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가까워 오건만 춥다. 옛날에 배운 것, 꽃샘추위. 북쪽 오츠크해에서 차갑고 습한 고기압이 발달, 남쪽으로 내려온다. 차가운 북동풍이다. 기온이 급강하, 봄에 꽃이 피기 시샘하는 추위가 닥친다.
청량리 발 평창으로, 아침 9시 37분 발. 손발 관절의 통증에 밀려 눈을 뜬다. 아직 새벽이다. 무슨 꿈을 꾸웠나. 분명 기억으로 남겨야 할 꿈이었건만, 이즈음엔 잠에서 깨면 채집이 어렵다. 작고 낮은 침대가 무슨 관짝같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살아나는 중인가.
이효석은 불과 35년 1개월 20일만을 이 세상에 머물러 있었다. 일찍 세상 떠난 작가들. 나도향, 24년 4개월 27일. 이상, 26년 6개월 25일. 김유정, 29년 1개월 17일. 백신애 31년 1개월 6일. 강경애, 38년 6일.
짧다. 인생은 짧고 예술가의 인생은 더 짧은가 보다. 더 오래 산 작가들도 얼마든지 있잖더냐고?(누가 아니랬나요?) 청량리역은 롯데백화점 뒤에 큰 성냥갑처럼 숨어 있다. 3인의 출발 예정자 가운데 1인은 그저께 밤 낙오했고, 1인은 너무 늦어 기차 ‘이음’ 출발 시각 전에 올지말지란다.
커피. 어딨을까. 이런 땐 옛날 경성역 그릴(Grill) 같은 곳에 앉아 멋진 커피를 앞에 놓았을 텐데. 없다. 현대의 역사는 사각진 모형 경기장처럼 칸막이로 나뉘어 테이크아웃 커피만 즐비하다. 습관성 두통으로 디카페인을 마신 지 몇 달째지만 효과가 없다. 부실해진 위를 걱정해서 카푸치노를 마신다.
흐린 날의 양평은 우울해 보인다. 횡성은 근심스러워 보인다. 생각보다 일찍 와 걱정을 덜어준 1인은 흰 마스크를 쓰고 눈을 감고 묵상 중. 나는 아무것도 손에 들지 않았다. 오늘은 아무것도 메고 지고 싶지 않다. 어깨 통증, 목디스크 악화가 무섭다.
기차는 산, 강, 들, 또, 들, 산, 산, 강을 반복한다. 메마르다. 산빛, 들빛이 아직 재색이다. 푸른빛이 아직 감돌지 않는다. 비가 한번 왔건만 다시 한번 와야 하나? 예년엔 어땠더라. 한 해 한 해를 더해 수십을 더해도 아직 순환주기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몸.
회의까지 시간이 남았다. 몇 번 들러본 장평에, 오늘 마침 장날이라니 들러보자 한다. 장평은 옛 교통 요지였다고 한다. 여기서 춘천도 가고 원주도 가고 제천도 갔더란다. 강릉 가는 고속철도 평창역 생기기 전만 해도 장평은 제법 큰 곳이었다 한다. 평창 장날에 장평 장도 함께 열기로 했다는데, 잘 안된단다. 불과 몇 집 안 나온 장터는 아직 겨울만 같다.
강냉이 튀긴 것에 뻥튀기 사들고 효석 아드님 이우현 선생께 갖다 드리겠다고, 장평 터미널 바로 옆 카페에서 ‘어울리지’ 않게 멋진 차를 한잔씩 하고 택시를 잡아탄다. 재단 사무실로 다들 오셔서 의사 정족수가 채워진다.
가난한 살림이라면 이우현 선생께서 화를 내시려나? 재단은 과제가 많다. 의견을 나눌수록 이효석 문학관만이라도 운영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생각뿐이다.
돌아오는 길은 시간을 앞당겨 입석이다. 서서 이것저것 급한 일들 떠올리고 창밖으로 또 산, 강, 들, 들, 강, 산을 바라보다가 어느덧 양평 지나 창량리다. 서울이다. 역사 바깥에 혼자 서서 광장 내려다본다. 한기가 훅 끼친다. 서울은 봉평보다 더 춥다. 곧 비가 다시 한번 내리려나? 그럼 정말 봄은 오려나? 꽃이 피려나?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