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스코(Cusco)를 떠나 티티카카로 향하는 길은 이번 여행에서 가장 특별한 여정이 될 거라고 믿었다. 밤 10시, 야간 버스에 몸을 싣고 쿠스코를 출발, 볼리비아의 라파스(La Paz)를 향했다. 기나긴 밤이 지나고 새벽 5시 30분, 푸노에 도착했다. 낯선 도시의 새벽은 어색했지만, 여러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과 아침 식사를 함께하며 굳어있던 마음은 조금씩 녹아내렸다.
아침 7시, 작은 관광 보트를 타고 호수를 향해 달렸다. 마침내 물 위에 떠 있는 갈대 섬에 도착했다. 배에서 내리는 순간, 그곳은 마치 동화 속 마을처럼 아름다웠다. 단 네 가구만이 살고 있는 작은 섬은 수천 년 동안 먼지와 식물의 씨앗이 쌓여 만들어졌으며, 그 두께는 4미터에 달한다고 한다. 사람들은 갈대와 같은 식물로 집을 짓고, 배를 만들며 삶을 이어간다. 그들의 생계는 대부분 관광에 의존하고 있다. 갈대로 만든 공예품을 팔아 자식들을 키우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하지만 그 풍경은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여행 경비를 아끼려는 방문객들은 애써 시선을 피하고, 원주민들은 생계를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물건을 권한다. 서로 다른 세계가 교차하며 미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문득 ‘아침보다 오후에 더 잘 팔린다’는 말이 떠올랐다. 오전에는 이성이 지갑보다 앞서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판단은 흐릿해진다. 여행지의 상거래는 때로는 인간 심리를 엿볼 수 있는 작은 실험실과 같다.
티티카카는 해발 3812m에 위치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호수이다. 뚜렷한 수평선은 마치 바다처럼 넓게 펼쳐져 있다. 그러나 이 압도적인 느낌은 단순히 고도 때문만은 아니다. 이곳에는 시간이 멈춘 듯한 고요함이 흐른다. 맑은 물 위로는 크고 작은 배들이 오가고, 호수 바로 옆은 볼리비아 국경이다. 이러한 척박한 환경 속에서 고대 잉카인들은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그 답은 바로 ‘갈대와 물’에 있었다.
잉카인들은 호숫가에 자생하는 갈대, ‘토토라’를 이용하여 물 위에 떠 있는 인공 섬, ‘우로스’를 만들어 외적의 침입을 막았다. 갈대로 만든 배를 띄워 바다와 같은 호수를 가로지르며 어업과 교역을 이어갔다. 밤이면 영하로 떨어지는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밭 주변에 수로를 파 낮 동안의 열을 가두는 와루와루 농법을 고안해 냈다. 덕분에 해발 3800m가 넘는 고지대에서도 감자와 퀴노아를 재배하며 생존 기반을 넓힐 수 있었다.
티티카카는 그들에게 단순한 호수가 아니었다. 태양신 ‘인티’가 인류의 시조를 내려보냈다는 신성한 발상지였다. ‘태양의 섬’과 ‘달의 섬’에 신전을 세우며 우주의 질서를 확인하던 그들만의 영적인 중심지였다. 라마와 알파카를 길러 따뜻한 옷을 만들고, 거대한 호수를 천연 고속도로 삼아 부족들과 물자를 교류했다. 구름 위의 바다를 경외하며,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안데스 문명을 꽃피웠다.
그러나 그 찬란했던 문명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1536년, 투팍 아마루 1세가 이곳에서 스페인 정복자에게 맞서 반란을 일으켰지만 실패했고, 이후의 저항 또한 좌절되었다. 총과 말을 앞세운 정복자 앞에서 끈질긴 저항은 무력하기만 했다. 더욱 비극적인 것은 ‘땅의 패배’가 아닌 ‘문화의 말살’이었다. 언어는 사라지고, 신앙은 잊혔으며, 삶의 방식은 마치 전시품처럼 박제되어 갔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나는 영국에서 온 두 명의 여행객, 그리고 미국에서 온 젊은 커플과 함께 타킬레 섬으로 향했다. 푸노에서 배로 2~3시간 거리에 있는 그 섬에는 자동차도, 소음도 없다. 잉카 시대의 전통적인 삶의 방식이 여전히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해발 3800m가 넘는 고산 지대의 가파른 오르막길을 숨 가쁘게 오르면, 눈부시게 푸른 호수와 소박한 마을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주민들이 직접 짠 직물을 조용히 내어 보이는 모습은 감동적이다. 그곳은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하산길에 들려오는 맑은 물 소리는 여행자의 숨을 고르게 해준다. 정말 시간이 멈춘 듯한 평온함. ‘속도’가 사라진 자리에서 마음은 다시 제 속도를 찾아가는 듯했다.
섬에서 돌아오자 볼리비아로 향하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카사니 국경 심사대를 직접 걸어서 통과하는 특별한 경험을 한 후, 다시 버스를 타고 달리다 저녁 무렵 티키나 해협에 도착했다.
밤 7시가 넘어 어스름이 짙게 깔리자 승객들은 버스에서 내려 작은 보트에 몸을 실었다. 차가운 호수 바람을 맞으며 어둠 속 물길을 건넜다. 그 사이 버스는 커다란 바지선에 실려 따로 이동했다. 사람은 작은 배로, 버스는 큰 배로. 두 나라의 경계를 호수가 품어 옮겨주는 그 모습은 극적이면서도 낭만적이었다. 티티카카가 오랫동안 기억될 또 하나의 이유가 생긴 것이다.
티티카카는 화려한 관광의 이름 아래 식민의 상처와 잃어버린 문명의 침묵을 숨기고 있지만, 나는 그 유산을 ‘소비되는 풍경’이 아니라 존중받아야 할 정신으로 대하려는 자긍심 속에서 정체성 회복의 희망을 보았다.
잉카의 세계관을 더 깊이 이해할수록 사라진 목소리들이 다시 숨을 쉬는 듯했고, 그 깨달음을 가슴에 단단히 묶어 둔 채 나는 또 다른 기억의 땅, 볼리비아를 향해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발걸음을 옮긴다.
/김상국(세종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