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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포항, 글로벌 AI 혁신 전진기지로 우뚝 설까”

포항이 또다시 주목받고 있다. 철강 도시라는 이미지가 강한 포항에, 이제는 인공지능(AI)이라는 새로운 이름표가 붙으려 한다. 대통령실이 지난 2일 밝힌 오픈AI-삼성 협력에 따른 데이터센터 유치 소식은 단순한 개발 뉴스가 아니다. 지역 산업 지형을 바꿀, 어쩌면 포항의 미래 좌표를 바꿀 수 있는 변곡점이다. 데이터센터 규모부터 눈길을 끈다. 포항융합기술산업지구 1만3000평 부지에 세워질 이 시설은 초기 20MW에서 최대 200MW까지 확장 가능한 초대형급이다. 초기 투자만 3조~4조원. 국내는 물론 글로벌 차원에서도 손꼽히는 수준이다. 게다가 이번 프로젝트는 ‘스타게이트’라는 700조원 규모의 세계적 인프라 사업의 일환이니, 포항이 단순 분산지로 선택된 것은 아니다. 삼성SDI가 시행을 맡고, 삼성전자가 AI 반도체와 메모리 역량을 증명할 무대로 삼는다는 점에서 기술적·산업적 상징성도 크다. SK가 전남에서 같은 구조로 협력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포항은 삼성이, 전남은 SK가 각각 책임지는 양축 구도다. 이 자체가 이미 국가 균형발전 차원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렇다면 포항이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첫째, 지역 전략산업과 AI 융합이다. 철강과 2차전지, 그래핀 산업까지-이들 산업은 방대한 데이터와 시뮬레이션을 필요로 한다. 고도화된 AI 인프라가 뒷받침되면 공정 혁신, 생산성 향상은 물론 글로벌 경쟁력 제고로 직결된다. 둘째, 지역 생태계 활성화다. 대학·연구소·스타트업이 밀집한 포항에 AI 데이터센터가 들어서면, 그 자체로 혁신 클러스터의 허브가 된다. 지역경제 연구원 관계자의 말처럼, “튼튼한 산업 기반에 AI라는 신경망이 더해지면 체질 개선의 속도가 달라질 것”이라는 전망은 충분히 설득력 있다. 포항시 역시 이를 ‘AI 철강도시’, ‘스마트 배터리 밸리’라는 전략 브랜드로 연결하려는 구상을 내놓고 있다. 다만, 기대 못지않게 우려도 있다. 데이터센터는 전력·용수·환경 문제와 직결된다. 200MW 규모라면 소규모 원전 하나에 가까운 전력을 소모한다. 과연 포항이 안정적인 공급망을 갖출 수 있을지, 지역 환경에 미칠 파장은 없을지, 앞으로 치열한 검증과 논의가 불가피하다. 이재명 대통령은 2일 샘 올트먼 오픈AI 대표와의 회동에서 “한국이 세계 모범적 AI 테스트베드가 될 것”이라며 포항을 글로벌 혁신 전진기지로 강조했다. 올트먼 CEO 역시 “삼성과의 협력은 특별하다”며 포항을 출발점으로 삼겠다고 화답했다. 그러나 선언은 어디까지나 시작일 뿐이다. 실제로 지역의 산업, 대학, 행정, 시민사회가 이 기회를 어떻게 흡수하고 소화하느냐가 진짜 성패를 가를 것이다. 포항은 이미 철강에서 배터리로, 다시 AI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기회와 위기가 함께 찾아오는 지금, ‘AI 허브 포항’이라는 새로운 간판이 빛을 발할지, 아니면 또 하나의 미완의 과제로 남을지는 앞으로의 준비에 달려 있다. /lch8601@kbmaeil.com

2025-10-03

‘저수지의 개들’

자신의 발바닥과 뼈다귀를 핥다 지쳐 개들이 저수지로 온다 세상의 가뭄이라, 바닥이다 보라, 잡풀들과 억새들은 그런대로 잘 산다 그들의 생애가 푸르고 찬란하다 개들은 없는 밑천마저 탕진한 주제에 국물도 없다고 빈정거리며 드러눕는다 그 몰골로 먼 산을 본다 부끄러워 짖는다 모자라고 덜떨어진 존재들이라고 상대를 탓하며 파리채로도 사용 못 할 혓바닥으로 변명의 웅변을 가열차게 구사한다 치부를 가리는 데는 그만한 것이 없다고, 국밥 먹여 동원한 졸개들만 듣고 있다 밤이 되면 좀비가 되어 온갖 양념을 상상하며 빠는 손가락 내용 없는 아름다움에 도취된 결핍의, 그 편향의 마약을 끊어야 할 시간 제발 반역이랄 것도 없는 껍데기 혁명에 몰두할 일이 아니라 쪼그려 앉아 새싹이 돋는 법을 관찰하는 것이 차라리 도약의 자세이다. ….. ‘발푸르기스의 밤’은 마녀와 악령들이 산에 모여 춤을 추고 악마와 교류한다는 전설에서 유래한 축제, ‘저수지의 개들’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제목이다. 왜 이런 생각을 했는지 나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마냥 모를까? 다만 역량을 비축하여 훗날을 도모하면 된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냥 짖을 일이 아니다. 시대정신은 대의(代議)라는 말로 치환된다. 이기는 것이 장땡이다. 승리자에게 모든 것을, 그것이 현실이다. 개는 사람을 물지만 사람이 개를 물 수는 없다. 누가 개이고 사람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연금술사와 변검(變臉)의 나날이다. 사랑할 날들이 많지 않다.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5-10-01

배웅하는 길

몇 년 만에 온 지인의 문자다. 잘 지낸다는 것도 잘 지내느냐는 말도 아닌 단체에게 보낸 부고장이다. 나는 시아버지상이라는 글자를 다시 보았다. 그녀의 남편 얼굴도 모르는데 그 남편의 아버지라니. 나는 휴대폰을 닫으며 아버지의 그날을 떠올렸다. 코로나로 사람들이 문밖출입을 꺼려하던 때였다. 설 명절을 앞두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를 배웅할 친구는 남아있지 않았다. 설령 있었다 해도 소식을 전하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였다. 부고장을 보낼 친척들과 형제들의 지인들은 많았지만, 그들이 코로나를 핑계 삼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의 소식을 궁금해 할 몇몇 친척들에게만 연락했다. 그날, 아이들에게는 설 명절을 앞당긴 것 같았다. 외사촌 이종사촌들이 한 자리에 다 모였다. 오랜만에 만난 그들은 둘러앉아 할아버지 할머니와 지냈던 날들을 되새김질 했다. 맞아 맞아 그때 그랬어. 사진으로 남은 어린 시절 이야기가 웃음소리와 함께 퍼졌다. 나는 슬퍼하는 사람도 없고, 조문객도 없는 장례식장이 낯설었다. 오든 안 오든, 부고장이라도 다 보낼걸. 그동안 이리저리 낸 부조금이 얼만데. 이십 여 년 전 여름, 엄마의 장례식장은 앉을 자리가 없었다. 복도에는 꽃들이 줄을 서고, 조문객은 남편의 업무와 연관된 거래처부터 친구들까지 연줄에 연이 걸리듯 했다. 우리는 손님 맞이 하느라 엄마의 영정사진 한번 제대로 바라볼 틈이 없었다. 그들이 돌아가고 나면 여기저기 빈자리를 찾아 쓰러지곤 했다. 봉분 앞에 서고서야 비로소 엄마를 보냈다는 현실이 다가왔다. 그땐 그랬는데. 시간이 지나자 연락하지 않아도 올 사람은 먼 길을 마다하고 찾아왔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막상 얼굴을 보니 반갑고 고마웠다. 아버지를 배웅하는 일이 그들에게는 코로나보다 더 먼저인 것처럼 보였다. 형제들은 찾아온 조문객들과 마주 앉아 이야기하고, 나는 그들을 온 마음으로 눈에 담았다. 저녁 늦은 시간, 뒷정리를 하는데 젊은 여자가 들어왔다. 낯선 얼굴이었다. 마지막까지 남은 친구와 밀린 이야기를 하던 남동생이 그녀를 보자 당황해 했다. 어떻게 알고 왔느냐고 묻더니 다짜고짜 하는 말이 “너, 우리 아버지 한 번도 뵌 적 없잖아”라고 한다. 얼굴도 모르면서 왜 왔느냐고 다그치듯 해서, 나는 얼른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느냐고 하자, 동생은 거기서 여기가 어디라고 했다. 듣는 내가 무안해 얼른 올케를 불렀다. 나는 쓰레기를 정리하며 그들이 앉아 있는 모습을 흘낏 보았다. 내 뒤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커졌다. 깜짝 놀라 상갓집이라는 사실을 잊었냐고 주의를 주었다. 맥주잔을 소리 없이 부딪친 아이들은 자주 만나려면 모임을 만들어야 한다는 둥, 아직은 어린 막냇동생의 휴대폰에 게임머니를 보내주는 선심을 쓰고 있었다. 남동생 내외가 그녀를 배웅하고 들어왔다. 나는 동생의 등을 치며,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느냐고 야단쳤다. 너는 얼굴 아는 사람만 문상하느냐고 물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렇다는 말에 어이가 없었다. 조문이라는 게 돌아가시는 분을 배웅하는 것도 있지만, 상주를 위문하는 것도 있지 않느냐고 되받아쳤다. 동생이 되물었다. 오랜 노환으로 돌아가셨는데 위문 받아야 할 만큼 우리가 슬플까? 갑작스런 사고도 아닌, 그렇다고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나이도 아니지 않느냐고 했다. 잘 아는 사람은 부고장이 안 와도 기꺼이 찾아가 마지막 길 잘 가시라고 인사한다는 말에 할 말을 잊었다. 옆에 섰던 올케가 변명하듯이 거들었다. 제자인 그녀가 이 늦은 시간에 진주에서 경주까지 혼자 운전해 와서 놀랐을 거라고 했다. 동생은 자리를 피해 슬며시 조카들 얘기 속에 끼어들었다. 마른세수를 한 나는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한참 바라보았다. 동생의 말처럼 나는 위문을 받아야 할 만큼 슬플까. 고개가 저어졌다. 언젠가부터 이제 편안하게 가시길 기도하지 않았던가. 영정사진 속의 아버지는 손자 손녀들의 옛 이야기에 같이 웃지 않았을까. 곡은 제 설움에 한다는데, 형제 누구도 아버지 앞에서 곡을 하는 이가 없었다. 그것이 우리가 아버지를 편히 해드릴 수 있는 가장 큰 배웅일지도 모른다. /윤명희 수필가

2025-10-01

해외에서 보름달 보는 한가위

21세기 들어서며 해마다 새로 세워지는 기록이 있다. 추석에 해외로 떠나는 한국인 관광객 숫자가 그 가운데 하나다. 올해도 예상대로 지난해 기록이 깨졌다. 2025년 추석 연휴는 길다. 하루쯤 연차를 낸다고 가정하면 최장 10일을 쉴 수 있는 것.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번 추석 연휴에 인천공항을 이용할 사람들은 245만3000명으로 역대 최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하루 평균 22만3000명에 이른다. 그 외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나갈 사람들은 제외한 숫자다.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부모와 조부모가 살고 있는 고향으로 가려는 한국인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복잡한 완행열차 속에서 6~7시간을 서있거나, 거대한 주차장이 돼버린 도로에서 한나절을 보내며 고생하던 모습은 이제 지난 세기의 기억으로만 남을 듯하다. 추석과 설, 1년에 한두 번쯤은 아버지, 어머니, 형, 누나, 동생을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묻고 소박한 선물을 주고받으며, 조상께 올릴 차례 음식을 함께 만들던 풍경은 이제 노인들이나 그리워할 뿐이다. 사람보다 핸드폰과 소통하는데 익숙한 Z세대는 어른들이 주는 용돈은 좋지만 잔소리는 싫고, 신세대 며느리들은 시가(媤家)에서 겪는 스트레스로 인한 ‘명절증후군’을 어떻게든 피하고 싶어 한다. 그러니, 다들 멀리건 가깝게건 외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오르기를 원하는 추석. 변화하는 세태를 몇 사람의 힘으로 막는 건 불가능하다. 허니, 내년 추석에도 공항 이용객 기록이 깨질 건 불을 보듯 뻔하고. 해외에서 보름달을 보는 이들이 갈수록 늘어날 것이다. 저승에서 조상들이 울겠지만, 뭐 어쩌겠는가? 뾰족한 방법이 없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10-01

미국의 진짜 어려움은 어디에 있는가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관세와 투자 압박을 연일 가하고 있다. 3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요구하더니 이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나서 ‘선불’로 내놓으라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한국은 물론 전 세계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겉으로는 안보 동맹을 흔들고 방위비 분담을 무기로 흔드는듯 하지만, 실제로는 미국의 재정상황이 심각하다는 사실이 발언의 배경에 자리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짊어진 국가부채 규모는 이미 천문학적 수준에 이르렀고 해마다 갚아야 하는 이자만 1조달러를 넘어선다. 이자를 감당하기에도 버거운 미국 정부가 동맹국을 상대로 현금확보를 노린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미국이 직면한 어려움은 재정적 차원에만 머물지 않는다. 첫째, 미국은 한국에 주둔 중인 미군을 쉽게 철수할 수 없다. 겉으로는 철수 가능성을 흘리며 압박 수단으로 삼지만, 동북아의 전략적 거점을 포기하는 일은 말처럼 간단치 않다. 중국과 러시아를 동시에 견제해야 하는 미국의 입장에서 한반도의 미군 주둔은 협상카드가 아니라 안보 필수 조건이다. 둘째, 미국의 산업기반은 소위 ‘공업공동화’현상을 겪어왔다. 제조업의 해외 이전과 탈산업화 흐름 속에서 미국이 생산능력을 회복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조지아주에서 최근 벌어진 비자 사태는 그 단면을 보여준다. 전기차, 배터리, 조선, 반도체 등 미래산업의 전략적 주도권을 쥐려는 미국 입장에서, 기술력과 생산망을 확보한 한국기업과의 협력이 불가피하다. 협력의 언어가 아니라 압박의 언사를 구사한다면, 내부의 정치적, 재정적 곤경을 외부로 전가하려는 태도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대한민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거절’과 ‘수용’ 가운데 양자택일로 접근하기에는 상황이 복잡하다. 한국도 안보적으로 미국에 크게 의존해왔고, 수출시장과 금융질서 또한 미국 중심의 구조 속에 들어있다. 동시에 이번 사태는 한국이 스스로의 전략적 선택지를 넓혀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무조건적인 추종이 아니라, 필요할 때는 분명한 원칙을 세워야 하지 않을까. 트럼프의 ‘선불 요구’ 발언이 나온 지도 여러 날이 흘렀다. 미국 내부에서조차 뚜렷한 후속 조치나 해결방안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 미국의 압박이 전략적 구상보다는 즉흥적이며 단기적인 재정압박 필요에서 비롯된 것이었임을 방증한다. 미국의 진짜 어려움은 한국이 아니라 그들 자신에게 있다. 한국은 동맹의 가치를 인정하되 일방적 요구에는 단호히 선을 그어야 한다. 동시에 산업과 기술, 금융질서를 다변화하여 ‘미국 없이는 설 수 없다’는 구조적 취약함을 줄여가야 한다. 그래야만 미국의 압박이 반복되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대응할 수 있을 터이다. 트럼프식 협상술은 익숙한 패턴이다. 큰 소리를 치며 상대를 위협하면서 일부라도 얻어내는 방식이었다. 이번만큼은 한국이 조급할 이유가 없다. 미국은 한국이 필요하다. 한국은 미국에게 전략적 자산이자 파트너다. 우리가 스스로의 힘과 위치를 자각할 때, 비로소 선불 요구에 휘둘리지 않고 주권적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장규열 본사 고문

2025-10-01

경주 APEC 성공예감, 행사준비에 만전을

오는 31일부터 11월 1일까지 경주에서 열리는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에 세계의 이목이 쏠릴 것으로 보인다. 최대 외교 이벤트인 한미·한중·미중 정상회담이 2박 3일동안 경주에서 잇달아 열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경주 APEC은 새로운 국제질서를 창출하는 플랫폼 역할을 하게 된다. 현재로선 한미·한중·미중 정상회담이 경주에서 개최될 확률이 높다.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양자 회담은 한창 조율 중이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서울에 체류하지 않고 경주에서 머무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 주석은 지난 2009년 12월 부주석 때 경주 반월성과 불국사를 찾았으며, 당시 김관용 경북도지사·백상승 경주시장과 만찬을 같이 한 추억이 있다. 중국 측은 지난달 서울 신라호텔에 APEC 정상회의 기간 대관을 문의했지만, 지난주 관련 일정을 취소하겠다고 호텔 측에 연락했다고 한다. 시 주석은 2박 3일 동안 경주에 체류하며 이재명 대통령, 트럼프 미 대통령과 연쇄 정상회담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 주석은 정상 만찬에도 참석해 내년 APEC 의장직을 인수하고 차기 개최지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질 계획이다. 한편으론 중국 측이 신라호텔 예약을 취소한 지난달 27일, 최선희 북한 외무상이 갑자기 중국을 방문해 여러 추측이 나오고 있다. 시 주석의 방한 문제와 정상회담 등에 대한 상황 공유가 이뤄졌을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경주 APEC의 부대행사로 열리는 ‘CEO 서밋’에는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샘 올트먼 오픈AI CEO,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 등 빅테크 거물들도 대거 참석할 예정이어서 경주의 도시브랜드를 세계에 홍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된다. 세계 주요국 정상들과 빅테크 거물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실질적인 정치·경제적 성과들이 나오면 경주는 한순간에 국제 외교 무대의 ‘스타도시’로 부상할 수 있다. 정부와 경북도, 경주시는 ‘포스트 APEC’을 감안하면서 행사준비에 총력을 쏟아주길 바란다.

2025-10-01

새정부 균형발전 의지 실천으로 입증하라

한일 두 정상이 부산에서 만나 두 나라의 공동 관심사인 지역균형발전을 긴밀히 협력키로 뜻을 모은 가운데 같은 날(30일)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가 5극 3특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국가균형성장 전략을 의결했다. 5극 3특은 수도권과 동남권, 대경권, 중부권, 호남권 등 5개 초광역권과 제주, 강원, 전북 등 3개 특별자치도를 중심으로 경제, 생활권을 재편하겠다는 구상이다. 권역별로 구상하는 메가시티에는 지역별 60분 생활권, 공공기관 추가 이전 등이 실행과제로 포함돼 있다. 수도권을 제외한 4개 권역에는 지역특화산업을 인공지능(AI)과 연계해 AX(인공지능 대전환) 연구. 실증거점으로 조성하고, 3조원의 예산을 들여 내년 상반기에 구체적인 사업 규모를 밝힐 계획이다. 대구는 AI 핵심거점으로 키워 지역경제를 선도하고 대구경북 신공항을 관문공항으로 육성하겠다는 계획도 이날 공식화했다. 수도권 일극주의로 파생하는 지방소멸과 경제 양극화 등은 한국경제의 위험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각계의 지적이 여러 번 나왔지만 이에 대한 강력하고 실효적인 대책은 없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미국 연방제 수준의 지방분권을 실시한다는 대통령의 약속은 있었으나 모두 구호에 그쳤다. 공공기관 2차 이전도 문재인 정부나 윤석열 정부도 실행에 옮기지 못한 미완의 숙제다. 이제 이재명 정부의 몫으로 넘어 왔다. 또 전국 시도지사협의회 등이 제시한 지방재정의 독립성 강화나 지방정부의 국정 참여 요구도 매번 건의에 그쳤다. 지방균혈발전에 대한 지방민의 꿈은 여전히 요원하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방균형 발전을 “국가 생존을 위한 생존전략으로 삼고 지방에 대한 배려가 아닌 필수”라고 여러 번 강조했다. 균형발전에 대한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의 표현으로 들리는 대목이다. 특히 한일 정상이 장소를 부산으로 정한 배경이 두 나라가 가진 양극화와 지방균형발전에 대한 해법 모색이라고 하니 지방정부로서는 의미가 남다르다. 정부는 균형 발전을 말로만 하는 정책이 아니라 이제는 실천으로 의지를 입증해야 한다. 지방정부를 국정의 동반자로 삼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2025-10-01

바뀌어야 할 장례문화

오늘도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나이가 어중간해서 자식 결혼이랑 부모상이랑 맞물려 있어 부좃돈이 상상 이상이라 부담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정년퇴직하면 제일 먼저 모임을 줄이라는 선배 말이 실감 난다. 시간 난다고 여기저기 머리 디밀다 보면 나중에 큰코다친다. 서로 간에 안면 트고 이름 정도 알면서도 부조 안 하면 그것만큼 ‘뒷담화’ 대상이 되는 것도 없다. 모임을 안 하면 모를까 계속 얼굴 봐야 하는 사이라면 몇 푼이라도 성의 표시는 해야 인간관계가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번엔 친구 어머님이 돌아가셨기에 일정조차 포기하고 참석해야만 했다. 그 친구도 우리 집 길흉사에 다 참석을 해서 그렇게 한다는 말이 아니라 사람의 도리상 친구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부조만 달랑 보내는 것은 인간의 경우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코 ‘기브 앤 테이크’ 라는 요즘 추세에 따른 행동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을 뿐이다. 길흉사 치부책 보면서 상대가 얼마 했으면 10년이 지나도 같은 액수를 고집하는 이상한 부좃돈 문화에 치졸한 부조 행위에 대한 논란을 재현할 마음은 없다. 단지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싶고 과거보다는 지금 상태에서 모든 것을 생각해 보면 안 될까. 장례식장을 나서면서 또 씁쓰레한 감정을 지울 수 없다. 이 집 누나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끝까지 돌보았다. 남동생들은 외지에 있으면서 한 번씩 문병하러 오는 정도였다. 그렇지만 막상 장례식장 상주는 동생이었다. 누나는 딸이었고 딸은 주요 의사결정자가 될 수 없고 부차적이고 보조적인 역할만 주어지게 된다. 딸만 있는 나로선 사위보다는 딸이 상주가 되어주었으면 싶은데, 조금 있으면 바뀌려나 기대해 보지만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오늘도 친구 누나는 상주 쪽에 서 있지 못하고 며느리와 함께 여자 상주 쪽에 그냥 들러리로 서 있다. 여자는 상주가 되지 못한다는 장례 의식 때문에 아들 그리고 맏사위가 상주를 하게 되는 게 우리나라 전통 장례 풍습이다. 여자는 완전 찬밥 신세다. 세상이 다 변하고 있음에도 위계적이고 가부장적인 우리나라 장례문화는 이상하게도 변할 기미가 없다. 그래서 친구에게 영정사진만이라도 누나가 들게 하는 건 어떻겠냐고 조심스레 말을 건넨다. 누나가 영정사진을 들게 될지는 모르겠다. 그 집안에도 꼰대 어른이 존재하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주로 말도 안 되는 음양이론을 갖다 붙여 여자가 나대는 것을 아주 금기하는 사상이 머리에 깊이 박힌 분 말이다. 여자는 음식이나 준비하고 조문객 접대하는 데 힘써야 한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얼굴 하나 안 붉히고 주접을 떠는 노인네 말이다. 마치 자신의 말이 무조건 옳다는 양 유식한 척하면 나이가 깡패라 괜한 말 듣기 싫고 분란을 원치 않으니 그대로 따르고 만다. 요즘은 상조 회사에서 나와 모든 것을 도와주고 진행한다. 상조 회사에서 까라면 까야 한다. 하지만 상조 회사조차 집안 어른 한 분이 나서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손사래 치면 일단 모든 행사를 그분의 말에 따르라고 교육받는단다. 그래서 집안에 고집 센 늙은이 한 분 있으면 아주 피곤해진다. 막강한 상조 회사조차 두 손 두 발 다 든단다. /노병철 수필가

2025-10-01

득의작(得意作)

몇 달 동안 이런저런 일로 글씨를 쓰지 못했다. 방학 동안 손주들 돌봄교사 노릇하느라, 한국어교사 자격증 막바지여서 과제 제출이며, 기말시험 등으로 밤샘, 문학공간 첫 책 출간으로 또 몇 날 며칠 애썼더니 덜컥 병이 생겼다. 글씨 수업을 빠지기엔 더할 나위 없는 핑곗거리들이었다. 비록 초보이지만 글씨를 쓴다는 건 대단한 집중을 요하는 거였다. 집에서도 한적한 방에 책상을 두고, 방해받지 않는 시간에 자리해야 했다. 그런 나의 얘기를 들으시더니 선생님은 “그러니 서도(書道)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아직 연습단계니 그럴 필요 없다. 밥솥에 밥 안쳐놓고 한 자 쓰고, 국 끓이며 두 자 쓰고, 빨래 돌리며 서너 자 쓰면 된다”고 하셨지만 그 역시 수련이 필요한지 잘 안된다. 그러니 집에서 글씨를 쓰려면 온전히 밤중을 기대야 하고, 그 시간에 다른 일 해야 하니 도통 종이 펼쳐 먹에 붓을 적셔 글씨 쓸 엄두도 짬이 나지 않는다. 이래저래 글씨를 못 쓰고, 아픈 핑계까지 덜컥 생기니 결석한 지 두어 달을 훌쩍 넘겼다. 9월 들자 심기일전, 다시 글씨 쓰자. 이전까진 채본을 써 주셨다. 때론 내가 쓰기 편한 시조를 선하시기도 하고, 또는 남편의 시 일부를 택해 써 주시기도 했다. 이번엔 직접 채본용 글을 골라보라 하셨다. 서실 서가에 가지런한 책들 위에 누워있는 내 수필집 ‘고비에 말을 걸다’가 눈에 띄었다. 내가 쓴 글에서 고르면 애착이 생겨 열심히 연습할까? 거의 10년 전에 낸 책이었고, 그보다 훨씬 전부터 쓴 글이 대부분이어서 읽으니 새삼스럽다. 그러면서 40자 내외의 채본용 글을 골라 표시했다. 책 한 권을 훑다시피 읽고 표시해 둔 곳을 선생님께 내밀었더니, “아이고 자기 글을 고르랬더니 고른 것은 거의 남의 글인데요···.” 빨갛게 표시된 글은 거의 인용한 남의 시구였다. 김춘수 선생님의 ‘수련별곡’, 혹은 황인숙의 ‘바람 부는 날이면’에 동그라미를 쳤다. 실은 나도 놀랐다. 내가 쓴 글에서는 고를 만한 게 없다는 것에. 그러고 보니 그랬다. 난 도통 내 글이 재미없었고 마음에 들지 않았다. 논문이 그랬다. 박사학위 논문도 부끄러워 최소한으로 출간, 몇 년을 창고에 넣어 묵혔다. 10여 년 지나 수치심이 가신 후에야 꺼내 읽고 수정해서 책으로 엮었다. 수필집도 그랬다. 매 주 써서 신문에 게재하고 그걸 모아 책으로 내도 주위에 돌리기엔 부끄러워 꺼렸다. 앞서의 수필집이 세종나눔도서에, 책도 우수학술도서에 선정되자 겨우 쭈뼛거리며 돌릴 정도였다. 결론적으로 나는 내 글과 논문에 흡족한 적이 없었고, 인정하지도 않았다. 내 글에서 좋은 글귀 하나 뽑지 못한 것이 증명한다. 득의작(得意作)이라는 말이 있다. 작가가 자신의 뜻이나 의도를 만족스럽게 표현한 작품으로 예술가 생애에서 가장 자신 있게 내놓는 대표작이나 역작을 가리킨다. 화가든 소설가든 자신이 뜻대로 이루어져 만족해하거나 뽐낼 정도로 스스로 만족하거나 자부심을 느끼는 작품이다. 득의작은 무슨, 자부심을 느끼지는 못할지라도 최소한 부끄럽지 않은 경지가 되어도 좋겠다 싶다.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2025-10-01

도쿄 한복판에서 맞이한 8.15

8.15 광복절은 뜻 깊은 날입니다. 특히 광복 80주년과 한일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이하는 2025년은 더욱 특별할 수밖에 없는데요. 그런 2025년의 광복절을 저는 도쿄 한복판에서 맞이했습니다. 8월 15일만 되면 늘 동아시아를 뜨겁게 달구는 야스쿠니 신사에 가보기로 했는데요. 야스쿠니 신사는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친 자들을 합사(合祀)해 기리는 곳입니다. 매년 8월 15일이면, 야스쿠니 신사에서는 전몰자들의 영령을 추모하는 의식이 진행되고, 여러 단체들의 집회나 행사가 펼쳐지는데요. 야스쿠니 신사는 A급 전범 합사 문제, 일본 총리 및 고위 정치인들의 참배 문제, 전쟁 박물관 ‘유슈칸’의 역사 인식 문제, 2만 명이 넘는 조선인 희생자들의 합사 문제 등으로 동아시아 역사 갈등의 상징과도 같은 공간입니다. 게이오선을 타고 시부야역에 간 저는 수많은 인파로 유명한 스크램블 횡단보도 옆에 자리한 신문 가판대에서 일본의 5대 일간지를 모두 샀습니다. 종전 80주년과 한일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이하는 일본의 여론을 알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요미우리신문’은 ‘80년 기억 계승의 무게’라는 제목으로, 8월 15일 일본에서 열리는 여러 행사를 건조한 목소리로 전달하고 있었습니다. ‘아사히 신문’은 ‘80년 마음에 새기는 부전(不戰, 전쟁을 하지 않음)’이라는 제목으로 8월 15일의 행사를 알리면서도, 8월 15일을 “사망자를 추모하고 부전(不戰)에 대한 맹세를 새롭게 하는 날”이라고 규정했습니다. ‘마이니치 신문’은 ‘미래에 전하는 종전 80년’이라는 제목 아래 자국 이기주의가 심해지는 세계정세와 기억의 계승이 어려워지고 있는 일본의 현실을 우려하면서도, 전쟁의 기억을 미래에 계속 전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는 만주국 신경에서 패전을 맞이한 일본인의 비극을 그린 기야마 케이헤이(木山捷平)의 소설 ’대륙의 오솔길(大陸の細道)‘만을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산케이신문‘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는데요 논설위원장 사카키바라 사토시(榊原智)가 쓴 사설은 한국인인 제가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들로 가득했습니다. ‘일본단죄로부터 결별하고 싶다. 야스쿠니신사 참배로 위령(慰靈)과 표창(表彰)을’이라는 중간제목이 달린 이 사설에는 “전례 없는 대전을 이어간, 전사자를 위로하고 표창하고 싶다. 그것이 후손으로서의 임무”라는 말도 있었고, 아베 신조 이후 중단된 총리나 각료의 야스쿠니 참배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구단시타역 1번 출구로 나섰을 때는 10시 30분이었는데요. 수많은 사람들로 길을 걷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나중에 숙소에 돌아와 거기서 받은 유이물을 살펴보니 종교단체 홍보물, 중국내 위구르족의 참상을 알리는 유인물, 법륜공(法輪功) 선전물, 중국 공산당 비판 유인물, 일본 국기와 국가의 유래와 의미를 알리는 유인물, 현행 헌법의 무효화와 ‘대일본제국 헌법의 복원·개정’을 주장하는 유인물 등이었습니다. 인파 속을 헤치며 야스쿠니 신사로 들어갔습니다. 간혹 헌법개정을 반대하는 푯말이나 가슴에 ‘No Hate, No War’라고 쓰인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도 보였지만, 군복을 입거나 욱일승천기를 든 사람들이 훨씬 많이 보였습니다. 야스쿠니 신사는 크게 제1 도리이, 동상, 제 2도리이, 신문, 배전, 본전, 그리고 산문 오른쪽의 유슈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검은색 제1 도리이는 높이가 약 46m로 신사의 첫인상을 위압적으로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높이 3.3m의 동상은 일본 최초의 서양식 동상으로서, 야스쿠니 신사의 전신이었던 초혼사를 처음 발의한 인물이자 ‘일본 육군의 아버지’라 불리는 오무라 마수지로를 조각한 것입니다. 1934년 대만에서 가져온 회나무로 만든 산문과 이어지는 배전을 지나자, 약 246만 명이 합사된 본전이 나타났습니다. 복잡한 마음을 안고 길 건너편 쇼와관으로 향했습니다. 쇼와관은 일본의 근현대사를 조명하는 역사박물관으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인들의 생활에 초점을 맞춘 전시로 유명합니다. 이 날 쇼와관에서는 ‘사회를 비추다 움직이다–포스터에 나타난 국책선전의 모습’ 특별기획전이 열리고 있었는데요, 이 기획전의 전시물은 2차 대전 당시의 포스터로 전쟁을 독려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쇼와관을 나와 도쿄국립근대미술관에 갔습니다. 이곳에서는 ‘쇼와 100년’과 ‘종전 80주년’을 맞이하여, ‘기록을 열다 기억을 쌓다’ 특별 전시가 열렸습니다. 이번 전시는 193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의 일본 근대미술을 통해 전쟁 기록과 기억의 관계를 되짚어 보는 기획이었습니다. 전쟁 기록화를 포함한 미술관 소장품과 외부 기관에서 대여한 작품 등 총 280점의 회화, 포스터, 잡지, 영상 등을 전시했는데요. 미술이 시대를 기록하는 도구로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그리고 그 기록이 어떻게 후대의 기억으로 재구성되는지를 탐구하고 있었습니다. 어둠이 내린 길을 걸어 숙소로 돌아가는 제 머리는 80년 전 끝난 전쟁의 기억으로 가득했는데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전쟁이란 결코 과거 완료형이 아니라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계속 되는 현재 진행형이었습니다. 어쩌면 인간 세상의 디폴트(기본값)는 평화가 아니라 전쟁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는데요. 인류가 ‘나(우리)’만을 존귀하고 위대하며 소중하다고 여기는 한, 전장에서의 허무한 죽음마저도 미화하여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한, 전쟁은 결코 멈추지도 사라지지도 않으리라는 슬픈 예감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하루였습니다. /이경재(숭실대 교수)

2025-09-30

물레방아

호수공원을 거닐다 보면 잔잔한 물 위에 유유히 떠 있는 연꽃들 사이로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물레방아가 눈에 들어온다. 철썩이며 물을 퍼 올리는 소리도 없고, 강가처럼 세찬 물살도 없지만 호수공원의 물레방아는 고요한 물결 속에서 천천히, 그러나 쉼 없이 돌아가고 있다. 나들이 나온 사람들은 그저 하나의 풍경으로 지나치지만 그 안에는 묵묵히, 자기 일을 감당해내는 단단한 내공이 깃들어 있다. 물레방아는 한낱 장식물처럼 보일지 몰라도 여전히 그 본래의 쓰임을 잊지 않는다. 물이 주는 힘을 받아 톱니바퀴가 맞물리며 돌아가는 순간, 나는 시간의 무게를 느낀다. 곡식을 빻아내던 지난날의 소임은 사라졌어도 그 반복의 움직임은 여전히 우리 삶과 겹쳐진다. 나의 하루 또한 다르지 않다. 같은 일, 같은 동작, 같은 장소, 같은 일과가 이어지지만 그 속에서 삶이 빚어지고 세월이 완성된다. 물레방아의 바퀴가 돌고 도는 동안 계절도 바뀌고 사람들의 얼굴도 변해간다. 한 번 돌 때마다 똑같아 보이지만 물은 언제나 새 물이고 풍경은 조금씩 달라져 있다. 나의 하루도 같은 자리를 지키는 듯해도 매일의 햇살과 바람이 다르고 그 안에서 우리는 조금씩 늙고 조금씩 익어간다. 반복은 단순한 되풀이가 아니라 하루하루를 채워내는 원의 결이다. 물레방아는 자신의 자리에서 이탈하지 않고 그 사실을 조용히 들려준다. 반복의 무늬가 모여 삶의 무게를 지탱한다는 사실을 물레방아는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물레방아는 호수의 물결을 거스르지 않는다. 다만 흘러오는 물을 받아내어 제 몸을 돌리고 그 힘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할 뿐이다. 불평하지 않고 억지로 앞서려 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것이 물레방아의 가장 큰 지혜일지 모른다. 우리 삶 또한 그러하다. 바꿀 수 없는 환경을 원망하기보다 그 안에서 자기 길을 걸어갈 때 삶은 비로소 단단해진다. 가을이 성큼 다가온 길목에서 물레방아를 바라보고 있자니 세상의 성급한 발걸음과는 달리 한결같은 그 움직임이 내 마음을 붙들어 놓는다. 성취와 잘하고 싶은 욕심만을 좇느라 쉼 없이 달리던 나의 질주가 잠시 멈춰 서고, 호수 위를 스치는 바람처럼 고요한 평온이 찾아온다. 삶은 반드시 직선으로 뻗어야만 빛나는 것이 아니다. 돌고 도는 원 안에서 고요히 제 몫을 감당하는 것 또한 존귀한 삶의 얼굴임을 가르쳐준다. 호수공원의 물레방아는 혼자가 아니다. 햇빛이 닿아야 반짝이고 물이 흘러야 움직이며 아이들의 웃음 소리가 어울려야 하나의 풍경이 된다. 초록빛 연잎들이 바람에 일렁이며 물결을 만들고 그 사이사이 연꽃들이 고운 무늬를 더했다. 연못의 심장처럼 연밭과 어울려 반짝이며 톱니바퀴는 연밭과 어울려 하나의 풍경을 완성했다. 지나가는 바람과 새소리마저 그 풍경의 일부가 되었다. 결코 혼자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는 흔히 스스로 고립되었다고 느끼지만 사실은 수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가족과 친구, 스쳐 지나가는 이웃의 따뜻한 인사 하나까지도 우리의 하루를 지탱해준다. 물레방아가 연밭과 햇빛, 바람, 웃음소리에 기대어 서 있듯 우리의 존재도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간다. 그렇기에 자연도 삶도 풍경이 되고 의미가 되어 아름다움을 완성한다. 하루가 여백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나는 불평을 조금 줄여 보리라 다독여 본다. 세상은 늘 돌고 도는 물살 같아도 그 물살을 받아내는 물레방아처럼 묵묵히 나아가고 싶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구멍 난 삶의 일부가 채워지고 단단히 이어지기를 소망한다. 물레방아 앞에 서서 셔터를 누르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운동을 나오신 어르신들도 소풍을 나온 아이들도 주위를 돌며 포즈를 잡고 있다. 사람들의 발걸음과 이야기 소리가 어우러져 풍경은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우리도 각자의 자리에서 제 몫을 다할 때 사람과 자연은 저절로 모여들고 의미도, 아름다움도 찾아온다는 둥글둥글한 삶의 법칙을 문득 깨닫는다. /김경아 작가

2025-09-30

경주APEC D-30···세계가 지켜본다

10월 31일 개막하는 경주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경북도와 경주시는 ‘역대 가장 완벽한 APEC’을 목표로 ‘1000개의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손님맞이 준비에 전 행정력을 집중시키고 있다. APEC에는 한국과 미국·일본·중국·러시아 등 태평양 연안의 21개국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 경주 APEC에서는 각 정상 간 회담이 수시로 열리겠지만, 특히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간의 회담에 관심이 쏠린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에도 “시 주석과 한국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에서 만나기로 합의했다”는 글을 SNS에 올렸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간의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도 다시 거론된다. 지난 주말 정부 고위 관계자가 “그럴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고 언급한 데 이어, 최근 최선희 북한 외무상이 중국을 급히 방문하면서 북미 정상이 APEC을 계기로 깜짝 재회할 수 있다는 전망이 유력하게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19년 6월 일본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마치고 전격적으로 한국을 방문, 판문점에서 김 위원장을 만난 전례가 있다. 경주 APEC의 부대행사로 열리는 ‘CEO 서밋’에 누가 참석할지도 주목된다. 재계에 따르면 최근까지 1000여 명의 글로벌 ‘빅샷’(거물)들이 참석 결정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적 인공지능(AI) 붐을 이끄는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샘 올트먼 오픈AI CEO, 팀 쿡 애플 CEO,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 제인 프레이저 씨티그룹 CEO의 참석이 유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차기 APEC 의장국인 중국의 에디 우 알리바바 CEO, 추 쇼우즈 틱톡 CEO도 방한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세계 주요국 정상과 경제계 거물들이 한자리에 모임으로써 경주 APEC은 국제사회가 주목하는 행사가 됐다. 그런 만큼 경주로서는 ‘신라천년의 고도(古都)’를 전 세계에 홍보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셈이다. 경주 홍보의 중심지가 될 국립경주박물관 내 목조 건물도 곧 완공된다. 이 목조건물은 당초 정상들의 만찬장으로 낙점됐다가 조리 시설과 화장실이 없어 ‘CEO와 정상 간 투자 협의 장소’로 변경됐다. 이곳에서는 ‘에밀레종’으로 불리는 성덕대왕신종을 비롯해 신라금관 등 신라 천년의 유물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정상급 인사들이 경주박물관을 관람할 경우, 직접 해설을 맡기로 한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지난주 기자들과 만나 “개인적으로 경주 APEC 정상회의 참석자들이 경주박물관에서 금관을 보고 성덕대왕 종소리도 듣고 불국사도 보고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재로선 APEC 정상의 배우자들은 불국사 등 경주 문화재 관람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지만, 정상들의 관광지 관람 일정은 확정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주박물관 중정에 들어설 목조건물이 APEC 기간 중 핵심적인 외교 행사 무대로 활용돼 경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신비로운 도시로 널리 알려지길 기대한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2025-09-30

경북도, 산불 피해마을 ‘재창조’ 시작된다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지난달 29일 도청 브리핑룸에서 산불 피해지역 ‘혁신적 재창조’ 구상안을 밝혔다. 국회 특별법 제정으로 제도적 기반이 갖추어진 만큼 이재민들이 하루빨리 미래에 대한 희망을 찾을 수 있도록 모든 행정역량을 모으겠다는 내용이다. 경북도에 따르면, 지난 3월 의성·안동·영덕·영양·청송 5개 시군의 산불피해 구제를 위해 1조8310억원의 복구지원비가 확보됐다. 역대 최대 규모다. 추석명절을 앞둔 지금까지 4213억원이 생계비, 주거지원비로 지급됐고, 2430가구에는 2525동의 임시주택을 제공했다. 국민 기부금도 744억원이 모아져 유가족 위로금과 구호소 현장지원, 임시주택 건립에 사용됐다. 현재 산불피해 복구작업은 지난 5월 출범한 산불피해재창조본부를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다. 마을주택재창조사업단, 농업과수개선사업단, 산림재난혁신단으로 구성된 본부(본부장 행정부지사)는 마을·농업·산림 부문의 산불피해 복구와 재창조 사업을 전담하고 있다. 경북도가 발표한 복구사업 중 눈길이 가는 부분은 화재로 잿더미가 된 24개 마을의 혁신적 재창조사업이다. 현재 용역이 진행 중이며, 민간투자 유치를 통해 마을 전체를 관광지화 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예를 들어 영덕 노물리·석리와 청송 달기약수터의 경우 민간투자를 유치해 마을 전체를 관광지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공동영농모델, 산림경영특구, 스마트 과원 혁신밸리 등의 사업대상지도 조만간 확정해서 영농기반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킨다는 계획이다. 안동시에는 산림휴양복합단지, 의성군에는 대단위 스마트과원, 청송군에는 산림미래혁신센터, 영양군에는 산채스마트팜 혁신단지, 영덕군에는 송이스마트밸리가 주요사업으로 검토되고 있다. 산불피해지역을 ‘돈 되는 산’으로 변화시키려는 이철우 도지사의 산림정책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이재민을 비롯한 경북도민들의 기대도 크다. 경북도와 일선 시·군 공직자들은 산불피해가 재창조사업을 통해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모든 역량을 쏟아주길 바란다.

2025-09-30

중국 관광객 무비자 입국, 서울 편중 벗어나야

지난달 29일부터 중국인 단체관광객에 대한 무비자 입국이 허용되면서 중국인 관광객의 입국 러시가 이뤄지고 있다. 허용 첫날인 인천항에는 대형 크루즈선을 탄 중국인 관광객 수천 명이 한국 땅을 밟았다. 정부는 중국 관광객에 대한 무비자 입국 시행으로 100만명 이상 추가 방문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면세점, 편의점, 백화점 등 유통업계는 매출 증가를 기대하고 총력 준비에 나서고 있다. 관광업계도 중국인 관광객의 무비자 입국 허용을 계기로 관광산업의 활성화를 기대하는 분위기다. 대구시와 경북도 등 전국 지자체들도 중국인 관광객 무비자 입국을 기회로 관광객 유치에 총력 경주하는 모습이다. 관광객 유치를 통해 어려운 지역경제에 활력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대구시는 자매도시인 청두 등 중국 현지 여행업계 관계자를 대상으로 대구시 축제, 동성로 관광특구 소개 등 홍보 설명회를 가졌다. 경북도는 중국 현지 방송을 활용해 경주 세계문화유산과 안동 하회마을 등 주요 관광지를 소개하고, 미식과 체험관광을 담은 프로그램도 제작해 내보내고 있다. 특히 경주 APEC 개최를 계기로 경주를 글로벌 관광지화 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중국인 단체 관광객에 대한 무비자 입국이 허용된 첫날 대구공항을 통해 들어온 중국인 관광객도 평소보다 늘어났다고 한다. 아직은 지켜봐야겠지만 무비자 허용에 따른 중국인 관광객 유치가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중국인 관광객은 방한 외국인 관광객 수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중국인 관광객이 찾는 지역은 서울과 제주도 등으로 매우 제한적이다. 이번 무비자 허용으로 수도권이 아닌 지방으로 중국의 단체관광객이 얼마나 찾아올지는 미지수다. 정부의 무비자 허용은 지역 균형발전과 지역경제 활성화 등에 목적을 두고 있다. 그러나 서울 등 일부 지역만 혜택이 돌아간다면 무비자 정책의 효과는 반감될 수 밖에 없다. 정부는 관광 혁신 전략의 하나로 서울 중심이 아닌 전국이 함께 성장하는 글로벌 관광대국을 목표로 삼는다고 했다. 이에 걸맞게 관광객 지방분산을 위한 정책이 서둘러 나와야 할 것이다.

2025-09-30

명절의 꽃 秋夕

추석은 가을의 저녁이라는 말로 가을이 저문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농경사회인 우리나라에서 곡식 수확이 완료되는 시점을 의미한다. 한해 농사를 수확하기 직전으로 물심양면에서 가장 풍족을 느끼는 시기다. 음력 1월 1일 설날과 음력 5월 5일 단오날 그리고 추석을 우리나라 3대 명절로 손꼽는다. 조선 후기 학자 김매순이 한양의 세시풍속을 기록한 ‘열양세시기’를 보면 추석에 대한 당시 관념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 있다. “민간에서는 이 날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아무리 가난한 벽촌의 집안에서도 모두 쌀로 술을 빚고 닭을 잡아 찬도 만들고 또 온갖 과일을 풍성하게 차려 놓는다”고 했다. 그래서 말하기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 같기만 바란다”고 써 있다. 어느 명절이든 기쁘지 않을 날이 있겠냐 만은 추석은 명절 중에 꽃이라 할만하다. 이름도 추석, 한가위, 중추절, 중추가절 등으로 다양하게 불린다. 특히 갓 생산한 재료들로 음식을 만드니 그 맛이 특별하다. 햅쌀로 빚은 밥과 송편은 유난히 윤기가 흐르고 맛이 좋다. 민속놀이를 하더라도 선선한 날씨 덕에 마음도 한층 여유롭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우리 속담은 추석처럼 풍요롭고 즐거운 상태가 일년 내내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표현이다. 추석은 그야말로 풍요와 행복의 상징이다. 명절을 지키는 전통 풍속이 예전만 못하나 그래도 명절에는 부모 형제가 있는 고향으로 온 가족이 모여 명절의 기쁨을 나눈다. 경제가 좋거나 나쁘거나 상관없이 가족과의 만남만으로 행복함을 느끼는 것이 바로 명절의 의미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가정마다 웃음 꽃이 함빡 피었으면 좋겠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9-30

사고 역량과 삶

전문가들에 의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평생 잠재력을 겨우 10퍼센트만 쓴다고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평범한 사람도 발전의 여지가 많다는 뜻이다. 수십만 평의 가능성의 땅이 있으면서도 500평 정도만 경작하는 셈인 것이다. 인생은 끝없는 물결 위를 항해하는 여정과 같다. 그 속에서 사고 역량은 우리의 나침반이다. 생각하는 힘이 깊을수록, 삶의 파도는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니라 배움이 된다. 사고 역량은 빠른 판단을 내리는 기술이 아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넓히고,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는 마음을 키우는 과정이다. 잠시 멈춰 본질을 묻고, 작은 사실에서 큰 의미를 찾아내는 순간, 우리의 삶은 깊이를 더한다. 사고 역량은 머리 좋은 것보다 지속적으로 단련하고 습관화할 때 생기는 힘이다. 사고 역량의 조건은 첫째, 비판적 사고이다.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의문을 던지고 검증하는 힘이다. 임진왜란 당시 열악한 자원 속에서도 승리를 이어간 것은 상황을 냉정히 분석하는 비판적 사고와 즉시 행동으로 전환하는 실천적 사고의 덕분이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습니다” 라는 그의 말은 절망 속에서도 사고 역량이 만들어낸 희망의 선언이었다. 둘째, 창의적 사고이다. 기존 틀을 넘어서 새로운 연결과 해법을 만들어내는 힘이다. 스티브 잡스는 기술자가 아니라 인문학과 기술을 연결하는 종합적 사고로 애플의 혁신을 만들었다. 픽사 애니메이션, 애플 디자인 철학은 모두 기술과 예술의 융합을 사고로 풀어낸 결과였다. 셋째, 성찰적 사고이다. 자신과 타인의 관점, 결정의 본질을 돌아보는 힘이다. 남아공에서 27년간의 감옥 생활 끝에 대통령이 된 만델라는 분노 대신 성찰과 화해의 사고를 선택했다. “원수와 손을 잡지않는다면 미래는 없다”는 그의 사고는 단순한 정치 전략이 아니라, 국가를 통합으로 이끈 삶의 철학이었다. 넷째, 종합적 사고이다. 단편적인 정보를 엮어 큰 그림을 보는 힘이다. 서로 다른 관점이나 지식을 융합해 균형 잡힌 결론을 내리는 능력을 말한다. 가령, 암 환자 치료에서 외과, 내과, 방사선과, 심리학자, 영양사가 협력해 환자 맞춤형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는 것이다. 다섯째, 실천적 사고이다. 생각을 행동으로 옮겨 구체적인 성과를 연결하는 힘이다. 도요타는 생산 기술을 넘어서 문제를 끝까지 묻는 5Why 사고 습관을 실천하며 품질 혁신을 이뤄냈다. 이는 경영학적으로도 사고 역량이 성과로 직결된 대표적인 사례이다. 삶의 아름다움은 생각의 본질을 돌아보는 깊이에서 비롯된다. 곱씹은 생각은 단순한 지식을 통찰로 바꾸고, 그 통찰은 하루하루의 선택을 빛나게 만든다. 생각하는 힘은 곧 살아가는 힘이고, 세상은 복잡하고 빠르게 변한다. 정보는 넘쳐나지만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연결함에 따라 삶의 방향은 달라진다. 분석적 사고로 현상을 나누어 보는 눈과 종합적 사고로 흩어진 조작을 하나로 묶는 힘이 함께할 때 우리는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 오늘 내가 내리는 생각과 행동의 한 걸음이 내일의 삶을 새롭게 열어준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2025-09-30

목 어깨 통증과 스마트폰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시간은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생활 습관이 되었다. 그러나 고개를 숙이고 작은 화면을 오랫동안 바라보는 자세는 목과 어깨에 큰 부담을 준다. 목뼈가 앞으로 밀려 일자목이 되고 어깨는 안쪽으로 말리면서 척추의 균형이 서서히 무너진다. 단순히 목이 뻐근하고 어깨가 뭉치는 걸로 시작해 시간이 지나면서 두통, 어지럼, 안구 피로, 손저림, 집중력 저하 등 다양한 증상이 뒤따른다. 몸이 한쪽으로 틀어지면 다른 부위가 이를 보상하려고 힘을 쓰게 되고 결국 등과 허리 골반까지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이처럼 틀어진 자세와 불균형에서 비롯된 불편함을 해소하는 데 효과적인 방법이 추나 치료다. 추나는 단순히 뼈를 교정한다는 개념보다 틀어져서 긴장된 근육과 관절을 풀어주고 막힌 흐름을 열어주는 치료에 가깝다. 목과 어깨가 제 위치에서 벗어나면 그 주변의 신경이 눌리고 혈액순환이 정체된다. 추나로 이런 압박을 완화시키고 순환을 회복시켜 주면 답답했던 목은 시원해지고 어깨는 한결 가벼워진다. 신경 눌림이 줄면서 손끝의 저림이 줄고 차갑던 손발에 따뜻함이 돌기도 한다. 단순한 통증 완화를 넘어 틀어짐 때문에 생긴 온갖 불편을 덜어내는 과정이 되는 것이다. 현대인에게 흔한 거북목이나 일자목은 대표적인 구조의 변화다. 목의 구조가 틀어지면 머리 무게를 견디기 위해 어깨 근육이 과도하게 긴장하고 이 긴장은 다시 등과 허리에 부담을 준다. 실제로 목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 중 상당수는 허리와 골반까지 함께 치료해야 증상이 개선된다. 한 부위의 불편함이 다른 부위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추나는 이러한 연관성을 함께 고려하여 목과 어깨뿐 아니라 몸 전체의 균형을 다루기 때문에 근본적인 불편함 해소가 가능하다. 추나 치료를 받은 뒤 환자들이 가장 먼저 이야기하는 것은 몸이 가벼워졌다는 느낌이다. 오랫동안 눌려 있던 긴장이 풀리면서 머리가 맑아지고 집중이 잘 되며 오래 앉아 있어도 예전처럼 아픈 것이 덜하다고 한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개운함이 다르고 밤에 누웠을 때 호흡이 편해지는 변화도 자주 경험한다. 추나는 통증 그 자체만이 아니라 틀어진 구조가 만들어낸 생활 속 불편함을 해소하는 데 큰 장점을 가진다. 물론 한번 틀어진 자세가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은 아니다. 스마트폰을 오래 쓰거나 구부정한 자세를 반복하면 같은 문제가 다시 생길 수 있다. 그러나 그때마다 추나로 쌓인 긴장을 풀어내고 뭉친 근육을 이완시키며 흐름을 회복한다면 불편함은 훨씬 덜해지고 몸은 점점 편안해진다. 치료가 생활 속에 이어질 때 통증으로 움츠렸던 몸이 다시 숨을 쉬게 된다. 목과 어깨 통증은 단순한 피로가 아니라 내 몸이 틀어져 힘들어한다는 신호다. 이 신호를 무시하면 작은 뻐근함이 만성 통증으로 이어지고 일상의 활력까지 빼앗아 가게 된다. 추나는 바로 그 신호에 귀 기울여 몸을 풀어주고 불편함을 덜어내어 삶의 질을 회복하게 만드는 든든한 방법이다. 스마트폰 생활이 필수가 된 현대인에게 추나는 단순한 치료를 넘어 몸이 다시 균형을 되찾고 편안함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이 되어준다.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2025-09-30

시민의 삶을 바꾸는 시정 질문이 되길 바라며

문경시의회가 제287회 임시회에서 37건의 시정 질문을 통해 지역의 크고 작은 현안을 짚어냈다. 축제와 관광, 농업과 환경, 주거와 교통, 복지와 청년정책까지 다양한 주제는 곧 시민들의 일상과 직결되는 문제들이다. 의원들의 질문 속에는 지역을 걱정하는 마음, 그리고 시민의 삶을 더 나아지게 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남기호 의원은 국가유공자 이야기 기록사업부터 청년 일자리, 영강변 생태 둘레길 조성까지 폭넓은 관심을 드러냈고, 김경환·황제용 의원은 지역 축제와 경제 활성화, 시니어 정책, 재생에너지 등 미래를 향한 의제를 다뤘다. 신성호·서정식·고상범 의원은 교통, 환경, 인구 정책 등 생활과 밀접한 문제를 꼼꼼히 짚었으며, 박춘남·김영숙 의원은 공공임대주택과 공공기관 유치, 개발사업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물론 시정 질문은 시작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이 질문들이 단순한 지적이나 요구에 머무르지 않고, 집행부의 정책으로 이어져 시민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로 구현되는 것이다. 축제 운영의 효율화가 지역경제의 활력을 불러오고, 공공임대주택 정책이 젊은 세대와 다자녀 가구의 부담을 덜어주며, 폐기물 처리나 도시가스 보급 문제가 실질적 대책으로 풀려나가는 모습이 바로 시민이 바라는 결과다. 우리는 이번 시정 질문을 통해 의원들이 지역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해결의 길을 모색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또한 집행부 역시 이러한 목소리를 정책으로 수용해 시민들과 함께 미래를 만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음을 기대한다. 문경의 발전은 혼자서 이룰 수 없다. 의회와 집행부, 그리고 시민이 함께 손을 맞잡을 때 가능하다. 이번 시정 질문이 그 협력의 출발점이 되기를 바라며, 문경이 더 따뜻하고 살기 좋은 도시로 성장하기를 응원한다. /고성환기자 hihero2025@kbmaeil.com

2025-09-30

노후자금 6억과 죽은 아내

인간의 행복과 만족감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혼자서 죽는 날까지 돈 걱정 없이 사는 삶, 경제적으론 다소 불안정하지만 평생을 함께 해온 아내와 오순도순 늙어가는 것. 앞서 언급된 두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당신은 어떤 걸 택할 것인지. 최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소개된 사연 하나가 적지 않은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기사에 의하면 일본에 거주하는 67세 남성 O씨는 가난 탓에 중학생 때부터 식당에서 일하며 돈을 벌어야 했다. 궁핍한 환경이 가져다준 절약하는 태도는 어른이 된 후에도 변하지 않았다. O씨는 일생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했고, 출퇴근 땐 그 흔한 대중교통도 이용하지 않고 걸어 다녔다. 아무리 덥거나 추워도 에어컨과 난방기를 사용하지 않은 건 불문가지. 아내는 O씨를 이해하며 내조했다. 자식들 데리고 나들이도 한 번 가지 않은 팍팍한 삶이었지만. 이런 생활이 수십 년 이어졌고 결국 65세가 된 O씨는 저축과 연금, 퇴직금을 더해 한국 돈으로 6억1000만원의 돈을 모았다. 이른바 제법 ‘넉넉한 노후자금’을 가지게 된 것. 그러나, 돈이 준 행복감은 잠시였다. O씨가 퇴직한 직후 아내가 쓰러졌고 결국 사망했다. O씨는 홀로 남았다. 6억1000만원의 돈이 비어버린 아내의 자리를 채워줄 수 있을까? 현재 O씨는 아내가 살았을 때 좋은 곳으로 여행도 다니고 맛있는 음식을 먹지 않은 걸 후회하고 있다고. 참으로 서글픈 만시지탄(晚時之歎)이 아닐 수 없다. 사람살이란 게 어슷비슷하니 한국에도 분명 O씨와 유사한 사례가 있을 터. 초가을 아침. 돈으론 살 수 없는 인간의 행복에 관해 생각해보게 된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9-30

동맹외교 vs 균형외교

한국외교에서 동맹파와 균형파의 논쟁이 재연되고 있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와 거래주의 동맹관, 미·중 전략경쟁, 북·러 군사동맹, 북·중·러 결속강화 등 외교환경의 변화가 그 주된 요인이다. 현 정부가 전 정부의 ‘가치 중심 동맹외교’를 비판하고 ‘국익 중심 실용외교’를 선언한 명분이기도 하다. 국민여론도 분열되어 있다. 여론조사(리얼미터, 2025년 1월 23일)에 의하면 국민의 55.0%가 균형외교를, 37.3%가 동맹외교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지역별로는 TK를 제외한 전 지역, 연령별로는 20대를 제외한 전 연령에서 균형외교 지지가 우세하며, 이념성향별로는 진보와 중도는 균형외교를, 그리고 보수는 동맹외교를 지지하고 있다. 물론 외교전문성이 없는 일반국민들의 생각이지만 분열된 국론은 외교정책 추진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처럼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외교노선이 바뀌고 국론이 분열된다면 일관성 있는 외교를 추진하기 어렵다. 따라서 우리는 동맹외교 또는 균형외교를 주장하거나 추진할 때는 특히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첫째, 최고의 국익은 국가안보이며, 현재의 한미관계와 한중관계는 그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이다. 한국은 미국과 군사동맹관계이고 중국과는 전략적 협력관계이다. 북한의 핵 위협이 고도화된 상황에서 한미동맹과 한중협력의 비중이 같을 수는 없고 또 같아서도 안 된다. 전쟁과 평화는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이다. 외교의 중심을 동맹에서 균형으로 옮기는 것은 매우 위험하며,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한중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설사 균형외교의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그 비중은 미국 대 중국이 5:5가 아니라 6:4 또는 7:3 정도가 될 수밖에 없다. 둘째, 동맹외교와 균형외교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외교환경에 따라 적절히 병행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중·러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한미동맹이 중요하고, 미국의 부당한 압력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균형외교도 필요하다. 한미동맹은 우리의 생존이 걸려 있고, 한중관계는 전략적·경제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어느 하나도 포기할 수 없다. 미·중 패권경쟁이 극심할 때는 동맹의 편에 설 수밖에 없겠지만, 경쟁이 완화되면 균형외교를 펼칠 수 있는 공간이 커진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한반도 주변 4강관계가 경쟁적이기보다는 협력적일 수 있도록 우리의 외교역량을 발휘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동맹외교 및 균형외교와 함께해야 할 현 정부의 ‘국익 중심 실용외교’는 분명한 철학과 전략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실용외교가 동맹의 이완을 초래하거나 기회주의로 비쳐서는 안 된다. 실용외교가 동맹파와 균형파의 갈등을 어정쩡하게 봉합하거나 강대국들의 압력에 원칙 없이 흔들리면 국익을 지킬 수 없다. 실용외교가 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현재의 한미동맹과 한중관계를 고려하여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그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

2025-09-30

추석 현수막 홍수, 정치인 스스로 자제하길

추석을 앞두고 올해도 유동 인구가 많은 전국 도로변과 교차로가 ‘정치 현수막’ 몸살을 앓고 있다. 현수막은 각 정당과 국회의원, 내년 지방선거 출마를 염두에 둔 예비후보들의 명의가 대부분이다. 특히 지방선거가 8개월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정당이나 예비후보들이 경쟁적으로 내걸어, 하루가 다르게 거리가 현수막으로 도배되고 있다. 포항시를 예로 들면, 북구 육거리와 죽도시장 네거리, 남구 효자네거리를 중심으로 시가지 구석구석이 현수막들로 빼곡히 들어차 교통신호등이 잘 안보일 정도다. 정치권에 따르면, 포항시장 예비후보들의 경우 10여 명이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최소 100장, 많게는 500장 이상을 거리에 내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여기에다 각 정당과 국회의원의 현수막까지 무차별적으로 내걸려 그야말로 공해 수준이다. 전국적으로 지방선거 예비후보들이 내건 현수막 내용은 주로 추석 인사 글귀가 많지만, 정당이나 국회의원 현수막은 대부분 정부나 상대 당을 비난하는 내용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당의 정책과 정치 현안을 알리라고 허용해 준 현수막인데 정작 내용이나 문구는 원색적인 비난과 조롱이 주를 이룬다. 정치 발전은커녕 오히려 정치 혐오만 부채질하고 있는 것이다. 현행 법규에는 정당과 국회의원이 가로변에 현수막을 게시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어 단속이 쉽지 않다. 정당 명칭, 기간 등만 표시하면 단속이 면책된다. 다만, 지방선거 예비후보자들은 일반 시민이나 소상공인처럼 현수막을 게시하려면 시청의 검인 절차를 밟고 제한된 장소에만 설치해야 한다. 현수막이 지정된 곳이 아닌 도로변 아무 데나 내걸리다 보니 안전사고도 속출하고 있다. 부산에서는 정치 현수막이 시야를 가려 자동차가 아이를 치어 숨지게 하는 사고도 있었다. 그리고 현수막 재질은 합성섬유여서 재활용이 쉽지 않다. 사용 후에는 결국 소각 처리할 수밖에 없어 엄청난 유해 물질이 배출된다. 시민 생활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피해만 주는 길거리 현수막 게시를 정치인 스스로 자제해 주길 바란다.

2025-09-30

美·中 정상회담 장소 경주박물관이 적격이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다음 달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행사기간 중 예상되는 미중 정상회담 장소로 국립경주박물관 행사장을 활용해 줄 것을 정부에 건의했다. 이 지사는 26일 경주를 방문한 김민석 국무총리에게 이같은 내용을 전달했으며, 김석기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에게도 국회 차원의 협조를 요청했다고 한다. 이 지사는 이같은 내용을 건의하면서 “천년 신라의 문화를 전 세계에 알릴 절호의 기회가 되며 만찬장 장소 변경으로 아쉬움을 느끼는 경주시민의 기대에 보답하는 것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APEC 정상 만찬장으로 신축되던 경주박물관 내 행사장은 행사 한 달을 앞두고 수용인원 문제를 이유로 경주 라한호텔로 갑자기 장소가 변경됐다. 예산 80억원을 들여 만찬장으로 신축하던 건물은 APEC 참가 기업인의 네트워크 공간으로 활용된 뒤 철거될 것이라는 소문까지 나 예산 낭비 논란에 빠져 있다. 그러나 경주박물관 내 신축건물은 당초 정상 만찬장으로 건립했기에 경호, 접견, 의전 등 국제행사 개최 요건을 잘 갖추고 있다. 미중 정상회담 장소로서는 아주 적격이다. 국립경주박물관을 근대역사 속의 주요 기억장소 남길 수 있는 기회도 된다. 한국의 찬란한 문화와 역사를 세계에 알릴 기회를 정부가 마다할 이유가 없다. 경주박물관은 8만여 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3000점을 전시 중이다. APEC을 앞두고 사상 최초로 신라 금관이 한자리에 전시될 예정이다. 자랑스런 우리 민족의 문화를 국제적으로 선양할 세기의 기회인 셈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만남은 외교가에서는 기정화된 사실이다. 미국의 관세 정책으로 촉발된 국제 통상질서가 새로운 국면을 맞는 가운데 열리는 미중 정상회담은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빅 이벤트다. 우리가 장소를 어디로 선정하느냐에 따라 한국은 자연스럽게 문화와 역사를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 정부가 이를 수용하면 일거삼득의 APEC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정부의 현명한 결정이 있길 바란다.

2025-09-30

사색과 검색

뜨겁고 왕성하던 계절은 물러가고 가을이 성큼 다가서고 있다. 높푸른 하늘 아래 산과 들은 차츰 가을빛이 짙어지고 몸에 와 닿는 기온도 한결 삽상해졌다. 폭염의 기세가 잦아들고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해진 바람이 불어 초목들은 저마다 생각에 잠긴 듯 차분하고 내밀해진 모습이다. 가을은 사색의 계절이란 말을 떠올리게 한다. 사색하기에 좋은 계절이란 말이기도 하고, 뭔가 깊은 생각에 젖게 하는 계절이라는 뜻이기도 할 터이다. 요즘 같은 정보화시대가 되기 전에는 사색(思索)이란 말에 상당한 깊이와 울림이 있었다. 대부분의 지식을 독서를 통해 습득하던 시절에는 그 과정에 사색 또한 필수였다. 좋은 책들은 단순히 지식만 전달하는 게 아니라 사색의 길을 열어주고 생각하는 힘을 길러 주었다. 읽어야 할 책, 읽고 싶은 책을 선택하고 밤새워 독서를 하면서 사유와 정신의 골격과 근육을 키워간 거였다. 일찍이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숙고(熟考)되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다” 고 했다. 자신의 삶을 깊이 성찰하지 않고 그저 살아가는 것은 진정한 삶이라고 할 수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물론 삶에 엄격한 철학자의 기준을 따르지는 못할지라도 흘려들을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프랑스 작가 폴 부르제의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도 궤를 같이 한다. 삶의 방향과 목표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고, 그저 하루하루 닥치는 대로 살아가다보면 현재의 환경이나 습관, 상황에 사고가 지배당하게 된다는 것. 즉, 삶이 이끄는 대로 끌려가게 되어 자신이 가진 생각과 신념이 무엇인지 정체성을 잃게 된다는 말이다. 사색보다는 검색이 우선인 시대가 되었다. 지금은 독서와 사색을 통해 삶에 대한 의문이나 문제의 답을 구하는 대신 간편하고 신속하게 인터넷 검색이나 챗GPT 같은 인공지능에 물어서 해결을 한다. 사색은 시간과 노력이 많이 필요한 만큼 문제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사고력, 집중력, 창의력, 인내력의 증진 같은 이점이 있다. 이에 비해 인터넷 검색은 신속하고 효율적이며 방대한 최신 정보에 접속할 수 있고 다양한 공감의 비교도 용이하다. 그러나 피상적인 이해에 그치기 쉽고 알고리즘이 제공하는 대로 편향되거나 저질·가짜 정보에 빠지기 쉽고, 사고력 약화라든가 자기성찰의 기회가 감소한다는 단점이 있다. 인터넷 검색이라는 손쉽고 즉각적인 해답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깊이 있고 비판적인 사고력의 저하로 스스로 판단하기보다 알고리즘의 추천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게 되어 여론조작에 휩쓸리기 쉬운 취약성을 가진다. 넘쳐나는 각종 정보를 소비만 하고 창조적인 재구성의 능력을 기르지 못해 지적 체력의 약화와 정신적 성장의 지체를 가져오게 된 것이다. 이미 상용화된 검색의 기능을 일부러 외면할 필요는 없지만, 아날로그적 기능이라 할 수 있는 사색을 겸비해야 보다 균형 잡힌 지식과 인격,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된다. 좌파와 우파로 갈려 내전이라 할 만큼 극단적인 대결상태에 있는 우리나라는, 역사와 시대를 통찰할 사색의 필요성이 절실하다.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2025-09-30

노욕(老慾)과 몰염치(沒廉恥)의 난장

노욕은, 늙은 나이에도 끊임없이 욕심을 부리는 것이요, 염치는,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다. 인생의 후반기에도 지나친 욕망으로 허덕이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염치가 있을 리 없다. ‘노년에 탐욕을 버리지 못한 자는 삶을 배운 적이 없는 사람’이라는 세네카의 경구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노욕의 추함에 대하여 우리는 잘 안다. 노욕하는 자는 필연적으로 추하게 되니 염치는 뒷전이다. 지나친 욕망은 세대와는 무관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노욕에는 ‘물러나지 않음’이라는 상품이 하나 더 추가된다. 노욕이 젊은이의 욕심보다 더 추하게 보이는 이유다. 욕망의 1+1이다. 물러나지 않음은 ‘놓지 않음’과 연결된다. 물러나지 않고 놓으려 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삶이 황혼에 접어든 사실(죽음이 가까워진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죽음의 자각’은, ‘타인의 기대나 사회적 관습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의 고유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통로’라 보았다. 노년에의 삶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서는 더욱더 죽음에의 자각이 필요한 이유다. 염치없음은 또 어떤가. 흔히 하는 말로, ‘부끄러운 줄 좀 알아라!’라는 말이다. 순자는 예론(禮論)에서, ‘사람이 염치를 모르면 짐승만도 못하다.’(人而無恥, 不如禽獸)라고 했다. 부끄러움을 모르면 아무 데나 마구 들이댄다. 쥐뿔 아는 것도 없는 사람들, 체력이 바닥을 기는 사람들, 세상을 제대로 읽을 줄도 모르는 사람들, 입만 살아있는 사람들이 한때 잘 나갔다는 이유로 나설 자리 안 나설 자리를 가리지 않고 설쳐댄다. 특히 권력을 탐하려는 노욕은 보편적 도덕법칙이 아니라 타인을 수단으로 대하는 태도일 가능성이 크다. 정치판에서 영원히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 착각하는 욕망은, 공동체의 미래를 빼앗고 젊은 세대의 자유로운 가능성을 억압한다, 정치적 노욕은 공동체를 사유화하는 일종의 도덕적 배임이자 철학적 자기 한계의 망각이다. 노욕은, 죽음이 두려워 삶에 집착하는 인간이 자신의 유한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정신적 빈곤이다. 주변을 한번 둘러보자. 노욕에 설쳐대는 순자의 몰염치들이 득실댄다. 한평생 호의호식하고도 또다시 더 하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뛴다. 몰염치의 난장판이다. 이들에게는 후계자는 없다. 관속에 들어갈 때까지 모조리 자신이 하고야 말겠다는 처절한 의지를 불태운다. 후학들을 키울 생각은커녕, 싹트기 전에 잘라버리기 바쁘다. 그 기세가 너무나 맹렬하여 구토가 나고 어지러워 쓰러질 지경이다. 하기야 노욕의 난장판이 어디 여기뿐이겠는가마는. 공자의 지천명(知天命)은, ‘나이가 들면 사욕을 줄이고 자연의 뜻에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다. 참으로 공자님이시다. 감탄이 절로 나온다. 요즘 50은 청춘이니 현대의 지천명은 70 정도로 보면 적당할 듯하다. 70 전후에도 노욕에 휩싸여 몰염치의 난장에서 추어대는 노장들의 칼춤이 볼만하다. 춤추는 자뿐만 아니라, 구경꾼들도 조심해야 된다. 그 무대가 어떤 난장인지, 춤꾼이 몰염치한 인지. 단디 보자. 비싼 관람료 지불하고, 우리의 미래를, 우리의 젊은이들을 망칠 수 있다. 제발 단디 보자. /공봉학 변호사

2025-09-30

자유민주주의 수호, 시대정신이자 경제부흥의 토대

최근 우리 사회에서 자유민주주의가 자주 거론되고 있다. 이는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헌법의 근본 가치이자 시대정신이다. 우리 지역 또한 오랜 세월 크고 작은 갈등을 겪어왔으나, 정치적 견해의 차이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문제는 그것이 극단적 대립으로 번질 때 사회 통합이 흔들리고 미래 발전의 기반이 위태로워진다는 점이다. 오늘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는 분명하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단순한 제도가 아니라 국민 개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고, 다양한 의견을 포용하며, 갈등을 제도적으로 조정하는 삶의 방식이다. 대한민국이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룰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 체제를 굳건히 지켜온 국민의 힘이 있었다. 현실은 녹록지 않다. 세계적 경기 침체 속에 철강산업이 위기에 직면하면서 포항을 비롯한 지역경제가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산업의 위기는 곧 일자리와 민생의 위기이며, 이는 자유민주주의의 건강한 작동을 위협한다. 자유와 민주를 지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경제적 번영이 뒷받침되어야 하며, 정치적 갈등을 넘어 지역경제 회복이라는 공동의 과제에 힘을 모아야 한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킨다는 것은 국민의 삶과 안전, 지역사회의 미래를 지키는 일이다. 법치와 공정한 제도가 바로 서고, 든든한 안보와 더불어 경제적 활력이 회복될 때 자유민주주의는 더욱 단단해진다. 이는 선언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라 실천력과 추진력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실현된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자유를 위해 헌신한 수많은 선열들의 희생 위에 서 있다. 우리는 그 정신을 이어받아 자유민주주의를 더욱 굳건히 지켜야 한다. 이는 선택이 아닌 시대가 부여한 책무이며, 지역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길과도 직결된다.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경제 회생, 이 두 과제는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공동의 책무다. 그것이 곧 오늘의 대한민국을 지키고 내일의 포항을 열어가는 길이다. /공원식 한국자유총연맹 경북지부 회장

2025-09-29

“불법 정치현수막, 시청은 왜 방치하는가”

포항 시내 곳곳을 뒤덮은 정치현수막 문제가 언론을 통해 공론화하면서 시민 반응이 뜨겁다. 단순한 불편을 넘어선 분노의 목소리가 나온다. 시민들은 “시청은 뭘 하고 있었느냐”, “시장출마 예정자만을 위한 도시냐, 시민을 위한 도시냐”는 쓴소리가 이어졌다. 이는 행정의 무기력과 제도의 허점에 관한 집단적 항의표시이기도 하다. 현행법은 정당이나 국회의원 등 일부에만 도로변 현수막 설치를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내년 시장 출마를 준비하는 이들이 거리 곳곳에 무더기 현수막을 내걸었음에도 초기 단속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한 시민은 “시청이 눈감아준 것이 아니라면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작은 홍보물 하나를 걸기 위해서도 까다로운 검인을 받아야 하는 일반시민과 달리 시장출마 예정자들만은 예외처럼 거리 곳곳을 점령했기 때문이다. “시장출마 예정자에게는 열린 하늘이고, 시민에게는 좁은 문”이라는 표현은 이런 불평등을 겨냥한다. 현수막 설치 과정에서의 무질서와 안전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현수막 위치 선점을 둘러싸고 현수막 업자 간 경쟁이 도를 넘었다. 소위 ‘목이 좋은 곳’은 4단 내지 5단으로 현수막을 겹겹이 내걸어 보행자와 운전자의 시야를 완전히 가렸고, 교통사고 위험을 높였다. 포항시와 일선 행정복지센터가 뒤늦게 현수막 철거에 나섰지만, 현수막 업자와 현수막 설치를 주문한 사람들로부터 항의를 받는 볼썽사나운 일도 빚어졌다. 실제 북구 흥해읍 남송리교차로 등 6개소에서는 읍사무소 직원들이 출동해 장애 현수막을 철거하거나 옮기는 과정에서 현수막 업자와 현수막을 내건 사람들로부터 항의를 받기도 했다. 현수막 철거 과정도 녹록지 않다. 설치업체는 아예 높이 5m가 넘는 곳에 현수막을 걸어놓고 나몰라라 떠나버린다. 일선 행정복지센터 공무원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사다리를 타거나 장비를 동원해 철거·수거를 반복한다. ‘설치는 업자가, 책임은 공무원이’라는 기형적 구조가 되풀이되는 셈이다. 이같은 여러가지 문제에도 불구하고 시청은 여전히 미온적이다. 일부에서는 “시청이 차기 선거를 의식해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된다. 결국 행정이 불법을 방치하면 시민은 합법을 지킬 이유를 잃는다. 시민들의 요구는 단순하다. 대대적인 단속과 함께 ‘시장출마 예정자의 이름값’이 아닌 시민 우선의 거리 풍경을 만드는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강력한 행정 의지와 공정한 법 집행이다. /임창희 선임기자 lch8601@kbmaeil.com

2025-09-29

힘 있는 자의 자제가 민주주의의 기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우리 조상들은 한가위 덕담으로 이런 말을 해왔다. 하늘은 청명하고, 들판에 곡식은 익어 풍요로운 추석이다. 농경 사회에 살던 우리 조상들은 이렇게 넉넉할 때가 있었을까. 그런데 한가위를 앞둔 요즘 주변을 둘러보면 “한가위만 같아라”라고 말하기 민망하다. 배터리 하나에 온 나라가 마비다. 해킹 부대까지 운용하는 북한이 의도적으로 개입하면 어쩔 뻔 했나. 트럼프는 깡패다. 자유무역협정(FTA)을 깡그리 무시하고, 갑자기 25% 관세를 주장하더니, 3500억 달러(약 490조 원)를 현금으로 내놓으라고 한다. 강도가 따로 없다. 우리 세대야 쌀독을 박박 긁어 끼니를 이어간다 해도, 다음 세대에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 공존을 설계하는 게 아니다. 너야 굶건 말건 내가 갖고 싶은 건 다가져야겠다는 요구다. 트럼프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 이후 우리 경제는, 인재 양성은, 또 일자리는 어떻게 할 건가. 이제 우리 안위를 미·북 대화에 맡 겨야 하는 처지다. 온 국민이 마음을 모아 대응해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런데 정치인들이 하는 꼴은 울화가 치민다. 여도 야도 나라를 걱정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논리도 없고, 체면도 품격도 다 던져버린 욕설 경쟁뿐이다. 집권 여당은 국가 경영을 책임지고 있기에 더 실망할 수밖에 없다.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이 집권 후 최저 지지율을 보인 지난주 여론조사에 응답한 국민도 같은 마음 아니었을까. 외환위기가 오건 말건, 나라가 위기에 처하건 말건, 집권당은 재판 뒤집기에 만 골몰하고 있다. 조희대 대법원장과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만나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표를 유죄로 확정해 선거에 못 나오게 만들려 했다고 주장한다. 증거도 못 내놓는다. 당내에서도 “근거가 희박한 것 아니냐”라고 하자, 서영교 의원은 “제보자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말만 하지, 구체적인 근거를 내놓지도 못한다. 법원을 못믿는다며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내놨다. 입맛에 맞는 판사로 재판하겠다는 거다. 검찰도 해체해 버렸다. 국회 법사위에서 민주당은 국정감사 증인·참고인을 143명 신청했다. 조 대법 원장을 비롯해 대법관만 5명을 신청했다. 이재명 대통령 공직선거법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는 이유다. 명백한 보복이다. 대법관은 국회에 부르지 않는 것이 관례다. 더군다나 진행 중인 재판과 관련해 판사를 불러 추궁하 는 것은 재판을 국회가 하겠다는 뜻이다. 지나치게 거대해진 민주당 권력에는 자제도, 절제도, 원칙도 없다. 이 대통령이 제3자 뇌물 혐의 등으로 기소된 쌍방울 불법 대북 송금 사건 관련자들도 모두 증인으로 불렀다.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배상윤 KH그룹 회장 등이다. 민주당은 검찰이 이 사건을 조작해 기소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특검법도 발의했다. 민주당 의원들이 판사와 사건 관련자들을 불러놓고, 호통치고, 원하는 방향으로 답변을 요구할 게 뻔하다. 이미 유죄 판결이 난 사건까지 특검과 전담재판부도 모자라 국회에서 누르고, 뒤집겠다는 말이다. 사실상 인민재판을 하겠다는 꼴이다. 더군다나 대법원장까지 오라 가라 하면서, 대통령실의 일개 비서관은 못 부른다고 버티는 촌극을 벌이고 있다. 못 나올 이유가 있는데, 지금은 말을 못 한다고 한다. 조금만 기다리면 알게 될 것이라고 한다. 오죽하면 민주당 의원마저 출석해 해명하는 게 ‘국민에 대한 도리’이고, ‘국민주권 정부의 원칙’이라 고 말했을까. 이재명 대통령은 선출된 권력과 임명된 권력의 상하 관계를 언급했다. 자유 민주주의와 인민민주주의가 무엇이 다른가. 당이 정부와 사법기관을 모두 통제 하고, 일당이 지배하는 게 독재다. 권력의 정점에 있는 한 사람과의 거리가 권력의 크기가 되는 체제일수록 더욱 그렇다. 권력의 균형과 견제가 이루어져야 자유민주주의의다. 굳이 임명된 권력이 선출된 권력을 견제하게 만든 이유를 모른다는 말인가. “대통령은 많은 재량권을 가지고 있다”라고 주장하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말을 따라 할 참인가. 무엇이 문제인지 정말 모르나.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9-28

향초를 피운 저녁

생선 구운 냄새가 남아 있다. 계속 환풍기를 돌려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문을 열어놓고 있다가 날이 선선해져 창문을 닫고, 초를 켰다. 요즈음의 향초는 다양한 향을 가지고 있다. 둥근 유리병 속에 든 초에 불을 붙였다. 반 정도 닳아 없어진 심지에 불을 붙이는 것이 쉽지 않았다. 보랏빛 초가 타면서 옅은 라벤더향이 방 안에 흘렀다. 그 향을 타고 생각은 공주로 달려갔다. 무령왕릉을 갔었다. 처음 가본 왕릉은 기대 이상이었다. 여러 가지 껴묻거리(부장품)들을 보며 감탄하고 있는데, 무덤 안 군데군데 불꽃 무늬가 보였다. 촛불이 있던 자리란다. 무덤이 완성된 후 촛불을 켜 둔 채 밖에서 문을 닫았다. 초는 주변의 공기를 빨아들이면서 타고 그 수명을 다했다. 그 안은 그래서 진공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고 완벽한 형태의 부장품들이 발견될 수 있었다고 한다. 초는 희생의 상징으로 많이 이야기들 한다. 스스로의 몸을 태워 주변을 밝히는 특성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초가 타면서 촛농이 흘러내리고 시간이 가면서 몸이 다 녹아내려 없어지는 것을 보면 머리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1시간 정도 켜 놓았던 초를 끄기 위해 유리병의 뚜껑을 닫았다. 거므스름한 그을음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잠시 후 초는 꺼졌다. 산소의 공급이 끊긴 탓이다. 초가 자신을 태우고 주변을 밝히기 위해선 반드시 공기 중의 산소가 필요하다. 페이스 메이커(pace maker)는 중거리 이상의 달리기 경주나 자전거 경기 따위에 자주 등장하는 사람이다. 특히 마라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마라톤은 42.195KM를 뛰는 고된 운동이다. 이 페이스 메이커는 주자가 스스로 페이스를 잡기 어렵기 때문에 함께 달린다. 속도 조절을 시켜주고 주자의 긴장을 완화시키며 다른 선수를 견제해 경쟁을 대신해주기도 한다. 그러나 전략적으로 투입 된 그들은 결코 주인공이 될 수 없으며 남의 일등만을 위해 달린다. 그들의 결승점은 30KM이다. 함께 뛰었던 주자가 1등으로 결승선을 끊었다고 해도 이들은 주인공이 아니기에 전혀 주목받지 못한다. 마치 산소가 있어야 초가 타지만 산소의 존재를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어찌 보면 세상은 주인공들보다는 저런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손길로 이루어지고 만들어져 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의 주변을 살펴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면서 산소와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손녀를 데리러 어린이집을 갔다. 0세부터 2세까지의 어린이들이 다니는 곳이다. 말도 통하지 않고 기저귀도 떼지 못한 아이들이 보호자의 손에 이끌려 아침이면 이곳으로 모여든다. 아이를 돌보는 일은 마라톤만큼이나 힘든 일이다. 특히 말이 통하지 않는 아이를 돌보는 일은 더욱 쉽지 않다. 하루 종일 돌보다 보면 식사 시간을 챙기지 못해 끼니를 건너뛰거나 서서 간단히 먹는 일도 다반사다. 아이를 키워본 사람들이라면 산후우울증, 독박육아 이런 말이 남의 말같이 들리지 않을 것이다. 아이를 데리고 나오는 선생님들의 표정이 늘 밝다. 아침부터 저녁 시간까지 그 일을 감당하며 늘 환한 모습인 것이 존경스러웠다. 짧은 시간 한 아이만을 돌보아도 힘들고 짜증스러운 일이 많은데 사랑과 그 일에 대한 자부심이 없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선생님들의 수고 때문에 직장에서의 활동을 유지하고, 전업주부는 다시 가정을 꾸려갈 힘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산소가 없이는 절대로 촛불이 자신을 태울 수도, 빛을 발할 수도 없다. 초도 산소도 스스로를 지워가면서 없어지는 것은 같지만 갈채는 초만 받을 뿐이다. 그러기에 보이는 자리의 주인공이나 1등도 무척 중요한 것임에 틀림없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는 것이 필요하다.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에서는 어쩌면 초보다도 산소 같이 도움을 주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훨씬 많을 수 있다. 앞에서 주목을 받지 못하는 삶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소중하고 의미 있다. 그들의 희생과 배려 속에 세상은 지금처럼 잘 돌아가고 있는 것 아닐까. 향초를 태우고 초가 꺼진 자리엔 희미한 라벤더 향만이 주위의 공기에 섞여들고 있다. /전영숙 시조시인

2025-09-28

조지아와 군맹무상(群盲撫象)

어떤 대상을 제대로 알고자 하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절실하다. 제한된 경험과 불충분한 시간은 대상에 대한 오해와 불신을 가져오기 쉽다. 이런 이유로 ‘수박 겉핥기’라든가,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격’이라는 경구가 나온 것이다. 후자는 불가(佛家)의 경전인 ‘열반경’에서 유래하는데, 좁은 식견과 안목 없이 대상을 주관적으로 잘못 판단한다는 뜻을 함축한다. 카프카스산맥 남부에 자리한 조지아는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 있는 작은 나라로 남한 면적의 63% 정도다. 인구는 370만 정도니까 부산과 구미의 인구를 합한 규모다. 오랜 세월 정교(正敎)를 신봉해온 정통 기독교 국가로 북으로는 러시아, 남으로는 터키와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나는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에서 4박 5일 체류했다. 125만 인구의 트빌리시에는 곳곳에 케이블카가 설치돼 있고, 버스 카드로도 탈 수 있다. 조지아가 본디 산악국가인 까닭에 조금만 올라가도 시내 전경(全景)이 시원하게 다가온다. 버스 정류장에서 손자를 안고 나온 중년 여인네가 스스럼없이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는 풍경을 보노라니 우리 어머니들의 예전 모습이 겹쳐져 마음이 적잖게 애잔했다. 트빌리시에서 북쪽으로 2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한 작은 도시 므츠헤타(Mtskheta)를 택시로 찾아간다. 12살에 운전을 배워 33년째 차를 몰고 다닌다는 45세 운전사와 김 이사가 휴대전화로 주고받는 대화에 귀를 기울인다. 왕복 80라리로 다녀오기로 했지만, 멀리 산 정상에 솟아있는 즈바리 수도원에 마음이 가기로 50라리를 더 주고 방문을 결정한다. 쿠라강과 아라그비강이 아름답게 만나는 정경이 내려다보이는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에서 잠시 묵상하고 기념사진을 찍는다. 서기 337년에 기독교를 공인할 정도로 조지아 정교회는 그 역사가 남달리 깊다. 즈바리 수도원은 꼬불꼬불한 산길을 나선형으로 돌아가는 차도로 이어진 종점에 자리한다. 저 높은 곳까지 도달해야 했을 그들의 돈독한 신앙심을 새삼 돌이킨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당신은 어느 편이냐, 하는 김 이사 질문에 택시 기사가 잠시 난감한 얼굴이다. 하되, 조지아 정부와 정치인들은 러시아 편이지만, 일반 국민은 우크라이나 편이다, 하는 대답이 돌아온다. 어디서나 강자는 강자의 편에, 약자는 약자의 편에 서 있음을 확인하는 자리. 공자는 이것을 일컬어 ‘덕불고(德不孤) 필유린(必有隣)’이라 했다. 트빌리시 시내 곳곳에 마련된 수많은 동상은 조지아를 빛낸 시인과 문사(文士) 혹은 화가를 기리는 것이다. 유럽은 오래전부터 동상으로 제 나라의 영웅들을 기념하는 습속을 이어왔고, 한때는 그루지야로 불린 조지아 역시 그런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이럴진대, 우리는 이런 문화에 이질적이며, 시인과 묵객(墨客)을 위한 동상 건립은 여전히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주인 없는 수많은 개가 길거리에서 낮잠을 자고, 택시들이 곡예(曲藝) 하듯 미끄러지지만, 교통질서가 유지되는 트빌리시. 서둘지 않는 시민들의 발걸음과 대학생들의 여유로운 미소에서 이 나라의 미래가 환하게 열려있다는 인상을 받고 능소화 붉게 피어있는 조지아를 떠난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09-28

추석민심 겨냥, 지방선거 준비에 바쁜 與野

여야가 8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 준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달부터 지방선거기획단을 가동하고 있는 민주당은 최근 각 시·도당별로 ‘선출직 평가위’를 구성하는 중이다. 광역단체장을 욕심내고 있는 부산시당과 강원도당은 이미 평가위 활동에 들어갔다. 평가위원회는 공천 대상자의 도덕성·윤리 역량(20%), 리더십 역량(20%), 공약·적합성 이행(30%), 직무활동(20%), 자치분권활동(10%)을 기준으로 점수를 매긴다. 특히 도덕성·윤리 역량 평가에서는 본인뿐 아니라 친인척과 측근도 대상에 포함시킨다. 정청래 대표는 지난 16일부터 전주 호남발전특별위원회 회의, 제주 현장 최고위원회의·예산정책협의회, 광주 예산정책협의회, 부울경 예산정책협의회를 잇따라 열면서 지역 민심을 공략하고 있다. 지난 18일 ‘지방선거 총괄기획단’을 띄운 국민의힘도 조직 정비와 전략 수립에 들어갔다. 총괄기획단 위원장은 5선의 나경원 의원이, 조직강화특위 위원장은 정희용(고령·성주·칠곡) 사무총장이 맡았다. 조강특위는 지난 26일 첫 회의를 열고 광역단체장 공천은 중앙당이, 기초단체장 공천은 시·도당이 주도권을 갖기로 했다. 조만간 각 시·도당별 당무감사도 계획 중이다. 최근 여야가 초강경 대치를 이어가는 것도 지방선거 유불리를 따진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지난 총선과 대선을 거치며 입법·행정 권력을 차지한 민주당은 내년에 대구·경북을 제외한 전국 광역단체장을 석권하겠다는 게 목표다. 민주당 당·정은 “정권 전체가 마치 선거기획사 같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지방선거에 올인하고 있다. 국민의힘의 경우 지난 대선 패배로 벼랑 끝에 몰린 상태다. 내년 지방선거를 반등의 기회로 삼지 못하면 당의 존립이 위태롭게 된다. 그러려면 당의 외연을 중수청(중도·수도권·청년)으로 확장하는데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영남 자민련’이란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인재영입에 총력을 쏟아야 한다. 과거처럼 중앙당이나 국회의원이 일방적으로 ‘묻지마식 공천’을 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안 된다.

2025-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