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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블루'

등록일 2026-03-02 16:18 게재일 2026-03-0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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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서울 동묘시장을 배경 공간으로 삼은 단편소설, 겨우 완성은 했다. 제목은 ‘윙컷’, 영어로 ‘wing cut’, 날개를 잘렸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쓰겠다고, 수년을 오갔었다. 이번에도 여러 번 다시 찾았다. 그래도 이것저것 부족한 것이 적지 않다. 그래도 어떻게든 썼다. 수년 만에 간신히 한 편 더한 셈이 되었다. 
 

탈북 여성 춘희가 ‘베카’라는 이름으로 동묘시장 빈티지 가게에서 일하는 내용이다. 개연성에 얽매이지 않고 싶다. 삶은 근본적으로 우연에 얽매인다. 옛날 작가 이효석처럼 나 또한 지금 그렇게 믿는다. 세월과 경험은 논리 이상이다. 
 

그러고 나서 ‘딥 블루’(deep blue)가 왔다. ‘깊은 우울’이라 해도 좋고 ‘깊은 푸른빛’이라 해도 좋은 것을, 어감은 굳이 ‘딥 블루’라 쓰게 한다. 만족스럽지는 않다. 작가 최인호 소설 ‘깊고 푸른 밤’을 생각한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확실히 나는 ‘본의 아니게’ 북한이라는 명제에 매달린다. 어째서 그렇게 되었나를 생각한다.  ‘딥 블루’가 더욱 분명해진다. 꼭 그것만은 아니다. 몇 주 전 학생들과 함께 나가사키에 다녀올 때, 거기 '침묵'의 작가 엔도 슈사쿠 문학관 앞 망망한 바다, ‘딥 블루’였다.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 자기 믿음을 위해 죽음을 무릅쓴 스물여섯 명의 순교자들. 또 이 나가사키 군함도를 쓴 한수산 소설 ‘군함도’. ‘딥 블루’. 
 

또 그것만은 아니다. 나는 확실히 ‘블루’한 삶의 도정 속에 있다. 정치나 종교, 북한이나 순교만이 아니다. 삼 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 어머니는 치매 증세라고밖에 명명할 수 없다. 그런데도 현실을 겪어내야 한다. 학과는 십 년을 표절 문제로 진통을 겪었다. 아직도 헤어나오지 못했다. 이를 둘러싼 ‘처신’ 때문에 다들 힘들다. 세상일이 옳은 데로 가는 것만 아님이, 이토록 뼈저리게 감각될 수 있을까. 길고도 힘든 시간이다.  


옳고 그름뿐 아니다. 사실이니 진실이니 하는 것에 접근한다는 것, 얼마나 어려운가? 이에 얽매여 침닉되면 마음이 병들고 몸도 결딴난다. 남의 잘못뿐 아니라 나 자신을, 그 발뿌리를, 삶의, 생각의, 심리의 바닥까지 들여다보면 ‘딥 블루’ 아니고는 도리가 없다.


언젠가 나는 어떤 참사와 그에 따른 정치적 사건의 진실에 제법 접근했노라 ‘느꼈다’. 그런 뉘앙스를 담은 소설 한 편을 썼다. 며칠 전 다시 읽고, 한숨이 크게 났다. 나는 아무것도 몰랐던 것이다.  


과연 소설이 될 수 있을까? 하나의 제법 분량이 될 법한 소설을 생각한다. 인과에, 플롯의 엄밀성에 얽매이지 않는 소설. 
‘오토픽션’(autofiction)이라는 말이 최근에 한때 유행했다. ‘오토바이오그래피’(autobiography)가 아니라 ‘오토’한 ‘픽션’이라는 것이다. 서양 사람들이 1977년에 이 말을 처음 썼다고들 한다. 그네들이 동아시아를 몰라서 한 말. 일본에서 일찍 말한 ‘사소설’이 바로 그것이다. 이 양식의 픽셔널(fictional)한 특징에 유의해서 한국에서도 여러 작가가 일본과 류가 다른 ‘다른’ 사소설들을 썼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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