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기획ㆍ특집

배용일 향토사학자

"포항의 역사·문화 연구는 포항의 정신문화, 즉 포항의 역사·문화의 뿌리를 규명, 포항의 정체성을 정립해 유구한 포항의 역사문화를 떳떳하게 선양할 수 있는 시민의 자부심과 긍지를 앙양하기 위해서 입니다. 안중근 의사는 `역사는 조국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이끌어 간다`고 했습니다. 말하자면 포항 미래의 밝은 역사는 포항을 사랑할 수 있는 자부심과 긍지가 있는 시민들만이 이끌어 간다는 가르침입니다."22일 포항시 북구 흥해읍에 위치한 포항대학 캠퍼스성실관 203호에 자리잡은 연구실에서 향토사학자 배용일(68·사진) 포항대학 초빙교수를 만났다. `일월(日月)정신`을 `포항정신`으로 최초로 주장한 그는 냉철한 `역사학자`라기보다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지닌 `맏형` 같은 인상을 풍겼다. 그는 인터뷰 내내 시종 온화한 미소를 지으면서도 포항시의 정체성과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한 문화행정과 시민의식 확대, 기관단체 간 융합교육 강화 등에 밴 자신의 철학을 힘주어 강조했다. 1941년 포항에서 태어난 그는 포항고, 고려대 교육대학원 역사교육과를 졸업한 뒤 `박은식과 신채호 사상의 비교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고향인 포항에 정착해 학문적이고 체계적인 포항향토사 연구로 포항의 정체성을 정립해 이를 대내외에 알리고 시민의 역사·문화의식을 고양시키며 시정발전을 위한 여러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포항의 선진화에 앞장서 왔다. 1980년 포항시 민방위강사가 되어 국민정신교육분야를 강의할 때 포항의 역사를 먼저 알아야 되겠다는 마음을 가졌다는 그는 그러던 중 1984년 `포항시사` 자료를 모으면서 `포항의 정체성 찾기`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했다. 1987년 시작된 `포항시사`와 `영일군사`등 포항향토사와 관련한 저술 활동(7권)뿐 만 아니라 `포항지역 정신문화의 전통성과 현대적 발전방안`등 일반 논문도 수십편 저술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보이면서 2005 포항시민상 수상, 경북도문화재도록 편집위원, 포항시사 편집위원장, 포항정신문화연구회 부위원장 등의 활동을 통해 향토사를 정립하는 데 앞장서 왔다. 포항의 정신을 정립하는 데 반세기의 시간이 흘렀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연오랑 세오녀`설화를 연구해 지난해는 이를 `연오랑 세오녀 신화`로 주장하면서 이를 포항문화의 뿌리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를 포항정신의 고향이며 포항문화의 원류로 주장하고 있다.문화 행정·시민의식 확대 등 역사 바로 세우기 앞장`연오랑 세오녀`의 일월정신… 영일만 발전의 원동력“깊고 폭넓은 연구로 후학의 길 밝게 열어주고 싶어” 연오랑세오녀의 일월사상과 정신은 한국 선사문화의 원류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족오태양숭배사상과 건국이념인 천손사상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인류 출현 이후 일월(태양)은 인간 신앙 최고의 숭배대상이었습니다. 일월은 온누리를 밝히는, 모든 생명을 생동케하고 이롭게 하는 광명정대(光明正大)사상의 주체로서 홍익·풍요·희망·용기·정열·개척·화합의 진취적 삶을 이루게 하는 최고의 정신적 가치를 생성하는 실체입니다. 연오랑세오녀 일월정신은 영일만 포항의 천혜적 지리환경과 유구한 역사적 특성을 함축하며 포항발전의 원동력이 되어 왔다는 사실입니다. 구체적으로 이러한 광명정대의 일월정신은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연오랑세오녀 일월신화를 비롯하여 해맞이의 성지, 국토방위의 호국정신, 포은 정몽주와 농고 최세윤의 충절정신, 제민창 포항창진 설치와 포항 5도의 개척정신, 동학사상의 요람, 학도의용군의 자유·민주 수호정신, 포스코의 영일만신화 창출, 새마을운동 의 산실, 대통령을 배출한 위대한 포항정신으로 승화되어 왔습니다.” 그는 그동안 포항이 경주의 접경 배후지역으로 광북 후 현대에는 한국근대화의 핵심도시로서 국가 경제발전의 중추적 역할을 해오는 동안 포항은 포항문화의 정체성에 대한 관심과 연구에 소홀해왔던 것이 가장 아쉽다고 했다. 이러한 경향은 포항의 대학에 인문과 예술 계통의 학과가 전무한 결과까지 초래했다는 것이다. 이에 그는 시민과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포항문화원, 여성문화회관, 문화해설사 양성과정, 교사직무연수 등에서 `포항문화의 뿌리, 연오랑 세오녀 일월신화`라는 제목의 포항역사와 전통의 강의를 통해 향토에 대한 자긍심과 포항시민으로서의 자부심을 확산시켰다. “포항의 역사·문화 연구는 포항의 정신문화, 즉 포항의 역사·문화의 뿌리를 규명, 포항의 정체성을 정립해 유구한 포항의 역사문화를 떳떳하게 선양할 수 있는 시민의 자부심과 긍지를 앙양하기 위해서 입니다. 안중근 의사는 `역사는 조국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이끌어 간다`고 했습니다. 말하자면 포항 미래의 밝은 역사는 포항을 사랑할 수 있는 자부심과 긍지가 있는 시민들만이 이끌어 간다는 가르침입니다.” 포항을 `연오랑 세오녀의 고장`이라는 자부심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한 그의 열정은 또다시 불붙었다. 지난 5월 포항시 북구 흥해읍 학성리 도로개설 공사현장에서 발견된 포항 중성리 신라비와 `사랑에 빠진것`이다. 최근 중성리 신라비는 국립문화재연구소로부터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신라 비석으로 판명됐고 그는 포항시사 집필위원들과 함께 이 비문을 최초로 판독했다. 비문을 판독한 그는 발견된 비석의 서체와 내용이 국보인 포항 냉수리 신라비와 비슷한 점으로 미뤄 제작시기를 6세기경으로 추정했다. 오는 10월 포항시와 한국고대사연구회가 주관하는 이 비석의 가치를 조명하는 학술대회에서 그는 `포항 중성리 신라비의 발견경위와 고대의 포항과 흥해`라는 주제 발표를 한다.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비석의 발견 경위 보고와 그 발견 지역인 포항 흥해의 역사 및 고고학적 고찰에 이어 중성리비가 신라 금석학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비문의 어문학적 검토, 비문 내용과 건립연대, 비문의 서체와 고신라 문자생활과 같은 개별 발표와 이에 대한 개별 및 종합토론이 있을 예정입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고대 포항이 역사적으로 어떤 곳인지 재조명 하게 될 것 입니다. 특히 흥해의 발전 양상을 찾아보고 영일이 근기국 시대의 소국이었던 것에 비해 흥해는 그에 못지 않은 진한의 한 소국이었음을 유추해 볼 것 입니다.” 이런 `빡빡한`논문 활동에도 `정신문화`발전에 대한 진한 애정은 그의 가슴 한 켠에 여전히 깊이 남아있었다. “포항의 정체성과 포항을 상징하는 조형물이나 큰 사업은 정기적인 계획과 연구를 통해서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후손들을 위해 좋은 자리는 어느정도 남겨두는 지혜를 가질 때 앞날의 시행착오를 줄이고 도시문화 전반과 조화할 수 있는 가장 포항적인 문화유물로 세계화에 나설 수 있을 것입니다. 무형의 정신문화운동은 오랜시간이 걸리더라도 시민자발적인 운동이 될 수 있도록 행정적인 뒷받침이 꾸준히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또한 나의 마지막 염원이자 앞으로 포항이 이루어야 할 가장 중차대한 다급한 일은 포항의 대학에 인문계통과 예술계통 학과를 개설하는 일입니다. 진정으로 포항이 21세기 문화시대에 세계 일류도시가 되는 것이 꿈과 희망이라면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온 시민이 머리를 맞대어 고뇌해야 합니다. 포항문화의 정체적 전통을 잇고 계발해 나갈 인재를 키우는 일은 시급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우리 모두가 그동안 경제성장의 가치를 우선과제로 두고 앞만 보고 달려오는 동안 묵묵히 지역의 역사·교육·문화 연구라는 한 우물을 고집해 시민들이 고장의 역사와 문화의 본질을 정확히 이해해 향토애와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한 `자랑스런 포항인`이자 `진정한 포항시민`이 아닐까. “송구스러운 말씀일 따름입니다. 전혀 그런 생각하고 연구생활 한 것 아니며, 내가 포항을 위해 제일 잘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전공을 살려 힘닿는데까지 노력해 왔을 뿐입니다. 보다 앞서 씨를 뿌린 분들에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광복후 대표적인 인사로는 교육의 하태환 선생님, 역사에 박일천 선생님, 문화에 이명석 선생님을 꼽을 수 있고 현재까지 꾸준히 활동해오신 대표적 원로로서는 신상률 경북예총 회장님, 서상은 호미수회장님을 비롯해 여러 중진들이 있습니다. 나는 그분들이 밟던 길을 나의 전공을 살려 보다 깊고 폭넓게 가꾸어 후학들의 길을 더욱 밝게 열어주고 싶을 뿐 입니다 ” 이는 `지역 문화계에서 오늘의 포항정신문화를 발전시켜 놓은 전위적인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는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09-09-25

최인준 포항테크노파크 원장

"포항은 지난 1970년대 포항제철이라는 기업을 만들면서 국가경제 발전과 산업화의 기적을 이루어낸 `유명한 곳`이죠. 산업발전도, 어떤 산업 위주인가 따라 달라질 것이다. 예로, 중공업 위주라면, 고용효과는 크지만 환경이나 노사 문제 등이 많이 생길 것입니다. IT나 서비스 산업 위주라면 고용효과가 상대적으로 작지만 환경이나 노사 문제는 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의 시대 및 국제관계 차원의 환경도 고려되어야 한다. 30년 전에는 소위 압축 성장을 통해 파이를 키우기 위해, 중공업과 수출 쪽에 무게를 두었다면, 이제는 IT나 지식 기반 산업 육성을 통해 국제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면서도,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산업 전략이 필요하다. 특히, 양극화 문제는 우리가 선진 산업 국가로 진입하면서 계속 안고 가야할 문제일 것입니다." 산업 발전과 경제 활성화를 일구어내는 것은 어렵다. 더우기 지역에 해당하는 산업 기술 경쟁력을 강화하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것은 더욱 복잡하다. 그런데 우리에게 어렵게만 느껴지는 산업 발전과 경제활성화와 `맞선`을 주선하는 사람이 있다. 지역의 산업 발전과 경제 활성화와 사랑에 빠진 최인준(52) 포항테크노파크(이하 포항TP) 원장을 만났다. 포항TP의 경영목표에 대해 묻자 최 원장은 “포항·환동해권 지식자산의 성공적 사업화 및 지역에 재투자 통한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했다. 또 그는 “포항 및 환동해권을 국제적 첨단 과학 클러스터(Cluster)로 발전시키는 싱크 탱크(Think Tank) 역할 및 지역사회 혁신 거점 역할을 하는 것과 지속 가능한 경쟁력 확보”라고 말했다. 지난 5월 원장으로 취임하면서 그는 포항TP의 자원을 활용해 성공적인 기술혁신형 벤처기업의 지속적 육성과 포항시와 환동해권의 산업과 지역 발전 전략을 수립하는 연구소를 설립하여 지역 발전에 기여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테크노파크를 말 그대로 기술이 마음껏 활개치는 곳이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포항TP는 일정한 공간을 만들어 놓고, 포스텍, 포항산업과학연구원, 포항가속기연구소, 포항나노기술집적센터, 생명공학연구센터, 지능로봇연구소 등 우수한 과학기술 인프라에서 나오는 연구개발의 결과가 사업화되는 것이 중요한데, 기술의 사업화와 관련하여 포항TP가 연결고리 역할을 담당한다고 보면 됩니다. 또한 첨단기술을 갖고 있는 기업들을 집적시켜 다양한 지원을 받으면서 성공하는 기업을 배출하는 곳입니다. 처음에는 산·학·연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기술을 가지고 있는 기업들을 지원하고 육성하는 단순 기업지원기관으로 출발했으나, 지금은 지역의 각종 사업을 연계·조정·통합하는 지역거점기관으로의 역할이 강화되었습니다. 2000년 부지조성 공사를 시작으로 본부동, 제1,2,3벤처동과 입주기업 편의시설인 테크노빌이 준공되었고, 제4벤처동이 올 12월에 완공예정이고, 특화센터인 포항바이오정보지원센터가 내년 7월경에 완공될 계획입니다. 2004년~2006년 3년 연속 지식경제부 평가에서 최우수 테크노파크라고 평가를 받은 바가 있고, 삼성경제연구소는 포항테크노파크가 지식경영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현재 50개의 기업이 입주해 있으며, 500여명의 임직원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으며, 입주기업인 제넥신(주)는 코스탁 IPO 예정기업으로 9월 상장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그동안 기업투자설명회(IR)를 통해 70억원의 투·융자유치와 100억원의 연구개발 자금을 지원했습니다. 그리고 작년에는 글로벌 기업인 독일의 지멘스(초음파의료기기 분야)를 유치하여 포항의 신성장산업 육성의 기반을 조성하였고, 대구경북의 첨단의료복합단지의 유치에도 크게 기여했습니다.” 포항TP는 현재 48개 기업이 입주해 지난해 1천400억원 매출을 냈다. 2008년 12월말 현재 전국TP의 평균 입주업체수는 44개이고, 포항TP를 포함한 후발 TP들은 32개 정도다. 포항TP외는 광역권 TP이기 때문에 도시규모에 비해 많은 편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이에 대해 포항TP의 입주업체의 50% 이상이 우리 지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지역밀착형기업이라는 점 을 강조하고 싶다고 했다. “TP역량을 사업(내부)역량(연구개발지원, 교육훈련, 기술이전, 수탁사업 수행 등)과 지역(외부)역량(연구개발역량, 산업역량, 지역경제현황)을 고려한 테크노파크 지표평가 결과(2007, ITEP), 수도권 지역인 경기TP 다음으로 우수한 내부역량과 외부환경 조건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습니다. 이 자료는 앞으로 포항테크노파크가 성장잠재력이 매우 큰 테크노파크임을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 포항TP를 다른 지자체의 테크노파크와 비교하면 성과는 어떤지 물었다. “포항TP는 여건상 시험생산 정도까지만 가능하며, 대량생산을 위한 산업집적지가 조성되어야 함. 따라서 대량생산을 필요로 하는 업체들이 포항테크노파크 2단지 등 산업단지에서 본격적인 생산을 할 수 있는 공간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포항테크노파크 2단지 건설은 특수목적법인인 (주)포항테크노밸리에서 포항시와 포스코 건설, 금융기관 등이 참여하는 제3섹터 방식으로 개발 할 예정에 있으며, 포항테크노파크에서도 단지개발에 큰 기대를 하고 있으나, 이 사업에 직접적으로 참여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여전히 포항은 포항제철이 일구어낸 `국가경제 발전과 산업화의 기적`은 다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는 없다. “포항은 지난 1970년대 포항제철이라는 기업을 만들면서 국가경제 발전과 산업화의 기적을 이루어낸 `유명한 곳`이죠. 산업발전도, 어떤 산업 위주인가 따라 달라질 것이다. 예로, 중공업 위주라면, 고용효과는 크지만 환경이나 노사 문제 등이 많이 생길 것입니다. IT나 서비스 산업 위주라면 고용효과가 상대적으로 작지만 환경이나 노사 문제는 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의 시대 및 국제관계 차원의 환경도 고려되어야 한다. 30년 전에는 소위 압축 성장을 통해 파이를 키우기 위해, 중공업과 수출 쪽에 무게를 두었다면, 이제는 IT나 지식 기반 산업 육성을 통해 국제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면서도,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산업 전략이 필요하다. 특히, 양극화 문제는 우리가 선진 산업 국가로 진입하면서 계속 안고 가야할 문제일 것입니다.” 그가 생각하는 일류도시란 어떤 곳일까. “일류도시라면, 뉴욕이나 도쿄 등을 생각할 지도 모릅니다. 포항이 닮아야 할 도시는 미국의 팔로알토(Silicon valley)나 보스톤이라고 생각합니다. 초강대국인 미국의 두뇌 집단인 Stanford와 Harvard, MIT와 다양한 연구소가 있고, 첨단 산업 분야의 신생기업들의 모태 역할을 하고 있는 곳입니다. 포항이 두 도시와 비슷한 환경과 역량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네덜란드의 아인트호벤도 비슷한 측면에서 꼽고 싶습니다.” 그는 포항이 몇몇 전제 조건이 만족된다면 빠른 시일 안에 선진도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 1991년 포항공대 산업경영공학과 교수로 부임하면서 포항에서 살고 있다면서 “1) 리더십과 의지, 2) 과감한 투자, 3) 도전정신, 창의성, 실력 있는 인재, 4) 자금, 그리고 무엇보다 5) 전략과 정교한 구현 계획 등의 전제조건이 만족되면 포항은 빠른 시일 안에세계 일류도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와 더불어 포항 지역이 진정 선진도시로 발전하려면 지역발전과 산업 발전 전략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과정에서 평가하고 모니터링 하는 기관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교수로, 산업경영가로 살고 있다. 어떤 일이 더 좋으며 보람이 있을까. “어떤 것이 더 좋고 나쁘다는 시각은 없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과 내가 해야할 것 사이의 균형 잡는 문제로 보고 있습니다. 교수로서 이루고 싶은 것이 아직 있습니다. 하지만, 포항TP 원장으로 해야 할 일의 중요성도 알기 때문에 자리를 맡은 것입니다. 10년 전에 제자들과 창업을 한 회사가 상장했습니다. 그때는 제자들을 위해서 창업을 했다면, 지금은 내 자식 또래의 젊은이들이 꿈을 가질 수 있는 기업들을 키우고 지원하기 위해 이일을 맡았습니다.” 산업발전의 긍정적, 부정적 영향을 부탁했다. “예로, 중공업 위주라면, 고용효과는 크지만 환경이나 노사 문제 등이 많이 생길 것이다. IT나 서비스 산업 위주라면 고용효과가 상대적으로 작지만 환경이나 노사 문제는 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의 시대 및 국제관계 차원의 환경도 고려되어야 합니다. 30년 전에는 소위 압축 성장을 통해 파이를 키우기 위해, 중공업과 수출 쪽에 무게를 두었다면, 이제는 IT나 지식 기반 산업 육성을 통해 국제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면서도,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산업 전략이 필요합니다. 특히, 양극화 문제는 우리가 선진 산업 국가로 진입하면서 계속 안고 가야할 문제일 것입니다.” 최 원장은 지난 2006년 `지식경영시스템과 비즈니스 프로세스 경영시스템의 통합구조` 논문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힌 논문으로 선정된 바 있다. 원장 취임전의 꿈은 이 연구 분야에서 세계적인 연구소를 만들어 이론 연구 뿐 아니라 기업에 도움이 되는 활동을 하는 것이었다. 지금도 이 꿈을 위해, 시간을 내서 학생들과 연구하고 있다.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나 희망을 물었다. “포항TP원장으로는 제2의 박태준 회장과 같은 기업인을 키우는 것입니다. 교수로서 꿈은 비즈니스 프로세스와 조직 최적 설계 분야에서 세계적인 연구소를 만들어 이론 연구 뿐 아니라 기업에 도움이 되는 활동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가난하고 힘들게 사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부탁했다. 그러자 최 원장은 어릴 적 자신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줬다는 헤르만 헤세의 `지성과 사랑`과 `싯다르타`, 그리고 최근에 감명깊게 읽었다는 돌프 얀센의 `Dream Society`이야기를 시작했다. “진부하게 들리겠지만, 꿈을 꾸라는 거다 (혹은 희망을 가지라). 아니면 꿈이나 희망을 포기하지 말라고 하고 싶습니다. 어려운 사람들보다는 여유 있는 사람들에게,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책임을 강조하고 싶습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09-09-11

박창원 민속학자

지난 2003년 봄, 아직도 할무당 신당에 제사를 모시는지 궁굼해 이 마을에 갔더니 신당은 건재했고 신당을 찾는 사람은 극히 적지만 제사는 명맥을 잇고 있었지요. 이 신당이 허물어지거나 할무당 신앙이 소멸되기 전에 실태조사라도 해 두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백계당에 대한 연구에 착수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예로부터 끔찍이 산신을 섬겨왔고 어느 산에든 산신이 있다고 믿었기에 아직도 산에 시신을 매장하거나 조상 묘에 제사를 지낼 때에는 산신제 부터 지내는 게 순서처럼 돼 있지요. 산신 중에서도 이름 난 산신이 더러 있습니다. 삼국유사에는 단군왕검이 조선을 건국하여 다스리다가 아사달에서 산신이 되었다 하고, 석탈해왕이 죽어 토함산 산신이 되었다 하며, 박혁거세 왕비인 알영부인은 선도산 성모(聖母)가 되었다 합니다. 포항시 북구 송라면 대전3리 산령전 마을에는 `할무당 할매`산신을 모신 신당이 있다. 산령전 마을에는 동해안 여느 마을에서 처럼 마을의 수호신을 모신 동제당이 있는데 이 마을엔 동제당 외에 백계당(白啓堂)이란 현판이 붙은 산신당이 있다. 여기에 지리산 산신 성모처럼 돌로 조각한 산신을 모셔 놓고 있다. 특히 할무당이란 이름을 가진 이곳 산신을 위해 인근 14개 마을 사람들이 계를 조직해 운영하고 있는데 이는 민속학자로부터 주목할 만한 일이다. 향토 민속학자 박창원(53·사진)는 최근 이곳에 대한 연구를 한 `내연산 산령전 마을 백계당(白啓堂) 연구`라는 주제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동안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민간신앙이라고 여겼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한 채 21년 가량이 흐른 후에서야 논문을 펴내게 됐다. “지난 2003년 봄, 아직도 할무당 신당에 제사를 모시는지 궁굼해 이 마을에 갔더니 신당은 건재했고 신당을 찾는 사람은 극히 적지만 제사는 명맥을 잇고 있었지요. 이 신당이 허물어지거나 할무당 신앙이 소멸되기 전에 실태조사라도 해 두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백계당에 대한 연구에 착수했습니다.” 이 논문은 내연산 산신 할무당을 모신 신당인 백계당에 대한 연구를 목적으로 이를 위해 현지 조사 자료와 관련 문헌을 통해 신당의 역사, 신화와 신의 영험, 제의의 진행과정 등에 대해 밝히고자 무진 애를 쓰고 있다. 백계당은 포항의 명산인 내연산 산신을 모신 신당이고 포항지역의 그 어떤 신당보다도 그 연원이 오래고 역사적 기록 자료가 풍부하기 때문에 민속적, 문화적 가치가 놓은 포항의 정신문화유산이라는 것이다. 또한 의 모습을 형상화한 석상이 보존되고 있고, 신의 내력담이 담긴 신화가 존재하며, 많은 사람들이 영검하다고 믿고 있다. 또한 신앙의 범위가 넓으며, 계 조직에 의해 운영되어 온 포항의 대표적인 산신 숭봉처이다. 하지만 마땅히 보존되어야 할 민속자료이지만 현실은 매우 비관적이라는 것. 산간오지인 신령전 마을의 인구가 급감해 언제 마을이 없어질 지 모르는 상황이며 현재 백계당을 유지, 운영하고 있는 주체도 고령화 되어 제의가 언제 중단될 지 모르는 형편에 놓여 있어 문화재로 지정해 백계당을 보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예로부터 끔찍이 산신을 섬겨왔고 어느 산에든 산신이 있다고 믿었기에 아직도 산에 시신을 매장하거나 조상 묘에 제사를 지낼 때에는 산신제 부터 지내는 게 순서처럼 돼 있지요. 산신 중에서도 이름 난 산신이 더러 있습니다. 삼국유사에는 단군왕검이 조선을 건국하여 다스리다가 아사달에서 산신이 되었다 하고, 석탈해왕이 죽어 토함산 산신이 되었다 하며, 박혁거세 왕비인 알영부인은 선도산 성모(聖母)가 되었다 합니다.” 현지조사를 생명으로 하는 민속학 전공자인 그에 의하면 백계당은 그 역사나 유래, 자료의 충실도, 주변 지역에 끼친 문화적 영향, 계에 의해 운영돼온 민간 신앙으로서의 학술적 가치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문화재로서의 손색이 없다. 따라서 신당과 신상 등을 빠른 시일내에 문화재로 지정해 체계적으로 보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민간신앙을 연구한 지 올해로 25년째다. “어촌이 있는 해안 지역은 내륙지방에 비해 민간신앙이 강하게 전승되는 곳인데, 역설적이긴 하지만 포항의 전통문화 중 조사·연구가 가장 안 돼 있는 영역이 민간신앙이라는 점, 그리고 연구 대상이 무궁무진하다는 점 때문에 이 일을 시작했다. 민간신앙은 인간의 정신세계를 탐구하는 영역이어서 재미가 있습니다.” 1988년에 이 신당을 답사한 이후 관심을 갖고 자료를 모으고 연구를 해 온 끝에 이제야 논문을 완성하게 됐다는 그는 백계당 외에도 민간신앙과 관련된 것 중 재미있는 신화를 전하고 있거나 연구 자료가 되는 것들이 더러 있다고 했다. “마을 앞 해변 도로에 설치된 장기면 영암3리 골목할매 제당, 거대한 고인돌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기계면 문성리 제당, 천제단이라는 명칭을 갖고 있는 죽장면 두마리 제당, 거북신을 모시고 있는 청하면 덕성리 제당 같은 것은 보존할 필요가 있다. 보존 가치가 있는 동제당은 행정기관에서 지원을 해서라도 보존해야 합니다.” 하지만 포항지역에서는 아직 시행되지 않고 있다며 타 지역이나 외국의 사례를 소개했다.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에 있는 해신당 제당은 특특한 신앙행위로 인해 전국적인 관광명소가 돼 있습니다. 민간신앙도 충분히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사례이지요.” 그는 민속학자로, 교육자로 살고 있다. “민속학자나 교육자 중 어떤 일이 더 좋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다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육자는 나의 `생업`이고, 민속학은 여가를 이용한 `부업`이라 할 만한데, 민속학은 하고 싶은 일이니 이게 재미는 더 있다고 본다. 스트레스가 쌓일 때 카메라 가방 메고 이 마을, 저 마을 다니면서 민속조사를 하고 있으면 행복합니다.” 그는 지난 2006년에는 경북매일신문에 `포항의 역사이야기`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기도 했다. “`포항의 역사 이야기`라는 타이틀이지만 저는 한 걸음 비켜나 `포항의 민속 이야기`를 썼습니다. 내연산 할무당 할매, 장기 영암3리 골목할매, 두마리 천제단 같은 민간신앙 이야기, 그리고 월월이청청, 죽장지게상여놀이, 구진앉은줄다리기, 모포줄다리기 같은 민속놀이 이야기를 썼지요. 민속에 대한 종전의 연구 성과를 시민들에게 알리는 기회가 됐다고 봅니다.” 민속신앙을 연구하는 데에는 동대해문화연구소 활동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 2004년부터 동대해문화연구소 활동을 하고 있는 그는 `소위 명풍수 성지와 포항, `내연산 폭포 주변 암벽에 새겨진 인명 연구`, `흥해의 기인 권달삼 전설 연구`, `내연산 산령전 마을 백계당 연구` 등 4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위원 신분이니 부지런히 연구하고 논문 쓰는 게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수필가로서도 활동하고 있는 그는 “수필가로서 포항이 낳은 위대한 수필가 한흑구 선생을 닮고 싶다”는 바람도 있다. 고령 출신인 그는 영남대 국문과와 한국교원대 대학원에서 국어교육학을 졸업했다. 1982년 9월부터 포항시 청하중학교에서 국어교사로 재직하다 2005년 9월부터 교감으로 있다. 한동대 평생교육원 문예창작교실, 선린대 플라워디자인과, 포항여성문화회관 문화유산해설사, 포항KYC 역사문화길라잡이, 포항생명의숲 숲해설사, 포항문예아카데미 수필 등 대학과 사회교육기관에서 강의를 하거나 출강도 했다. 1992년 `포항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활동했으며, 지난해 4월 `수필문학`추천 완료됐고, 포항문인협회, 경북문인협회, 보리수필문학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한국민속학회 회원, 월곡고전문학연구회 회원, 동대해문화연구소 연구위원, 포항시정신문화발전연구위원, 포항시사편찬위원으로 민속학과 향토사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 `영일군사`, `포항시사`(1999) 편찬위원으로서 집필에 참여했으며 `포항지역 구전민요`, `아름다운 포항 유서깊은 마을`등의 저서가 있다. 그는 들판을 산책하면서, 또는 산에 오르면서 자연과 대화하는 걸 즐기는 `청정자유인`이다. “들판에는 많은 풀과 꽃이 있고, 산에는 또 많은 나무와 동물이 있습니다. 그 속에서 그들의 이름을 불러 주고 사색에 잠길 때 삶의 의욕이 샘솟습니다.” 평소 취미도 여가가 생기면 곧잘 시골 구석구석으로 민속조사를 나가는 그는 “특이한 민속을 발견했을 때 희열을 느끼고 현장에서 조사한 자료를 정리하고, 관련 문헌을 뒤져 논문을 쓴다고 몰입할 때 성취감을 느낀다”고 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건 기분 좋은 일입니다. 오래 전에 읽은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가 최근엔 강한 인상으로 남습니다. 흥미진진하기도 하려니와 민족을 사랑하는 선생의 뜨거운 열정이 가슴을 울리는 것 같습니다. 최근엔 유홍준 교수의 `완당평전`을 읽었는데 완당 선생의 치열한 삶과 예술혼이 폐부 깊숙이 들어옵니다.” 지금은 포항시사편찬위원으로 올해 시승격 60주년기념사업으로 발간 예정인 `포항시사`집필에 매진하고 있다는 그. 포항문인협회 및 경북문인협회 회원으로서, 보리수필문학회 회원으로서 좋은 작품 쓰는 일도 그 앞에 놓인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백계당 산신당을 빠른 시일내에 경북도 지방문화재로 등록 신청하고 지금까지 조사·연구한 자료를 바탕으로 포항의 민속을 주제로 한 단행본을 출간하는 일은 시간을 늦출 수 없다. 자신이 재직하고 있는 청하중학교가 최근에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전원학교`로 지정받았는데 앞으로 교과부의 재정지원을 받는 포항 유일의 전원학교로서의 성공모델을 창출하고 싶어하는 `욕심많은 이 시대의 참일꾼`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09-08-14

김갑수 포항시립미술관장

"생명은 강으로 흐르고 문화는 길로 흐릅니다. 죽음으로 삶을 밝히는 영혼의 강 갠지즈나 실크로드를 보면 그렇습니다. 둘은 닮았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개인에 미쳐 있지만 길은 더불어 미치는 삶의 공적 공간입니다. 미술관은 소비적인 `돈 먹는 하마`가 아니라 더불어 세상을 가치롭게 만드는 창조의 원천입니다. 100년이 가도 그 감동이 깊어가는 미술의 집을 짓고 싶습니다" 오는 11월이면 포항시 북구 환호동 환호해맞이공원에 포항시립미술관이 문을 연다. 포항예술문화연구소 초대소장으로 10년동안 포항예술문화를 도맡아 꾸려왔던 김갑수(53·사진) 포항시립미술관장이 초대 관장을 맡아 포항의 새로운 명소로 꾸밀 경북 최초의 시립미술관이다. “21세기의 미술관은 시민들이 슈퍼마켓처럼 친숙하게 다가설 수 있는 문화 공간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즐겁게 참여하고 소비할 수 있는 미술관 프로그램을 연구·개발해야 겠지요.” 경북 최초의 시립미술관 건립의 중책을 맡은 김 관장은 포항에서 태어나 유년시절부터 그림그리기를 좋아해 미술대학을 진학하면서부터 줄곧 예술가의 길을 걸어 왔다. “어렸을적 친구들과 땅바닥에 나뭇가지로 이런저런 그림을 그리며 놀곤 했습니다. 모래나 땅바닥에 그어진 선들은 먼지바람과 함께 사라지기 일쑤였지만 해가는 줄 모르고 땅그림 그리기를 했던 것 같아요. 어느덧 쉰을 훌쩍 넘겼지만 돌이켜 보면 그때 그렸던 그림들이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그림이었던 것 같습니다.” 김 관장은 홍익대 대학원과 영국 런던 국립 예술대 대학원에서 순수예술을 공부한 뒤 지난 1999년 고향인 포항에 정착했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그해 포항예술문화연구소를 설립했다. 초대 소장으로 부임한 그는 지역자치시대의 포항문화의 뿌리와 유·무형의 예술인자를 발굴해 지역문화를 브랜드화 하는데 앞장 서왔다. 매해 기대 이상의 호평을 받으며 전국적인 행사로 거듭나고 있는 포항아트페스티벌은 포항의 정체성인 `빛`을 재발견하는 예술축제로 회화와 조각, 사진, 문학, 국악, 연극 등 여러 장르의 예술을 종합한 국내 유일의 아트페스티벌이다. 지금은 연구소 이사장에서 물러나 미술관 건립에 전념하고 있지만 지역문화와 예술에 대한 창조정신은 여전한 듯 했다. “학문에서도 분야간의 경계가 무너지고 서로 융합하는 시대입니다. 예술 또한 마찬가지지요. 장르와 장르간의 소통과 융합이 가속화되고 예술에서 지역성은 더욱 강조 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포항시립미술관장 취임 이후 하루도 편히 잠을 잘 수 없다는 그. 오는 11월 하순 개관을 앞두고 여러가지 개관 준비 사업들을 펼쳐놓았다. 시민들을 대상으로 지역미술사 자료를 수집하고 깊이 있는 안목을 제공하기 위한 무료 미술교양강좌를 연다. “산일된 과거의 미술자료를 수집해 포항미술사를 정립하는 연구 자료로 활용, 보존할 계획입니다. 또한 `깊이 있는 안목의 시작`이란 주제로 한 미술교양강좌는 시민과 함께하는 미술관으로서의 첫걸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누구보다 포항시립미술관에 대한 애착이 많다. 무엇보다 우리지역에도 미술관 시대가 열린다는 사실이 기쁘다고 했다. “지속 가능한 활기찬 미래도시를 만들려면 우리지역의 장점인 경제와 산업기술을 바탕으로 문화콘텐츠를 개발하고 문화예술의 하드웨어를 단단히 구축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유럽을 비롯한 선진국의 사례를 예로 들었다. “여행하다보면 웬만한 규모의 도시에는 으레 도서관과 박물관, 미술관이 잘 갖추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이런 시설들은 그 도시의 문화와 교육, 사회화의 중심이 됩니다. 문화와 예술의 소중함을 알기에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도 이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습니다. 기업들 또한 메세나 운동이나 직간접적인 참여를 통하여 문화와 예술을 후원하는 일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지요. 지금은 우리나라에서도 문화에 대한 소비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만 20년전 쯤인 1991년에 유엔과 세계은행이 발표한 사회개발지표에서 한국과 세계 12대 선진국 간의 정신문화지수를 비교한 통계치가 발표된 적이 있습니다. 한국인의 도서 대출 책 수는 선진 12개국 평균치의 4%, 무대 예술 관람자 수는 3%, 박물관 관람자 수는 1% 였습니다. 비록 경제지표에서는 우리나라가 선진국의 수준에 가깝다고 하더라도 문화와 예술에 대한 소비는 지금이나 20년 전이나 여전히 개발도상국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실정 입니다. 경제 뿐 만 아니라 정신 문화적 측면에서의 삶의 질을 고양시키기 위한 노력도 병행해야 되겠죠.” 그는“해는 솟아야 하며 불빛은 타올라야 제 맛”이라고 했다. “사람도, 도시도 삶의 에너지가 충만하여 활기가 넘쳐야 합니다. 예술인과 과학자가 모여 문화 창조와 과학진흥의 밤을 밝히는 그런 도시가 포항의 미래가 아닐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포항이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사람들이 찾아오는 도시가 아니라 살고 싶어서 사람들이 찾아오는 매력적인 도시가 되어야 겠죠. 포항시립미술관의 건립은 성장에서 성숙의 시대로 나아가는 포항역사의 전환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흔히 뜨고 있는 웰빙 이란 말도 우리식으로 거칠게 풀이하면 잘 먹고 잘 살자는 뜻입니다. 잘 산다는 것은 몸과 마음이 함께 조화로울 때 가능한 일이겠지요. 불완전한 근대를 거치고 뒤돌아 볼 틈도 없이 산업화, 서구화라는 목표를 향해 쉬지 않고 달려온 우리 사회는, 겉모습은 진주처럼 화려해도 속으로는 성장의 아픔과 부조화를 안고 있습니다. 무작정 앞만 보고 달리는 것만이 삶은 아니겠지요. 빨리 달릴수록 삶은 자신이 도달하려는 결승점에서 점점 멀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깨달음은 삶의 급정거에서 찾아옵니다. 요란한 굉음과 함께 급정거 했을 때는 이미 많은 것을 잃은 후입니다. 느리게 천천히 미술관을 거니는 일, 마음의 먹구름을 걷어내고 자신의 삶의 곳간에 문화의 향기로 가득 채우는 일, 이런 삶이 바로 웰빙이 아닐까요.” 포항시립미술관은 포항시 북구 환호동 해맞이공원에 부지면적 8천886㎡, 건축연면적 5천24㎡, 지하1층, 지상2층 규모로 11월 하순 개관될 예정이다. “시민이 감동하는, 작지만 차별화 된, 세계적 미술관”을 만드는 것이 그의 미술관 철학이다. 그는 21세기 미술관은 도시 정책과 연계 했을 때 도시 브랜드 가치와 미술관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다면서 `포항시립미술관 MI 연구`라는 이름이 붙여진 책자를 건네주었다. 첨단과학도시, 창조도시를 지향하는 포항의 위상에 걸맞게 `Steel`에 디지털과 IT를 접목시키는 예술을 차별화된 미술관의 전략으로 삼고 있다. 미술이 삶이고 삶이 곧 미술인, 삶과 미술의 간격을 좁히는 일에 앞장서겠다는 그는 깊은마음 못지않게 열정으로 넘쳐 났다. “그림은 오케스트라와 같이 한 폭의 화면에 색채와 질감, 형태 등 전체화면의 관계성을 고려하며 완성합니다. 행정 또한 개개인의 능력과 역할에 따른 조율이 필요하고 전체적인 멤버십(membership)이 이뤄졌을때 좋은 결과가 나타납니다. 다만 미술이 작품 구상에서부터 완성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작가 개인의 몫이라면 행정은 조직과 절차에 의한 팀플레이죠. 현대미술에서 삶과 미술의 구분이 모호해지듯 미술과 행정은 서로 얼굴이 다를 뿐 과정이 중요시되는 일종의 프로세스 아트와 닮았다고 할까요.”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생명은 강으로 흐르고 문화는 길로 흐릅니다. 죽음으로 삶을 밝히는 영혼의 강 갠지즈나 실크로드를 보면 그렇습니다. 둘은 닮았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개인에 미쳐 있지만 길은 더불어 미치는 삶의 공적 공간입니다. 미술관은 소비적인 `돈 먹는 하마`가 아니라 더불어 세상을 가치롭게 만드는 창조의 원천입니다. 100년이 가도 그 감동이 깊어가는 미술의 집을 짓고 싶습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09-07-24

김제간 포항와인협회장

포항대학 관광호텔비즈니스과 교수로 재직전국대학 최초 소믈리에 수료증 취득길 열어 동호회 `포샤또` 이끌며 와인전도사로 대활약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와인은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와인은 농업, 상업, 의학, 종교,성(sex), 문화 등 다양한 여러 분야에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며 일상생활에서도 살아 숨쉬는 대표 식음료로 자리매김 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와인이 국가 10대 수출품목 중 하나이며, 현대 글로벌비즈니스에서는 필수메뉴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서양문화이라서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만 시음회,동호회에 자주 참석해서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라는 말처럼 시작하면 와인은 인생에 즐거움을 주는 좋은 문화라고 생각합니다“세계에서 e°€장 비싼 와인은 1985년 런던의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팔린 1787년산 `보르도 샤토 라피트(Bordeaux Cha teau Lafite)`라고 합니다. 당시 16만달러(약 1억5천만원)에 팔렸다고 하네요. 보통 사이즈(750㎖)론 사상 최고가였다고 합니다. 한 잔당(100㎖) 150만원꼴입니다. 지난달 홍콩에서 샤토 라피트 로칠드 와인 60병이 144만 홍콩달러(약 2억3150만원)에 팔린 일도 있답니다. `평범한` 와인도 많습니다. 이른바 데일리 와인입니다. 늘 두고 마실 수 있는 `착한` 가격대입니다. 비싼 와인이거나 값싼 와인이거나 주조원리는 같습니다. 잘익은 포도의 당분을 알코올 발효하는 겁니다. 기원전 3천~4천년 전부터 그래왔다고 합니다.” 김제간(50·포항대학 관광호텔비즈니스과 교수·사진) 포항와인협회장.경북 영천이 고향인 그는 학창시절의 대부분을 고향에서 보냈다.그 당시 영천은 사과산지로 널리 알려져 있었고 집에서도 과수농장이 있어서 초등학교 시절에는 책가방에 책보다 사과를 더 많이 갔고가서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었던 추억이 있단다.세월이 많이 흘러 영천은 지금 포도의 고장, 부가가치가 높은 와인의 고장으로 바뀌어서 지금 그의 와인사랑과 새로운 인연으로 다시 시작돼 가슴 뿌듯할 뿐이라고 했다.그가 와인을 즐긴 지는 올해로 20년째다.특별한 동기가 있냐고 하니 어릴 적 어머니가 담구어 놓은 달콤한 포도주가 첫 인연이라며 장난을 친다.“어린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가 담구어 놓은 달콤한 포도주가 첫번째 달콤한 포도주의 취함이고, 두번째는 20대 초반에 일본에서 힘든 유학시절 교수님께서 연구실에서 `많이 힘들지` 하시면서 내민 한잔의 와인이 내생애 처음 접해보는 첫와인-그 로망에 빠져 취해버렸고, 세번째는 관광호텔비즈니스과 교수가 되고서 자연스럽게 와인에 관심을 가지면서 세상에서 가장 고상하다는 와인 매력에 빠져 있습니다.”그는 포샤또(Po Chateu), 포항의 포와 와이너리 의미의 샤또의 합성어로 포항을 대표하는 와인동호회 회장으로 회원들과 함께 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포항와인협회장으로서 포항대학 관광호텔비즈니스과의 취업경쟁력 강화을 위해 전국 대학 최초로 한국와인협회와 프로그램교류로 소믈리에 수료증을 취득하도록 했다. 특히 관광호텔비즈니스학과에 중국 자매대학에서 관광전공으로 유학온 19명 학생이 중국에는 아직 와인소믈리에 자격증이 없는데 이번에 와인소믈리에 자격증 취득이 취업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해서 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와인동호인의 정신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와인동호회의 어떤 거창한 정신이라기보다는 힘들고 지칠때 비타민과 같은 회원들끼리 서로 힘이 되고 즐거움을 주는 와인이 있어 행복을 느끼고 있어 좋은 것 아니겠냐”는 답이 돌아온다.그가 관광호텔비즈니스과 교수가 되기까지는 많은 사연이 있다. “한때 유행했던 대기업들의 세계화 해외연수 프로그램 비즈니스를 서울에서 하다가 1997년 IMF로 국제교류 프로그램이 없어지면서 포항대학과 인연을 맺은지 12년 되었고 지금은 연구실에서 바다가 보이고 산이 보이는 포항에서 제자들과 와인을 얘기하면서 사는 삶이 행복합니다.” 포항대학에 둥지를 튼지도 벌써 12년. 서울에서 기업연수프로그램 일로 유럽, 미국, 일본 등 많은 비즈니스 여행을 하시면서 바쁘게 지내왔는데 대학에 와서도 국제교육개발원장 보직으로 대학간의 국제교류가 활발해지면서 해외출장이 잦은 이다. “우리 재학생들을 어학연수,테마여행,인턴쉽 등 여러나라에 보내 문화체험, 외국어 능력향상, 자격증 취득 등 다양한 경험을 하고 도전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고 학과에서 강의와 연구 등 바쁜 생활이 취미로 바뀌었지만 즐겁습니다. 슬로우라이프(Slow Life)를 동경하는건지 와인도 그렇고 최근에는 거북이처럼 닮고 살고 싶다고 마음으로 출장때마다 작은 기념 거북이 켈렉션이 취미가 되어버렸습니다.”와인에 대해 소개해 달라고 했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와인은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와인은 농업, 상업, 의학, 종교,성(sex), 문화 등 다양한 여러 분야에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며 일상생활에서도 살아 숨쉬는 대표 식음료로 자리매김 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와인이 국가 10대 수출품목 중 하나이며, 현대 글로벌비즈니스에서는 필수메뉴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서양문화이라서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만 시음회,동호회에 자주 참석해서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라는 말처럼 시작하면 와인은 인생에 즐거움을 주는 좋은 문화라고 생각합니다.”와인 마시는 법도 빠트리지 않고 상세하게 알려준다. “처음 양식을 먹을때 오른손에 나이프, 왼손에 포크, 스프는 떠먹는다 등 몇번 경험하면 적응하듯이 식사중에 나오는 요리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간단한 에티켓을 갖추면 됩니다. 특히 와인은 즐기는 것과 감정하는 것을 혼동해서는 안됩니다. 초대 받아가서 따라 준 와인을 밝은 곳에 대고 색깔을 살피고 코을 깊숙이 넣어 향를 맡는다면 좋은 것인지 아닌지 따지는 셈이 되어 상대에게 상당한 결례가 될 수 있습니다.”음식과 와인의 궁합에 대해서는 일반화 되어 있는 와인상식과 별반 다르지 않지만 특별함이 있다. “와인의 어울림은 생선요리에는 화이트, 고기요리에는 레드와인이라는 공식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 입니다. 생선요리에는 화이트와인이 어울리는 것은 화이트와인의 새콤한 맛과 조화 되기때문이고 레드와인과 육류는 레드와인 탄닌이 육류 기름기와 짙은맛을 조절해주기 때문입니다. 불고기, 갈비, 한식요리에는 묵직한 레드와인 까베르네 쇼비룡 품종의 와인이 어울립니다.”특히 여름에는 시원한 와인 한잔이 생각나는 계절인데 상쾌하고 식욕을 돋우어주는 화이트나 로제와인을 추천했다. 최고로 꼽을 만한 와인을 소개해 달라고 하니 “와인은 다양한 종류와 5천원에서 1000만원이 넘는 천차만별의 가격대,개인의 취향 등 너무 다양해서 추천이 쉽지는 않다”고 했다. “그래서 스토리가 있고, 가격에도 부담없이 저의 마음을 사로 잡은 칠레산 1865를 소개합니다. 산페드로의 설립연도인 1865를 레이블로 옮겨서 선풍적인 인기로 성공한 사례입니다. 골퍼들 사이엔 18홀을 65타로 치라는 의미와 또는 18세에서 65세까지 두루두루 좋아한다는 뜻으로도 해석되기도 하고 2006년 APEC 공식와인으로 선정되어 그 가치를 인정받았으며 와인 초보자도 무난한 맛으로 괜찮을 듯 합니다.”그는 와인 이외에도 여행 애호가이다. “즐거움이 있는 일과 여행을 통해서 웰빙을 하고 싶고 앞에서 얘기한 즐거운 일과 여행의 행복조건에 하나 더 추가하면 건강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건강에도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건강 관리하고자 합니다.”그는 여러 사회단체활동을 하지만 아태관광서비스협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아시아, 태평양 여러 국가에서 관광서비스에 관심있는 교수, 단체로 구성되어 활동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와 지역이 고품격서비스로 선진 관광대국이 되길 희망하며 노력하고 있습니다.”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나 희망이 무엇인가요?“저에게도 가장 소중하고 큰 꿈이 있습니다. 기네스북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호텔은 일본의 이시카와현에 있는 호시료칸은 1300년동안 46대째 가업을 잇고있는 호텔이다. 이 호텔의 서비스모토가 일기일회(一期一會)다. 일기일회란 일생에 단 한번뿐인 만남이라는 인연으로 생각하고 고객에 최선의 정성을 다한다는 뜻입니다. 저가 몸담고 있는 관광호텔비즈니스과와의 인연을 제 인생의 가장 소중한 인연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자와의 만남의 인연을 소중히하고 최고의 학과로 발전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저의 소중한 꿈이요 미션입니다. 지금도 연구실에 일기일회(一期一會)라는 사자성어를 붙여놓고 연구실에 찾아오는 학생들에게는 절대로 그냥 돌아가게 하지않고 꼭 시원한 물이라도 마시고 돌아가게 하는 하고 있어 이 작은 행복이 큰 꿈으로 이뤄지길 간절히 바랍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09-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