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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ㆍ특집

‘열기꽃 필 무렵’ 동해바다에는 뜻밖의 선물이 우리를 기다린다

겨울 바다가 풍성한 낚시터가 될 수 있는 것은 오직 이 어종, ‘겨울 바다의 불꽃’이라고 불리는 열기 덕분이다. 열기는 쏨뱅이과 양볼락과의 물고기로 정식 명칭은 ‘불볼락’이다. 전체적으로 불그스름한 빛깔을 띠기 때문에 불볼락이라는 학명이 붙은 것인데 어째서 ‘열기’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을까? 아마도 ‘불’이라는 단어의 기의 때문일 것이다. 아니다. 한겨울에도 낚시인들의 가슴을 달아오르게 하는 화끈한 물고기인 까닭인 지도 모른다.열기 낚시는 오직 겨울에만 한다. 수직으로 줄을 내리는 외줄낚시인 점에서 우럭 어초침선 낚시, 농어나 민어 외수질 낚시와 방법이 유사하나 결정적인 차이는 바늘의 개수에 있다. 열기 낚시는 무거운 추에다가 ‘카드 채비’라고 하는 줄줄이 바늘을 달아 사용한다. 보통 여섯 개에서 열 개 정도를 쓰는데, 베테랑 조사들은 열다섯 개, 스무 개짜리 채비를 쓴다. 바늘에는 크릴새우나 오징어를 끼운다. 간혹 생미끼와 함께 루어의 일종인 ‘웜’을 달아서 낚시하기도 한다.열기가 머무는 곳이 주로 수심 30m 이상의 깊은 바다이기 때문에 80호(300g)짜리 봉돌을 사용하며, 채비 내리고 올리기와 수심층 파악에 용이한 전동릴이 유리하다. 바늘 열 개에 열기가 모두 걸려 줄줄이 사탕처럼 올라올 때, 낚시꾼들은 “열기꽃이 피었다”고 외친다. 열기꽃은 겨울 바다의 동백인 셈이다.12월 말, 찬바람이 부는 경주 감포의 한 항구에서 일행과 함께 새벽 낚싯배에 올랐다. 배에는 나처럼 열기꽃을 잔뜩 따려는 낚시꾼들이 대여섯 명 더 있었다. 추위를 피해 선실에 도란도란 모여앉아 누군가는 졸고 또 누군가는 열기 낚시 무용담을 늘어놓는 사이 포인트에 도착했다. 열기도 우럭처럼 어초 주변에 모인다. 선장은 인공 어초와 자연초를 오가면서 열기를 공략할 것이라고 한다.수심 50m권으로 첫 채비를 내렸다. 채비가 바닥에 닿은 후 2~3m 정도 채비를 띄워야 바닥 걸림을 피할 수 있다. 그러다가 입질이 없다 싶으면 채비를 조금씩 내리면 된다. 방법은 어렵지 않지만 ‘세기(細技)’에서 베테랑과 초보의 조과 차이가 확연해진다. 가장 중요한 것은 줄 관리다. 바늘 여러 개가 달린 채비를 사용하다보니 이리 엉키고 저리 엉키는 일이 다반사다.엉킨 바늘을 풀고 채비를 다시 하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동안 옆 낚시꾼은 아이스박스를 가득 채운다. 줄 관리를 잘 못하면 내 낚시도 망치지만 옆 사람과 줄이 엉켜 다른 사람의 낚시에도 피해를 입힌다. 열기 낚시는 첫째도 줄 관리, 둘째도 줄 관리다. 선장이 내리라고 할 때 채비를 내리고, 올리라고 할 때 올리는 ‘명령 수행 능력’ 또한 요구된다.배가 어초 위를 지나는 순간 뱃머리 쪽에 자리 잡은 꾼의 낚싯대가 초릿대를 까딱거리기 시작한다. 입질이 온 것이다. 이제 앞에서부터 차례로 다른 꾼들에게도 입질이 올 것이다. 열기 낚시의 성패는 “열기를 태우느냐 태우지 못하느냐”에 달려 있다. 입질이 온다고 해서 바로 감아올리면 열 개의 바늘 중에 한 마리만 걸려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열기는 호기심이 왕성한 물고기라서 한 녀석이 바늘을 물고 있는 걸 보면 나머지 무리들도 따라 나와 바늘을 무는 습성이 있다. 그러므로 낚싯대가 아래로 쿡쿡 처박을 때 릴을 한 바퀴 정도만 감아 들이고, 또 입질이 올 때 한 바퀴, 또 한 바퀴, 이렇게 하면 낚싯줄의 장력이 팽팽하게 유지되면서 먼저 바늘을 물고 있던 열기들이 빠져나가지 않고 주렁주렁 매달려 다른 열기들을 끊임없이 불러 모으게 된다. 낚싯줄에다가 충분히 “열기를 태웠다”고 판단되면 그때 전동릴을 감아올린다. 검푸른 겨울 바다, 수면 아래서 붉은 꽃잎들이 피어오르는 순간 누군가 외친다. “열기꽃이 피었다!”줄줄이 피어 올라오는 겨울 바다의 동백꽃을 바라보며 감탄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얼른 바늘에서 열기를 떼어내고 빈 바늘에 미끼를 달아 다시 채비를 내려야 한다. 열기 낚시는 손이 굉장히 바쁜 낚시다. 부지런하지 않으면 조과를 장담할 수가 없다. 내리고 올리고 떼고 달고 풀고 하는 일련의 과제들을 그때 그때 착실하게 수행해야만 쿨러를 가득 채울 수 있다. 나는 열기를 가득 태우지는 못해도 서너 마리씩 꾸준하게 잡아 올리며 어느새 쿨러를 꽤 채워 나가고 있었다.동해 남부권에서 열기 낚시를 하다보면 뜻밖의 손님 고기들이 찾아오기도 한다. 가장 흔하게 만나는 녀석은 쏨뱅이다. 얼마나 맛있으면 ‘매운탕의 황제’라고 불리는 귀한 고기다. 열기 네댓 마리가 한꺼번에 올라올 때 쏨뱅이도 한두 마리 함께 올라오는 경우가 잦다. 간혹 우럭이나 볼락이 걸려 올라오기도 한다. 다 맛있는 생선들이다. 감성돔 낚시꾼들에게 홀대받는 황놀래기가 잡힐 때도 있다. 이 황놀래기는 칼집을 내 구워 먹으면 옥돔 못지않게 맛이 뛰어나다. 다양한 손님 고기와의 만남은 생미끼 낚시가 지닌 매력이다.그런데 이날 낚시에서는 그야말로 귀빈과 조우할 수 있었다. 입질의 형태가 열기와는 다른 데다가 초릿대를 우악스럽게 잡아당기는 힘이 예사롭지 않았는데, 물 위로 꺼내 보니 30㎝가 조금 안 되는 돌돔이었다. 돌돔이 어떤 물고기인가? ‘바다의 황태자’라고 불리는 최고의 낚시 대상어이자 맛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횟감의 제왕이다. 비록 ‘뺀찌’(작은 돌돔을 칭하는 낚시꾼 방언)였지만, 뜻밖의 횡재에 기분이 날아갈 듯했다.함께 낚시한 일행은 귀한 말쥐치를 한 번에 두 마리나 낚아 올리는 쾌거를 거두었다. 말쥐치는 제주권 찌낚시나 외줄낚시, 루어 낚시의 일종인 러버지깅에서나 가끔씩 볼 수 있는 고기인데, 동해권에서 30㎝급의 대물 쥐치 두 마리가 낚싯대 한 대에 걸려 올라오는 일은 정말 보기 드물다. 쿨러를 가득 채운 열기와 함께 돌돔과 말쥐치까지 획득한 우리는 쾌재를 부르며 입항했다.중국의 대문호인 루쉰의 산문에 ‘조화석습(朝華夕拾)’이라는 말이 있는데, 직역하면 “아침 꽃을 저녁에 줍는다”는 의미다. 아침에 바다에 가득 핀 열기꽃을 따 담았는데, 진정한 꽃 줍기는 저녁에 시작된다. 열기 요리의 향연이 펼쳐진 것이다. 열기는 어떻게 요리해도 다 맛있는 생선이다. 회를 치면 특유의 차친 식감과 단맛이 일품이고, 구이는 그 어떤 생선도 감히 비길 수 없는 고소한 맛이다. 매운탕을 끓이면 얼큰하면서 풍미 깊은 국물과 함께 촉촉하고 담백한 생선살을 맛볼 수 있다.일행들과 함께 아침 꽃을 저녁에 주우며, 아니 열기꽃을 저녁에 먹으며 불콰하게 취하는 동안 밤이 밀물로 밀려왔다. 동짓날이 막 지난 겨울밤은 왠지 짧아진 느낌, 아침이 어느새 머리맡에 와 있었다. 까치 소리에 반갑게 깨어 펜션 마당을 산책하는데, 담벼락 위로 고개를 내민 동백나무에 어제의 열기꽃보다는 작고 수줍게 동백꽃 몇 송이가 눈망울을 밝히고 있었다. 낚시꾼은 한 계절을 먼저 사는 사람들이다. 차가운 겨울바다에서 봄을 예감하며, 쿨러를 가득 채운 조과에 벌써 마음에는 동백, 홍매화, 산수유, 진달래, 개나리, 벚꽃, 라일락이 만발했다.길고 지루한 겨울을 즐겁게 보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낚시를 하는 것이다. 겨울 바다가 쏘아 올리는 아침 태양을 바라볼 때, 태양의 열기가 눈시울과 가슴으로 옮겨 와 ‘살아있다’는 자각에 저절로 뭉클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 ‘열기’를 품에 안고 ‘열기’를 줄줄이 낚아 올리면, 낚싯줄에 매달려 나부끼는 열기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이 되어 마음의 근심과 슬픔, 권태를 모두 닦아줄 것이다. 지금은 바야흐로 ‘열기꽃 필 무렵’,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저 붉고 아름다운 열기꽃을 따러 가자. 끝/이병철(시인)

2019-12-29

팔빠질 듯한 고패질 끝에온 가족 포식할 큰 놈 왔다

동 틀 무렵 출항하는 낚싯배에 몸을 싣고 대구를 낚아 올리기 위해 울진 후포항을 찾았다. 대구 낚시는 겨울이 최적기다. 한류성 어종인 대구는 얼음장 같이 차가운 겨울 바다를 누비며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데, 살이 실팍해 먹을 게 많은 고급 생선이면서 낚시에도 곧장 걸려드는 착한 대상어다. 이런 대구를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서해에서도 대구 낚시가 이뤄지긴 하지만, 배로 두세 시간쯤 걸리는 먼 바다로 나가야 하고, 오징어나 주꾸미 등 생미끼를 사용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대구 자원도 동해에 비해 풍족하지 못하다. 동해는 서해와 달리 근해를 조금만 벗어나도 수심이 100m 정도로 깊어진다. 먼 바다까지 나가지 않아도 낚시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는 것이다. 온통 캄캄한 이른 새벽부터 부산을 떨지 않아도 되며, 낚시하는 시간도 훨씬 많이 보장된다. 동해 선상낚시가 지닌 메리트다.수심 100m 깊은 바다 속에는 수중 암반과 암초 등이 잘 형성되어 있다. 대구는 바위 주변에 떼를 지어 머무는 습성을 지녔다. 동해의 대구 낚시는 ‘지깅’이 대세다. 지깅이란 루어의 일종인 메탈지그를 사용하는 낚시 장르로 보통 깊은 바닥까지 채비를 수직으로 내리기에 ‘버티컬 지깅’이라고도 부른다. 5~6피트 길이의 지깅 전용대 또는 선상 우럭대, 인터라인 낚싯대 등을 쓰며, 굵은 합사줄이 200m 이상 감겨 있는 전동릴을 사용한다. 거기에 300~400g의 메탈지그를 달아 바닥까지 채비를 내린 후 고패질을 하다 보면 초릿대를 슬쩍 잡아당기는 예비 입질 후에 ‘덜컥’하는 본 입질이 들어온다. 그때 챔질을 해 바늘이 대구 입에 확실히 박히도록 한 후 전동릴을 천천히 감으면 대구가 빙글빙글 돌면서 수면 위로 떠오른다. 대물일수록 당연히 더 오래 걸린다.속초, 고성 등 강원도에서 주로 이뤄지는데, 경북 동해안의 경우 울진 ‘왕돌초’를 중심으로 대구 지깅이 활발하다. 왕돌초는 후포 바다 속 해저 대륙붕으로 거대한 능선과 골짜기가 발달한 천혜의 어류 서식지다. 이는 곧 훌륭한 낚시터라는 뜻, 왕돌초 주변은 동해안 최대의 낚시 포인트로 각광받아 왔으나 최근 해양수산부의 탁상행정으로 낚시어선의 영업이 금지되면서 어민들은 생계를 위협 받고, 낚시인들은 여가 선용의 즐거움을 잃게 되었다. 지자체를 비롯해 어민과 낚시인들의 청원이 잇따르는 중인데, 하루 빨리 왕돌초가 어민과 낚시인의 품으로 돌아오길 바란다.아침 6시, 배에 올라 승선 명부를 작성한 후 본격적인 채비를 했다. 겨울철 대구 지깅 낚시는 낚시채비를 준비하는 것보다 방한 대책을 강구하는 게 더 중요하다. 평소에는 입지 않는 내복부터 옷을 여러 겹 껴입고는 거위털 파카 주머니에 핫팩도 넣었다. 이제 배가 포인트에 도착할 때까지 선실에서 잠시 눈을 붙이면 된다. 평소에는 30분 정도 걸리는 가까운 바다로 나가는데, 이날은 1시간쯤 달려 영업금지구역에 해당되지 않는 왕돌초 인근에서 엔진을 껐다.‘삑’하는 부저음과 함께 채비를 내렸다. 선장이 수심 90m라고 말해줬는데, 과연 전동릴의 수심 표시도 90m를 가리켰다. 비교적 가벼운 280g 메탈지그를 내렸는데도 조류가 세지 않은 덕분에 바닥에 닿는 느낌이 그런대로 잘 전달됐다. 채비가 바닥에 닿는 줄도 모르고 계속해서 줄을 풀면 낚싯줄이 늘어져 입질을 파악할 수 없고, 줄이 이리저리 엉키기 십상이다. 반면 채비가 바닥에 닿기도 전에 라인 방출을 멈출 경우 어군이 형성된 수심층에 접근하지 못해 입질을 전혀 못 받거나 중층을 회유하는 잡고기나 몇 마리 건져 올리는 게 고작이다. 선상 낚시, 특히 대구 지깅 낚시는 바닥을 찍는 능력이 가장 먼저 요구된다.바닥을 찍은 다음, 릴을 닫고는 낚싯대를 힘차게 머리 위로 치켜드는 ‘저킹’으로 먹잇고기 모양을 한 루어가 수중 암반지대를 폴짝 폴짝 뛰어다니는 액션을 연출했다. 대구 지깅 낚시는 중노동이다. 그 무거운 채비를 배꼽에서부터 머리 위까지 끊임없이 올렸다 내렸다 반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구는 보통 메탈지그가 떠올랐다가 다시 내려갈 때 입질을 한다. 낚시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입질을 받았다. 입질이 들어왔다고 해서 서둘러 챔질을 해서는 안 된다.확실하게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입질이 연속적으로 이어질 때 챔질을 하는 것이 요령이다. 무게감이 느껴지는 걸 보니 제대로 걸렸다. 그런데 전동릴이 빠르게 감긴다. 대물은 아난 듯하다. 물 위로 올라온 대구는 역시나 40㎝가 조금 넘는 작은 녀석이다. 어쨌든 첫 수를 올렸다.첫 수를 올린 이후 낚시에 불리한 어떤 상황이 저 깊은 물속에 발생했는지 좀처럼 대구의 입질을 받을 수 없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배에 탄 다른 낚시꾼들도 마찬가지였다. 급작스런 수온 변화가 생긴 것인지, 조류와 바람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 알지 못한 채 오직 묵묵히 채비를 내리고, 올렸다가 다시 내리고, 이리저리 흔드는 행위를 반복할 뿐이었다. 배 전체에서 뜨문뜨문 낱마리가 올라오는 상황, 추위와 허기를 달래고자 선실에서 컵라면 하나를 끓여먹은 후 다시 심기일전했다. 오후 들어 조류가 세지면서 280g 메탈지그로는 바닥을 찍는 감을 느끼기 쉽지 않았다. 340g짜리로 바꾸고는 부지런히 저킹, 저킹…. 마침내 입질을 받았다. 줄을 잡고 들어올리기에는 꽤 벅찬 70㎝급의 준수한 씨알이었다. 생대구탕은 확보가 됐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긴장을 잠시 내려놓은 순간, 예기치 못한 고난이 닥쳐왔다. 전동릴을 접지한 배의 전기시설에서 과전류가 발생해 전동릴이 망가지고 만 것이다. 릴에서 모터 타는 냄새와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순간 내 가슴도 타들어갔다. ‘이래서 전용 배터리를 챙겨 다녀야 하는구나’ 절감했다. 릴이 망가져 금전적인 손해를 입은 것은 둘째 치고, 당장 낚시를 못하는 상황이 되었으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 전동이 안 된다면 수동으로 해보자며 채비를 내렸다. 포인트를 옮길 때마다 채비를 감아올리느라 죽을 맛이었다. 팔에 쥐가 나는 듯했다. 저린 팔을 풀어가며 다시 채비를 내린 후 부지런히 고패질을 하는데, 덜컥, 하는 강력한 입질이 들어왔다. 나도 강하게 챔질,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그때부터는 팔씨름이나 다름없었다. 수심 120m 아래에서부터 오직 힘으로 대구를 끌어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전동릴로는 3분이면 될 것을 10여분 동안 끙끙대며 끌어올린 녀석은 뱃속에 이리(정소)가 가득 찬 맛있는 수놈 대구, 1m에 가까운 대물이었다.겨울 동해가 주는 선물 중에서 가장 실속 있는 것은 대구다. 큰놈 한 마리만 잡아도 온가족이 넉넉하게 대구 요리 파티를 즐길 수 있다. 대구는 흔히 버릴 것이 없는 생선이라고 말한다. 입이 큰 만큼 대가리도 크지만, ‘뽈살’이 잔뜩 붙어 있어 먹을 게 많다. 어두육미는 대구 대가리를 두고 한 말일 것이다. 당일 낚시로 건져 올린 싱싱한 대구를 생대구탕으로, 뱃살회로, 초밥으로, 스테이크로, 내장수육으로, 알탕으로, 찜으로, 튀김으로 다양하게 요리해 먹는 식도락은 낚시꾼과 그의 가족, 친구가 아니고서는 체험할 수 없는 행복이다.혼자 사는 나도 대구를 잡아온 그날 저녁,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 친구들을 불러 모았다. 현관으로 들어서며 품에서 좋은 술 한 병씩을 꺼내는 친구들에게 50ℓ짜리 대장 쿨러(대형 아이스박스)를 열어 대물 대구를 번쩍 들어 보였더니 다들 눈이 휘둥그레져서 감탄사를 연발했다. 부엌에서 대구를 이렇게 저렇게 요리하고 있는데 친구들이 꿀꺽 꿀꺽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탕부터 회, 수육 등 풍요로운 대구 요리 한상을 차려 친구들과 나눠 먹으며 술잔을 부딪친 겨울밤, 우정은 깊어지고 추억은 별빛처럼 환하기만 했다./이병철(시인)

2019-12-22

검푸른 물 밑서 은빛 섬광 번뜩이는 순간, 짜릿한 카타르시스가

농어는 바다 루어낚시 최고의 대상어다. 오늘날 바다 루어낚시라는 장르를 대중화시킨 것도 바늘에 걸린 채 은빛 왕관을 번쩍거리며 물 위로 힘차게 점프하는 농어의 바늘털이다. 그 순간 낚시꾼은 황홀한 흥분에 휩싸여 몸이 달아오른다. 우리나라 루어낚시의 첫 걸음은 쏘가리 낚시이지만, 바다의 경우 농어가 원조다. 농어 루어낚시가 인기를 끈 이유는, 배 위에서 무거운 추가 달린 낚싯바늘을 수직으로 내리는 생미끼 낚시에 비해 스포츠적인 요소가 강하기 때문이다. 선장이 배를 대주는 곳에 채비를 내리기만 하면 되는 선상낚시와는 달리 농어 루어낚시는 갯바위 도보낚시든 선상낚시든 간에 농어가 있을 만한 포인트에 루어를 정확히 던지는 ‘캐스팅’ 능력이 요구된다. 낚시꾼이 트위칭, 저킹, 리트리브 등 액션으로 루어의 다양한 움직임을 연출해 농어를 유혹해낸다는 것 또한 묘미라 할 수 있다. 파도가 부서지는 흰 포말 속에서 갑자기 덜컥, 하는 입질과 함께 ‘찍, 찌이익-’ 릴 드랙이 풀리는 소리, 바늘에 걸린 농어가 물 아래로 꾹꾹 처박으려 할 때마다 초릿대는 활처럼 이리저리 휘어지고, 농어가 쏜살 같이 튀어 올라 공중 점프를 하는 순간, 낚시꾼의 온몸에 전율이 돋는다. 농어 루어낚시는 짜릿한 손맛과 황홀한 눈맛을 모두 충족하는 낚시다.7∼9피트 길이의 미디움라이트 또는 미디움 액션 낚싯대와 2500∼4000번 릴, 원줄은 합사 1∼1.5호, 쇼크리더는 나일론이나 플로로카본 15∼20파운드를 사용한다. 거기에 7∼15cm 크기의 미노우나 20∼30그람 내외의 바이브레이션, 스푼, 메탈지그, 또는 1온스 이하 지그헤드에 4∼5인치 웜을 달아 던진다. 농어는 멸치와 학공치 등 먹이고기들이 있는 곳을 찾아 회유한다. 대개 물이 와서 받치는 곳들, 이를테면 곶부리, 홈통, 수중암초, 간출여, 여밭, 몽돌밭, 해상등대 주변은 조류 소통이 원활하고 농어가 은신하기 좋은 환경이므로 특급 포인트가 된다. 파도가 깨지면서 하얗게 포말이 일어나는 곳, 물의 뼈가 사방으로 흩어지는 곳에서 농어는 온몸을 날카로운 섬광의 검으로 벼리고 있다.우리나라에는 세 종류의 농어가 있다. 점무늬의 유무에 따라 민농어와 점농어로 구분하고, 제주 남부 지방에서 주로 서식하는 넙치농어도 있다. 민농어와 점농어는 점무늬만 빼면 서로 똑같이 생겼지만 넙치농어는 체형이 좀 다르고, 그 힘 또한 상상을 초월한다. 전문 낚시꾼들 사이에서도 잡기 힘든 ‘꿈의 대상어’로 꼽힌다. 맛도 굉장히 좋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넙치농어만큼이나 민농어, 점농어도 귀하다. 동해안에서 잡히는 농어는 대부분 민농어다.점농어는 서해에 주로 서식하고, 가끔 거제나 통영 등 동해 남부에서 잡히는 경우가 있다. 연안 찌낚시나 원투낚시에 종종 걸려드는 것은 40cm 이하의 ‘까지매기’(농어 새끼를 뜻하는 경상도 말. 전라도에서는 ‘깔따구’라고 부른다)가 대부분이지만, 루어낚시로는 대물 농어 ‘따오기’(80cm 이상의 농어를 뜻하는 낚시꾼 은어)를 만날 수도 있다. 70∼80cm급 농어 한 마리를 잡으면 성인 대여섯 명이 회와 구이, 탕으로 배불리 먹을 수 있다. 여름 농어 못지않게 겨울 농어 또한 최고의 미식 재료다.경북 동해안에서는 포항과 경주가 농어 루어낚시의 일번지로 꼽힌다. 농어 낚시 시즌이 이미 종료된 서해안과는 달리 동해안에서는 겨울에도 농어 입질이 활발하다. 갯바위 도보낚시 또는 방수복과 전용 부츠를 신고 연안 여밭이나 간출여로 진입해 파도를 온몸으로 맞으며 하는 ‘락쇼어’ 낚시 중 어떤 방식으로 농어를 노려볼까 고민하다가, 좀 더 편하고 낚시 성공 확률이 높은 레저보트를 이용하기로 했다. FTV 한국낚시채널 ‘바다로 간 쏘가리’ 진행자인 이찬복 프로와 함께 135마력의 선외기를 장착한 6인승 소형 콤비보트를 타고 ‘호랑이 꼬리’에 숨은 농어와 한판 승부를 벌이기 위해 호미반도 강사2리 선착장에서 배를 띄웠다.세상 모든 낚시가 다 재밌지만, 나는 소형 보트를 타고 즐기는 농어 캐스팅 낚시에서 가장 짜릿한 매력을 느낀다. 우리는 호미곶, 대보, 삼정, 석병, 구룡포를 드나들며 홈통과 곶부리와 수능능선, 수중암초, 여밭 지역을 게릴라처럼 치고 빠지기로 했다. 7.6피트 미디움라이트 로드에 2500번 릴, 합사 1.2호 그리고 쇼크리더 3호로 만끽하는 동해안 겨울 농어와의 경쾌한 파이팅은 그야말로 ‘스포츠’의 정수일 것이다.겨울하늘처럼 바다도 한없이 푸르기만 했다. 바람도 파도도 없어 잔잔한 동해는 마치 청색 원피스 같고, 우리의 보트는 그 위를 스팀다리미처럼 미끄러져 나가며 바다의 주름을 부지런히 폈다. 달리는 보트 위에서 겨울의 정취를 만끽하는 내 옆구리에 파도가 스칠 때마다 은빛 비늘이 무성히 돋아나는 기분이 들었다. 공중으로 튀어 오르는 파도 낱알 속에 그리운 이의 눈시울이 언뜻 언뜻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좀처럼 입질이 없었다. 낚시꾼들이 흔히 ‘청물’이라고 불리는 맑은 조류가 흘러들면서 바다 속이 바닥까지 훤하게 보이는 통에 농어들의 경계심이 높아져 낚시하기 까다로운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오후부터 바다가 수상했다. “바다가 왼종일 새앙쥐 같은 눈을 뜨고 있었다”(김춘수, ‘처용단장’)던 시구가 떠올랐다. 바람이 터지면서 너울이 치기 시작했다. 바다는 자꾸 음흉하고, 흐린 하늘에 지워진 수평선을 보고 있으면 몽롱했다. 물이 날카로운 예각으로 빛나는 것을, 바람의 모서리에서 물방울들이 거품을 물고 죽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농어들의 경계심이 느슨해져 낚시하기에는 좋다. 호미곶, 호랑이 꼬리에 숨은 은빛 농어를 잡기 위해 수중여 포말 속으로 끊임없이 루어를 던지고 또 던졌다.강한 입질을 받았다. 제법 힘쓰는 것을 보니 농어인 듯하다. 그런데, 꽤 버티다가 금방 맥없이 끌려나오는 게 거무튀튀하다. 농어는 아니다. 물 위로 올라온 것은 쥐노래미, 동해안에서는 게르치라고 부르는 물고기다. 50cm에 가까운 대물이지만 1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산란철을 맞아 쥐노래미 금어기가 시행 중이기에 잡자마자 곧장 바다로 돌려보냈다. 다시 캐스팅, 또 캐스팅…. ‘톡’하는 입질과 함께 딸려오는 것은 제 몸만 한 루어를 탐한 볼락이었다. 초조해졌다. 겨울 동해안의 태양은 일찍 수평선을 넘어 간다. 금세 어둑해진 호미곶 바다, 이제 기대할 것은 ‘피딩타임’ 뿐이었다.‘상생의 손’ 조형물과 새천년기념관 위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시간, 끊임없는 캐스팅으로 몸에 열기가 돌아 두꺼운 겨울 패딩은 이미 벗은 지 오래, 바람을 뚫고 호미곶 먹등대 주변을 돌며 루어를 던졌다. 먹등대에서 십여 미터 정도 떨어진 곳의 수중여 근처, 병든 물고기의 움직임처럼 보이도록 액션을 주던 루어를 잠시 멈춘 순간 덜컥, 하는 입질과 함께 꾹꾹 처박는 농어 특유의 경쾌한 파이팅이 시작되었다. 바늘이 빠지지 않도록 낚싯대를 낮추며 긴장을 팽팽하게 유지시키고, 낚싯줄이 터지지 않게끔 릴 드랙 장력을 조절하며 농어의 힘을 뺐다. 줄다리기 끝에 마침내 검푸른 물 밑에서 은빛 섬광이 번뜩이는 순간, 온몸의 피가 나른해지며 무언가 내 몸에 들어왔다가 빠져나가는 듯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물 위로 끌어올린 녀석은 70cm급의 잘 생긴 동해안 농어. 겨울 바다가 준 멋진 선물이었다.농어는 회로 먹는 게 가장 좋지만, 소금구이나 스테이크, 매운탕, 맑은탕 등 어떤 방식으로 조리해도 다 맛있다. 우리가 시중에서 먹는 농어회는 90% 이상이 양식인데, 양식과 자연산은 회의 ‘때깔’부터 다르다. 양식은 대개 어두운 회색이나 갈색을 띠는데, 자연산은 밝은 갈색을 띠거나 불그스름하다. 특히 기름이 오른 겨울 농어회는 별미 중의 별미, 농어 스테이크의 경우에는 서양에서 고급 요리로 통한다. 그래서 이날 잡은 농어는 회와 스테이크로 동시에 즐겼다. 미식은 행복했지만 마음 한 편에는 아쉬움이 부글거렸다. 파도가 몸 부서져 죽는 저 포말 속, 바다의 뼈들이 물소리를 내는 수중여에 숨어 있을 ‘따오기’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녀석과 다시 한 번 진검승부를 펼치고 싶다. /이병철(시인)

2019-12-15

천기를 읽는 물고기 볼락, 마음도 훔치다

‘왕사미’ 볼락을 노리기 위해 선택한 포인트는 구룡포 삼정 방파제. 동해안의 명(名) 방파제로 낚시꾼들에게 사랑받는 곳이다. 방파제 규모가 꽤 큰데, 몇 군데의 포인트들이 있다.먼저, 지금은 ‘POINT’(카페 이름부터 이곳이 낚시 명당임을 말해준다)라는 멋진 카페가 들어선 관풍대 주변이다. 방파제 외항 초입의 테트라포드에서 관풍대 쪽으로 캐스팅을 해 공략한다. 이곳은 수중바위와 해조류 밭이 너르게 발달해 있어 볼락들의 좋은 은신처가 된다. 그러나 수심이 얕아 대물 볼락을 만날 확률이 그렇게 높지는 않다. 다음으로는 방파제가 꺾어지는 중간 지점이다.바로 앞 발 밑 수심이 3m 정도로 깊어 대물 볼락이 가끔 낚이곤 한다. 나는 그 자리를 보통 낮 낚시에 찾는다. 밤에는 테트라포드 위에서 이동하는 것이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한 군데 좋은 포인트는 곶부리에 해당하는 방파제 끝부분이다. 이곳은 테트라포드가 끝나는 지점에서 씨알 굵은 볼락들이 종종 입질을 하곤 한다. 내항 석축과 큰 방파제 건너편 작은 석축방파제 역시 괜찮은 포인트들이다.하지만 나는 그 좋은 포인트들을 다 그냥 지나쳐갔다. 그러고는 외항과 내항이 경계를 이루는 방파제 끝으로 가 내항 쪽 석축에 서서 테트라포드에 몸을 숨기고, 보안등 불빛이 오히려 캄캄한 그늘을 만드는 자리, 외항으로 부딪쳐 들어오던 조류가 내항으로 잔잔하게 흘러드는 방파제 모서리를 노리기로 했다. 층층이 쌓인 테트라포드는 물속에서 복잡한 수중 요새를 만들어 볼락, 우럭, 노래미, 쏨뱅이 등 ‘록피쉬(Rockfish)’들의 은신처이자 산란장, 먹이활동 환경을 제공한다. 대물 볼락은 테트라포드가 가장 멀리, 깊이 잠겨 있는 테트라포드 주변에 있을 확률이 높다.보안등 불빛이 어느 정도 집어등 효과를 내기 때문에 따로 집어등을 켜지 않았다. 대물일수록 경계심이 많고 영리하다. 빛과 소음 등 외부 환경의 변화를 금방 눈치 챈다면 꼼짝도 하지 않을 것이다. 테트라포드는 밑걸림이 심하다. 밑걸림에 끊은 채비를 다시 묶느라 시간을 허비하거나 부산스럽게 움직이다 보면 볼락의 입질을 놓치기 일쑤다. 그러므로 불필요한 동작들을 없애고 마치 그림자처럼, 촛불처럼 간결하고 고요한 몸짓으로 채비를 던져야 한다.얼마나 지났을까. 두어 시간 동안 고작 세 마리의 볼락을 만난 게 전부다. 그것도 20cm가 채 되지 않는 녀석들이다. 조금 더 무거운 지그헤드로 보다 깊은 자리를 노려보기로 했다. 곧 만조 시간, 볼락은 만조를 전후한 때에 가장 활발한 입질을 보인다.새벽 네 시, 테트라포드 끝부분, 불빛과 어둠의 경계 지점에 캐스팅을 해 루어를 7초간 가라앉힌 후 천천히 릴을 감는데, 후두둑- 하는 진동과 함께 낭창한 낚싯대의 초릿대가 활처럼 휘어졌다. 앞서 잡았던 세 마리의 볼락과는 차원이 다른 당길심, 이리저리 달음질치며 테트라포드 구멍으로, 몰밭으로, 암초지대로 파고드는 강력한 저항에 나는 흠칫 놀라 당황하고 말았다. 빠르게 제압을 하지 못하는 사이 녀석은 테트라포드 틈으로 몸을 박아버렸다. 아무리 당겨도, 기다려도 녀석은 구멍 속에 박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채비를 끊고, 허탈한 마음에 점점 멀어지는 새벽달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곧 만조가 되고, 마침 동틀 무렵의 아침 피딩타임과 겹쳐 볼락들이 활발한 입질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 고만고만한 사이즈들이다. 아까 놓친 녀석은 분명 30㎝ 전후의 대물이었을 것이다. 놓친 물고기는 영원히 자란다. 나는 산문집 ‘낚 ; 詩 - 물속에서 건진 말들’에 이렇게 썼다. “빨리 잊고 낚시에 집중하면 또 잡을 수 있는데, 놓친 물고기만 생각하다 결국 낚시를 망친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어제 내 것이 될 뻔했던 행운을 계속 아쉬워하는 동안 지금 나에게 다가오는 기회마저 놓쳐버리고, 결국 빈손이 되어 쓸쓸한 내일을 맞는다”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낚시에 집중했다. 곧 구룡포의 아침 태양이 석류알을 흩뿌리며 수평선 위로 떠올랐다. 비록 ‘왕사미’ 볼락은 만나지 못했지만, 꽤 준수한 씨알의 볼락을 포함해서 스무 마리쯤 잡았으니 나름대로 선전한 셈이다.낚시꾼들 사이에서 볼락은 ‘천기를 읽는 물고기’라고 불린다. 그도 그럴 것이 물때와 날씨, 수온 등 환경이 조금만 달라져도 활발하던 입질이 뚝 끊기곤 한다. 어제 잘 나오던 자리에서 오늘 안 나오고, 어제까지 안 나오던 자리에서 갑자기 폭발적인 입질이 이어지기도 한다. 특히 지진이나 태풍 전후로는 완전히 입을 닫아버리는 경우가 많다. 호황일 때는 누구나 쉽게 낚을 수 있는 고기이지만, 활성도가 떨어진 상황에서는 ‘꽝’을 면하기 어렵다. 볼락 낚시의 실력은 저활성기에 얼마나 볼락을 잘 유혹해내느냐에 달렸다. 고활성기에 잔챙이들의 성화를 뚫고 대물을 공략해내는 ‘사이즈 선별력’ 또한 고수에게 요구되는 능력이다. 볼락이 활동하는 수심층 탐색, 볼락이 반응을 잘 보이는 루어 선택, 입질 패턴에 따른 바늘 크기 조절, 릴 드랙 조절, 물 흐름과 구조물 등을 계산해 공략지점을 노리는 정확한 캐스팅, 집어등 활용법 등이 모두 볼락 루어낚시 기술의 영역에 해당한다.나는 아직도 초보를 벗어나지 못해서, 밤새 찬바람에 고생한 손이 거칠어졌다. 이제는 밤샘 낚시로 지친 몸을 쉬게 해야 할 때다. 구룡포읍 ‘신대천국밥’에서 돼지국밥 한 그릇 먹고, 구룡포 해수욕장이 보이는 ‘셀렉토 커피’에 가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커피를 마신다는 뜻의 신조어)를 마셨다. 그러고는 구룡포 초입의 ‘호미곶온천랜드’에 가 뜨거운 열탕에 몸을 녹이고, 수면실에서 한숨 푹 잤다. 낮잠에서 깨니 지난 새벽의 볼락 낚시가 벌써 먼 옛날 일처럼 느껴졌다.기포기 두 대를 틀어놓은 살림통 안에서 볼락들은 여전히 활기차게 움직였다. 오후 낚시는 생략하고, 포항에 거주 중인 선배가 미리 빌려놓은 호미곶면 강사리의 ‘토방토방 황토펜션’에 가 볼락 요리를 준비했다. 포항에 살면서도 볼락회를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다는 선배를 위해, 평소에는 뼈째 썰어 ‘뼈회’를 치지만, 이날은 포를 떠서 썰기로 했다. 볼락회 본연의 식감을 고스란히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다. 회 뜨기에 적당한 크기로 여섯 마리를 골라 손질했다. 볼락 낚시 중 걸려 나온 돌팍망둑 한 마리도 함께 회 치기로 했다. 그러면 한 마리당 네 점씩 총 28점이 나온다. 이만하면 사내 둘이서 술안주 삼기에 충분하다. 회 한 점에 한 잔, 총 28잔이니 소주가 네 병이다. 평소 뼈회를 좋아한다는 선배의 취향을 뒤늦게 알고서는, 갈비뼈와 척추뼈 등을 발라낸 ‘서더리’를 칼로 탕탕 두드려 다진 다음, 참기름과 맛소금 넣고 버무려 뼈회다짐을 만들었다.회만 먹으면 섭섭하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칼집을 낸 볼락 여섯 마리를 구웠다. 고소한 냄새가 피어오르고, 입안에 침이 고였다. 구이까지 상에 올리자 마침내 볼락요리 한상이 완성되었다. 매운탕이 빠지긴 했지만, 사내 둘이 먹는 술상에 지나친 욕심을 부릴 필요가 없다. 처음 볼락회 맛을 보는 선배는 “식감이 쫄깃하면서도 질기지 않게 부드럽고, 맛은 달다”고 호평했다. 낚시꾼들이 먹는 방식이라며 선배에게 김밥에 초장 찍은 회를 얹은 ‘볼락회김밥’을 권했다. 볼락회김밥은 낚시꾼들에게만 허락된 별미, 선배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회도 맛있지만 볼락 요리의 하이라이트는 구이다. 회가 별미라면 뼈회다짐은 특미, 구이는 진미다. ‘겉바속촉’(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게 구워낸 볼락을 손으로 들고 한 입 베어 물자 나도 선배도 황홀한 표정, 선배가 외쳤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생선이 있었다니!” 선배의 흡족해하는 얼굴을 보며 나는 낚시꾼들의 속담을 고쳤다. “볼락은 마음을 읽는 물고기”라고./이병철(시인)

2019-12-08

손맛·눈맛·입맛 사로잡는 볼락 “감성돔이랑도 안 바꿔”

겨울은 동해안 낚시의 최적기다. 낚시는 푸른 바다에서 힘차게 헤엄치는 물고기들의 생명력과 만나는 행위. 주목받는 젊은 작가이자 프로급 낚시꾼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이병철 시인이 동해안 곳곳을 누비며 낚시의 세계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이 연재는 12월 한 달간 진행될 예정이다.다시 겨울이 왔다. 계절에도 표정이 있다면, 겨울은 쓸쓸하고 삭막한 무표정의 얼굴이다. 봄의 생기와 여름의 정열, 가을의 너그러움을 모두 떠나보내고, 이제 어둡고 차가운 겨울을 오래토록 마주해야 한다. 잎을 버린 나무들은 빈 우듬지에 허공을 매달고, 강과 호수는 꽁꽁 얼어붙어 겨울 햇살이 아무리 쓰다듬어도 깨어나지 않을 것이다. 짐승도, 사람도 움츠러든다. 꽃이 사라진 거리의 빈곳을 크리스마스 전구 불빛들이 채우고 있지만, 찬바람이 파고드는 가슴까지 따뜻하게 하지는 못한다.낚시꾼들에게도 겨울은 궁핍한 계절이다. 나는 섬진강변에 산수유, 매화, 벚꽃이 차례로 피는 봄에 쏘가리 낚시를 시작한다. 봄철 동안 쏘가리랑 잘 놀다가 쏘가리 금어기가 되면 바다로 걸음을 돌린다. 태안, 보령, 홍성, 서천, 군산, 부안 등 서해안에 황금어장이 열리는 시즌이기 때문이다. 갯바위에서 우럭, 광어, 쥐노래미 등을 수확하고, 레저보트로 연안 홈통과 곶부리를 치고 빠지며 여름 농어의 손맛을 만끽한다. 여름부터 가을까지는 낚시로 반찬거리를 장만하느라 분주하다. 백조기 낚시를 한번 다녀오면 한 일주일은 집에 조기 굽는 고소한 냄새가 끊이지 않는다. 주꾸미와 갑오징어는 또 얼마나 별미인가? 한번 낚시에 보름쯤은 넉넉히 먹을 만큼 잡곤 한다. 그런데 호시절은 다 끝났다. 서해안 낚시는 12월이면 사실상 종료된다. 차가운 북서계절풍과 한류의 영향으로 바다가 얼음장처럼 냉랭해지기 때문이다.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서해안 낚시가 종료되는 순간 동해안 낚시가 개막되기 때문이다. 겨울 동해는 태백산맥이 찬 공기를 막아주는 데다 난류가 흐르고 또 수심도 깊어 따뜻하다. 12월이 되면 황금어장은 서해에서 동해로 옮겨 온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자연의 섭리인가? 낚시꾼은 축복 받은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어서 울진으로, 영덕으로, 포항으로, 경주로 달려가자. 볼락, 부시리, 방어, 농어, 감성돔, 성대, 우럭, 노래미, 호래기, 참돔, 벵에돔 등 온갖 물고기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겨울 동해안 낚시 기행’의 첫 번째 주인공은 볼락이다. 많고 많은 물고기 중에서 왜 하필 조그마한 볼락을 첫손에 꼽았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작고 앙증맞은 볼락이 감성돔과 농어 같이 크고 늠름한 생선들을 제치고 기행문의 첫 손님으로 초대된 까닭은, 귀하기 때문이다. 볼락은 주로 동해와 남해에서만 만날 수 있다. 동해안이 볼락 낚시터라고는 하지만, 삼척 위로 올라가면 개체수가 급감해 좀처럼 보기가 쉽지 않다. 수심이 깊고, 난류가 흐르며, 수중 암초가 잘 발달된 경북 동해안이야말로 볼락 낚시의 메카인 셈이다. 특히 겨울은 볼락 낚시가 호황을 이루는 계절이다. 1월 전후로 산란을 위해 연안의 해조류와 몰밭으로 몰려드는데, 방파제 테트라포드와 석축, 갯바위, 내항 어디서든 탈탈거리는 볼락 특유의 손맛을 볼 수가 있다.낚시에는 흔히 세 가지 맛이 있다고 한다. 첫째는 손맛이고, 둘째는 눈맛, 그리고 셋째가 입맛이다. 볼락은 이 세 가지 맛을 모두 충족시켜주는 어종이다. 찌낚시와 선상 카드채비 낚시도 많이 하지만, 볼락은 최고의 루어낚시 대상어다. 7피트 전후 울트라라이트 액션의 낭창한 낚싯대에 1천∼2천번 소형 릴, 그리고 0.3∼0.6호의 가느다란 합사 낚싯줄을 사용한다. 1∼3g 정도로 가벼운 지그헤드에다가 1.5∼2인치 웜을 끼운 후 연안의 해조류 지대나 수중 암초 등 장애물 지형에 던져 느리게 릴링을 하면 ‘후두둑…’하는 입질과 함께 돌 틈으로 처박으려는 달음질에 짜릿한 손맛을 만끽할 수 있다. 물 밖으로 꺼내 올린 볼락은 참 귀엽고도 아름다운 자태를 지녀 심미안을 만족케 한다. 꼿꼿하게 펼쳐 세운 등지느러미는 마치 왕관 같고, 크고 동그란 눈은 보석처럼 영롱하게 빛난다.그런데 이 손맛과 눈맛을 다 합쳐도 입맛에는 견줄 바가 못 된다. 나는 우리 바다에서 나는 생선 중 볼락이 가장 맛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회, 구이, 매운탕, 튀김…. 어떻게 요리를 해도 다 환상적이다. 얼마나 맛있으면 경북 동해안 지역 사람들은 ‘바다의 황태자’인 감성돔과도 바꾸지 않는다고 한다. 잡히는 족족 산지에서 다 소비가 되어 서울에선 맛보기도 어렵다. 가끔 구이나 매운탕을 하는 식당들이 있지만, 볼락회를 내는 곳은 보지 못했다. 싱싱하게 펄떡이는 볼락을 회로 썰어먹는 기쁨은 오직 동해안에서, 낚시를 통해서만 누릴 수 있는 것이다.이토록 장황한 ‘볼락 예찬’을 먼저 하지 않고서는 글을 써내려갈 수 없다. 사실 이 말들로도 부족하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볼락 낚시가 너무나도 하고 싶어져서 견딜 수 없다. 얼른 원고를 갈무리하고 낚싯대를 챙겨 포항으로 달려가야겠다. 엊그제 다녀왔지만 또 가고 싶다. 가서 볼락을 만나고 싶다. 낚시꾼은 마치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물고기가 연인인 마냥 보고 또 보고, 보면서도 계속 보고 싶어 한다.지난 주말, 포항 남구 구룡포의 한 방파제를 찾았다. 이번 겨울 들어 처음 나선 볼락 낚시라 가슴이 몹시 설렜다. 낮에 도착해 낚시 준비를 하고, 방파제 주변 연안을 살펴보니 볼락의 은신처이자 산란장이 되는 몰밭이 꽤 형성돼 있었다.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몰밭 주변으로 야행성인 볼락들이 모여들어 활발하게 움직일 것이다. 볼락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 아직 빛이 환하지만 집어등부터 켜두었다. 집어등 불빛을 보고 멸치나 꼴뚜기 등 작은 먹잇고기들이 몰려들면 그걸 잡아먹기 위해 볼락들도 모이게 된다. 그런데 캄캄한 밤에 갑자기 불빛을 밝히면 오히려 볼락의 경계심만 높아지므로, 미리 집어등을 켜두는 게 좋다. 밤낚시가 가장 효과적이지만, 해질녘과 동 틀 무렵 볼락들이 먹이활동을 부지런히 하는 이른바 ‘피딩타임’에만 집중해서 해도 스무 마리쯤은 너끈히 잡아낼 수 있다.이맘때 포항의 겨울은 포근하고 부드럽다. 분홍빛 석양이 지는 저녁 수평선을 바라보며 채비를 던지면, 한 번은 볼락이 물고 올라오고, 또 한 번은 낭만이 걸려 올라온다. 동해의 맑고 푸른 물살이 일으키는 해풍은 상쾌한 향기를 지녀서, 숨을 쉬면 들숨에 피가 맑아지고, 날숨에 고민과 걱정이 빠져나간다. 낚시는 단순히 물고기를 잡는 수렵 및 채집 행위가 아니라 신체와 정신을 모두 건강하게 만드는 스포츠이자 명상, 치유 행위인 것이다.채비를 던질 때마다 톡, 하고 입질을 하는 녀석들은 다 1년에서 2년까지밖에 아직 자라지 않은 ‘젖뽈’(작은 볼락을 칭하는 낚시꾼 은어)들이다. 열쇠고리만 한 어린 볼락들을 잡고 놔주고, 잡고 놔주고 하는 사이 드디어 ‘피딩타임’이 됐다. 물 속 암초와 테트라포드가 시작되는 물턱 자리에서 ‘후두둑’하는 시원한 입질이 연달아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달음질치면서 내 손에 짜릿한 진동을 안겨주는 볼락들은 20cm 전후의 완전한 성체, 포획 금지 체장인 15cm를 훌쩍 넘기는 놈들로만 골라 넣었는데도 살림통이 금방 찼다. 어느 정도 마릿수는 채웠으니 이제는 큰 놈을 노려야 한다. 30cm가 넘는, 민물 붕어로 치자면 ‘월척’에 해당하는 ‘왕사미’(대물 볼락을 뜻하는 은어)를 잡기 위해 나는 채비를 바꾸고, 낚시 장소마저 옮기기로 했다. 새 포인트로 가는 길, ‘왕사미’를 향한 기대와 ‘꽝’에 대한 걱정이 번갈아가며 내 가슴을 두드려댔다. /이병철(시인)

2019-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