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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ㆍ특집

경북 바닷길, 내 한 생애를 사로잡은 빛과 색 온도

빛은 차갑고 공기는 깨질 듯 투명하다. 우듬지 끝에서 쇠잔한 촛불처럼 마른 잎사귀가 흔들린다. 나는 지금 창문으로 서울의 쓸쓸한 겨울 오후를 바라보고 있다. 방 안에는 클라라 주미 강이 연주한 마스네의 오페라 ‘타이스의 명상곡’이 흐르고, 오른손에는 파나마 에스메랄다 게이샤 원두를 갈아서 내린 커피가 들려 있다. 음악도, 커피도, 책상 위에서 빛과 향기로 타는 향초도 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나는 모든 걸 다 잃어버린 기분에 잠겨 있다. 아라파호 인디언들은 11월을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라고 불렀는데, 어째서 내겐 텅 빈 공허와 부재만 남은 걸까. 축제가 끝난 무대 위에 포스터와 팸플릿이 떨어져 나뒹구는 것처럼, 내 마음에는 지금 낙엽들이 스산하게 일어섰다가 넘어지는 중이다.환청처럼, 요란한 소리가 들린다. 지난여름 포항 보경사로 가는 길, 내 귀에 푸른 잎사귀의 방울종을 잔뜩 매달아주던 내연산 매미울음이다. 추억의 주파수를 돌려 본다. 또 다른 환청일까. 아니다. 내 기억에서 들려오는 영덕 고래불의 파도 소리다. 울진 덕구계곡 용소폭포 소리도 들린다. 국립경주박물관 성덕대왕신종의 에밀레 소리가 무수한 금빛 동심원을 그리며 내 마음에 나선형 통로를 열고 있다. 그 안에서 빛과 소리와 냄새가 한 데 섞여 흘러나온다. 수평선이 훔쳐간 천국의 푸른 빛, 박달대게 찌는 냄새, 세상 그 어떤 술보다 아찔하게 달큼한 아까시 향기, 동궁과 월지에 쏟아지던 여자아이들 웃음소리, 울릉 도동의 아침놀, 문무대왕 수중릉을 향해 흔들어대던 무당의 방울소리…… 봄부터 가을까지 내가 다녀간 경북 바닷길의 풍경이다.비로소 마음의 겨울에도 햇볕이 든다. 문학평론가 김현은 “여행은 일종의 정신 치료제이다. 그것은 일상생활 속에 갇혀 자신이 얼마나 노예가 되어 있는가를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살고 있던 자에게 갑자기 그가 그 속에서 편안하게 살고 있던 세계와는 다른 세계를 보여준다. 그것은 그래서 한편으로는 두렵고, 한편으로는 즐겁다. 자신의 달팽이집을 떠난다는 점에서는 두렵고, 새로운 세계를 만난다는 점에서는 즐겁다”고 말했다. 경북 바닷길을 걸으며 나는 정말로 병들고 쇠약해진 내면이 건강하게 회복되는 걸 경험했다. 그래서일까. 긴 여행을 마친 후 허전함을 못 견뎌 무기력에 빠져 있었다. 다시 비좁은 달팽이집으로 돌아와 숨 막히는 일상에 멱살 잡히는 동안 경북 바닷길은 옛 일처럼 까마득히 멀어졌다. 그러나 온몸으로 받아들였던 낯선 감각들이 눈코입 그리고 귀에 아직 남아 있어, 눈을 감으면 나는 여전히 푸르디푸른 길 위에 서 있다.이제 나는 저 금빛 기억의 나선형 통로로 딱 한 번만 더 들어가 보려 한다. 지나온 걸음들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이 글이 경북 바닷길을 여행하는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의 근사한 마지막 페이지가 되길 바랄 뿐이다.경북 바닷길은 발로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귀로, 그리고 코와 입으로 여행해야 한다. 7번국도를 따라 울진에서 영덕으로 이어지는 ‘블루로드’, 포항 호미곶에서 구룡포까지 연결된 해파랑길 14코스, 포항 장기에서 감포로 가는 해안도로에서는 오직 두 눈을 바다에 띄워야 한다. 울릉도 행남바닷길과 태하해안산책로를 걸을 때도 마찬가지다. 가장 순전한 푸른색이 경북 동해에 넘실거린다. 그러나 너무 오랫동안 바다를 바라봐서는 안 된다. 쪽빛 파도를 훔친 두 눈이 푸른 수의(囚衣)를 입은 채 포승줄이 된 수평선에 꽁꽁 묶여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끔씩은 눈을 돌려 울진 불영계곡의 금강송을, 영덕 칠보산의 단풍을, 포항 보경사의 탱자나무를, 경주 황리단길의 야경을 보아야만 한다.고래불로 세차게 달려오는 파도 떼의 말발굽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라. 밤에 월송정에 오르면 달빛에서도 반짝반짝 소리가 난다는 것을 알게 되리라. 구룡포 삼정리 선창가 노을 아래를 걷다가 줄에 걸린 과메기들이 생나무 타는 소리로 몸 부딪칠 때 놀라지 말라. 울릉도 북서쪽 대풍감 절벽에서는 하늘도 바람도 머리를 풀어헤치고 운다. 경주의 아무 고택에서나 하룻밤을 자고 나면 천 년을 날아온 새떼들이 귓가에 금가루 은가루를 물어다 나르는 신비한 소리를 듣게 되리라.늦봄에 걸으면 황홀하게 엎질러진 아까시 향기에 정신을 못 차리고, 여름에 걸으면 햇살에서 피어오르는 뜨거운 연필심 냄새에 마음 여백마다 정념의 문장들이 쓰일 것이다. 가을에는 한 그루 소나무에서도 만 그루 금강송 군락의 서늘한 솔향이 나고, 겨울에는 대게 찌는 냄새가 마음속으로까지 짭조름하게 스며든다. 경주에 가서 황남빵이 노릇노릇 익어 가는 냄새를 맡아봐야 한다. 포항 죽도시장에서 돼지머리 삶는 냄새를 들이켜 봐야 한다. 울릉도 향나무들의 살 내음과 영덕 괴시마을 돌담에 내려앉은 조각구름 냄새를 들숨에 삼켜 봐야 한다.봄에는 도다리쑥국을 먹어야 한다. 바다의 못생긴 것과 땅의 못생긴 것이 몸을 합쳐 한 그릇의 아름다운 봄으로 오는 것을 떠먹으면 눈물이 난다. 여름에는 물회를 먹어야 한다. 경북 동해의 여름 더위는 물회 없이는 견뎌낼 수 없다. 사랑하는 이와 마주앉아 먹으면 달콤한 것은 여름의 낭만이고 새콤한 것은 사랑의 기쁨이 된다. 가을에는 문어를 삶아 먹어야 한다. 통통한 문어 다리가 옅은 단풍빛으로 물들면 제대로 삶아진 것이다. 쫄깃쫄깃한 문어숙회를 씹을 때 근심 걱정도 함께 씹으면 좋다. 겨울에는 박달대게와 홍게, 과메기 그리고 볼락을 먹어야 한다. 다정한 사람들과 함께라면 한 상에다 대게부터 볼락까지 다 올려놓고 만찬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밤이면 달의 꼬리가 희미해질 때까지 술잔이 돌기 쉬우므로, 아침에는 반드시 물곰탕이나 복국으로 속을 풀어야 한다.경북 바닷길 여행에 아쉬운 점이 없는 것만은 아니다. 울진은 여전히 교통 여건이 불리하다. 교통 여건이 점차 개선될 때 지역 관광 자원에 대한 홍보도 더 적극적으로 이뤄졌으면 좋겠다. 영덕은 대게와 회 말고도 다른 먹거리들이 많이 개발되어야 한다. 관광객들에게 선택의 다양성을 제공해줘야 한다. 강구항을 비롯해 이곳저곳 너무 많이 설치되어 미관을 해치는 대게 조형물들은 정리를 좀 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울릉도는 딱 하나, 비싼 물가가 문제다. 육지와 멀리 떨어진 지리적 제한이 있다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물가가 비싼 여행지라는 오해만큼은 확실히 벗어야 한다. 포항은 여러 관광 인프라가 잘 마련되어 있지만, 1인 여행객들이 이용하기 편한 게스트하우스를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트렌드에 맞는 숙박시설이 생겨나길 희망해본다. 경주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우려된다. ‘황리단길’이 있는 황남동에는 지금 이 시간에도 새로운 한옥 건물이 지어지고 있는데, 겉의 형식만 한옥이고 전통일 뿐 그 속은 획일적인 유행문화로 채워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주라는 도시의 특별한 매력은 오래된 가치를 지켜나갈 때 함께 보존되는 것이다.그러나 이런 지적들은 다 너무 사랑하기에 생겨나는 집착의 산물이다. 괜한 노파심이 빚어낸 볼멘소리일 뿐이다. 봄부터 겨울까지 내가 걸었던 경북 바닷길 537km는 내 한 생애를 사로잡은 빛과 색 그리고 온도가 되었다. 그 길 위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으며, 내가 모르는 곳에서 저 동해는 한없이 아름답다. 지금 이 순간에도.“나는 그때 눈물 어린 눈자위로 큰 불빛을 쳐다보며 소리쳤었던 것이다ㅡ‘안녕’이라고. 사실 이 엄청난 불빛의 대화 앞에서 내가 자신 있게 뱉어낼 수 있었던 유일한 단어는 해후를 알리는 ‘안녕’ 이외에 아무것도 없을 것이 아닌가. 그래 나는 한없이 부르짖고 있었다ㅡ‘안녕 안녕’이라고.” 다시 김현의 글(‘불빛이 말하는 이유’)을 인용하는 것은 이제 나도 저 푸른 바닷길을 향해 안녕, 안녕이라고 인사해야 할 때가 됐기 때문이다. 삶은 우연들로 이뤄진 필연이다. 바닷길에서 스쳐간 수많은 햇빛과 바람과 파도와 사람들이 나에겐 영원의 풍경이 되었다. 경북 바닷길 위에서 세상은 한없이 아름다웠고, 나는 그 아름다움에 미쳐 몇 개의 계절을 환각처럼 고통 모르고 살았다. 다시 만날 그때까지 안녕, 안녕. /시인 이병철끝

2019-11-24

생경한 풍경·소리·냄새… ‘낯선 차원’으로 떠났던 길

이제는 지나온 길들을 추억할 때다. 지난봄부터 시작한 경북 바닷길로의 긴 여행은 겨울비와 함께 끝났다. 그러나 여행은, 단 한 번 물리적 체험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회상이라는 마음의 발걸음을 통해 언제든 재방문과 열람이 가능한 무한재생의 세계다. 나는 겨울에서 가을로, 가을에서 여름으로, 여름에서 봄으로 지나온 길들을 되돌아가며 그때는 미처 눈길을 주지 못했던 풍경과 사람들을 향해 다정하게 인사하고자 한다.여행이 가장 아름다워지는 순간은 뜻밖의 풍경과 마주할 때다. 예기치 못한 특별한 경험을 통해 ‘나’의 상투적인 관념과 습관들이 쇄신될 때, 여행은 더욱 가치 있는 체험이 된다. 널리 알려진 명소를 찾는 것이 여행의 큰 기쁨이겠지만, 알려지지 않은 장소를 발견하거나 또는 전혀 특별해보이지 않는 곳에서 특별한 순간과 만날 때 여행의 기쁨은 무한대로 증식한다. 상투성과 관념, 기성의 유행에 길들여진 ‘나’를 낯선 곳으로 데리고 갈 때, 거기서 퇴화된 감각들로 하여금 새로운 감동과 충격을 받아들여 눈과 코와 입을 갱신하게 할 때 여행은 참된 의미를 획득한다.그러므로 우리는, 가끔씩이나마 편리하고 익숙한 일상의 자리에서 벗어나 생경한 풍경과 소리, 냄새가 있는 ‘낯선 차원’으로 갈 필요가 있다. 시와 평론, 논문, 칼럼, 에세이 등 온갖 글쓰기로 좀처럼 일상을 벗어날 수 없던 나도 ‘낯선 곳에서의 방랑’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했다. 일상에 갇혀 있으니 생각도 고인 물이 되어 썩어갔기 때문이다. 새로움에 대한 갈증이 깊어졌다. 새로움을 위해선 익숙함과의 결별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는데, 자기존재를 ‘모르는 자’이자 ‘질문하는 자’, ‘감동하는 자’로 복원하는 과정에는 방랑이 필수적이다.그동안 부계(父系)의 혈통인 석양을 따라 서쪽으로, 모계 혈통인 “김 냄새 나는 비”(백석, ‘통영1’)를 따라 남쪽 바다로만 다녔던 나는 울진부터 경주에 이르는 경북 바닷길을 이번에 처음으로 ‘종주’했다. ‘종주’의 사전적 정의는 “능선을 따라 산을 걸어, 많은 산봉우리를 넘어가는 일”인데, 해안선을 따라 해변을 걸어, 많은 파도를 넘어갔으니 이번 여행을 바닷길 종주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여행은 보편 공감의 영역에서 어느 장소의 분위기와 정서를 타인과 공동으로 향유하는 집단체험이 아니다. 개별의 뒷골목에서 상점의 불빛과 음식 냄새와 노랫소리, 살갗에 피어나는 호기심을 나 혼자 감각으로 전유하는 행위다. 특히 경북 바닷길은 패키지 단체 관광이 아닌 단독 자유 여행이어야 한다. 몸은 다시 돌아가도 마음만은 떠나온 자리로 돌아가지 않는 편도 여행이어야 한다. 여행은 어떤 식으로든 사람의 내면을 변화시키기 마련이다. 나는 이번 여행으로 얼마나 달라졌을까? 내 내면을 새롭게 한 감동과 충격들을 어디서 어떻게 만나왔을까?지난계절 동안 파도를 수직으로 깎아내는 울릉 태하 대풍감에 서 있었다. 아까시 향기가 수평선을 노랗게 물들이는 걸 바라보며 울진 월송정에 앉아 있었다. 해물잡탕국수가 모락모락 끓는 포항 구룡포항에 퍼질러져 있기도 했고, 햇살과 물이 금빛 동색(同色)으로 흐르는 영덕 오십천에서 낚시도 했다. 신라의 달밤 아래 천 년 전 사람들의 미소가 연못에 비치는 경주 월지를 한참 바라보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은, 그 선명한 장면들의 틈새마다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별 것 아닌 순간들’이 내 여행을 키운 ‘팔할의 바람’이었다.지난봄 “만 그루 소나무 가운데”에 세워진 울진 월송정에서 초록빛 솔향에 몸을 씻을 때, 정자 앞 소나무 숲에 한 무리의 교인들이 돗자리를 깔고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차를 아무렇게나 세워놔 경치를 망치고, 마이크와 앰프로 시끄러운 소음을 내 고요한 명상의 기쁨을 깨뜨리는 것이었다.그 공해를 피해 월송정에서 내려오니, 나를 위로하듯 멋진 카페가 기다리고 있었다. 하늘을 향해 몸을 뻗어 올린 울창한 소나무 숲 속, 기와지붕과 모던한 통유리 건물이 옛것과 새것, 한옥과 양옥, 동양미와 서양미의 조화를 이루는 카페 ‘노바(NOBA)’다. 화이트 톤의 벽과 은은한 조명빛, 한옥식 나무 서까래가 어우러진 내부도 좋지만, 그곳이 매력적인 이유는 바깥에 있다. 야외 테라스에 앉아 아이스커피를 한 모금 마시자 커피와 함께 피톤치드가 몸속으로 스며들며 불쾌함이 싹 씻겨나갔다. 내 몸속 나쁜 피와 불쾌감까지 깨끗하게 씻어준 그 한 잔의 커피에게 이제야 고맙다고, 늦은 인사를 보낸다.영덕에서는 목은 이색 기념관으로 가는 길, 영해면 괴시마을의 고즈넉한 정취가 마음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그곳의 오래된 햇살에선 해금 소리가 나는 듯했다. 괴시마을을 걷다가 괴정(槐亭) 앞에 멈춰 섰다. 1766년 조선 영조 때 괴정 남준형 선생이 지은 정자다. 마당에서는 전통 활쏘기 체험이 한창이었다. 담장 너머로 그 광경을 엿보다가 활쏘기를 지도하던 영양남씨 괴시파의 어르신과 눈이 마주치는 바람에 나도 마당으로 가 활을 당겨 보았다. 지금도 내 몸엔 그날 손끝에서부터 손목, 팔꿈치, 어깨로 이어지던 팽팽한 근육의 긴장이 새겨져 있다. 따사로운 봄볕 속에서 고요히 침묵하는 입술은 바짝 마르고, 머리칼을 한 올 한 올 세고 가는 섬세한 바람에 뺨이 부르르 떨렸다. 그때, 한 눈을 감고 바라본 세상은 참 아름다웠다. 몇 번 연습 끝에 과녁을 명중시키자 어르신께서 활짝 웃으며 박수를 쳐주셨고, 그제야 긴장이 풀리면서 내 온몸이 가벼워졌다.포항에는 뜻밖의 ‘밤의 카페 테라스’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부산 아귀찜’에서 아귀간수육과 아귀찜을 배불리 먹고 숙소로 들어가던 길, 모던풍의 레스토랑과 카페들이 밀집해 있는 환호동 카페거리의 불빛에 매료되어 아무데나 들어간 곳이 ‘커피명가’였다. 그곳 야외 테라스에서 영일만의 야경을 바라보며 갓 구워낸 빵과 커피, 아포가토 등 디저트를 즐겼다. 커피도 커피지만 페이스트리와 케이크 등 빵맛이 빼어났다. 깨끗하게 씻긴 달과 별과 어선의 불빛들이 수평선 빨랫줄에 나란히 걸린 밤, 음식 평론가 황광해 선생, 홍성식 기자와 마주 앉아 나누는 대화는 어둠이 푸르게 깊도록 좀처럼 지치지 않았다.문무대왕릉과 감포를 지나 선덕여왕릉에 오를 때까지 경주는 내내 맑고 따사로웠다. 황남동에 도착하는 순간, 마른하늘에서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소나기는 이른 여름의 열기를 식혀주면서, 선덕여왕을 짝사랑한 천민 지귀처럼 혼자 애달파 끓는 내 가슴 열병을 달래주면서 시원하게 내렸다. 갑자기 내린 비에 황남동은 한바탕 소란스러웠다. 비를 피해 이리 저리 뛰어다니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도 배낭으로 비를 막으며, 막기는커녕 머리부터 발끝까지 흠뻑 젖으며 처마를 때리는 빗소리가 왁자지껄 웃음소리처럼 들리는 ‘황남고택’의 문을 열었다. 삐거덕거리는 문소리, 마당에는 벌써 물웅덩이가 요란스럽게 부서지고 있었다. 처마 밑에 겨우 비를 피하고 섰더니 그 집 주인 어르신께서 맨발로 달려 나와 마른 수건을 건네주셨다. 비에 젖은 얼굴을 수건으로 닦아낸 후 나와 어르신은 마주보며 웃었다. 경주는 그렇게 천년의 마음으로 나를 격하게 환영해준 것이었다.이런 일들도 있었다. 해파랑길을 걷다가 갑자기 배낭의 어깨끈이 떨어져나가 당혹스러웠고, 시장 상인들끼리 드잡이하는 걸 구경하다가 버스를 놓쳤다. 지갑을 두고 와 밥값을 외상으로 치르기도 했다. 경주 보문단지에서 빌린 전동스쿠터가 방전돼 손으로 낑낑 밀면서 간 적도 있다. 그때는 별로 대단한 사건들이 아니었는데, 지금 돌아보니 참 잊히지 않는 장면들이다. 늘 환하게 켜져 있어서 빛이 빛인 줄 모르는 사이, 사소하기에 특별한 순간들이 여행을, 우리의 삶을 가로등처럼 밝혀준다는 것을 나는 이제야 알겠다. /시인 이병철

2019-11-17

분홍으로 물든 천년고도에는

나는 봄에 떠났다가 겨울이 되기 전에 돌아오고 싶었다. 봄과 여름 동안 경북 바닷길 537km를 부지런히 걸었다. 물길에 잠겨 걷고, 바람길에 두 발이 붕 떠 날면서, 수평선에 불을 지르는 석양과 푸르스름한 별들의 자맥질을 향해 멈추지 않고 나아갔다. 다시 울진에서 영덕, 포항을 통과해 경주로 들어서려는 순간, 뺨에 닿는 공기가 얼음을 흉내 내고 있음을 알았다. 차가운 대기 속에서 나는 계절이 바뀌듯 나도 어딘지 달라졌음을, 소리 없지만 분명한 변화가 내 안에 일어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무엇이 어떻게 변했는지는 아직 모르는 채,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멀지 않았다는 서늘한 사실만을 피부로 느끼면서, 걸음을 재촉했다.아까시가 피고 지고, 장미가 피고 지고, 수국이 피고 지고, 장마와 태풍이 지나가고, 거리에 은행잎이 수북이 쌓이는 동안 몇 사람을 만났고, 몇 사람과 헤어졌다. 사람이 들어왔다가 나간 마음의 방은 이제 텅 비어,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긴 겨울을 기다리고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새로운 길은 열리고, 여행을 멈추는 순간 또 다른 여행이 이미 시작되는 법인데, 마음에는 작은 발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괜찮다. 지난 계절, 경북 바닷길을 혼자 누비면서 나는 자연과 끊임없이 교감했으며, 사람이 줄 수 없는 위로와 감동을 신라의 푸른 길 위에서 얻었기 때문이다.“갈수록, 일월(日月)이여/ 내 마음 더 여리어져/ 가는 8월을 견딜 수 없네/ 9월도 시월도/ 견딜 수 없네/ 흘러가는 것들을/ 견딜 수 없네/ 사람의 일들/ 변화와 아픔들을/ 견딜 수 없네/ 있다가 없는 것/ 보이다 안 보이는 것/ 견딜 수 없네/ 시간을 견딜 수 없네/ 시간의 모든 흔적들/ 그림자들/ 견딜 수 없네/ 모든 흔적은 상흔(傷痕)이니/ 흐르고 변하는 것들이여/ 아프고 아픈 것들이여”포항 양포를 지나 동해의 푸른 해안선을 왼쪽 옆구리에 낀 채 경주로 가는 길, 정현종 시인의 시 ‘견딜 수 없네’를 외우며 하늘과 바다를 한참 바라보았다. 불과 6개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있었던 “변화와 아픔들”을 생각했다. “흐르고 변하는 것들”과 “아프고 아픈 것들”이 많았지만 그때마다 저 하늘과 바다가 나를 안아주었다. 이제는 저 파도와도, 저 수평선과도 헤어져야 할 때, 여행을 마치기 위한 여행이 막 시작되는 중이었다.마음이 허전하면 몸도 헛헛해진다. 허기를 달래기 위해 경주에 도착하자마자 찾은 곳은 월성 서쪽, 교동의 ‘교리김밥’이다. 경주의 식당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다. 전국 각지에서 온 손님들로 늘 문전성시를 이룬다. 메뉴는 오직 김밥과 잔치국수 뿐. 김밥 두 줄과 잔치국수 한 그릇을 주문했다. 이 집 김밥의 특징은 달걀지단이 잔뜩 들어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소하고 은은한 단맛이 느껴진다. 씹을 때마다 보들보들하고 푹신한 식감이 입 안에 퍼진다. 화려하진 않지만 은근히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 잔치국수는 본연의 맛에 충실하다. 아, 이 반가운 것!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 이 그지없이 고담하고 소박한 것”(백석‘국수’) 앞에서 나는 새벽기도 드리는 신자의 둥근 등처럼 바짝 엎드리고 싶어졌다. 배고픔이 해소되니 마음의 허전함도 사라졌기 때문이다. 언제 상념에 빠졌었냐는 듯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나라는 인간이 이토록 단순하다. 아니다. 김밥과 국수가 그만큼 힘이 세다.오후 두시는 햇살이 가장 너르게 퍼지는 시간, 이맘때의 날빛에는 온화하면서도 쓸쓸한 표정이 있다. 그 표정은, 뜨겁게 사랑했다가 그 정념 오래 전에 다 식고, 추억으로만 남은 옛 연인을 바라보는 이의 눈빛처럼 아련하고 애틋하다. 그래서 이 계절의 햇살 속을 걷는 것은 추억과 그리움의 이정표들을 따라 내 마음의 풍경들을 들여다보는, 내면으로의 여행이다. 지난날 함께 경주에 가자며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했던 사람은 곁에 없고, 그 새끼손가락의 감촉만 손 끝에 하얗게 남아 있는 가을 오후, 나는 추억을 향해 속력을 더 내기로 했다. 걷는 대신 탈것을 이용하는 편이 낫다. 보문관광단지 앞에는 전동스쿠터와 자전거, 4륜 바이크 등을 대여해주는 상점이 즐비하다. 전동스쿠터 한 대를 빌렸다. 전기로 움직이기 때문에 소음 없이 달리고, 제법 빠르기도 해 운전하는 재미가 쏠쏠했다.전동스쿠터를 타고 선덕여왕 공원으로 달렸다. 선덕여왕 공원이 있는 보문호수변은 지금 분홍색 축제가 한창이다. 핑크뮬리 갈대밭이 꽃차례를 하는 시절, 핑크뮬리와 울긋불긋한 단풍과 은빛 물결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색채의 콘서트가 열린 것이다. 선덕여왕 공원에는 수많은 연인들이 인생의 핑크빛 한 철을 만끽하고 있었다. 지금이 다시없을 순간이라는 듯이. 그 마음들을 아는지 핑크뮬리는 기꺼이, 폭죽처럼 터지는 소중한 웃음들의 배경이 되어주었다. 연인들의 두 뺨도, 하늘도 모두 분홍색으로 곱게 물들어 있었다.하지만 가을해는 지나치게 빨리 진다. 오후 다섯 시가 조금 넘은 시간인데도 사위가 어둑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경주를 걷는 사람의 마음은 날이 저물어도 캄캄해지는 법이 없다. 경주는 신라의 천년 보석, 밤에 더 찬란한 ‘빛의 도시’이기 때문이다. 석양과 어스름이 신비한 빛을 내는 저녁, 첨성대를 찾았다. 1300년 전 사람들이 별을 관측하고 우주를 가늠하기 위해 세운 탑,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다. 첨성대를 통해 신라 사람들은 해와 달과 별을 관측하고, 우주의 섭리를 학습하며, 국가의 길흉화복을 점쳤다. 우주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곧 인간을 이해하려는 노력이기도 해서, 신라인들은 인간은 소우주고 자연은 대우주라는 사실을, 미물에도 우주가 깃들어있다는 것을 일찍이 깨우쳤다. 그래서 그들은 육체가 죽어도 영혼은 하늘에 올라가 우주에 편입된다고, 해 달 별 바람 비 천둥 번개 흙으로 영원히 산다고 믿었다. 천문대는 첨성대인 동시에 제단(祭壇)이었던 것이다.첨성대에서 동궁, 월지까지 걸었다. 밤공기는 차갑고 신라의 불빛은 따뜻했다. 월지의 물거울 속에서 동궁은 금관처럼 화려한 빛을 뿜으며 일렁였다. 야경에 매혹된 사람들이 연못 주변을 빙빙 돌고 있었다. 지난봄에는 축제의 들뜸이 가득했는데, 늦가을 동궁과 월지에는 고요한 아름다움만 남았다. ‘가을이 저물어가는구나. 저 불빛들도 “시간의 모든 흔적들”이자 “그림자들”이자 “상흔”이 아닌가?’ 어떤 사람들은 연인과의 헤어짐처럼 계절과도 이별한다. 나도 그렇다. 가을을 보내는 마음이 애처롭다. 첫눈이 내리고 긴 겨울이 시작되면 오래된 사진을 펼쳐 보듯 가을밤 경주의 불빛들, 그 쓸쓸한 표정들을 오래토록 추억할 것이다.황리단길의 휘황찬란한 불빛들 속에서도 나는 색이 바란 은행나무 낙엽을 보았다. 거리는 깨끗했지만 마음속에서 자꾸 바스락 바스락, 낙엽 밟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황오동 ‘진가네 대구갈비’까지 걸었다. 이 집의 매운돼지갈비찜은 찬바람이 불 때 먹어야 제 맛이다. 양은냄비에 담긴 돼지갈비를 한 젓가락 집어 입에 넣고 우물거리면 입 안에 단풍이 든다. 화끈거리는 매운맛에 몸에서 열이 오르는 순간, 콧물인지 눈물인지 뭉클한 것이 갈비찜과 함께 쑥 목구멍으로 넘어간다.또 한해를 살았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스스로가 대견하다. 세상은 어수선하고 캄캄하지만 나는 여전히 저 불빛들처럼, 내 생을 온몸으로 태우며 멋지게 살아 있다. 세상이 자주 멈추고, 때로 후퇴하더라도 나는 끝없이 움직이고, 나아가야 한다. 올해는 다 가지 않았고, 내게는 아직 더 걸어가야 할 경북 동해의 바닷길, 영원으로 가는 신라의 푸른 길이 남아 있다. ‘그러니 다시 걷자. 발끝이 파랗게 물드는 저 길 위로 다시 나를 데리고 가자.’ 식당에서 나오니 경주의 불빛들이 아련한 눈시울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인 이병철

2019-11-10

드라마 주인공 된 듯 구룡포 누비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구룡포로 가는 길에는 언제나 기분 좋은 긴장 상태가 된다. 흔히 ‘설렘’이라고 말하는 감정의 고조를 느끼기 때문이다. 겨울과 봄 사이, 늦겨울이라고 부르기엔 따뜻하고 초봄이라고 부르기엔 추운 그 짧은 한 철을 나는 ‘겨우봄’이라고 이름 붙였는데, 겨우봄 구룡포는 푸른 파도와 흰 담벼락 사이로 언뜻 붉은 입술을 비추는 동백꽃의 숨바꼭질이 명랑하다. 그러다 술래인 햇살이 세게 달려들면, 동백 무리는 일제히 꽃잎을 크게 벌리고 깔깔 웃는다. 그때 비로소 골목마다 봄빛 수다가 수런거리기 시작한다.가을과 겨울 사이를 ‘가울’ 혹은 ‘겨을’이라고 불러볼까? 너무 작위적이다. 아직 멀리서 오는 첫눈의 발소리가 들리지 않으므로, 구룡포의 이 계절을 그냥 늦가을이라고 부르자. 단풍이 절정으로 타오르는 늦가을이지만, 지금 구룡포에는 엉뚱하게도 동백꽃이 여기저기 난리다.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이야기다. 일본인 가옥거리로 알려진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는 드라마 속 배경인 ‘옹산간장게장 골목’으로 모습을 바꿨다.근대문화역사거리에 들어서서 나는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구룡포에 웬 간장게장집이?’ 동해안 홍게와 대게를 가지고 게장을 담그는 새로운 음식 문화가 생겨난 줄로만 알았다. 드라마를 보지 않은 탓이다. 인기리에 방영중이라 제목은 귀에 익은데, 이곳 구룡포에서 촬영한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다. 이날 근대문화역사거리는 관광객들로 붐볐다. 아무리 주말이라지만 평소보다 훨씬 사람이 많은 이유는 바로 드라마에 있었다. 사람들은 극중 주인공 동백(공효진)이 운영하는 술집 ‘까멜리아’ 앞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길게 줄을 서고, 사진을 찍고는 함박웃음 짓는 것이었다. 행복이란 이토록 소박한 찰나에 있구나, 나는 생각했다.보수적이고 전통적인 가치관을 지닌 마을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면서도 꿋꿋이 실내포장마차를 운영하며 아들을 키우는 미혼모 동백, 그리고 그녀에게 첫눈에 반해 세상 통념과 타인의 시선에 아랑곳 않고 무작정 돌진하는 동네 순경 용식, 그 둘의 러브 스토리를 중심으로 드라마는 차별과 소외의 상처를 치유하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시청자들은 용식의 순정한 사랑을 통해 동백의 아픔들이 아물어가는 과정을 보며 위로를 얻는다.‘옹산’을 찾아온 사람들은 간장게장골목에서 호떡과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고두심이 운영하는 백두할매간장게장집의 원래 정체가 ‘호호면옥’이라는 사실에 박장대소하며 안으로 들어가 냉면과 갈비탕을 먹었다. 골목을 나서면 꿈에서 깨듯 다시 구룡포,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옹산 골목을 거닐던 사람들은 구룡포 전통시장과 수산물직판장으로 흘러들어 포항의 특산물들을 두 손 가득 구입했다. 드라마 제작진에 따르면 촬영 장소를 물색하기 위해 전국을 다 돌아다녔지만 구룡포만큼 아름다운 곳이 없었다고 한다. 한편의 드라마가 태풍으로 침체된 지역경제에 활력을 일으키고, 경색된 한일관계로 입장이 난처해진 ‘일본인 가옥거리’의 이미지마저 쇄신시킨 것이다. 문화 콘텐츠의 힘이 새삼 대단하다고 느꼈다.구룡포 해수욕장은 태풍이 헤집고 간 상처들이 아직 다 아물지 않아 보였다. 흰 모래가 곱던 해변에는 흙과 돌, 파도에 떠밀려온 쓰레기들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다. 그래도 구름과 파도는 여전히 새하얀 꿈과 푸른 희망을 노래하는데, 어디서 떠밀려왔는지 해변에 돼지저금통 하나가 굴러다녔다. 온통 희고 파란 색만 가득한 가을 바다에서 빨간 돼지가 풍경의 온도를 높이는 것이었다. 아프리카돼지열병도, 살처분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저 돼지, 배가 갈린 채 동전들을 다 토해내야 했지만 덕분에 돼지는 가벼움을 얻어 바다를 건널 수 있게 되었다. 이내 큰 파도가 달려와 돼지저금통을 바다로 실어갔다. 물살을 타고 망망대해로 멀어져가는 돼지저금통이 마치 동백꽃처럼 보였다. 내 마음의 끓는점에 불이 켜졌다.햇빛이 지상의 그림자들을 길게 늘어뜨리는 걸 보니 이제 또 다른 드라마를 만나러 갈 시간, ‘동백꽃 필 무렵’보다 한 1,900년쯤 전에 이미 포항은 문화 콘텐츠의 땅이었다. 포항이 ‘연오랑 세오녀’ 설화의 고장임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신라 제8대 아달라왕 때 일이다. 포항 바닷가에 연오랑과 세오녀 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갑자기 큰 바위가 바다에서 솟아올라 연오랑을 싣고 일본으로 갔다. 일본에 간 연오랑은 한 고을의 왕이 되고, 남편을 찾아 나선 세오녀 역시 바위를 타고 일본에 가 부부는 재회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 부부가 해와 달이 육화(肉化)된 신령한 인간들이었다는 점이다. 연오랑과 세오녀가 떠나자 신라의 해와 달은 빛을 잃어버렸다. 왕은 일본에 사신을 보내 부부의 귀환을 요청했지만, 연오랑은 하늘의 뜻이라며 귀환을 거부한 대신 세오녀가 짠 명주 비단을 건넸다. 신라 사람들이 그 비단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자 해와 달이 다시 빛을 찾았기에 왕은 그 비단을 국보로 삼아 보물창고에 보관했다. 그리고 그 비단 창고를 귀비고(貴妃庫)라 불렀다.구룡포에서 포항 시내로 가는 길, 가을 햇빛이 비단처럼 영일만을 덮고 있었다. 남구 동해면 임곡리의 ‘연오랑 세오녀 테마공원’을 찾았다. 2017년에 개장한 이곳 공원은 연오랑 세오녀 설화를 주제로 ‘공간 스토리텔링’을 해 방문객들에게 지식적 유익함과 감성적 즐거움을 동시에 제공한다. 전설 속의 귀비고는 이곳 테마공원에 와 귀비고 전시관이 되었다. 귀비고 전시관에는 연오랑 세오녀 설화가 기록된 한국과 일본의 각종 고문헌들을 비롯해 4D체험관, 영상관, 포토존, 카페 등 다양한 체험 및 문화 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귀비고 전시관을 둘러보고 밖으로 나서면 잔디밭과 꽃나무들이 싱그러운 자연의 향기를 뿜는다. 바닷바람은 팽팽하게 당겨진 수평선이 연주하는 현악 소리를 귀에 실어 나른다. 야외공원엔 쌍거북바위, 일월대, 신라마을 등 여러 볼거리들이 있지만, 무엇보다 근사한 것은 노을이다. 연오랑 세오녀 테마파크는 포항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을을 감상할 수 있는 장소다. 세오녀가 짠 명주 비단이 되찾아준 빛일까? 태양이 영일만을 온통 금빛으로 휘감는 시간, 석양 속에서 역광의 그림자가 된 젊은 남녀들은 말없이 사랑의 대화를 속삭였다. 이리 봐도 저리 봐도 너무 많은 연오랑 세오녀들, 그 근처를 괜히 얼쩡거리다가 연인들의 기념사진을 망치는 ‘곤란한 정물’이 될까봐 나는 자리를 피했다.공원 한쪽에서는 2019 포항 무용제가 열리는 중이었다. 공식 경연에 앞서 포항시 어머님들 취미 무용단의 세오녀 길쌈놀이가 한창이었다. 한복을 차려입은 어머님들이 태양빛을 형상화한 빨간색 노란색 대형 비단을 펼쳐 들고 강강술래하는 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눈물이 터져 혼났다. 이유는 모른다. 어머님들의 동백꽃 같은 웃음 뒤에 첩첩이 쌓였을 고단한 삶을 엿본 탓일까. 아니면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길쌈놀이를 보며 아이처럼 손뼉 치고 좋아하는 할머님의 뒷모습 때문일까. 요양병원에 누워 꼼짝도 하지 못하는 내 할머니 생각이 났다. 정정하셨을 때는 장충체육관에 모시고 가 마당놀이 구경도 시켜드리곤 했다. 눈물로 얼굴이 더 엉망이 되기 전에 나는 서둘러 테마공원을 빠져나왔다.포항 시내의 토요일 밤은 화려한 불빛들이 밝혀드는 축제, 그러나 휘황찬란한 불빛들을 뒤로 하고 어둔 시장 골목, 허름한 옛 식당의 문을 열었다. 북구 장성동 장성시장 안에 있는 ‘영주식당’의 고래수육은 일품이다. 어떻게 삶아내는지 고래 특유의 냄새가 전혀 없고, 부위마다 다른 식감이 고스란히 살아 있다. 고래수육 한 접시는 미식 중의 미식이자 최고의 안주, 술잔을 비우다 보니 접시도 금방 비워졌다. 얼큰한 국물 생각이 나 찌개를 주문했다. 메뉴판에 없는 가자미 찌개가 상에 올랐다. 한 숟갈 떠먹자 붉은 고춧가루와 탱글탱글한 가자미살이 몸속에 동백꽃을 활짝 피웠다. 꽃은 아래에서부터 피어 위로 올라오기에, 식당을 나서서도 나는 두 볼에 동백꽃, 동백꽃 발그레 매단 채 밤거리를 걸었다. 그날 밤에는 낡은 여관방 이불이 세오녀의 비단처럼 부드럽게 꿈속까지 감싸주었다.           /시인 이병철

2019-11-03

순도 높은 파랑, 찬란한 금빛… 아름다운 것들은 늘 그대로다

다시 영덕으로 가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얼마 전 태풍 ‘미탁’으로 경북 동해안 지역이 큰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고래불로 가는 길, 가을 하늘은 언제 그토록 흉포했냐는 듯 눈이 부시도록 맑았다. 햇살 속에서 소나무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초록빛을 빛내고 있었다. 그러나 바다는 아직 태풍의 날카로움을 기억하고 있었다. 세차게 밀려오는 파도는 방파제에 부딪쳐 낱낱이 부서지고, 여기저기 심하게 할퀴어진 해변은 말이 없었다. 곳곳에 모래와 자갈, 쓰레기 등이 한 데 쌓여 더미를 이루고, 찢어진 천막과 간판, 쓰러진 나무와 기둥들이 바람 불 때마다 바다를 대신하여 신음하는 것이었다.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한 사람이라도 더 찾아주는 게 바다에게도,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그나마 작은 위로와 기쁨이 될 것이다. 거센 태풍도 영덕 바다의 아름다움을 해치지 못했다고, 아름다운 것들은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고, 나는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고래불과 대진 해수욕장은 여전히 순도 높은 파랑을 빚어내고, 태풍이 지나간 하늘은 공중에다 하얀 뭉게구름을 국화꽃처럼 피워놓고 있었다.태풍이 휩쓸고 간 해변에는 ‘쓸쓸한 황홀함’이 있다. 이때 황홀함은 풍경이라는 외부적 자극에 의한 고취인 동시에 슬픔이라는 내적 작용이 몰고 온 일종의 환각적 상태다. 슬픔 속에 오래 침잠되어 있다 보면 세상이 비현실적 공간처럼 여겨진다. 사랑하는 이의 부재이든 육체의 고통 또는 현실의 절망이든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이다. 영덕 바다는 거짓말처럼 아름다웠다. 대진해수욕장을 걸으면서 나는 정지용이 ‘유리창 1’에서 토로한 “외로운 황홀한 심사”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바닷바람이 목 소매로 들어가 등이 서늘했다. 바람 때문인지 아니면 파랑 때문인지, 또는 수평선이 튕겨내는 가을 햇살 때문인지 눈에 자꾸만 물기가 고였다. 무언가 활달하고 복작거리는 온기가 필요한 시간, 눈을 좀 말려야겠다. 장날은 아니지만 영해만세시장의 표정이 궁금해졌다. 상설시장이 운영되고 있으니 언제 찾아도 시장 구경하는 쏠쏠한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티 없이 푸르른 하늘 아래 빨강 노랑 초록 파랑 파라솔들이 무지개를 띄워 놓은 영해읍내를 걸었다. 오래된 전통 시장은 이제 아케이드 안으로 자리를 옮겨 비와 바람, 추위로부터 안전해졌다. 바닷바람에 시렸던 내 몸도 아케이드 안에서 훗훗해졌다.말린 생선, 멸치, 김, 젓갈 등 해산물과 함께 눈길을 끄는 것은 돼지 머릿고기와 순대였다. 아니, 눈길을 끄는 게 아니라 콧길을 끌었다. 냄새가 나는 쪽으로 코를 벌름거리면 그곳엔 어김없이 어르신들 몇이 대낮부터 식당에 주저앉아 털 숭숭한 머릿고기와 따끈따끈한 돼지 간을 안주 삼아 탁주를 마시고 있었다. 입에 고인 침을 삼키며 고개를 돌리면, 장사는 뒷전인 채 화투놀이를 즐기는 상인들이 보였다. 물건 하나 사지 않아도 마음의 장바구니가 가득 찼다. 아니, 어느 한구석이 허전해졌다. 그러니 빈손으로 갈 수는 없어, 나는 집에서 국물 낼 때 쓸 멸치를 좀 사서는 시장을 나섰다.대탄리의 해맞이공원은 영덕의 대표적인 명소이다. 해맞이공원에서 바라보는 영덕 바다는 ‘영덕 블루로드’가 자랑하는 절경 중의 절경, 뒤를 돌아보면 그에 못지않은 풍경이 펼쳐진다. 바로 풍력발전소의 거대한 풍력발전기들이 푸른 하늘을 가르는 장관이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근교의 잔세스칸스(Zaanse Schan)는 ‘풍차마을’로 유명한데, 아기자기한 네덜란드 풍차마을에 비해 이곳 영덕 대탄리는 호방하고 장쾌한 멋이 있다. 풍력발전기라는 단어보다는 ‘풍차’가 예쁘고, 풍차라는 말보다는 ‘바람개비’가 곱다. 커다란 바람개비들이 있는 언덕으로 올라가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영덕신재생에너지전시관과 해맞이캠핑장 사이에 ‘산림생태문화공원’이 있다. 이곳에서는 거대한 바람개비를 가까이서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다양한 체험 활동까지 즐길 수 있다. 지난 1997년, 대형 산불이 발생해 폐허가 되어버린 창포리 산지를 영덕군이 수년에 걸쳐 복원하고 가꾼 것이 오늘의 산림생태문화공원이다. 출렁다리, 음악당, 인공계곡, 목공예체험장, 조각공원, 식물원 등 다채로운 시설들이 지역민들과 관광객들에게 기쁨을 주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를 끄는 것은 ‘달려라 왕발통’이다. 왕발통은 ‘세그웨이(Segway)’라 불리는 1인용 전동휠바이크다. 이 세그웨이가 영덕산림생태문화공원에 와 왕발통이라는 귀여운 이름을 얻었다.9천원을 주고 왕발통을 빌렸다. 2시간 동안 실컷 탈 수 있다. 헬멧과 무릎보호대 등 안전보호장구를 착용하고 주행을 시작했다. 산림생태문화공원 이곳저곳 ‘전동휠 체험코스’가 잘 닦여 있어 어린이와 노인들도 어렵지 않게 왕발통으로 누빌 수 있다. 왕발통을 달리며, 단풍으로 물든 산 능선 사이로 새파란 바다가 보일 때마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가을을 탄다’는 말은 여름에서 가을로 계절이 바뀔 때 고독감이나 낭만 지향성이 민감해져 마음 싱숭생숭한 상태를 뜻하지만, 나는 단순히 ‘탈것에 몸을 얹다’는 사전적 의미에 충실하게 가을을 타기로 했다. 왕발통을 타고 만추의 고즈넉한 정취 속을 달리는 일은 곧 가을을 타고 낭만과 행복 속으로 내달리는 것이다. 울긋불긋한 단풍과 푸른 수평선이 내 마음의 팔레트에 오색 물감을 채워, 나는 지상의 그 어떤 풍경도 아름답게 그려낼 수 있는 ‘색채의 마법사’가 되었다. 그 순간 ‘색채’란 예술적 감수성의 다른 이름이다.왕발통을 타고 하도 신나게 달렸더니 출출해졌다.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찾은 곳은 영덕읍 남석리의 옛날불고기 식당. 남석리에는 두 곳의 옛날불고기집이 영업 중인데, 외지인들에게 잘 알려진 곳은 ‘아성식당’이다. 인기가 많아선지 오후 2시인데도 벌써 점심 장사가 끝났다고 한다. 그래서 옆집인 ‘이가네 옛날불고기’로 향했다. 지역민들에게 오랫동안 사랑 받은 집이다. 메뉴, 요리법, 양, 가격은 두 식당이 거의 비슷하다. 질 좋은 한우 불고기 1인분 120g에 8천원. 하지만 2인 기준 3인분이 최소 주문 단위여서, 나는 혼자 3인분을 시키고 자리에 앉았다.향 좋은 숯이 가득 담긴 화로가 열기를 뿜으며 상에 오르고, 두꺼운 철근으로 제작된 삼각형 화구가 얹어졌다. 그리고 양념육수와 고기를 분리해서 익히는, 정말 옛날 방식의 불고기 불판이 등장했다. 치익 칙, 하는 고기 굽는 소리, 스멀스멀 오르는 맛있는 냄새, 동백꽃잎처럼 얇게 저며진 선홍빛 소고기가 점점 가을빛으로 익어가는 광경, 화로에서 오르는 열기는 얼굴을 화끈거리게 하고, 알맞게 익은 불고기를 계란노른자 소스에 푹 찍어 입에 넣는 순간 육즙과 양념과 한우의 담백한 맛과 식감이 입 안에서 팡팡 터졌다. 영덕의 옛날불고기는 미각뿐만 아니라 청각, 후각, 시각, 촉각까지 오감을 모두 충족시키는 음식인 셈이다.3인분을 게 눈 감추듯 뚝딱 해치우고는 아무데로나 아무렇게나 걷기로 했다. 영덕 우체국과 영덕 버스터미널과 영덕 소방서와 영덕군민공원을 지나자 황금빛 벼가 강물처럼 넘실거리는 덕곡리, 태풍에도 쓰러지지 않은 벼들이 대견하고 고마워서 대뜸 코끝이 시렸다. 어느 시인이 묘사한 것처럼, 어미소가 송아지 등을 핥아주듯 바람이 불 때마다 가을논의 벼들은 나란히 누웠다가 나란히 일어서면서, 한없이 부드럽게 살랑거렸다. “나는 그곳의 낮아지는 저녁해에 마음을 내어 말린다”(장석남, ‘저녁 햇빛에 마음을 내어 말리다’)던 시인처럼, 나도 덕곡리 황금물결에 축축한 마음의 옷들을 하나 둘 벗어 내어 말렸다. 투명한 알몸이 되어 버린 내 마음에다 따사로운 볕이, 고추잠자리의 비행이, 참새 떼의 지저귐이, 오십천 흐르는 물소리가 스웨터를 짜 입혔다. 나는 아마 가을 내내, 아니 겨울까지도 춥지 않을 것이다.            /시인 이병철

2019-10-27

고요한 가을 숲에는 계곡물 흐르는 소리와 내 숨소리만이

올해 여름 더위는 그런대로 견딜 만했다. 예년 같은 폭염이 찾아오지 않아 좋았다. 하지만 세상이 하도 소란스러운 탓에 장마보다 권태롭고 뙤약볕보다 고통스런 계절이었다. 연달아 북상하는 가을 태풍도 세상의 온갖 소음과 낯 뜨거운 풍경들을 다 쓸어버리진 못했다. 자꾸만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숨이 턱턱 막히는 것은 “부글부글 끓고 수선을 떨고 하는 것 같은…. 그야말로 현란을 극한 정오”(이상, ‘날개’)에서부터 불어오는 열풍 때문이었다. 생활과 사람과 뉴스로부터 내가 달아나는 수밖에 없다. 아직 여름의 잔열이 남아 있는 서울을 벗어나 더 깊은 가을로 들어가는 순간, “혈이 탁 트이고서야 내 온몸이 잠망경으로 솟아오를 수 있”(김지훈, ‘시월의 잠수함’)음을 나는 믿어보기로 했다.다시, 울진으로 가는 길에 올랐다. 경북 바닷길 537km 기행의 마지막 발걸음을 뗀 것이다. 두 개의 계절이 지났다. 어느덧 햇살은 땅 위에 금빛 앙금을 남겨둔 채 허공에서 점점 얼음의 투명함을 입고 있었다. 가을, 가을이었다. 서울을 떠나 영동고속도로를 통과하면서 강릉 옥계의 흐린 낯빛과 마주봤다. 먹장구름이 심상치 않았다. 차창 밖 중앙분리대 너머에서 동해는 회색빛으로 넘실거렸다. 희끄무레한 파도가 마치 늙은 아버지의 흰머리 같았다. 삼척에 들어서자 빗방울이 제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이 비는 단풍을 더욱 붉게 물들이고, 갑각류의 속살을 단단하게 할 것이다. 서리를 흉내 내며 지상으로 흩어지는 가을비는 겨울의 마중물이다. 비가 그치고 나면 기온이 더 내려가고, 그때 빗방울은 눈송이로 몸을 바꿔 포구와 산 능선과 슬레이트 지붕과 녹슨 자전거 안장을 하얗게 덮을 것이다.지난 늦봄의 울진은 아까시 내음으로 온몸을 뒤채는 거대한 한 마리 짐승이었다. 그때 불영사로 가는 길, 나는 금강송 군락을 통과하면서 입술까지 초록빛으로 물들어버렸다. 끊임없이 몸속으로 스며드는 아까시 향기에 대책 없이 취해 정신을 못 차렸다. 망양정에서 바라보는 아득한 ‘세상의 끝’ 수평선을 향해 나를 던지고 싶었다. 죽변항 대원대게센타에서 박달대게 살을 파먹으며 감격했다. 그러나 가을 울진에서는 그 들뜬 황홀감을 아마 다시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오월의 무성한 녹음, 웅장한 초록 그늘, 짙은 초록 페로몬, 축제의 환희, 나른한 게으름은 이미 옛일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 대신 또 다른 기쁨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으리라. 어느새 내 발길은 울진 북면의 응봉산 덕구계곡을 향하고 있었다.숲에 들자 비가 그쳤다. 단풍잎 사이로 옥빛 계곡물이 흐르는 풍경에 절로 감탄을 터뜨렸다. 나뭇잎을 흔드는 계곡의 바람은 “별보다 반음 낮고 얼음보다 반음 높은 음조로”(김영래, ‘큰개자리 여인숙’) 내 귓가에서 음악이 되었다. 숨을 쉬면 서늘한 공기 끝에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느낌이 들었다. 뒷맛이 묵직한 와인을 마시는 듯한 미감을 만끽하며 계곡의 더 깊은 내부로 걸어 들어갔다. 숨이 달 수도 있구나! 들이마시는 숨이 맛있어서 벌컥벌컥, 돌계단 몇 개를 거침없이 뛰어 올랐다. 고요한 가을 숲에는 계곡물 흐르는 소리와 내 거친 숨소리만이 들렸다. 떼쓰다 악에 받쳐 우는 애 울음 같던 매미 소리 잠잠한 수풀 속에서 풀벌레들이 이따금 장단을 맞췄다.서둘러 잎을 버린 우듬지마다 흐린 가을 하늘이 걸려 있었다. 맑은 날씨가 아니어도 대기가 머금은 물방울들 덕분에 계곡의 오후는 한없이 청명했다. 아니다. 청명함은 내 마음의 날씨에서 돋아나는 것, 가을엔 풍경의 여백만큼이나 마음도 넉넉해진다. 봄도 좋지만 봄은 변덕스럽고 까칠하다. 봄에 비해 가을은 안정적이고 성숙하다. 예측 가능한 계절이자 다 자라난 어른이다. 30여분 정도 가을 숲을 걸어 들어가 용소폭포의 아름다움과 마주하는 순간, 나는 세상과 시간을 오래 견딘 지혜로운 이와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는 착각을 했다. 그는 물소리로, 나는 내 마음의 문장으로… 이야기가 깊어지려는데, 후두둑, 빗방울이 다시 떨어졌다.덕구계곡에는 4㎞의 송수관이 설치돼 있다. 이 송수관은 땅에서 솟는 온천수를 실어나른다. 덕구온천리조트는 우리나라에서 단 한 곳뿐인 자연용출온천 관광 시설이다. 칼륨, 칼슘, 철, 중탄산, 불소, 나트륨, 마그네슘, 라듐, 황산염, 탄산, 규산 등이 함유되어 약알칼리성을 띠는 이곳의 온천수는 사철 자연용출온도 42.4℃를 유지한다. 그 물로 온천욕을 하면 신경통 완화 및 피부미용에 좋다고 한다. 행정안전부에서 지정한 ‘국민보양온천’ 시설인데, 까다로운 자격요건을 모두 충족했다. 인체유해성분 안전기준 25℃ 이상의 온천수를 하루 300t씩 양수할 수 있으면 ‘일반온천’으로 개발 및 이용이 가능하지만, ‘국민보양온천’의 기준은 훨씬 엄격하다. 온천수는 35℃ 이상이거나 25℃ 이상인 경우 유황과 탄산 등 인체에 유익한 성분을 1000㎎/ℓ 이상 함유하여야만 한다. 그밖에도 주변에 빼어난 자연 경관이 있어야 하며, 숙박 및 편의 시설 등을 갖추어야 보양온천으로 인증 받을 수 있다.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갈아입을 옷과 간단한 짐을 챙겨 ‘대온천장스파월드’로 향했다. 빗줄기가 거셌지만, 비를 맞으며 노천 온천을 즐길 생각을 하니 신이 났다.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끊고 ‘스파월드’부터 이용하기로 했다. 스파는 실내와 야외 시설로 나뉘어져 있는데, 수영모와 수영복을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 야구모자와 반팔, 반바지도 허용된다. 다만 면 소재의 티셔츠는 지양하는 게 좋다. 인공 야자수와 분수, 선베드가 이국적 풍경을 연출하는 실내 스파에는 평일임에도 꽤 많은 사람들이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바깥으로 나가 노천 레몬탕과 녹차탕, 히노끼탕에 번갈아 몸을 담갔다. 42.4℃의 온천수는 마음까지 훗훗하게 데우며 그동안 도시에서 쌓인 피로와 불안, 근심들을 한꺼번에 씻어주었다. 너무 편안해서 달콤한 졸음이 몰려왔지만, 차가운 빗방울이 이마에 떨어질 때마다 아늑함에 나른해지던 정신이 번쩍 깼다.이번엔 대온천장에서 목욕할 차례다. 열탕에 몸을 담갔다가 찬비 흩날리는 야외 데크에 나가 뜨거운 알몸을 서늘한 공기로 식히는 묘미가 각별했다. 살갗에 오소소 돋는 소름이 마치 낯별처럼 보였으니까. 사우나까지 알뜰하게 이용한 후 몸의 물기를 털고 마른 옷으로 갈아입었다. 온천의 열기가 아직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채로 휴게공간에 딸린 카페에 앉아 아이스커피를 마시니 그야말로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황홀했다. 이런 순도 높은 휴식이 또 어디 있을까? 온천 관광이 발달한 일본에서는 북해도 노보리베츠의 유황온천을 으뜸으로 치는데, 그곳의 대형 료칸인 ‘마호로바’나 ‘석수정’, ‘후루카와’ 등과 비교해도 덕구온천은 전혀 부족함이 없다. 지금 이 계절만큼 온천욕을 즐기기에 좋은 때도 없다. 물론 눈 내린 겨울, 노천탕에서 응봉산의 설경을 바라보는 일 또한 환상적이긴 할 것이다.온천욕으로 몸의 긴장을 풀었더니 호텔방에서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니 어느새 어두운 저녁, 호텔에 한식당과 푸드코트가 있지만 나는 종일 그치지 않는 가을비를 헤치고 죽변항으로 달렸다. 대숲의 기슭이라는 이름마저 낡아버린 죽변항, 사람들은 대부분 후포나 영덕으로 가고, 손님이라곤 가을비 타고 흘러든 나 같은 뜨내기뿐인 쇠락한 선창가. 나는 죽변의 그 쇠잔함을 좋아한다. 부두에 고인 빗물 위로 불빛들이 엎드린 채 등을 들썩이며 흐느끼고 있었다. 일찍 문 닫는 식당들을 어찌하지 못하고 그나마 불 밝은 집에 들러 홍게와 가리비를 포장해왔다. 게 찌는 동안 아주머니가 나 먹으라고 내준 고구마와 귤이 벌써 맛있었다. 아아, 어느 한 구석이 따뜻해지는 걸 보니 겨울이 가깝긴 가까운 모양이다.그렇게 나는 가을 울진의 품에서 따뜻한 위로를 받았다. 호텔로 돌아오니 창밖으로는 얼음 같은 빗방울이 떨어지고, 창을 통과한 불빛들은 그저 따사롭기만 한 가을밤의 평화가 나를 오래토록, 넉넉히 안아주었다.              /시인 이병철

2019-10-20

너그러운 바다의 품에 안겨

어제 천국에 다녀온 덕분에 잠을 잘 잤다. 물론 저세상이 아니라 ‘울릉천국’ 이야기다. 고백하건대, 서울에서 나는 매일 밤 불면으로 괴롭다. 무슨 죄가 그리 많은지 잘못한 일들이 끊임없이 떠올라 도무지 잠들 수가 없다. 불면으로 죗값을 치른다 생각해도 억울하다. 교도소에 수감된 죄수들도 잠은 잘 자지 않는가.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양을 세기 시작하면 잠은 저 멀리 달아난다. 그런데 지난밤에는 어떤 상념도, 후회도, 한스러움도, 그리움도, 미안함도 없이 스르르, 푸른 잠결에 스며들었다. 맑은 풍경이 마음을 깨끗하게 한 모양이다. 나는 어제 자연에게 용서 받았다. 자고 일어나니 몸과 마음이 다 가볍고 개운했다.저동항 ‘정애식당’ 미닫이문과 함께 울릉도 여행 마지막 날이 열렸다. 울릉도에 왔으면 홍합밥을 꼭 먹어봐야 한다. 누가 내게 그러라고 한 것은 아니고, 그냥 내 생각이다. 주문과 동시에 밥을 짓기 때문에 20분 정도 기다려야 한다. 싱싱한 홍합을 잘게 다진 야채와 함께 미리 불려놓은 쌀에 넣고 밥을 지으면 홍합밥이 된다. 홍합 육수가 밥알에 스며들어 노르스름한 빛깔을 띤다. 간장 양념장을 두세 숟갈 넣어 슥삭슥삭 비비면 고소하면서도 싱그럽고 짭조름한 냄새가 코로 훅 들어온다. 갓 지은 쌀밥의 꼬들꼬들함과 자연산 홍합의 탱글탱글한 식감이 어우러져 씹는 맛이 좋다. 울릉도 음식은 대단히 맛있기보다는 오래 기억되는 쪽을 스스로 택해 지금껏 향토성을 유지하고 있다. 촌스럽고 투박한 밥과 국, 탕, 국수에서는 너그러운 바다의 품이, 바다의 품이 키운 사람의 마음이 짠맛, 구수한 맛, 슴슴한 맛, 시원한 맛, 칼칼한 맛을 낸다.울릉도의 최서북단인 태하로 차를 몰았다. 그곳에 예로부터 향나무가 많아 ‘향목령’으로 불린 고개가 있다. 울릉도 향나무들은 벼랑에 뿌리를 박은 채 소금 햇살을 삼켜 잎맥을 키우고 젖은 해풍을 머금어 간신히 물관을 적신다. 바람을 기다리는 언덕이라는 뜻의 ‘대풍감(待風坎)’에는 순풍에 돛을 밀며 먼 바다로 나아가고픈 뱃사람들의 소망이 천연기념물 제49호 대풍감향나무와 함께 자라난다. 태하향목모노레일 승차장에서 앙증맞은 모노레일을 타고 대풍감 산책로에 내렸다. 15분 정도 숲길을 걸어 대풍감에 오르는 순간 온몸으로 탄성을 내질렀다. 몸속에 있는 모든 함성들이, 마음속에 있는 모든 감탄들이, 웃음들이, 눈물들이 목구멍으로 달려 올라와 저 먼저 쏟아내 달라고 아우성을 하는 통에 눈과 코와 귀와 입을 한꺼번에 열 수밖에 없었다.대풍감에서 바라보는 울릉도 북면 해안은 월간지 ‘산’에서 꼽은 우리나라 10대 비경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색채의 마법사라는 마티스나 샤갈의 팔레트에도 없는 파랑색 바다는 현무암 바위들이 내민 검은 입술과 키스한다. 하늘은 한없이 높고 또 함부로 낮으며, 아득히 멀고 또 아무렇게나 가깝다. 이 비경을 공감각적 풍경으로 완성하는 것은 해풍이 실어 나르는 향나무 향기, 그러니까 대풍감은 자연의 ‘4D 아이맥스 영화관’인 셈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우리나라에, 아니 세상에 또 있을까? 대풍감에서 나는 이 세계를 더욱 사랑하게 됐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이에게 이 말을 꼭 하고 싶다. 삶이 지루하고 단조롭게 느껴진다면, 세상이 온통 어둡고 좁게만 느껴진다면 반드시 대풍감에 가보라고.대풍감에는 1958년부터 불을 켠 울릉도등대가 있다. 이곳 사람들은 태하등대라고 부른다. 높이 7.6m의 하얀 등탑 안에 항로표지관리원이 근무하는 유인등대다. 해양수산부의 ‘유인등대 무인화 계획’에 따르면 오는 2022년까지 부산 오륙도, 포항 송대말, 제주 산지, 군산 말도, 여수 소라도, 강원 고성 대진, 그리고 울릉도의 등대 몇 곳이 무인등대로 전환된다고 한다. 이미 무인화가 된 곳도 있고, 아직 등대지기가 지키는 곳도 있다. 당장은 아니겠지만 이곳 울릉도등대도 언젠가는 무인등대가 될 것이다. 나는 향로표지관리원이라는 엄숙한 직함보다 등대지기라는 다정한 이름을 좋아한다. “얼어붙은 달그림자 물결 위에 자고 한겨울의 거센 파도 모으는 작은 섬. 생각하라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지금도 노래 ‘등대지기’만 들으면 눈물이 난다. 이곳 등대에서 마지막 등대지기가 떠나는 날, 별들도 운행을 멈춘 채 눈물 같은 빛방울을 흘릴 것이다. 등대가 한 그루 듬직한 나무라면 몸속으로 나이테 수십 개쯤 우습게 그렸을 세월이 아닌가? 등대와 등대지기는 바다가 쓰는 책의 주인공, 긴 이야기의 끝이 이제 가깝다.‘바람을 기다리는 언덕’을 내려와 서면의 버섯바위를 구경했다. 버섯을 닮았다 하여 버섯바위인데, 층층이 쌓아올려진 ‘버섯갓’ 모양의 퇴적암이다. 화산 용암과 재가 굳어 쌓인 바위를 파도와 칼바람이 함께 깎아내 신비한 조각작품을 만들었다. 남양리 비파산 국수바위도 감상했다. 157만년 전 용암 분출로 만들어진 이 바위는 높이 30m, 길이 300m에 달한다. 벽면에 수많은 주상절리가 국수가락처럼 늘어져 있는 모습이 장관이다. 바위 구경에 통구미의 거북바위를 빼놓을 수 없다. 통구미는 울릉도의 유일한 자연 포구, 거기 우뚝 선 거북바위는 그 모양이 기어가는 거북이를 닮았다. 가까이서 보면 바위 곳곳에 거북이 형상의 자연석들이 있다고 한다. 눈 밝은 사람들은 엄마 거북바위에서 아기 거북이를 12마리나 찾아낸다는데 나는 세 마리밖에 못 봤다. 나머지 아홉 마리는 다음에 와서 꼭 찾을 것이다.도동항에 와 케이블카를 타고 독도전망대에 올랐다. 하지만 독도는 볼 수 없었다. 맑은 날보다 오히려 구름 낀 날 잘 보인다고 한다. 독도전망대 아래에는 독도박물관이 있다. 1997년에 개관한 우리나라 최초, 유일의 ‘영토 박물관’이다. 독도가 우리 땅임을 증명하는 고문헌과 고지도, 독도의 역사, 자연환경 및 생태계, 독도의용수비대의 기록 등을 전시 및 설명하고 있다. 박물관을 거닐며 뜨거워지는 가슴을 어찌하지 못해 여러 번 눈시울이 붉어졌다. 독도에 가보지 못하고 울릉도를 떠나야 한다는 게 너무나도 아쉬웠다. 그러나 아쉽게 헤어져야 재회도 가능한 법, 나는 짝사랑하는 소년처럼 독도를 마음에 품은 채 독도박물관을 나섰다.수많은 관광객들이 오후 3시 30분 썬플라워호를 타고 울릉도를 빠져나간다. 출항 한 시간 전, 북새통 도동항은 온갖 목청으로 요란했다. “이리 오이소” 소리, 상인과 손님이 에누리 다툼하는 소리, 낡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뽕짝소리, 오징어 냄새, 젓갈 냄새, 호떡 굽는 냄새…. 소리와 냄새가 괭이갈매기보다 먼저 와 나를 배웅했다. 항구는 생명과 역동의 에너지로 충만하다. 그 에너지를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지고, 냄새 맡고, 맛보면서 나는 오늘을 사는 울릉도 사람들을 만났다. 흥겨우면 흥에 취하고, 언짢으면 곧장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순수한 사람들. 알 수 없는 뭉클함을 애써 누르며 나는 “울렁울렁 울렁대는 가슴 안고” 여객선 탑승구로 향했다.급변하는 시대의 한 구석에서 발버둥을 치며 제 살아있음을 증명하려는 오래된 것들, 촌스러운 것들의 처절한 몸짓을 본 까닭인지도 모른다. 등대지기도, 천막집도, 항구의 좌판을 이루는 작고 소소한 소리와 냄새도 조금씩 변해가거나 사라지는 중이다. 열심히 북을 두드리며 익살스러운 춤을 추는 울릉도 호박엿장수의 흥겨운 놀이판이 슬픈 피에로의 연극처럼 측은했다. 상념에 빠진 내 앞에서 “뭐 그리 복잡해. 신나게 한판 놀고 마음껏 사랑하다 가면 그만이지” 엿장수와 구경꾼들이 한데 어울려 춤판을 벌였다. 그러자 썬플라워호의 탑승구가 열렸다. 나는 2층 선실에 앉아 눈을 감았다. 등대지기, 엿장수, 이장희, 군청 주무관, 두꺼비식당 아줌마, 학포 이장님, 홍순칠, 안용복, 독도의용수비대…. 울릉도와 독도를 지키는 사람들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시인 이병철

2019-10-13

울릉의 과거, 현재, 미래… 척박하지만 낭만적이고 호화롭다

“나 그대에게 드릴 게 있네. 오늘밤 문득 드릴 게 있네. 그댈 위해서라면 나는 못 할 게 없네. 별을 따다가 그대 두 손에 가득 드리리.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터질 것 같은 이 내 사랑을….”별도 달도 다 따다 주겠다는 약속, 그대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다짐, 터질 듯이 충만한 사랑의 고백! 이 아름다운 세레나데는 1970년대에 수많은 연인들을 꿈결 같은 낭만으로 인도했다. 현실의 삶이 아무리 남루해도 사랑을 하고 또 사랑을 받는 이들의 거주지는 끝내 천국이다. 그러니까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라는 노래는 ‘터질 것 같이 뜨거운 사랑’의 복음성가인 셈이다.저 노래를 부른 가수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할까? 그가 울릉도에 산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그곳이 ‘천국’인 줄은 몰랐다. 울릉도 북면 현포리 61-2번지에 천국이 있다. 거기 전설적인 포크 가수 이장희가 산다. 지난 2004년, 울릉도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조용한 현포리 산기슭에 정착한 그는 자신이 가꾼 동산을 ‘울릉천국’이라고 이름 붙였다. 너른 잔디밭과 알록달록한 꽃덤불, 해와 구름을 되비추는 맑은 연못, 그리고 울릉도의 하늘과 바다가 있는 이곳 울릉천국에 온 순간, 나는 근심도 걱정도 없이 영혼이 맑아지는 것을 느꼈다. 정말 천국이 맞구나, 저절로 두 손이 모아졌다.그런데 사실 이장희가 이곳을 ‘천국’이라고 명명한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아래에 평리침례교회가 있기 때문이다. 교회보다 높은 곳에 있으니 천국이라는 것이다. 교회에서 불쾌하게 여기진 않을까? 다행히 그렇지는 않다. 천국과 교회는 서로 정답고 다정하게 이웃해 있다. 작은 적벽돌 건물에 흰 십자가와 스테인드글라스가 예쁜 교회는 세워진 지 100년이 넘었는데, 일제 강점기에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순교한 김해용 감로의 순교기념비가 놓여 있기도 하다.어린 시절 여름성경학교에서 상상했던 모습 그대로, 동화책과 만화영화가 묘사하던 풍경 그대로 천국은 나를 반겨주었다. 평화로운 적막 속에서 코스모스가 흔들리고, 새가 울고, 바람이 불면 나를 둘러싼 세계는 어느덧 조화로운 화음을 이루고, 어디선가 눈에 보이지 않는 성가대의 합창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단순히 깨끗한 자연과 수려한 경관 때문에만 천국으로 호명하는 것은 아니다. 이곳에는 2016년 ‘울릉천국 아트센터’가 들어섰다. 이장희가 자신의 땅 500평을 기증하자 경상북도와 울릉군에서 예산을 지원해 공연장과 카페, 전시장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춘 복합 문화공간을 만든 것이다. 음악과 시와 그림이 있는 ‘마음의 천국’, 아트센터는 울릉도 주민들은 물론 관광객들에게 사색과 휴식을 제공하며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이곳에서 이장희는 통기타를 메고 종종 공연을 하기도 하고, 자신의 집을 구경 온 관광객들과 정겹게 기념사진을 찍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날은 부재 중, 파란 지붕을 얹은 소박한 집 마당엔 나비 한 마리만 천진하게 놀고 있었다.울릉천국에서 내려와 나리분지로 향했다. 나리분지는 울릉도에서 유일한 평지 지대다. 1만여년 전 화산 폭발로 인해 성인봉 북쪽 칼데라 화구가 함몰되며 형성된 이곳 분지는 관광지로 각광 받는다. 이곳에서 출발하면 성인봉까지 비교적 빠르게 오를 수 있고, 나리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분지의 장엄한 광경으로 눈과 가슴을 시원하게 할 수도 있다. 울릉도 사람들은 해발 400미터 고지대의 화구 분지에 마을을 이뤄 삼나물, 더덕, 마가목, 참고비, 명이나물 등을 재배하는데 이는 세계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경우다. 지질학적 연구 가치가 매우 높은, 울릉도가 자랑할 만한 명소인 것이다.울릉도가 본격적으로 ‘사람 사는 섬’이 된 것은 1884년 고종이 울릉도 개척령을 공포해 백성들에게 이민을 장려하면서부터다. 물론 1,500년 전 고대국가 우산국 때부터 사람이 살긴 했지만 조선조가 들어선 이후 수백 년 동안 빈 섬으로 방치되었다. 19세기말 개척민들이 섬에 왔을 때, 오랜 옛날부터 정주한 사람들이 산야에 자생하는 섬말나리 뿌리를 캐먹어 연명하는 것을 보고 ‘나리골’이라 부르기 시작한 게 나리분지 명칭의 유래다. 먼 옛날 화산 폭발을 잊었는지 나리분지는 평온하기만 했다. 분지를 둘러싼 산들 역시 짙푸른 녹음으로 화산의 기억을 감추고 있었다. 분지를 조금 걷다가 나리너와투막집과 억새투막집 앞에 멈춰 섰다. 투막집은 울릉도 개척 전 이곳 토착민들이 살던 재래 가옥 형태인데, 우데기로 외벽을 두른 것이 특징이다. 1940년대에 옛 형태대로 지어진 집이 아직까지 남아 울릉도의 중요한 문화재가 되었다.투막집 마당을 거닐며 이곳에 살았을 옛 사람의 어느 하루를 떠올려 본다. 뒤주에 얄팍하게 쌓인 쌀을 불려 술을 담그면, 누룩이 별을 흉내 내며 허연 쌀물 위에 어리비치다가 귀뚜라미 울음 먹고 달짝지근한 빛으로 찰랑였을 것이다. 술맛에 마음이 좋아진 그는 부엌을 함부로 구르던 개다리소반 절름발에 못을 박고, 반짇고리로 구멍 난 속곳들을 기우고, 탁주 한 사발에 고인 소낙비와 우레와 폭설이 대견하여 눈시울이 젖었을 것이다. 뒤란을 흔드는 바람에 잠 설친 고양이가 마당을 어슬렁거리다 막사발 내려놓는 소리에 놀라 도망치면 투막집 툇마루에서 홀로 탁주 마시던 이의 텅 빈 마음에 외로운 달빛이 내려와 앉았을 것이다.나리분지와 투막집을 탁주 같은 햇살 속에 남겨둔 채 북면 추산리 바닷가로 향했다. 추산 해변에서는 울릉도의 가장 아름다운 해상 바위로 꼽히는 코끼리 바위를 조망할 수 있다. 그런데 몇 해 전 이곳 추산 절벽에 마치 우주선을 연상케 하는 건축물이 들어서면서 또 하나의 볼거리가 생겼다. 세계적인 건축가 김찬중 교수는 송곳산 옆 벼랑 위에 해와 달과 소용돌이를 형상화한 하얀 건축물을 설계했고, 이 건물은 완공된 후 영국의 유명 건축잡지 ‘월페이퍼’에서 선정한 ‘2019년 세계 최고의 호텔’이 되었다. ‘힐링스테이 코스모스 리조트’는 콘크리트 건물이지만 철근을 뼈대로 쓰지 않았다. 그럼에도 아름다운 곡선을 만들어낼 수 있던 것은 신소재인 초고강도 콘크리트를 사용한 덕분인데, 초고강도 콘트리트를 특별 제작한 거푸집에 한 번에 부어 통째로 건물을 완성시켰다. 세계 건축계 및 콘크리트 학계가 깜짝 놀랐다고 한다.힐링스테이 코스모스리조트는 펜션형과 풀빌라형 두 가지 형태로 운영된다. 침대방과 온돌방, 패밀리룸 등으로 구성된 펜션형은 모든 객실에서 코끼리 바위 너머로 붉게 밝혀드는 석양의 황홀한 축제와 수평선 위로 은빛 달이 전설 고래처럼 솟아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야외 테이블과 월풀 욕조 등을 이용할 수 있다. 방 내부는 천정이 둥글고 높은 것이 특징이다. 아침식사가 무료로 제공되며, 1박 가격은 4인 기준 40~50만원이다. 리조트 측은 “땅과 하늘의 기운, 음양의 조화 속에서 최고의 휴식을 누릴 수 있다”고 펜션형 객실을 소개하고 있다.그런데 이곳이 유명해진 이유는 따로 있다.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아볼 수도 없는, 베일에 싸인 풀빌라 때문이다. 코스모스리조트의 풀빌라는 “죽기 전에 꼭 한 번 와봐야 할 곳”이라는 이른바 ‘버킷리스트’ 전략과 ‘신비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풍문에 의하면 이곳 풀빌라는 4인 기준 1박 숙박요금이 1천만원이라고 한다. 울릉군청 관계자들에게 들은 내용 또한 풍문과 일치했다. 환상적인 경관과 최고급 시설은 물론 서울 유명 호텔 요리사의 출장 요리까지 ‘맞춤형 스테이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한다. 도대체 얼마나 좋기에 하룻밤 묵는 데 천만원이나 하는지 정말 궁금해 죽겠다. 아마 나는 이 궁금증과 호기심을 평생 해소하지 못한 채 저 우주로, 캄캄한 코스모스로 가고 말 것이다. 하지만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를 실천하기 위해 패가망신을 무릅쓰고 예약 전화를 걸 수도 있다. 그때 울릉도는 내게 진정 ‘울릉천국’이 되리라. 그러나 부디 미래의 그녀가 이 글을 읽지 않길 바랄 뿐이다.          /시인 이병철

2019-10-06

붉은 태양 솟아오르면 사람들은 저마다의 소원을 말하고

파랑이 다가설수록 빨강은 수줍게 물러난다. 울릉 바다의 해질녘은 꼭 젊은 남녀의 사랑싸움 같다. 도무지 잡히지 않을 것 같던 석양의 옷자락이 파도가 뻗은 손에 붙들리는 순간, 바다와 하늘이 포옹한다. 파랑으로 빨강이 스며들 때 수평선은 보랏빛 이불을 덮고, 빨강으로 파랑이 달려들 때 낮별들은 분홍색 꽃잠이 된다. 그 황홀한 로맨스의 시간에 나는 홀로 행남해안산책로를 걸었다.낮에 이 길을 걸을 때, 저녁 바다와 마주앉아 술잔을 기울일 자리를 미리 점찍어뒀다. 해안산책로 초입에 있는 포장마차 ‘용궁’에 앉았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와 갯바위를 때리는 파도 소리가 화음을 이뤄 듣기에 좋았다. 모둠해산물 한 접시를 시켰다. 옆 테이블에 앉은 어르신들이 나보다 먼저 저물녘 바다에 사로잡혀 있었다. “분위기 좋다”고 감탄하는 소리가 스피커와 파도 사이로 끼어들어 장단을 맞췄다. 곧 싱싱한 오징어회와 전복, 소라, 멍게, 그리고 제철은 아니지만 초장을 듬뿍 찍으면 그런대로 먹을 만한 방어회로 구성된 모둠해산물이 상에 올랐다. 내가 술잔을 비우면 파도가 빈 잔에 술을 채웠다.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하는 사이 바람의 음계가 반음 내려가 쌀쌀했다. 뜨거운 국물 생각에 오징어라면을 시켰다. 양은냄비를 비워 속이 훗훗해지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별들이 바다로 자맥질하고 있었다. 밤바다 위를 어칠비칠 걸어 도착한 도동항의 낡은 여관, 이불을 깔고 누우니 창을 흔드는 바람 소리가 다행히 꿈결만은 흔들지 못했다.섬은 육지보다 일찍 눈을 뜬다. 동쪽의 머리맡으로는 매일 신선한 빛이 신문과 우유처럼 배달된다. 새벽 5시 30분, 섬이 기지개를 켜 나도 잠에서 깼다. 바람 소리가 요란했다. 겉옷을 입고 도동항에 나섰다. 어부와 상인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동안 여행객들도 졸린 발을 끌며 섬의 아무 동쪽으로나 가고 있었다. 나도 걸었다. 몇 걸음만 가면 도동항 여객터미널과 이어지는 공중공원, 부지런한 사람들이 난간에 기대어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맘때 울릉 바다는 오전 5시 50분에서 6시 사이에 해를 돋아낸다. 해돋이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시린 손에 입김을 불어넣고, 따뜻한 커피를 마시고, 바람에 모자가 날아가지 않게 붙잡고, 해 뜨기 전 어둠과 빛이 뒤엉켜 추는 오묘한 춤을 사진에 담았다.“올라온다, 올라와!” 저 먼 수평선에서 미세하게 꿈틀거리는 붉은 이마를 누군가가 먼저 본 모양이다. 그 외침을 시작으로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밤새 어둠 뒤에서 빛과 열을 끌어 모은 태양이 바다에 불을 지르며 솟아오르고 있었다. 웅성거리던 사람들은 이내 말을 잊었다. 울릉도의 해돋이가 워낙 장엄한 까닭이리라. 태양이 펼친 붉은 돛을 열심히 밀어주는 바람의 기합소리만 들렸다. 점차 완전한 원의 형태가 되어가는 태양을 보면서, 얼굴이 금빛으로 물든 사람들은 소원을 빌고, 사진을 찍었다. 나도 사진 몇 장을 찍고는 걸음을 돌렸다. 하품이 났다. 다시 여관방에 누워 한 숨 자고 일어났더니 두어 시간 전에 본 해돋이가 마치 전생의 풍경처럼 아득하기만 했다.대부분 관광지가 그러하듯 울릉도의 식당들도 1인분은 잘 팔지 않는다. 울릉도를 대표하는 음식이라 할 수 있는 오징어내장탕, 따개비밥, 홍합밥, 오징어불고기 등은 2인분부터 주문이 가능하다. 그래서 1인분 파는 식당을 만나면 몹시 반갑다. 도동항 ‘만남의 광장’ 근처에 있는 ‘두꺼비 식당’에 들어가니 아침식사를 하는 손님들이 제법 많았다. 속풀이와 배멀미에 좋다는 오징어내장탕을 주문했다. 주문과 동시에 조리해서 15분 만에 음식이 나왔다. 매운탕 국물에 애호박, 콩나물, 대파, 다진 마늘 등 채소와 오징어 내장이 듬뿍 들어간 것이 두꺼비식당의 오징어내장탕이다. 내심 맑은 국물을 기대했는데, 울릉도에서도 식당마다 끓여내는 방식이 다른 모양이었다.오징어내장탕은 오징어를 손질하다 대개 버리게 되는 오징어 내장을 재료로 한 향토 음식이다. 오징어 내장은 쉽게 부패해 보관이나 손질이 어렵고, 기생충 위험이 있어 식용으로 적합하지 않지만, 그날 잡아 그날 손질하는 울릉도 오징어의 경우 신선도가 매우 뛰어나 내장을 얼마든지 식재료로 쓸 수가 있다. 오징어내장탕은 울릉도에 오지 않고서는 맛볼 수 없는 음식인 셈이다. 국물을 한 숟가락 떠 먹어보니 얼큰하면서도 간이 좀 셌다. 호박 맛이 강해 호박찌개 같다는 인상도 들었지만 오징어 내장에서 깊은 바다 냄새가 났다. 밥과 함께 후룩후룩 떠 먹다가 어느새 사발을 다 비웠다. 울릉도 음식은 꼭 겉은 한없이 무뚝뚝한데 속은 다정한, 표현에 서툰 우리 아버지들을 닮았다. 내일 또 오겠다고, 아버지를 어려워하는 아들마냥 말을 흐리며 식당을 나섰다.차를 몰고 울릉도를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지난 3월, 울릉읍 저동리에서 북면 천부리까지를 잇는 도로 공사가 마무리되면서 약 5㎞에 달하던 간극이 메워졌다. 오랜 세월 울릉군민은 물론 관광객들의 염원이기도 했던 울릉도 일주도로의 완전 개통이 이뤄진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을 울릉도에 와서야 알았다. 늦게 소식을 들은 만큼 새 길부터 다녀보자며, 우선 도동항을 출발해 저동항, 내수전, 와달리를 지나 북면 천부항까지, 올해 개통된 구간을 답사하며 울릉 해안선의 절경을 감상하기로 했다. 도로는 개통됐지만 여전히 곳곳에선 공사가 한창이었다. 연속된 급커브와 경사로, 비포장길이 많아 운전에 능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위험할 수도 있다. 버스나 관광 택시를 이용해도 충분히 섬 한 바퀴 구석구석 다닐 수 있으니, 현지 교통수단 이용을 권한다.차창 밖으로 펼쳐진 울릉 바다의 풍경은 섣부른 묘사나 상투적 감탄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절대자 앞에서 인간이 겸손해지듯, 나는 저동 촛대바위 앞에, 또 섬목에서 바라보는 대나무섬 죽도의 풍경 앞에 저절로 경건해졌다. 촛불을 켜놓고 신의 계시를 기다리는 수도자처럼, 이어도를 보며 ‘황홀한 절망’을 느낀 천남석처럼 내 내부에는 울릉도에 대한, 자연에 대한 신앙심이 깊어졌다. 제주도나 국토 최서남단 가거도에서 느낀 것과는 성분이 다른 감동이 울릉도에 있었다. 보다 거칠고 투박하며 맨주먹으로 가슴을 때리는 뭉클함이랄까. 괭이갈매기들의 천국인 관음도를 향해 새들이 떼 지어 날아가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울릉 바다의 경치에 반해 하늘에서 내려와 목욕하다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사 삼선(三仙)바위가 된 세 선녀는 현무암 검은 알몸을 내놓은 채 지금껏 푸른 물로 살을 씻고 있었다.바람과 파도가 주먹으로 가슴을 쿵쿵 때려대는 통에 흥분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마음을 가라앉히려면 먼저 몸을 가라앉혀야 한다고, 스스로 세운 가설에 이상하게 설득되어 바다 속으로 한번 내려가 보기로 했다. 울릉도에서는 스쿠버다이빙을 하거나 잠수함에 타지 않아도 신비로운 바다 속 세계를 구경할 수 있다. 북면 천부에 있는 천부해중전망대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수중 전망대다. 천부항소공원에서부터 바다 쪽으로 이어진 다리 끝까지 걸어가면 파란 페인트칠이 인상적인 원통형 모양의 전망대가 나타난다. 높이는 총 22m 가량인데, 계단이나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해수면 아래 수심 6미터 지점까지 내려가면 넓은 유리창을 통해 바다 속을 볼 수 있다.나선형 계단을 빙빙 내려가 거대한 바다를 텔레비전 크기로 축소해놓은 창 앞에 선 순간, 나는 아이처럼 환하게 웃고 말았다. 돌돔, 자리돔, 복어 등 다양한 물고기들이 푸른 바다 속을 자유롭게 헤엄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다 속 풍경을 볼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는데, 울릉도 여행에서 얻은 뜻밖의 선물이었다. 그러나 천진한 동심도 잠시 뿐, 환한 미소는 이내 사라지고, 낚시꾼의 본능이 꿈틀거리면서 미간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자연산 돌돔회의 탱글탱글한 육질, 그 달면서도 고소한 감칠맛 생각에 침이 막 고인 것이다.물속에 있다가 물 밖으로 나오니 울릉도가 낯설었다. 변덕스러운 섬 날씨가 몰아왔던 먹구름도 걷혀 하늘이 맑았다. 마치 침례를 받은 교인처럼, 마음이 깨끗해진 나는 불현듯 천국이 궁금해졌다. ‘울릉 천국’을 향해 차를 몰았다.          /시인 이병철

2019-09-29

사파이어 빛깔 바닷물 출렁이며 신비한 음악 연주하고

“동쪽 먼 심해선(深海線) 밖의/ 한 점 섬 울릉도(鬱陵島)로 갈거나/ (….) 지나 새나 뭍으로 뭍으로만/ 향하는 그리운 마음에,/ 쉴 새 없이 출렁이는 풍랑(風浪) 따라/ 밀리어 오는 듯도 하건만”유치환의 시 ‘울릉도’다. 시인은 동쪽 먼 바다의 한 점 섬 울릉도를 애타게 불렀는데, 지난 여름 내 그리움도 청마 못지않았다. 섬이 “뭍으로만 향하는 그리운 마음에 쉴 새 없이 출렁이는” 동안 나 역시 섬으로만 향하는 마음에 가슴이 일렁였다. 하지만 섬이 뭍으로 밀려올 수 없듯 나도 섬으로 흘러가지 못했다. 두 번의 태풍이 뱃길을 막았기 때문이다. 금지된 것은 언제나 더 큰 욕망을 일으키는 법이어서 내 마음은 지난 여름 내내 울릉도에 살았다. 미지의 옛 나라인 우산국의 백성이 되어 이사부의 정벌군처럼 몰려오는 태풍을 원망해보기도 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섬을 향한 그리움이 짙어질수록 여름 끝자락에서 내 입술은 때 이른 단풍처럼 붉어져만 갔다. 하고 싶은 말을 참으면 입술은 달아오른다. 울릉도를 말하고 싶어서, 노래하고 싶어서, 이 기행문을 통해 섬과 대화하고 싶어서 입술은 물론 손끝까지 벌게지는 동안 추석 지나고 가을이 됐다.마침내 바다가 길을 열어주었다. 요란한 가을장마와 제17호 태풍 ‘타파’ 사이에서 동해는 며칠 밤낮으로 가만히 다정했다. 울릉도로 가는 바닷길은 네 갈래다. 강원도 강릉과 묵호, 경북 후포와 포항에서 여객선을 탈 수 있다. 서울에서는 강릉이나 묵호가 가깝고, 후포에서 배를 타면 3시간 채 걸리지 않아 울릉도에 닿는다. 하지만 나는 포항에서 출항하는 썬플라워호에 몸을 실었다. 울릉도를 오가는 가장 큰 여객선이기 때문이다. 울릉도로 가는 사람들의 표정이 궁금했다. 누군가는 얼굴이 환하고 누군가는 안색이 어둡겠지. 어떤 이는 행복을 좇아서 가고 또 어떤 이는 불행으로부터 도망쳐 갈 것이다. 그 ‘사람의 얼굴’을 하나라도 더 보기 위해 나는 아침 9시 50분, 거대한 선체 위에 가을 아침 햇살이 샛노란 해바라기를 피워낸 썬플라워호에 올랐다.평일인데도 여객선 안은 붐볐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울릉도를 찾는 줄은 몰랐다. 추석 연휴에만 무려 7천 명의 관광객이 들어왔다고 한다. 울릉도 인구가 1만 명인데, 명절 동안 거의 두 배에 가까운 사람들로 섬이 보름달처럼 부풀어 올랐던 것이다. 연휴가 끝나도 울릉도로 가는 사람들 발길은 끊이지 않는 듯했다. 빈자리를 찾아볼 수 없는 여객선 안, 어떤 사람들은 바닥에 담요를 깔고 눕고, 또 어떤 사람들은 컵라면과 삶은 계란을 먹고, 또 또 어떤 사람들은 화투패를 돌렸다.3시간 40분의 항해는 모처럼 만끽하는 휴식과 사색의 시간이었다. 클라라 주미 강이 연주한 세자르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들으며 책을 읽고, 원고를 교정했다. 나에게는 천국과도 같던 여객선 안이 다른 이에게는 지옥이 되었을까. 너울이 심한 날이 아니었음에도 여기저기 배멀미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았다. 혼이 나간 얼굴을 하고 주저앉아 있다가 여객선이 한번 꿀렁거리면 화장실로 달려가 속을 게워내는 것이었다. 귀 밑에 붙인 패치도, 출항 전에 먹은 멀미약도 좀처럼 듣지 않는 모양이었다. 평소 배에 탈 일이 많은 낚시꾼들은 효과가 확실한 ‘초강력 멀미약’을 구비해 다니곤 한다. 요즘 같은 때에 추천하기 조심스럽지만, ‘아네론’이라고 하는 일본 제품이 있다. 인터넷에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고, 효과는 정말 확실하다. 멀미 때문에 울릉도에 갈 엄두를 못내는 사람이 있다면 권해볼 만하다.‘멀미 대소동’을 피해 잠시 눈을 붙였다. 이내 뱃고동이 크게 울어 내 옅은 잠을 깨웠다. 오후 1시 30분, 썬플라워호는 울릉도 도동항에 도착했다. 항구에 발을 내딛자마자 왁자한 소리들과 함께 어깨 부대끼는 복작임이 나를 에워쌌다. 숙박업소, 식당, 택시, 렌터카, 투어 상품 등이 저마다 손을 흔들며 “이리 오이소” 소리쳤다. ‘먹고사는 일’의 그 활달한 힘 앞에, 그 숭고한 수런거림 앞에 나는 외지인이 으레 가질 법한 경계심을 풀어버렸다. 마음 빗장이 열린 자리로 현무암처럼 투박하고 거친 사투리들이 날아 들어왔다. 돌덩이 같은 말들이지만 사근사근 마음을 두드리는 묘한 다정함이 있었다. 별 흥정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숙소와 차량을 정해버렸다.복잡한 일을 비교적 쉽게 처리하자 잊고 있던 배고픔이 발길질을 해댔다. 식당만큼은 발품 팔아 찾아보기로 했다. 골목과 골목들이 얽히고설킨 울릉도 도동을 걷는 일은 마치 미로를 탐험하는 것처럼 즐거웠다. 여행지의 좁은 골목에서는 그곳 사람들의 꾸밈없는 일상과 취향, 아기자기한 생활들을 엿볼 수 있다. 예술작품 전시회장에 온 사람마냥 이리저리 눈을 돌리다가 한 허름한 식당 앞에 멈춰 섰다. 울릉군청 앞에 있는 ‘돌섬식당’은 울릉도의 대부분 음식점들이 그러하듯 따개비칼국수와 따개비밥, 홍합밥, 오징어내장탕 등을 판다. 스테인리스 미닫이문에 주인 부부가 직접 따개비를 따는 모습, 정답게 따개비를 손질하는 모습 등 대문짝만 하게 붙여 놓은 사진이 내 발길을 붙잡았다.따개비칼국수를 주문했다. 사실 따개비란 것을 처음 먹는 순간이었다. 숱하게 바다낚시를 하며 갯바위에서 밟고 다니던 그 따개비가 음식이 될 거라곤 생각 못했다. 알고 보니 탈모에 좋은 아르기닌이 풍부해 고급 식재료로 각광받는다고 한다. 육지와 멀리 떨어져 먹을거리가 귀한 섬, 척박한 환경에서 섬사람들이 억척스레 찾아낸 식재료라 생각하니 칼국수를 휘저을 때 푸른빛을 언뜻 내비치는 따개비살이 참 귀하게 여겨졌다. 따개비칼국수는 간단하다. 따개비 삶은 육수에 칼국수 면과 애호박, 청양고추 등을 넣고 끓여낸 후 김과 참깨를 고명으로 얹으면 끝이다. 간단한 레시피지만 면과 따개비살을 젓가락으로 집어 후루룩 빨아들이면 갯바위를 때리는 파도의 시원함과 등대불빛의 온기, 푸른 물 내음이 몸속으로 함께 들어온다.소박하지만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다시 도동항으로 향했다. 도동항 여객선터미널과 이어진 행남해안산책로를 걷기 위해서다. 도동항 방파제에서부터 저동 촛대바위까지 이르는 둘레길로 길이는 총 2.6㎞다. 왕복하는 데 1시간 20분쯤 소요된다. 동해에서도 먼 바다인 울릉의 물결은 세상 어디서도 본 적 없는 파랑을 지녔다. 행남해안산책로를 걸으면 발꿈치부터 정수리까지, 혈관을 흐르는 피마저 파랗게 물드는 느낌이 든다. 걸을수록 몸이 가벼워진다. 이 길 위에서 나는 바닷새가 되어 몸이 떠올랐다가 다시 한 마리 물고기가 되어 가을햇살로 짠 은빛 비늘의 스웨터를 입었다. 해안산책로에서 가장 탄성을 자아내는 절경은 해식동굴이다. 오랜 세월 동안 파도가 깎아낸 협곡에는 사파이어 빛깔의 바닷물이 쌀 씻는 소리로 차르르, 탬버린 소리로 차르르, 사랑하는 이가 긴 머리를 감는 소리로 차르르 밀려오고 밀려나가며 신비한 음악을 연주한다. 눈과 귀를 모두 사로잡는 해식동굴의 풍경을 SNS에 올렸더니 난리가 났다. 지중해에 있느냐고, 어느 나라를 여행하고 있느냐고, 이런 바다색이 있을 수가 있느냐고 호기심과 부러움, 놀라움을 담은 댓글들이 따개비처럼 다닥다닥 붙었기 때문이다.조금 걷다보니 ‘용궁’이라는 이름의 횟집이 나타났다. 움푹 팬 홈통 지형 빈터에다 테이블을 펴고 생선회와 전복, 오징어, 소라, 멍게 등 해산물을 파는 식당이다. 발밑까지 밀려들어오는 바다의 빛깔과 소리와 냄새와 감촉을 온몸으로 만끽하면서 바다가 키운 해산물로 혀끝의 쾌감까지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이따 저녁에 오이소” 하며 지어보이는 푸근한 미소가 없었더라도 오늘 저녁 식사는 무조건 이곳이라고, 점을 세게 찍어두고는 다시 걸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쓴 ‘그리스인 조르바’의 한 대목이 무작정 떠오르는 오후였다. “따사로운 가을날 낯익은 섬의 이름을 외며 바다를 헤쳐 나가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쉬 천국에다 데려다 놓을 수 있는 것이어서 나는 좋아한다. 그곳만큼 쉽게 사람의 마음을 현실에서 꿈의 세계로 옮겨 가게 하는 곳은 없으리라.”             /시인 이병철

2019-09-22

뽀얀 국물에 탱글한 생선살 한술 뜨니 ‘아…’ 말문이 막힌다

여행을 갈 때면 먼저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워놓는 편이다. 계획을 세울 때부터 여행을 벌써 시작하는 아름다운 ‘들뜸’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진작 그곳에 가 내게 손짓한다. 궁금한 곳의 날씨를 검색해보는 순간, 이미 나는 여행지로 몇 걸음 나아가게 된다. 그런데 지난 계절 경북 바닷길 여행은 정말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고 ‘무작정’ 떠났다. 잠잘 곳도, 밥 먹을 곳도 정하지 않고 간 여행이었다. 구경거리야 스마트폰으로 검색하면 금방 찾아갈 수 있고, 잠은 아무데서나 자면 그만이다. 문제는 식도락이었다. ‘맛집’을 검색하면 되지 않느냐고 누군가는 묻겠지만, 인터넷에 ‘맛집’으로 소문난 식당, 화려한 방송 출연 경력을 내세우는 집을 나는 신뢰하지 않는다. 사전 계획을 세울 때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것도 식당 선택이다. 그렇게 공들여 찾아간 집들은 대부분 만족스러웠다.고민이 깊어져 갔다. 경북 바닷길 537㎞, 그 아득한 푸른 길에서 파도처럼 밀려올 허기를 무엇으로 채워야 할까? 몸이 여행 중임을 알아차린 혀는 더욱 까다롭고 예민하게 미뢰를 세워 ‘아무거나’와 ‘대충’을 절대 용인하지 않을 텐데…. 우리는 ‘아무거나’와 ‘대충’을 거세게 거부해야 한다. 음식뿐만 아니라 의식주와 여행, 취향과 관련된 모든 선택의 순간마다 그래야 한다. 아무거나 대충 입고, 먹고, 보는 사람은 자기결정권을 스스로 포기한 피동적 객체로 삶을 살아가게 된다. 늘 같은 것만 먹는 사람, 늘 똑같은 옷만 입는 사람도 취향의 확장을 통해 감각을 쇄신하고, 다양성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자칫하다가는 자기중심적이고 변화에 유연하지 못하며 타인을 존중하지 않는 ‘꼰대’가 되기 쉽다 자기에게 익숙한 것, 편한 것만을 추구하면서 새로운 자극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경직된 태도를 버려야 한다. 여행은 낯설고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이다.아무거나 먹지 말아야 할 이유는, 감각이 곧 사고 작용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감각은 체험이 되고 체험은 지식이 된다. 익숙한 감각은 익숙한 생각, 늘 똑같은 사고밖에 할 수 없게 하지만 낯선 감각, 새로운 감각은 우리의 사고 체계에 혼돈과 충격을 일으키며 신선함을 불어넣는다. 낯선 감각에 우리 몸이 반응할 때, 사고 작용도 활발하게 활성화된다. 그걸 기대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떤 계획도 세우지 않고 경북 바닷길 여정에 오른 무모함 말이다. 어쩌면 나는 계획을 세우면서 나도 모르게 내 취향을 절대적 기준으로 삼아왔는지도 모른다. 입맛이란 수시로 변하기 마련인데, 계획표대로 정해진 식당 문만 열고 들어가면서 더 나은 미식의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시킨 것은 아니었을까?그래서 이번엔 철저하게 내 몸이 보내는 신호에만 집중해 식당을 찾아가보기로 했다. 감각이 가리키는 곳, 내 미각과 후각, 향미 본능을 끌어당기는 집에 무작정 들어가기로 했다. 경북 바닷길을 쏘다니는 동안 정말 그렇게 했다. 하루 세끼 중 한번은 꼭 인터넷 검색에 의지하지 않고 ‘감’으로 선택한 식당에서 먹었다. 대만족이었다. 서울 사람이 흔히 갖는 경북 음식에 대한 편견이 싹 사라졌다. 내게 우연한 미식의 기쁨을 선물한 집들은, 현지인들만 아는 ‘숨은 진주’였다.울진 죽변항에는 생대구탕을 전문으로 하는 ‘돼지식당’이 있다. 죽변항 수협 직판장 앞에 자리한 이 집은 울진 지역 언론에 몇 차례 소개된 바 있으나 외지 사람들에게는 아직 생소하다. 울진 주민들에게 오랜 시간 사랑받아 온 이 대구탕의 명가는 죽변항 근해에서 갓 잡은 싱싱한 생대구를 무와 미나리, 파 등과 함께 맑은 국물로 끓여낸다. 한 숟가락 뜨는 순간 나는 무릎을 치며 후회했다. “어제 술을 마셨어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내뱉은 혼잣말의 볼륨이 좀 컸는지 다른 손님들이 깔깔 웃었다. 그 웃음은 곧 ‘당신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공감의 표시였다. 속풀이에 이보다 더 좋은 음식은 없을 것이다. 맑고도 뽀얀 국물이 김을 모락모락 내며 끓으면, 탄탄한 대구살 한 점 크게 발라 국물과 함께 숟가락으로 떠먹는다. 구수하고 담백한 국물 맛과 탱글탱글한 생선살의 식감, 뜨끈한 온기, 몸에 찌든 때를 깨끗하게 씻어주는 듯한 시원함을 동시다발적으로 감각하는 순간, 죽변은 애인이 없어도 눌러앉고 싶어지는 애틋한 마을이 된다.영덕 강구항에는 미주구리(물가자미) 식당이 여럿 있다. 그 중 청송식당은 미주구리회를 잘하는 노포, 지난번에 다녀왔으니 이번엔 ‘나비산 기사식당’에 가 볼 차례다. 강구항 삼사사거리 입구에 자리한 생선찌개 전문점이다. ‘나비산’은 영덕 오포읍의 작은 산 이름, 높이 152m의 산은 그 형세가 나비 모양을 닮았는데 정상에서 강구항 전경을 훤히 내려다볼 수 있다. 산 이름을 딴 식당은 규모가 꽤 크고 주차장도 널찍해 찾아가기 편하다. 자리에 앉아 미주구리찌개를 시켰다. 정갈한 밑반찬들이 먼저 나오고, 곧 보암직하고 먹음직스러운 찌개가 가스버너에 올랐다. 매콤하고 칼칼한 빨간 국물은 약간의 점성을 지녀 걸쭉한 식감을 낸다. 넉넉히 들어 있는 미주구리 살을 무, 두부와 함께 건져내 흰 쌀밥에 얹은 후 국물 쓱쓱 비벼 한 입 크게 떠먹으면,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입 안에서 화려한 축제 한창이다.포항 죽도시장에는 소머리곰탕 집들이 즐비하다. 유명한 집은 ‘장기식당’과 ‘평남식당’, 두 집 모두 문전성시라 주말에는 줄을 서 기다려도 못 먹고 돌아서기 일쑤다. 그럴 때 훌륭한 대안이 있다. 곰탕 골목이 있는 시장 초입에서 수산물 매대가 늘어선 어판장 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폐백 및 이바지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가게들이 있다. 그 중 한 집인 ‘울릉도식당’에서는 단돈 만원으로 푸짐하고 맛있는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다. 나는 이 집에 올 때면 뭉텅뭉텅 썰어낸 머릿고기와 누른 머릿고기(편육)를 각 한 접시씩 시킨다. 뽀얀 곰국 한 뚝배기는 무려 서비스다. 어느 겨울날 이 집에서 머릿고기 먹는데 주인 할머니가 울상이다. 송해 선생이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그런 가짜 뉴스가 가끔씩 인터넷에 돌 때가 있다. 일이 손에 안 잡힌다며 침울해 하는 할머니께 “아니에요. 헛소문이랍니다. 안돌아가셨어요.” 말씀드리자 그제야 가슴 쓸어내리며 “만우절도 아닌데 왜 거짓말해!” 옆집 아주머니에게 버럭, “악성루머란다. 사이버 수사대가 잡아간단다!” 옆집 아저씨에게 버럭, “건강하단다! 어이고 오래 살겠다” 혼잣말하신다. 나는 그만 파안대소하고 말았다.경주 ‘황리단길’에는 요즘 말로 ‘힙’한 음식점들이 많다. 대부분 피자, 파스타 등 양식 내지는 한우 갈비, 불고기 등을 판다. 맛은 있지만 특색이 좀 약하다. 황리단길에 아쉬운 점은, 너무 세련된 나머지 늦은 저녁 술 한 잔 생각에 침이 고이는 애주가가 갈 만한 ‘허름한’ 대포집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황리단길을 지나 황오동에 가면 애주가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집, ‘황오실비’가 있다. 닭발, 오징어볶음, 곱창전골, 동태찌개 등 맛깔난 안주들이 많지만 그 중 압권은 홍어삼합이다. 경주에서 홍어삼합을 먹게 될 거라고 상상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삭힌 홍어를 돼지고기, 그리고 묵은지와 함께 먹으니 탁주 한 사발이 금세 비워졌다. 계란프라이 한 접시를 추가로 시키곤 ‘감격의 눈물’을 흘릴 뻔했다. ‘겉바속촉’하게 반숙으로 익힌 계란프라이가 접시에 수북이 쌓여 상 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우현 고유섭은 “경주에 가거든 관광 다니지 말고 대왕암을 찾으라”고 했는데, 나는 그 말을 이렇게 바꾼다. “경주에 가서 술 생각이 나거든 황오실비를 찾으라”라고.서정주는 “바닷속에서 전복 따는 제주해녀도 제일 좋은 건 님 오시는 날 따다 주려고 물속바위에 붙은 그대로 남겨둔단다”(‘시론’)라고 노래했다. 물속바위에 붙은 제일 좋은 전복을 따다 드리는 마음으로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숨은 맛집’을 소개했으니, 경북 바닷길을 여행하는 그대여, 부디 “아무거나 대충” 드시지 말기를!     /시인 이병철

2019-09-15

푸른 바다와 나만의 수영장, 럭셔리한 낭만

할리우드 영화에는 수영장 딸린 비버리힐즈의 대저택이 종종 등장한다. 어릴 적에 그런 영화들을 보면 몹시도 부러웠다. ‘수영장 딸린 집’은 부의 상징인 동시에 여유롭고 낭만적인 삶을 의미했다. 그래서 이사 가자고 떼를 썼다. 그때마다 남루한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 아버지 손에 붙들려 간 동네 ‘귀빈탕’ 냉탕에서 물장구치다가 등짝을 얻어맞거나 엄마와 함께 과천 ‘복돌이동산’ 수영장에 가는 게 고작이었다. 또래 아이들과 함께 물 반, 사람 반의 풀장에 들어가 있으면 어떤 아이들은 물속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몸을 부르르 떨곤 했다.청소년기를 지나 어른이 되어서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나마 몸매에 자신 있던 20대 때는 한강 수영장이나 이름난 오션파크에도 좀 다녔는데, “돈 빼고 살 모으는” 무역 적자의 삶을 살다보니 근육은 빠지고, 배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수영장에 발길을 끊었다. 수영장에서 놀던 여름이 철 지난 영화처럼 색 바랜 추억이 될 무렵, 정말 철 지난 영화 속 비버리힐즈 저택이 떠올랐다. 타인과 살 부대끼지 않고, 타인의 시선으로부터도 자유로운 ‘나만의 수영장’에서 음악을 들으며 칵테일을 마시고, 그러다 물로 뛰어들어 노는 그 ‘사치스런’ 휴양이 간절해진 것이다.펜션 여행이 한창 인기를 끌던 2000년대 중반 이후 사람들은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숯불에 삼겹살 구워 먹고 하룻밤 자고 오는 ‘상투적’ 여행에 슬슬 싫증이 났다. 여행 숙박업에도 다양성과 함께 개인주의 영향의 ‘프라이빗(private)’이 요구되었다. 사람들은 펜션이나 리조트 여행에서 보다 특별한 휴식을 기대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경기도 가평, 포천 등 펜션 밀집지역에 우후죽순처럼 ‘스파 펜션’이 생겨났다. 제트스파 기계욕조를 설치해두고 ‘웰빙’과 ‘힐링’을 내세워 돈을 몇 배로 더 받았다. 스파 욕조에 입욕제를 풀어 거품을 몽글몽글 피워놓고, 오색으로 불빛을 바꾸는 욕조 속에 몸을 누인 채 음악과 와인을 즐기는 일은 꽤 낭만적이었다. 하지만 좁은 욕조에서 수영은 즐길 수 없다. 대부분 펜션이 스파 욕조를 실내에 설치해둬 바깥 자연의 공기와 바람, 빛을 만끽할 수도 없었다.그리고 2010년대, 바야흐로 ‘풀빌라’의 시대가 왔다. 풀빌라에서는 널찍한 수영장을 남과 공유하지 않고 혼자 쓸 수 있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할 때 더 좋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처음에는 가평이나 포천 등 숲과 계곡 여행지에 주로 들어섰지만 이제는 ‘오션뷰’ 풀빌라가 대세다. 필리핀 세부나 인도네시아 발리,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의 풀빌라 못지않은 ‘럭셔리 풀빌라’까지 생겨났다. 굳이 해외 휴양지를 가지 않더라도 국내에서 얼마든지 특별한 휴식을 즐길 수 있다. 그런 풀빌라들은 대개 비버리힐즈 저택처럼 근사한 외관과 내관을 지녔다.경북 바닷길에도 풀빌라들이 여럿 생겼다. 동해안 여행의 트렌드가 새로워진 것이다. 침식작용이 활발해 절벽이 많고 수심이 깊은 동해의 특성이 풀빌라가 들어설 천혜의 입지조건이 되었다. 이제 경북 동해안을 찾는 사람들은 해파랑길 절벽 위에 지어진 풀빌라에서 물놀이와 함께 휴식을 즐기며 깊은 바다만이 낼 수 있는 신비한 푸른빛에 몸과 마음을 적신다. 그 환상적인 체험을 할 수 있는 경북 바닷길의 풀빌라 몇 곳을 소개하고자 한다.울진 후포에는 ‘프렌치페이퍼’라는 풀빌라가 있다. 기하학적 설치미술작품을 연상시키는 건물 외관이 먼저 눈을 사로잡는다. 펜션 마당에 넓은 야외 공용 수영장이 있어 동남아 휴양지 리조트의 분위기가 난다. 총 24개의 객실 중 풀빌라 타입은 10개인데, 객실마다 바다를 향해 막힘없이 개방된 야외 테라스와 내밀한 수영장이 있다. 테라스에선 바비큐를 즐길 수도 있다. 숙박료도 합리적인 편, 풀빌라 객실 기준 1박 17만원에서 33만원 선이다.영덕에는 지난 글에서 자세히 소개한 병곡면의 ‘하벳리조트’가 ‘럭셔리 풀빌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남정면에는 하벳리조트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내실이 탄탄한 ‘프라이빗어스’가 있다. 구계리 해변에 있는 이 풀빌라 펜션은 언뜻 보기에는 카페처럼 생겼다. 3층 구조에 총 다섯 개의 객실을 보유했으니 꽤 아담한 편이다. 하지만 다른 곳과 구별되는 특징을 지녔다. 바로 ‘파티 풀빌라’라는 점이다. 대부분의 풀빌라들이 연인, 또는 아이를 동반한 부부를 고객층으로 삼아 2인 내지는 4인이 이용하도록 만들어진 데 비해 이곳 프라이빗어스의 ‘펜트하우스’는 최대 10명까지 수용이 가능하다. 객실에는 10명이 동시에 들어가 놀 수 있는 수영장과 편백나무 사우나가 있으며, 다 같이 둘러앉아 영화를 볼 수 있는 소파와 대형 티브이, 바비큐 시설도 갖추고 있다. 친구들끼리 또는 가족 친척들끼리 함께 와 놀기에 안성맞춤이다. 펜트하우스 기준 1박 60만원에서 72만원 선이다.포항 구룡포에는 ‘이스케이프 풀빌라’가 있다. 동해안의 여러 풀빌라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며, 숙박요금이 제일 비싼 곳이기도 하다. 그만큼 최고의 시설을 자랑한다. 인적 드문 하정리 바닷가에 자리한 이곳은 바다와 매우 근접한 거리에서 외부 세계와 완전히 차단된 채 은밀한 휴식을 즐길 수 있다. 외관부터 호화스러운데, 내부는 더 고급스럽다. ‘올 화이트’톤으로 인테리어된 객실에 들어서면 마치 그리스 산토리니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고급화 전략이 주요했는지 높은 가격대에도 아랑곳 않고 이곳을 찾는 고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하정리 바다에서 매년 겨울마다 볼락 낚시를 하는 나는 그곳 바다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잘 알고 있다. 가히 포항의 숨은 비경이라 할 만하다. 그 바다와 뺨이 닿을 듯 마주보면서 스파와 수영, 미니바, 바비큐, 빔프로젝트 영화 관람을 모두 즐기는 이스케이프 풀빌라의 1박 요금은 최저 25만원에서 90만원까지다.하지만 하룻밤에 수십만원을 호가하는 숙박비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기념일이나 여름휴가 때 큰맘 먹지 않는 이상 엄두를 내기 어렵다. 비싼 풀빌라는 ‘그림의 떡’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합리적인 가격으로 일상의 단조로움을 벗어나 특별한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곳을 귀띔해드리려 한다. 분위기 좋은 카페들이 밀집해 있는 포항 환호동에 ‘에스피에스타’라는 펜션이 있다. 비록 사방이 트인 ‘오션뷰’는 아니지만, 멀리 영일대 해수욕장과 포항 도심의 화려한 야경을 보며 목욕을 즐길 수 있다. 야외에 작은 공용 수영장이 있고, 각 객실마다 별도 공간에 대리석 자쿠지 욕조가 마련되어 있다. 카페와 레스토랑, 루프탑 바도 이용 가능하다. 1박 요금은 8만원에서 26만원, 부담이 덜하다. 평일에 이용한다면 ‘가성비’를 한껏 누릴 수 있다.한옥 펜션이 즐비한 경주에 무슨 풀빌라가 있느냐고 묻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하지만 경주의 대형 한옥 펜션 중에는 마당에 수영장을 갖춘 곳도 있다. 그런데 한옥 펜션 대다수가 ‘황리단길’이나 보문관광단지 주변에 모여 있기 때문에 ‘바닷길’에서는 조금 멀다. 바다로 가자. 경주 남단의 양남면 수렴리 해변엔 ‘루트94’라는 신축 풀빌라 펜션이 있다. 객실에 딸린 개별 수영장에서 짙푸른 경주 바다를 바라보며 수영하고, 테라스 벤치에 앉아 생과일주스를 마시는 망중한을 1박 20만원대의 비교적 낮은 금액으로 누릴 수 있다.현실은 남루해도 상상은 풍요롭다. 근사한 테라스 풀장에서 나는 ‘태양은 가득히’의 알랭 드롱이다. 어차피 보는 사람 아무도 없으니 알랭 드롱도 되고 뱅상 카셀도 되고 정우성도 될 수 있다. 눈앞의 바다를 바라보며 물놀이를 즐기고, 썬베드에 누워 책을 읽고 또 음악을 듣는다. 석양을 감상하면서 바비큐 그릴에 고기와 함께 키조개, 뿔소라, 문어를 굽는다. 시드니 베쳇의 ‘Summer time’을 틀어놓으니 소프라노 색소폰 선율이 풀장 수면에 너울진다. 황홀감에 젖어서 나는 물에 몸을 담그고 와인을 마신다. 캄캄한 수평선 위로 달이 뜨고, 오징어잡이 배들이 불빛을 흘리는 밤바다 풍경이 별천지다. 새벽엔 하늘에서 글썽거리던 별들이 빗방울처럼 풀장에 떨어져 내린다. 누가 곁에 있으면 좋겠는데, 혼자 누리기엔 너무 사치스런 낭만이다.      /시인 이병철

2019-09-08

바닷가 카페에서는 누구나 예술가, 철학가 된다

경북의 푸른 바닷길에는 낭만과 사랑, 멋과 맛이 파도친다. 봄에는 벚꽃이 봄비처럼 내리는 해안도로를 따라 도다리들이 올라오고, 여름엔 아까시 향기를 희붐한 불빛으로 뭉쳐 던지는 등대 아래 농어들이 헤엄친다. 가을엔 단풍이 밤물결마저 오색으로 물들인 근해에 볼락과 꼴뚜기들이 뛰어놀고, 겨울엔 흰 눈이 스웨터를 짜 입힌 항구마다 대게 찌는 김이 훗훗하게 피어오른다.바다를 찾는 사람들은 북적거리는 포구에서 싱싱한 해산물을 맛보고 싶어 한다. 고운 모래가 펼쳐진 해수욕장에서 일광욕과 물놀이를 즐기고 싶어 한다. 해송 군락지를 걸으며 신선한 피톤치드를 들이마시고 싶어 한다. 밤바다에 너울지는 오징어잡이 배의 불빛을 보며 낭만적 분위기에 젖고 싶어 한다. 포구의 해산물 식당과 해수욕장 사이에, 해수욕장과 해송 군락지 사이에, 해송 군락지와 밤바다 사이에 ‘카페’가 있다. 카페에 가기 위해 바다를 찾는 사람은 많지 않다. 카페는 시간과 시간 사이, 장소와 장소 사이에 잠깐 들르는 곳, 그래서 특별한 공간으로 여겨지지 않는다.그러나 사실 카페는, 정확히 말해 바닷가의 카페는 아름답고, 아름다워서 무용하며, 무용하기에 가치 있는 곳이다. 카페는 바다의 풍경을 통유리창에 담아 전시하는 화랑이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다른 행성이다. 사랑의 언어들이 달콤한 노래로 흐르는 음악 감상실이다. 커피 향기와 빵 굽는 냄새가 함부로 엎질러진 부엌이다. 바다는 늘 푸르기만 한 것 같아도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는다. 그런 바다의 얼굴에 다채로운 표정을 입히는 것이 해안가의 카페들이다. 카페는 바다의 낭만을 더욱 부풀린다. 카페에서 우리는 휴식하고, 생각하고, 대화하고, 상상한다. 바닷가 카페에서는 누구나 예술가가 되고, 철학가가 된다.예술가들은 카페를 사랑한다. 그들은 카페가 일상적인 장소이자 특별한 공간임을 알고 있다. 보들레르는 “우연하고 일시적인 것에서부터 영원한 무엇을 발견하는 일이 예술”이라고 말했다. 예술가들은 카페라는 일상의 공간에 하루 종일 무심하게 앉아 있다가 문득 번갯불처럼 내리꽂히는 예술적 영감을 포획한다. 보들레르는 파리의 카페 ‘누벨 아테네’를 즐겨 찾았는데, 이곳에는 보들레르 말고도 랭보, 에드가 앨런 포, 고흐, 고갱, 마네, 르누아르, 피카소 등이 동시대에, 또 시절을 달리하여 드나들었다. 이들 시인과 소설가, 화가들은 ‘누벨 아테네’에서 ‘초록요정’이라 불리는 술 ‘압생트’를 마셨다.헤밍웨이가 쿠바 아바나에 머물 때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 역시 카페다. 헤밍웨이는 아바나 거리의 ‘라 보데기타’라는 카페에 가 모히또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했다. 우리나라 예술가들도 카페를 사랑하기는 마찬가지, 시인 이상은 1933년 종로에 ‘제비다방’이라는 카페를 열었다. 이곳에서 그는 김유정, 박태원, 박팔양 등 동료 문인들과 커피를 마시며 토론했다.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 초라한 ‘바그다드 카페’와 ‘호텔 캘리포니아’ 등 영화와 음악에서도 카페는 낭만적인 소재로 등장한다.울진 죽변항에서 봉평해수욕장으로 가는 해안도로변엔 ‘르 카페 말리(Le Cafe Marli)’가 있다. ‘marli’는 프랑스어로 가장자리라는 뜻, ‘죽변’이 대숲의 외곽임을 떠올려보면 ‘가장자리 카페’라는 이 집 이름은 이국 언어로 지역의 특색을 잘 담아낸 셈이다. 이곳은 파리나 리옹 같은 대도시의 카페가 아니라 마르세유나 니스 등 프랑스 남부의 한산하고 따분한 해안가 카페를 연상시킨다. 봉평해변의 고운 백사장을 바라보며 음료를 마실 수 있는 야외 테이블에는 노랗고 빨간 파라솔이 펼쳐져 있는데, 꽤나 이국적인 그림이다. 테라스와 루프탑에서도 바닷바람과 햇살과 파도소리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카페 내부에는 액자 그림이 몇 점 걸려 있지만, 가장 크고 아름다운 액자는 역시 통유리창이다. 통유리창은 죽변항 방파제의 하얀 등대와 빨간 등대, 방파제에 부딪치는 파도의 흰 포말, 아득하게 파랗기만 한 수평선까지 모두 담아낸다. 이 집은 커피 맛도 좋지만, 커피와 우유, 크림, 얼음을 섞어 만든 ‘프라푸치노’가 인기 메뉴다. 미숫가루 라떼는 중장년들이 좋아한다.영덕에서 유명한 바닷가 카페는 강구항 근처의 ‘카페 봄’인데, 지난 글에서 자세히 소개했으니 이번엔 다른 곳을 찾아가보자. 병곡면 고래불에서 후포로 가는 길에 백석해변을 지나게 된다. 이곳 백석해변엔 ‘블라블라(Bla bla)’라는 카페가 있다. ‘블라블라’ 역시 프랑스어, 공허한 미사여구나 장광설을 의미한다. 헛소리, 아무 말, 두서없는 수다가 모두 ‘블라블라’다. 직장이나 학교, 사회생활에서 우리는 늘 목적과 의도와 논리가 분명한 언어로 말해야 하지만, 여행지에서는 어떤 의미도, 목적도, 논리도 필요 없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말하면 그만이다. 펜션 건물 1층에 딸린 카페인데, 이곳에서는 커피 등 음료는 물론 식사와 술을 함께 즐길 수 있다. 특히 수제등심돈까스가 맛있다. 돈까스를 먹고서 아이스커피를 들고 야외 테라스 소나무 그늘 아래 앉아 병곡 바다를 바라보는 것은 호화스런 휴식이다. 테라스는 흰돌 해변으로 곧장 이어져 있어 파도가 돌을 간질이는 소리 들으며 산책도 즐길 수 있다.포항에는 근사한 카페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흥해읍 칠포리의 ‘두 낫 디스터브(Do not disturb)’를 첫손에 꼽고 싶다. ‘방해금지’라는 이름부터 맘에 든다. 여행의 가장 큰 적은 외로움도 소매치기도 저질 체력도 아닌 ‘현실’이다. 돌아가야 할 일상, 두고 온 ‘그물’이 끊임없이 손짓하면 여행은 이미 망친 것이다. 예수를 쫓아 위대한 여행길에 올랐던 베드로도 결국엔 갈릴리 해변으로 돌아갔지 않은가. 이곳에서는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고 온전한 휴식을 즐길 수 있다. 두고 온 일상이 전혀 떠오르지 않을 만큼, 그저 순간에 머물게 해주는 풍경과 여유, 커피가 있기 때문이다. 카페 앞 산책로와 ‘포토존’에는 그리스 산토리니나 수니온을 연상시키는 하얀색 벽돌 조형물들이 놓여 있는데 아침 바다의 푸르름, 저녁 바다의 석양과 어우러지며 환상적인 풍경을 만들어낸다. 이국적 풍경은 눈에 쾌감을 선사하고, 카페 내부에 가득히 퍼지는 빵 냄새는 후각적 쾌감을 고취시킨다. 직접 구워낸 빵을 파는데 그 종류가 무척 다양하다. 말차라떼와 연유브레드가 특히 잘 어울린다. 갓 구워 따뜻한 빵을 한 입 베어 물어 빵의 고소함과 연유 크림의 달콤함이 입안에 진동할 때, 시원하고 산뜻한 말차라떼 한 모금을 마시면 마침내 미각적 쾌감까지 완성된다.경주의 ‘핫’한 카페들은 죄다 ‘황리단길’에 모여 있다. 그러나 가장 근사한 낭만은 경주의 맨 끝 바다, 양남 해변의 카페 ‘이곳, 그곳’에 있다. 1층에서는 넓은 유리창 너머 바다를 바라보며 차를 마실 수 있고, 2층에서는 한옥 서까래의 고풍스러움 아래, 아기자기한 소품들과 작은 창문에 담긴 바다와 은은한 조명 불빛과 감미로운 음악이 함께 빚어내는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이곳, 그곳’의 인테리어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연상시킨다. 이곳에 앉아 호퍼의 그림 속 인물들처럼 고독을 즐기며, 때로는 그곳의 안부를 궁금해 하면 그곳에서도 누군가가 이곳의 나를 그리워할 것만 같다. ‘비엔나커피’로 잘못 알려진 아인슈패너와 티라미수 케이크가 ‘이곳, 그곳’의 대표 메뉴다. 메뉴판에는 “바빠서 여유가 없을 때야말로 당신이 쉬어야 할 최적의 시간”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나는 포르투갈 남부 라고스 해변의 카페에서 칵테일을 마시며 석양을 바라본 적이 있다. 그리스 산토리니의 한 ‘타베르나’(그리스 전통 카페)에 앉아 대낮부터 증류주인 ‘라키’를 마신 적이 있다. 그때 카페에서 바라본 지중해는 이 세상에 없는 풍경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경북 바닷길 537km를 여행하면서 지중해보다 더 아름다운 카페들과 만났다. 더 푸른 낭만을, 더 시원하게 가슴 트이는 해방감을 만끽했다. 여행이 가장 여행다워지는 순간은, 종아리가 붓도록 이리저리 돌아다닐 때가 아니라 여유롭게, 조금은 게으르게 쉴 때라는 사실을 나는 경북 바닷길의 카페에서 새삼 깨달았다.       /시인 이병철

2019-09-01

토함산 울창한 나무 그늘 아래서 오래 묵은 근심들 씻어내고…

지난밤은 그야말로 황홀한 축제였다. 동궁과 월지의 야경이 꿈결까지 금빛으로 물들인 덕분에 단잠을 잤다. 꿈속에서 나는 신라 왕자가 되어 산해진미와 가무를 즐겼다. 잠에서 깨니 머리엔 까치집이 얹어져 있고, 늘어난 셔츠 사이로 선풍기 바람이 숭숭 들어왔다. 꿈에서 얼마나 신나게 놀았는지 허기가 졌다. 아침 메뉴를 고민하며 고요한 황리단길을 걸었다. 밤늦도록 젊은 여행자들이 맥주잔을 부딪치던 한옥 카페들은 하얀 햇살을 이불로 덮은 채 늦잠에 빠져 있었다. 황오동에 이르렀을 때,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가 코를 잡아당겼다. 경주 특산품인 황남빵이 노릇노릇 익어가는 냄새였다. 흰 우유와 함께 먹으면 얼마나 맛있을까? 아침 메뉴가 결정됐다.황남빵은 81년 전인 1938년 최영화 장인이 만들었다. 얇디얇은 빵 속에 팥앙금이 가득 들어 있는데,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먹어본 사람은 없다고 한다. 경주 사람들이 즐겨 먹는 간식에서 지금은 경주를 찾는 관광객들이 꼭 사가는 지역 특산품이 됐다. 주말이나 휴가철 성수기엔 황남빵을 직접 맛보거나 지인에게 선물하려는 사람들로 긴 줄이 선다. 주문이 많이 몰릴 때는 계산하고 나서 두세 시간 뒤에야 빵을 받을 수 있다. 갓 구워낸 황남빵을 먹는 것은 꽤나 특별한 행운인 셈이다. 이날은 6월말의 평일, 다행히 원조집인 ‘최영화빵’은 한산했다. 황남빵 10개들이 한 상자를 샀다. 방금 구워내 따뜻한 빵을 손에 쥐었다. 온기가 온몸으로 퍼지며 마음까지 데웠다. 황리단길 벤치에 앉아 황남빵 한 개를 한 입에 욱여넣고, 뜨거운 팥앙금에 입천장이 데이려는 순간 흰 우유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달콤하고 뜨뜻한 것이 목구멍으로 꿀떡꿀떡 넘어가자 뱃속에서 구슬이 이리저리 굴러다니는듯 저절로 간지러운 웃음이 났다.황남빵으로 배를 채우고 석굴암을 향해 차를 몰았다. 석굴암 주차장에 도착하니 평일인데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주차장에서 석굴암까지는 걸어서 15분 정도 걸린다. 토함산 울창한 나무 그늘 아래 흙길을 걸으면 햇살과 나무 냄새와 새소리와 바람이 몸속으로 들어와 피가 맑아지는 느낌이 든다. 초여름의 무성한 초록이 피리 소리가 되어 걸음마다 생각마다 경쾌한 춤이 되게 해줬다. 석굴암 가는 길이 더욱 즐거운 것은 다람쥐들의 재롱 덕분이다. 사람을 겁내지 않는 다람쥐들은 우듬지를 타고 내려와 깡충깡충 뛰어다니거나 바위 뒤에서 불쑥 튀어나와 솜뭉치 같은 꼬리를 쫑긋 세우며 사람들을 웃음 짓게 했다. 석굴암을 찾는 사람은 누구나 석굴 내부 본존불의 천년 미소를 보기 전에 숲길에서 벌써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세상에 두 번 태어난 김대성은 현생의 부모를 위해서 불국사를 짓고, 가난한 전생의 부모를 위해선 석불사, 즉 지금의 석굴암을 지었다. 석굴암 본존불 앞에서 나는 다시 태어나서도 전생의 부모를 섬긴 김대성의 지극한 효심에 한 번 감동하고, 신라인들의 정교한 건축 기술에 두 번 감동했다. 석굴암은 지하수가 솟아나는 암반 위에 있다. 지하수로 인해 석굴 바닥의 온도가 본존불을 모신 상부보다 낮아 이슬이 바닥에만 맺히는 구조로 천년 넘게 유지됐으나 조선 말기에 거의 방치되어 보존 상태가 불량해진 것을 일제가 시멘트를 사용해 주먹구구식으로 복원하면서 내부에 결로와 이끼가 생기고 화강암이 손상되는 등 원형을 많이 상실했다. 이후 몇 차례 복원 공사를 거쳐 지금은 커다란 통유리로 완전 밀폐된 채 습기로부터 차단되어 있다. 1년에 딱 하루, 석가탄신일에는 이 유리벽을 개방해 신도들이 석굴 내부로 들어가 본존불 주변을 돌며 기도할 수 있게 허용된다.해 뜨는 동녘을 바라보는 석굴암 본존불 석가여래좌상 앞에서 어떤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고, 또 어떤 사람들은 허리를 숙여 절했다. 유리벽으로 막혀 있어 먼발치에서밖에 볼 수 없지만, 그럼에도 석굴암의 숭고미는 온몸을 압도하는 전율로 다가왔다. 신라 불교미술의 가장 찬란한 걸작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석굴암을 사진에 담고 싶을 텐데, 사람들은 사진 촬영을 금지하는 관람 규칙을 철저히 지켰다. 이 황홀하고 신비한 아름다움 안에 그저 머무르기만 하면 충분하다는 듯이.석굴암을 내려와 다시 토함산 숲길을 걸었다. 꼭 부처를 만나지 않더라도, 현실의 공간이 깨달음의 장소로 변모하는 순간이 있다. 평범한 일상에서 어떤 뜻밖의 정경과 마주하게 될 때, 그 마주함을 통해 오래 묵은 생각과 마음을 갈아엎게 될 때 우리는 해탈과 열반의 세계를 체험하게 된다. 무당이나 박수 등 영매(靈媒)에 의해 행해지는 내림굿이나 접신무 같은 무속제의 또는 ‘신 내림’이라고 하는 신비한 영적 현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부처는 어디에나 있으므로, 경전이나 교리가 아니더라도 삼라만상 무엇에서든 깨달음을 얻으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가르침이 바로 ‘무설설무법법(無說說無法法)’의 화두다. 나는 본존불 앞에 섰을 때보다 석굴암을 다녀가는 숲길에서, 숲길을 뛰어다니는 다람쥐들의 춤에서, 다람쥐를 보며 웃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오랫동안 애타게 찾아 헤맨 평화를 발견했다. 그리고 마침내 오래 묵은 걱정과 근심을 다 씻어냈다.석굴암에서 마음의 평화를 얻었더니 불국사 구경은 그저 선물 같았다. 글감을 찾아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도, 무수히 소개된 불국사에서 어떤 새로운 풍경과 의미를 발견해야 한다는 강박에서도 벗어나 넓디넓은 경내를 천천히 걸었다. 대웅전도 다보탑도 삼층석탑도 다 내 마음의 여러 모양이었다. 법당 회랑엔 ‘불국사 글짓기 그리기 대회’에서 입상한 유치원생들의 크레파스 그림이 전시되어 있었다. 아이들의 상상력은 가슴을 뛰게 한다. 그림 속에선 부처도 사람도 새와 나무도 다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아이들은 그런 세상을 꿈꾸는 것이다.관광객들에게 경주 맛집으로 각광 받는 ‘함양집’ 보문점을 찾았다. 보문관광단지와 가까운 동궁원 근처에 있다. 한우물회와 육회비빔밥이 유명한 집이다. 여름에는 특히 살얼음 육수에 한우 생고기와 함께 배, 오이, 무, 소면 등을 담아내는 한우물회가 ‘인기 폭발’이다. 요즘은 젊은 세대 취향과 ‘SNS 감성’을 충족하는 치즈 불고기도 많이 팔린다 한다. 불고기 위에 모짜렐라 치즈를 잔뜩 얹어 마치 피자처럼 접시에 얹어낸다. 평일임에도 점심시간에는 긴 줄이 섰다. 대기명부에 이름을 적고 20여분을 기다려야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주문하자마자 한우물회가 상에 올랐다. 먼저 소면을 말아 새콤달콤하고 시원한 육수와 함께 후루룩 흡입하고, 생고기를 한 숟가락 듬뿍 입안에 넣어 우물거리니 또 한 번 뱃속에서 구슬이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육수에 밥을 말아 먹으니 허기와 더위가 한방에 해결됐다. 한우물회 한 그릇에 1만2천원, 대체로 비싼 편인 경주 물가를 감안하면 괜찮은 가성비다.함양집 바로 앞에 동궁원이 있다. 동궁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동식물원이었던 동궁과 월지를 현대적으로 재현한 관광지다. 식물원과 버드파크, 음악분수 등의 시설을 갖춰 어린아이들의 체험학습 공간으로, 연인과 가족의 휴식과 산책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버드파크 입장권을 끊었다. 공작, 타조, 앵무새 등 새들은 물론 물고기와 강아지, 거북이, 기니피그 등 다양한 동물들도 볼 수 있다. 새들의 화려한 오색 날갯짓은 눈을 즐겁게 했고, 온갖 아름다운 소리로 울어대는 노래는 귀를 황홀하게 했다. 대개 동물원의 조류 전시관에선 새들의 배변 냄새가 지독한데, 이곳 버드파크에서는 악취가 전혀 나지 않아 관람하기에 몹시 쾌적했다. 입구에서 파는 새 모이를 사서 손에 올려두고 있으니 앵무새들이 날아와 손 위에 앉았다. 동물과 스킨십하는 색다른 체험까지 할 수 있는 것이다. 새를 무서워하는 아이는 울음을 터뜨리기도 하고, 어느 로맨틱한 청년은 손바닥에 내려앉은 새에게 연인을 향한 고백의 언어 ‘사랑해’를 따라 하게 했다. 그 장면에 괜히 외로워져 버드파크를 빠져나왔다.내 외로움을 달래준 것은 한국대중음악박물관이다. 동궁원과 마찬가지로 보문관광단지 근처에 있다. 이곳에서는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을 비롯한 수많은 LP앨범과 뮤지션들의 애장품, 악기, 1920년대에 사용된 희귀 음향 시스템 등이 전시되고 있으며, 시청각실에서는 원하는 음악을 직접 턴테이블에 재생해 감상할 수 있다. 방탄소년단 등 최신 케이팝과 평소 좋아하는 락 음악을 신나게 감상하다가 갑자기 석굴암과 불국사를 지은 김대성이 생각나 바비킴이 부른 ‘MaMa’를 찾아 들었다. “당신이 내게 했던 것처럼 이젠 내가 안아줄게요.” 김대성은 전생과 현생의 부모 모두를 지극히 섬겼는데, 나는 무얼 하고 있나? 박물관에서 나와 ‘최영화빵’ 가게를 찾았다. 엄마 갖다 줄 황남빵 30개들이 한 상자를 사서는 서울로 차를 몰았다. 노릇노릇 잘 익은 석양이 내 등을 따듯하게 쓰다듬어주었다.      /시인 이병철

2019-08-25

어둠 내리면 금빛 주단 깔리고… ‘아! 신라의 밤이여’

새는 보이지 않는데 새 지저귀는 소리가 났다. 졸음에 겨운 눈을 부비고 하늘을 보니 투명한 햇살만 기왓장에 부딪치고 있었다. 짹짹거리는 저 소리는 새소리일까 햇살이 부서지는 소리일까. 경주의 아침은 경쾌한 노래로 왔다. 고택에서는 놋그릇 부딪치는 소리, 밥 짓는 냄새, 빗자루로 마당 쓰는 소리, 장독대 항아리가 튕겨내는 치자꽃과 댓잎의 향기마저 모두 음악이었다.아침식사를 무엇으로 할지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 경주 황남동 ‘황리단길’에는 아침식사가 가능한 식당이 많지 않으나 조금만 걸어가면 24시간 문을 여는 황오동 팔우정 해장국거리가 있다. 30년 넘은 노포들이 서로 어깨를 맞대고 기대어 있는 골목, 한 티브이 프로그램에 소개되어 널리 알려지긴 했지만 젠트리피케이션의 파도를 막아내기엔 낡은 외벽과 간판이 많이 힘겨워 보인다. 조선시대에 시인 묵객들이 시를 지어 읊던 팔우정은 오래 전 무너지고 비석만 남았다. 그마저도 지금은 원래 있던 자리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1960년대에 비석을 가운데 두고 로터리가 들어서자 팔우정은 경주의 중심지가 되어 사람이 몰려들었다. 해장국거리도 그때 생겨났다.닭뼈 육수에 김치와 콩나물, 묵채, 모자반을 넣어 끓인 경주식 해장국은 꽤나 생소한 것이다. 묵의 식감을 썩 좋아하지 않는 나는 원조격인 팔우정 해장국 대신 옆집 ‘포항 해장국’에 들어가 앉아 소고기국밥과 계란프라이 3개를 주문했다. 엄마가 끓여주던 소고기무국이 그리웠던 모양이다. 오래 지나지 않아 소박한 밑반찬과 소고기국밥이 상에 올랐다. 반숙으로 해달라고 말한다는 걸 깜박했더니 계란프라이는 노른자가 다 익어 나왔는데, 학창 시절 도시락 반찬 먹는 기분이 드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담백하고 고소한 소고기 국물이 무의 아삭한 단맛과 더해져 한 숟갈 뜰 때마다 속이 든든해지면서도 또 시원하게 풀렸다. 김치와 콩나물, 고춧가루가 얼큰함을 더해 떠먹을수록 이마에 땀이 맺혔다.해장국 한 그릇을 비우고 가게를 나오자 그새 햇빛이 너르게 퍼져 있었다. 대릉원의 커다란 고분들 사이사이로 색감이 짙은 푸른 하늘이 빽빽하게 몸을 끼워 넣는 중이었다. 대릉원은 오전 아홉시부터 개방된다. 3만8천평의 평지에 스물 세 개의 능이 솟아 있는 이곳 고분군에는 천마총과 미추왕릉, 황남대총 등이 있다. 나는 한 손에는 아이스커피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스마트폰을 든 채 옛 신라인들의 무덤 사이를 걸었다. 1973년 천마총에서 출토된 금관과 황금 장신구들은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졌지만, 초여름의 태양이 대릉원을 걷는 사람들의 머리마다 금관 하나씩을 씌워주었다. 무덤 앞에서 반짝이는 금빛 미소들, 죽음을 겁내지 않을 때 인간은 존엄을 획득한다. 무덤은 인간의 삶이 멈추는 비극적 장소가 아니라 영원이라는 유구한 시간에 편입되는 축제의 마당이어야 한다.우리 사회는 죽음이라는 바윗돌을 너무 무겁게 짊어진 탓에 피로도가 높다. 무의미한 연명치료에 들어가는 의료비와 인력은 물론이고 과도한 장례 비용과 절차, 묘역이나 납골당 등 시설에 소비되는 제반까지 다 죽음을 지나치게 두려워하고 또 무겁게 여기는 풍조 때문이다. 죽음의 공포와 엄숙함에서 조금 벗어날 필요가 있다. 자꾸 외면하고 격리시킬 것이 아니라 삶 안으로 불러들여 친해져야 한다. 몇 해 전 오스트리아 비엔나 도심 중앙묘지의 가로수길을 걸으며 느꼈던 청량감과 편안한 휴식의 기쁨을 대릉원에서 다시 만끽했다. 신라 때도 묘지와 납골당은 사회 혐오시설이었을까? 지금을 사는 우리도 나중엔 다 옛사람이 된다. 죽음의 슬픔과 두려움에 함몰되지 않을 때, 현재의 삶을 긍정적으로 영위하는 건강한 생명력도 생겨난다.드넓은 대릉원을 걸었더니 소고기국밥이 벌써 다 소화가 됐다. 목이 마르고 입이 심심해져 황리단길의 핫플레이스로 꼽히는 카페 ‘스컹크웍스’를 찾았다. 달걀 토스트와 말차라떼가 유명한 집이다. 음료와 곁들여 먹는 디저트 음식이 맛있기로 입소문 났지만, 이 카페의 유난한 매력은 고풍스런 한옥 마루에 앉아 교자상을 두고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다는 점, 그리고 SNS에 올릴 만한 ‘감성사진’을 찍기 좋다는 점이다. 황리단길의 대부분 가게들은 전통 한옥 형태의 공간에서 피자, 스테이크, 파스타, 수제 맥주, 아이스크림, 마카롱 등등 서구 먹거리를 판다. 전통차라든가 팥죽, 떡, 한과 같은 전통 먹거리를 파는 집들도 물론 있다. 혹자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우려하지만, 나는 우리 전통과 최신 유행의 아름다운 조화라고 생각한다. 황리단길이 조성되고 나서 경주 시내 어디서든 한복을 입고 사진 찍기에 여념 없는 젊은 남녀들을 볼 수 있게 됐다. 그들이 소위 ‘힙스터’ 유행만을 좇는 것은 아니다. 별 생각 없이 경주에 놀러왔다가도 여기저기 널린 신라의 찬란한 유산과 마주하는 순간, 황리단길을 거니는 즐거움만큼이나 우리 전통문화와 역사에 대한 관심 또한 깊어질 것이기 때문이다.스컹크웍스 툇마루에 앉아 나무 바닥의 서늘함을 몸속으로 들이면서 달걀토스트와 얼음을 띄운 아메리카노를 맛있게 먹고 마시는 사이 오후가 됐다. 한옥에서 먹은 토스트와 커피는 뉴욕식 점심식사가 된 셈이다. 황리단길 이곳저곳을 걸었다. 장미 덤불을 늘어뜨린 붉은 담장의 커브를 지나, 추억의 옛 교복을 입고 자전거를 타는 어린 연인들의 풍경을 지나, 안전모를 쓰고 유적 발굴 작업 중인 인부들을 지나, 볕 좋은 구멍가게 앞에 앉아 꾸벅꾸벅 조는 노인들 몇을 지나는 동안 신라의 오늘을 보았다. 이제 신라의 어제를 향해 걸음을 옮길 시간, 국립경주박물관으로 가는 길에 나는 옛 화랑처럼 뺨이 붉고 눈이 맑은 소년이 되었다.눈을 감으면 박물관은 보이지 않고 거대한 종 하나만 거기 우뚝 서 있는 것이었다. ‘에밀레, 에밀레….’ 내 귀에는 그렇게 들리지 않고, 마치 내 이름을 부르는 듯한 환청을 오래 경험했다. 경주를 떠올릴 때면 에밀레종으로 불리는 성덕대왕신종이 신비한 소리로 내 영혼을 휘감는다. 보존을 위해 이제는 타종하지 않지만, 종 앞에 서면 녹음된 종소리를 들을 수 있다. 국보 제29호인 이 거대한 동종은 국립경주박물관 입구 오른편에서 신라를 찾아온 오늘의 사람들을 가장 먼저 맞아준다. 바람과 새소리, 여름의 녹음, 땅의 지금과 하늘의 영원을 모두 품어 안으며 맑고 은은하게, 또 짙고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종소리는 천이백년 전부터 땅과 하늘에 두루 닿는 것이었다. 성덕대왕신종의 소리가 뒤에서 등을 떠밀어, 한결 가벼워진 내 걸음은 천마총과 금령총, 다보탑과 석가탑, 가릉빈가와 원숭이를 차례로 거쳐 왕과 여왕의 시대, 마립간과 이사금의 옛날, 혁거세의 처음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권삼윤이 쓴 책 ‘나는 박물관에서 인류의 꿈을 보았다’를 인용하자면, 나는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신라 사람들의 꿈과 낭만을 보았다. 그 천년의 낭만은 지금까지 전혀 녹슬지 않은 채 생생한 빛을 뿜는다. 동궁과 월지의 야경이 특히 그러하다.동궁과 월지의 야경을 보기 전엔, 그 황홀한 빛의 누각을 보며 ‘아! 신라의 밤이여!’ 저절로 탄성을 뱉기 전엔 경주에는 와도 신라에 온 것은 아니다. 천마총 내부처럼 사방이 캄캄해질 무렵, 경주는 마침내 서라벌의 금빛 주단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그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 사람들은 벌써 매표소 앞에 긴 줄을 만들고 있었다. 상인들은 야광봉과 팔찌, 불빛이 번쩍거리는 부메랑, 솜사탕 따위를 팔고, 거기 눈이 팔린 어린아이들부터 젊은 연인들, 학생들, 노인들, 또 유럽과 아프리카, 중국, 일본, 아메리카 사람들까지 모두 얼굴이 환했다. 나도 어제의 슬픔과 내일의 불행을 잠시 잊고 바로 지금 행복하기로 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어둔 밤하늘 아래 금관처럼 빛나는 동궁과 그 화려한 불빛을 고요히 머금은 채 작은 파장에도 투명한 종소리를 수면 위로 띄워 보내는 월지를 보노라면 누구나 꿈속 신라에 닿게 된다. 현장 학습을 온 한 무리의 고등학생들이 조를 나눠 경주의 문화재에 대해 발표를 준비한 모양인데, 친구들에게 동궁과 월지에 대해 또박또박 설명하는 앳된 목소리를 들으며 뜬금없이 눈물이 나 혼났다. 어른들이 걸음을 멈추고 학생의 설명에 귀 기울이며 미소 짓고 있었다. 행복해 하는 사람들을 보면 뭉클하다. 나이 들수록 마음이 여려져 큰일이다.“이것을 넣는 이와 꺼내 쓰는 사람 사이의 수백 수천 년은 이 침향 내음새 꼬옥 그대로 바짝 가까이 그리운 것일 뿐, 따분할 것도, 아득할 것도, 너절할 것도, 허전할 것도 없습니다”(서정주, ‘침향’)라고 시인은 노래했다. 내가 비누 같은 달빛 아래 동궁과 월지를 걸을 때, 신라의 어제와 오늘, 천년 전 달빛과 천년 후 미소가 만나던 밤의 향기야말로 침향이 아니었을까?장사를 시작한 지 40년도 넘은 서부동 ‘반도불갈비식당’에서 연탄불에 구운 한우갈비를 먹었다.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한우 갈비살의 풍미 또한 침향 못지않은 것이었다. 저녁을 푸짐하게 먹고도 어딘지 헛헛한 신라의 밤, 혼자라서 그런 지도 모르겠다. 다시 황리단길 ‘경주피자’ 안뜰에 앉아 치즈피자와 함께 김유신페일에일, 선덕여왕에일, 첨성대다크에일까지 세 가지 종류의 맥주를 마시자 그제야 외로움이 가신다. 나는 어느새 신라 사람들과 마주앉아 지치지 않는 대화를 나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석탈해와 이사부, 선덕여왕과 미실, 비형랑과 도화녀, 불귀신이 된 지귀, 김대성과 원효, 관창과 사다함이 내 곁에 둘러앉아 나와 함께 맥주잔을 부딪쳐주었다. 천년 전에도 이런 밤은 있었고, 천년 후에는 내가 다정한 유령이 되어 어느 외로운 사람 곁에 아까시 향기로 가만 앉아줄 것이다.       /시인 이병철

2019-08-18

경주에서 천년을 사랑하고 그리워할, 그 사람을 만나고 싶다

나의 잊히지 못하는 바다. 우현 고유섭의 수필 제목이다. 모든 것은 이 한 문장에서 시작됐다. 지난밤의 불면도, 이른 아침부터 종일 나를 달뜨게 한 황홀감도, 대뜸 두 눈에 차오르던 파도도 다 저 한 문장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다.“양양, 강릉, 삼척, 울진이 다 보암 직한 곳일 것이로되, 이 사람이 사모하는 곳은 세상 사람들이 거의 알지 못하는 무명(無名)인 듯한 장기(長9B10) 남쪽, 지금 행정구역으로 치자면 경주군 양북면 용당리에 속하는 땅에서 보이는 바다, 이곳이 잊히지 못하는 바다이다. (….) 이곳은 경주 석굴암으로부터 흘러내리는 물이 다른 세류(細流)와 합쳐서 대종천(大鐘川)이 바로 바다로 들어가는 그 어귀에 용당산 대본리란 곳이 있고, 그 포구 밖에는 오직 한 그루의 암산(岩山)인 대왕암(大王岩)이란 돌섬이 있을 뿐이다.”(고유섭, ‘나의 잊히지 못하는 바다’ 중에서)고유섭은 인천 사람이다. 1905년에 태어나 경성제국대학에서 미학과 미술사학을 전공했다. 대학에서 조선미술사를 공부한 최초의 한국인이다. 경성제대 졸업 후 개성부립박물관장으로 취임해 수많은 연구와 집필 활동으로 한국미술사학의 토대를 쌓아 올렸다. 한국미술의 근대적 학문 체계를 이룬 이 위대한 학자는 짧았지만 영원히 기억될 마흔 해의 불꽃같은 삶을 남겨두곤 1944년 간경화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생전에 ‘잊히지 못하는 바다’로 호명한 곳이 바로 경주 용당리, 문무대왕릉이 있는 감포 바다다.경주를 떠올리면 언제나 대왕암이 나를 짓누른다. 문무왕이 동해의 용으로 잠들어 있는 수중릉, 어깨가 뻐근하고 정수리가 날카롭게 아프다. 미지는 때로 고통이다. 내게 경주는 문무대왕릉과 감은사, 그리고 ‘잊히지 못하는 바다’인 ‘동해구’로 늘 기억된다. 동해구는 감포의 옛 이름으로 추정된다. 대종천 하구, 감포가 보이는 언덕에 동해구 표지석이 서 있다. 한자를 그대로 풀이하면 동해의 문, 동해의 입이라는 뜻이다.지난밤, 바쁜 취재 일정으로 혓바늘이 돋을 만큼 피곤한 침대 위에서 문득 ‘잊히지 못하는 바다’가 떠오른 바람에, 잠을 저만치 밀쳐둔 내 생각은 문무왕과 대왕암, 만파식적, 감은사와 송재학, 박목월, 서정주의 시, 진지왕과 도화녀, 비형랑, 미실, 선덕여왕과 지귀, 수로부인, 처용과 역신, 화랑세기 필사본 진위 논란 등을 이리저리 널뛰며 어지러웠다. 소설가 김별아가 연재한 ‘경주 월성을 걷는 시간’ 20꼭지를 내리 읽고는 1999년 KBS 역사스페셜 ‘추적, 화랑세기 필사본의 미스터리’를 인터넷 스트리밍으로 다 보니 새벽 다섯 시, 이상한 황홀감과 신비감을 이불로 덮고 잤다.하루 묵는 데 100만원 한다는 포항 구룡포 럭셔리 풀빌라를 취재하는 동안에도 내 마음은 경주에, 아니 신라에 가 있었다. “이처럼 막막한 지역에서/ 하룻밤을 가면/ 그 안존하고 잔잔한/ 영혼의 나라에 이르는 것을”(박목월, ‘사향가’) 나는 이미 알았을까. 구룡포를 벗어나 16년 만에 문무왕릉 앞에 섰을 땐 눈물인지 파도인지 두 눈이 붉으락푸르락 물들어 있었다. 무당 몇이 굿판을 벌이고, 젊은 연인이 허공에 새우깡을 던지는 풍경 너머로 나는 입 벌린 대왕암을 봤다.“경주에 가거든 문무왕(文武王)의 위적(偉蹟)을 찾으라. 구경거리로 경주를 쏘다니지 말고 문무왕의 정신을 기려 보아라. (….) 문무왕의 위대한 정신이야말로 경주의 유적(遺跡)에서 찾아야 할 것이니, 경주에 가거들랑 모름지기 이 문무왕의 유적을 찾으라. (….) 무엇보다도 경주에 가거든 동해의 대왕암(大王岩)을 찾으라.”(고유섭, ‘경주기행의 일절’ 중에서)경주 용당리 사람들은 대왕암을 대왕바위의 줄임말인 ‘댕바’, ‘댕바위’로 불렀다. 1967년 한국일보 보도로 문무왕릉이 세상에 알려지기 전까지 이곳은 어린아이들이 헤엄쳐 가 놀고, 마을 사람들이 미역을 따는 갯바위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옛날부터 문무대왕의 유해가 뿌려진 산골처(散骨處)로 알려져 있긴 했으나 어디까지나 신화의 한 대목일 뿐 고증된 바는 아니었다. 대왕암이 문무대왕릉이라는 전설을 역사적 진실로 밝혀낸 건 고유섭의 제자인 미술사학자 황수영 박사다. 황수영 박사를 축으로 한 신라오악조사단은 1967년 뗏목을 타고 대왕암에 상륙해 대왕암의 내부 모습이 고문헌에 기록된 ‘수중릉’의 구조와 일치한다는 것을 밝혀냈다.문무왕은 죽어서 용이 되어 왜구를 막고, 고유섭은 사멸되어가는 민족문화를 지키기 위해 미술사학을 연구, 학문으로 일제에 항거했다. ‘대왕암’이라는 시와 ‘나의 잊히지 못하는 바다’라는 수필을 남겼는데, 황수영과 신라오악조사단은 스승이 쓴 글을 등불 삼아 풍문과 설화의 안개로만 자욱하던 미지 세계로 걸어 들어간 것이다. “대왕(大王)의 우국성령(憂國聖靈)은/ 소신(燒身) 후 용왕(龍王) 되사/ 저 바위 저 길목에/ 숨어 들어 계셨다가/ 해천(海天)을 덮고 나는/ 적귀(賊鬼)를 조복(調伏)하시”(고유섭, ‘대왕암’)던 감포에는 이제 고유섭과 그의 제자들 넋이 나란히 서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용이 된 문무왕이 바다에서 솟구쳐 모습을 보였다던 이견대(利見臺) 아래, ‘나의 잊히지 못하는 바다’ 기념비는 고유섭의 제자들이 세운 것이다. 2003년, 내가 스무 살이던 해 여름 이견대에 왔을 땐 그 글비석만 홀로 바다를 보고 있었지만, 지금은 제자인 진홍섭(2010년 작고)과 황수영(2011년 작고) 추모비가 양 옆에 서 있다.혼은 입으로 드나든다고, 언젠가 누군가에게 들었다. 저 수중여 입에서 빠져나온 왕의 혼이 파도가 되어 감은사를 적신다. 나는 문무대왕릉이 보이는 이견대를 내려와 대종천 물길 따라 옛 감은사터를 찾았다. 아직 뙤약볕이 되지 못한 온화한 햇살이 빈 절터를 구석구석 쓰다듬고 있었다. 절터 동쪽과 서쪽엔 감은사지삼층석탑이 멀리 대왕암을 바라보며 쌍탑으로 서 있고, 탑이 드리운 그늘 아래로 승려 하나가 천천히 걸어가며 내게 옛 감은사의 풍경을 복원시켰다. 그러나 “감은사는 없다.” “감은사 밖으로 나오면 먼 바다는 종소리 같은 저녁놀을 떠밀며 달아나 바람 소리 곁에 있다. 내 누추한 마음이 먼저 그것들을 짊어지기”(송재학, ‘감은사에 가다’) 전에 나는 서둘러 낭산으로 향했다.선덕여왕은 “푸른 령(嶺) 위의 욕계(欲界) 제2천(第二天)”에 잠들어 있다. ‘푸른 령’이란 경주 낭산을 가리킨다. 선덕여왕은 어느 날 신하들에게 “나는 아무 해 아무 날에 죽을 것이니 내가 죽거든 도리천에 묻어 달라”고 했다. 신하들이 ‘도리천’의 구체적 위치를 묻자 선덕여왕은 “낭산의 남쪽”이라고 대답했고, 사후 30년 뒤 그녀 무덤 아래에 사천왕사가 세워졌다. 불교 경전에 “사천왕천(四天王天) 위에 도리천이 있다”고 적혀 있으니 선덕여왕이 말한 대로 낭산의 남쪽이 도리천인 셈이다.도리천은 불교에서 욕계 제2천에 해당하는 세계로 신(神)들에게도 남녀의 구별이 있고, 이성에 대한 욕망이 작동하는 곳이다. ‘화랑세기’에 따르면 선덕여왕은 “두 명의 남자와 세 번에 걸쳐 결혼생활을 했으나 아이는 없었다”고 한다. 죽음 후에도 사랑을 꿈꿨을까. 선덕여왕은 무척 아름답고 지혜로우며 또 자애로웠다고 전해진다.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지나가는 그녀를 보고 아름다움에 눈이 멀어 미쳐버린 사내도 있었으니, 그가 바로 천민 지귀(志鬼)다.어느 날 여왕이 영묘사로 기도하러 가는 행차에 지귀가 달려들었다. “아름다운 여왕이여! 사랑하는 나의 여왕이여!” 여왕은 호위병들에게 붙잡힌 지귀를 영묘사까지 따라오게 한다. 지귀는 기뻐서 덩실덩실 춤을 추며 행차를 따랐다. 영묘사에 도착한 여왕이 부처님께 기도를 드리는 동안 지귀는 그만 마당의 석탑 아래 잠이 들고 말았는데, 기도를 마친 여왕은 자신을 짝사랑하는 지귀가 안쓰러워 잠든 그에게 다가가 “살의 일로써 살의 일로써 미친 사내에게는 살 닿는 것 중 그중 빛나는 황금팔찌를 그의 가슴 위에”(서정주, ‘선덕여왕의 말씀’) 올려두었다. 잠에서 깬 지귀는 여왕의 금팔찌를 품에 안고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런데 그 기쁨이 가슴속에서 불꽃으로 타더니 급기야 온몸을 활활 사르는 불덩어리가 되었다. 여왕의 향기로운 팔찌가 불씨 되어, 지귀는 미친 사랑의 불길에 영원히 타는 불귀신이 되어버린 것이다.여왕이 잠든 낭산을 내려오니 하늘에서 지귀가 사랑의 고통에 몸부림치느라 여기저기 불꽃이 뚝뚝, 저녁이 붉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뜨겁고 새빨간 석양은 이내 차분해져 “바닷물이 넘쳐서 개울을 타고 올라와 마당에 흥건히 고이는 날” “영영 돌아오지 못한” “남편의 바닷물이 자기집 마당에 몰려 들어오는 것을 보고 그렇게 말도 못하고 얼굴만 붉어져 있”(서정주, ‘해일’)던 여인처럼, 경주 하늘엔 바닷물 같은 구름과 볼그레한 노을이 살을 부드럽게 비볐다.그리고 곧, 비가 내렸다. 예보에 없던 비였다. 우산 없는 사람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소동으로 황리단길은 개구리 떼처럼 수런거렸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황남동을 걸었다. 비에 흠뻑 젖으니 살갗보다 가슴부터 촉촉이 서늘해졌다. 머나먼 나라에 있는 나의 선덕여왕, 그녀의 불 달군 팔찌가 지져댄 내 가슴 속 뜨거운 한 통증이 비로소 식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아아, 나는 그동안 잘못 알았다. 경주는 신라 천년의 도시, 신과 왕들의 도시가 아니라 영원을 넘나드는 사랑의 도시가 아닌가? 천년을 사랑하고 천년을 헤어져 그리워 할, 그 천년의 사람을 나는 만나고 싶다. 나의 잊히지 못하는 당신을.       /시인 이병철

2019-08-11

호미곶에 태양의 빛 엎질러지면 바다의 선물을 낚으러 간다

새벽부터 부산을 떨며 일어났다. 덩달아 일찍 깬 주인 할머니께 염치도 없이 식혜 한 사발 얻어 마시고 민박집을 나섰다. 아직 보랏빛 이불을 덮었지만, 고기잡이배들이 출항을 준비하며 수런거리는 통에 삼정리 항구는 잠을 뒤척이고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어구를 덮어놓은 천막이 펄럭거리고, 배고픈 고양이들이 이따금 울어댔다. 김춘수의 ‘처용단장’을 빌리자면 “바다가 새앙쥐 같은 눈을 뜨고 있었”다.여행자와 어부가 부지런한 것은 모두 태양을 사랑해서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태양을 사랑해서 이 새벽엔 푹푹 하품이 나는구나. 나는 해돋이를 보기 위해, 어부는 깊은 바다에서 피어오를 물고기 떼를 만나기 위해 바다로 간다. 캄캄한 수면 위로 붉은 태양이 떠오를 때, 사람의 마음이 어둠에서 깨나듯 물고기들도 활발한 먹이활동을 시작한다.구룡포의 해돋이도 아름답지만 보다 가까이서 첫 태양을 보려거든 호미곶에 가야 한다. 겨울바다의 일출이 장엄해 사람을 뭉클하게 한다면 여름바다의 일출은 낭만적이어서 들뜨게 한다. 구룡포에서 호미곶까지는 차로 20분이 걸린다. 새벽 공기로 얼굴을 씻으며 삼정, 석병, 강사, 대보 해변을 지나 호미곶에 도착하니 아직 태양은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얼마나 뜨거운 불덩어리를 품에 안고 오는지 하늘 장막이 벌겋게 너울지는 중이었다. 여름의 해돋이는 겨울보다 짧고, 색조가 옅다. 하지만 마침내 솟아오른 태양이 호미곶 바다 ‘상생의 손’ 위에 얹어질 때, 어느 계절이든 상관없이 가장 아름다운 일출의 장관이 완성된다. 내가 사방을 떠돌며 경험한 세상에서, 호미곶의 해돋이는 서쪽 세계의 끝, 이베리아 반도 포르투갈 호카곶의 석양과 대응한다.호미곶에 찾아온 태양이 빛을 엎질러버린 아침, 따사롭고 간질간질하며 연필심 냄새가 나는 햇살이 포항의 모든 지붕과 담장, 애기똥풀, 배롱나무, 몽돌, 과메기발, 빨랫줄에 내려앉았다. 쪽빛에서 금빛으로 바다가 표정을 바꾸는 사이 눈곱도 떼지 못한 나는 호미곶 해맞이공원 화장실에 가 찬물로 세수를 했다. 젖은 얼굴로 거울을 보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오늘은 뭘 하겠느냐고. 물어보나 마나 답은 정해져 있다. 낚시보다 더 즐거운 건 없다고, 낚시하러 당장 가자고.초여름의 포항 바다에선 다양한 낚시를 즐길 수 있다. 찌낚시로는 벵에돔, 참돔, 자리돔 등을 노려볼 만하고, 루어낚시로는 농어, 볼락, 성대, 광어, 쥐노래미, 우럭, 무늬오징어 등을 만날 수 있다. 오늘의 대상어는 볼락이다. 겨울 낚시 어종이지만 초여름까지도 심심찮게 나오는 편이며, 겨울 못지않게 봄과 초여름에도 맛이 좋다. 나는 민물에서는 쏘가리, 바다에서는 볼락을 가장 좋아한다. 손맛, 입맛, 눈맛 등 낚시의 세 가지 맛을 모두 충족시켜주기 때문이다. 쏘가리의 황금빛 호피무늬만큼 볼락의 맑고 큰 눈과 왕관 같은 등지느러미는 근사한 것이다. 볼락 낚시는 휨새가 부드럽고 낭창낭창한 6~7피트짜리 낚싯대에 1000~2000번 소형릴을 사용한다. 낚싯줄도 0.4~1호 정도의 가느다란 합사라인을 쓰는데, 가볍고 섬세한 채비를 쓰는 만큼 손에 전달되는 손맛도 짜릿하다. 볼락은 인조미끼(루어)로 잡는다. 밤낚시에 조과가 좋지만 해 뜰 무렵과 해 질 무렵에만 집중해서 낚시해도 하루 먹을 만큼은 넉넉히 잡을 수 있다. 조과가 보장된 배낚시 대신 오늘은 방파제에서 낚시할 생각이다. 방파제 위에 텐트를 치고 캠핑을 즐겨야 하기 때문이다.낚시하러 가기 전 구룡포에 먼저 들렀다. 아직 오전, 서두를 필요가 없다. 해 지기 전 두어 시간만 낚시를 하면 혼자 회 뜨고 구워 먹을 만큼은 잡을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해돋이를 본다고 일찍부터 일어난 탓에 허기가 졌다. 구룡포 수협과 우체국 사이, 과메기 문화거리 맞은 편 좁은 골목 어귀에 있는 ‘신대천국밥’으로 들어가 앉았다. 돼지국밥과 수육, 두루치기, 찌개류를 전문으로 하는 집인데, 숨은 ‘모리국수 맛집’으로 아는 사람만 안다. 빈속을 든든하게 채워 줄 돼지국밥 한 그릇을 시켰다. 희고 뽀얀 사골 육수에 돼지 머릿고기와 부추가 듬뿍 들어간 뚝배기에서 더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토렴하는 방식은 아니고 공깃밥을 따로 내 준다. 국물을 한 숟갈 떠먹으니 마치 황토방의 열기 같은 구수한 뜨거움이 몸속에 퍼지며 여기저기 땀이 맺힌다. 머릿고기 두어 점을 새우젓에 찍어 먹는 것으로 나름의 우아한 음미를 마치고, 깍두기 국물과 함께 밥을 말아 게걸스레 먹기 시작했다. 돼지국밥은 그렇게 먹어야 제 맛이다.허영만은 만화 ‘식객’에서 돼지국밥을 두고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소 사골로 끓인 설렁탕이 잘 닦여진 길을 가는 모범생 같다면, 돼지국밥은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반항아 같은 맛”이라고. 한 숟갈 삼킬 때마다 국밥은 목구멍을 뜨겁게 미끄러져 내려가며 나로 하여금 ‘오늘을 살고 있다’는 자각을 하게 했다. 입천장이 데인 채 사골 육수가 펄펄 끓고 있는 솥단지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먹고 사는 일의 숭고함에 대해 저절로 성찰하게 된다. ‘살아 있구나, 먹고 있구나, 먹고 힘내서 또 살아보자.’돼지국밥은 1950년대 부산에서 유래된 피난민 음식이다. 부산에서 시작돼 경상도 전역으로 널리 퍼져 누구나 즐기는 대중음식이 됐다. 맑은 국물의 부산식, 설렁탕처럼 뽀얀 국물의 밀양식으로 나뉘는데, 이곳 구룡포의 ‘신대천국밥’은 밀양식에 가깝다. 여기서 장사를 한 지는 5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아마 다른 곳에서 오랜 경력을 쌓은 듯하다. 국물에서 깊고도 진한 내공이 느껴졌다. 한쪽 벽에는 이 집 딸이 부모님의 칠순을 축하하며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편지를 쓴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돼지국밥은 마음까지 따듯하게 데우는 음식이다.구룡포 시장에 들렀다. 한 마리도 못 잡고 꽝을 칠 경우를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낚시꾼이 가장 비참해지는 순간은 빈손으로 집에 돌아와 냄비에 라면 물을 올리는 때이다. 쫄쫄 굶는 캠핑은 캠핑이 아니라 유격훈련이므로, 뿔소라와 고등어, 돼지 앞다리살을 샀다. 구룡포 바다가 한 눈에 보이는 ‘셀렉토커피’ 2층 테라스에 앉아 아이스커피를 마시며 망중한을 즐기니 시간은 어느덧 오후 세시, 하정리 방파제로 향했다. 구룡포에 와 볼락 낚시를 할 때 가장 먼저 들러 볼락의 활성도와 바다 상황을 체크하는 곳이다. 2그람짜리 가벼운 지그헤드(봉돌에 바늘이 달린 루어낚시 채비)에 멸치 새끼 모양의 웜(고무 인조미끼)을 달고 방파제 테트라포드 가까이 던졌다. 입질은 간간히 들어오는데 덥석 물지는 않는다. 잔챙이들만 덤비고 쓸 만한 씨알의 볼락은 반응하지 않는 상황, 이럴 땐 포인트를 옮겨야 한다.포항의 가장 남쪽인 장기면 양포항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여섯시, 방파제 곳곳에 검은 먹물 자국이 있는 걸 보니 최근에 무늬오징어가 꽤 잡힌 모양이다. 볼락 낚싯대를 내려놓고 무늬오징어 낚싯대를 꺼내 들었다. 무늬오징어 낚시는 8~9피트의 허리힘이 강한 낚싯대에 2000~3000번 릴, 합사 0.6~1.2호 낚싯줄을 쓴다. ‘에기’라고 불리는 새우 모양 인조미끼를 사용하기 때문에 무늬오징어 낚시를 ‘에깅 낚시’라고 칭한다. 방파제 내항이나 외항, 갯바위에서 연안을 공략하면 멸치, 새우, 꼴뚜기 등을 먹기 위해 연안의 암반 지대나 수초로 접근해 온 무늬오징어를 잡아낼 수 있다.양포방파제는 ‘무늬오징어 에깅 낚시 대회’가 열릴 만큼 무늬오징어 낚시의 명소로 알려져 있다. 방파제에 자리를 잡고 서서 연안으로 채비를 던졌다. 채비가 바닥에 가라앉는 느낌이 들자 살짝 채비를 들어 올린 후 살아 있는 새우처럼 보이도록 낚싯대를 흔들어 액션을 줬다. 그렇게 반복한 지 30여분쯤 됐을까, 채비를 퍽 하고 때리는 강력한 입질이 들어왔다. 지긋이 낚싯대를 당겨보니 묵직한 힘이 느껴졌다. 무늬오징어가 틀림없다. 힘을 당차게 쓰던 녀석을 발 앞까지 끌어온 후 뜰채로 건져 올렸다. 1kg이 넘는 준수한 크기의 무늬오징어, 본래 이름은 흰오징어이지만 무늬가 수시로 바뀐다고 해서 무늬오징어로 통칭된다. 오징어류 중에서 가장 맛이 좋으며 오직 낚시로만 잡을 수 있어 희소성이 높다.무늬오징어는 잡았으니 이제는 볼락이다. 테트라포드와 수초 사이사이에 은신하던 볼락이 루어를 공격하는 순간, 탈탈거리는 떨림이 마치 애인에게 걸려온 전화의 진동처럼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그 짜릿한 손맛에는 중독성이 있다. 오후 일곱 시부터 한 시간 반 동안 낚시에 먹을 만한 사이즈의 볼락 여러 마리를 잡았다.먹을 만큼 잡았으므로 낚시는 접고 텐트를 펴기로 한다. 양포항에는 큰 방파제와 작은 방파제가 있는데, 작은 방파제 진입로에는 캠핑을 즐길 수 있는 공원이 있고, 방파제 끝에는 수상무대가 있다. 가끔 공연이 열리기도 하는 이 수상무대에서 포항 사람들은 낚시와 캠핑, 산책 등을 두루 즐긴다. 이날은 월요일이라선지 낚시하는 사람도, 텐트도 눈에 띄지 않았다. 호젓한 여유를 만끽하며 텐트를 치고 화로에 장작불을 붙였다. 장작이 타는 동안 무늬오징어와 볼락을 손질했다. 무늬오징어는 회와 통찜으로 요리하고, 볼락은 뼈회를 쳤다. 장작불에는 석쇠를 얹고 소라와 고등어를 구웠다. 여름밤의 총총한 별빛 아래 맛있는 냄새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밤바다 위에서 파도 소리와 향기에 귀와 코를 적시며 먹는 캠핑 음식은 맛이 없을 수가 없다. 심지어 그 음식이 무늬오징어 회와 통찜, 볼락 뼈회, 참소라구이라면 황제의 만찬도 부럽지 않다. 무늬오징어 회는 달고 쫄깃하며, 통찜은 바다의 맛 그 자체, 볼락 뼈회는 고소하기 그지없다. 낚시 천국 포항에서의 하루는 낚시꾼에게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안겨주었다. 파도 위에서 마시는 술은 숙취도 없고, 밤새 바람 불고 파도가 쳐도 꿈결만큼은 잔잔하겠지. 램프를 켜둔 텐트는 캄캄한 밤바다 위에서 마치 깡통 우주선처럼 보였다. 하룻밤 자는 사이 나는 몇 개의 별을 또 건너가게 될까? 잠은 안 오고 별빛만 오는 양포 방파제, 까닭 없는 그리움이 깊어지기 전에 파도의 자장가에 귀를 기울였다.    /시인 이병철

2019-08-04

삼정리 바다의 분홍빛 낙조는 노포의 애틋한 손맛을 닮았다

제주 사람들은 한라산을 기점으로 섬의 북쪽을 산북, 남쪽을 산남이라 부른다. 나는 산북의 활기참과 산남의 호젓함을 모두 사랑한다. 제주도에 일주일쯤 가게 되면 사흘은 제주시에서, 나머지 사흘은 서귀포시에서 보낸다. 포항에 올 때도 마찬가지다. 제주도처럼 북쪽과 남쪽이 서로 다른 두 매력을 뽐내는 여행지가 바로 포항이다. 포항은 북구와 남구로 나뉜다. 북구에 죽도시장과 영일대해수욕장이 있다면 남구엔 구룡포와 호미곶이 있다. 어제는 북구에서 보냈으니 오늘은 남구로 가야겠다. 포항에 온 여행객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구룡포로 가는 길엔 언제나 설렌다. ‘아홉 마리의 용이 승천한 바다’라는 전설도 가슴 뛰게 하지만, 내게 구룡포는 아홉 가지의 보물이 있는 바다다. 과메기, 볼락, 대게, 문어, 모리국수, 찐빵, 삼정해수욕장, 근대문화역사거리, 해돋이가 그 아홉 가지 보물이다. 겨울에만 낚시하러 번질나게 다녔지 여름 구룡포는 처음이다. 아홉 가지 보물 중 비록 과메기와 대게는 제철이 아니라서 못 만나겠지만, 나머지 일곱 개의 귀중한 맛과 멋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운제산 동쪽 기슭에 있는 오어사(吾魚寺)에 먼저 들렀다. 북구의 보경사와 함께 포항을 대표하는 사찰이다. 보경사에 비해 규모는 작아도 원효대사와 고승 혜공의 ‘여시오어(汝屍吾魚)’, 즉 “너는 똥을 누고 나는 물고기를 누었다”는 화두로 잘 알려졌다. 운제산 계곡에서 수행하던 원효와 혜공이 각자 물고기를 한 마리씩 삼킨 다음 대변을 누었다. 조금은 지저분한 이 일화는 삼국유사에 쓰여 있다. 누구의 것인지 법력 좋은 대변이 산 물고기가 되어 활기차게 여울을 헤엄쳐갔는데, 원효와 혜공이 서로 “내 물고기!” 외쳤다고 해서 ‘오어사’가 되었다 한다. 본래 이름은 항사사(恒沙寺), 신라 진평왕 때 창건됐다.초록 잎사귀들이 제법 세차게 부채질을 한다. 오어지 호수변을 따라 오어사로 이어진 길을 걸었다. “똥물고기를 낳은 원효와 혜공은 물이 되어 흘러갔다 처음 배운 물고기의 유영조차 잊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오어사의 연못은 장엄하게 예뻤으니까”(이소연, ‘오어사’)라던 시구가 떠올랐다. 똥 같은 내 번민들도 물이 되어 멀리 멀리 흘러갔으면, 내 마음도 물고기처럼 속박을 벗고 자유롭게 헤엄쳤으면.잠시 눈을 감았다 뜨니 오어지 푸른 수면 위에 금빛 윤슬이 와글거리고 있었다.대웅전과 범종루, 배롱나무가 수수하게 아름다운 오어사 경내를 돌아보고는 원효교 출렁다리를 건넜다. 거기서부터 오어지 둘레길이 제대로 펼쳐진다. 7㎞ 둘레의 호수를 한 바퀴 걸으려면 두 시간이 걸린다. 지금은 숨을 쉬면 뱃속에 뜨거운 벌떼가 붕붕거리는 계절, 가을에 걸으면 참 좋겠다. 단풍 바람이 오색 물고기 되어 내 마음 속 여기저기 서늘한 빛을 산란할 테니까.구룡포에 도착하자마자 모리국수 식당부터 찾았다. 50년 넘게 장사를 해온 ‘까꾸네 모리국수’는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는 맛집이다. 주인인 이옥순 씨가 50년 전 구룡포 수협 뒷골목에 판자때기를 얼기설기 덧대어 국숫집을 연 게 ‘까꾸네’의 시초다. 동네 사람들로부터 “까꿍, 까꿍” 귀여움을 받던 막내딸 별명이 ‘까꾸’여서 까꾸네가 됐다고 한다. 여러 번 가봤는데도 또 어김없이 길을 헤맨다. 미로 같은 골목 몇 개를 헷갈리는 동안 국수 생각은 더 간절해져 침이 잔뜩 고인다. 어렵사리 문을 열었다. 모리국수 한 냄비에 1만 3천원, 양은냄비가 팔팔 끓어오르면 얼큰한 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한다. 겨울에 먹으면 얼어붙은 마음까지 녹여주지만 여름의 이열치열도 나쁘지 않다.어부들이 어판장에서 팔고 남은 생선으로 ‘잡탕 국수’를 끓인 게 모리국수의 시작이라고 한다. ‘모리’의 어원에 대해서는 견해가 분분하다. 뭐가 들어갔는지 ‘모린다’고 해서 모리, 이것저것 ‘모디’ 들어갔다고 해서 모리, 생선 머리가 들어갔다고 해서 모리, 이것저것 ‘몰아’ 넣었다고 해서 모리, ‘빽빽하다’는 뜻의 일본어 발음으로 ‘많다’를 의미한다는 설도 있다. 어원이 무엇이든 상관없다. 맛있는 음식 앞에선 사유나 이성보다 감각과 본능이 먼저 작동하기 때문이다.매운 국물 잔뜩 머금은 칼국수를 크게 한 젓가락 집어 후루룩 빨아들임과 동시에 아귀 살 한 점을 입에 넣었다. 고난도 기술이다. 칼국수와 아귀 살을 한꺼번에 우물거리는 동안 입 안엔 바다 향기가 가득 번지고, 이마와 목덜미는 땀으로 흥건히 젖었다. 풍족하지 않던 시절, 한 냄비의 모리국수를 나눠 먹는 어부들의 이마에도 땀이 송골송골 맺혔을 것이다. 그 열기는 사시사철 반갑고, 국수는 사람을 들뜨게 한다. 옛 시인이 “마을을 구수한 즐거움에 싸서 은근하니 흥성흥성 들뜨게 하며 이것은 오는 것이다”(백석, ‘국수’)라고 했을 때, 그렇다. 국수는 즐거운 손님처럼 우리 일상으로 온다. 나는 모리국수를 먹으며 백석의 시를 바꿔 외운다. “이 불그스레하고 부드럽고 칼칼하고 얼큰한 것은 무엇인가”라고.입 안이 뜨겁고 울긋불긋할 때는 달큼한 디저트를 먹어야 진화가 된다. 까꾸네에서 나와 다시 골목 몇 개를 지나 구룡포 시장 뒷길로 가면 장사를 시작한 지 60년도 더 된 ‘철규분식’이 있다. 까꾸네와 마찬가지로 집안 어린아이 이름을 상호로 쓴 것인데, 그것도 60여 년 전 얘기다. ‘철규’는 이 집 주인 할머니 동생, 가게를 처음 열 땐 초등학생이었지만 지금은 칠순을 훌쩍 넘긴 어르신이다.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나르는 할아버지는 철규 어르신의 매형 되시겠다. 노부부는 오랜 세월 동안 한 자리에서 단팥죽과 찐빵, 그리고 잔치국수를 팔아 왔다. 이제는 입소문도 나고 또 ‘노포(老鋪)’ 식도락이 유행하면서 주말에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는 집이 됐다.10분쯤 기다려 자리에 앉았다. 찐빵 여섯 개와 단팥죽 한 그릇을 시켰다. 단돈 5천원. ‘철규’ 어르신의 매형께서 정정한 걸음으로 쟁반을 날라 주셨다. 찐빵 한 입 베어 무는데 느닷없이 뭉클해져 혼났다. 팔순 노인의 손등에 구룡포 바다 물주름이 자글자글한 걸 본 탓이다. 노부부의 뒷모습에 석양이 지는 걸 훔쳐 본 탓이다. 이 집에서는 음식만 먹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마음을 함께 먹는다. 1952년, 학교를 마치고 온 어린 막내 동생을 위해 국수 삶고 빵 찌고 팥죽 끓이던 그 애틋한 마음이 60년 넘도록 맛의 비법이 됐다. 이 집에서 단팥죽을 먹은 사람은 누구나 ‘철규’가 된다. 얼마나 더 많은 철규들이 이 집을 찾아오게 될까? 아니, 나는 앞으로 얼마나 더 철규가 될 수 있을까? 서둘러 단팥죽을 들이켜고 일어섰다. 미닫이문을 여는데 낡은 도어레일에서 끼익 끽, 기차 멈추는 소리가 났다. 문을 나서자 구룡포는 다시 2019년의 여름이었다.구룡포에 오면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 미로 같은 골목들을 지나다보면 시간의 타래도 이리저리 뒤엉킨다. 까꾸네와 철규분식 등 노포에서 나와 근대문화역사거리에 이르면 시간이 정말 거꾸로 흐르는 것 같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은 동해안 황금어장을 노리고 이곳에 항구를 지었는데, 어업의 호황으로 부자가 되자 여관과 술집 등을 열었다. 1945년 패망 직후 일본인들은 떠났지만, 그 흔적은 아직 남아 있다. ‘일본인 가옥거리’로 흔히 알려진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에는 일본인들이 살던 적산가옥과 일본풍의 찻집, 주점, 음식점 등이 늘어서 있다. 특히 ‘고향집’이라는 뜻의 전통 찻집 ‘후루사토야’는 1924년에 지어진 일본식 목조가옥인데, 다도(茶道)와 함께 한복, 기모노, 유카타 등 한국과 일본의 전통의상을 체험해볼 수 있다. 기모노와 유카타를 빌려 입고 1930년대 목조건물들을 배경으로 사진 찍는 것은 구룡포를 찾는 젊은 여행객들의 놀이문화가 되었다. 사진 명소로 인기 있는 빨간 우체통 앞은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려는 20대들로 붐볐다.근대문화역사거리에서 계단을 오르면 ‘포항구룡포과메기문화관’이 나타난다. 구룡포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있다. 이곳에서도 시간 여행은 계속된다. 과메기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모두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2016년에 개관한 과메기문화관은 체험관과 영상관, 전시실, 전망대, 카페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어 포항의 새로운 테마관광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제철이 아니라서 맛볼 수 없을 줄 알았던 과메기를 이곳에서 먹게 될 줄이야. 쪽파와 마늘을 곁들여 김에 싸 초장 찍어 먹는 그 과메기가 아니라 과메기빵, 과메기강정, 훈제과메기, 과메기 바질페스토 등 ‘퓨전 과메기 요리’를 맛보니 그야말로 과메기 맛의 신세계다. 과메기가 이토록 다채로운 변신을 할 수 있다니, 식재료로서 과메기가 지닌 무한한 가능성을 확인하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다시 계단을 내려와 구룡포시장에 들렀다. 죽도시장만큼 북적거리진 않지만 여전히 활기차 손님도 신이 난다. 금어기인 대게 대신 홍게 몇 마리와 참문어를 사서는 삼정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삼정 바다의 깨끗한 물빛과 고요함에 반한 게 벌써 몇 해 전이다. 매년 겨울마다 이곳에 와 단골 민박집에서 묵는데, 아침마다 주인 할머니께 얻어 마시는 식혜 한사발이 얼마나 달고 시원한지 모른다. 몸에 불이 붙은 사자가 온 하늘에 불꽃을 흩뿌리는 형상이 서해의 낙조라면 동해의 해거름은 엄지손톱에 든 봉숭아물의 색감을 지녔다. 삼정리 저녁 바다를 거니는 동안 부윰한 분홍빛이 내 마음에 꽃물을 들였다. 차르르르 밀려오는 파도에 가만 귀를 대니 돌아오지 않는 먼 시절, 사랑하는 이가 찬물에 손 씻던 소리가 들렸다.민박집 마루에 문어와 홍게로 푸짐한 저녁상이 차려졌다. 구룡포의 아홉 가지 보물 중 볼락과 해돋이만 빼고 다 수집한 하루를 주인 할머니와 함께 알뜰히 자축했다. 볼락과 해돋이는 내일의 몫이다. 호미곶에서 장엄한 일출을 보고, 아직 연안에 볼락이 붙어 있을 양포항으로 가야겠다. 방파제 위에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면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가 별처럼 빛날 것이다. 그 별에서 또 하룻밤 세상을 건너갈까 한다.

2019-07-28

야경과 불꽃과 아귀찜이 있는 포항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포항’이라고 발음하면 군대에서 덮고 자던 모‘포’가 떠오르고, 어린 시절 마당 장독대에서 햇살과 잠자리와 배추흰나비를 불러 모으던 ‘항’아리가 생각나 이내 따뜻해진다. 포항은 내게 따스한 항구 도시, 매년 겨울마다 몸과 마음을 쉬러 즐겨 찾는 여행지다. 주로 겨울 바다의 진객인 볼락을 만나기 위해서인데, 12월부터 2월까지는 왕복 750㎞의 장거리 운전도 마다않고 거의 매주 드나들 정도다.겨울 포항에 오면 늘 정해진 코스대로 움직인다. 새벽에 도착해 방파제에서 낚시하다 동해가 쏘아올린 황홀한 해돋이를 감상한다. 볼락을 꽤 잡았으니 구룡포에서 모리국수로 속을 얼큰하게 채우거나 죽도시장 장기식당에 가 소머리곰탕을 먹는다. 낮 동안엔 영일대 해수욕장의 볕 좋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쩡쩡 얼어붙은 오어사 계곡 구경을 가거나 구룡포에 있는 호미곶온천랜드에서 낮잠을 잔다. 때로는 ‘철규분식’ 찐빵이나 죽도시장 호떡 군것질을 하기도 한다. 그러다 해거름에 다시 낚시를 하고, 밤엔 볼락 뼈회와 매운탕, 시장에서 산 대게 몇 마리 곁들여 만찬을 즐기는 식이다.그러고 보니 겨울 아닌 계절에 포항을 찾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영덕 강구항에서 출발해 장사항을 지나 포항 화진해수욕장에 접어드니 공기 빛깔부터 다른 여름 포항이 생경했다. 제철 농어의 은빛 지느러미 같은 아침 햇살이 목덜미에 닿을 때마다 모공에 푸른 물이 들었다. 항구의 낮은 지붕들 사이로 언뜻 언뜻 비치는 초록을 보며 나는 저 무성한 신록이 내연산의 것임을 눈치 챌 수 있었다. 여름 포항의 첫 방문지는 내연산으로 정했다. 거기 보경사(寶鏡寺)가 있기 때문이다.보경사는 내연산의 관문이다. 신라 진평왕 때 승려 지명이 창건했다. 지명이 중국 진나라에서 유학할 때 어느 도인으로부터 팔면보경(八面寶鏡)을 받았는데, 그걸 이곳 내연산 연못에 묻고 그 위에 불당을 세웠다는 연기설화가 있다. 사방이 맑은 거울처럼 반짝이는 여름 아침, 보경사 일주문으로 들어서면서 복잡하고 괴로운 속세와 잠시 이별할 때 연기설화가 하나의 은유로 다가왔다. 거울은 곧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표정과 감정, 욕망들을 묻어버리는 순간 내면에서부터 평온함이 돋아난다. 외연(外延)이 아닌 내연(內延)의 세계로 향해 가는 걸음을 다람쥐와 청설모, 오색딱따구리가 반갑게 맞이해주었다.규모가 큰 보경사 경내, 단아하고 정갈하게 배치된 가람들 사이를 걸으니 마음이 차분해진다. 그동안 볼락 잡는다고 포항에 와 얼마나 많은 살생을 저질렀던가? 범종각에 걸린 커다란 목어(木魚)를 보며 속이 뜨끔했다. 두 손을 모아 참회하고 볼락들의 극락왕생과 윤회를 빌었다. 5m 높이의 보경사 오층석탑 앞에서 그 웅장함에 또 한 번 기가 죽는다. 1층 기단 위에 5층 탑신을 올린 석탑의 네 귀퉁이는 하늘을 향해 약간 들려 있는데, 겸허히 그러나 확고하게 지상 위의 천상을 소망하는 모양새다. 돌 모서리마다 햇살이 투명한 연꽃을 피우고 있었다. 다시 경내를 산책하다가 이번엔 유명한 두 그루의 탱자나무와 만났다. 한 그루는 사찰 동쪽 흙돌담 앞에 있고, 다른 한 그루는 서쪽 빈터에 서 있다. 서쪽에 있는 것은 수령이 400년 넘은 고목이다. 탱자나무가 굽이굽이 뻗어 오르며, 마치 고흐의 ‘사이프러스’처럼 무성한 초록 불꽃을 공중으로 댕겨 놓는 오전 아홉시, 반갑지 않은 손님과 만났다. 더위가 벌써 오셨다.더위를 피해 내연산의 서늘한 품속을 파고들어 본다. 청하골, 내연골, 연산골로 불리는 보경사 계곡이 땀을 식혀준다. 내연산에는 12개의 폭포가 있다. 이 폭포들은 모두 제 모습을 스스로 먼저 내보이는 일이 없다. 깊은 숲길을 헤치고 찾아온 방문객에게만 앞섶을 풀어 빛나는 살결을 보여준다. 어디선가 우레 같은 물소리가 들리는데 폭포는 보이지 않는다. 물소리는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숨어사는 건 내 취미, 시원한 알몸 다 내놓고 나는 외로움을 노래처럼 불러. 언뜻 네 눈길이 나를 한번 붙잡았을 뿐, 나는 여기 왔다 간 적도 없어 내가 거기 있더라고 말하지 마, 그 순간 내 몸은 사라지고, 나는 햇빛 속에서 하얗게 타오르지”(이경교, ‘숨은 폭포’)라고. 귀가 먼저 달려간 저기 계곡 상류, 나란히 떨어져 내리는 두 물줄기가 보인다. 상생폭포다. 두 갈래 물이 몸을 합치는 폭포 아래 소는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새카만 물빛, 쳐다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다. 옛날에 어느 기생과 선비가 서로 사랑했는데, 이룰 수 없는 연을 비관하여 절벽에서 함께 폭포 아래로 뛰어내렸다고 한다. 상생폭포 위 절벽을 기화대(妓花臺), 물이 받치는 소를 기화담(妓花潭)이라고 부르는 연유를 알았다.“폭포소리가 산을 깨운다. 산꿩이 놀라 뛰어오르고 솔방울이 툭, 떨어진다. 다람쥐가 꼬리를 쳐드는데 오솔길이 몰래 환해진”(천양희, ‘직소포에 들다’)다. 물소리를 쫓아 마음이 환해진 나는 목욕하는 선녀를 훔쳐보던 나뭇꾼처럼 보현폭포와 삼보폭포의 살빛을 겨우 엿볼 뿐이다. 두 ‘숨은 폭포’를 지나 소금강 전망대에 올랐다. 멀리 포항 바다가, 가까이는 기암절벽 위에 놓인 누각 선일대(仙逸臺)가 보인다. 골짜기가 멀리까지 손을 뻗어 바닷바람을 잡아당겼다. 등줄기에는 더운 땀이 흐르지만 마음에는 차고 맑은 이슬이 맺혔으니, 이만하면 됐다. 산을 내려가도 좋다.두 시간 남짓 산행에 꽤 지쳤다. 복날이 가까워선지 보양식에 구미가 당긴다. 하산길에 닭고기와 막걸리 생각부터 하는 나 같은 얼치기 등산객은 기를 쓰고 산에 가도 다이어트는커녕 살이 포동포동 오른다. 흥해읍 달전리의 ‘달전식당’은 내연산의 아담한 폭포처럼 ‘숨은’ 맛집이다. 방송이나 인터넷에 소개된 적 없어 아는 사람만 아는 집, 단골 장사만 해도 충분하다. 꽃나무를 가꾼 마당의 화사함이 내 허기에도 꽃물을 들인다. 단순한 배고픔이 미식에의 열망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마루 아래 신발을 벗어두고 방에 들면 한옥의 고즈넉함이 고단한 몸과 마음을 부드럽게 주무른다. 퍼질러져 낮잠이나 자고 싶지만, 목은 이색의 후손이므로 체통을 지켰다. 잠시 후, 미리 주문해둔 옻닭백숙이 상에 올랐다. 밑반찬 담음새에 먼저 감탄할 수밖에. 초승달 모양 그릇에 담긴 장아찌와 김치를 바라보기만 해도 침이 고였다. 푹 삶은 옻닭 위에 부추를 수북하게 얹은 백숙을 한 입 뜯어 먹을 때마다 팔뚝과 종아리에 바로 근육이 붙는 느낌이 들었는데, 걷어붙인 셔츠 소매 단추가 터졌으니 착각은 아니었을 것이다. 동석한 음식평론가 황광해 선생께서는 이 집 김치 맛에 반해 백숙이 다 사라진 후에도 김치를 향한 젓가락질을 멈추지 않았다.여름 입가심엔 역시 아이스커피가 제일이다. 칠포와 월포 바다 사이에는 젊은 여행객들에게 소문난 카페가 있다. 흥해읍 오도리의 ‘오도리오도시’는 그리스 산토리니의 타르베나(그리스 전통 레스토랑)를 연상시킨다. 하얀 외벽에 커다란 통유리가 눈길을 끄는 이곳 카페의 매력은 2층 루프탑에서 눈앞에 펼쳐진 흥해 바다를 보며 마시는 아이스커피 한 잔의 여유에 있다. 오도리오도시에서는 아이스커피를 머그잔이나 종이컵이 아닌 투명 페트 용기에 담아 캔 뚜껑으로 밀봉해 제공한다. 캔 뚜껑 손잡이를 따는 순간 톡, 하는 청량감이 기분을 상쾌하게 한다. 얼음을 이리저리 굴리며 커피를 마시는데, 곁에선 연인들의 사진 찍기 놀이가 한창이다. 동해안의 핫플레이스 카페들은 모두 젊은 연인들을 불러 모으지만 이곳이 특히 유명하다고 들었다. 보아하니 남녀가 함께 커피를 마시는 동안 수평선에 나란히 꽁꽁 묶여 ‘운명 공동체’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전망 좋은 자리를 혼자 차지하고 있는 게 미안해서, 반쯤 마신 커피를 들고 일어섰다. 내가 일어서자마자 스무 살쯤 되어 보이는 커플이 부리나케 자리에 앉았다.죽도시장에 들러 멸치와 디포리, 미역을 엄마 집에 택배 부치고, 호떡 한 개 집어 먹으니 어느덧 해질녘이 가깝다. 영일대 선착장으로 갔다. 영일만 크루즈는 평일에는 낮 2시에만 운항하지만 토요일에는 저녁 7시30분, ‘야경 불꽃 음악 크루즈’라는 프로그램으로 야간 운항을 하고 있다. 90분 동안 크루즈 유람선을 타고 포항시의 야경과 함께 화려한 불꽃놀이를 감상할 수 있어 연인, 가족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많다. 미리 예매한 승선권을 제시하고 크루즈에 올랐다. 저기 포스코의 불빛들이 영일만 물결 위에 춤을 추는 동안 여름밤의 바닷바람은 재즈 음악처럼 온몸을 나른하게 했다. 잠시 후 영일만 크루즈의 하이라이트인 불꽃 쇼가 펼쳐졌다. 펑펑, 폭음과 함께 커다란 불꽃들이 포항 밤하늘에 활짝 피었다. 부풀어 오른 달은 불꽃과 바다 사이에 육중한 몸을 끼워 넣고, 어둠마다 빛이 날아가 박혀 눈부신 야경을 이루는 저녁, 나는 화려한 불빛과 차분한 물빛이 음악 속에 반짝이는 포항을 오래 바라보았다.그런데 크루즈 위에서 내 마음은 엉뚱하게도 물회와 아귀찜 사이를 부지런히 오갔다. 저녁 메뉴 고르는 것만큼 어려운 결정도 없다. 갈피를 못 잡는 나를 음식평론가 황광해 선생께서 당신이 직접 검증한 ‘착한 식당’으로 이끌었다. 죽도동의 ‘부산아구찜’은 싱싱한 생아귀만 사용하는데, 양념이 과하지 않고 맛을 내는 데 꼭 필요한 최소한의 해산물과 야채만 곁들여 맛이 깔끔하다. 아귀찜과 아귀간수육을 주문했다. 아귀 요리가 준비되는 동안 황광해 선생께서 예찬한 물김치를 한 술 떠먹으니 시원하고 아삭아삭한 새콤달콤함이 입 안에 폭포를 열어젖혔다. 침샘이 활짝 열려 온몸이 음식 맞을 준비를 마쳤을 때, 비로소 아귀찜과 아귀간수육이 상에 올랐다. 아귀 살 한 점에 영일만 바다가 혀끝에서 파도치고, 아귀 간 한 점에 오색 불꽃이 입 안에 팡팡 터지는 행복,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노래 제목을 빌리지 않더라도 포항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야경과 불꽃과 아귀찜으로 여름 포항의 낭만은 완성된다. 밤늦도록 창밖 글썽이는 불빛을 보며 나는 스스로 밤이 되고 바다가 되다가, 영일만이 머리맡에 띄워 보내는 파도를 베고 누워 소라고둥처럼 적막한 잠에 들었다. 잠들기 전, 여름 포항에 자주 오게 되리라는 예감이 발끝에서부터 쇄골까지 부드러운 이불을 덮어주었다.      /시인 이병철

2019-07-21

어시장 난전 뽕짝과 고급 레스토랑 재즈 뮤직이 공존하는 영덕

파도가 새벽잠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꿈속 세상이 아늑했다. 요란한 스마트폰 알람시계 대신 바다를 가르는 뱃고동이 압력밥솥 소리를 내며 귓가를 두드렸다.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에서 흰쌀밥 냄새가 부풀어 오를 때, 나는 빛과 소리와 냄새로 오는 영덕의 아침을 끌어안으려 기지개를 켰다.어제는 영덕 바다의 푸른색에 흠뻑 물들었으니 오늘은 내륙으로 가봐야겠다. 누구나 바다부터 떠올리지만, 영덕에는 바다 못지않게 아름다운 산과 계곡, 하천이 있다. 먼저 더덕, 황기, 산삼, 멧돼지, 철, 구리, 돌이끼 등 일곱 가지 보물이 가득하다는 칠보산(七寶山)에 올랐다. 금강송이 뿜어내는 피톤치드에 숨 쉴 때마다 도시의 미세먼지와 술과 한숨과 세월에 찌든 몸속 때가 깨끗이 씻겨나가는 느낌이었다. 무성한 나뭇잎을 비집고 쏟아지는 초록 햇빛이 이마에 닿는 순간, 나도 한 그루 나무가 되어 광합성을 시작했다. 숲에 들어와서야 알았다. 숲을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나무가 된다는 사실을.태백산맥 끝자락의 칠보산은 명당 중의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풍수지리에 관심이 많은 삼성 이건희 회장은 지난 2004년 이곳 칠보산에 개인 명의의 수목원을 조성하려 부지를 매입했는데, 수목원 대신 삼성전자 연수원이 들어섰다. 칠보산에 동식물과 광물이 풍부한 것은 땅의 기운이 좋기 때문이다. 좋은 땅에선 좋은 사람이 나는 법, 칠보산이 있는 영덕 병곡면은 예로부터 수많은 인재를 배출해내 마을 전체가 세금 면제 혜택을 받았다는 풍문도 있다.금강송 사이로 동해의 장엄한 일출을 볼 수 있는 칠보산자연휴양림, 소나무들이 투명한 스프레이를 들고 촉촉한 솔향을 뿜어대는 자연의 미스트에 얼굴은 물론이고 마음의 피부까지 싱그러운 탄력을 되찾았다. 그러고 보니 숲에 사는 것들은 모두 피부가 좋다. 금강송 껍질은 반들반들하고 바위는 반질반질하며 흙은 만질만질하다. 신발을 벗고 가벼운 맨발로 숲길을 걸었다. 걷다보면 저기 고래불 명사이십리 해안이 나타나고, 유난히 낮게 내려앉은 하늘 아래 구불구불 이어진 태백능선의 장관과 마주하게 된다. 이 숲에서 하루 묵으면 얼마나 좋을까? 야영장에 텐트를 치고 새 소리와 이슬과 벌레와 사이좋게 누워 잠들면 땅의 좋은 기운을 받아 몸도 영혼도 다 건강해질 텐데. 아쉽지만 훗날을 기약하며 숲을 나섰다.숲에서 나오자마자 숲의 상쾌함이 그리워졌다. 그래서 이번엔 맑은 물을 찾아 다른 숲에 들었다. 달산면 옥계계곡은 팔각산 천연림과 동대산 기암절벽이 함께 빚어낸 깊은 협곡이다. 손때 묻지 않은 바위들 사이로 얼음처럼 차고 맑은 물이 수십억 개 구슬이 되어 굴러 내린다. 절벽에 움푹 파인 바위굴들마다 신비한 옛 이야기를 숨겨두고 있을 것만 같은 계곡, 에메랄드빛 물에 발을 담그니 발가락이 얼얼했다. 발끝에서부터 정수리까지 고드름이 열리는 듯한 차가움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강원도 양구의 파서탕(破暑湯)이 더위를 깨뜨린다는데, 옥계계곡도 파서탕 못지않은 자연의 냉장고, 너른 자갈밭과 소나무 그늘이 있어 여름 피서지로 더할 나위 없겠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오라고, 함께 오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면 혼자라도 꼭 다시 오라고, 그때 마음의 신열을 서늘하게 내려앉혀 주겠다고 물소리가 내게 속삭였다.옥계계곡은 오십천으로 흐르고, 오십천은 다시 강구 바다로 흐른다. 낚시꾼인 내 마음은 강과 바다 사이에서 이리저리 헤매기 시작한다. 강물이 바다로 들어가 바닷물과 섞이는 곳을 기수역이라고 하는데, 영덕 오십천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기수역 하천이다. 영덕은 바다낚시의 고장이지만, 오십천에서 즐기는 민물낚시는 낚시꾼에게 뜻밖의 손맛을 안겨준다. 바닷고기인 농어를 민물에서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농어는 가을과 겨울 사이 기수역에 와서 산란을 하고, 부화한 치어는 점차 성장해 바다로 나간다. 기수역 농어는 루어낚시로 잡는다. 일반 농어 루어낚시보다 조금 가볍게 장비를 쓰는데, 바다낚시 못지않은 짜릿한 손맛을 만끽할 수 있다. 5월부터 농어 시즌이 되면 오십천에선 웨이더(방수복)를 입고 허리까지 잠기는 물에 들어가 부지런히 채비를 던지는 루어낚시꾼들을 볼 수 있다. 농어를 민물에서 만나는 것도 신기한데, 더 놀라운 것은 오십천에 민물고기의 제왕 쏘가리가 산다는 사실이다. 농어 루어 채비에 씨알 굵은 쏘가리가 걸려들어 금빛 표범무늬를 번쩍이며 끌려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원래 쏘가리는 기수역에 살지 않는 어종이지만 치어 방류 사업으로 오십천에 자생하게 된 것이다. 농어와 쏘가리 외에도 오십천에선 민물고기인 꺽지, 붕어, 잉어, 바닷고기인 숭어, 황어, 감성돔, 심지어 우럭까지 낚시로 잡을 수 있다. 참, 은어를 빼놓았다. 오십천은 호남의 섬진강과 함께 우리나라 은어낚시의 양대 메카, 2009년에는 33.5㎝의 대물 은어가 잡혀 은어낚시 종주국인 일본에서도 화제가 된 바 있다.루어낚싯대를 꺼내 한 시간 정도 낚시를 해봤지만 잔입질 몇 번 받은 게 고작이었다. 기수역에서 바다로 가는 농어처럼 나도 낚시를 접고 강구항으로 향했다. 물고기 입질이 없으니 사람 입질이라도 해야 할 게 아닌가? 강구항의 명물로 떠오르고 있는 대게빵을 집어 들었다. 강구항에서는 ‘울진대게빵’과 ‘영덕대게빵’이 또 각축을 벌인다. 울진대게빵은 게살을 갈아 넣은 빵에 호두, 블루베리, 슈크림 등 세 종류의 속을 골라 채워 먹을 수 있다. 대게 등딱지에 담아 파는 대게머핀도 별미다. 한편 영덕대게빵은 울진대게빵에 비해 작고 앙증맞다. 찰보리 반죽에 게살과 함께 껍질까지 갈아 넣어 게맛이 조금 더 강하다. 하여간 눈도 즐겁고 입도 즐거운 대게빵을 먹을 만큼 사서는 갈매기들이 내 빵을 노리는 위험한 항구를 살금살금 빠져나왔다.해파랑공원에 앉아 점점 붉게 익어가는 태양을 보며 대게빵을 한 입 베어 물었다. 빵에서도 태양에서도 고소한 게 냄새가 났다. 먹음직스러운지 눈길을 떼지 못하는 꼬마에게 빵 한 개를 건넸다. 일요일의 공원은 붐볐다. 사람들은 모두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수백 개의 눈이 일제히 향한 곳엔 제 어깨 너머 무엇이 있는지 말해줄 듯 말해주지 않는 수평선이 고요한 입술을 옴짝달싹할 뿐이었다. 강구항은 1997년 방영된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의 배경으로 잘 알려져 있다. 드라마 주제곡인 루 크리스티의 ‘Beyond the blue horizon’은 저 수평선 너머에 희망이 넘실거린다고 노래한다. “파란 수평선 너머엔 행복한 날들이 기다리고 있어. 괴로웠던 날들은 이제 안녕. 새로운 삶이 시작될 거야”라고. 바다에서는 비관주의자가 낙관주의자로, 염세주의자가 긍정주의자로 바뀐다. 거친 격랑이 일고 비바람 세게 몰아치는 삶의 바다를 벗어나 잔잔하고 부드러운 바다 앞에 선 사람들, 수평선 너머 내일에는 그들이 찾는 행복과 희망, 꿈과 사랑이 반드시, 반드시 있을 것이다.빵배와 밥배는 따로 있다. 배꼽시계가 저녁을 알렸다. 영덕의 먹거리라면 대게와 회, 물회, 곰치국, 물메기탕 등 수산물을 재료로 한 한식이 먼저 떠오른다. 북적거리는 항구, 항구를 조금 벗어나면 한적한 어촌마을, 항구의 어시장과 대게 식당, 어촌마을의 허름한 횟집…. 영덕을 찾는 사람들 누구나 그런 곳에 앉아 바다 위에 뜬 달을 보며, 은하수처럼 늘어선 오징어잡이 배의 불빛을 보며 저녁 먹는 상상을 한다. 나는 그게 좀 식상하게 느껴져 뭔가 색다른 식사를 경험하고 싶었는데, 병곡면 해안도로가에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그리로 차를 몰았다. 레스토랑 ‘베르데’는 ‘하벳 풀빌라 앤 리조트’ 내에 있다. 고급스러우면서도 아기자기한 내부와 통유리창으로 시원하게 보이는 오션뷰가 인상적이다. 수준급 요리사들이 울진 후포항과 영덕 축산항, 영해 만세시장 등에서 공수해온 지역의 식재료로 다양한 이탈리아 요리를 만든다. 영덕 대게 파스타 등 동해의 수산물을 이용한 메뉴들은 물론 한우 스테이크, 콰트로 치즈 피자, 시저 샐러드 등과 함께 와인을 즐길 수 있다. 대표 메뉴인 대게 로제 파스타를 주문했다. 대게살을 듬뿍 발라 넣은 파스타를 한 입 먹을 때마다 면에 들러붙은 게살이 입안에 가득 씹혔다. 파스타와 함께 시원한 스파클링 와인을 곁들이며 통유리창 너머 어둠 내린 바다를 보는 저녁은 꽤나 낭만적이었다. 베르데에서 나는 영덕의 변화를 실감했다. 교통 오지였던 어촌이 이제는 동해안 관광의 중심지가 됐다. 어시장 난전의 뽕짝부터 고급 레스토랑의 재즈 뮤직이 공존하는 영덕은 옛것과 새것, 한식과 양식, 바다와 내륙이 함께 다채로운 매력을 뽐내는 고장으로 변모 중인 것이다.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레스토랑을 나오니 하벳 풀빌라 앤 리조트가 캄캄한 밤바다 위에 화려한 불빛을 밝히고 있었다. 마치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를 연상시키는 외관, 알고 보니 이집트에서 공수해온 돌을 하나하나 조각하여 쌓아올렸다고 한다. 이 럭셔리 풀빌라의 각 객실은 고래불 바다를 바로 앞에 두고 스파와 수영을 즐길 수 있게 되어 있는데, 젊은 세대는 물론 가족 관광객들에게도 동해안 ‘호캉스(호텔에서 즐기는 바캉스)’의 명소로 각광 받는 중이다. 가장 저렴한 방이 1박에 38만원, 비싼 방은 89만원이다. 홀로 외로운 데다 가난하기까지 한 시인에게는 그림의 떡이라서 나는 하릴없이 리조트 주변을 한 바퀴 산책하며 이곳 스위트룸에서 함께 호캉스를 즐기고 싶은 이의 얼굴이나 그려보았다.고래불 해수욕장의 한 모텔, 시골 여관에서 씻고서 시골 밤거리를 홀로 걸으면 마음이 습해진다.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동쪽으로 아무리 달리고 달려도 당신과 나 사이는 지구에서 토성까지 만큼이라서 가까워지지도 더 멀어지지도 않는 고정된 이별의 거리, 이곳과 그곳의 시차는 영원히 그대로다. 그러나 하얗게 밀려왔다가 아득히 검게 밀려가는 밤바다 뒤에서 내일의 태양은 벌써 떠오르고, Beyond the blue horizon, 저 파란 수평선 너머 행복한 날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나는 믿기로 했다.      /시인 이병철

2019-0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