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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볕 아래 드러난 이름들⋯“숭고한 희생, 기억으로 남다”

황인무 기자
등록일 2026-03-17 17:03 게재일 2026-03-18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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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보훈청, 남구 6·25 참전유공자 명비 제막식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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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후 대구 남구 낙동강승전기념관에서 열린 대구 남구 6.25참전유공자 명비 제막식을 마친 뒤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17일 오후, 대구 남구 낙동강 승전기념관.

부드러운 봄볕이 기념관 마당을 감싸는 가운데, 검은 정장을 차려입은 보훈가족들과 제복을 갖춰 입은 참전유공자들이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행사장 한켠, 흰 천으로 가려진 커다란 명비 앞에는 이미 잔잔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숭고한 호국 영령의 넋을 기립니다.”

행사의 시작을 알리는 묵념과 함께 장내는 숙연해졌다. 이어진 국민의례와 경과보고, 축사 속에서 참석자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명비가 세워진 자리로 향했다.

이날 열린 ‘6·25 참전유공자 명비 제막식’에는 조재구 남구청장과 김종술 대구지방보훈청장을 비롯해 보훈가족과 시민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한국전쟁 당시 조국을 위해 몸을 바친 이들의 희생과 헌신을 되새기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강당에서 진행된 공식 행사가 끝난 뒤, 참석자들은 야외 명비 앞으로 이동했다. 바람이 살짝 스치고, 햇살이 비석 위를 비추는 순간, 제막식이 시작됐다.

천천히 흰 천이 걷히자, 검은 돌 위에 새겨진 수천 개의 이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순간, 장내는 다시 한 번 조용해졌다. 누군가는 모자를 벗어 들었고, 누군가는 고개를 깊이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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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일 오후 대구 남구 낙동강승전기념관에서 열린 대구 남구 6.25참전유공자 명비 제막식에 참석한 한 유공자가 명비를 살펴보고 있다.

한 노년의 보훈가족은 명비 앞으로 다가가 손끝으로 이름 하나를 짚어 내려갔다. 손길은 천천히, 그러나 망설임 없이 이어졌다. 이름을 따라가던 그의 눈가가 붉어졌고, 옆에 서 있던 가족은 말없이 어깨를 감싸 안았다.

이번에 건립된 명비에는 남구 출신 6·25 참전자 2144명의 이름이 새겨졌다. 가로·세로 2.4m, 높이 3.34m 규모의 비석은 단단한 돌의 질감 위에 빼곡히 새겨진 이름들로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류영봉 6·25참전유공자회 남구지회장은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희생하신 호국영웅들의 정신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보훈가족 문승련 씨(72··남구)는 명비를 한참 바라본 뒤 “이제야 제대로 기억되는 것 같다”며 “참전용사와 가족 모두에게 큰 자긍심이 될 것”이라고 조용히 말했다.

김종술 대구지방보훈청장은 명비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단단한 돌 틈에서 피어난 국화처럼, 전장의 상처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희망과 헌신을 상징합니다.”

짧은 설명이었지만, 참석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 번 비석을 바라봤다.

이름은 많았고, 이야기는 더 많았지만, 그날 그 자리에서는 누구도 길게 말하지 않았다. 대신 침묵이 그 자리를 채웠다. 그 침묵은 슬픔이면서도, 동시에 기억의 방식이었다.

행사가 끝난 뒤에도 사람들은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각자의 사연을 품은 이름 앞에서, 봄볕은 여전히 따뜻하게 내려앉고 있었다.

한편, 국가보훈부는 지난 2016년부터 지방자치단체 및 학교 등과 협력해 6·25 참전유공자 명비 건립 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글·사진 /황인무기자 him7942@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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