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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답사길

등록일 2026-03-30 21:51 게재일 2026-03-3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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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일요일 오후 두 시. 서울문학기행 수업 답사를 두 번에 나누어 치른다. 학생 숫자가 아주 많다, 가 아니다. 답사는 스무 명 넘으면 여러 가지 곤란하다.

날은 흐리다. 비는 오지 않는다고 했다. 보신각 앞. 두 시 정각에 거의 다 모였다. 이곳은 종로 네 거리. 일제 강점기 조선인의 ‘심장’이다. 종로 1가와 2가 사이, 그리고 조계사 방향과 롯데 백화점 방향 교차로다. 
 

이곳에 예전에 화신상회가 있었다.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에서 아무 용무도 없이 ‘구보’는 백화점 앞으로 들어가기는 했지만 승강기에는 발을 들이지 않고 나왔었다. 지금 화신상회 자리에는 종로타워 33층 빌딩이 서 있다. 앞에, 길가에, 작은 표지석 하나만 남아 있다. 박길룡이 설계했다고. 박흥식이 설립했다고. 그 앞에 ‘바르게 살자’고 커다란 돌비가 섰다. 둘이 바뀌어야 할 것 같다.
 

거기서 대각선, 영풍문고 쪽에는 녹두장군 전봉준 좌상이 서 있다. 여기가 옛날 전옥서 자리다. 전봉준이 여기 수감되어 있다 1895년 4월 24일 서소문 형장에서 처형되고 말았다. 전봉준보다 열여섯 살 아래였던 같은 고장 강일순은 무장봉기 대신 ‘해원상생’을 추구했다. 두 사람의 길이 그렇게 달랐다.
 

광교 다리 앞에서 구보의 또 다른 소설 ‘천변풍경’에 관해 이야기 나누고 우리는 덮개를 벗어버린 새 청계천을 걷는다. 청계천을 복개하기 시작한 것은 1958년에서 1961년 사이라는데 더 찾아봐야 하겠고, 1970년대 중반에 완료되었다 한다. 이 위로 도로를 냈고, 또 그 위로 고가도로도 냈다. 제2차 ‘청계천 피복노조 합법성 쟁취대회’ 나갔다 전경에 쫓겨 청계고가도로 위로 뛰던 생각이 난다. 2005년 10월 1일, 이명박 시장 때 복원이 완료된다. 

잉어가 몇 마리 한가롭게 헤엄친다. 수표교 위로 올라와 ‘전태일기념관’으로 간다. 조영래 변호사가 ‘전태일 평전’을 참 잘 쓰셨다. 학생들은 지난 번 팀과 달리 활기찬 데도 기념관을 돌아보고는 표정들이 어둡다. 이 세대들에게도 전태일은 의미 있는 존재일까?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그날’은 1970년 11월 13일이었다. 

갈증의 표정들을 한 학생들을 재개발지구 안에 뜻밖에 멋진 카페로 모신다. 꼬르꼬바두. 사전을 찾아본다. 포르투갈어라 한다. ‘등이 굽은, 혹이 있는, 구부러진’ 등의 뜻. 지명이기도 하다는데, 브라질 브라질리우를 상징하는 산이란다. 산이 등이 솟은 듯 둥글게 굽어 있어 생긴 이름이란다. 

근처에 또 카페 ‘420’이 좋았다. ‘4’밑에 ‘2’와 ‘0’을 써 놓은 것이 꼭 ‘삶’이라고 읽으라는 뜻 같은 곳. 도시 재생 프로그램이 필요한 곳에 박혀 있는 카페들이 나그네들 휴식에 안성맞춤이다. 

이제 나는 학생들을 세운상가까지 이어진 좁은 ‘마찌꼬바’ 골목으로 데려간다. 김기덕 영화 '피에타‘의 배경일 것 같은 곳. 청계천·을지로 일대, 세운상가 뒤편에 이 철공장 골목이 많다. 지금은 웬 상패 가게가 이렇게 많은지. 사람들은 상을 주고받는 걸 좋아한다.

세운상가 올라서 종묘가 바라보이는 곳에서 우리는 종묘 뒤편으로 아스라이 펼쳐진 산(山) 세상을 본다. 우리는 세속에 살고 저 먼 산에는 산사람, 선인(仙人)들이 산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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