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물들면 안 되겠다고 염려하면서도 다시 간다.
동묘시장은 이효석 소설 ‘도시와 유령’의 배경 공간, 그의 창작의 ‘시작점’은 동반자 작가였다.
나도 이 동묘를 소설적으로 ‘소유’해 보겠다고 마음 먹은 지 오래, 하지만 쓰고 싶은 것과 능력은 별개의 것. ‘스토리 헌팅’은 쉽지 않다. 어슬렁거리기, 떠돌아다니기, 힐끗거리기는 쉽지만은 않다. 뭔가 목적이 있어야 좋다.
동묘 헌팅을 여러 번 시도한 끝에 얻은 좋은 소재가 하나 있다. ‘윙컷’(wing cut)이라는 것. 앵무새 날개를 잘라주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날개를 자른다기보다 깃털을 잘라주는 것이다.
청계천 단종과 정순왕후 송씨의 고사가 얽힌 영도다리(永渡橋) 옆으로 조류 시장이 있고, 여기 앵무새들이 손님들을 기다린다. 회색앵무(african grey parrot), 에메랄드 빛으로 예쁘기는 사랑앵무, 화려하기는 오색앵무, 스킨십 좋아하기는 코뉴어 앵무···. 슬프게도 윙컷을 당한 앵무는 얼마나 스트레스가 심할까?
나의 이야기 속에서 베카는 자신이 날개 잘린 앵무새 같다고 생각한다. 베카는 어쩌면 코뉴어 앵무를 닮은 것도 같다. 사람 옷에 파고드는 친화력 만점에, 애교 있고, 아, 장난기가 가득하다. 누워서 발을 흔들기도 하고, 물구나무도 서고, 공도 굴릴 줄 알고, 호기심도 많다.
이 베카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동묘 사람, 내력 있는 사람, 앵무에 홀린 사람을 만나도록 할까, 노점에서 휴대폰 파는 사람? 베카는 동묘 골목의 빈티지 가게에서 미국 서부의 ‘러그하우스’에서 들어온 옷가지들을 판다. 베일(bale)이라는 옷 묶음이 있고, 이걸 풀어놓는 걸 ‘깐다’고 한다. 탈북해서 이곳에 온 춘희가 어떻게 베카가 되고, 또 어떻게 ‘루스(ROOS)’ 같은 곳에서 일할 수 있느냐가 포인트의 하나, 그러고도 베카는 한국을 떠나고 싶다. 아, 루스는 이름을 바꿔야 한다. 요즘엔 ‘실물’을 잘못 옮기면 문제되기 일쑤다.
이 베카는 어디 살아야 하나 할 때 보이는 건물, 세창빌딩, 그 안에 세 평짜리 쪽방이 있고, 좁은 데 비해 남쪽으로 난 창문이 하나 있고, 그 3층 쪽방에서 계단을 내려와 코너를 돌 때 ‘키노 커피’ 맛있는 집이 있고, 그 건너편에 열쇠 집이 있다. 인생의 과제를 풀어야 하는 베카는 열쇠집 아저씨를 좋아한다. 뭐든 그의 손에 들어가면 없는 열쇠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
베카는 한국을 떠나고 싶다. 이 한국은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 안심하고 살아갈 수 없을 것만 같다.
그런데, 이 베카, 춘희는 어떻게 미국으로 가버릴 수 있나? 가뜩이나 이주민을 쫓아내는 이 판국에? 윙컷 당한 것 같은 인생의 해결점을 선사해야 한다.
빛과, 어떤 옷이든 입을 수 있는 자유와, 영원히 함께 사랑할 수 있는 사람.
글쎄, 베카는 이 땅을 떠날 수 있을까? 떠나지 않고도 그는 삶의 안정을 누릴 수 있을까? 나는 베카의 눈으로 우리가 사는 이 세계를 분석해 보고 싶다, 아니, 살갗의 실감으로 느껴 보고 싶다. 지금 이 세계는 너무 고통스러운 것 같다. 이것은 너무 ‘하이퍼’한 감각인 것일까?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