.
튀빙겐대학교 본부 앞을 다니는 시내버스. 바로 앞에 버스정류장이 있다.

△뮌헨대학교 부근 슈바빙거리

뮌헨대학교는 독일에서 두 번째로 큰 대학교로 노벨상 수상자를 43명이나 배출한 공립연구 중심종합대학교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뮌헨대학교는 슈바빙으로 먼저 알려졌다. 뮌헨대학교를 잠시 유학했던 수필가 전혜린 덕분이었다. 동생은 우리의 요구대로 뮌헨대 근처 레오폴드거리부근의 숙소를 맞춤맞게 찾았다. 숙소 바로 앞의 영국정원, 슈바빙거리를 완벽하게 누렸다. 슈바빙은 우리나라의 대학촌 정도라 생각하면 된다. 대학생들이 즐길 만한 장소가 즐비했다. 실제 거리에서 만난 시민과 잠시 얘기 나눈 동생은 이분도 맥주 마시고 싶으면 슈바빙으로 간다고 알려주었다. 뮌헨의 마지막 밤엔 우리도 슈바빙의 한 호프집에서 맥주를 즐겼다.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우리나라 지방대학을 생각한다

대학을 가진 도시는 축복이다. 그 대학이 크든 작든 중요하지 않고, 대학의 유명세도 그닥 상관없다. 내가 사는 도시에 대학이 있어 그저 자랑스러울 뿐이다. 독일의 대학도시에서 그런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그러면서 떠올린 우리의 현실은 뼈아프다. 지방은 공동화되어가고, 지방의 대학 또한 고사 직전이다. 지방의 광역정부와 기초단체도 안간힘을 쓰지만 ‘서울로 서울로’의 이동 욕구, 진학 욕구는 가속화되고 있다. 인구 10만도 안되는 도시에 500년이 넘는 역사의 대학이 있고, 시민과 함께 하는 학생식당이 존재하고, 시민들이 즐겨 찾는 대학거리를 왜 우리는 만들 수 없을까.

글·사진/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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