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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혁명’의 시대

등록일 2025-12-29 16:58 게재일 2025-12-3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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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역사서들을 편집한 한 책을 두고 논의가 분분했다. 논점인 즉슨 위서냐 진서냐 하는 것이었다.

비유가 좀 끔찍하지만 살인사건이 났다고 하자. 이 사건을 해결하려면 먼저 시신의 존재를 확인해야 한다. 그 책은 우리들 눈앞에 버젓이 놓여 있으므로 첫 단추는 꿰어졌다. 이제 범인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이 범인도 실명까지 그대로 제시되어 있다. 이제 그가 진범인지를 밝히려면 범행도구와 범행방법, 범행동기까지 밝혀야 한다. 이 가운데 범행동기는 강력히 추정되는 게 있다. 강렬한 민족주의적 이상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없는 역사를 지어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동기가 범행으로 어떻게 이어졌는가를 밝혀내야 한다. 가짜 책을 어디서, 무슨 수를 써서 지어냈느냐 하는 것이다.

아직까지 나는 이를 밝혀내면서 가짜라고 주장하는 이는 찾아보지 못했다. 역사학 전문가가 못 되어서 못 찾았는지 모른다. 옛날 책에 근대어가 씌어져 있다든가 하는 등의 주장이 있는데, 엊그제 어느 분의 유튜브 채널을 보니, 그 어휘들이 거의 모두, 하나만 빼고는 옛날 책들에 나온다고 책 이름들과 문장까지 밝혀주는 것이었다. 앉아서 썼느냐 서서 썼느냐를 밝히라는 것이 아니다. 어떤 책들을 근거로 짜깁기를 한 것인지, 아예 없던 것을 발명을 한 것인지 증거든 추론이든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꾸 범인이라고만 주장하면 우김성 센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논쟁적인 글들을 보며 생각한 것이 하나 있다. 문제와 관련된 역사학적 논구 방법이 좀 더 진취적이고 새로워졌으면 하는 것이다. 단재 신채호는 이분이 주장한 내용이 다 맞아서가 아니요, 그 패러다임과 방법론이 새로웠기에 훌륭했던 것이라 생각된다. 식민사학의 우격다짐을 밀어낼 방법론, 그때까지 고려하지 않았던 북방민족의 역사서들까지 함께 읽어내는 방법이 새로웠던 것이다.

왜 지금이 ‘역사혁명’의 시대인가? 새롭고 창안적인 방법론이 다투어 제시되고, 그로써 기존 지식의 패러다임을 깨뜨리고 있기에, 바로 ‘역사 인지’의 혁명의 것이다.

컴퓨터 천문학(박창범), 유전자학, 빅데이터를 활용한, 기록과 주장들의 엄밀한 검증, 동북아시아뿐 아니라 다른 문명권(아랍어권, 라틴어권, 산스트리트어권)의 역사서들까지 읽어내고 참조하는 방법, 이와 관련되는, 문명론적 시각으로 인류의 삶을 이동성(mobility) 속에서 포착하는 방법, 여러 언어들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을 적극 활용하는 방법 등이 새로운 역사 인지를 위해 지금 적극 활용되고 있다.

방법론의 창안과 혁신은 이번 세기에 들어와 가능해진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에 힘입은 것이다. 진위서의 판별과 고대 지리 인식 등에 이와 같은 방법들이 넓게 활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고, AI 시대는 이와 같은 변화를 더욱 빠르게 촉진할 것이다.

이런 마당에 고루한 문헌 해석과 동북아에 갇힌 시야로 뭘 해결할 수 있을까? 나는 오늘의 새로움에 한 표를 던진다. 오해는 금물, 그 내용이 다 맞다고 확신한다는 뜻이 아니다. 요점은 그 방법론에 있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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