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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혜훈의 죄? 국민의 죄?

이재명 대통령에 의해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이혜훈 씨가 인생 최고의 위기에 몰려있다. 그 위기의 이유가 외부에 의한 것이 아닌, 그간 살아오며 스스로 자초한 것이라 동정하기는 어렵다. 8년 전. 이 후보자가 자신의 의정활동을 돕던 인턴직원에게 “한국 사람이 한국말을 못 알아먹는다” “널 죽였으면 좋겠다”는 막말을 던지고, 심지어 스스로 화를 참지 못해 고성을 질렀다는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드러났다. 전근대적인 폭압의 행태가 분명하다. 임신 중인 사람을 괴롭혔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국민의힘 소속 손주하 중구의원은 지난 5일 기자회견을 열어 임신 초기 시절 심각한 정신적 스트레스로 유산 위기를 겪었다는 사실을 알렸다. 손씨가 자신을 괴롭혔던 사람으로 지목한 이는 이혜훈 후보자. 갑을관계에 있는 이들을 함부로 대했다는 것 외에도 적지 않은 흠결이 거의 매일 폭로되는 형국이다. 175억6952만원이란 이혜훈 씨의 재산이 공개되자 부동산 투기와 국외의원 재직 시절 특혜 관련 논란이 신문과 방송을 통해 알려졌고, 이씨 세 아들의 재산이 47억원에 이른다는 보도에 “직장 없는 자식들이 증여세를 어떻게 낸 것인가”를 묻는 이들도 많다. 장관을 포함해 총리와 부총리 등 고위직 공무원 후보자가 발표되면 그 사람의 인격과 도덕성, 재산 형성 과정, 자녀에 얽힌 의혹 등이 예외 없이 잇따르는 걸 우리는 이미 수십, 수백 차례 봐왔다. 그때마다 허탈한 실소를 머금고 공분에 시달려야 하는 게 한국 국민들의 어쩔 수 없는 팔자인가? 모범적으로 살지 못한 이혜훈 후보자의 곤혹이야 자승자박이겠으나, 국민은 대체 무슨 죄인가?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6-01-07

짝퉁

플리마켓의 공기는 느슨하다. 물건들은 정해진 자리를 벗어나고 가격은 흥정이라는 이름으로 흔들리며 사람들은 잠시 일상의 위계를 내려놓는다. 그날도 그랬다. 정갈하지는 않지만 성실한 손길이 느껴지는 작은 부스 앞에서 나는 손바닥만 한 파우치를 발견했다. 익숙한 무늬, 너무나 익숙해서 오히려 웃음이 새어 나오는 문양. 누가 보아도 명품 브랜드를 연상시키는 솔직하고 직설적인 물건이었다. 영세한 업체였다. 과장된 설명도, 번듯한 배너도 없이 봉사하는 사람들이 물건을 판매하고 있었다. “이거 직접 만들었어요.”라는 말 한마디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세웠다. 가격은 삼천 원. 그냥 보기에도 너무 싸고 질겨 보였다. 차키를 넣어도 좋고 카드 몇 장을 넣기에도 알맞은 크기였다. 무엇보다 이 물건이 가진 순수함이 마음에 들었다. 숨기지 않는 흉내, 감추지 않는 닮음. 나는 열 개를 샀다. 필요해서라기보다는 물건을 만든 이들의 시간을 조금 보상해주고 싶었다. 지인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대부분의 반응은 가벼웠다. “우와 명품이네?”웃음 섞인 농담이 오갔고 모두 그 물건이 가진 유머를 이해했다. 그것은 명품을 흉내 낸 것이 아니라 명품을 소재로 한 농담에 가까웠다. 우리는 그것을 통해 웃었고 그 웃음은 그날의 작은 공동체를 만들어 주었다. 유독 한 사람의 말이 날카로웠다. 같은 회사의 진품을 들고 있던 한 사람이었다. 그는 파우치를 받아 들고는 얼굴을 굳혔다. “나는 짝퉁은 안 해.” 마치 선언처럼 말한 뒤 한 마디를 덧붙였다. “진품도 짝퉁으로 알겠네.” 그 말은 물건을 향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향한 것 같았다. 순간 공기가 식었다. 농담은 자리를 잃었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지키고 있는지 분명히 말했지만 내 눈에는 무엇을 잃고 있는지가 분명히 보였다. 나는 명품을 과시하고 싶은 욕심도 없었고, 단순히 영세 업체를 도와주고자 산 파우치를 보며 생각이 많아졌다. 명품 가방을 들고 다닌다고 해서 사람이 명품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을 드러내는 것은 물건이 아니라 언어였고, 태도였으며, 타인을 대하는 결이었다. 그가 내뱉은 말속에는 고급스러움도, 품위도 없었다. 오히려 과시와 방어가 섞인 냄새가 났다. 그의 말과 태도는 짝퉁을 넘어 하(下)품처럼 느껴졌다. 오래된 흉내, 새로울 것 없는 허세같은. 우리는 왜 진품과 짝퉁을 나누는 데 집착할까. 정말 보이고 싶은 것은 물건의 진위일까, 아니면 그 물건을 통해 증명하고 싶은 나의 위치일까. 진품이라는 말은 언제부터 이렇게 도덕의 언어가 되었는지. 마치 짝퉁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 곧 고귀함의 증거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의 삶은 과연 진품일까. 매일 우리는 얼마나 많은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가. 상황에 따라 표정을 바꾸고 관계에 따라 언어를 조절하며 때로는 나 자신조차 속이며 하루를 살아낸다. 직장에서의 나, 가족 앞에서의 나, 친구들 사이의 나는 모두 조금씩 다르다. 생존의 기술일 수도 있고 사회의 요구일 수도 있다. 그 모든 모습 중에서 진품은 어디에 있을까. 내면이 진품이 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고 실패가 필요하며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고통이 필요하다. 값비싼 물건을 사는 일보다 인내하고 이해하려 애쓰는 일이 더 많은 에너지를 요구한다. 내면의 진품은 카드로 결제되지 않는다. 그것은 오래 걸리고 불편하며 누구도 대신 만들어 줄 수가 없다. 삼천 원짜리 파우치는 솔직했다. 흉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고 웃음의 자리도 알았다. 그 파우치를 만든 사람들 역시 명품을 팔고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을 만들었고 그 시간을 정직하게 가격으로 붙였을 뿐이다. 나는 지금 어떤 진품을 만들고 있는가. 가면을 쓰고 살아가더라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면 우리는 아직 길을 잃지 않은 것이다. 짝퉁을 쓰지 않겠다는 선언보다 어떤 언어를 쓰고 사람들에게 어떤 온도를 남기는지에 더 시간을 쏟아야 할 것이다. 삼천 원이었지만 파우치는 나에게 가장 값비싼 질문을 남겼다. /김경아 작가

2026-01-07

‘6월 통합단체장’ 출범 정말 가능할까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대전·충남에 이어 광주·전남 행정 통합까지 공론화하며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통합된 지자체의 장을 뽑을 수 있게 하자”고 했다. 시·도 행정통합 작업에 가속페달을 밟아 6월 지방선거에서 통합 단체장을 뽑자는 제안이다. 누가 들어도 지방선거용 이슈다. 행정통합에 수년을 끌다 결국 실패한 대구·경북(TK)으로선 마치 ‘전광석화(電光石火)’와 같은 이 대통령의 속도전에 놀라울 따름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부터 국가 균형발전 전략으로 ‘5극(수도권·동남권·대구경북권·중부권·호남권) 3특(제주·전북·강원)’이라는 초광역권 정책을 공약으로 내놓았다. 인구 500만명 수준의 대도시를 여럿 만들어 지방 경쟁력을 키우고 행정 효율성을 높이자는 내용이어서 시·도 통합 취지와도 일치한다. 지자체의 광역 단위 통합은 세계적 추세이기도 하다. 아마 비수도권 지자체에서는 행정통합 취지에 반대하는 곳이 없을 것이다. 현재 대전·충남은 이달 중 특별법을 발의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입법에 속도를 내고 있다. 광주·전남 통합 특별법도 아마 동시에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 비수도권 지자체들은 인구와 자본, 일자리, 교육 기회를 블랙홀처럼 집어 삼키는 수도권 일극주의로 인해 생존 위협을 받고 있다. 만약 시·도 통합이 성사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통합 지방정부는 국책 사업이나 대규모 투자 유치에서 협상력이 커지고, 연구개발 역량과 산업기반이 합쳐져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전남도의 경우 통합론이 나오자 벌써 “조세특례와 대규모 국책사업 우선권이 특별법에 포함돼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특별법 제정이 쉬운 게 아니다.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대전시와 충남도가 밝힌 것처럼 이달 중 두 지방정부가 특별법안을 만든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법안에는 통합 청사의 위치, 지자체 명칭, 하위 시·군·구 간의 권한 배분, 자치입법권의 강화, 재정 자율성 강화 등의 세부적인 내용이 담겨야 하고, 시·도의회 동의 또는 주민투표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엄청난 주민 갈등이 수반된다. 특히 2월 3일 시작되는 지방선거 예비후보자 등록 때까지 특별법이 마무리되지 않으면, 각 시·도 단체장 공천은 기존 일정대로 진행되어야 한다. 현재 야당에서 이 대통령이 통합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게 지방선거용이 아니냐는 의심을 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시·도 통합에 정파적 계산이 개입하면 정상적 논의가 이뤄지기 어렵다. 정치권에서는 이미 대전·충남 통합 단체장 후보로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거론되고 있다. 강 실장은 충남 아산을 지역구로 둔 3선 국회의원 출신이다. 광주·전남의 경우에도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전남지사 출마 후보군으로 분류된다. 이재명 정부가 행정통합에 성공하려면 청와대가 특정인을 통합단체장으로 당선시키기 위해 시·도 통합을 정치적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말이 나와서는 안 된다. 행정통합은 결국은 시·도의회 동의 등의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해서 통합 과정에 정치적 논란이 발생하면 성사되기가 사실상 어려워진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2026-01-06

TK지방선거 과열···현안 공론화 기회 되길

지난 연말 추경호(달성군) 의원에 이어, 5일에는 이강덕 포항시장과 최은석(대구 동구군위군갑) 의원이 6·3지방선거를 앞두고 경북도지사와 대구시장에 도전한다고 공식 선언해 국민의힘 TK지역 공천 경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당 지지율이 저조해 ‘인물난’을 겪는 다른 지역과는 대조된다. 일각에선 TK 중견 의원들의 출마 러시에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당 지도부의 공천을 받는데 급급해 ‘보신주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공감 가는 지적이다. 안 그래도 정치권에서는 TK 의원들이 장동혁 대표의 ‘강성 드라이브’에 대해 침묵을 지키며 방관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추경호·최은석 의원 말고도 대구시장 선거에는 조만간 국민의힘 현역들의 출마 선언이 잇따를 전망이다. 6선인 주호영(수성구갑) 국회부의장과 4선의 윤재옥(달서구을) 의원이 출마를 서두르고 있고, 지난 지방선거에서 대구시장에 도전했던 유영하(달서구갑) 의원도 2월 들어 출마 선언을 할 것이라는 말이 들린다. 전·현직 구청장 중엔 이미 선거전에 뛰어든 사람도 있다.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경쟁이 과열 양상을 빚는 것은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 보장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경북도지사 선거에는 이강덕 포항시장에 앞서 이미 이철우 지사가 ‘3선 도전’을 공식화한 상태다. 경북 북부권에서 3선 국회의원을 역임한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과 박근혜 정부에서 경제부총리를 지낸 최경환 전 국회의원도 이달 중 출마를 공식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 대구시당도 5일 신년 단배식을 열고 본격적인 지방선거 준비에 들어갔다. 민주당은 현재 PK지역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는 여당 지지세가 TK로 확산하면 의외의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만약 안동이 고향인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인재풀을 가동할 경우 TK지역 선거 판세가 요동칠 수도 있다. TK지역에는 현재 신공항 건설과 행정통합, 2차 공공기관 유치 등 현안이 산적해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이러한 지방의제가 공론화하는 장(場)이 됐으면 한다.

2026-01-06

늘어난 고령자 운전사고, 정밀한 대책 나와야

급속한 고령화로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가 많아지면서 이들이 내는 교통사고도 증가한다. 2023년 기준 고령 운전자 사고 발생 비중은 전체 교통사고의 15.7%다. 사고 사망자 사고는 24.3%로 조사됐다. 경북 포항의 경우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가 낸 교통사고는 최근 3년간 매년 500건 이상 발생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50%가량이 늘어난 수치다. 전문가들은 고령자 운전사고는 비고령자보다 65%나 높게 발생하며 치사율도 높다고 한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우리나라에서 일어날 수 있는 불가피한 현상이나 이에 대한 보다 정밀한 대책이 서둘러 마련돼야 한다. 정부가 고령층의 교통안전을 목적으로 고령자 운전면허 자진 반납제도를 시행하나 전국적으로 자진 반납 비율은 저조하다. 특히 농촌지역이 많은 경북 등은 면허 자진 반납률이 1%대에 머물러 실효성이 거의 없다. 면허 자진 반납률을 보면 서울 2.6%, 부산 3.2%, 대구 2.8%인데 반해 농촌지역인 경북은 1.7%, 충북은 1.1%다. 농촌지역 반납률이 이같이 떨어지는 이유는 도시보다 불편한 교통 인프라 때문이다. 도시처럼 택시가 잘 잡히지도 않아 면허를 반납하는 순간부터 갇힌 신세가 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고령 운전자 사고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사회적 제도 관점에서 풀어야 할 과제다. 고령자에게 운전을 못하게 막는 것이 아니라 고령자가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 구축을 통해 그들의 이동권을 보장하는 쪽으로 개선하는 것이 좋다. 한편으로는 이런 제도 개선을 통해 시민의 안전도 지키는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면허관리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법으로 나이 기준보다 실제 운전능력을 정밀하게 평가하는 방법이 효율적이다. 적성검사 주기 단축도 바람직한 방법이다. 가능하다면 차량에 첨단 안전장치를 보급해 고령 운전자의 신체적 한계를 기술로 보완하는 방법도 검토해야 한다. 고령 운전자의 사고예방에 대한 가족과 사회의 관심이 높아져야 사고도 줄일 수 있다.

2026-01-06

미래의 세상 CES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AI) 전시회(CES)가 6일부터 9일까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다. 1967년에 처음 시작해 6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이 전시회는 전 세계 각국의 신기술들이 집결하는 기술 경연장이다. 매년 수많은 혁신적인 기술들이 총망라하면서 전시장 자체가 마치 마술의 한 공간처럼 변신한다. CES 2026년에는 전 세계 160개국에서 4100개의 기업이 참가한다. 우리나라는 삼성전자, LG전자, 현대 등 약 1000개 기업이 참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구와 경북에서도 42개의 혁신기업이 참가해 공동관을 운영하며 신기술을 세계에 선보인다. 올해 CES의 키워드는 피지컬 AI다. 지금까지 AI는 디지털 공간인 화면 속에만 있었다면 이번 CES에 등장한 AI는 다르다. 로봇, 자율주행차, 스마트 공간 등에서 자율시스템이 실제의 사물을 인지하고, 이해하며 복잡한 행동을 수행하는 모습으로 선보인다. 로봇의 팔로, 가전제품의 두뇌로, 자동차의 판단 주체로 AI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특히 올해 선보인 인간형 로봇은 인간의 모든 일을 대신한다. 식사 준비와 빨래 정리 등 집안 일의 상당 부분을 로봇이 척척 해결하는 장면에서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은 미래 일자리 보고서에서 AI와 디지털 기술혁신으로 멀지않은 미래는 지금의 일자리 9200만개가 사라지고, 약 1억7000만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진다고 예측했다. CES가 펼쳐놓은 기술이 10년 내 우리의 생활 속에 파고들 것이라 생각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얼마나 바쁘게 바뀌어 가고 있는지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우정구(논설위원)

2026-01-06

근본적 사회개혁이 필요하다

중국의 런민(人民)대학, 쩡파(政法)대학, 두 대학의 객원교수로 베이징에 가 있을 때였다. 식사는 주로 쩡파대학의 식당을 이용하였는데, 우리 돈으로 150원 정도 하면 따뜻한 한 끼 식사를 먹을 수 있었다. 매번 밥을 먹을 때마다 감탄한, 가난한 학생들을 위한 중국 정부의 배려였다. 그러나 우리도 그런 때가 있었다. 박정희 정부 시절 내가 대학에 입학하였을 때 입학금과 등록금을 합하여 5, 6만 원 정도 하였다. 그 돈마저 대학에 접수된 숱한 장학금 하나를 타서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더 올라가면, 이승만 정부의 위대한 창안이 담긴 농지개혁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개혁이 성공함으로써 비로소 우리는 탄탄한 국민화합의 잠재력을 갖출 수 있었고, 이것은 6·25 전쟁 당시 엄청난 무형의 전투력으로 작용하였다. 박정희 정부의 공과에 대하여 여러 이론이 있을 수 있으나, 그때 마련된 국민 모두를 대상으로 하는 의료보험이나 산업재해보상 등 여러 사회보험 제도의 기초는 급속한 경제발전과 민주화의 밑바탕이 되었다. 그러나 그 후 이어진 정부에서는 이렇다 할 만한 사회개혁의 정책이 없었다. 특히 진보정부에서는 기존에 있었던 ‘사회적 사다리’를 하나하나 철거해 갔다. 대표적인 것이 소위 진보귀족들에 의해 도입된 로스쿨 제도이다. 대학의 등록금도 그간 엄청 높아졌으나, 로스쿨의 등록금은 그 배로 보면 된다. 또 로스쿨 제도로 인한 한국 법학의 전반적인 붕괴 현상의 야기 등 그 심각한 문제점이 제기되자, 지난 윤석열 정부 등에서는 임시미봉으로 우선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을 많이 마련하여 어려운 가정의 자제들도 로스쿨 진학의 꿈을 갖게 하겠다고 공언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그야말로 ‘남의 다리 긁는 격’의 엉뚱한 처방이다. 왜냐하면 장학금을 줄려고 해도 대부분 최상위 계층의 자녀들이라 줄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한편 과다한 등록금 외에도 로스쿨에 입학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사정(査定)요소의 하나로 학부의 성적이 들어간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가난한 집 자녀들은 학부를 다니며 아르바이트니 뭐니 해서 작은 돈을 벌어 학비나 생활비에 충당해야 하므로 애초에 좋은 성적을 받아두기가 대단히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은 부의 양극화,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절벽, 지위의 세습화 등으로 아주 어두운 시기를 지나고 있다. 잠재성장률은 고꾸라져 수년 전부터 1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 셈이다. 이 현상을 타파하기 위해서 과거의 농지개혁과 같은 과감하고 근본적인 사회개혁의 정책이 꼭 필요하다. 한국판 소수자·약자 보호정책(Affirmative Action)을 실시할 때가 되었다. 그 중의 하나를 임의로 예시하자면, 정부의 간섭이 미칠 수 있는 로스쿨이나 의예과, 의전원 입시에서 신입생의 1/3 정도를 중하위계층의 자녀들에게 먼저 배정하고 나머지를 일반전형으로 돌리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정책의 실시로 확보되는 사회적 유동성(social flexibility)은 지친 말처럼 축 늘어진 한국 사회에 다시 힘을 불어넣는다. 힘찬 ‘붉은 말’을 뜻하는 병오년 새해를 보며 떠오르는 단상이다. /신평 (사)공정세상연구소 이사장·변호사

2026-01-06

혁신의 지속성, 문화로 간다

혁신 문화의 기준은 ‘성과가 났는가‘가 아니라 ‘지금도 계속하고 있는가‘이다. 지속성은 혁신을 문화로 만들고, 문화는 기업의 운명을 바꾼다. 혁신은 즉각적인 답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질문을 던진다. ‘왜 이렇게 일해왔는가?‘ ’이 방식이 최선인가?‘ 이 질문에 불편해질 때 경영자는 선택해야 한다. ‘일하는 사고, 일하는 방법‘에 혁신을 지속해 나가야 한다. 혁신 성공은 성과의 크기가 아니라, 작은 개선이라도 끊기지 않으면 조직은 학습하고, 학습은 결국 성과로 돌아온다. 경영자는 혁신을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멈추지 않도록 지켜내는 것이고, 방향을 바꾸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자사 맞춤형 혁신활동체계를 위한 툴(Tools) 진화는 계속되어야 현업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론으로 공감하고 활용된다. 활동이 지지부진한 기업을 보면, 성과중심으로 운영했기 때문이다. 초기 성과가 없으면 회의가 줄고, 일의 우선순위가 바뀌며, ‘조금 뒤‘로 밀린다. 그 과정에서 현장은 배운다. ‘이번에도 잠깐이겠구나‘라는 내면의 흐름이면, 그 순간 혁신은 끝난다. 혁신 성공을 위한 ‘지속성‘의 중요성은 첫째, 혁신은 프로젝트가 아니라 ‘과정‘이다. 많은 기업이 혁신을 단기 캠페인·슬로건·과제형 프로젝트로 접근한다. 하지만 진정한 혁신은 성과가 보일 때까지 반복·축적되는 과정이다. 1년 혁신의 성과는 ‘점‘, 3년 혁신은 ‘선‘, 5년 이상 지속하면 ‘면(문화)‘에 이른다. 둘째, 지속성은 ‘학습 효과‘를 만든다. 혁신의 초기 성과는 미미하다. 실패의 원인 분석, 재시도 및 방법 개선, 반복 활동을 통해서 조직 학습 축척을 만든다. 지속하지 않으면 실패는 고급 낭비가 되고, 지속하면 실패는 자산이 된다. 셋째, 지속성은 구성원의 ‘진정성 인식‘을 갖게 한다. 현장은 매우 냉정하다. “이번에도 1~2년 하다 말겠지“, ”임원이 바뀌면 끝나는 거 아냐?“ 이 인식이 바뀌는 시점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신뢰를 증명하는 때에 이뤄지는 것이다. 혁신 지속성의 핵심 조건은 최고 경영층의 일관성이고, 리더의 태도에서 결정된다. 또한, 혁신은 의지만으로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정기 회의체, 혁신과제 KPI 연계, 평가, 보상 등 제도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작은 성과의 ‘연속성’이 대형 성과의 전조가 된다. 혁신활동체계는 자사 일의 특성에 맞게 진화하는 것이 지속성을 갖는 기본이다. 지속성이 되면, 혁신은 문화로 간다. 일하는 사고, 방법이 습관이 되고, 습관을 넘어 조직의 DNA화·체질화 되어 ‘스스로 문제를 보고 개선하는 것’이다. 혁신 지속성은 기업 경쟁력이 되고, 개선 속도, 학습 능력, 문제 해결 습관으로 나아가 조직 일하는 문화가 되는 것이다. 혁신은 화려한 시스템이 아니다. 작업 동선 하나를 줄이고, 불량 원인을 하나 더 파고 들어 줄이고, 표준을 지키는 것이다. 제조업에서 혁신의 지속성은 경쟁력 그 자체다. 설비와 기술은 모방할 수 있지만 문제를 발견하는 속도, 개선을 실행하는 습관, 학습이 축적되는 문화는 모방할 수 없다. 끊임없이 개선하는 기업이 지속 가능한 경영이 되고, 시장에서 오래 살아남는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2026-01-06

자연 속에서 인간 본연의 모습을 되찾다

마추픽추의 돌계단을 밟으며, 나는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문명의 정점에 서 있는 듯했지만, 동시에 그 덧없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인간은 돌을 쌓아 도시를 건설하고 역사를 기록했지만, 결국 그 돌마저 자연으로 회귀한다. 마추픽추는 묵묵히 그 진리를 증명하고 있었다. 진정한 여정은 그 후 시작되었다. 배낭을 메고 향한 곳은 아마존 정글. 그곳은 인간의 질서가 아닌, 생명 스스로의 법칙이 살아 숨 쉬는 곳이었다. 아마존은 남미 9개국에 걸쳐 뻗어 있으며, 브라질이 60%를 차지하고 페루, 콜롬비아, 볼리비아가 뒤를 잇는다. 지도 속 녹색 공간은 이제 온몸으로 느껴야 할 현실이 되었다. 새벽의 쿠스코 공기는 차갑게 느껴졌다. 우리가 탄 12인승 승합차는 해발 4300미터가 넘는 고산지대를 묵묵히 넘었고, 창밖으로는 우루밤바강이 은빛으로 굽이쳐 흘렀다. 운무에 잠긴 계곡과 숲이 스쳐 지나갔다. 문명의 흔적이 사라질수록 초록은 짙어졌고, 공기는 더욱 깊어졌다. 마누 국립공원에 가까워질수록 ‘아마존’이라는 이름의 무게가 느껴졌다. 그곳은 남미 대륙을 관통하는 생명의 혈관이자, 인류 태초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강과 정글이 어우러진 마누 국립공원(Manu National Park) 이었다. 정글에 발을 딛자, 공기가 확연히 달라졌다. 콘크리트 냄새 대신 흙, 습기, 나무의 숨결이 코를 간지럽혔다. 자동차 소음은 사라지고, 이름 모를 새들의 노랫소리와 숲의 미세한 떨림이 귀를 채웠다. 도시에서 나를 규정하던 직함, 역할, 성취는 이곳에서 무의미했다. 우리는 그저 숨 쉬는 존재, 살아있는 생명일 뿐이었다. 팀원 모두는 인간 이전의 상태로 돌아간 듯했다. 보트 위에서 누군가 외쳤다. “No pain, no gain!” 그러자 다른 이가 장난스레 응수했다. “No pain, no food!”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우리는 ‘No pain, no gain’ 팀이 되었다. 언어와 국적은 달랐지만, 땀과 침묵, 웃음이 우리를 하나로 묶었다. 3박 4일 동안 우리는 경쟁자가 아닌 동료였고, 소비자가 아닌 자연의 일부였다. 마지막 날, 누군가 나지막이 말했다. “자연은 우리에게 기다림을 가르치고, 그 안에서 진정한 자신을 만나도록 이끌어준다.“ 밤이 되자 정글은 낮보다 더 뚜렷한 모습을 드러냈다. 곤충들의 합창이 울려 퍼지고, 멀리서 물소리가 들려왔다. 별빛은 숲 위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고요 속에서 마음은 가벼워졌다. 자연은 침묵했지만, 그 침묵은 도시의 언어보다 더 많은 것을 전해주었다. 우리는 늘 ‘더 빨리, 더 많이’를 외치지만, 숲은 서두름이 없다. 그럼에도 숲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이 경험은 에드워드 윌슨의 ‘바이오필리아(Biophilia)’, 즉 생명을 향한 인간의 본능을 떠올리게 했다. 우리 DNA에는 숲, 강, 바람, 별빛을 그리워하는 기억이 남아 있다. 나무 아래에서 마음이 편안해지고, 물소리를 들으면 숨이 깊어지는 이유다. 자연과 단절된 현대인은 ‘자연 결핍’을 겪는다. ‘자연 결핍 장애(Nature Deficit Disorder)’라는 용어는 이러한 현상을 설명한다. 자연과의 단절은 주의력 저하, 스트레스 증가, 우울감, 창의성 감소로 이어진다. 뇌과학은 이를 뒷받침한다. 자연 속에서는 교감신경의 긴장이 풀리고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된다. 심박수와 혈압은 안정되고, 코르티솔 수치는 낮아진다. 피톤치드는 면역세포를 활성화하고, 물소리와 새소리는 감정을 안정시킨다. 우리는 편안함을 느끼는 순간,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것이다. 도시의 새벽은 엔진 소리로 시작된다. 엘리베이터는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사람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콘크리트 위를 걷는다. 건물로 둘러싸인 도시는 인공적인 사막과 같다. 스마트폰 속 초록으로 위안을 얻지만, 마음속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는다. 우리는 자연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태초의 명령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3박 4일간의 원시림 체험을 마치고, 정글은 말없이 나를 배웅했다. 안개 낀 강, 철새의 날갯짓, 흙과 나무의 숨결, 밤마다 들리던 소리들. 그것들은 다시 입을 수 없는 옷처럼, 설명할 수 없는 언어처럼 내 안에 남았다. 꿈같은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은 나를 지탱해 줄 것이다. 자연은 단순한 여행지가 아닌, 삶의 근원임을 숲은 가르쳐 주었다. 물러서는 정글의 끝에서 나는 다시 쿠스코로 돌아왔다. 젖은 흙냄새, 숨 쉬는 정글의 맥박, 밤을 가르던 곤충들의 합창이 몸 안에서 울린다. 정글에서 머무는 동안 자연은 나를 가르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본래 누구였는지를 조용히 기억나게 했다. 떠나는 발걸음에 아쉬움이 남는 이유는 정글을 두고 오는 아쉬움은, 그곳에서 만난 가장 단순하고 온전한 나를 잠시 놓아두고 가기 때문일 것이다. /김상국(세종대 명예교수)

2026-01-06

다수결의 절차적 정당성

‘민주’와 ‘독재’의 차이는 의사결정과정의 합리성과 공정성 여부에 있다. 민주적 의사결정 방식으로서의 다수결 원칙은 ‘절차적 정당성’이 매우 중요하다. 다수결은 다수가 소수의 의견을 존중하고, 대화와 토론을 통해 견해 차이를 좁혀나간다는 ‘절차적 정의(background justice)’를 전제로 한다. 이 전제를 무시하고 다수파가 힘으로 밀어붙인다면 민주주의는 ‘다수의 독재(tyranny of the majority)’가 된다. 영국의 정치학자 바커(E. Barker)는 “다수결 원칙은 양(量)과 질(質), 두 가지 측면이 있다”고 하면서 “다수파의 의견은 그것이 다수의 의견이면서도 공정한 의사일 경우에만 모든 구성원들의 승인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다수결의 본질이 단순한 ‘수의 지배’가 아니라 자유로운 토론을 통한 ‘이성의 지배’에 있기 때문이다. 다수파가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토론과정은 하나의 요식행위처럼 간주한다면 다수결은 절차적 정당성을 가질 수 없다. 우리의 정치 현실은 어떠한가? 다수파인 여당은 다수결의 전제조건인 대화와 토론은 소홀히 하면서 힘자랑만 한다. 민주당이 내란청산이라는 명분으로 국민의힘 해산을 주장하는 등 대화에 진정성을 보이지 않으니 야당은 여당이 아니라 국민을 상대로 거리투쟁에 나서고 있다. 민주주의는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해야 함에도 다수당이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면 진정한 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절차적 정당성이 결여된 다수결은 ‘법적 유효성 논란’을 일으키게 되고 ‘정치의 사법화’를 초래한다. 정치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사법적 판단에 의존하니 국회의 존재 이유를 알 수가 없다. 따라서 여당은 다수와 소수의 가변성 및 상대성을 인정하고 다수의 절대성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 어떤 정당이든 민심을 얻으면 다수당이 되고, 민심을 잃으면 소수당으로 전락하기 때문에 여야관계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게다가 다수 의사가 반드시 정의로운 것은 아니며 ‘중우정치(衆愚政治)의 위험성’도 배제할 수 없다. 흔히 정치인들은 ‘다수의 뜻’을 ‘국민의 뜻’이라고 포장하지만, 51%의 다수 의사가 49%의 소수 의사보다 낫다는 보장은 없다. 때문에 여당은 야당과의 대화·토론·협상을 통해 절차적 정당성 확보에 노력해야 하며, 특히 현재와 같은 승자독식 선거제도에서는 승자(다수)의 패자(소수)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더욱 절실하다. 다수결 원칙에서 중요한 것은 ‘다수라는 수의 크기’가 아니라 ‘의사결정의 절차적 정당성’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여당이 다수결의 핵심 전제인 대화와 토론이라는 숙의 과정은 형식화하면서 다수의 뜻이라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정치행태는 반드시 재고되어야 한다. 다수결 원칙이 ‘승자독식의 제도적 수단’으로 전락하면 소수의 저항과 투쟁이 격화되어 ‘정치는 전쟁’이 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헌법 제1조)’이며, 민주공화정(民主共和政)은 다수와 소수가 공존·공생하는 정치제도라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

2026-01-05

딜레마에 빠진 신공항, 공론화로 해법 찾아야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지지부진한 TK신공항 사업과 관련해 “더 이상 정부만 바라볼 수 없다”며 “대구시와 경북도가 빚을 내서라도 재원을 마련, 시작부터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지사는 지난 연말 기자 간담회서 “대구시와 경북도가 각각 1조원씩 지방채 발행 형태로 금융권 대출을 내 신공항 사업을 시작하자”는 제안을 처음 꺼낸데 이어 연초에도 페이스북을 통해 같은 주장을 되풀이 했다. 그는 “신공항 착공이 1년 늦으면 지역발전은 10년 늦는다”며 “부산가덕도 신공항보다 개항이 늦으면 항공노선을 선점할 기회도 놓치니 사업 착수부터 하자”며 대구시의 공동 분담을 압박하고 있다. 이 지사의 제안이 교착상태에 빠진 대구·경북 신공항 사업의 새로운 돌파구가 될지 앞으로 진행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지사 의견대로 할 경우 지자체가 금융 리스크를 분담함으로써 민간사업자의 참여 유도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다. 또 2030년 개항목표 달성 가능성도 높일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그러나 부채가 많은 지방정부의 재정 건전성이 악화되거나 재정 리스크가 커질 부정적 면도 있다. 대구시장이 공석이라 대구시의 동참이 쉽지 않아 보이는 것도 변수다. TK신공항 사업은 대통령, 국무총리, 여당 대표의 약속에도 올해 정부 예산에 한 푼도 반영되지 않았다. 지금 상태라면 언제 시작할 수 있을지 오리무중이다. 대구와 경북이 명운을 걸고 시작한 대형 프로젝트가 사실상 좌초될 위기다. 대구시장 선거를 앞둔 가운데 지역정치인의 시장 출마가 러시를 이루고 있다. 우리지역의 최대 현안이자 난관에 봉착한 TK 신공항 사업에 대한 시장 출마자들의 의견을 들어보는 것도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이 지사의 1조원 차입론에 대한 의견과 출마자 각자의 해법을 모아 공론화시키는 방법이다. 그들이 제시한 해법을 중심으로 시민 의견을 수렴하고 대구시는 이를 정책에 반영하자는 것이다. 이 지사의 지적대로 절체절명의 사업을 앉아서 기다리다 기회를 놓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2026-01-05

국힘, TK만 이긴 ‘2018년 地選’ 잊어선 안 돼

지방선거가 5개월도 안 남았는데 국민의힘에 적신호가 켜졌다. 대구·경북(TK)을 제외하고 전 지역에서 전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지난 연말 한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국민의힘은 내일 바로 선거한다면 2018년 지방선거 때처럼 대구시장, 경북도지사 빼고 다 뺏길 것”이라고 말했다. 그 당시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은 대구와 경북만 빼고 15개 광역단체장 자리를 민주당에 내줬다. 국민의힘은 그 이후 2020년 총선까지 전국 단위 선거에서 4연패를 기록했고, 2021년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취임해 당명과 정강·정책을 전면 쇄신한 뒤에야 반등 계기를 마련했다. 정당 지지율이 형편없이 떨어지니까 이번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후보로 뛰겠다는 비중 있는 인물도 별로 없다. 최대 격전지인 서울시장 선거는 오세훈 현 시장과 나경원 의원 외엔 대안이 없고, 경기도지사 선거는 안철수·김은혜 의원의 불출마 기류 속에 유승민 전 의원마저 등 돌린 상태다. 인천과 충청권 역시 현역 재출마 외에는 눈에 띄는 도전자가 없다. 상대 당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어렵다는 인식이 당내에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당 안팎에서는 보수 대통합 등 특단의 대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쇄도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 지도부는 여전히 ‘내부 단합이 먼저’라는 고집을 꺾지 않고 있다.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당내 통합을 하는 데 있어서 걸림돌이 먼저 제거되어야 한다”며 한동훈 전 대표를 징계하기 위한 절차에 들어갈 것임을 시사했다. 보수통합을 위한 ‘장(장동혁)·한(한동훈)·석(이준석) 연대’ 성사 가능성도 물 건너간 셈이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도 최근 “지방선거에서 국힘과 강한 경쟁을 하겠다”며 연대론에 선을 그었다. 현재로선 국민의힘은 고립무원 상태다. 당이 이처럼 존립 위기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지도부가 외연 확장은 외면한 채 오히려 내부 갈등을 유발하는 쪽으로 당을 운영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2026-01-05

지금 여기에

‘신이 존재 하지 않는 곳’에서 삶을 산다는 것. 그것은 어떤 것일까. 홀로 가는 삶. 평안이 약속되지 않는 삶. ‘누군가 전부를 책임지고 있다는 믿음’에 기대지 않는 삶. 그곳에선, ‘모든 고통에는 이유가 있다’는 말도 의미가 퇴색하며, ‘결국은 잘될 거라’는 위로도 사라진다, 신의 부재 속에 남는 것은, 설명되지 않는 사건들과 그것을 겪어야 하는 몸과 마음 뿐. 신이 부재한 자리에 선 인간은 더 이상 우주의 중심도, 누군가의 계획 속에 배치된 존재도 아니다. 오직 조건과 조건 속에서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하나의 사건일 뿐. 신이 부재한 그곳에 선 자는, 중심도 아니고, 선택받지도 않았으며, 특별하지도 않다. 의미는 더 이상 하늘에서 내려오지 않는다. 신이 부재한 자리의 도덕은 더 이상 명령이 아니다. 타인의 고통을 알아차리는 감각, 말과 행동이 일으킬 파문에 대한 감수성 그 자체다. 이곳의 도덕은, 신의 감시가 사라진 자리의 빛남이요, 신의 처벌이 전제되지 않은 확고함이다. 보상이 전제되지 않으므로, 도덕이라는 감각은 더 섬세해진다. 신이 부재한 자리는 변명도 없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말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무책임이 아니라, 삶을 더 조심스럽게 만든다. 매 순간의 선택은 신에게 보고되지 않으며, 오롯이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영원히. 신이 부재한 삶의 불안은 의미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세계를 통제할 수 없음에서 오는 떨림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뿐, 고통을 정당화하지도, 의미로 포장하지도 않는다, 신이 부재한 삶에서는 평안은 목표가 아니다. 그저 우연히 찾아오는 방문객일 뿐. 움켜쥠을 놓을 때, 설명하려는 욕망을 멈출 때, 세계를 평가하지 않을 때, 평안은 그 틈으로 스며든다. 신이 부재한 삶은 불확실성의 바다를 향한 항해. 근거(신) 없음의 근거 위에서 공존한다는 공감은, 신이 보증한 형제애보다 더 조용하고 현실적인 연대를 낳는다. 신이 부재한 세상의 사람들은 깨달음도 완성도 구원도 말하지 않는다. 신을 떠난 생각은 더 이상 이야기를 만들지 않으며, 신을 떠난 불안은 더 이상 해답을 구하지 않으며, 신을 떠난 의미는 더 이상 강박에 시달리지 않는다. 이야기와 해답은 필요 없다.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설명의 여백, 의미의 틈, 침묵의 공간을 자신으로 채운다. 자기 삶을 설명해 줄 타자를 더 이상 찾을 필요도 없다. 근거 없이 살 수 있고, 의미 없이 무너지지 않으며, 구원 없이도 평안을 경험할 수 있다, 잠시 움켜쥐는 손이 풀릴 때, 설명하려던 입이 닫힐 때, 세계를 그대로 두는 용기가 생길 때 평안은 온다. 누군가 기도할 때, 누구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누군가 금식할 때, 누구는 먹는다. 누군가 신의 품에서 놀고 있을 때, 누구는 사람들 속에서 논다. 누군가 신을 찾을 때, 누구는 자신을 찾는다. 누군가 구원을 찾아 떠날 때, 누구는 지금 이 자리에 머문다. 그대는 누구인가? /공봉학 변호사

2026-01-05

삶이란 무엇인가

정초가 되면, 누구나 한 번쯤은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그에 앞서 ‘삶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것이 순서일 것 같다. 사람의 삶이란, 다층적 구조를 가졌기 때문에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지구생태계의 한 종인 생물학적인 삶에서부터 사회적인 삶, 철학적인 삶, 종교(영성)적인 삶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층위를 가진다. 사람의 삶에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생물학적인 삶이다. 동물의 일종으로 개체의 생존을 유지하고 번식하려는 본능에 따른 삶이다. 가장 저 층위의 삶이라 할 수 있지만, 다른 모든 층위의 바탕이 되는 만큼 가장 기본이 되는 삶인 것이다. 물론, 생존만을 삶의 목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아무리 숭고한 이상과 가치도 살아 있는 것을 전제로만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인간은 또한 사회적 존재다.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인식하고 정체성을 형성한다. 가족, 친구, 공동체는 삶의 의미를 확장시키며 책임과 연대의 가치를 가르쳐 준다. 사회 속에서 인간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배운다. 동시에 사회는 경쟁과 비교를 통해 개인을 억압하기도 한다. 그리고 사회적 성공이 삶의 기준이 될 때, 인간은 자아를 상실하기 쉽다. 따라서 사회 속의 삶은 소속과 자율 사이의 균형을 필요로 한다. 인간을 다른 존재와 구별 짓는 특징의 하나는 삶의 의미를 묻는다는 점이다.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알기에, 지금의 삶이 무엇을 향해 가는지 질문한다. 철학은 이 질문에 대해, 의미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선택 속에서 만들어진다고 말해 왔다. 삶은 이미 정해진 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선택과 책임을 통해 형성된다. 의미 없는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의미를 외면한 삶이 있을 뿐. 오랜 세월 인류는 삶을 종교적·초월적 관점에서 이해해 왔다. 종교는 인간의 삶을 우연이 아니라 목적을 가진 존재로 해석하며, 고통과 죽음에 대해서도 의미를 부여한다. 오늘날 종교적 신앙이 약해졌다고 해도, 인간은 여전히 자신을 넘어서는 가치를 필요로 한다. 정의와 사랑, 희생과 진리 같은 가치는 개인의 이익을 초월하며, 삶에 깊이를 더한다. 인간은 자신만을 위해 살 때보다, 더 큰 가치를 지향할 때 삶을 지속할 힘을 얻는다. 삶의 이 네 가지 측면은 서로 분리될 수 없다. 이 모든 차원이 긴장과 균형 속에서 통합되는 과정이 삶이다. 어느 하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렇다면 삶의 방향은 어디를 향해야 하는가. 삶의 목적은 하나로 정해져 있지 않지만, 분명한 방향은 없지 않다. 성장하는 방향, 책임지는 방향, 타인에게 기여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때 삶은 깊어진다. 목적이 있는 삶은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실패와 고통을 견딜 이유를 제공한다. 삶은 완성된 답이 아니라 끝없이 이어지는 질문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물음에 대한 태도가 곧 그 사람의 삶이 된다. 생존을 넘어 의미를 묻고, 관계 속에서 책임을 지며, 자신을 넘어서는 가치를 향해 나아가려는 노력 속에서 인간의 삶은 비로소 완성이 된다.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2026-01-05

오래 기억될 안성기의 삶과 죽음

영화제작자로 일했던 아버지의 친구 김기영 감독의 작품 ‘황혼열차’에 아역배우로 출연한 게 그가 다섯 살이던 1957년이었다. 마지막으로 영화 카메라 앞에 선 것은 2023년 제작된 김한민 감독의 ‘노량-죽음의 바다’. 자그마치 66년의 장구한 세월이었다. 빼어난 연기력과 스캔들 없는 모범적인 사생활로 많은 팬들에게 사랑받았던 영화배우 안성기가 5일 오전 영면에 들었다. 1952년에 태어났으니 향년 74세. 20세기 후반에서 21세기 초반에 걸쳐 한국 영화와 함께 울고 웃었던 주요한 배우 한 명이 우리 곁에서 영원히 사라진 것이다. 안성기는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베트남어를 공부했다. 군 복무는 ROTC로 마쳤다. 전공을 살려 외국에서 일하고 싶어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자, 1977년 아역이 아닌 성인배우로 관객들 앞에 돌아왔다. ‘만다라’ ‘고래사냥’ 등에 출연한 1980년대는 말 그대로 ‘배우 안성기의 전성시대’였다. 1년에도 몇 편씩 주목받는 영화에 등장해 극장을 찾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눈물, 웃음과 해학을 선물했으니. 그랬기에 대종상을 포함한 영화 관련 상도 40회 이상 받았다. 60년이 넘는 시간 동안 180편에 가까운 영화에 출연하며 왕부터 거지, 사장부터 말단 회사원까지 다른 사람의 삶을 사실적으로 연기했던 탁월한 배우의 죽음 앞에 적지 않은 영화팬들이 아쉬움을 표하며 명복을 빌고 있다. 지상에서의 삶을 끝내고 눈물과 고통이 없는 피안(彼岸)으로 떠난 안성기의 발인은 오는 9일 오전 6시에 엄수된다. 한국 영화사에 ‘잊히지 않을 이름’으로 새겨질 것이 분명한 그의 삶과 죽음은 오래 기억될 듯하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6-01-05

정당은 나쁜 사람만 골라 공천하나

화불단행(禍不單行)이라는 말이 있다. 나쁜 일은 한 번에 그치지 않고, 겹치기로 덮친다는 말이다. 요즘 정치인들의 못된 짓이 그와 같다. 못된 짓이 드러나면 하나로 그치지 않는다. 얼마나 나쁜 일을 많이 하면 그럴까? 이게 드러난 사람들만의 문제일까? 신설한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로 지명된 이혜훈 전 의원에 대한 폭로가 줄을 이었다. 그에게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옹호했다고 지적하자, “당파성에 매몰돼 사안의 본질을 놓쳤다”라고 사과했다. 그 뒤에도 여러 가지 갑질 폭로가 나오더니, 급기야 땅 투기 의혹까지 터졌다. 인천공항 개항 1년 전인 2000년 연고도 없는 영종도에 이 후보자의 배우자가 잡종지 6611㎡(약 2000평)을 사들였다. 그런데 2006년 한국토지공사와 인천도시개발공사가 공시지가 13억8800만 원 정도이던 땅을 39억2100만 원에 수용했다. 세 배 장사다. 더 가관인 것은 여야 공방이다. 이재명 정부에 발탁된 이 후보자를 배신자로 낙인 찍은 국민의힘은 “이재명 정부 인사 검증 시스템이 이토록 무너졌나”라고 비난했다. 그러자 민주당에서는 “국민의힘에서 다섯 번이나 공천받으신 분”이라고 빈정댔다. 분명한 것은 정치권 검증이라는 게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이라는 점이다. 그뿐 아니다. 김병기 전 민주당 원내대표가 향응과 특혜 의혹으로 공격받더니, 부인이 구의회 부의장 업무추진비 카드를 사용했다는 녹음이 공개됐다. 이어서 강선우 당시 민주당 의원이 2022년 지방선거 때 김경 서울시의원으로부터 1억 원을 받았다는 대화가 담긴 녹음이 폭로됐다. 강 의원이 당시 민주당 수석사무부총장이자 서울시당 공천관리위원회 간사였던 김병기 의원에게 “살려주세요”라고 애원하는 목소리가 담겼다. 김 의원은 “돈을 당장 돌려주라”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 대화 바로 다음 날 컷오프됐던 김경 시의원 후보가 민주당 단수 후보로 공천받았다. 컷오프된 후보, 거기에 공천 뇌물 1억 원까지 준 후보가 하루 만에 단수 후보로 둔갑했다. 뇌물 효과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 1억 원이 김 전 원내대표나 그보다 더 힘이 센 사람에게 넘어갔다고 의심할 만하다. 이번에는 김병기 전 원내대표가 직접 공천 뇌물을 받았다는 폭로가 나왔다. 2020년 총선을 앞두고 김 전 원내대표의 부인이 구 의원 두 사람으로부터 각각 2000만 원과 1000만 원을 받았다가 몇 달 뒤 돌려줬다는 것이다. 이수진 전 민주당 의원이 돈을 준 사람들의 탄원서를 폭로했다. 이 탄원서는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표의 김현지 보좌관에게 전달했으나, 김병기 의원에게 도로 보내고 끝냈다고 한다. 경찰이 증거물을 도둑에게 준 꼴이다. 이 바람에 이재명 대통령, 김현지 청와대 제1부속실장에게까지 불똥이 튀었다. 지난 총선 민주당 공천 때도 고무줄 기준이 적용됐다.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비판이 나왔다. 오는 6월 지방선거가 있다. 여론조사가 한창이다. 선거도 전에, 후보가 나오기도 전에 당선자가 정해져 있는 곳이 많다. 당을 믿기에, 어쩌면 경쟁 정당이 너무 싫어, 찍을 정당을 정해놓은 유권자가 많다. 오죽하면 말뚝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말이 나오겠나. 그럴수록 중요한 게 공천이다. 정당의 책임이 무겁다. 거대 양당의 공천을 받지 못하면 당선이 별 따기다. 그런데 유권자의 무한신뢰를 이용해 ‘공천 장사’를 한다. 오래된 과거가 아니다. 어쩌면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반복된다. 선거제도 개편이 개헌보다 어렵다고 한다. 그런데 선거제도보다 더 중요한 게 공천이다. 선거제도가 아무리 공정해도, 공천이 잘못되면 헛일이다. 선거를 아무리 공정하고, 투명하게 치러도, 공천이 야바위판이 되면 비리 협잡꾼을 뽑게 된다. 후보가 유능한지, 깨끗한지 유권자들이 판별할 기회를 빼앗긴다. 정당이 추천한 후보 가운데서 고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당과 유권자가 양극단에서 대결하는 정치 구도에서 공천은 더욱 중요하다. 공천을 사고파는 사람은 민주주의의 적이다. 유권자가 깨어야 한다. ‘말뚝’이 아니라 ‘좋은 사람’을 뽑아야 한다. 말이 아니라 표로 응징하는 수밖에 없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6-01-04

“AI 혁명의 파도 위에 올라타 미래를 준비하자”

2026년 새해, ‘AI를 활용하고 주도하는 자가 살아남는다’ 를 시작한다. 52주에 걸쳐 매주 인공지능(AI) 기술의 진화, 삶·일터·지역사회의 변화, 그리고 우리의 대응 전략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논의를 담을 예정이다. 왜 지금 AI인가? 2022년 말 ChatGPT 등장 이후 AI는 전 세계적으로 급속히 확산됐다. 개인의 AI 이용률은 2024년 33.3%, 전체 AI 서비스 경험자는 60%를 넘어섰으며, 2025년에는 80%에 육박했다. 기업의 도입률도 90%에 근접했다. 이는 단순히 기술 발전이 아닌, 실생활 전반에 AI가 깊숙이 침투했음을 의미한다. 포항 죽도시장의 한 건어물 가게 주인은 AI로 SNS 홍보 문구를 생성하고, 형산강 카페거리의 카페 주인은 메뉴 설명과 인스타 콘텐츠를 제작한다. 교사들은 맞춤형학습 자료를 만들며, 구룡포 어촌계는 AI 번역기로 외국인 관광객과 소통한다. 심지어 포항테크노파크 입주 업체들은 AI로 업무를 자동화하여 생산성을 높이는 일들이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이제 AI는 특정 산업이나 선진국의 이야기가 아니다. 기술 수용 속도가 사용자 적응 속도를 압도하면서, 모두가 AI를 일상 도구로 받아들이는 시대가 되었다. 문제는 이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이다. 활용하는 자와 외면하는 자의 격차 2024년 연구 결과에 따르면, AI를 업무에 활용하는 직장인과 그렇지 않은 직장인 간 생산성 격차가 최대 40%에 달했다. 동일한 시간 동안 한 사람이 10개의 업무를 처리할 때, 다른 사람은 6개밖에 완료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2025년에는 이 격차가 일부 직무에서 50%까지 확대되며 경고음을 울렸다. 더욱이 명문대 컴퓨터공학과 졸업생의 취업률이 70% 아래로 떨어졌고, 국내에서도 기업이 신입 개발자 대신 AI 도구 활용 경험이 풍부한 경력직을 선호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과거 산업혁명이 기술 발전과 일자리 창출을 동반한 반면, AI는 기존 일자리를 대체하며 직업 지형을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다. ‘트렌드 코리아 2026’이 말하는 AI 시대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발표한 ‘트렌드 코리아 2026’은 AI 시대를 관통하는 두 가지 키워드를 강조한다. 첫째, ‘Human in the loop’는 AI를 도구로 활용하되 인간의 비판적 사고와 윤리적 판단을 결합해야 함을 의미한다. AI의 출력을 맹신하지 않고 창의성과 인간적 통찰력을 더하는 것이 핵심이다. 둘째, ‘레디코어(ReadyCore)’는 “준비된(Ready) 상태”가 삶의 핵심(Core) 가치가 되었음을 선언한다. 변화에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학습하고 유연하게 적응하는 자세가 생존의 필수 조건이 되었다는 것이다. ‘주도’한다는 것의 의미 본 제목인 ‘AI를 활용하고 주도하는 자가 살아남는다’에서 ‘주도’란 AI에 종속되지 않고, AI를 도구로 삼아 능동적으로 활용한다는 의미다. AI를 주도한다는 것은 세 가지를 뜻한다. 첫째, AI가 무엇인지,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AI는 마법 상자가 아니라 특정 원리로 작동하는 기술임을 알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단순한 정보 검색 수준에만 AI를 활용하며,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채 피상적으로만 사용하고 있다. 둘째, AI를 내 필요에 맞게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다. 좋은 질문을 던지는 법,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한 대화 기술, 여러 AI 도구 중 상황에 맞는 것을 선택하는 판단력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엔비디아 회장 젠슨 황이 제시한 AI 발전 단계를 보면, 우리는 이미 AI 에이전트 시대에 진입했다. 하지만 AI 사용자 대부분은 여전히 프롬프트 단계조차 완전히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 셋째,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역량을 키우는 것이다. 창의성, 공감 능력, 윤리적 판단, 비판적 사고는 여전히 인간의 영역이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의 감정 교류,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의 창의적 문제 해결, 윤리적 딜레마 앞에서의 가치 판단은 여전히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다. 심화되는 AI 사각지대 더욱 심각한 문제는 생성형 AI에 접근조차 하지 못하는 분들이 상당히 많다는 점이다. AI 기술로부터 소외되는 계층이 형성되면서 ‘AI 사각지대’가 생겨나고 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그 격차는 점점 넓어질 것이다. 특히 우리 지역 포항과 경북의 경우, 수도권에 비해 AI 교육 기회가 상대적으로 부족하고,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의 AI 활용률도 낮은 편이다. 이는 단순히 기술 격차를 넘어 경제적 격차, 나아가 지역 경쟁력의 격차로 이어질 수 있다. 52주, 함께 걸어갈 여정 이러한 현실 앞에서, 경북매일신문 독자 여러분과 함께 1년간 네 단계의 여정을 걷고자 한다. 1분기(1~13주)에는 AI가 무엇인지 이해하는 기초를 다진다. ChatGPT, Claude, Gemini 같은 대화형 AI부터 Midjourney 같은 이미지 생성 AI까지,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도구들을 소개한다. 2분기(14~26주)에는 일상 속 AI 활용법을 알아간다. 업무 이메일 작성, 회의록 정리부터 자녀 교육, 여행 계획, 건강 관리까지 생활 밀착형 사례를 다루며, 매주 ‘이번 주 AI 실습’을 통해 독자 여러분이 직접 따라 하며 배울 수 있도록 구성한다. 3분기(27~39주)에는 한 단계 더 나아가 AI로 부업을 시작하는 법, 소상공인의 실전 활용법, 업무 자동화 구축 등 실질적인 경제 활동과 연결된 이야기를 나눈다. 4분기(40~52주)에는 AI 저작권, 딥페이크, 일자리 변화 같은 사회적 이슈부터 우리 지역 포항과 경북이 준비해야 할 AI 전략까지 폭넓게 조망한다. 포항의 철강 산업, 경북의 농업, 관광업이 AI와 어떻게 결합될 수 있는지, 지역 청년들이 AI 시대에 어떤 기회를 만들 수 있는지 함께 고민한다. 지금, 선택의 시간 AI 혁명의 파도 위에 올라타 미래를 준비할 것인가? 아니면 일자리가 줄어드는 사회에서 경쟁에 매몰될 것인가? AI를 활용해 삶을 업그레이드할 순간이다. “과도기가 지나갈 것”이라 여기며 방관한다면 기회를 놓칠 뿐이다. 경북매일신문과 함께하는 52주 프로젝트로 AI 시대의 주인공이 됩시다. AI를 두려워하지 않고, 내 일에 적용해 성장하는 법을 배운다면 1년 후에는 AI를 활용한 혁신가로 거듭날 것이다. /서용운 계명대 교수·글로벌 창업대학원 벤처창업학과 /그래픽=서용운

2026-01-04

소한(小寒)과 ‘세한도’

지난 며칠 동안 신년 강추위가 찾아왔다. 그저께인 1월 3일 청도 아침 최저기온은 영하 11.6도, 봉화는 16.7도였다. 그래도 예전에 맹위를 떨치던 ‘소한 추위’가 없어서 한시름 놓고 있는 형편이다. 대한이 소한 집에 놀러 왔다가 얼어 죽었다는 말을 자주 들으며 살아왔다. 아파트와 승용차로 무장한 현대 한국인들은 이런 옛말이 무척 낯설게 다가올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차가운 날이면 추사(秋史)와 ‘세한도(歲寒圖)’ 생각이 절로 난다. 이조판서로 이름을 날리던 김정희(1786~1856)는 안동 김씨의 득세와 더불어 1840년 윤상도의 옥사와 관련하여 제주 대정(大靜)으로 귀양살이 떠난다. 고위직에 있을 때 문전성시(門前成市)의 경험을 기억하는 추사에게 위리안치(圍籬安置) 유배 생활은 그야말로 뼈를 깎는 고초였을 것이다. 아무도 찾지 않는 황량한 유배지에 귀한 서책을 바리바리 들고 찾아온 제자 이상적(1804~1865)에게 그려준 그림이 ‘세한도’다. 중인 출신 역관으로 청나라를 자주 드나들었던 우선(藕船) 이상적에게 추사는 크게 감동한 모양이다. 논어 ‘자한편(子罕篇)’에 나오는 구절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야(歲寒然後知松栢之後彫也)”의 첫머리를 따서 화제(畫題)로 삼았다. ‘한겨울이 되어서야 비로소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안다’는 글귀는 변함없이 스승을 대하는 이상적의 마음 씀씀이와 닮았다. 그래서 화제인 ‘세한도’를 가로로 쓰고, 바로 그 옆에 세로로 ‘우선시상(藕船是賞)’ 네 글자를 쓴 것이다. 국보 180호로 지정된 ‘세한도’는 여전히 많은 이의 사유와 인식에 자양분을 선사하는 귀한 문화자산이다. ‘세한도’와 더불어 해남 대흥사의 ‘대웅보전(大雄寶殿)’ 편액은 추사의 고된 유배 생활의 결과를 입증한다. 추사는 대정 유배길에 초의선사에게 원교(圓嶠) 이광사(1705~1777)가 쓴 ‘대웅보전’ 편액을 내리게 하고 자신의 글씨로 대신한다. 그런데 해배(解配)되어 귀로에 들른 대흥사에서 추사는 자신의 편액을 떼게 하고, 이광사의 편액을 다시 걸도록 부탁한 것이다. 천 리나 떨어진 외로운 섬 제주에서 8년의 귀양살이를 경험한 김정희의 내면세계와 대상을 바라보는 인식은 훨씬 깊어지고 유장해진 것이 아닐까! 한겨울 북풍한설과 매서운 추위를 이겨내고 꿋꿋하게 서 있는 낙락장송처럼 의연하고도 굳세진 추사의 인품이 ‘무량수각(無量壽閣)’ 네 글자에 담긴 것 같다. 삐뚤빼뚤하되 둥글둥글한 자체(字體)가 많은 것을 시사한다. 24절기 가운데 스물세 번째인 소한을 지나면서 우리 세대가 살아온 날들을 새삼 돌이킨다. 음습한 날이면 연탄가스 중독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야 했고, 콩나물 버스 안내양들이 추락사를 겪어야 했던 저 암울했던 1970~80년대! 도저히 밝은 미래를 꿈꾸거나 기대할 수조차 없던 군부독재의 잔혹한 고문과 투옥, 학살과 은폐, 용공(容共) 조작(造作)까지. 모진 겨울날이면 0.7평의 독방에서 겨울을 나야 했던 양심수들과 그들의 가족 생각이 우심(尤甚)해지곤 했다. 그런 칠흑(漆黑) 같은 죽음의 질곡(桎梏)을 넘어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우리 어린 것들에게 물려줄 자랑스럽고 따사로운 문화·예술의 나라 대한민국이 멀지 않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6-01-04

말띠 해

올해는 병오년(丙午年) 말띠 해다. 불의 기운을 지닌 병(丙)과 말을 상징하는 오(午)가 만나 말띠 중에서도 60년 만에 돌아오는 붉은 말의 해다. 띠는 한해에 붙은 십이지 동물의 이름에서 따왔다. 십이지는 쥐, 소, 호랑이, 토끼 등 12마리의 동물을 상징하는데, 말띠는 그 중 일곱 번째다. 한국인은 태어날 때 모두가 띠를 가진다. 한해의 수호 동물로 자신의 띠가 정해지며 자신 띠와 연결해 성격, 운명, 결혼, 궁합 등을 예측한다. 띠 문화는 한국인과 함께 해온 오랜 풍속이다. 전해오는 띠 풀이에 의하면 말띠 생은 밝고 개방적이다. 떠들썩한 것을 좋아하고 유머가 있다. 어떤 생각이 결정되면 목표가 관철될 때까지 한눈팔지 않고 계속 나아가 성공률이 높다고 한다. 그러나 말띠의 기운은 처음에는 거창하나 끝이 오므라드는 유형이다. 아차 하는 순간 아무것도 쥔 것이 없어질 수 있으므로 낭비와 유흥을 조심해야 한다. 우리나라 속설에 말띠 여성은 “팔자가 세다”고 한다. 1990년 백말 띠 해에는 여아 출산을 기피하는 일들이 있었고, 백말띠 해를 앞둔 12월에는 제왕절개 수술이 늘었다고도 한다. 다음 말띠 해 출산 성비가 116명까지 치솟았다고 하니 여아 출산 기피가 거짓은 아닌 듯하다. 세태가 달라진 지금, 말띠 여성에 대한 띠풀이도 다르다. 생활력이 강하며 독립적이고 리더십이 강하다. 말은 각종 설화에서 하늘과 지상을 잇는 상스럽고 지혜로운 동물로 묘사된다. 신라 시조 박혁거세 탄생 설화에 나오는 승천하는 말이 그러하다. 말은 힘과 용맹의 상징이다. 올 한해 우리나라는 말띠 기운이 크게 뻗어 국태민안(國泰民安) 했으면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6-01-04

연초부터 속도내는 충청·호남권의 통합 추진

대전과 충남이 행정통합을 추진키로 한데 이어 광주와 전남도 행정통합에 시동을 걸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수도권 일극체제 극복을 위해 광역단체 간의 행정 통합론을 띄우면서 대전·충남과 광주·전남이 올 6월 광역단체장 선출을 목표로 양 시도 간 행정통합에 속도를 내고 있다. 강기정 광주시장과 김영록 전남지사는 2일 광주·전남 대통합 추진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두 단체장은 “올 6월 지방선거에서 통합 단체장을 선출하는 것을 목표로 양 지역 통합추진협의체를 출범시킨다”고 밝혔다. 작년 행정통합에 합의한 대전·충남은 1월 중 대전·충남통합 특별법 발의, 2월 중 본회의 통과를 추진 중이다. 광주·전남도 대전·충남과 같은 타임라인으로 특별법을 추진할 계획이다. 충청과 호남에서 통합 논의가 갑자기 불붙기 시작한 배경에는 이 대통령의 독려가 주효하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민주당 소속 대전·충남 국회의원을 초청해 “대전·충남 통합을 추진하자”고 제안했고 “수도권 과밀문제의 대안으로 통합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조만간 광주·전남 국회의원도 불러 똑같은 취지의 간담회를 가진다고 한다. 대구와 경북은 전국에서 가장 먼저 광역단체 행정통합을 시도했으나 홍준표 시장의 대선 출마로 지금은 논의가 중단된 상태다. 현재로선 새 단체장 선출이후 이 문제가 다시 논의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충청과 호남의 통합 추진이 계획대로 이뤄진다면 대구·경북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하는 점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5극 3특은 권역 통합을 통한 인구를 늘리는데 그치지 않는다. 국가 자원 배분 시스템이 권역 중심으로 재편됨을 의미한다. 대구·경북이 통합의 타이밍을 놓치면 국가 예산이나 국책사업 유치에 불리해진다는 뜻이다. 중앙정부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모든 국가 자원이 통합권역으로 몰릴 수 있다는 것을 지역 정치권은 잊어선 안 된다. 충청과 호남이 경쟁하듯 통합을 서두는 것도 공공기관 이전 등 국가자원 배분의 선점을 노린 것이다. 대구와 경북 지도자들의 현명한 판단이 필요한 때다.

2026-01-04

국힘 위기 극복, ‘보수통합’ 외에 다른 길 있나

6·3 지방선거를 5개월여 앞두고 ‘보수 대통합’이 화두로 떠올랐다. ‘자강(自强)’을 내세우며 강성 당원 중심으로 당을 이끌고 있는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게 노선 변경을 촉구하는 보수진영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일 자신을 예방한 장 대표에게 미래를 위한 따뜻한 보수를 강조하며, “‘수구 보수’가 돼서는 안 된다”고 했다. 지난 연말부터 분출하고 있는 보수 통합 요구를 받아들이라는 충고다. 하루 앞선 새해 첫날 오세훈 서울시장도 국민의힘 지도부가 모두 모인 신년 인사회에서 “우리 당이 목소리가 높은 극소수 주장에 휩쓸리지 않아야 한다”며 당 지도부를 비판했다. 그동안 우위를 차지했던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최근 여당 후보들과 오차범위 내에서 경합하는 결과가 잇따라 나오자 위기감을 느낀 것이다. 같은 처지인 박형준 부산시장, 유정복 인천시장, 김태흠 충남지사 등도 모두 장 대표에게 포용적 리더십을 요구했다. 이날 경기도지사 출마설이 나오는 유승민 전 의원도 CBS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지금 국민의힘은 최악으로 쪼그라들었고, 이런 모습으로는 도저히 선거를 치를 수 없다”고 했고, 보수진영의 주요 축인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역시 “보수는 윤석열에 대한 미련을 내려놓고, 새로운 정책적 대안을 세워야 한다”고 했다. 문제는 이러한 유력 보수인사들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장 대표는 여전히 자강론을 고집하고 있다는 것이다. 통합이나 연대가 자강을 해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국민의힘이 지금처럼 ‘윤 어게인 스피커’들에 둘러싸여 당을 폐쇄적으로 운영하면 ‘집토끼’인 보수 유권자들도 등을 돌리는 날이 올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를 보면 이를 여실히 느낄 수 있다. 국민의힘이 지방선거에서 참패를 면하려면 범보수 세력이 통합해 외연을 넓히는 길 외엔 달리 방법이 없다.

2026-01-04

화단의 변신

한 평 정도 되는 작은 밭 가운데 동백나무가 서 있다. 겨울의 추위를 담은 꽃봉오리들이 조금씩 그 크기를 키워가고 있다. 그 밑으로는 배추를 다듬고 남은 겉껍질들이 찬바람에 배를 내어 놓은 채 시들어가고 다른 쪽에는 파릇파릇 겨울 채소가 한 뼘 정도 자라고 있다. 텃밭의 이야기가 아니고 아파트 화단 모습이다. 이곳은 오래 된 5층짜리 건물이다. 옆으로는 20여 층의 고층 아파트가 그 높이를 자랑하고 있다. 그곳은 정원석을 경계로 삼아 나무와 꽃들이 계획적으로 잘 조경이 되어 있다. 확연히 비교되는 모습이다. 초봄 이곳을 지나면서 깜짝 놀랐다. 화단에 나무나 꽃은 거의 없었고 누군가가 고랑을 일구어 놓았다. 검은 비닐을 죽 깔아놓은 곳도 있었다. 무언가를 심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한쪽 구석에는 비료 포대가 여러 개 쌓여 있었다. 아파트 앞뒤를 다 돌아보아도 그런 모습이었다. 벌써 어느 곳에는 쪽파, 양파가 자라고 있었고 다른 곳엔 부추 등이 자라고 있었다. 아파트라면 당연히 잘 조경된 화단이 있을 것이라 생각해왔기에 그런 모습에 솔직히 충격을 받았다. 처음 든 생각은 누가 제재를 가해야 하지 않나 하는 것이었다. 예쁜 꽃이나 나무를 심어야 마땅할 터인데···. 봄이 지나면서 화단의 텃밭은 그 종류도 다양해졌다. 비교적 넓은 곳에는 가지, 고추, 깻잎, 배추 등이 심어져 있었다. 고추나 깻잎은 여름으로 접어들자 높이도 제법 커져 나름 울창해보였다. 가끔은 나비가 날아드는 모습도 보게 되어 궁금한 마음에 키우는 채소의 종류를 살펴보았다. 대충 20여 종은 되는 것 같았다. 어느 주민이 정성들여 가꾸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관리사무소에서 제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더 이상하게 느껴졌다. 집에 친구들이 놀러와 같이 산책을 하다가 텃밭이 된 화단을 보고 저게 뭐냐며 깜짝 놀랐다. 모종을 사서 심고 키우는 수고를 생각하면 사서 먹는 것이 더 낫지 않냐고 하면서. 지극히 합리적인 생각이라고 느끼며 나 역시 변해가는 화단을 보며 지나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었다. 어느 날 아파트의 주민을 만나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다. 과거에 큰 공장이 있어서 결혼한 젊은 사람들이 많이 살았단다. 그 자녀들이 다 커서 대부분 독립해 나가고 나이가 든 사람들만이 주로 남아 있다고 한다. 커다란 전쟁을 두 번씩 겪은 세대이다. 세계적인 빈국에서, 전쟁의 폐허 속에서 한강의 기적을 일구신 분들이다. 어쩌면 그들은 화려하고 예쁜 조경의 꽃들보다는 실생활에 조금이라도 유용한 작물을 기르는 것이 살림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사셨을지도 모른다. 그런 절약과 억척스러움이 없으면 생존이 어려운 시절을 지났던 분들이다. 우리나라는 도시라 할지라도 1970년대를 지나면서 냉장고가 서서히 보급되었다. 지금처럼 음식을 냉동실에 재어 놓을 수가 없었다. 여름이 되어 높은 온도에 약간 밥맛이 이상하면 엄마는 여러 번 물에 헹군 뒤 끓여서 먹었다. 그것보다 조금 더 상하기라도 하면 풀을 쑤어 이불 등을 빳빳하게 만들었다. 그 때는 모든 물자도 귀했지만 절약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살았던 것이다. 문화적인 것을 향유하는 것은 그 당시 일부가 누리던 사치였다. 오로지 자녀들을 입히고 먹이고 교육시키는 것에 열심인 세대였다. 그런 세대들에게 어쩌면 아파트의 화단은 쉽게 먹거리를 얻을 수 있는 텃밭으로 이용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텃밭으로 변한 화단을 보기 시작했다. 여름이 지나면서 고구마가 왕성하게 줄기를 뻗으며 자라고 있었다. 늦여름이 지나가며 고추도, 깻잎도 치워지고 그 자리엔 가을 배추가 자리잡았다. 옆의 화단에서는 부추가 여전히 푸름을 드러내고 있었다. 예쁜 꽃은 있지 않지만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달라지는 화단텃밭. 그 속에는 한 생을 열심히 살아온 우리 윗세대들의 부지런한 역사가 함께 숨쉬고 있었다. /전영숙 시조시인

2026-01-04

이제는 문화다

새해는 지역 발전의 방향을 되돌아보게 한다. 과거 산업과 경제 중심으로 성장해온 지역은 이제 새로운 질문을 마주한다. 사람을 머물게 하고 지역을 특별하게 만드는 힘은 무엇일까? 그 답은 점차 문화로 좁혀지고 있다. 문화는 단기적 성과보다 장기적으로 지역을 지탱하며, 세대를 연결하고 공동체 정체성과 삶의 품격을 높여왔다. 이야기가 살아 숨쉬는 문화는 사람을 끌어모으는 힘이 있다. 미래의 문화정책은 외형적 확대보다 내실 강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전통을 지키되 현대적 삶과 기술,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결합해 재창조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문화원은 기존 프로그램을 시대에 맞게 재정비하고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단순한 체험과 행사 중심에서 벗어나, 지역의 역사·생활문화·구술자료 등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이를 교육·전시·콘텐츠로 확장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전통문화 역시 현대적 해석과 접목을 통해 청년과 다음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특히 AI와 디지털 전환의 시대에 걸맞은 문화 인프라 구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지역 문화 자산을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하고, 자료의 축적과 활용이 선순환될 수 있도록 체계를 갖춰야 한다. 흩어져 있던 기록과 아카이브를 정리하고, 누구나 접근하고 연구할 수 있는 열린 문화 데이터로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문화의 보존을 넘어, 새로운 창작과 산업으로 이어지는 기반이 될 것이다. 문화원의 운영 또한 보다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고도화되어야 한다. 프로그램 기획, 인력 운영, 기록 관리가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중장기 계획 속에서 지속가능하게 이어질 수 있는 구조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문화는 열정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전문성과 시스템이 함께할 때 비로소 오래 갈 수 있다. 이처럼 문화원의 내실을 다져가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다음 과제가 보이게 된다. 아무리 콘텐츠와 시스템이 충실하더라도 이를 안정적으로 담아내고 확장할 공간이 없다면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문화는 사람을 모으는 일이고, 사람을 모으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터전이 필요하다. 지금의 문화원은 그 역할과 기대에 비해 물리적 여건이 충분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지역의 역사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문화가 함께 숨 쉬는 공간, 시민 누구나 드나들며 배우고 만들 수 있는 문화의 집이 요구되는 이유다. 2026년을 향해 나아가는 지금, 문화원 신축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준비의 문제라 생각한다. 이는 새로운 건물을 짓는 일이 아니라, 그동안 축적해 온 문화의 내용과 가치를 온전히 담아내고 다음 세대에게 어떤 문화 환경을 물려줄 것인가에 대한 지역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문화원은 늘 앞서기보다 곁에서 지역을 지켜보는 존재여야 한다. 크게 외치기보다 묵묵히 쌓아가며, 빠르기보다 오래 가는 길을 택해왔다.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다만 이제는 그 역할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도록, 단단한 내실 위에 새로운 터전을 더해야 할 때다. 새해를 맞아 다시 한번 말씀드린다. 이제는 문화다. 그리고 문화의 미래를 준비할 시간이다. /박승대 포항문화원장

2026-01-04

소박한 우리의 새해 소망

2026년 병오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 첫날 포항은 호미곶을 비롯해 영일대와 송도 해수욕장, 영일만항까지 일출 명소마다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이른 새벽부터 도로 위는 해맞이객들로 분주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포항은 어디에서든 해맞이할 수 있는 도시다. 장소를 골라 떠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도시에 대한 작은 자부심이 생긴다. 이날 나는 효자동의 한 아파트 옥상에서 시민들과 함께 새해 첫 태양을 마주했다. 동이 트기 전, 주위를 붉게 물들이던 여명을 바라보며 곧 떠오를 태양을 기다리는 마음은 이내 벅차올랐다. 매일 떠오르는 해이지만, 1월 1일에 마주하는 해돋이는 우리에게 늘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새해가 되면 우리는 흔히 무언가를 더 이루어야 할 것 같은 마음에 조급해진다. 크고 분명한 목표를 세워야 할 것 같지만, 올해만큼은 조금 더 소박한 우리의 소망들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어제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일상에 감사할 수 있는 오늘, 출근길 바다가 오늘은 유난히 잔잔하기를 바라는 마음, 신호등 앞에서 괜히 숨을 재촉하지 않아도 되는 하루를 바라는 마음 말이다. 누군가는 사무실 한켠에서 건네는 따뜻한 인사 한마디에 하루를 시작할 힘과 용기를 얻고, 누군가는 병원에서 듣는 “조금씩 좋아지고 있습니다”라는 말 한마디로 더 건강해질 내일에 희망을 걸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또 누군가는 오늘 하루만큼은 자신을 너무 몰아붙이지 않고, 잘 견디고 버텨온 스스로를 토닥이며 칭찬할 수 있는 여유로 채워지는 그런 하루면 충분하지 않을까. 이처럼 소박한 우리의 새해 소망은 거창하거나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을 묵묵히 지탱해 주는 힘은 어쩌면 이런 사소하고 소박한 마음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포항은 수많은 파도를 넘으며 지나온 도시다. 산업의 굴곡이라는 파도를 넘어왔고, 지금도 경제적 어려움이라는 높은 파도 앞에 서 있다. 하지만 그 숱한 파도 앞에서도 우리는 서로를 살피고 다독이며 함께했기에 오늘까지 올 수 있었다. 그래서 2026년의 포항은 성장이라는 속도만큼이나 사람들의 따뜻한 온기가 더욱 필요하다. 지난해 우리 모두는 큰 파도와 어려움을 함께 넘어왔다. 거친 파도를 견디고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함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의 마음과 자세가 더욱 겸손해졌는지도 모르겠다. 2026년 포항은 도시의 변화와 성장만큼이나 사람의 온기가 차가운 철의 도시를 따뜻하게 채워가길 바란다. 기업은 노동자를 살피는 마음으로, 노동자는 경기 침체로 어려운 기업의 입장을 한 번쯤 돌아보면 어떨까.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이 아닌 민의를 살피며 공공의 선을 위해 일하고, 시민들은 서로의 이웃을 돌아보며 알뜰하게 챙긴다면, 이 도시는 다시 생명력으로 가득 차고 희망을 노래할 수 있을 것이다. 소망은 꼭 거창할 필요가 없다. 오늘 하루를 무사히 보내고, 내일을 다시 마주할 용기만 있다면 우리 모두의 2026년은 충분히 단단해질 수 있다. 새해를 맞은 포항의 아침이 조용하지만, 깊은 희망으로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일상에 천천히 스며들기를 바라며, 올 한 해도 서로의 안부를 묻는 도시로 함께 걸어가고 싶다. /김은주 포항시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2026-01-04

병오년 새해에 희망한다

을사년은 그야말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다. 대통령 탄핵 사건 후유증으로 온나라가 혼란스러운 터널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의성에서 촉발돼 영덕까지 경북 북부를 초토화시켰던 초대형 산불은 자연뿐만 아니라 경북 지역민들의 가슴조차 시커먼 숯검댕이로 만들었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지만 사회 정의의 지속적인 유지와 서민 경제와 서민 삶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고 그저 소모적인 정쟁만 있는 암울한 정치 상황이다. 국민의 안전도, 행복도, 재산도 지킬 정부는 어디에도 없어 보인다. 이탈리아 지식인 안토니오 그람시의 설명대로 우리 국가와 사회를 이끄는 엘리트들이 권력의 토대를 독차지하고 있으면 향상시켰는가 하는 의문을 가질만한 상황이 우리에게도 도래했다. 여야 정치의 극심한 불균형으로 인한 국가 권력의 불균형 역시 심각한 수준이다. 대통령 권력에 대한 도덕적 불신과 지역 불평등 확대, 성장둔화, 기회 감소에 대한 회의적 여론 또한 팽배하다. 이기적이고 자기 과시적인 관료와 정치인들로 인해 포퓰리즘과 극단주의 정부 출현은 매우 우려스럽다. 늑대에게 자유를 맡긴다면 양떼에게는 죽음만이 기다릴 뿐이다. 여야가 극심하게 기울어진 국회에서 일방으로 찍어내는 법제가 국민의 자유와 권리와 어떻게 상충되는지 그 한계가 아직 매우 모호한 상황에서 2026년 병오년 새해를 맞는다. 아직 정리되지 못한 계엄 국면의 정치적 과제와 치솟는 실업률, 실물 금융의 최대 위기와 신자유주의 무역의 압박, 탈산업화의 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할 만한 믿음직한 국가적 대안이나 비전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위험에 처한 대한민국의 자유, 국가 주권의 불안정,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청년들, 서민 소상공인과 근로자들의 사회적 자신감을 증진시켜줄 정치를 기대하는 바람으로 병오년 새해에 빌어본다. 특히 올해 6월에는 지방선거가 실시될 것이다. 우리 대구·경북은 이미 여야 지형도가 심히 기울어져, 새로운 고립의 섬으로 결판날 것이라는 절망적 우려조차 숨길 수 없다. 어떤 선택이 가장 많은 사회구성원들에게 의미 있는 자유와 행복을 제공할 수 있을지 건전하게 추론하여 선택을 결정해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이름으로 도리어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로 치닫거나 이념적으로 치우쳐져서는 안 될 것이며, 이로 인해 경제 자유가 위축되어서는 더더욱 안될 것임을 시민사회와 주민은 엄중하게 판단하고 신중한 선택으로 지켜내야만 할 것이다. 동해안 저 푸르디푸른 바다를 헤치고 밀쳐 오는 새해가 우리들의 결핍과 두려움을 거두어주기를 희망한다. 강인한 적마처럼 행동할 자유를 우리들이 스스로 지키고 갖추기를 희망한다. 그리하여 더 깊고 넓은 행복의 대한민국, 대구경북이 되기를 희망한다. 행복경제, 통합정치, 수준 높은 문화예술의 기치를 들고 미래의 문이 환하게 열려주기를 희망한다. 열심히 일하면서 누리는 일상의 행복이 우리들에게 충만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국가미래연구원 이사

2026-01-01

새해 2차 공공기관 유치에 ‘TK命運’ 걸어라

이재명 대통령이 이번 주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지방 혁신도시에 입주한 공공기관이 지역 경제 활성화에 제대로 기여하고 있는지 체크해봐 달라”고 주문했다. 지난 2010년부터 2019년까지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 14개 시·도에 이전한 공공기관들이 해당 지역 발전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질책성 지시로 보인다. 그는 전북 전주 혁신도시에 입주한 국민연금공단을 예로 들면서 “주말이면 직원들이 다 서울로 가버린다. 유치 효과가 미미하다”고 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처럼 지방이전 공공기관 대부분은 원래 취지와는 달리 지역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대구 동구 신서동과 경북 김천 율곡동에 조성된 혁신도시도 마찬가지다. 주말이면 텅 빈 도시로 변한다. 공공기관 직원들의 가족 동반 이주율이 낮은데다, 해당 지역민도 생활인프라가 열악해 이사하기를 꺼리기 때문이다. 대구 혁신도시를 지역구로 둔 국민의힘 강대식 의원은 최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교통·교육·문화 인프라가 충분히 갖춰지지 않으니 공공기관 직원들이 장기 정착하지 못하고, 시민들도 이사 오기를 꺼린다. 이 상태에서 2차 공공기관 이전을 추진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재명 정부는 새해에는 ‘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은 12월 12일 열린 대통령 업무 보고에서 “새해에 공공기관 2차 이전 계획을 발표하고 2027년부터 이전을 시작하겠다“고 했다. 현재 대구시는 대법원과 IBK기업은행, 한국데이터산업진흥원, 국립치의학연구원 등을, 경북도는 한국철도기술연구원,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등을 유치 대상으로 지목하고 있다. 2차 공공기관 유치는 비수도권 지자체로선 명운(命運)이 걸린 문제다. 희망하는 공공기관 유치에 성공하려면 대구·경북 모두 현재의 혁신도시를 누가 봐도 살고 싶은 ‘수준 높은 도시’로 완성하는 게 중요하다. 그러려면 혁신도시에 교육·의료·문화 등 분야별 생활 인프라를 반드시 갖춰야 한다.

2026-01-01

대구공항이 활성화돼야 신공항도 힘 받는다

대구시가 올해부터 대구공항발 해외직항 노선 확대를 위해 지원을 대폭 강화한다고 한다. 대구공항을 이용하는 항공기에 대한 재정지원금 예산을 작년보다 63% 늘리는 한편 조례 개정을 통해 항공사 지원 대상과 범위도 확대했다. 대구공항의 활성화는 지역민의 편의 증대 의미 이상으로 지역경제에 미치는 경제적 파급 효과가 크다. 외국 관광객의 유입과 이를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도 기대된다. 대구시의 국제적인 도시 위상이 올라가고, 도시의 국제화를 촉진하는 계기가 된다. 대구공항 활성화는 대구시 발전을 위해 반드시 관리해야 할 주요 정책이라 할 수 있다. 대구공항은 코로나 팬데믹 이전만 해도 전국의 지방공항 중 이용자 수가 상위권에 든 공항이었다. 2019년 대구공항 이용객 수는 467만 명이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 수요가 급격히 줄면서 지금까지 2019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대구공항 활성화 노력이 부족한 가운데 상대적으로 다른 지방의 국제공항이 도약하면서 지금은 청주공항보다 이용객 수가 적다. 현재 대구공항은 일본, 중국, 대만, 베트남, 태국 등 8개국 14개 국제노선을 운항하고 있으나 해외여행 수요 증가에 비해 시간대와 목적지, 공항 인프라에 이르기까지 부족한 부분이 많다. 많은 대구시민이 김해공항을 이용하거나 인천공항까지 가야하는 시간 낭비와 경비 부담을 안고있다. 대구시가 올해부터 대구공항의 국제노선을 강화키로 한 것은 늦었지만 잘한 일이다. 보다 많은 투자로 공항 활성화를 적극 이끌어 내야 한다. 특히 대구공항 활성화는 사업 추진이 제대로 되지 않은 대구·경북 신공항 사업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대구공항의 국제화가 촉진되고 수요가 늘면 신공항을 조기에 건설해야 하는 이유와 명분이 쌓인다는 논리다. 정부 지원을 이끌 명분도 된다는 것이다. 대구·경북 신공항의 성공적인 안착을 위해서도 대구공항의 활성화는 필수다. 대구의 경제성장은 대구공항에서 시작된다는 생각으로 대구시는 공항 활성화에 온 힘을 쏟아야 한다.

2026-01-01

권력의 부패

과학자들은 권력자가 약자에게 행하는 난폭한 행동과 같은 비정상적인 일이 벌어지는 이유를 뇌에서 답을 찾는다. 어떤 과학자는 사람이 권력에 빠져들게 되면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 물질이 많이 나오면서 뇌가 상대를 이해하지 못해 오만해지고 충동적인 행동을 한다고 말한다. 또 일부는 뇌의 안하 전두엽이 손상돼 자신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는 것처럼 과대망상에 빠져들어 이타심과 공감 능력을 잃게 된다고도 설명한다. 마치 마약에 중독돼 이성을 잃는 것처럼 권력에 중독되면 모든 이성적 판단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 권력부패의 원인이라 한 것이다. 1887년 영국의 역사학자 존 액턴은 높아만 가는 성공회 교황의 권력과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해 편지를 썼다. 편지 속에서 그는 “절대권력은 절대부패 한다”는 말을 남기는데, 권력의 집중과 견제 부재가 부패를 부른다는 경구로써 이 말은 오늘날까지 유명하다. 많은 민주주의 국가가 삼권분립 등 권력의 정체성을 구현해 권력의 부패를 막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권력이 있는 곳에는 예외 없이 부패가 발생하는 것이 일반적 속성이다. 사회가 분화되면서 정치권뿐 아니라 각 분야에서 크고 작음의 차이는 있지만 권력자의 부당한 횡포와 비리가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민주당 강선우 의원이 지역구 시의원으로부터 1억원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더불어민주당의 도덕성이 도마에 올랐다. 특히 지역 단체장이나 시의원으로부터 공천 대가가 오가는 오래전 폐습이 아직도 남아있다는 사실에 국민적 실망감이 크다. 300명이나 되는 국회의원에 대한 견제와 감시 기능은 사실상 어렵다. 국회의원의 자정 능력을 높일 대안을 찾아야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6-01-01

팔자를 넘어

해마다 자기에 대한 기대로부터 한발 물러나게 되는 것 같다. 미래에의 가능성보다는 한계를 직시하며, 이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성숙으로 가장하며 살아온 것 아니겠나. 주어진 운명과 맞서 싸우는 영웅들을 동경했던 시대는 아득하고, 앞길에 대한 모색보다는 현상 유지를 기도하며 하루를 소진하는 삶이 반복되고 있다. 어쩌면 강제된 이러한 사고 정지 속에서 새해의 소망을 품는다는 게 얼마나 망령된 일인지 요맘때면 새삼 깨닫게 되곤 한다. 일본의 서브컬처 비평가 우노 츠네히로는 ‘무언가를 했다’라는 사회적 자아실현이 아니라 현재의 모습을 승인하는 방식의 자의식 형성에 관해 논한 바 있다. ‘~을 하다/했다’라는 행위가 커뮤니케이션의 영역에서 이루어진다면, ‘~이다/~이 아니다’라는 자기 형상에 대한 인지는 데이터베이스화된 설정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자기를 살피지 못하고, 주어진 조건을 수용할 뿐인 자세로 자아를 규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청년들이 세계로부터의 고립을 자처하게 되는 이유도 여기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자신의 행위를 통해 아이덴티티를 찾기보다는 현재의 처지를 스스로가 납득하는 방식으로 정체성을 규정해 가는 타입의 인간들이 늘어가는 시기가 있다는 것이다. ‘자기상’에 대한 설정이 행위를 압도케 되는 사회적 조건이 구축되고 있다. 요즘의 한국이 그렇지 않나. 이제는 ‘영포티’가 된 ‘N포세대’ 출신의 ‘영끌’을 바라보며, 도무지 물려받을 게 없는 ‘젠지세대’의 원망이 사회를 뒤덮고 있는 형국이기에 그렇다. 나아가 그 원망의 방향이 시대의 모순을 사유케 하기보다는 단순한 피해의식으로만 점철되고 있으니, 대체 어떤 미래를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미래는 주어진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고루한 표현이 그리워지곤 한다. 그러한 시대의 환멸로부터 나 역시 자유로울 리 없다. 그래서일까? 요새는 ‘팔자’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게 된다. 지인이나 동료가 잘 되거나 잘 안되거나, 그게 ‘그 사람의 팔자 아니겠나’라는 식의 어법이다. 팔자란 게 ‘일생의 운수’를 뜻하니 나 역시 숙명론적 인생관 따위에 함몰돼 버렸다고 해도 좋다. 진정 타고난 운명이란 게 있는 걸까? 살다 보니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는 것 같다. 죽어도 안 되는, 도무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란 게 있다는 것이다. 어차피 달성될 수 없는 목표라면 차라리 그 실패에 매달려 괴로워하지 않고, 외려 이를 일종의 팔자로 받아들이자는 태도라고 할 수도 있겠다. 어쩌면 자기의 한계에 대한 이러한 순응이야말로 내가 나 자신을 지지할 수 있는 유일한 구실이 되고 있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재명 대통령은 과거 도지사 시절부터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소신을 이어오고 있는 것으로 안다. 2026년 병오년부터는 진정 그러한 시대가 오길 바란다. 자기에 대한 체념을 성숙의 조건으로 가장하는 그러한 세계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사회가 막다른 길에 몰렸다. /허민 문학연구자

2026-01-01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어릴 때 짜장면 한 그릇이면 다 통했다. 졸업식, 입학식, 그리고 생일 때 짜장면 이상은 사치였다. 탕수육 같은 건 있는지도 몰랐다. 우동 아니면 짜장면이었고 아버지는 가끔 짬뽕을 잡수시곤 했었다. 그래서 지금도 짬뽕은 어른들이 드시는 음식으로 안다. 짜장면이 1970년에는 한 그릇에 100원 정도였으나 최근엔 7000원 선으로 가격대가 형성돼 있다. 물론 동네 중국집에선 5000원 정도 받는 곳도 있긴 하더라만, 50년 동안 50배나 가격이 뛰었다. 요즘 식당 밥값이 장난이 아니다. 1만원으로 먹을 수 있는 것은 중국집이나 분식집 말고 없을 정도이다. 학창 시절 데이트할 땐 돈 1만원만 있으면 둘이 극장가고 다방에서 커피 한 잔씩 마셔도 집에 갈 버스비는 남았다. 지금 애들은 도대체 얼마를 들고 나가야 데이트를 할 수 있는지 걱정이 앞선다. 특히 남자애들이 부담이 상당할 것 같다. 둘이 짜장면만 먹을 수는 없을 테고 분위기 한번 잡을라치면 두당 3만원 정도는 생각해야 한다. 차 한 잔 마시면 거의 10만원 돈이다. 요즘은 그래도 ‘카드’라는 것이 있어 돈 떨어져 집에까지 뛰는 사태는 없어 다행이다. 제주 유명호텔 짬뽕 한 그릇이 6만2000원이다. 가족끼리 옹기종기 모여 먹으면 20~30만원이 짬뽕값으로 나간다. 메뉴 제목이 ‘전복 한우 차돌박이 짬뽕’이라는데 우리 동네 중국집에선 문어까지 넣은 고급 짬뽕이라도 2만 원을 넘지 않는다. 비싼 호텔 짬뽕이 대중적인 음식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비싼 짬뽕을 먹기 위해 줄을 선단다. 인생 짬뽕이라나 뭐라나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 정도 짬뽕 가격에 질려버린다면 파인다이닝 식당엔 근처에도 갈 생각을 접어야 한다. 언제부터인지 몇몇 생소한 단어가 옆을 스친다. ‘파인다이닝’ ‘오마카세’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 그냥 서민으로 한세상 그렇고 그렇게 산다고 보면 된다. 재혼을 준비하는 돌싱들 이야기가 흥미를 끈다. “재혼 목적 교제 중, 어떤 말을 자주 들으면 재혼 의지가 꺾이느냐”라는 질문에 남성 대부분이 ‘파인다이닝’을 골랐다고 한다. 데이트비를 거의 지불하지 않는 여성이 맨날 고급 식당을 요구하면 ‘나를 호구로 보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여자는 정이 뚝 떨어진단다. ‘파인다이닝’이란 ‘좋은’, ‘질이 높은’이라는 뜻의 ‘fine’과 ‘식사’를 뜻하는 ‘dining’의 합성어이다. 문자 그대로 비싼 식사, 고급 식사를 뜻하는 일반적인 어휘라고 보면 된다. 이름난 셰프가 운영하는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식사 금액은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이다. 시그니처 메뉴를 제공하고 받는 금액이 일인당 수십만 원이라고 한다. 수억대의 자금을 인테리어에 투자하고 테이블과 의자 또한 최고급이다. 화장실에는 고급 향수가 비치되고, 고급 브랜드들의 식기가 제공된다. 보험 신청하고 받은 그런 허접한 그릇에 밥 먹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갑자기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 한 번 가보지 못한 것이 못내 서글퍼진다. 인생이 헛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제주도는 비행기 값이 없어서 못 가고 동네 중국집에서 뜨끈한 짬뽕 국물로 속을 달래야겠다. /노병철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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