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무엇인가를 자꾸 생각하게 된다.
누구나 인생의 길은 같다. 어지간히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같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한다.
어머니가 많이 아프시면서 정신없었다. 대전과 서울을 얼마나 많이 오갔는지 모른다. 체력에 한계가 느껴지고, ‘처방’, 대처방법을 다르게 생각하는 동생들과도 이야기를 많이 해야 했다.
나도 어렸을 때 내가 누군지 생각하고 살았던가. ‘나’라는 관념 없이 그냥 먹고 살고 울고 보채지 않았던가. 나이 들어 ‘자기 자신’을 잊어간다는 것, 잃어버린다는 것이 아주 이상한 일이라고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이렇게 생각하며 위안을 얻으려 했다. 어느 날 대전 집 안방에 모신 아버지의 영정 사진을 무심코 들여다 보니, 액자 속의 아버지는 얼굴에서 힘이란 힘은 다 빼고 찍으신 듯한 모습이셨다. 돌아가실 때보다 많이 젊으실 적 사진을 선택했는데, 그때는 기운도 좋으셨을 텐데, 얼굴에서 힘이 느껴지지 않으셨다.
동화에 얽힌 노래 만드는 AI 작업을 하느라 유튜브를 부지전히 들락거렸다. 새로 채널을 만들고 수노(SUNO)가 작곡한 ‘늑구’ 노래 영상을 올리다 보니, 알고리즘 때문인지 옛날 노래 영상이 보이고 그 밑에 댓글이 하나 눈에 띄었다. 그 노래를 들으니 돌아가신 아버지가 너무너무 보고 싶어진다는 것이었다.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아버지가 마지막 아프실 때가 그래도 좋았었다.’
처음에 칠십 대 중반에 대장암과 신장암을 함께 앓으시고 신장을 하나 떼어내시고 독한 항암 치료를 체육인의 의지로 이겨내셨다. 연세가 아흔에 이르렀을 때 다시 두 개의 암이 찾아왔다. 하나는 대장암, 또 하나는 요관암이었다. 의사 말대로라면 다발성이요, 전이된 것은 아니라 했는데, 그렇게 아버지는 암으로 ‘4관왕’이 되신 것이었다.
함께 척추골절까지 앓으셔서 일어나지 못하시고 ‘자리보전’하시는 것을, 어머니가 다 보살피시느라 고생이 많으셨다. 그래도 두 분이 함께 계시니 그것이 좋은 것이었다. 1년 2개월 아프시는 중에 대전을 무척이나 오갔지만 어깨에 짐을 짊어진 것 같은 느낌은 없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혼자 되시자 모든 것이 달라졌다. 짐은 온전히 어머니에게서 자식들에게로, 내게로 옮겨졌다.
이번 토요일, 일요일은 더 어려웠다. 요양보호사가 주말이면 쉬시는데, 마침 이틀 연속으로 학생들과 답사 수업을 해야 했고, 주중에 하지 못한 수업 보강도 줌으로 해야 했다. 나 한 몸으로 커버할 수 없어 식구들이 전부 ‘동원’된 이틀.
지쳐 잠들었다 스르륵 깨었다. 추천서 일곱 통 중에 마저 두 통을 다 쓰니 세상은 정적 그 자체다. 어지간히 시끄럽게 울어대는 앵무새 빠삐용과 베카도 어딘가로 숨어 소리를 죽였다. 산 바로 턱밑 아파트의 한밤은 자동차 소리조차 멎었다. 긴 정적 틈으로 멀리 차 한 대가 지나가는 소리 울린다.
인생의 길은 누구나 같다. 이제 보이는 것 같다. 다른 것처럼 보이는 것들을 제외하면 누구나 같은 길을 가는 것이라는 ‘진리’. 누구나 다 그렇게 가는 것이므로 두려울 것도 없다. 나만의 고독일 때 무서운 것이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