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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에세이] 계획대로 안되는 게 여행

최병일 기자
등록일 2026-03-09 14:39 게재일 2026-03-1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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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니듯이 여행도 원래 계획했던 대로 진행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필자도 오랫동안 여행을 다니다 보니 난감한 일을 당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7년 전 스위스의 융프라우요흐를 취재한 후 귀국할 때였습니다. 중동 국적의 한 항공기를 타고 스위스 제네바에서 아랍 에미리트UAE의 아부다비를 경유해 인천으로 들어오는 기나긴 여정이었는데 아침부터 마음이 이상하게 불안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아부다비로 넘어가야 할 항공기의 보딩 타임이 자꾸만 늦춰졌습니다. 불안한 마음에 항공 카운터에서 문의를 하니 15유로짜리밀 쿠폰(식사 쿠폰)을 주면서 “식사하면서 기다리라.”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이유로 연착이 되는지 비행기가 언제떠나는지 일절 이야기해 주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그 항공 관계자도 이유를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두 시간 쯤 맥없이 기다리고 있자 항공 관계자는 기체의 결함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금세기 최고의 비행기라고 평가받고 있는 드림라이너 기종이 고장 나서 오도 가도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끈질기게 언제 비행기가 뜨냐고 묻자 항공 관계자는 적반하장으로 “그렇게 급하면 환불해 줄 테니 다른 비행기 를 타세요! 하지만 오늘 인천으로 가는 비행기나 아부다비로 가는 비행기는 없습니다.”라며 잘라 말합니다. 일등석과 비즈니스 좌석은 다른 항공편으로 연계해서 주면서 이코노믹 승객은 무조건 기다리라고만 합니다. 

가난한 필자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도 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행기는 여섯 시간이 지나서야 아부다비로 떠났습니다. 아부다비에 도착하니 이미 밖은 어두워져 있었습니다. 인천으로 가는 비행기는 결항이 됐고 다음날 밤 열두 시에 출발한다고 합니다. 항공사 측에서 마련해 준 비좁은 호텔에서 묵는데 모든 것이 불편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잠에서 깬 나는 이왕 온 김에 아부다비 관광이라도 하려고 후배와 함께 밖으로 나섰습니다. 첫 번째 방문지로 아부다비의 명소인 에미리트 팰리스로 향했습니다. 예전에는 궁전이었지만 지금은 초특급 호텔이 된 곳입니다. 규모도 크고 독특한 형태의 건축양식이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특히 이 호텔의 커피숍은 금가루 카푸치노가 유명합니다. 

하지만 필자는 호텔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격식을 중하게 여기는 이 호텔은 반바지를 입으면 들어갈 수 없었는데 하필이면 같이 간후배가 반바지를 입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할 수없이 세이크 자이드 그랜드모스크로 향했습니다. 종교와 상관없이 아부다비를 관광하는 사람들이라면 꼭 들르는 곳 입니다.

아랍 에미리트 국부(國父)의 이름을 딴 이 모스크는 우리 돈으로 약 6000억 원을 들여 10년 만에 완공한 거대 건축물입니다. 하얀색 외관에 덧붙인 정교한 모자이크는 보는 이들의 탄성을 불러일으킵니다. 내부는 더 화려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곳도(!)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역시 후배의 반바지가 문제였습니다. 허겁지겁 반바지를 가리는 치마를 빌려서 들어가려고 하는데 아뿔싸! 이미 관람 시간이 지나고 말았습니다. 결국 나와 후배는 눈물을 머금고 모스크를 떠나야 했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거 맛있는 것이라도 먹으러 가자며 주변의 식당을 찾았는데 웬일인지 가는 곳마다 식당의 문이 닫혀 있었습니다. 

왜 그런가 알아보니 라마단 기간이기 때문에 음식을 팔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라마단은 이슬람력의 9월인데 아랍어로 ‘더운 달’을 뜻한다고 합니다. 라마단 기간은 해마다 다른데 4년 전인 2015년에는 6월 18일에서 7월16일이었습니다. 필자가 아부다비를 갔을 때가 7월 초였으니 한참 라마단이 진행되던 때였습니다. 이슬람 사람들은 이 기간 동안 일출에서 일몰까지 의무적으로 금식할뿐 아니라 담배와 물 심지어 성관계까지 금지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음식점이 문을 열 리 없지요. 쇼핑몰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발견한 까르푸는 다행히 문을 열었습니다. 외국인들에까지 라마단을 강요하지 않는 게 천만다행이었습니다. 식품 코너에서 빵과 주스를 사 가지고 나와서 마트 앞의 의자에 앉아 허겁지겁 고픈 배를 채웠습니다.

맛있게 빵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경비원이 나타나 무어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랍 말이었던 것 같습니다.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하자 경비원은 과격하게 빵이 든 봉투를 던지며 밖으로 나가라고 했습니다. 라마단이라는 말이 계속 나오는 것을 보니 아마도 라마단 기간에 왜 음식을 먹고 있냐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지나가던 아부다비 사람들도 필자와 후배를 냉정한 얼굴로 바라봅니다.

그 눈빛이 무서워 얼른 쇼핑몰 밖으로 나갔습니다. 우리는 베트남 사람이 운전을 하는 택시를 타고 가면서 남은빵과 우유를 마저 먹었습니다.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눈물 젖은 빵이었습니다. 관광을 포기하고 다시 호텔로 향하는데 후배가 갑자기 입에서 피를 흘렸습니다. 사과를 급하게 먹다 레진을 씌운 이가 깨지면서 피가나온 것입니다.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 모습이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습니다. 

요즘 말로 웃픈 광경이었습니다. 요즘도 필자는 여행 가서 크고 작은 난감한일들을 당하곤 합니다. 그럴 때면 아부다비에서의 악몽을 떠올리곤 합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피할 수 없다면 즐기는 수밖에요. 예측할 수 없는 순간이 이어지는 것, 그것이 인생이고 여행이 아닐까요?

/최병일기자 skycbi@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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