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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쌍벽가' 감상하기

내방가사가 2022년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 아태목록에 등재되자 대구와 경북의 관심 있는 여성들은 내방가사 공부에 더 큰 열망을 가졌다. 물론 오래전부터 안동내방가사보존회에서 내방가사 공부방을 열어 안동과 주변 지역의 뜻있는 여성들 대상으로 지속적인 교육이 있긴 했다. 대구에서도 동호회나 연구모임 같은 자생단체가 있어 공부한다는 정보도 들어 알고 있었다. 나는 퇴직 후 여러 사회단체에서 특강 형식의 강의를 하긴 했으나 단발성이어서 아쉬움이 컸다. 강단에서 연구하고 강의하던 것을 사회적 교육으로 지속하고 싶다는 바람이 있긴 했으나 용렬한 탓에 뜻을 비쳐 내지도 못한 터였다. 그러던 차에 몇 달 전부터 대구에서 뜻을 같이하는 몇 분과 같이 공부 모임을 만들었다. 비록 카페에서 만나서 한 달에 두어 번, 한두 시간 공부하는 거지만 나로서는 제대로 수업하고 싶다는 생각에 강의 준비를 나름 열심히 했다. 내방가사 이론을 제대로 알고 창작까지도 할 수 있는 수준을 목표로 잡았다. 강의계획서를 만들어 나누고, 내방가사의 역사를 짚고, 이론을 정리하여 수업 준비를 했다. 내방가사에 대한 이론을 단단히 잡은 후에야 창작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훌륭한 작품 감상에 특히 공을 들였다. 내방가사 창작을 꾸준히 하는 분들이 많기는 하지만 이론적 바탕만 있으면 좀 더 나은 작품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신변 소회 정도의 시적 소재와 내용을 4.4조의 운문 형식에 맞춘 듯한 작품이 많아 안타까움이 컸다. 공부하는 분들의 열정이 크고 넘쳐 나기에 강의 준비에 소홀함이 있어서는 안 되었다. 무엇보다 국문학 사상 손꼽히는 훌륭한 가사를 먼저 읽어 이해하고, 문체와 구성을 익히는 것이 좋다는 판단을 했다. 정극인의 ‘상춘곡’, 송순의 ‘면앙정가’, 송강 정철의 ‘속미인곡’과 같은 명작 가사를 세심하게 읽고 문체와 표현과 구조 분석을 하면서 내용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공부했다. 나로서도 새삼 다시 공부하는 기회가 되었기에 나름 귀한 시간이었다. 며칠 후 잡힌 시간에는 ‘쌍벽가’를 감상해 볼까 준비하고 있다. 현전 대부분의 내방가사가 작자와 연대가 미상인 데 비하여, 이 작품은 작자와 연대가 잘 알려진 작품이며 연대가 가장 오래된 작품이라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강의 주해만 있을 뿐 제대로 된 해석본은 없어 감상하기 어려웠다. 한자어 많음에도 한글로 쓰여진 것도 원인이었다. ‘쌍벽가’는 1794년(정조 18) 안동 하회의 연안이씨(延安李氏)가 지은 내방가사인데,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애독되었던지 경북 여러 집안에서 발견된 이본도 상당히 많다. 작자는 예조판서의 딸로 한양에서 하회로 시집와 신고를 겪은 뒤 58세 되던 해, 맏아들과 조카가 한 해에 과거에 급제하는 경사를 맞는다. 당시 임금 정조가 제문을 지어 내리자 이를 경축하는 내용의 가사이다. 제목에 쓰인 ‘쌍벽’은 과거 급제한 두 형제의 준수하고 출중함이 서로 백중함을 칭찬한 것이다. 구성의 일관성, 뛰어난 표현과 유려한 문장이 초기 내방가사임에도 수작으로 꼽힌다. ‘쌍벽가’를 필두로 다양하고 훌륭한 내방가사를 감상해 볼 계획이다.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2025-12-03

입추(立秋), 그 너머-오도 바다* 고운 모래알과 몽돌

입추(立秋), 그 너머 -오도 바다* 고운 모래알과 몽돌 생각해 보니 실패가 성공이었다 그러나 과정은 무너지지 않는다 겨울이 와도 어떨까, 과연 우리에게 어떤 빙하기가 있었는가 물기가 없으면 얼지 않는다 하여 암각화가 될 수도 있고 물욕이 없으면 망할 일도 없을 것 업적이 초라해도 그것으로의 역사가 되고 벼락박 똥칠도 무늬가 된다며, 깨달음은 없다고(悟道) 가르치는 오도 가을 바다, 마른 눈길 늘 울음을 참는, 그래서 나의 가을 풍향계처럼 그 바다를 탐지하며 결국엔 아무 것도 얻지 못했다만 하소연 없는 태연하고 불량한 바다 그래서 행복하고 불행했지만 그래, 밑천 뻔한 한 끗 차이, 마치 마을에 가닿지 못하는 저 파도 소리.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흥해읍의 작은 바다 마을 …. 시간에는 절대 상처가 나지 않는다. 방치와 외면으로 흘러 지나가는 무서운 존재, 파괴가 없는 절대적인 무형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무책임에 분연히 항거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과거에 머물러 지금에 와서 상처를 입지 않아야 한다. 오히려 무기가 되고 훈장이 되어야지 굴레는 아니다. 경험의 반복을 되풀이하지 않아야 된다는 클리세는 그만두어야 한다. 상처는 새 살을 돋게 한다. 박테리아 혹은 세균도 사람을 돕는다. 거부에 집착하다 보면 외딴 섬이 된다. 진정한 섬은 고립이 아니다. 가능성의 신호, 혹은 미지의 공간에 대한 개활지이다. 존재가 작다고 의미가 축소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우근 ……….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5-12-03

대만 관광객 매혹한 돼지국밥

2025년 상반기 부산을 찾은 대만 관광객이 대략 24만9000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부산을 여행한 외국인 5~6명 중 1명이 대만 사람이라는 이야기. 숫자로도 비율로도 가파른 상승률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대만 여행자들은 부산에 와서 뭘 먹었을까? 알다시피 부산을 대표하는 음식으로는 싱싱한 해산물과 밀면, 돼지국밥 등을 꼽는다. 대만인들은 자신들의 나라에서도 돼지고기는 물론 돼지의 내장까지 요리해 즐겨 먹는다. 이는 한국인과 유사한 섭식 형태다. 이 사실을 증명하듯 대만 관광객이 엄지를 치켜세우며 “맛있다~”를 연발하는 음식은 부산 도처에서 판매되는 돼지국밥이라고. 유명세를 얻은 돼지국밥 식당 앞에서는 몰려든 대만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최근 대만 관광객 1만579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돼지국밥은 66.9%라는 높은 지지율을 얻으며 ‘부산을 찾는다면 꼭 먹어봐야 할 한국 음식’으로 대만인들 사이에서 자리 잡았다. 그 뒤를 어묵(37.4%), 씨앗호떡(22.4%), 장어구이(19.4%)가 이었다. 그렇다면 돼지국밥의 인기 요인은 뭘까. 대만과 달리 뽀얀 국물에 담백한 맛을 즐길 수 있고, 여기에 양념을 더해 얼큰함까지 느낄 수 있는 매력 때문이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잡내가 나지 않기에 부모를 따라온 대만 아이들도 좋아한다고. 항공기를 이용한 여행이 세계적으로 보편화되면서 국가의 경계는 물론, 즐기는 음식의 경계 또한 무너지고 있다. 대만과 같은 아시아는 물론, 유럽과 남북 아메리카 사람들의 입맛을 매혹할 한국 요리가 더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이는 관광산업 발전을 가져올 키워드가 될 수도 있으니까.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12-03

가득찬 빔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빛이 실내의 공기를 묘하게 흔들고 있다. 허윤희 화가의 개인전 ‘가득찬 빔’. ‘가득 차다’와 ‘비다’라는 두 의미가 한 문장 안에 놓인 제목이 막상 미술관에서 햇빛을 마주하니 더 깊게 와닿는다. 빛이 채워지는 순간 비워지고 비어 있는 자리에 다시 들어오는 반복을 보며, 화가가 펼쳐 보이는 작품 공간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나는 전시회에 오기 전, 화가의 책 <나뭇잎 일기>를 먼저 읽었다. 실존적 사유와 생태적 감각을 결합한 예술 세계를 구축했다는 평을 듣고 있는 그의 시리즈 작품들 중 하나를 엮은 책이다. 그는 13년 동안 산책길에서 매일 나뭇잎을 채집해 실물 크기로 그리고 단상을 기록했다. 자연과 교감하며 예술과 생활을 분리하지 않고 자기와의 약속을 지키며 수행자적 삶을 살았다. 작가의 시선은 사라지는 것에 머물렀다. 나뭇잎은 사계를 통해 빛을 품었다가색을 잃고, 낙엽으로 뒹굴다가 결국 땅으로 돌아간다. 나는 책장을 넘기며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의 소멸은어쩌면 슬픈 일만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엔젠가는 소멸될 나뭇잎이 그림으로 그려져 영원히 남겨진 흔적을 보며, 내가 죽은 뒤에도 누군가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나를 기억해 준다면 죽어도 살아있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 같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았다. 오늘 전시회 문턱을 넘으니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목탄 벽화 드로잉의 크기에 놀라고, 멸종위기식물을 그린 그림 앞에서는 환경의 회복을 작가와 같은 마음으로 염원한다. 그 중에서 단연 최고는 현장에서 예약해 15분간 ‘관집’을 혼자 체험하는 것이다. 작가가 독일 유학 시절에집짓기 프로젝트를 하며 존재의 본질을 탐구한 작품이라고 한다. “매일 새로운 날을 상상하며 관집을 짓는다. 그 안에서 나는 매일 태어나고 죽고 다시 태어난다.” 관집을 만들게 된 배경을 떠올리며 직원의 안내에 따라 관집에 들어간다. 지치고 힘이 들 때 고향을 생각하며 동쪽으로 누웠다는 작가를 따라 나도 관집 안에 눕는다. 죽은 이의 전유물인 관 속에, 산 자인 내가 들어가 있다니.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나는 죽음을 생각하면 두려움보다는 사랑하는 이들을 더 이상 보지 못한다는 안타까움이 먼저 떠오른다. 죽기 전에 나와 인연이 닿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리라. 내가 다짐하는 그 순간, 온몸 가득 죽음이 아닌 살아갈 이유로 채워진다. 그렇다면 이 작은 관집은 죽음을 위한 방이 아니라 삶을 다시 살아내기 위한 장소 같다. 나는 잠시 눈을 감는다. 내 마음에 응어리져 있는 묵은 불안과 억울하게 남겨둔 말들, 정리되지 못한 관념이 바닥으로 찬찬히 내려앉는다. 관집에서 나오자전시실의 빛은 조금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 집안의 어둠에서 빠져나온 탓인지빛은 나에게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다른 전시실에서 ‘해돋이 그림’을 마주한다. 관집에서 발산되던 정적과는 반대로 생성 에너지가 내 몸을 스친다. 제주 바다 위로 솟아오르는 해. 세상 모든 어둠을 뚫고 올라오는 돋을볕을 반복해서 그린 작품을 보며 나는 포항 바다의 일출을 떠올린다. 늦가을 새벽, 집 근처 바닷가에 앉아 있으면 바람은 차갑고 어둠이 짙어 해가 뜨지 않을 것만 같다. 그러다가 한 순간 수평선이 붉게 열리기 시작한다. 아침노을은 늘 비슷하지만한 번도 같은 적이 없다. 허윤희 작가의 그림도 마찬가지다. 해가 떠오르기 전의 깊은 어둠과 붉은 선이 그림마다 똑같지 않고 변주되어 있다. 똑같은 장소, 똑같은 시간대에 해돋이를 그린 화폭에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숨결 같은 것이 스며있는 듯하다. 미술관을 나오는 길에 산책로에 잠시 머무른다. 단풍잎으로 풍성한 나무가 이제 곧 찬바람이 불어오면 앙상하게 비워질 것이다. 그러나 비워진 공간에서 겨울 풍경으로 채워질 나무를 떠올리니 그리 애석하지만은 않다. 나는 이제 ‘가득찬 빔’이라는 말이 제대로 이해가 된다. 비워진다는 것은 다시 채울 준비가 되었다는 것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정미영 수필가

2025-12-03

‘철의 도시’ 포항, ‘글로벌 AI 심장’으로 도약해야

“포항의 새로운 미래를 여는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고 있다”. 국제적 AI 기업과 삼성그룹, NeoAI Cloud(옛 텐서웨이브코리아)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글로벌 AI 데이터센터’가 얼마 후 포항에 들어선다는 소식을 50만 시민과 함께 뜨겁게 환영한다. 이는 포항이 ‘철강보국’의 영광을 넘어, ‘AI 혁신 허브’로 웅비할 역사적인 전환점이다. 조만간 구체적인 최종 부지가 발표되고 연내 착공이 예정된 이 사업은 1단계 투입 예산만 약 2조 원에 달하는 매머드급 프로젝트다. 이는 단순한 기업 유치를 넘어, 포항 경제의 향후 50년, 100년의 방향을 결정짓는 역사적인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다. 특히, 포항이 가진 잠재력과 지속 가능한 성장 가능성을 글로벌 무대에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대한민국 동남권의 심장, 포항을 왜 선택했을까. 답은 명확하다. 포항은 AI 데이터센터 건립과 운영에 필요한 ‘최적의 3박자’를 모두 갖춘 유일한 도시다. 첫째, 세계적 수준의 인프라와 인재다. 포스텍과 한동대를 비롯한 우수한 이공계 인재 풀, 방사광가속기와 로봇융합연구원 등 세계적 수준의 첨단 R&D 기반은 타 도시가 흉내 낼 수 없는 귀중한 자산이며, AI 연구개발의 산실 역할을 할 것이다. 둘째,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망이다. AI 데이터센터는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릴 만큼 막대한 전력을 24시간 끊임없이 필요로 한다. 울진 원전과 연계된 동해안의 풍부하고 안정적인 전력망은 데이터센터 운영의 필수 요건인 최고 수준의 안정성과 전력 이중화를 제공해 포항만의 강력한 경쟁력이 된다. 셋째, 살아있는 산업 데이터다. 지난 반세기 동안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끈 포항 제철 산업의 방대한 데이터는 AI와 결합해 기존 제조업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스마트 혁신을 이끌 것이다. 여기에다 배터리, 수소, 바이오 등 포항이 주도하는 미래 신산업 현장에서 쏟아지는 고급 데이터는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 연구개발에 핵심 연료가 돼 신소재와 신약 개발 등 고부가가치 신성장 동력을 창출할 것이다. 우리는 이 기회를 현실로 만들어야 한다. 데이터센터 유치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포항시는 정부 및 삼성, 글로벌 AI 기업 등 파트너사들과 긴밀히 협력해 인허가 절차를 획기적으로 단축하는 ‘패스트트랙 전담 T/F팀’을 즉각 가동해야 한다. 행정은 기업의 속도에 맞춰 가장 빠르고 안정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포항은 이제 ‘철의 도시’라는 영광스러운 유산을 딛고, 데이터와 AI가 흐르는 ‘디지털 혁신 도시’로 도약해야 한다. 글로벌 AI 데이터센터는 그 구심점이 돼 지역 기업들이 클라우드와 AI 연산 자원에 대한 접근성을 손쉽게 확보하고 글로벌 무대로 진출하는 기회의 창이 될 것이다. 산업·경제·사회를 아우르는 전주기 AI 혁신 생태계와 국가 혁신을 선도하는 ‘AI 고속도로 모델’을 구축하는 것은 이제 우리 포항이 가야 할 길이 됐다. 글로벌 AI 데이터센터의 성공적인 안착을 위해, 포항의 위대한 도약을 위해 나 또한 힘을 보탤 것이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단체장 출마 희망자의 기고문을 받습니다. 후보자의 현안 진단과 정책 비전 등을 주제로 200자 원고지 7.5∼8.5장 이내로 보내주시면 지면에 싣도록 하겠습니다. 기고문은 사진과 함께 이메일(hjyun@kbmaeil.com)로 보내주세요. 외부 기고는 기고자의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5-12-02

폭풍 속으로 들어간 ‘국민의힘 내분’

국민의힘 내분 양상이 파국으로 가는 분위기다. 조만간 당 지도부가 중심이 된 주류세력과 비주류 세력(소장파의원, 친한동훈계) 간에 전면전이 벌어질 태세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해 온 초·재선 의원 30여 명은 지난주 ‘장동혁 지도부’가 응답하지 않을 경우, 집단행동에 나서겠다고 예고했다. 김재섭 의원은 “지도부에서 사과와 성찰의 메시지가 있으면 좋겠고, 그게 안 된다면 의원들이 개별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고, 김용태 의원도 “사과할 것은 사과하는 것이 정치 도리다. 당 지도부는 보수 재건의 중차대한 순간에 억지 논리로 도망가지 않기를 바란다”고 직격했다. 두 의원은 당 지도부가 ‘계엄 사과’에 미온적일 경우, 초재선 의원들이 별도의 사과 성명을 발표하거나 국회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박형준 부산시장 등 광역단체장들도 계엄 사과의 필요성을 여러 차례 제기했다. 당 지도부는 여전히 냉랭한 반응이다. 섣불리 사과했다가는 오히려 민주당의 ‘내란 정당’ 역공세에 말려들 수 있다는 것이다. 장동혁 대표는 최근에도 “우리가 고개를 숙이면 고개를 부러뜨리고 허리를 숙이면 허리를 부러뜨릴 것”이라고 했다. 당 내분은 계파 갈등의 뇌관으로 꼽히는 ‘당원 게시판’ 조사로 심화되고 있다. 이 논란은 국민의힘 당원게시판에서 작성자 검색 기능을 통해 한동훈 전 대표와 그의 가족 이름을 넣고 검색했더니 윤 전 대통령 부부를 비난하는 글들이 다수 있었다는 의혹이다. 국민의힘 당무감사위는 지난달 28일, 이 논란에 대해 조사절차에 들어간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감사위 이호선 위원장은 장 대표가 지난 9월 임명한 인물이다. ‘계엄 사과’를 요구하는 정치인 중에는 친한(한동훈)계가 다수 포함돼 있어, 당 주류 측이 이에 대한 대응으로 게시판 조사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말도 나온다. 당무감사위가 김종혁 전 최고위원을 조사해야겠다고 통보한 게 이러한 추론을 뒷받침한다는 것이다. 감사위는 김 전 최고위원이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신천지 등 특정 종교를 사이비로 규정해 차별적 표현을 했다는 점 등을 문제 삼고 있다. 최근 국민의힘 내분은 지방선거 경선 룰(규칙)을 ‘당원 50%, 국민 50%’에서 ‘당원 70%, 국민 30%’로 바꾸는 과정에서도 증폭되고 있다. 당 주류측은 지방선거 후보 경선 때 당원 비중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고, 비주류측은 ‘당심’을 우선한 경선 규칙으로 후보를 뽑으면 본선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는 입장이다. 현재 국민의힘 비주류 측에서는 당 지도부의 현 기조가 변하지 않는 이상 외연확장은 어렵다는 비판적 기류가 강하다. 국민의힘 지지율이 20%대에 머물자 한 보수원로는 “국민의힘은 이대로는 계속 갈 수 없다. ‘제정신파’와 ‘제정신 아닌 파’로 나뉘어야 살길이 생긴다”고 말했다. 한데 엉켜 있으면 공멸뿐이라는 주장이다. 독주하는 여권을 견제해야 할 야당이 이처럼 자중지란을 거듭하고 있으니 국가를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2025-12-02

어려운 이웃 돕는 희망나눔 캠페인에 동참을

대구시 및 경북도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1일 대구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과 경북도청 앞마당에서 각각 희망 2026 나눔 캠페인 출범식을 갖고 이웃돕기 모금활동에 들어갔다. 앞으로 두달 간 모금 활동을 벌여 대구시는 106억원, 경북도는 176억7000만원의 모금을 달성할 예정이다. 공동모금회의 올해 슬로건은 ‘행복을 더하는 기부, 기부로 바꾸는 내일’이다. 모금 목표액의 1%가 적립되면 사랑의 온도탑은 1도C 올라간다. 사랑의 열매로 알려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기부 캠페인은 1998년부터 시작한 우리나라 연말의 대표적인 기부문화 운동이다. 어려운 이웃에 대한 관심과 사랑으로 공동체 의식을 선양하고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는 바람직한 사회 운동이다. 기부는 금전적 지원을 넘어 소외된 이웃에 대한 우리 사회의 사랑을 표현하고 동시에 상생의 가치를 일깨운다. 작은 우리의 정성이 모아져 그들에게 전달될 때 그들의 삶은 큰 힘을 얻는다. 작은 나눔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기부문화가 가장 발달한 나라는 미국이다. 국가가 일찍부터 기부문화를 국가적 선(善)으로 장려하고 강력한 세제 혜택을 줌으로써 국민적 공감대가 잘 형성된 탓이다. 우리나라도 경기변동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기부액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등 어려운 때일수록 국민 스스로가 지갑을 열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데 앞장서는 모습은 우리 국민의 자랑이라 하겠다. 올해도 작년에 이어 불황 경기가 지속되고 있다. 기업의 생산이 줄고 자영업자는 여전히 폐업의 위기에 놓여있다. 소비가 위축되면서 사랑의 온도탑이 목표를 제대로 달성할지 걱정이다. 그렇지만 어려울수록 함께 온정을 나누는 기부 정신이 더 필요하다. 연말이 되면 익명의 기부자가 나타나 어려운 이웃의 작은 촛불이 되어 준 적이 여러번 있지 않나. 대구경북민의 이웃사랑 정신이 올해도 사랑의 온도탑을 가득 채우는 에너지가 되었으면 한다 이것이 우리 지역을 더 나은 사회로 이끄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2025-12-02

물가와 대통령 지지율

11월 27일은 미국의 가장 큰 명절인 추수감사절이다. 미국인 사이에서는 추수감사절을 크리스마스보다 더 큰 명절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 오랜만에 부모님 계시는 곳을 찾아 전통의 요리인 칠면조 구이를 먹으며 가족 간 유대를 강화하는 날이다. 미국의 경제 싱크탱크인 한 단체는 올해 추수감사절 저녁 식사 비용을 조사 발표하면서 작년보다 약 10% 올랐다고 했다. 세부 품목별로 양파 56%, 스파이럴 햄은 49% 폭등했고, 크랜베리 소스와 크림 콘은 22%와 21% 각각 올랐다. 또 다른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37%가 추수감사절 물가에 대해 “스트레스 받는다”는 대답을 했다고 한다. 비용 절감을 위해 가족모임 규모를 줄이겠다는 대답도 25%나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고율의 관세정책을 펴면서 “관세는 외국기업이 낸다. 미국인은 한 푼도 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많은 미국인은 고율의 관세가 미국 물가에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를 경제전문가들은 관세의 부메랑이라 부른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이 집권 2기 들어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한 여론조사기관은 미국 성인 132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트럼프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긍정 평가를 내린 사람이 36%로 나타났다고 했다. 10월보다 5%포인트가 떨어졌고 트럼프 2기 들어 가장 낮은 수치다. 부정 평가는 60%로 6% 포인트가 올랐다. 트럼프 대통령 지지율 하락 원인으로 설문 응답자들은 경제와 높은 물가부담을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물가는 서민 생활과 직결되는 지표다. 과거부터 어느 나라든 물가와 대통령 지지율은 역비례했다. 새겨둘 내용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12-02

건강지능과 일

사람의 신체적 건강과 정신적 건전성은 삶의 행복을 결정짓는 기본 베이스다. 건강을 잃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건강을 확보하고 유지하기 위해 사람은 많은 연구와 다양한 것을 개발하며 인류의 생활문화로 발전해왔다. 하지만, 건강관리의 속성을 알고, 예방관리와 일과 생활 수준을 높이는 생각을 못한 것 같다. 건강은 지키는 것이 아니라 관리하는 능력을 토대로 과학적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내 건강과 조직 건강은 운영 능력에 달려있다. 자신의 신체, 정신 상태를 정확히 인식하고, 이를 바탕으로 삶과 일에서 최적의 건강 상태를 유지, 조절, 관리하는 능력을 건강지능이라 한다. 단순히 건강을 아는 수준을 넘어 스스로 건강을 판단하고 행동으로 실천해 결과를 만들어내는 지능적 역량이다. 핵심 4가지 구성요소는 첫째, 자기 인식이다. 내 몸과 마음의 상태를 정확히 분석하여 알고, 느끼고 변화를 감지하는 것이다. 둘째, 판단이다. 올바른 인식이 되면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셋째, 실행이다. 휴식, 식습관, 운동, 감정조절 등을 실제 실행하는 것이다. 넷째, 지속관리다. 단기 아닌 습관으로 이어지게 하고, 유지 개선하는 것이다. 건강지능은 건강을 아는 것, 판단하는 것, 실행하고 유지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건강 지능은 먼저 신체적 조건을 갖춰야한다. 수면, 영양, 운동의 균형 유지, 피로, 통증, 이상 징후를 빠르게 감지하는 것, 과로를 스스로 조절하는 능력 등이 있어야 한다. 스트레스 자각 및 해소 방법 보유, 감정 폭발이 아닌 감정조절, 속도 조절 가능한 정신 감정적 조건을 갖춰야 한다. 건강한 생활습관을 일상화 하고, 과음, 과식, 야근 등 유해 패턴을 경계하고, 필요 시 진단을 요청할 줄 아는 태도 등 행동적 조건을 갖추는 것이다. 이런 것을 보면, 건강지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훈련되는 능력이다. 건강지능과 일을 연계해서 보면, 건강지능이 낮을 때는 스트레스가 누적되어 사고 발생 가능성이 높고, 과로로 결근이 증가한다. 감정 폭발로 갈등 발생이 생기며, 집중력이 저하되고 품질이 내려간다. 건강지능이 높을 때는 스트레스 조정이 가능하여 실수가 줄고, 체력관리가 가능하여 지속적 근무가 가능하다. 또한, 감정관리가 잘 되고, 인내력이 커지고 관계성이 높아져 협업이 잘 된다. 건강지능은 일의 지속성과 성과를 결정하는 핵심 역량이라고 볼 수 있다. 기업에서 건강지능이 높으면, 사고, 결근률이 감소하여 비용이 줄어든다. 팀 갈등이 줄고 의사 소통이 개선되며, 업무 지속력과 집중력이 향상된다. 개인 측면에서 보면, 삶과 일의 균형을 유지하게 되고, 컨디션과 체력을 갖춤으로써 성과 지속을 이룰 수 있다. 건강지능을 높이려면, 출근 후 골든타임을 파악하여 집중되는 시간을 정하고 핵심 업무를 배치한다. 몸의 리듬을 이용해 30분 집중, 5분 스트레칭하고, 90분 집중 3분 심호흡 하는 등 하루 시간 집중력을 유지시키는 것이 건강지능을 활용하여 일의 효율성을 높이는 길이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2025-12-02

정년퇴직에 즈음하여

벌써 한 해의 끝자락으로 접어드는 12월이다. 뒤늦은 가을이 오는가 싶었는데 금세 스산함이 일고 기온이 떨어져 곧장 겨울로 치닫는 듯했다. 잎새들은 화들짝 놀라 단풍조차 들지 못한 채 푸르댕댕하게 나무에서 그대로 시들거나 청엽(靑葉)으로 떨어져 거리 곳곳에 이리저리 나뒹굴고 있다. 조락(凋落)의 푸르스름한 빛깔로 대지에 내려앉는 낙엽이, 어쩌면 아직은 일할 기력이 남아돌고 일터에서 좀 더 역할을 할 수 있는데 벌써 정년(停年)을 맞이해야만 하는 여느 퇴직자의 뒷모습으로 비침은 왜일까? 하지만 어쩌랴, 만사분이정(萬事分已定)이거늘-. 모든 일에는 시와 때가 있듯이 분수와 시기가 정해져 있다. 때맞춰 오는 비가 만물을 생장시키듯이, 제 시간에 오는 기차를 타야만 인생항로의 여행을 즐길 수가 있을 것이다. 기차가 연착되거나 놓치게 되면 왠지 조바심이 타고 불안해지며 뒤에 이어질 여정(旅程)에 차질을 빚을 수가 있다. 이처럼 직장이나 사회 전반에는 촘촘한 ‘약속의 시간망’으로 세상이 굴러가며 계절의 변화와 순환이 이뤄지게 되는 것이리라.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봄 한 철/격정을 인내한/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분분한 낙화/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지금은 가야 할 때//무성한 녹음과 그리고/머지않아 열매 맺는/가을을 향하여/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이형기 시 ‘낙화’ 중에서- 길고 오랜 시간 직장에 몸담았다가 역할과 임무를 다하고 정년의 문턱에 서게 되면 실로 만감이 교차하게 될 것이다. 설레던 신입사원의 패기에 찬 발걸음과 각오, 의욕에 찬 도전과 고난의 시행착오, 경험의 그루터기와 인내의 손길로 빚은 노력의 성취, 그리고 미련 없는 비우기와 내려놓음의 안도로 말년의 여유를 누리며 떠날 채비를 하는 파란만장한 여정이 마치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게 될 것이다. 더욱이 평생직장으로 여기며 밤낮없이 드나들며 숱한 애환과 희비가 어린 일터를 떠난다는 것은 고향이나 둥지를 뒤로하는 그 이상의 의미와 가치가 있을 것이다. 세월은 오고 가며 사람은 만났다가 헤어지며 떠나고 보내기 마련이다. 뒤돌아보면 모두가 꿈결같고 한순간 같은데, 어느새 머리칼엔 서리가 내려앉고 주름진 이마엔 시간의 더께 같은 흔적이 역력하니 새삼 세월의 갈퀴질을 실감할 수 있다. 아스라한 삶에 여울에 직장도 어찌보면 잠시 머물렀다가 지나가는 기항지(寄港地)에 지나지 않을텐데, 오랜 시간 집보다 더한 애착으로 기여하고 헌신하며 열과 성을 다한 곳이라면 쉽사리 잊혀지거나 그냥 스치듯이 발걸음이 좀체 떼지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자신의 숨결이 배고 자취가 올올이 서려 있기 때문이다. 연말이 가까워지니 정년퇴임을 기리고 축하하며 위로하는 크고 작은 행사나 환송연이 도처에서 열리고 있다. 이왕 떠나고 떠나보내야 하는 자리라면 좀더 인정스럽게 떠나고 보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직장에서 얼기설기 좌충우돌로 부대끼고 얽매이다 보면 본의 아니게 감정이 상하거나 회한이 있기 마련이지만, 그 모든 것 잊고 추스르며 인정을 남겨두면 훗날에 다시 웃으면서 만날 수 있으리라.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2025-12-02

제1차 세계대전과 세르비아-유고슬라비즘의 태동

한 발의 총성으로 시작된 1차 세계대전은 세르비아는 사면초가에 몰렸고, 국왕 알렉산다르는 외국에 망명정부를 세워야 했다. 오스트리아 지배에 들어 있던 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와 세르비아 간, 본격적인 대결구도가 형성된 것도 1차 세계대전부터다. 한편 대세르비아주의가 한창 열 올리고 있을 때 발칸반도 북부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에서 남슬라브, 즉 유고슬라비즘이 대세였다. 이 두 지지세력 간에 결정적인 차이가 종교다. 발칸 북부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의 로마 가톨릭과 세르비아 동방정교 차이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건이었고, 더구나 보스니아에는 이슬람으로 개종이 늘어 어떻게 봉합해야 할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했다. 한편 오스트리아로부터 독립이 우선인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인들은 세르비아가 제1차 발칸전쟁에서 터키제국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자, 슬라브민족의 대통합 기운이 절정에 달했다. 반대로 세르비아 젊은이들은 세르비아만이 유고슬라비즘 통일국가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을 굳힌다. 1913년, 1차 발칸전쟁에서 승리한 세르비아는 터키 손아귀에서 완전하게 벗어남을 뜻했지만,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로선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왕가로부터 해방이 지상 과제였다. 오스트리아 황태자 저격 후 1차 세계대전의 서막이 열렸다. 발칸반도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독일로서도 결코 수수방관만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후발주자였던 도이칠란트로서는 발칸에 깃발을 꽂아야 제국이 완성된다는 생각이었다.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를 침략하면 러시아가 그냥 있지 않을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 이때 오스트리아는 독일의 의중을 물었고, 독일은 흔쾌히 오스트리아 편을 들어주겠다고 약속하면서,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한다. 이에 대항해 가장 먼저 러시아가 움직였다. 슬라브민족주의를 내세우며 발칸을 노리던 러시아는 세르비아를 도와 맞섰다. 오스트리아는 물론 독일의 발칸 지배는 영국과 프랑스로서도 묵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세계 대전으로 확전된 것이다. 오스트리아 식민지였던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는 자의든 타의든 러시아의 적이 되어 싸워야 했다. 러시아 역시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 독립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세계 대전이 끝나갈 무렵이 되자, 오스트리아는 패전국의 멍에를 뒤집어썼다. 어차피 패전의 멍에를 뒤집어쓸 거라면 크로아티아에게 아드리아 함대를 통째로 주며 자치권을 넘긴다. 권력의 맛에 길들어진 크로아티아 민족정치인들은 “황송하옵니다!” 하며 자치권에 만족하면서 감복한다. 거시적 안목보다 권력과 대를 이은 부를 위해 미시적 선택을 한 사람들은 서로가 결속해야 한다는 진리를 잊지 않았다. 이들은 결속을 과시했다. 1917년 5월 말, 유고슬라비아 대표 33인(우연히도 우리나라 3‧1독립운동 대표 33인과 같은 수이다)이 모여 신속하고도 거창하게 변죽까지 울려가면서 ‘유고슬라브 코커스’라는 정치단체를 결성한다. 오스트리아제국에 충성하는 인간들이 모여 충성맹세 식을 시끌벅적하게 벌였다. 가장 이완용다운 인물을 앞세워 선언문을 낭독했다. “합스부르크 왕가 지도하에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 그리고 세르비아인이 살아가는 터전에 자치적인 체제가 이루어질 때까지 노력한다.” 그러자 유고위원회는 물론 세르비아 정부조차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둘은 유고슬라브 코커스에게 대항하기 만나 ‘코르푸선언’에 합의했다. 핵심 내용인 즉, “유고슬라비아인의 왕국은 하나의 영토와 하나의 시민권만이 인정되며, 자유롭고도 이상이 넘치는 왕국이 될 것이로다.” 비장미 넘치는 선언이었지만, 언감생심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내용이란 사실은 누구나 알았다. 더 나아가 이들 세 단체가 모여 구체적인 합의를 도출했다. “세르비아 카라조르지예 왕조를 정점으로 뭉치고, 모든 민족이 동등하게 취급당하며, 종교 역시 이슬람 포함 자유롭게 믿어도 된다. 국경은 북으로는 슬로베니아로부터 남쪽과 서쪽으로는 몬테네그로와 아드리아해를 포함한다.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세르비아인의 합법적인 정부로 인정한다. (중략) 몬테네그로는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일부로 간주된다.” 가만있던 몬테네그로만 얻어터지고 만다. 그런데도 세르비아 국민은 만족하지 못했다.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에 합법적 정부가 들어서면 대세르비아주는 물 건너 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일로 파시치 총리가 일선에서 물러난다. 사실 국민 뒤에는 그를 견제하려는 왕 알렉산다르가 있었다. 알렉산다르는 막강 블랙핸드를 자신의 손으로 숙청했던 주도면밀한 성격의 소유자다. 그리고 1차 세계대전에서 군총사령관을 맡아 전쟁을 진두지휘한 인물이다. 그런 만큼 군부 역시 그의 손아귀에 있었다. 대세르비아주의가 본격적인 폭력성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절대군주의 야심이 발톱을 드러내고 있었다. 발칸반도에 본격적인 폭력의 서막이 열리고 있었다. (세르비아편 끝) /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

2025-12-02

국수 한 가닥

국수가삶을 닮았다는말은 진부하지만 잔치국수를 앞에 두고 기다리는 순간만큼은 그 말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새삼 깨닫게 된다. 국수 한 그릇을 위해 문밖까지 이어진 긴 줄에 서 있었던 날, 나는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안했다. 허기를 참는 고단함보다 오히려 그 기다림 자체가 하나의 시작처럼 느껴졌다. 오래 끓여낸 멸치 국물처럼 사람 사이의 정 또한 금방 우러나는 법이 아니라는 사실을 조용히 상기시키는 시간이었다. 잔치국수는 언제나 누군가를 부른다. 화려한 식재료도 아니고 값비싼 음식도 아니지만 사람을 모으는 힘이 있다. 그 힘은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깊은 온도에서 비롯되는 듯했다. 웨이팅을 하며 줄 끝에서 바라본 국숫집 내부는 소란스러웠지만 그 소란은 피곤한 소음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흐르는 미세한 온도였다. 그릇에 담긴 뜨거운 국물처럼 삶이 서로에게 스며드는 소리였다. 잔치국수를 떠올리면 문득 힘겨웠던 시절이 떠오른다. 속이 뒤틀리던 날에도, 마음이 휘청이던 밤에도, 어쩐지 자극적이지 않은 그 한 그릇이 떠올랐다. 잔치국수는 늘 ‘부드럽게 삼킬 수 있는 위로’였다. 첨가물 없이 담백한 맛은 잠시나마 세상과 나의 거친 접촉을 완화해주는 한 줄의 여백 같았다. 그래서일까. 나는 언제부턴가 잔치국수를 먹는다는 건 나를 다시 백색 소음으로 데려다주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숫집에 들어서면 뷔페의 화려한 음식들 사이에서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잔치국수가 떠오른다. 늘 한쪽 구석에 조용히 놓여 있으면서도 마지막까지 사람들이 국자를 들이대는 음식, 겉으로 화려하지 않고 향도 세지 않지만 누구나 찾게 되는 음식이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도 오래 함께 할 사람은 이런 모습일지도 모른다. 과한 향기로 주위를 끌지도 않고 번쩍이는 장식으로 눈을 홀리지도 않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사람이 있어서 좋았다’고 조용히 떠올려지는 존재같은 사람 말이다. 예전에는 사람들 사이에서 돋보이고 싶었다. 인생이 원색으로 칠해져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갈수록 나는 잔치국수처럼 서서히 우러나고 은근하게 스며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겉모습은 화려하지 않아도 오래 함께 할수록 깊이가 드러나는 사람, 한 번 가까이 하면 오래 남는 향처럼 누군가의 삶에 은은하게 배어드는 사람, 그리고 마침내 뷔페의 끝에서 국수를 퍼 담는 사람들의 손길처럼 문득 떠올리면 자연스레 마음이 가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얼마 전 외국에 나가 있던 친구가 몇 년 만에 귀국했다. 무엇을 먹고 싶냐고 묻자, 그는 잔치국수를 말했다. 멀리서 지내며 한국이 그리워질 때면 가장 먼저 떠오른 음식이 잔치국수였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이 좀 시시하게 들렸지만 그리운 맛은 가장 소박한 곳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다시 느끼게 되었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화려한 순간에만 떠오르는 존재가 아니라 삶이 고단해질 때 생각나는 그런 존재. 머나먼 곳에 있다가 돌아온 누군가가 가장 떠올리는 이름이 나의 이름이 될 수 있을까. 정결한 멸치 국물처럼 과하지 않고 깨끗한 마음으로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잔치국수처럼 담백한 위로가 되고 싶다. 인생의 맛이 깊어질수록 나는 더 이상 빠른 향을 지닌 요리를 닮고 싶지 않다. 대신 오래 우려내야만 드러내는 깊이, 누군가의 한 끼를 위해 묵묵히 시간을 들이는 그 과정, 남에게 과하지 않게 흘러 들어가는 잔치국수의 성품을 닮고 싶다. 사람의 마음도 결국 국물처럼 저마다의 시간이 필요하고 관계의 향도 결국 천천히 배어드는 법이니까. 오늘도 나는 잔치국수 한 그릇 앞에서 생각한다. 삶이 우리를 어디로 밀어내든 지치고 흔들리는 순간마다 떠오르는 누군가가 나이기를. 화려함보다는 오래됨으로, 강렬함보다는 은근함으로, 번쩍임보다는 따뜻함으로 남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누군가의 마음속에, 오랜만의 귀국 날 다시 먹고 싶어지는 잔치국수처럼 보고 싶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한 그릇의 국수가 단지 배를 채우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삶을 살아가면서 과한 말과 행동이 때때로 스스로를 소모시킨다는 사실을 배울수록 잔치국수의 단정함이 새삼 귀하게 느껴진다. 굳이 떠들지 않아도 곁에 두고 싶은 존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내 삶도 국수의 한 가닥의 길이만큼 길게, 온기만큼 넓게 은근히 퍼져가길 바란다. /김경아 작가

2025-12-02

쿠팡, 과징금 1조원 부과 받을까?

상품의 주문·결제와 은행 입금, 서류와 문서의 전달 등 상당수 공적·사적 업무가 온라인에서 이뤄지는 시대다. 무엇보다 개인 정보의 보호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건 재론의 여지가 없다. 개인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휴대폰 번호와 이메일 주소 등을 수집한 업체는 다른 어떤 것들보다 이를 안전하게 관리돼야 마땅하다. 유출된 개인 정보는 보이스피싱 등의 범죄에 이용될 가능성까지 있으니 더욱 그렇다. 국내 1위 이커머스 업체인 쿠팡은 지난 11월 29일 고객 계정 3370만여 개가 무단으로 노출됐다고 알렸다. 해당 정보엔 이름, 이메일 주소, 전화번호, 배송지 주소록, 주문 정보 등이 포함됐다고 한다. 철저하게 관리돼야 할 개개인의 중요 정보 다수가 한꺼번에 흘러 나가버린 것이다. 이번 ‘쿠팡 사태’로 유출된 개인 정보의 양은 역대 최고다. 2023년 개정된 개인정보 보호법은 이를 위반할 시 전체 매출액의 3%까지를 과징금으로 매길 수 있게 규정하고 있다. 이 법에 의해 고객 2324만 명의 개인 정보를 유출한 SK텔레콤은 1348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 받은 바 있다. 이번에 쿠팡에서 유출된 개인 정보의 양은 SK텔레콤의 사례보다 1000만여 건이 더 많다. 쿠팡의 지난해 연결 매출액은 38조2988억 원. 과징금의 산정은 이 매출액에서 개인정보 유출 사고와 관련 없는 사업 매출을 제외한 금액이 기준이 된다는 게 전문가의 설명. 쿠팡이 이번 유출 사건으로 1조원에 육박하는 과징금을 내야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과징금보다 더 큰 문제는 유출된 정보의 악용이다. 보다 탄탄하게 강화된 개인 정보 보호정책이 절실해 보인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12-01

단재 선생의 ‘꿈의 하늘’

다시 나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꿈하늘’로 돌아온다. 제목이 참 멋스럽다. ‘꿈의 하늘’이라. 그는 꿈속을 사는 사람, 꿈을 꾼 이야기를 꿈 깨고 나서 말하는 사람 아니요, 꿈 그 자체를 살고 바로 그 꿈을 이야기하는 사람이었다. ‘꿈하늘’ 속을 헤매이다, 오래전에 여러 ‘단재론’이 겹쳐들 있는 곳에서 인상 깊게 읽고 잊지 못하던 문장을 찾는다. 독립기념관 데이터베이스에서 어렵사리 찾아진다. 아하, 이 글을 쓴 사람은 심훈이었다. 기미년 삼일운동 때 투옥되었다 나와 상해로 ‘탈출’한 젊은 심대섭, 곧 심훈이 단재를 만났다. 마침 그때 단재는 ‘天鼓(천고)’라는, ‘하늘의 북’이라는 뜻을 가진 잡지를 편집·간행하고 있었다. 심훈은 단재를 이렇게 그렸다. “그때 마침 ‘천고’라는 잡지를 주간하였다. 희미한 등불 밑에서 붓으로 붉은 정간을 친 원고지에다, 밤을 새워 글을 쓰는 모습을 직접 보았다. 그 창간사인 듯, ‘하늘북이여, 하늘북이여, 한 번 치매 무슨 소리가 나고, 두 번 두드리매 어디가 울리는가’하는 의미의 글귀였던 듯 어렴풋하게 기억되는데, 한 구절 쓰고는 소리 높이 읊고, 몇 줄 또 써 내려가다가는 붓을 멈추고 무릎을 치며 깊이 탄식하는 것이, 마치 글에 미쳐 현실을 잃어버린 사람같이 보였다. 붓끝을 놀리는 대로 때 묻은 솜저고리의 소매가 번쩍거리는데, 생각이 막히면 연방 잎담배에 침을 묻혀 말아서는 태워 물고 뻐끔뻐끔 빤다. 그러다가 불시에 두 눈에 이상한 광채가 스쳐지나는 동시에, 손수 만든 여송연을 아무 데나 내던지는 한편으로 붓에 먹을 찍는다. 나는 그 생담배 타는 연기에 몇 번이나 기침을 하였다. 어느 날은 황혼 때에 찾아가니까 그는 캉(坑) 위에 기대어 좀이 슨 옛날 책을 펴든 채 꾸벅꾸벅 앉아서 자고 있었다. 부처님 손가락처럼 벌린 왼손에는 예의 잎담배를 말어서 피우는 것이 끼워져 있었는데, 저 홀로 타들어 간 뽀얀 재가, 한 치 길이나 됨직 하였다···.”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고, 미쳐야 미친다 했다던가? 심훈은 어쩌면 이렇게도 광인 단재 선생을 생생하게 잘도 묘사해 놓았는지, 그의 문장이 없었다면 어떻게 이 옛날 역사에 미친 ‘미치광이’ 단재 선생을 실감나게 상상이라도 해볼 수 있었겠는지? 심훈의 글을 현대적인 어법으로 바꾸어 보면서, 나는 아직 덜 미쳐도 아주 덜 미쳤다고 생각해 보면서, 그런데도 어쩌면 단재는 그렇듯 꿈속을 살면서도 그 꿈속이 현실이 되고 또 반대로 현실이 꿈속이 되는 삶을 살 수 있었는지, 옛사람의 매운 향기를 더듬어 맡으며 헤아려 본다. 생각한다. 그에게 학문과 실천은 둘이 아니고 하나였고, 실천과 예술도 둘 아니라 하나였으며, 심지어는 그의 학문은 가장 아름다운 예술의 경지에 도달한 학문이었다. 정신이 하나로 옹글게, 빈틈없이 알차고 단단하게 뭉쳐진 사람에게 ‘쪽모이’, 곧 조각조각 부분들을 모은 하나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럴 빈틈이 없다. 그런 사람은 눈치 보고 되돌아보고 망설일 틈이 없다. 오로지 한길로 직진하는 것밖에, 다른 길이 없다. 이 추운 때, 단재 선생의 ‘꿈의 하늘’이 더할 수 없이 새파랗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2025-12-01

‘12·3 계엄 1년’···살얼음판 걷는 정국

12월 3일 비상계엄 사태 1년을 앞두고 여야의 대치 정국이 격화되고 있다.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사무총장은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국민의힘은 진정한 사과는커녕 계엄이 민주당 탓이라며 아직도 내란을 옹호한다“면서 “내란동조 세력으로 위헌 정당이란 헌법적 해산뿐 아니라 국민 심판으로 정치적 해산까지 겪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민주당은 내란 재판과 관련, 가장 먼저 1심 선고가 이뤄지는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2심 재판부터는 ‘내란전담재판부’가 심리할 수 있도록 추진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민주당은 지난해 12월 3일부터 시작해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14일까지를 ‘행사주간’으로 정해 그 의미를 기억하고 각오를 다지겠다고도 했다. 국민의힘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지 못한 채 당내 내분만 커지고 있다. 중도층 확장을 위해선 계엄에 대한 분명한 사과와 반성이 필요하다는 주장과, 이에 대한 강경 지지층의 반발 사이에서 당 지도부가 명확한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당내 소장파 의원들은 지도부가 3일 사과 입장을 내지 않으면 개별적으로 사과하겠다면서 집단행동 가능성을 시사한 상태다. 지난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25분 윤석열 당시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후 총기와 방탄 헬멧, 야간 투시경으로 무장한 계엄군이 군용 버스와 트럭, 헬리콥터를 타고 국회로 들이닥친 사태는 연말을 맞은 국민의 일상을 무너뜨렸다. 헌법에 따른 국회의 발 빠른 계엄 해제 요구로 무력 충돌의 비극은 막았지만,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40여 년 전으로 퇴행할 뻔했다. 그동안 비상계엄 사태로 인해 우리나라는 정치적 진영 대결이 심화하면서 사회 분열이 위험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하루빨리 비상계엄과 관련한 국론분열은 종식돼야 한다. 그러려면 국민의힘은 더 이상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에 머뭇거려선 안 된다. 계엄 사태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하고, 내부 혁신을 통해 건강한 야당으로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

2025-12-01

쿠팡 정보유출, 강한 제재와 특단대책 나와야

국내 최대 전자상거래업체인 쿠팡에서 3370만개의 고개정보가 유출되면서 쿠팡을 상대로 한 소비자의 집단대응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소송에 참여하겠다” 는 글들이 나오는 가운데 ‘쿠팡소송’이라는 카페가 1일 개설됐다. 카페는 개설되자 곧바로 가입자가 1만명을 넘어섰다. 업계는 국내 사상 최대 규모 집단소송이 될 것 같다고 했다. 고객정보 누출사고는 쿠팡뿐 아니라 올해만 SK텔레콘, KT, 디올, 루이비통, GS리테일 등 여러 업종에서 발생했다. SK텔레콤은 2324만 명의 개인정보 유출로 개인정보보호위로부터 역대 최대인 1348억 원의 과징금 처벌을 받았다. 쿠팡은 SK텔레콤보다 유출 규모가 커 당국의 제재에 관심이 쏠린다. 문제는 당국의 제재에도 정보 유출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쿠팡은 지난달 18일 약 4500개의 정보가 유출됐다고 발표한 지 11일만에 7500배되는 3370만개로 정정 발표하는 허술함을 드러냈다. 또 지난 6월 자체 조사에서 해외 서버를 통해 비정상적 접근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였음에도 5개월 가까이 유출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정보를 생명으로 삼는 이커머스 기업의 보안시스템이 제대로 작동은 하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쿠팡은 “결제정보, 신용카드 번호, 로그인 번호 등은 이번 유출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이름과 휴대전화번호, 집 주소와 같은 기본정보만으로도 범죄에 악용될 소지는 얼마든지 있다. 특히 소비자들은 아파트와 빌라 등의 현관 비밀번호 등이 유출되면서 주거침입과 같은 범죄 피해를 입을까 봐 불안해 한다. 정보유출에 따른 소비자의 집단대응 움직임은 당연하다. 소비자가 기업이 정보보안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이번 사고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지 못하도록 하는 측면에서 소비자의 연대가 필요하다. 소비자의 정보 유출은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민생활과도 직결된 문제다. 당국은 기업의 정보유출에 대한 책임을 엄격히 묻고 대책도 다시 세워야 한다.

2025-12-01

보이지 않는 힘들이 남긴 흔적

도시는 거대한 정원이다. 아침이면 사람들은 정해진 시간표처럼 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말투와 걸음걸이, 눈빛과 손짓까지 일정하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음에도, 마치 오래전에 약속이나 한 것처럼 모든 몸들이 일사불란하게 제 자리를 찾아 들어간다. 신기하다. 이 질서의 근원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누가 이런 거대한 정원을 만들고 가꾸는 것일까. 나의 정원은 세상이 나에게 준 것인가, 내가 만든 것인가. 정원의 이름은 대체 누가 지었을까. 생각해 보라. 우리의 하루를. 출근길의 걷는 속도, 회의에서의 말투, 아이를 대하는 태도, SNS에 올리는 사진을 고르는 취향까지. 어찌 이리도 서로를 닮았을까. 수많은 목소리와 시선이 심어놓은 작은 표지판들, ‘이렇게 행동하라!’ ‘이렇게 살아라!’ ‘이 정도는 이루어야지!’ 이러한 표지판의 글들은 누가 새겨 놓은 것일까. 표지석 문양은 화석이 되어 자연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너무나 자연스럽다. 어떤 거부감도 없다. 세상이 우리를 부르기 오래전부터 세상은 이미 우리를 둘러싸고 있었다. 우리는 어느새 어떤 이름의 결을 따라 걷고, 어떤 무늬대로 웃고 울며, 어떤 방향의 바람을 따라 호흡한다. 마치 스스로 선택한 길처럼. 하지만 그 길은 오래전부터 누군가의 발자국이 먼저 닿아있었던 길. 학교의 규칙, 가족의 질서, 사회가 붙인 여러 이름들···. 이 모든 것들이 메아리가 되어 우리의 귓속을 통과한다. 세계는, 보이지 않는 손들이 지나가는 거대한 수면이다. 인간의 몸 위로 지나가는 규율의 물결, 일상의 가장 가벼운 동작 속에서 켜지는 감시의 눈빛,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얇은 칼날의 윤곽들. 이것은 산맥처럼 웅대한 것이 아니라, 안개처럼 스며드는 것이다. 만질 수 없지만 습기처럼 피부 아래 들어와 몸의 방향까지 결정한다. 우리는 자신을 만들었다고 믿지만, 정작 우리를 만든 것은 알 수 없는 흐름, 규범의 물결, 습관의 온도, 오랫동안 축적된 시간의 회전들이다! 생각해 보라. 매일이 그렇지 않은가.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말, 사소한 표정, 걱정이 스며드는 방식까지. 모두 보이지 않는 힘들이 남긴 흔적들이다. 우리는 오래된 이름들의 질서 속 정원에서 태어나고, 그 정원으로 스며든 바람의 규율 속에서 자라났다. 보이지 않는 힘들이 나를 지나가고, 나는 그 힘들을 지나간다. 학교는 우리를 ‘학생’이라 부르고, 국가는 우리를 ‘국민’이라 부른다. 기업은 ‘근로자’를, 가족은 ‘가장의 역할’을 부른다. 이러한 부름에 대한 저항은 성경의 원죄처럼 여겨진다. 저항? 웃기고 있네. 기꺼이 응답한다. 새벽에 잠에서 깨는 순간 창문으로 스며드는 냄새, 벗어놓은 옷의 주름, 책상 위에 흩어진 빛의 조각- 무엇하나 내 의지로 온 것이 없다. 어디선가 왔다가 잠시 머물다 다시 어디론가 사라지는 것들. 바람은 여전히 분다. 나는 바람과 이름 사이 틈새에 빛나는 흔적일 뿐. ‘보이지 않는 힘의 흔적들’은 내가 지배하기 전에 내가 지배에 받도록 만든다. 우리를 훈육하고, 가치 규정하고,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그으며, 나의 욕망까지 관리 한다. 우리는 자유로운 주체가 아니라, 자유롭다고 느끼도록 길들여진 존재이다. 기분 나빠 죽겠다. /공봉학 변호사

2025-12-01

어른 없는 사회를 어떻게 살아갈까

“관객과의 약속을 꼭 지키고 싶다.“ 그의 마지막 무대인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쉬는 시간에 이순재가 한 말씀이다. 제대로 걷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제작사 대표의 만류에도 그는 한 시간 반에 걸친 공연을 무사히 마치고 응급실로 실려 갔다. 남에게 피해를 주기 싫어하는 선생님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났다. 배우로서 대한민국의 어른인 이순재는 지난 25일 새벽 9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가장 먼저 조문한 오세훈 서울시장은 자신의 SNS에서 “한 시대를 넘어 세대를 잇는 ‘모두의 배우’를 떠나보낸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겁다”며 애도의 마음을 전했다. 긴 시간을 함께 보낸 연예계 후배들도 이순재와 추억을 되새기며 고인의 빈소를 지켰다. 고(故) 이순재는 우리나라 1등급 문화훈장인 금관문화훈장을 윤여정, 이정재에 이어 세 번째로 받았다. 문화체육관광부는 “140편이 넘는 작품을 통해 ‘연기에 대한 진정성’과 인간적인 모습으로 전 연령층에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훈장 추서 배경을 설명했다. 모두가 한결같이 느끼는 마음은 우리나라의 큰 어른을 잃었다는 것이다. 성실하고 겸손하며 마지막까지도 연기에 대한 열정을 불태운 문화예술계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그를 잃는 것은 연예계를 떠나 전 국민이 그의 죽음을 안타까이 여기는 이유이다. 마지막까지도 연기가 어렵다며 더 노력해야 한다는 말씀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고인의 추모 행렬이 이어질 때도 내 편이 아니면 죽이려고 달려드는 정치인들의 진흙탕 싸움장이 되어버린 대한민국 정치판이다.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그들의 언행을 보며 그래도 삶을 영위할 수 있었던 것은 후배들을 향해 겸손과 열정과 성실성을 몸으로 보여준 선생님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누구의 말을 지팡이 삼아 이 세상을 살아갈지 막막하다. 내란을 일으키고도 반성하지 않는 사람들. 자기 편이 아니면 끌어내리고 개혁의 대상으로 만들고, 말을 듣지 않는 기관장은 기관을 없애고, 한 사람을 위한 법을 만드는 사람들. 법의 잣대로 심판하는 검사와 판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들을 심판하는 법을 만들거나 기관을 없앤다고 겁박한다. 인간을 편하게 하려는 법인지 어떤 집단의 수단과 목적을 위한 법인지 헷갈리는데 우리를 달래줄 어른을 잃었다. 미국의 환율 압박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세계 경제의 흐름도 우리에게 절대 유리하지 않다. 국민의 살림은 궁핍해져만 가는데 정치권은 말로만 국민을 내세울 뿐 국민의 삶에는 관심이 없다. 오로지 권력을 차지하는 일에만 관심이 있다. 사람들에게 떳떳하고 진솔한 어른이 왜 정치권에는 없는지. 일에 열정이 넘치던 어른도 시간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나 보다. 사람들이 그를 추모하는 건 남을 배려하고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마음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그의 마음을 닮을 수는 없을까. 잠시 살기보다 모두의 마음속에 영원히 기억되는 어른이 넘치는 사회가 될 수는 없을까. 이제 누가 따뜻한 말씀을 다시 해줄까. 정치인이 만든 천박하고 삭막한 사회를 누가 따뜻한 사회로 만들어줄 수 있을까. 어른 없는 사회를 어떻게 살아갈까. /김규인 수필가

2025-12-01

김장 시장을 보며

이제부터 본격적인 김장철이다. 마트에 가면 절인 배추 예약 받는다는 문구와 함께 부재료인 무, 갓, 젓갈 등을 쉽게 볼 수 있다. 지인이 김장을 했다며 김치를 가져다주었다. 이미 십여 년 전부터 김장을 하지 않았기에 고마운 마음에 덥석 받았다. 부재료가 많이 들어가지 않은 시원하고 담백한 김치를 나는 좋아한다. 지인의 것을 꺼내 맛을 보았다. 젓갈 향이 강한 김치가 입안을 톡 쏜다. 문득 고등학교 때 생각이 났다. 점심시간이면 자연스럽게 여러 명이 둘러앉아 집에서 싸 온 도시락을 함께 먹었다. 다른 친구가 싸 온 반찬도 맛볼 수 있고, 수다도 떨 수 있어서 참 소중하고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엄마의 음식에만 익숙해서 나는 다른 집 음식을 잘 먹지 않았다. 그 날도 싸 온 반찬만을 먹고 있었는데, 친구들이 집어갔다. 할 수 없이 옆자리에 앉은 친구의 김치를 집어 들었다. 김치가 입에 들어간 순간 확 치밀어오르는 구토감에 당황한 나는 삼키지도 씹지도 못하고 굳어 있었다. 친구네 김치는 젓갈을 많이 넣은 것이었다. 강한 젓갈 냄새가 나를 자극한 것이다. 눈치를 보며 억지로 김치를 삼켰다. 그 이후 다른 친구의 반찬에는 손을 아예 대지 못했다. 누군가에게는 맛있었을지도 모르는 그 음식이, 아무렇지 않게 지나갈 수도 있었을 일이 내게는 오래도록 머릿속에 잔상으로 남아있게 되었다. 얼마 전 아주 오랜 만에 서울에서 놀러 온 친구들과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뭘 먹고 싶은지를 이야기하다가 쉽게 결정을 못해 서로 싫은 음식을 제해보기로 했다. 바닷가에 사니 회를 먹자는 한 친구의 말에 선뜻 가자는 소리를 할 수 없었다. 조심스레 나는 기억 속에 있던 횟집의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고등학교 방학 때 이모집을 방문하였다. 모처럼 놀러온 조카에게 맛있는 것을 사주겠다며 데리고 간 곳은 횟집이었다. 잠깐 화장실을 갔다 오다가 본 광경에 말을 잊고 서 있었다. 벽에 못이 박혀 있었는데, 주인이 살아 있는 붕장어의 머리를 못에다 박은 후 산 채로 껍질을 벗기는 것을 보게 된 것이다. 속살을 드러낸 붕장어가 꿈틀거리는 모습과 주인의 거침없는 손을 보면서 나는 식욕을 잃었다. 접시에 올라온 붕장어회를 이모의 눈을 피하며 한 점도 먹지 않았다. 이후로 횟집에 가면 그 장면이 머릿속에 떠올라 젓가락이 멈칫했다. 내 얘기를 들은 친구들은 대번에 트라우마구나 했다. 김치나 회에 대한 기억은 거부할 수도 사라지게 할 수도 없는 것이다. 머리에 각인된 그 풍경은 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음식의 선택을 바꾸게 한 것일 수도 있다. 마음이 상처를 입고 회복하는 것에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그것을 트라우마라는 단어로 이야기하는 것은 지나친 의미 확대가 아닌가 싶었다. 트라우마를 이야기하는 전문가들은 그 용어가 너무 폭넓게 강하게 쓰이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대신에 ‘감정상처’’마음 부상’‘심리적 충격’ 등의 말을 쓰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말한다. 두 사건을 생각하며 의외로 음식뿐만 아니라 여러 부분에서 이런 심리적 거부감이나 감정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 상처는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거부감이 아니었을지. 익숙한 것은 쉽고 마음에 여유를 주기에 우리는 낯섦보다는 익숙함에 젖기를 즐긴다. 불편함이 덜하고 신경을 덜 써도 되기 때문이다. 반면, 낯섦은 긴장을 촉진시킨다. 낯설다는 것 속에는 두려움이란 감정이 감춰져 있다. 마음을 완화시키지 못하고 긴장으로 온 몸을 팽팽하게 만들기도 한다. 가득 공기가 찬 풍선이 매듭이 조금 풀리면 예측 못한 방향으로 날아올라가는 것처럼 그 마음이 방향을 잃으며 거부감을 불러일으킨 것 같았다. 아직도 내 마음 어딘가에 남아 있을 그 풍경을 그려본다.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만든 개인적인 경험에 감성적인 예민함이 덧대어져 편견이나 선입견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마음의 작은 부상들이 치유되어 편견이나 선입견 없이 음식이나 사람들을 대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북적이는 김장 시장이 새삼 정겨워 보인다. /전영숙 시조시인

2025-11-30

K-스틸법 통과, 후속조치도 신속히 마련돼야

위기에 몰린 국내 철강산업을 지원할 이른바 K-스틸법(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및 탄소중립 전환을 위한 특별법)이 지난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법안 발의 후 116일 만이다. 미국발 고관세 부과와 글로벌 공급 과잉 등으로 침체일로 놓인 철강업계가 간절히 바라던 법이 통과되자 철강도시 포항의 각 분야에서 환영의 입장을 쏟아냈다. 특히 사상 유례없는 철강산업의 위기에 대해 국가 차원의 지원체계를 뒷받침할 법적 근거가 만들어짐에 따라 이번 법 통과에 대한 기대감도 상당하다. 글로벌 경기 침체, 중국산 저가공세, 탄소규제 등 복합적 위기에 빠진 철강산업은 그동안 수요 감소를 견디지 못한 일부 공장이 조업을 중단하고, 일부는 문을 닫는 지경에 이르렀다. 포항철강공단 생산액을 살펴보면 2022년 12조2400억원이던 생산액이 올해는 10조4900억원으로 급감했다. 아는 바와 같이 철강산업은 국가 제조업의 근간을 이룬다. 철강산업의 붕괴는 국가경제에 치명적 타격을 준다. 이번 K-스틸법은 이런 배경 때문에 여야 국회의원 245명이 찬성해 통과시켰다. 여야의 극한 대립 중에도 철강산업에 대한 위기감과 이를 해결해야 한다는 정치적 공감대가 높게 형성된 탓이다. 문제는 법 제정에 따른 실질적 효과를 어떻게 잘 이끌어 내느냐 하는 것이다. 일단 큰불은 껐지만 철강산업의 회복에 실질적 영향이 미칠 수 있게 후속조치를 빠르고 정교하게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포항시와 산업계는 지역현장의 의견과 요구를 반영한 구체적인 지역철강산업 지원 근거를 반드시 시행령에 반영해 줄 것을 주장한다. 저탄소철강특구 지정과 국가전력망·용수·수소공급망의 국가재정 전액 지원 등 다수의 요구를 내걸고 있다. 특히 철강산업 전용 요금제를 한시적으로 시행령에 넣어 줄 것도 산업계는 요구한다. 우리나라 철강산업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이번 법 제정이 다시 도약할 기회가 돼야 한다. 정부는 시행령 마련에 산업계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고, 법 제정의 실효성을 최대한 높여야 할 것이다.

2025-11-30

연말정국 최대변수된 ‘추경호 영장’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의 구속영장 심사가 2일 오후 3시 서울중앙지법 이정재 영장전담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다. 추 의원은 지난해 비상계엄 선포 당일 윤석열 전 대통령 측의 요청을 받고 의원총회 장소를 여러 차례 바꿔 공지함으로써 다른 의원들의 계엄 해제 표결 참여를 방해한 혐의(내란 중요임무 종사)를 받고 있다. 조은석 특검팀은 추 의원이 지난해 12월 3일 밤 11시22분쯤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비상계엄에 협조해달라는 취지의 전화를 받은 뒤 국민의힘 의원들이 계엄 해제 표결에 동참하는 것을 방해하려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국회 본회의장으로 모여야 한다는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대표의 요청에도 ‘중진 의원들이 당사로 올 테니 그들의 의견을 들어보자‘며 의총 장소를 거듭 변경했다는 것이 특검 판단이다. 반면 추 의원은 “장소 변경은 경찰의 국회 봉쇄로 불가피한 상황 때문이었으며, 공모 의혹 역시 명확한 증거가 없다”는 주장이다. 그는 지난주 국회 신상 발언에서 “특검의 영장 청구는 국민의힘을 위헌정당 해산으로 몰아가 보수 정당의 맥을 끊어버리겠다는 내란 몰이 정치공작”이라고 항변했다. 추 의원 영장 발부 여부는 비상계엄 사태 1년을 맞은 정국의 향방을 가를 것으로 보인다. 만약 영장이 기각되면 국민의힘은 여권을 향한 역공 기회를 얻는 동시에 중도 외연 확장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다만 영장이 기각되더라도 특검이 추 의원을 불구속 기소할 가능성이 커 선고가 나올 때까지 사법 리스크 여진은 계속된다. 영장이 발부되면 국민의힘은 당 존립 위기에 직면한다. 국민의힘 원내지도부가 조직적으로 계엄 해제 표결 방해에 나섰다는 법적 판단이 일차적으로 내려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수사가 다른 의원들을 향해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추 의원 혐의가 사실로 확인되면 국민의힘은 위헌 정당 해산 심판을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추 의원 구속영장이 기각되든 발부되든 연말 정국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 됐다.

2025-11-30

내란의 시간

이틀 지나면 2024년 12월 3일 ‘내란의 밤’ 1주년이다. 다수 국민은 세월 참 빠르네, 할 것이지만 나는 다르다. 내란은 현재 진행형이고, 그 중심지지 세력은 내가 살고 활동하는 대구-경북이기 때문이다.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이다. 어쩌다가 천하의 술주정뱅이 망나니에게 바짓가랑이를 붙잡혀 1년 가까운 세월 동안 인간 말종의 하수인으로 지내고 있단 말인가?! 소맥 폭탄주로 정신 착란 증세를 보이는 자는 “파렴치한 종북좌파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외쳤다. 겨울 초입에 다수 시민이 안온한 집에서 휴식을 취하던 시각에 난데없는 칼잡이처럼 대갈일성(大喝一聲)으로 ‘파렴치한 종북좌파 세력!’ 타령. 누가 진정 ‘파렴치한’ 종자(種子)인지 이제야 하나둘씩 밝혀지고 있다. 안팎이 닮아도 너무도 쏙 빼닮은 탐욕의 ‘비계덩어리’가 암수한몸 되어 합작한 굴욕과 수치의 내란이 어느새 1년에 가깝다. 우리가 애면글면 기대하던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한강이 지목되어 많은 국민이 기뻐하던 그 시각에 그자들은 헌정질서를 유린하고 사적인 이익을 극대화하고자 ‘파렴치한’ 내란을 획책하여 지구촌 전체를 경악시키는 쿠데타를 감행한 것이다. 21세기 20년대 대한민국에 종북좌파 세력이 있다는 확신범이 일국의 대통령이었다는 사실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지난 세기 7~80년대, 군부독재의 화신 박정희-전두환의 철권통치 시기에 난무했던 종북좌파 책동을 4~50년이 지난 시점에 재활용하는 자의 정신과 뇌 상태가 심히 의심스러운 것이다. 그런 자를 아직도 맹종하는 인간들의 심신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을 터. 작년 12월 4일, 그러니까 내란의 밤 다음 날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나는 청도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강의 문학세계와 우리의 삶’을 주제로 2시간 강연했다. 강연 준비를 위해 전날 늦은 밤까지 자료를 만들다가 마주한 ‘파렴치한 종북좌파 타령’에 아연실색(啞然失色)하고 말았다. 아, 정녕 이것이 나의 자랑스러운 조국 대한민국에서 일어날 법한 일이란 말인가! ‘소년이 온다’를 집필하기 위한 자료를 수집하다가 한강은 이런 질문을 자신에게 했다고 한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한강이 내린 결론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1980년 5월 참혹한 광주학살을 경험하고 교육받은 세대가 한마음 한뜻으로 잔인무도한 비상계엄을 막아냈으니 말이다. 참으로 놀라운 통찰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파렴치하고’ 참람(僭濫)한 내란은 아직 종결되지 않았고, 내란 수괴를 비롯한 다수 잔당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두 눈을 희번덕거린다. 영장 전담 판사들은 이런저런 구실로 구속영장을 각하하는 몰염치하고 반역사적인 행태를 거듭하고 있다. 내란의 시간은 아주 천천히 흐르면서 국민의 가슴에 뜨거운 울화(鬱火)를 선사하며 염장을 지르고 있는 형편이다. 매우 보수적인 인간 공자는 논어에서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음이 잘못”이라고 말한다. 크나큰 과오(過誤)를 저질렀지만, 여전히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상대방 탓을 해대는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지난 1년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것이 못내 궁금한 시점이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외부 기고는 기고자의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5-11-30

중국과 대나무 비계

중국에 있어 대나무는 전통적 가치의 상징물이다. 수천 년 전부터 중국은 음식이나 교통수단, 주택, 책, 무기. 악기 등에는 대나무를 많이 사용했다. 서양이 파피루스에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면 중국에서는 대나무에 글씨를 썼다. 대나무는 매화와 난초, 국화와 더불어 사군자(四君子)라 부른다. 품격 있는 식물로 인식한다. 한때 해외에 대해 배타적 정책을 쓴 중국을 가리켜 ‘죽의 장막’이라 부른 것도 대나무가 중국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26일 홍콩 타이포 구역 초고층 주거단지에서 불이나 수백 명이 목숨을 잃는 안타깝고 충격적 사건이 발생했다. 화재가 초기 진압되지 못하고 희생자가 크게 늘어났다. 그 원인으로 건물공사를 위해 설치한 대나무 비계가 지목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빌딩이 많은 홍콩을 여행하다 보면 공사 중인 빌딩 외벽에 대나무 비계를 설치한 광경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비계는 높은 곳에서 작업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임시 가설물이다. 대개의 나라에선 비계 재료로 강관 파이프를 사용하고 있지만 홍콩은 전통방식인 대나무를 사용한다. 친환경적인 데다 비용이 적게 들고 설치도 용이해 홍콩의 빌딩에는 대나무 비계를 설치하고 공사를 하는 곳이 많다. 북송 시대 유명작품 ‘청명상하도’에도 그려져 있을 정도라 하니 이 방식이 천년은 넘었다. 그러나 이번 화재가 커진 이유로 대나무 비계가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는 비판 여론에 대나무 비계 사용을 철폐하자는 여론도 강하게 나온다. 홍콩에서는 공사용 대나무 비계를 만들기 위해 매년 7m 길이의 대나무 막대 500만개를 생산한다고 한다. 이번 화재의 충격으로 대나무 비계가 사라질까 관심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11-30

프랑스 여자만 80세에도 사랑하랴

며칠 전 60대 이상의 남녀를 매칭시켜 주는 방송을 보았다. 출연자들의 평균 연령이 68.5세라고 한다. 공중파 방송에서는 미혼 남녀를 연결해주는 ‘나는 솔로’가 4년째 인기리에 방송되고 있고, 이혼한 젊은 남녀를 연결해주는 ‘돌싱글즈’라는 프로그램도 방영 당시 큰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공중파 방송도 아니고 일회성 이벤트 성격이 강하지만, 그래도 이런 방송은 앞으로 더 나올 것 같다. 남자 셋이 먼저 앉아 있고 나중에 여자 셋이 들어와 각자 마음에 드는 남자 옆에 앉는다. 중간에 남자가 여자를 선택하는 시간이 있으니 처음에 여자가 먼저 남자를 선택하는 것이 불공평한 것은 아니다. 두 여성은 딸이 신청해서 나오게 되었다는데 그렇다고 전혀 소극적이지 않았다. 여성들은 9년에서 20여 년 전에 사별한 것 같은데, 자녀들을 키우느라 지금까지 남자 친구를 사귈 마음의 여유가 전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는 여자로서 남자 친구도 사귀고 손도 잡고 뽀뽀도 하고 싶다는 마음을 감추지 않는다. 이 방송을 보자니, 몇 년 전 읽은 ‘프랑스 여자는 80세에도 사랑을 한다’(2018년 번역)라는 책이 생각난다. 이 책은 일본 출신 기자 노구치 마사코가 프랑스 남자와 결혼하여 프랑스에서 오랫동안 살면서 이웃에 사는 프랑스 여자들의 라이프 스타일에 대해 느낀 것을 쓴 것이다. 그 책에 나온 프랑스 여자들이 모든 프랑스 여자를 대변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웃에 사는 프랑스 여자들의 삶을 보고 느낀 바를 쓴 것이니 어느 정도 보편성은 있으리라 생각한다. 80세에 사랑이라니, 제목만 봐서는 좀 철없어 보여서 큰 관심이 없었지만, 그래도 독서 모임 교재라 반쯤은 억지로 읽게 되었는데, 의외로 지금까지도 가끔 생각나는 책이다. 자유롭고 인생을 즐기는 프랑스 여자들의 삶의 철학은 소소한 에피소드에서 잘 드러난다. 그중에서도 두 가지가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데, 하나는 80세 할머니가 빨간 코트를 입고 등을 펴고 걷는 사진이다. 책을 읽을 당시에는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몰랐지만, 이제는 이 할머니가 존경스럽다. 다른 하나는, 어느 할머니가 저자에게 그날 만날 수도 있는 사랑을 위해 항상 속옷을 섹시하게 갖춰 입는다고 말하는 장면이다. 속옷 할머니 이야기에서는 여전히 문화적 차이가 많이 느껴지지만, 이제 우리도 60대 이상의 남녀를 연결하는 방송이 나왔다는 것은 우리 사회도 많이 변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물론 일부 수위가 센 발언은 조회 수를 위해 연출이 가미된 것이겠지만, 그래도 남자와 손잡고 농사도 같이 짓고 싶다는 한 여성의 소망은 현실감 있게 느껴졌다. 기대 수명이 길어지면서 황혼 이혼을 하거나 사별해서 노년에 혼자 된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1인 가구는 800만3000 가구인데, 이 중 60세 이상 1인 가구가 300만 가구에 육박한다. 이들이 모두 남은 생을 무색무취한 무성의 인간으로 살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우아하고 독립적이면서도 섹시함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노년의 아름다움이 아닐까?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2025-11-30

서울 지하철 느낌, 찜찜

서울역에 도착했다. 1년 만이다. 명동에서 열리는 문학 행사에 참석하러 가는 길이다. 작년에 여기 온 것도 이달, 곧 11월이다. 지난해는 인천에 법정 교육을 받으러 가는 경유지로 왔었다. 올해와 지난해의 나들이가 같은 점은, 지하철을 타고 목적지에 간다는 거다. 다른 점은 작년엔 동행이 하나 있었고, 금년엔 혼자 왔다는 사실이다. 또 지난해엔 제법 긴 시간 지하철을 탔고, 올핸 작년의 반도 못 되는 시간을 탄 점이다. 하지만, 지하철을 탄 시간대가 비슷하여 느낌을 비교하기엔 무리가 없어 보인다. 업무적인 일이 없다면, 일부러 서울에 와야 하기에 서울행은 쉽지 않은 형편이다. 젊은 날 서울에서 2년을 공부하며 살았고, 88 서울올림픽의 해에는 본사 파견근무를 하였다. 반년가량을 주중에는 서울, 주말에는 포항에서 머무는 주말 가족으로 살았었다. 이런 과거 연유 때문인지 아니면, 한국인이어서인지 나의 서울에 대한 관념은 뭐라 똑 부러지게 말할 수 없이 복잡미묘하다. 굳이 말하자면, ‘가깝고도 먼 곳’이거나, ‘가까이할 수 없는 당신’ 또는. ‘미워도 다시 한번’ 혹은, ‘초대받지 않은 손님’ 같은 존재다. 나만이 느끼는 서울에 대한 마음인지, 서울에 살지 않는 한국인이 비슷하게 느끼는 정서인지는 알 수 없다. 아무튼, 그런 서울역에 만 1년 만에 KTX를 타고 와서 우선 점심을 먹기로 했다. 오후 1시경이어선지 식당가가 무척 붐볐다.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은, 1년 전엔 없던 중국어 간판이 붙은 식당이 있다는 변화다. 중국인 무비자 입국에 따른 업주의 마케팅 전략의 하나일 터. 생각보다 비싼 점심을 먹고 밖으로 나와 더위를 식힌 후 지하철 전동차에 올랐다. 한낮인데도 복잡했다. 명동역에 내려 휴대폰 지도와 길 묻기로 목적지에 도착, 행사에 참석했다. 돌아오는 길은 고속버스 타기를 택했다. 늦게 포항 도착하면 걸어서 집에 갈 수 있고 또, 그 옛날 매주 고속버스로 서울을 오가던 추억이 한 몫 보탰기 때문이다. 퇴근 시간대에 복잡한 지하철을 한번 갈아타고 1시간 정도 후에 고속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옛 추억을 곱씹는 고속버스 여행 끝에 자정 가까이 포항터미널에 내렸다. 십 여분 집으로 걸어오며 이런 생각이 났다. 1년 전 탔던 지하철과 오늘의 분위기가 어딘가 달라졌는데, 그게 뭘까. 곰곰이 기억을 더듬어 생각해 보았다. 정전기가 피부에 닿듯이 찌릿한 느낌이 들며 ‘맞아. 바로 그거, 웃음을 못 본 거야!’하고 속말이 나왔다. 그랬다. 지난해는 서울 지하철에서 젊은이들의 웃음을 더러 보았었다. 한데, 올해는 못 보았다. 우리 사회에서 웃음이 사라져가는 단면일까. 그렇다면, 원인은 사회의 총체적 변화에 있을 테지만 정치, 경제적인 급변이 가장 클 것이다. 짧은 시간의 지하철 전동차 분위기가 서울의 그것을 대변한다고 보기는 어려울 거다. 하지만, 작년보다 올해의 지하철 분위기가 웃음이 사라졌다고 내 마음이 느끼는 게 못내 찜찜하다. 나만의 느낌일까. 부디, 우리나라 지하철에서 다시 웃음꽃이 활짝 피어나는 날이 오기를 진심으로 빈다. /강길수 수필가

2025-11-30

윤석열 뒤치다꺼리가 지겹지도 않나

3일이면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지 1년이다. 시대를 60년쯤 거슬러 올라간 듯한, 황당함을 떨칠 수 없었다. 민주주의를 거꾸로 뒤집는 시 도였다. 특수부대와 장갑차를 막은 것은 응원봉을 든 젊은이와 시민이었다. 그런데 정치권은 1년이 지나도록 공치사다. 갑자기 횡재한 집권당은 자기 힘으로 정권을 차지한 듯이 기고만장이다. 국정을 전리품 취급한다. 욕심에 염치가 없다. 국민의힘은 자기들이 무엇을 잘못한 건지도 모른다. 실패한 윤석열의 길을 따라가겠다며 허장성세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주 대구 동성로에서 “뿔뿔이 흩어져 계엄도, 탄 핵도 막지 못했다”라고 주장했다. 윤 전 대통령 중심으로 뭉쳤으면 계엄을 막았다고 한다.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 전 대통령의 탄핵도 막았어야 했다는 뜻이다. 비상계엄을 해제하지 말고, 유지해야 했다는 말인가. 아무리 좋게 해석해 도, 그의 말은 ‘윤 어게인’이다. ‘윤석열 정부로 돌아가자’는 말로 들린다. 그는 또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 정권이 나왔다”라고 주장했다. 책임을 ‘네 탓’으로 돌리는 게 정치인의 고질적 습성이라고 치부하더라도,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렵다.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지 않았으면, 이재명 재판은 계속됐다. 대법원은 지난 5월 1일 이재명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사건을 유죄취지로 파기 환송했다. 그 사건의 1심 재판부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1심만큼은 아니라도, 아무리 양보해도, 이 대통령의 피선거권이 제한될 가능성이 컸다. 선거법 위반 사건은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이 확정되면 5년간, 집행유예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으면 10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된다. 이 대통령에게는 다른 재판도 줄줄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것을 막은 것이 윤 전 대통령이다.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헌법상 보장된 국회의 계엄 해제권을 무력으로 방해하려다 탄핵됐다. 스스로 탄핵의 길을 자초하는 바람에 이 대통령을 당선시켰고, 이재명 재판은 모두 중단됐다. 이제 유죄마저 무죄로 만드는 법 개정과 검찰, 법원 손보기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만 단행하지 않았다면, 2027년 5월 9일까지 임기가 보장돼 있었다. 이재명 대통령의 운명도 완전히 달라졌을 가능성이 크다. 그 운명을 바꾸어준 것이 윤 전 대통령이다. 장 대표는 아니라고 한다. 그럼, 누가 그런 일을 저질렀다고 생각하나. 입법권은 물론 행정권과 사법권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손에 쥐어줬다. 왜 윤 전 대통령이 이런 무리수를 뒀나. 최근 내란 재판에서 속속 드러나고 있듯이, 김건희 여사의 천박하고, 유치한 권력 놀음을 감추기 위해서가 아니었나. 사실 따지고 보면 국회 절대다수 의석을 민주당에 몰아준 사람도 윤 전 대통령이다. 그런데 장 대표는 “우리가 황교안”이라고 한다. 윤 전 대통령의 불법선거 음모론을 따라가자는 요구다. 지난 주 한국갤럽이 ‘잘못한 일이 많은 대통령’을 조사하니 윤 전 대통령이 77%로 가장 많이 나왔다. 전두환 전 대통령(68%)보다 더 나쁜 평가를 받았다. 탄핵소추안 가결 직전 윤 전 대통령의 직무평가 지지율이 11%였다. 올 4월 탄핵안 인용 직후 유권자의 69%가 ‘잘된 판결’이라고 응답했다. (한국선거여론 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물론 ‘윤 어게인’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윤 전 대통령이 잘한 일이 많다고 답한 사람이 12%나 된다. 그런 깃발을 드는 유튜버도 있고, 지역에 따라 윤 전 대통령을 평가하는 데 차이도 있다. 그러나 가장 너그러운 대구·경북에서조차 ‘잘못한 일이 많다’는 응답(66%)이 ‘잘한 일이 많다’는 응답(17%)의 네 배에 이른다. 다른 지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죽하면 홍준표 전 대구시장도 “갈 때 가더라도 한때 대통령을 지냈던 사람 답게 당당히 가라”고 충고했겠나. 이런 상황에서 장 대표는 윤석열 끌어안고, 비호하는 전쟁에 당력을 모으자고 한다. 중도파를 때리고, 당권을 다진다. 내년 선거는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선거에서 패배한 야당의 당권이 무슨 소용인가. 답답하기 짝이 없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11-30

TK 신공항, 어떤 경우도 중단되는 일 없어야

대구경북 신공항사업이 중대 기로에 서 있다. 계획대로라면 올 하반기에는 공항 편입지역에 대한 감정평가가 시작되고 1년 내 토지보상 절차에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토지보상 재원 마련에 제동이 걸리면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지금 같은 흐름이면 당초 목표한 2030년 개항은 불가능하다. 정부의 재원지원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없으면 사업 자체가 오랫동안 표류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있다. 지난번 김정기 대구시장 권한대행은 “연말까지 자금조달 계획이 확정되지 못하면 내년에 예정된 보상착공 등 관련 절차가 늦어지고 개항 시기도 지연될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김 대행 걱정대로 TK 신공항 내년 예산은 당초 정부안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대로 간다면 1년간 사업이 중단된다. 말이 1년 중단이지 사업 자체가 표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재명 정부가 TK 신공항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지 않으면 이런저런 이유로 논의만 벌이다 언제까지 표류할지 알 수가 없다. 애초부터 군부대 이전을 기부대 양여방식으로 선택한 것이 잘못이다. 하지만 14조원에 이르는 군부대 이전 사업을 지자체에게 맡기는 것도 옳지 않다. 정부 주도 사업으로 하든지 사업의 연속성을 위한 해법을 강구해야 한다. 대통령도, 국무총리도, 여당 대표도 긍정적으로 대답한 만큼 사업이 진행되게 결론이 나야 한다. TK 신공항사업은 지역의 미래와 경제 활성화 등 500만 대구경북민의 염원이 담긴 사업이다. 국가 차원에서도 균형발전을 가속화하는 좋은 기회다. 사업이 늦어질수록 지역발전은 늦어지고 기회비용도 커진다. 내년도 정부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12월 2일)을 앞두고 권정기 권한대행 등 대구시 관계자들이 토지보상비 등 신공항 건설을 위한 공공자금관리기금 2795억원의 예산확보를 위해 정부와 정치권을 상대로 설득을 벌이는 등 총력을 쏟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도 공항은 옮기는 게 맞다고 한 사업 아닌가. 사업의 연속성이 끊어지지 않게 내년 예산에 신공항 관련 예산이 꼭 반영되길 바란다.

2025-11-27

누리호 4차 발사···‘뉴 스페이스’시대 열었다

최초 민간 주도로 제작된 우주발사체 누리호 4차 발사가 27일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이번 발사에는 민간 기업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정부 기술을 이전받아 발사체 제작·조립을 총괄했다. 발사 주관사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이지만 한화 엔지니어들도 준비와 발사 운용에 참여하며 기술과 노하우를 익혔다. 우리나라도 이제 민간 주도(뉴 스페이스) 우주시대가 개막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4차 누리호의 임무는 주탑재 위성(차세대중형위성) 3호와 큐브(초소형)위성 12기를 고도 600㎞에 안전하게 올리는 것이었다. 4차 발사 성공은 우리나라가 독자적인 우주 수송 능력을 갖췄음을 다시 한번 입증한 것이다. 차세대소형위성을 탑재한 3차 발사(2023년 5월 25일)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중형위성을 실었고 큐브위성 수도 늘어 총 탑재중량이 960㎏으로 증가했다. 우주산업은 미래 신성장 동력으로, 경제·안보·과학기술 전 분야에 걸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현재 미국의 스페이스X와 블루 오리진을 비롯한 다수 글로벌 스타트업들이 우주발사체 개발과 우주 서비스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산업 지형을 바꾸고 있다. 누리호 4호기에 실린 중형위성 3호는 오로라와 대기광을 관측하고 우주 자기장을 측정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이를 통해 내비게이션과 항공기 운항, 자율 주행차의 위치 오차를 줄일 수 있다. 12개의 큐브위성은 우주쓰레기 폐기기술 시험(우주로테크사 제작 ‘코스믹’), 신약개발(스페이스린텍사 제작 ‘비천1000’), 지구대기 관측(서울대 학생들 제작 ‘쌍둥이 큐브’), 위성들의 기동력 시험(카이스트 제작 ‘케이-히어로’) 등의 역할을 한다. 앞으로 민간 주도의 우주발사체 개발과 상용화가 본격화할수록 우주산업 생태계는 더욱 다변화되고 고도화된다. 우리나라가 세계 우주 강국으로 도약하려면 민간기업이 주도해서 차세대 발사체 개발, 달 탐사, 심우주(달 밖의 우주) 탐사 등을 성공시켜야 한다. 그러려면 우주산업에 대한 정부의 지속적인 투자와 지원이 뒤따를 필요가 있다.

2025-11-27

이혼소송에서 만나게 되는 나르시시스트

나르시시즘(自己愛·Narcissism)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한 나르키소스에서 유래된 단어로, 자기 자신에 대한 과도한 사랑과 이상화된 자신의 이미지에 집착하는 자기애적 성격장애를 말한다. 자신감이나 이기주의의 정도를 넘어 과도한 자기애적 성향을 발현하며 자신의 존재 유지를 위해 타인의 삶과 존재를 짓밟는 것을 원동력으로 살아가는 자들이 나르시시스트이다. 모든 사람은 어느 정도 자기애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하므로 누군가를 함부로 나르시시스트로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나르시시스트를 배우자나 가족, 또는 가까운 관계로 두어 먹잇감이 되는 경우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가야 될 수도 있으므로 나르시시스트를 구별하고 대처법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혼전문 변호사로 이혼소송을 하다 보면 사건 속에서도 나르시시스트를 만나곤 한다. 그들의 첫 번째 특징은 과도한 자기중심적 성향이다. 배우자와 자녀들의 생활이 자신의 일과 휴식에 맞추어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를 강요한다. 공무원이었던 한 의뢰인은 결혼 기간 내내 단 한 번도 회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칼퇴근을 해서 육아와 가사를 하고 아이들이 아파도 육아휴직 중인 배우자 대신 의뢰인이 연차를 내 병원에 데리고 가야 했다. 의뢰인의 개인 시간이나 여가는 나르시시스트인 배우자가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결코 허용되지 않는 일이었다. 두 번째 특징은 과도한 칭찬과 인정욕구이다. 한 의뢰인은 아기가 생겨 서두른 결혼 준비에서 집 전세금과 혼수 전부를 마련해야 했다. 거기에 더해 수천만 원의 예단까지 요구하는 남편의 자신감의 이유는 자신이 잘생겼다는 것이었다. 의뢰인은 시부모로부터도 우리 아들들이 너무 잘생겨서 어딜 가도 뭘 받고 장가보내야 한다고 했다는 말을 들어야 했고, 남편 역시 자신이 잘생겼다고 철석같이 믿으며 아내와 처갓집에 끊임없이 경제적 지원을 요구했다. 나르시시즘의 세 번째 특징은 타인의 감정에 대한 공감은 전혀 없지만 자신에 대한 비판이나 거절에는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며 분노와 공격적 행동을 보인다는 것이다. 앞선 사례들의 나르시시스트들은 참다못한 배우자가 항의하거나 이혼의 뜻을 보이자 극도의 분노를 드러냈고 결국엔 분을 이기지 못해 외도나 가정폭력을 저질렀다. 이런 일들이 사건화 되며 자신들의 약점이 드러나자 이 결혼은 모두 상대방의 잘못으로 깨진 것이라고 선언한 뒤 집을 나가 버렸다. 한 의뢰인은 회사에서 불륜 중인데다 근무태도가 엉망인 직원을 해고했는데, 자신을 해고한 것에 대한 분을 이기지 못한 직원은 다음 날 새벽 회사에 침입해 물건을 훔치고 탕비실에 인분을 뿌려 놓았다. 전형적 나르시시스트의 모습이었다. 의뢰인은 그를 야간주거침입절도죄 등으로 고소했다. 예전에는 그저 혼인을 지속할 수 없게 하는 중대한 사유로만 여겨졌던 나르시시즘이 이제는 심리학적 정신장애인 나르시시즘으로 파악되게 되었다. 먹잇감으로 가스라이팅 당하는 대상은 주로 가족이나 연인이기에 피해자들이 나르시시스트를 아는 것이 필요하다. 변호사와 판사도 사건의 깊은 이해를 위해서 나르시시즘의 특성에 대해 알고 심리학을 공부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김세라 변호사 △고려대 법과대학, 이화여대로스쿨 졸업 △포항 변호사김세라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2025-11-27

싱글라이제이션

혼자 사는 사람이 꾸준히 늘고 있다. 배우자와 사별 후 혼자 사는 노령층뿐 아니라 전 연령대에서 1인 가구가 는다. 우리나라 1인 가구 비율은 34%. 세 집 건너 한집 꼴이다. 우리보다 고령화가 일찍 온 일본은 1인 가구 비율이 38%다. 2050년에는 44.3%까지 치솟을 거란 전망도 있다. 독일 42%, 프랑스 36%, 미국 29%로 선진국일수록 1인 가구 비율이 높다. 1인 가구 하면 생각나는 게 바로 고독사다. 일본은 한 해 4만명이 넘는 사람이 고독사한다. 작년 상반기 중 자택에서 세상을 떠난 뒤 1개월 이상 지나서야 시신이 발견된 사망자가 4000명이다. 1인 가구의 고립된 생활과 고독사의 심각성을 잘 보여준 사례다. 일본은 작년 4월부터 ‘고독 고립대책 추진법’을 시행하고 있다. 이 법은 고독과 고립상태를 사회 전체의 과제로 명시하고, 국가와 지자체가 문제의식을 갖고 개선토록 책무를 부여했다. 우리나라도 고독사가 증가세다. 2023년 한해만 3361명이 고독사했다. 70대 이상에서 가장 많지만 20대 30대층에서도 꾸준히 증가세를 보인다. 경북지역의 1인 가구 비율(38.9%)이 전국 상위권이다. 인구 수로 45만명을 넘어서 역대 최고다. 1인 가구는 사회 가치관의 변화와 경제적 어려움 등 복합적인 이유로 늘고 있다. 문제는 1인 가구 증가가 고독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보건부 조시에서도 1인 가구의 78%가 고독사 위험군이라 한다. 1인 가구 증가 현상을 싱글라이제이션(Singlization)이라 부른다. 싱글라이제이션이 심화되는 사회다. 우리도 일본처럼 지자체의 엄격한 책무가 부여됐으면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