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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벌써 처서란다

입추가 지나도 더위가 가시지 않더니만 때늦은 장마라면서 연일 비를 퍼붓는다. 동남아 여행 때나 듣던 우기(雨期)라는 말을 우리나라에서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지구 온난화라고 떠들어 댄 지 수십 년은 된듯하고 수도권 농장에서 바나나를 수확한다고 하니 이젠 별반 놀랄 일도 아니다. 곧 지리산 열대 밀림을 보게 될 날이 몇 년 남지 않은 느낌이다. 새벽에 선풍기도 끈다는 처서가 곧 온다. 조금 있으면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겠구나 싶다. 그리고 곧 크리스마스 캐럴도 울려 퍼지겠지. 국방부 시계만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노인네 많은 복지관 시계도 쉼 없이 움직인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삐뚤어진다.” 처서(處暑)의 뜻은 가을이 온다는 이야기다.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 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라고 할 정도로 여름이 가고 가을이 드는 계절의 엄연한 순행을 드러내는 때이다. “처서가 지나면 풀도 울며 돌아간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은 처서 이후엔 풀이 자라지 않기에 추석 성묘를 대비해 벌초를 가야 한다. 시간 없다고 처서 전에 벌초하는 사람을 본다. 성묘 때 절할 자리도 없이 풀이 자란 것을 보고 아연실색하게 될 것이다. 햇볕이 강하면 돌아서면 풀이 엄청나게 자라는데 괜히 생고생할 필요가 없다. 날을 잡아도 알고 잡아야지 무턱대고 빈 시간에 맞추다 보면 낭패 보기 십상이다. 집안에서 제법 어른 축에 속한다 싶으면 주위에 귀를 열어 세상 돌아가는 것도 좀 알고 옛날 속담도 주워 담아 ‘어른다움’을 가져야지 식솔들이 말을 듣는다. 이런 말 한마디가 권위를 부른다. 엉뚱한 이야기나 하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입 냄새 풀풀 풍기며, 했던 이야기 또 하며 남들 다 아는 이야기를 쉴 새 없이 떠들어 봤자 나중에 채신머리없는 늙은이로 전락하고 말뿐이다. 인공지능 시대를 살면서 이상한 유튜브만 보다가 젊은이들에게 타박이나 받지말고 시대를 역행하지 않고 순행하는 멋진 삶을 생각해 볼 일이다. 입은 다물고 지갑만 열라는 이야기가 그냥 나온 이야기가 아니다. 그리고 집안 양반 피가 그래도 몸속에 조금이라도 흐른다면 처서가 오면 먼저 해야 하는 것이 책 정리이다. 음건(陰乾)이나 포쇄 (曝曬) 같이 어려운 용어까지는 몰라도 습기 먹어 냄새날법한 책을 버릴 건 버리고 정리할 건 정리를 해야 하는 시기이다. 집에 책이 너무 많아 정리를 하긴 해야 한다. 더 쌓아놓을 공간이 부족하다. 돈도 못 벌어오면서 책만 쌓아놓는다는 질책이 쏟아지기 전에 뭔 조치를 해야 할 판이다. 눈치 줄 때 알아서 기어야 한다. 아침에 새마을 금고에 갔다가 이사장에게서 젊디젊은 전무가 중풍이 와서 반신불수가 되었다는 말을 전해 듣는다. 전날까지 멀쩡했는데 기가 막힐 일이다. 업무를 보다 갑자기 쓰러졌고 119 불러 조치를 했음에도 몸이 엉망이 되었단다. 아직 찬 바람 부는 날씨는 아닌데 중풍이 웬 말인가. 요즘 다리에 쥐도 자꾸 나고 뒷골도 당기는 게 중풍 전조증상이 아닌가 싶어 갑자기 살짝 긴장된다. 쉼 없는 계절의 흐름을 느끼는 순간 몸도 같이 상하고 있다는 것에 한없이 슬퍼지는 가을맞이이다. /노병철 수필가

2025-08-21

영일만항 “북극항로 관문으로 잠재력 충분해”

지난달 경북도와 포항시, 포항지방해양수산청 등이 참석한 가운데 포항 영일만항 회의실에서는 ‘북극항로 시대 대비한 영일만항의 전략’이란 제목의 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국립 한국해양대학교 남형식 교수는 “2035~2040년 쯤 북극항로를 통한 컨테이너 운항 활성화가 시작될 것”으로 예상하고 “영일만항은 연관 산업을 지원할 인프라 투자와 이를 뒷받침할 인력양성을 위한 중장기적 대비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영일만항 확장 개발 예정지에 북극항로 선박수리 조선 서비스 시설과 수산물 가공단지 활성화 체계 구축도 필요하다”고 했다. 새 정부가 북극항로 개척 사업을 국정과제로 추진하면서 부산을 비롯 경북, 울산, 전남, 강원 등 바다를 낀 지자체들이 북극항로 선점 경쟁에 나서고 있다. 부산은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을 계기로 북극항로 개척의 주도적 역할을 자임하며 북극항로 개척 태스크포스팀도 구성했다. 포항시는 그보다 앞서 영일만항을 북극항로 거점으로 삼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을 전개해 왔다. 지난해 11월 영일만항의 북극항로 개척 모색을 위한 포럼을 국회에서 개최했고, 관련 연구 용역도 이미 발주했다. 경북도는 영일만항을 환동해 에너지 허브이자 북극항로시대 핵심 거점으로 육성하겠다는 전략 발표도 했다. 이철우 도지사는 평소 신북방경제의 핵심 관문으로 영일만항을 육성하자는 소신을 밝혀왔고, 최근에는 선실 확장 등 영일만항을 거점항으로 육성해 줄 것을 정부에 건의하기도 했다. 북극항로 개척에 있어 포항은 환동해 경제권의 중심지이며 지리적으로 유리해 북극항로 거점으로서 전략적 우위에 있다. 이와 관련해 한국북극항로협회 최수범 사무총장은 “포스코 중심의 철강산업과 연계된 벌크화물 처리, 이차전지 사업의 핵심 광물자원 수요기지 그리고 과학기술 인재 측면 등에서 포항은 국가 핵심전략 거점으로서 충분한 잠재력이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제2의 포항제철을 건설한다는 각오로 거점항 육성에 임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북극항로 사업의 주도권을 잡는데 지역의 역량을 모아야 할 것이다.

2025-08-21

대구의 ‘모나리자’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하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떠오르고 한국의 간송미술관 하면 신윤복의 ‘미인도’가 생각난다. ‘모나리자’와 ‘미인도’가 자주 비교되는 것은 두 작품이 각국을 대표하는 미인상으로 높은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뛰어난 예술적 가치에 더해 시대적 상징성을 갖춘 것도 닮아 두 작품은 자주 비교돼 회자된다. ‘모나리자’는 16세기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걸작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으로 통한다. 다른 작가들에 의해 모방도 되고 상업적 목적으로도 많이 활용되는 작품이다. 루브르 박물관의 간판 스타로 통하는 ‘모나리자’ 작품 앞에는 항상 수많은 인파들로 붐빈다. 지금도 전 세계에서 많은 관광객이 ‘모나리자’를 보기 위해 루브르 박물관으로 향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신윤복의 ‘미인도’는 조선시대 ‘미인도’ 가운데 최고 걸작이다. 한국 미술사의 대표적 작품으로 손꼽힌다. 이런 명성 덕에 전시 때마다 관람객이 전시장 앞에 줄을 선다. 단아한 여성의 모습과 여인이 취한 다소곳한 자세, 그리고 가제를 얹혀놓은 잘 빗질된 머리, 정돈된 옷매무새 등은 조선 여인의 아름다움을 잘 묘사하고 있다. 신윤복 이전에는 이런 식의 전신상을 그린 ‘미인도’가 거의 없어 조선시대 풍속을 아는 미술사적 의미도 크다. 대구시가 조선시대 화가 신윤복의 대표작 ‘미인도’를 내년부터는 대구간송미술관에서 상설 전시한다고 밝혔다.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처럼 대구의 대표 문화 콘텐츠로 삼을 생각이다. 신윤복의 ‘미인도’가 대구의 모나리자가 될런지 기대를 한번 걸어보자. /우정구(논설위원)

2025-08-21

여당 주도 ‘영남발전특위’에 거는 기대 크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가 지난 20일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준비 상황 점검차 1박 2일간 방문한 경주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영남의 인재를 발굴하고 육성해서 지방선거에도 대비하는 ‘영남발전특위’를 조속한 시일 내에 발족시키겠다”고 했다. 정 대표는 이와 함께 “전당대회 이후에 호남발전특위를 만들어서 호남의 발전을 꾀하겠다고 말했는데, 호남만 발전시키면 되겠느냐”는 말도 했다. 여당 대표로서 영·호남을 균형감 있게 발전시키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TK(대구·경북)단체장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정 대표가 이날 직접 당 사무총장에게 지시를 내린 만큼 영남발전특위는 조만간 구성될 것으로 예상된다. 어제(21일) 출범한 호남발전 특위를 보면, 특위위원은 각 광역단체에서 활동하는 정치인과 지자체장, 현장 전문가, 시민단체 관계자 등 15명 내외로 구성될 전망이다. 특위에서는 영남권 각 시·도별 핵심 현안과 숙원사업에 대한 구체화된 실현 방안, 선결과제 등이 집중 논의된다. 특위에서 집약된 보고서는 예산 국회가 시작되기 전 당 지도부를 통해 대통령에게 정식 건의하는 절차를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각 시·도별 현안은 대통령 공약이나 국정과제와 겹칠 가능성이 커 특위 보고서는 명분과 동력이 동시에 실릴 수 있다. 민주당 경북도당위원장인 임미애 의원(비례대표)이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언급했듯이, TK지역은 오랫동안 보수 정치인들이 권력을 독점하면서 미래 비전이 없는 도시가 돼 버렸다. 단적으로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 꼴찌라는 꼬리표가 붙은 지 30년이 넘었다. 경제에 활력이 떨어지니 기업과 인재가 유출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설상가상 새 정부 출범 이후에는 모든 현안에 브레이크가 걸려 표류하는 상태다. TK지역민들은 앞으로 영남 발전특위가 현안을 하나하나 풀어내는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 지역 현안 대부분은 여당이 입법과 예산으로 적극 지원해주지 않으면 대부분 실현 불가능하다.

2025-08-21

촉법소년

어렸을 때 필자는 장난전화를 많이 했다. 재밌었다. 포항 청림동에 살고 있었는데 심심하면 아무 번호나 눌러 장난전화를 걸고 끊어버리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애 장난전화 단속 좀 시키라고 연락이 왔다. 청림동은 군부대 아파트라 집집마다 전화 추적이 가능했던 것이었다. 그땐 부모님께 된통 한번 혼나고 말았지만 지금 같으면 이렇게 원치 않는 전화를 계속 거는 것은 스토킹 범죄에 해당할 수 있다. 처음 고백하는 건데 조금 더 어렸을 땐 슈퍼마켓에서 아이스크림을 훔쳐 먹은 적도 있다. 더 고백할 것들이 많지만 여기까지만 하겠다. 어쨌든 만약 필자가 그때 스토킹 처벌법 위반과 절도로 전과자가 됐으면 어땠을까? 아마 인생은 암울했을 것이고 지금처럼 변호사가 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준법의식과 인지능력이 성숙하기 전에 저지른 일을 무조건 형사처벌 하자는데 동의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소년의 교화와 보호, 사회비용 면에서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촉법소년 제도의 존재 이유이다. 우리 형법은 만 14세 미만인 자는 어떤 행위를 해도 형사처벌 하지 못하도록 규정한다. 이 14세의 촉법소년 기준은 1953년 제정 형법에서 만들어져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얼마 전 서울 한 대형 백화점에 폭발물을 설치했다는 글이 인터넷에 반복적으로 올라와 그 일대가 발칵 뒤집혔다. 백화점 본관 건물 1층에 폭약을 설치했고 오후 3시에 폭파될 예정이라는 꽤나 구체적인 협박 글이다 보니 경찰 특공대와 소방대가 투입되었다. 백화점 이용객 4천여명이 대피하고 백화점 영업은 3시간 동안 중단됐으며 인근 상가들도 문을 닫고 대피했다. 이 일에 따른 영업손실은 백화점 측의 추산으로만 6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그런데 범인을 잡고 보니 제주도에 사는 중학교 1학년 학생이었다. 공공이 모이는 특정 장소를 폭파하겠다는 글을 인터넷에 올리는 것은 형법상 공중협박죄가 되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하지만 범인은 만 14세가 안된 촉법소년이므로 형사처벌 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촉법소년을 개정하자는 목소리가 다시 나오고 있다. 촉법소년 제도는 필요하지만 그 연령 기준을 개정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70년 전 14세와 2025년의 14세는 육체적 정신적 성숙도가 다른데 1953년에 만든 기준으로 여전히 어떤 범죄를 저질러도 형사처벌 할 수 없게 하는 것은 문제라고 한다. 하지만 10세 이상 14세 미만인 촉법소년이라면 형사처벌은 못 해도 소년법상의 보호처분은 가능하다. 소년법상 보호처분은 최대 소년원 구금까지 가능한 처분이므로 청소년을 무조건 전과자로 만들기보다는 지금의 촉법소년제도를 유지하되 소년법의 적용이나 다른 방법으로 교화 기능을 대신하자는 반대 의견도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아이들에게 법과 범죄에 대해 교육하는 것이다. 이 중학생이 협박글을 올리는 것은 공중협박죄라는 중범죄 행위이고 인터넷에 올려도 다 추적이 가능하며 너의 부모가 큰 돈을 물어줘야 될 수도 있다는 것을 학교에서 미리 배웠다면 어땠을까?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학교에서 영어 수학만 가르칠 것이 아니라 보이스피싱, 중고사이트 사기, 성범죄, 스토킹, 명예훼손 같은 것들에 대해서도 좀 가르칠 필요가 있다. /김세라 변호사

2025-08-21

공연을 마치고 난 후

오늘 정호승 시인의 문학강의가 있는 날이다. 나는 그의 시로 여는 시낭송이 계획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번 강의는 신경을 많이 썼다. 시인은 필요한 이것저것을 요구했으며 그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깐깐하다고 생각한 점은 시작하기 전부터 빔을 설치해서 화면을 보며 강연을 하겠다는 것이었는데 사실 미술관에는 전혀 그런 것이 준비되지 못하는 상황이었디. 하지만 꼭 필요한 것이라는 고집을 관철시키는 과정에서 며칠 동안 멤버 중의 한 명이 고생해서 겨우 완성한 상태였다. 당일이 되어 강의가 시작되자 시인의 생각은 현실적으로 옳았다. 강의장에 도착한 정호승 시인을 마주했다. 75세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젊어 보였다. 시인들이 대부분 어렵고 힘든 생활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맑고 깔끔한 이미지가 십 여 년 전에 봤을 때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인사와 함께 추억을 남기고자 줄을 잇는 사람들 틈에 나도 끼여 한 장의 추억사진을 찍었다. 함께 시낭송을 하게 된 지인은 본인이 십 오년 전에 사무국장을 하면서 선생님과 찍은 사진을 보여 주기도 했다. 세월은 언제 또 이렇게 흘러 여기까지 온 것일까. 정호승 시인의 특강은 프리젠테이션이었다. 그의 강의는 간결하면서 핵심을 사진과 함께 설명이 이루어지는 형태였다. 시는 은유다. 시는 개인의 창의성을 보여야함을 강조했다. 그의 시처럼 이해하기 쉽고 음악적 리듬을 살린 시어와 문장이 와 닿았다. 백여 명의 사람들이 고요히 그의 강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경주에 외가가 있었고 대구 사람이고 외할머니의 추억을 얘기 할 때는 오래된 사진을 보는 느낌이었고 에밀레종 속에 들어간 개구쟁이고 정말 귀엽다는 생각과 호기심 많은 소년이었구나라고 생각하며 웃었다. 기억과 추억과 그리고 사물의 독창성을 깨닫고 시어를 찾아내는 무한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정호승 시인이 낸 시집이 많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시를 쓰는 작가로 굳건한 이미지로 본다면 시인의 강의처럼 연기자로써 살아온 김혜자를 떠올리게 되었다. 두 사람 다 정점에 있는 사람이 아닐까? 라고 생각한 때문이다. 영화배우 김혜자는 백상예술대상을 수상할 때 했던 말들이 한동안 화제가 되기도 했다. 책을 펴낼 만큼 작가의 기량을 갖고 있던 그녀는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의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큰한 바람, 해 질 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것을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두고두고 나는 그녀의 대사를 기억하려 한다. 놓친 기억의 일부분을 메우기 위해서 가져온 구겨진 메모지를 꺼내 읽는 것도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이었다. 여든이 넘은 그녀가 ‘천국보다 아름다운’이란 작품을 통해 84세의 나이를 뛰어 넘는 연기력과 마지막 작품이 될 수 있다는 말이 가슴 뭉클했다. 자상한 어머니로 사랑스런 아내로써 치매를 앓는 노인의 역할까지 무수한 역할을 수없이 많이 하면서도 전혀 질리지 않는 그녀의 탄탄한 연기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정호승 시인의 많은 저서를 통해 그의 탄탄한 시어들의 탄력성과도 유사하게 느낀 때문 일지도 모르겠다. 살아간다는 것은 익히 하던 일을 무리 없이 소화해내는 일인지도 모른다. 오늘이 어제 같은 일상이더라도 살면서 우린 나 자신이란 몸에 에너지를 넣으며 하루를 비슷하지만 다른 연속된 시간을 살아내는 것이다. 그것들이 모여 한 사람의 생애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정호승 시인이나 김혜자 배우처럼 자신의 길을 걸으며 길 위에 발자국을 남기는 일, 그것이 바로 참인생이 아닐까 싶다. 그들을 통해 나 또한 잔잔하게 나의 목소리로 울려 퍼지던 정호승 시인의 시 낭송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낭송 시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라고 표현한 것은 그의 섬세한 내면을 잘 담고 있다. /배문경 수필가

2025-08-20

조손공감(祖孫共感)

“아이 워즈 어 고스트 우아 워즈 얼론 어두워진 앞길 속에 아이 르브드 두 라이브즈, 트라이 투 플레이 보스 사이즈(I was a ghost, I was alone 어두워진 앞길 속에I lived two lives, tried to play both sides)”. ‘케이팝데몬헌터스(케데헌)’의 노래에 푹 빠진 손녀의 공책이다, 이렇게 노래 가사를 한글로 적어 보면서 노래한다. 무슨 뜻인제 아느냐고 물으니 모른다며 해맑게 대답하는 손녀. 제 딴에는 노래한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읽기에 급급한 듯하니 귀엽고도 우습다. 이 노래는 애니메이션 ‘케데헌’의 OST ‘골든(Golden)’으로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전 세계적 인기를 얻었다는데 우리 손녀까지도 이렇게 열광(?)하니 과연 맞나보다. 이 외에도 여러 곡이 더 있다. 손녀가 “You‘re my soda pop, my little soda pop“이라고 ‘소다팝’을 흥얼거릴 때면 옆에 있던 나와 손자까지도 같이 따라 할 정도로 중독성 있는 멜로디니 참 인기가 있을 수 밖에 없겠다 싶다. 지난달이었다. 손자가 ‘케데헌’을 봤느냐고 물었고, 그게 뭐냐 되물었더니 자기는 세 번이나 봤다고 자랑하면서 TV로 넥플릭스를 켜서 같이 보자고 했다. 애니메이션이라 시큰둥했지만 장면 장면을 가리키며 워낙 아는 체하길래 대충 보는 척을 했다. 케이팝을 부르는 세 명의 걸그룹이 악귀를 잡는 능력으로 귀마인 사자보이스라는 남자 그룹을 물리친다는 내용이었다. 애니메이션의 배경이 한국이라는 것이 내 흥미를 끌었다. 거리의 간판이 한글로 쓰였고, 서울의 잠실 올림픽경기장, 삼성역 전광판, 북촌 한옥마을, 낙산공원과 남산타워, 명동 등이 배경으로 등장해서 서울시장이 ‘케데헌’ 제작진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보냈다는 뉴스를 접한 바는 있었는데, 과연 그랬다. 목욕탕과 한의원 등도 등장하니 K-컬처를 제대로 홍보하고 있는 셈이다. 내용은 그렇다 치고 배경이 흥미로워 자세히 보게 되는 애니메이션이었다. OST에는 또 관심 없었다가 손녀 덕분에 흥얼거리게 되니 참 이렇게 조손이 공감하는 접점이 있기도 하나 보다. TV를 거의 보지 않는 나도 월요일 밤의 ‘가요무대’는 챙겨본다. 내가 이렇게 늙어가는구나 생각하면서 보는 프로그램이다. 어제 ‘가요무대’를 볼 때 손녀는 옆에서 공책을 보며 ‘케데헌’의 소다팝을 흥얼거리고, 손자는 과학만화책을 보고 있었다. 내가 TV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니 애들은 하던 짓을 멈추고 나와 TV를 번갈아보며 이런 표정을 짓는다. 할머니가 노래를 하네? 손자가 책을 던지고 일어나 노래에 맞춰 설렁설렁 춤추는 시늉을 하자 손녀와 나도 일어나 서로 안고 빙빙 돌았다. 조손공감이 이렇게도 가능하구나. 아이들에게 노래방에 한 번 가자고 했더니 노래방이 뭐야? 되묻는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이번 방학 버킷리스트 하나 더 추가한다. 노래방 가서 각자 좋아하는 노래 목청껏 불러보기. 점수에 따라 내기도 하면 재미있어 하겠지.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2025-08-20

노화 방지를 위한 한의학적 생활 관리

노화는 인체의 모든 조직과 기능이 서서히 약해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하지만 그 속도와 양상은 사람마다 크게 다르고 생활 습관과 체질 관리에 따라 상당 부분 조절이 가능하다. 한의학에서는 노화를 단순히 피부의 주름이나 머리카락의 변화로만 보지 않고 오장육부의 기능 저하와 기·혈·정의 소모라는 전신적인 관점에서 이해한다. 한의학 고전인 황제내경에서는 신은 선천의 근본이라고 하였고 신장의 정을 노화와 직결된 핵심 요소로 보았다. 정은 생명 에너지를 저장하고 성장, 발육, 생식, 회복을 담당하는데 나이가 들수록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또 간은 혈을 저장해 눈과 피부의 윤택을 유지하고 비위는 영양을 전신에 공급해 근육과 피부를 튼튼하게 한다. 결국 신, 간, 비의 균형과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노화 방지의 기초라 할 수 있다. 음식은 한의학에서 약이 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다. 신장을 보하는 검은콩, 흑임자, 검은깨, 검은쌀 같은 흑색 식품은 기와 정을 보강해 노화를 늦추는 데 도움을 준다. 간과 혈을 보하는 대추, 구기자, 당근, 시금치 등은 피부의 윤기를 회복시키고 눈의 피로를 줄인다. 비위를 튼튼하게 하는 현미, 기장, 고구마, 호박은 소화력을 높여 영양 흡수를 돕는다. 반대로 지나치게 기름지고 단 음식 과도한 음주는 습열과 담을 쌓이게 하여 피부 노화를 촉진하므로 멀리하는 편이 좋다. 노화를 늦추기 위해서는 규칙적인 생활과 수면이 필수다. 특히 밤은 음이 충만해지고 정과 혈이 회복되는 시간인데 현대인들처럼 늦게 자거나 수면의 질이 떨어지면 신장과 간의 회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노화가 빨라진다. 가능하면 밤 11시 이전에 잠자리에 들어 7시간 내외의 숙면을 취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일정한 생활 리듬은 자율신경계 안정에도 도움이 되어 피부 탄력과 면역력 유지에 유리하다. 이와 함께 계절에 맞춘 생활 습관이 필요하다. 여름에는 땀을 어느 정도는 흘려야 면역력이 올라가고 겨울에도 적당하게 산책을 해 면역력을 올리는 것이 좋다. 너무 덥거나 춥다고 에어컨 바람만 쐬거나 따뜻한 집에만 있으면 면역력이 더 떨어지게 된다. 기혈 순환이 원활해야 피부와 모발이 건강함을 유지할 수 있다. 하루 30분 이상 가볍게 땀이 나는 운동을 하거나 스트레칭, 기공, 태극권처럼 완만한 움직임을 꾸준히 하면 기와 혈이 잘 순환된다. 목과 어깨, 등 근육이 굳어 있으면 얼굴로 가는 혈류가 줄어들어 안색이 칙칙해지므로, 평소 자세를 바르게 하고 근육을 풀어주는 습관이 필요하다. 마음가짐 역시 노화 속도에 영향을 준다. 한의학에서는 희로애락 같은 감정 변화가 오장육부의 기능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고 본다. 특히 스트레스는 간기울결을 일으켜 혈류 흐름을 막고 피부 트러블이나 탈모, 노화를 촉진한다. 명상과 복식호흡, 취미 활동을 통한 정서 안정은 신체 회복력과 피부 건강을 함께 높여준다. 노화는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한의학적 생활 관리로 그 속도를 늦추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 신, 간, 비의 균형을 유지하고 올바른 음식과 수면 규칙적인 운동 마음의 안정을 실천한다면 외형뿐 아니라 내면까지 건강하고 아름답게 나이를 더해갈 수 있다.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2025-08-20

만연한 안전불감증이 부른 청도 열차사고

19일 청도에서 발생한 무궁화호 열차 인명사고는 누가 보아도 안전불감증이 빚은 참사로 보여진다. 조금만 주의했더라면 인명사고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란 생각 때문이다. 전문가들도 이번 사고를 두고 “전체 사고 상황을 고려할 때, 관리 감독 소홀에 따른 전형적인 인재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 것은 우리 사회에 안전불감증이 여전히 만연하다는 뜻이다. 안전의식에 대한 느슨한 인식과 시스템에 대한 자성이 필요한 때다. 경찰 등 관계기관들이 안전관리 의무를 제대로 지켰는지 여부에 대해 조사에 들어갔으므로 그 결과를 지켜보아야겠지만 늘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대응만 되풀이 하는 것은 아닌지 회의감이 든다. 이날 사고는 경북 청도군 소싸움 경기장 인근 경부선 철로에서 마산으로 향하던 무궁화호 열차가 선로 안전 점검을 위해 이동 중이던 근로자 7명을 치어 그중 2명이 숨지고, 5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피해 가족 위로를 위해 청도에 들른 민주당 정청래 대표조차도 “이번 열차 사고는 완벽한 인재”라고 말할 정도로 어이없는 측면이 많다. 선로 작업에 동원되는 근로자에게는 사고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인식하는 문제다. 철도안전법에도 이런 위험을 우려, 작업책임자의 작업원에 대한 안전교육은 필수다. 조금만 주의 깊게 행동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드는 대목이다. 작업 현장과 연락하는 신호체계가 정상적으로 작동되고, 현장 감독자가 철저하게 근로자의 안전을 보살폈더라면 이런 불행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국토부 등이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매년 열차 사고는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산업재해다. 철도안전정보관리시스템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최근 5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철도 교통사고는 317건에 달한다. 열차 충돌, 탈선, 건널목 사고, 화재, 시설파손 등 매년 평균 수십 건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5년간 인명 사고도 229명에 이르고 있다. 최근 산업현장에서 일어나는 안전사고에 대한 경계령이 대통령의 관심으로 어느 때보다 엄중하다. 청도 철도 사고의 원인도 철저히 규명하고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2025-08-20

경주 APEC은 새 정부 외교역량의 시험대

정청래 민주당 대표가 지난 19일 경주를 찾아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준비 상황을 점검했다. 여당 지도부가 APEC 행사장 현장에서 관련 인프라나 잠재적 위험 요소를 체크하고 의견을 내는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정 대표는 이날 경주 화랑마을 육부촌에서 열린 현장 브리핑 자리에서 “20여 개국 정상이 천년의 고도 경주에 와서 회의한다는 것은 국격을 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며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고 했다. 행사 준비위 측은 이날 정상회의장을 비롯해 만찬장, 숙소 등 주요 인프라는 9월 중 모두 마무리되고, 테러 위협에 대비한 대책 등도 치밀하게 세워져 있다고 설명했다. 취임 후 매주 경주 현장을 찾는 김민석 국무총리도 밝혔지만, 이번 APEC 행사의 성공 여부는 무엇보다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주요국 정상들의 참여 여부가 결정한다. 어느 국가, 어떤 정상이 경주를 방문하느냐에 따라 정상회의의 격이 달라진다. 김 총리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참석 여부와 관련해 “당연히 참석한다는 전제로 준비 중이다. 두 정상이 어디 묵을지 실무적인 의사소통도 거의 마무리 단계”라고 밝혔다. 중국은 내년 APEC 정상회의 개최국으로 준비 차원에서 당연히 참석할 것이고, 미국도 조선업계가 집중된 경남 거제시가 경주 근처에 있어서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참석 가능성에 대해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북한은 APEC 멤버 국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경주 APEC 행사는 이재명 정부 외교 역량의 시험대이기도 하다. 정부는 남은 기간 주요국 정상들이 경주를 방문하고 싶은 매력적인 도시로 생각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23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의 한일 정상회담, 25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은 이 대통령이 경주 APEC 행사에 대한 우호적인 외교적 여건을 만들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2025-08-20

트럼프의 미국, 기로에 서다

미국은 ‘Make America Great Again(MAGA)’을 외치며 세계질서를 흔들고 있다. 보호무역과 자국 이익 우선을 내세운 관세강화 정책은 단기적으로는 일부 국내 산업을 보호하고 표면적 승리를 얻은 듯 보일 수 있다. 길게 보면, 세계 곳곳에서 미국발 일방적 관세정책에 고통받는 국가들의 원성이 있고 뿌리째 흔들리는 국제질서가 있다. 미국이 쌓아온 ‘신뢰 자본’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으나 결정적인 자산의 침식이 자리 잡고 있다. 2018년, 트럼프 행정부는 세계 각국의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고관세를 부과했다. 캐나다, 유럽연합, 일본 등 동맹국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미국철강업계는 환영했지만 동맹국들은 깊은 당혹감과 분노를 드러냈다. 캐나다는 보복관세로 맞섰고 유럽연합도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긴급 대응에 나섰다. 함께 가자던 오랜 파트너들이 각자도생의 태도로 돌아섰고 미국의 지도력은 도전받기 시작했다. 동북아시아의 경우는 더 복잡했다. 미·중 무역전쟁의 여파로 중국산 제품에 고율의 관세가 매겨지자, 한국과 대만, 베트남 같은 중간재 수출국들도 직격탄을 맞았다. 스마트폰과 가전, 반도체 등 첨단 제조업의 글로벌 공급망이 뒤틀렸고, 중소기업들은 무역 차질로 문을 닫았다. 한·중·미 간의 삼각무역 구조 내에서 미국의 변화무쌍한 무역정책은 외교적 마찰을 넘어 각국의 생존에 위협이 되었다. 중국은 발빠르게 대응했다. 브라질, 러시아, 동남아 국가들과의 교역을 강화하며 미국 중심의 무역의존도를 낮추었다. 미국의 관세정책은 상대국의 항복을 끌어낸 것이 아니라 ‘디커플링’을 초래했고 미국 중심의 글로벌 가치사슬은 서서히 이완되기 시작했다. 이른바 ‘포스트-미국’ 무역 질서의 씨앗이 뿌려진 것이다. 무역 규범이 위기를 맞았다. 미국은 WTO 분쟁해결기구의 상소기구 판사 임명을 거부하면서 국제무역 규범의 수호자 역할을 스스로 포기했다. 다국적 규칙 기반의 질서 대신에, 국력에 의존한 양자 협상 체제가 부상했다. 무역뿐 아니라 국제 정치 전반에서 불확실성을 키우게 되었다. 세계는 갈수록 더욱 ‘미국 없는 세계질서’를 상상하게 되고 대안적 리더십을 모색하는 중이다. 흐름의 저변에는 미국이 축적해 온 ‘신뢰 자본’의 자멸이 있다. 신뢰 자본은 돈으로 살 수 없는 자산이다. 오랜 기간 세계의 조정자이자 경찰 역할을 자임하며 쌓아온 정치적 신뢰, 경제적 예측 가능성, 국제규범의 준수자라는 이미지가 바로 그것이다. 미국은 그 자본을 스스로 갉아먹으며 소모하고 있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소중한 신뢰 자산을 깎아 먹는 셈이다. 미국이 위대한 나라로 다시 서려면, 보호무역과 자국 중심의 승자 독식 전략이 아닌, 다자 협력과 신뢰 회복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관세라는 칼을 휘두를 때마다 파편은 온 세계를 향하지만, 가장 깊은 상처는 미국 자신의 리더십에 남는 법이다. 짧은 안목으로 거둔 이익이 긴 미래의 전략적 손실이 되지 않도록, 미국은 스스로 돌아보아야 한다. 세계는 미국을 주목하고 있다. 세상의 시선이 기대와 존경일지 아니면 실망과 의심일지는 미국의 손에 달렸다. 국제관계는 멀리 넓게 보아야 한다. /장규열 본사 고문

2025-08-20

문재인의 실패한 ‘자식 농사’

풍수지탄(風樹之歎)을 말하면 ‘이상한 아저씨’로 취급받는 세상이 왔다. 그 옛날 자식들은 아버지 뜻을 거스르고, 어머니를 부끄럽게 만드는 행위를 극히 경계했다. 그게 공자가 ‘논어’에서 말한 바 효지시야(孝之始也·인간이 할 수 있는 효도의 시작)였으니. 세상이 바뀌었다. 자랑스럽게 내세울 아들이나 딸은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사고나 치지 않으면 다행인 시절이 21세기다. 전 경기지사 남경필과 국회의원 이철규의 아들은 마약사범으로 처벌받았고, 그게 남우세스러워 아비가 고개를 들지 못한 게 오늘의 한국. 선거를 통해 뽑힌 국가의 최고 통치권자 자식이라고 아버지의 뜻대로 될 리가 없는 모양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딸 문다혜는 지난해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만취한 채 운전대를 잡아 세상의 손가락질 대상이 됐다. 음주운전은 미필적 고의의 살인 행위다. 대통령인 아버지는 부동산 문제 해결에 골머리를 앓는데 딸은 ‘갭투자’로 억대의 시세 차익을 얻었다는 비난도 받았다. 뿐인가? 무혐의 처분되긴 했지만 자선바자회를 열어 수익금을 기부하기로 해놓고 이를 지키지 않아 입건까지 됐다. 문재인 씨를 지지하는 이들은 “성인인 자식의 행위를 왜 아버지가 책임져야 하느냐” 묻는다. 일견 타당한 이야기다. 그러나, 자식 하나도 통제 못하면서 5천만 국민에게 정직하고 바른 삶을 말했던 아버지의 부끄러움은 어떡할 것이며, 문씨를 대통령으로 인정하며 5년을 살아온 이 나라 국민들의 수치심은 누가 없애줄까?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는 낡았기에 버려야 할 농담이 아니다. 단 아홉 글자로 지향해 마땅한 통치자의 모습을 이처럼 제대로 형상화한 경구를 본 적이 있는가?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8-20

수국 핀 길을 걸으며, 여성의 존엄을 생각하다

7월 18일. 날씨는 화창했으나 최고기온이 35도에 육박하는 더운 날이었습니다. 저는 시부야에서 쇼난선(湘南線)을 타고 기타가마쿠라역으로 향했는데요. 기타가마쿠라 일대는 명찰이 즐비한 곳입니다. 특히 나쓰메 소세키가 인생의 비의를 풀고자 참선수행했으며, ‘문’(1910)이라는 소설에까지 등장시켰던 엔카쿠지를 비롯해, 초여름이면 수국으로 유명한 메이게츠인, 국보인 범종과 동일본 최대 규모의 산문을 자랑하는 겐쵸지 등이 유명하죠. 오늘 답사지로 선택한 곳은 도케이지(東慶寺)입니다. 도케이지는 8년 전에 몇 명의 연구자와 방문한 적이 있는데요. 그때는 일본에서 ‘비평의 신’으로 불리는 고바야시 히데오의 무덤을 찾느라 꽤나 많은 땀을 흘렸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사찰 곳곳에 피어있던 짙은 하늘색의 수국이 무척이나 이채롭고 아름다웠던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방문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런데 8년 만에 다시 찾은 도케이지는 고바야시 히데오의 무덤과 수국만으로 기억하기에는 너무나 다양하고 깊은 의미를 지닌 절이었습니다. 1285년 창건된 도케이지는 600여년 동안 ‘여성의 피난처’ 역할을 하던 사찰이었는데요. 과거 여성이 남편의 동의 없이 이혼할 수 없던 시절에, 여성이 이 절로 들어와 2년간 머물면 이혼이 인정되었다고 합니다. 위급한 상황에서는 여성이 비녀나 짚신을 던져 넣기만 해도, ‘도망쳐 들어온 것’으로 인정되었다고 하는데요. ‘인연 끊는 절(縁切り寺)’로도 불린 도케이지는 오늘날의 가정폭력 쉼터와 같은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또 하나 도케이지에서 놀란 건, 이 곳에 근대 일본을 대표하는 일본 지식인들의 무덤이 가득하다는 것이었습니다. 8년 전에는 고바야시 히데오의 무덤 찾는 것에만 신경을 썼는데요. 이번에 자세히 보니 이 곳에는 ‘비평의 신’ 이외에도 일본의 선(禪)을 세계에 널린 알린 스즈키 다이세쯔, ‘선(善)의 연구’(1911)로 일본근대철학의 주춧돌을 놓은 니시다 기타로, 윤리학자로 널리 알려진 와쓰지 데쓰로, 전후 일본의 교육 개혁을 주도했던 아베 요시시게를 비롯한 수많은 일본 근대 지성들의 무덤이 있었습니다. 이토록 많은 근대 지성이 한곳에 묻힌 이유는, 바로 도케이지 뒤편 산자락에 마쓰가오카 분코가 만들어진 것과 관련된 것으로 보였는데요. 마쓰가오카 분코는 일종의 도서관으로, 유명한 선승인 샤쿠 쇼엔이 주도하여 설립하고, 그의 제자인 스즈키 다이세쯔가 말년에 깊은 연구를 수행한 곳입니다. 아마도 이런 인연으로 근대 일본의 수많은 지성이 도케이지에 묻히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꽃의 절’로도 불릴 만큼, 계절별로 아름다운 꽃이 피는 이 조용한 절은 영혼의 안식을 얻기에 모자람이 없어 보였습니다. 마침 도케이지를 방문한 이 날은 한 달에 한번 수월관음보살반가상(水月観音菩薩半跏像을 일반에 공개하는 날이었는데요. 13세기 작품으로 추정되는 이 목조 반가상은, 편안하게 바위에 기대어 조용히 수면에 비치는 달을 바라보는 모습이었습니다. 이런 모습의 관음상은 일본에서는 가마쿠라 시대(1185-1333)에 주로 유행했다고 합니다. 제가 이 관음상을 보고 가장 크게 놀란 것은 크기였습니다. 관음보살의 전체 모습은 물론이고, 각종 장식까지 세밀하게 표현했음에도, 전체 높이가 겨우 34cm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너무나 작고 정밀하여 놀랍기까지 한 관음상 앞에서, 저는 자연스럽게 ‘축소지향의 일본인’이라는 오래된 명제가 떠올랐습니다. 지금도 최고의 일본문화론 중 하나로 꼽히는 이어령의 ‘축소지향의 일본인’(1982)은 일본인들이 뭐든지 ‘작게 만드는 것’에 특기가 있다고 말하는데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하는, 접이식 부채, 주먹밥, 접이우산, 도시락, 문고본, 분재, 꽃꽂이, 하이쿠 등이 모두 ‘축소지향’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지금도 일본에는 몸 하나 누일만한 공간에 호텔이라는 거창한 이름까지 붙인 캡슐호텔이 인기를 끌고, 수십년 전에는 ‘손 안의 오디오’인 워크맨으로 세계시장을 제패하기도 했던 것을 생각하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야기입니다. 이 저서를 관통하는 방법론은 구조주의로서, ‘축소지향의 일본인’은 수많은 일본문화의 표면 현상 밑에 놓인 심층구조로서의 ‘축소한다’를 탐색하고 있습니다. 이 때의 ‘축소한다’는 고메루(込める, 밀어넣는다), 오리타타무(折畳む, 접어 작게 하다), 히키요세루(引き寄せる, 가까이 끌어당기다), 니기루(握る, 쥐다), 게즈루(削る, 깎아내다), 도루(取る, 잡다), 쓰메루(詰める, 채우다), 카마에루(構える, 자세를 취한다), 고라세루(凝らせる, 집중시키다) 등으로 세분화할 수도 있는데요. 표정 하나하나까지 섬세하게 표현된 34cm 크기의 관음상을 보며, ‘축소지향의 일본인’이라는 명제를 실물로서 대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8년 전에 처음 도케이지에 왔을 때는, 오직 고바야시 히데오의 무덤 하나만을 찾아 한나절을 헤맸는데요. 8년이 지난 지금 다시 찾은 도케이지는, 일본문화의 많은 것들을 응축해 놓은 통조림처럼 느껴졌습니다. 눈이 시릴 정도로 짙푸른 녹음과 아름다운 새소리에 둘러쌓여, 산문을 나서는 제 머리에는 시대를 초월한 여성의 존엄과 자유, 그리고 구원에 대한 생각이 끊이지 않고 떠올랐습니다. /이경재(숭실대 교수)

2025-08-19

거울 속의 나이

에스컬레이터가 한 층, 또 한 층 천천히 오르고 있었다. 주말의 백화점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매장 사이로 풍기는 화장품 향과 음식 냄새가 공기 속에서 뒤섞였다. 바로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유난히 귀에 꽂혔다. 서너 명의 어르신들이었다. 나이로만 따지면 칠순은 훌쩍 넘은 듯한 분들이었는데 말투는 묘하게 젊은 기운이 서려 있었다. 들으려는 의도는 없었으나 들려 오는 소리는 막지 못했다. 그들의 이야기는 식당에서 있었던 일로 시작되었다. 한 종업원이 주문을 받으며 말했다고 한다. “어르신, 여기 메뉴판입니다.” 그 한마디가 문제였다. 이야기를 주도하던 분이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누가 나를 보고 어르신이라고 하나? 주문 받는 자기가 나보다 더 나이 들어 보이더만. 나 아직 그렇게 안 늙었어!” 그 말에 다른 친구들이 ‘맞다’며 맞장구를 쳤다. 종업원이 무심히, 혹은 예의를 지키느라 던진 호칭이 그들에게는 날카로운 침처럼 꽂힌 모양이었다. 나는 그 대화가 재미있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마음에 오래 남았다. 왜냐하면 그분들은 누가 봐도 사회가 통상적으로 ‘어르신’이라고 부르는 연령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속마음 속에서는 여전히 젊음이 살아있는 듯 보였다. 아니 어쩌면 스스로를 ‘젊다’고 여기는 감각이 그분들의 자아의 핵심일지도 모르겠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몸이 늙는 것이지 마음이 반드시 늙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자기 안에 머물러 있는 시간 속에서 살아간다. 거울 속 주름진 얼굴이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는 내 안의 시간은 여전히 예전의 어느 시점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어릴 적에는 서른 살이 되면 인생의 절반쯤을 산 듯 성숙해 보였고, 쉰이 넘으면 어김없이 ‘중년’이라는 무게를 짊어진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나 막상 그 나이가 되어보면 마음은 여전히 스무 살 무렵의 감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세상은 나를 나이로 분류하지만 내 속의 나는 그 분류를 거부한다. 이 착각은 어쩌면 생존 본능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여전히 젊다고 믿는 마음은 무기력과 체념을 막아주고 새로운 것에 호기심을 품게 만든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주관적 연령(subjective age)’이라고 부른다. 실제 나이보다 자신을 젊게 느끼는 사람일수록 건강 지표가 좋고 사회적 관계망도 더 활발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젊음에 머물러 있다는 착각’은 분명 삶을 지탱해 주는 긍정적인 힘이다. 그러나 그 착각에는 그림자도 있다. 젊음을 고집하는 마음은 때로는 나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할 지점에서 불필요한 분노를 만든다. ‘어르신’이라는 호칭에서 예민하게 반응한 백화점의 그분들처럼 말이다. 사실 ‘어르신’이라는 말은 존칭이다. 그 안에는 연륜과 경험을 존중한다는 뜻이 숨어 있다. 하지만 ‘나는 아직 아니다’라는 내면의 방어막이 그 호칭을 곡해하게 만든다. 사회적으로 나이 듦을 존엄하게 받아들이려면 내 마음 속의 젊음과 거울 속의 나이가 화해해야 한다. 그것은 순순히 늙음을 받아들이라는 뜻이 아니라 젊음의 감각을 지키되 나이가 쌓아준 지혜와 품격을 함께 품으라는 말이다. 나 역시 나이를 계산하면 중년의 어귀에 있지만 속으로는 여전히 삼십대의 감각이 살아 있다. 거울 속의 얼굴과 마음속의 나이가 다른 채로 살아가는 것, 어쩌면 그 불일치가 인간을 더 유연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백화점을 나서며 나는 뒤에서 들려오던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오래 곱씹었다. ‘어르신’이라는 호칭 하나에 담긴 세대 간의 인식 차이, 나이듦에 대한 자기 해석,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 나이를 둘러싼 심리적 줄다리기. 그 모든 것이 한순간의 대화 속에 압축되어 있었다. 나이란 단순한 숫자기 아니다. 스스로를 어떻게 인식하는가, 세상이 우리를 어떻게 불러 주는가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복합적인 현상이다. 언젠가 누군가 나를 ‘어르신’이라 부를 때 나는 그 말 속에 존경을 먼저 읽어내고 싶다. 내 마음속 젊음과 거울 속 나이가 그때쯤은 비로소 화해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김경아 작가

2025-08-19

청년이 돌아오고, 어르신이 머무는 포항을 꿈꾸며

거리를 걷다 보면, 세대마다 다른 표정을 마주하게 된다. 바쁘게 발걸음을 옮기는 청년의 얼굴에는 기대와 불안이 교차하고, 골목길 평상에 앉은 어르신의 표정에는 그리움과 고단함이 함께 묻어난다. 놀이터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여전히 힘차지만, 그 아이들이 자라서도 이 도시에서 꿈을 키울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 부모들의 마음 한편을 채우고 있다. 도시는 건물과 도로가 아니라,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완성된다. 도시를 지탱하는 진짜 힘은 시민의 삶 속에 있다. 그래서 포항이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한 세대만을 위한 도시가 아니라 모든 세대가 함께 살아 숨 쉬는 도시여야 한다. 청년이 돌아오고, 어르신이 머무르고, 아이들이 자라는 도시. 그 균형이 깨지면, 아무리 산업이 발전해도 도시는 서서히 힘을 잃는다. 포항은 한때 전국에서 가장 역동적인 도시 중 하나였다. 하지만 지금 많은 청년이 대학 졸업과 동시에 이곳을 떠난다. 일자리 부족, 낮은 임금, 한정된 문화·여가 공간, 주거 불안정이 청년의 발목을 잡는다. “좋은 일자리가 있다면 떠날 이유가 없다”라는 말, “월세 걱정 없이 창업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라는 말, “퇴근 후에도 즐길 거리가 있어야 한다”라는 그들의 말을 곱씹으며 그 이유를 해결할 방안 마련에 몰두해 왔다. 청년이 돌아오는 포항을 만들기 위해서는 취업·창업·주거를 하나의 연결된 과제로 보고 종합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 지역의 주력산업과 연계한 청년 전문인력 양성, 스타트업 인큐베이팅, 장기 거주형 청년 임대주택 확대, 청년 문화거점 조성 등은 단순한 정책 목록이 아니라 도시의 미래 설계도인 것이다. 고령화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나이가 든다는 것이 사회에서 멀어진다는 뜻이 되어서는 안 된다. 포항은 어르신이 존중받고, 건강하고, 활기차게 살아갈 수 있는 도시가 되어야 한다. 의료·돌봄·여가·사회참여가 균형을 이루는 고령친화도시, 이는 복지가 아니라 품격이다. 홀로 사는 어르신의 고독사를 예방하는 생활 안전망, 경로당을 넘어서는 복합문화공간, 지역사회 멘토로 참여할 기회 등은 단순히 어르신을 돌보는 차원을 넘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드는 과정이다. 포항의 미래는 아이들에게 달려 있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교육 인프라, 안전, 보육 부담으로 고민이 크다. 지역의 특성을 살린 교육과 돌봄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해양과학·친환경 에너지·문화예술 등 포항이 가진 자원을 교실 밖에서 아이들이 체험할 수 있는 교육. 안전한 통학로, 질 높은 방과 후 프로그램, 학부모의 부담을 덜어주는 보육 환경이 뒷받침된다면, 아이들은 포항에서 자라난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길 것이다. 세대가 함께 행복한 도시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청년이 안심하고 돌아와 뿌리내리고, 어르신이 존중받으며 편안히 살아가고, 아이들이 꿈을 키우는 환경이 촘촘히 이어져야 한다. 그 속에서 서로 다른 세대가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어울리며, 서로의 경험과 에너지를 나누는 순간들이 쌓여야 진짜 ‘함께’의 도시가 된다. /김일만 포항시의회의장

2025-08-19

삶의 질과 마인드 맵

일을 잘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인드맵을 잘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세상 삶이나 회사에서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도 대부분의 활동은 머리를 쓰는 일인데, 마인드맵은 우리의 머리를 가장 효과적으로 쓸 수 있는 툴이기 때문이다. 마인드맵을 활용하면 흩어져 있는 데이터, 정보, 지식 등을 논리정연하게 한 페이지로 정리할 수 있고, 아이디어를 구체화하여 획기적인 결과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마인드맵(Mind Map)은 삶과 직장의 문제 해결이나 기획에서 사고(思考)를 시각적으로 정리하는 도구이다. 마인드맵은 한 가지 주제를 중심에 두고, 관련된 아이디어나 정보를 방사형(放射型)으로 시각화하여 창의력-기억력-문제해결 능력을 높여준다. 영국의 교육학자 토니 부잔(Tony Busan)이 체계화 한 방법으로, 두뇌의 연상 작용을 시각화 한 ‘생각의 지도’ 라고 할 수 있다. 마인드맵의 조건은 첫째, 중심 주제의 명확화이다. 하얀 종이 중앙에 삶의 목표, 직장의 과제 등의 핵심 주제를 이미지나 키워드로 표현하는 것이다. 둘째, 방사형 구조이다. 주제에서 뻗어나가는 가지로 세부 주제를 연결하는 일이다. 셋째, 키워드 사용이다. 문장이 아니라 핵심 단어, 짧은 구로 표현해 뇌가 빠르게 연상할 수 있다. 넷째, 이미지, 색상 활용이다. 그림, 아이콘, 색깔을 써서 직관성과 기억 효과를 강화하는 일이다. 다섯째, 계층적 구조이다. 큰 가지에서 작은 가지로 점점 세분화하는 체계적인 사고 전개이다. 여섯째, 개인 맞춤형이다. 정답은 없고, 본인의 사고 흐름에 맞게 자유롭게 확장하는 것이다. 가령, ‘올해 인생 계획’을 마인드맵으로 서술해보면, 건강, 가족, 재무, 자기계발 등 영역별 목표를 세우는 것이다. 각 테마에 대한 종합과 목표관리를 잘 한 결과, 분산되어 있던 생각이 정리되고 실행력이 높아져 1년만에 저축 목표를 달성하는 등 생활의 여유와 삶의 질이 높아진다. 또한, 이직, 창업, 유학 등 중요한 인생 선택을 할 때 찬반 이유를 마인드맵으로 정리하여 명확히 비교,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가 있다. 기업에서는 신제품 개발 아이디어 회의에서 마인드맵을 활용하면, 팀원들이 각자 아이디어를 붙여 나가면서 단순 아이디어에서 구체적 기능과 마케팅 전략까지 한눈에 정리되고, 실제 성공적인 신제품이 출시되게 된다. 이외, 제조업의 품질 불량 문제를 마인드맵으로 생산 조건(사람/기계/재료/방법)관점 체계적으로 분류하면, 원인 파악이 빨라지고 개선 효과도 높아진다. GE,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글로벌 기업에서는 회의록 대신 마인드맵을 써서 의사 결정, 정보 공유 속도와 일의 효과를 높인다. 이런 듯 마인드맵은 삶과 직장에서 ‘흩어진 생각을 구조화 하고 창의적 해결책을 찾는 도구’로 사용된다. 중심 주제를 선정하고 방사형 확장, 키워드 활용, 이미지 전개, 계층 구조화 하는 일이다. 개인의 삶의 방향을 설정하는 일과 목표 달성, 그리고 기업의 기획, 혁신, 문제 해결을 하는 데 효과적이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2025-08-19

봉트남 마을 프로젝트

한·베트남 정상회담을 계기로 봉화군과 베트남의 역사적 인연이 새삼 화제다. 지난 11일 한·베트남 정상 만찬장에 봉화 특산물이 요리로 올라오고 베트남 당 서기장 환영연에 봉화군수가 등장하는 모습이 언론에 노출되면서 봉화와 베트남 간의 인연을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다. 베트남에서 직선거리로 3000km 이상 떨어진 경북 봉화에 베트남 마을이 조성된다는 사실도 한·베트남 정상회담을 기회로 더 널리 소개되기도 했다. 베트남 리 왕조의 후손 이용상이 내란을 피해 고려국에 도착한 것이 1126년이니까 베트남과 봉화의 인연은 800년이 넘는다. 이용상은 고려국으로부터 화산 이씨 성씨를 하사받고 봉화에 세거지를 이루고 살았다. 임진왜란 때는 그의 13대 후손 이장발이 19세 나이로 문경새재에서 왜군과 싸움을 벌이다 전사해 그의 공덕을 기린 충효당이 봉화에 세워졌다. 지금도 봉화에 있는 화산 이씨 집성촌에는 7가구 10여 명의 후손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1995년 한국과 베트남 수교 5주년을 맞아 화산 이씨 종친회 대표가 선조의 고향인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는 베트남 정부의 주요 요인들이 직접 나와 이들을 환영했다고도 한다. 봉화군은 베트남과의 이런 인연을 스토리텔링해 봉트남(봉화+베트남)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올해는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계획공모형 지역관광개발사업으로 이 계획이 선정돼 소멸 위기 극복의 획기적 사업이 될 것으로 기대를 걸고 있다. 지역의 역사적 사실에 스토리를 입혀 관광 사업화하고 지역성장의 동력으로 삼고자 하는 자치단체의 노력이 돋보이는 좋은 사례라 하겠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8-19

안동문화관광단지 활성화 언제 제대로 될까

2000년 국책사업으로 확정되고 2002년부터 개발하기 시작한 안동시 성곡동 일원 165만㎡ 부지의 안동문화관광단지 조성 사업이 13년째 답보 상태다. 개발 주체 측의 역량이 부족하거나 조성사업에 대한 관계기관의 관심이 부족한 게 아니라면 아직도 사업 부지의 절반이 개발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올 연말까지 총 5680억원을 투입할 예정이지만 8월 현재 개발률은 58.4%, 분양률은 47%에 그치고 있다. 경북 북부권 11개 시군의 중심숙박휴양 거점으로 조성한다는 야심찬 프로젝트가 무색할 지경이다. 안동문화관광단지 내 위치한 유교랜드는 2013년 만들어진 후 약 100억원의 적자를 내고 있다고 하니 한심할 지경이다. 워터파크는 수년째 설계 단계에 있고, 콘도미니엄 사업은 무산됐다. 민자 유치실적도 전체 사업비의 12%에 불과하다. 이러니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도 볼 게 없다는 반응이다. 사업 10여 년이 넘었지만 빈터에는 여전히 잡초만 무성하다. 안동문화관광단지는 당초 경주의 보문관광단지를 모델로 삼아 계획을 했다. 주변에 골프장도 있어 사업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민간 사업자의 참여가 저조해 단지 활성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경북도의회 김대일 의원은 전문성 부족과 마케팅 공백이 핵심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있으니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혹자는 안동문화관광단지 조성 본래의 취지에 맞는 구상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낸다. 문화관광단지에 문화가 없고 상업시설만 가득하면 북부지방 유교문화를 즐기려는 사람이 찾아오겠느냐는 것이다. 안동문화관광단지 활성화를 위한 전략회의가 경북도와 안동시, 경북문화관광공사가 참여한 연속회의가 열렸다고 한다. 이 모임에서 투자유치 대상부지의 상품성 제고, 관련 인허가 프로세스 간소화, 홍보 마케팅 방안 등 종합적인 대책이 심도 있게 검토됐다고 한다. 바야흐로 문화관광사업이 지역경제를 살리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경북을 찾는 사람이면 누구나 안동문화관광단지를 찾아 올 매력 있는 콘텐츠 개발로 단지도 살리고 지역경제도 살리는 성과를 내길 바란다.

2025-08-19

지방선거 앞둔 여야 모습, 너무 다르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과 정청래 민주당 대표가 대야(對野) 관계에서 엇박자를 내는 게 아냐는 말이 자주 나오고 있다. 공개석상에서 이 대통령은 ‘상생의 정치’를, 정 대표는 ‘내란세력 척결’을 이슈화하고 있어, 국민의힘에 대한 관점이 서로 다른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만도 하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두 사람은 ‘내년 지방선거 석권’이라는 목표를 공유하면서 이심전심으로 서로의 역할을 분담한 것 같다. 이 대통령은 ‘민심’, 정 대표는 ‘당심’ 잡기에 주력하면서 여권의 외연을 확장해 나가겠다는 의도를 가진 듯하다. 이 대통령은 취임 이후 계속 국민통합과 민생안정 메시지를 내왔다. 민심을 의식해서다. 야당 지도부와도 여러 차례 만나 덕담을 주고받았다. 지난주 광복절 경축사에서는 “이제 정치 문화를 바꿔야 한다. 여야 분열의 정치에서 탈피해 상생의 정치를 만들어가자”고 했다. 반면, 정 대표는 야당을 없어져야 할 존재로 보고 있다. 그는 그저께(18일) 김대중 전 대통령 16기 추모식에서도 송언석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을 만났지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국민 전체를 포용하라”는 조언이 쏟아지고 있지만, 민심보다는 강성당원을 챙기는데 올인하는 것 같다. 그는 최근 “민주당에서 정청래가 당 대표가 됐다는 것은 당원들이 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말했다. 여권의 이러한 ‘정리된 모습’과는 달리, 전당대회를 이틀 앞둔 국민의힘은 여전히 ‘사분오열(四分五裂)’된 상태다. 지난 17일 열린 마지막 TV 토론회에서도 ‘반탄파(탄핵 반대)’와 ‘찬탄파(탄핵찬성)’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과 탄핵을 두고 충돌했다. 안철수·조경태 후보는 반탄파를 향해 “계엄 옹호를 해선 안 된다”, “윤 전 대통령을 버려야 한다”고 했고, 김문수·장동혁 후보는 “계엄을 선택한 것은 불가피한 사정이 있다”, “우리 당에 무슨 내란 동조 세력이 있느냐”며 서로를 공격했다. 지금까지의 합동연설회나 TV토론 과정을 종합해 보면, 비전과 혁신 경쟁은 실종된 지 오래다. 여전히 ‘반탄파’는 강성 당원 표를 노리며 한물간 ‘배신자’ 유행가를 부르고 있고, ‘찬탄파’는 끊임없이 영남권 현역의원 공격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있다. 이러니 컨벤션 효과(정당 지지율 상승)를 내야 할 전당대회가 오히려 민심이반의 계기가 되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모레(22일) 전당대회에서 당의 이미지와 정체성을 새롭게 탈바꿈시킬 리더를 뽑지 못하면 당의 존립마저 위태롭게 된다. 민주당 정 대표는 최근에도 ‘국힘은 10번, 100번 정당을 해산시켜야 한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처럼 집권당의 정당해산 칼끝이 턱밑까지 올라왔는데도, 국민의힘은 그 긴박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국민의힘 당권 주자들은 이젠 상대를 향해 탈당하라는 발언까지 서슴지 않는다. 지난 주말부터는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를 둘러싼 극우 논란까지 더해지며 당이 더 깊은 수렁에 빠져들었다. 전당대회 이후 당이 둘로 쪼개질 수도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으니 국민의힘 앞날이 바람 앞의 등불 같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2025-08-19

AI교과서를 ‘참고자료’로 패싱해선 안 된다

AI디지털교과서(AIDT)가 도입된 지 반년 만에 ‘교육자료’로 격하됐지만, 교육부 포털을 활용해 수업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1학기처럼 계속 교육부 산하 케리스가 관리하는 AIDT 포털을 활용할 경우 교사들이 AI 수업을 하는데 지장이 없다고 한다. 올해 1학기부터 AIDT를 활용해 시범수업을 하는 대상은 초3·4(영어·수학), 중·고1(영어·수학·정보) 학생들이다. AIDT 수업은 올해 첫 도입 때는 ‘전면 의무 적용’ 방안이 추진됐지만, 일부 학교에서 ‘졸속 추진’이라는 반발이 커지면서 결국 지난 4일 국회에서 민주당 주도로 AIDT를 ‘교과서’가 아니라 ‘교육자료’로 규정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최종 의결해 자율 도입하는 방향으로 선회됐다. 개정된 법률의 핵심은 국비지원 단절이다. AIDT 구독료는 과목별·학생 1인당 연간 3~5만원 수준으로, 1학기까지는 교육청이 이를 대납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그러나 개정안 시행 이후 국비지원 근거가 사라지면서, 2학기부터는 각 학교가 교육청과 협의해 자체 예산으로 충당해야 한다. 현재 전국적으로 AI 교과서 채택률은 34% 수준이지만, 대구는 98%에 이른다. 강은희 대구시교육감이 AIDT 도입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기 때문이다. 대구시교육청은 지난 14일 ‘AI디지털교육자료 활용 수학 기초·기본학력 지도 가이드’도 개발해 각 학교에 보급했다. 하지만 당장 2학기부터는 일률적인 국비 지원이 차단되기 때문에 각 학교는 ‘학교운영위원회’를 열어 사용 여부를 다시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계약·주문 절차도 전부 새로 밟아야 해 사용을 포기하는 학교가 늘 것으로 예상된다. 챗GPT 등 AI 서비스가 보편화되는 세계적 흐름 속에서, 초·중·고 수업에 AIDT를 도입하는 정책은 꼭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학생들의 수업에 적용되는 교육정책이 일관성을 잃으면 사회구성원 간의 갈등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교육부는 학생, 학부모, 교사 등의 의견을 잘 반영해서 하루빨리 AIDT 도입과 관련한 교실의 혼란을 없애야 한다.

2025-08-19

‘울릉도 물놀이장 사망사고,과연 담당공무원 혼자 책임일까’…파면까지 이른 법원선고를 보고 느낀 소회

울릉도 현포리 심층수 어린이 물놀이장 초등학교 6학년생 사망사고와 관련 법원이 2년 만에 울릉군청 담당 팀장에게 파면에 해당하는 판결을 내렸다. 대구지법 포항지원은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울릉군 공무원 4명 중 담당팀장에게 금고 1년·집행유예 2년을, 나머지 3명은 각각 1000만~1500만 원의 벌금을 선고했다. 팀장은 파면에 해당하는 판결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준공 이후 시설 관리 책임은 공무원에게 더 크다.”라며 공무원들의 관리 소홀을 지적했다. 법원은 이번에 관리책임을 사실상 울릉군 차원의 구조적 문제보다, 말단공무원에게만 가혹한 형사적 책임을 물었다. 전체적으로 안전 부재라는 근본적인 원인보다 일면 희생양을 만든 느낌이 든다. 더욱이 법원이 “전문지식이 없는 공무원이 우연히 담당이 됐을 뿐”이라며 공무원 개개인의 전문성 부족과 행정 현실을 인정했으면서도 판결은 책임을 조직적 차원이 아닌 개인에게만 집중시켰다. 수심이 37cm인 영유아 급 물놀이 시설은 지난 2015년 아기 낳기 좋은 울릉도, 인구 증가 정책으로 만든 것으로, 사고 전까지만 하더라도 8년째 아무런 사고 없이 잘 운영됐다. 워낙 수심이 얇은 부분과 영유아시설이다 보니 보호자가 동반해 별 사고 없이 넘어왔던 것이다. 하지만, 지난 2023년 육지에 여행 온 초등학생이 취수구에 팔꿈치가 빨려 들어가 사망하는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 문제가 커졌다. 풀장 및 대중목욕탕을 관리하는 법령인 공중위생관리법에는 사업자에 대한 안전 책임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지만, 순환배수구 등에 대한 관리 지침은 따로 마련돼 있지 않다. 한국소비자원이 지난 2006년 배수구 안전망 설치 등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보건복지부에 건의했지만, 현재까지 반영된 것이 없을 정도로 관심 밖 영역이다. 이런 가운데 공무원이 관리 소홀로 파면에 해당하는 처벌을 받았다. 물론 담당 공무원은 만에 하나 일어날지도 모를 사고에 대비해야하고 꼼꼼히 챙겨야 함은 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이번 사고를 단순히 개인의 관리 소홀로만 볼 것이냐는 부분에 들어가면 논란이 뒤따른다. 실제, 시설 준공 당시부터 취수구 안전망 미설치가 꾸준히 지적됐음에도, 군청 차원의 개선 조치는 없었다. 안전 관리 예산과 인력 부족 역시 장기간 이어진 고질적 문제였던 것이다. 그런데 사고 당시 팀장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오랜 직장, 생업과 관련된 직장에서 그는 파면됐다. 한켠에서 다소 가혹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울릉도에는 성인용 등 해수풀장이 5곳 있다. 이곳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한다면 담당 팀장이 모두 책임을 져야 할까? 그렇다면 아무도 팀장으로 나가지 않을 것이다. 회피 근무는 팀원도 마찬가지일 터. 관리인이 없을 경우 풀장 등은 당장 폐쇄가 불가피하다. 설령 발령받든다해도 적극적인 행정을 펼칠 수다 없게 된다. 때문에 이번 판결을 두고 도의적 책임은 물을 수 있는지만 파면까지 책임을 지운 것은 가혹하다는 것이 군민들 시각이다. 이 사안은 어쩌면 당초 설계하고 시공한 책임자에게 더 책임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또 안전장치 개선은커녕 그대로 방치한 울릉군 행정에 무거운 책임이 있다. 그간 이곳 팀장을 거쳐간 10명은 이번 판결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자칫했다면 그들 중 한명이 파면의 당사자가 됐을 수도 있다. 어떤식으로든지 사망사고 같은 후진적 사건은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책임 부분으로 들어가면 상황은 좀 달라질 수 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목이 날아간 팀장은 다소 억울할 수도 있었겠구나 하는 것이 저간의 여론이다. 이번 판결은 울릉군 전체에 만연한 안전과 제도적 안전 관리 시스템 부재는 뒤로하고 말단 공무원에게 모든 책임을 물었다. 안전 불감증의 구조적 문제를 개인에게 뒤집어 쉬운 꼴인 것이다. 울릉군이 적극적으로 나서 담당 공무원을 구제하고 안전에 대한 구조적 문제를 바로 잡아야 한다. 그래야, 공무원이 주민을 위해 사명감으로 적극적인 행정을 펼칠 수 있다.  /김두한 기자 kimdh@kbmaeil.com

2025-08-19

인간 욕망의 끝판왕, 죽은 자의 천국

사후세계의 천국은, 인간이 품을 수 있는 가장 궁극적 욕망의 표상이요, 지상에서의 고통과 결핍을 넘어선 풍요, 불멸, 평화, 완전한 사랑, 이 모든 것들을 종합해 만든 처절한 상징이다. 천국은,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 낸 허구 세계다. 믿거나 말거나, 죽은 자의 천국은 없으며, 오지 않으며, 온다 한들 죽은 후라 아무런 소용이 없다. 백번을 양보하여 천국이 존재한다 치더라도, 죽은 이후 천국의 도래는 용서할 수 없다. 왜 하필 죽은 이후에 오는가. 있다면 죽기 전에 오라. 천국을 믿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겐 천국의 부재는 견딜 수 없는 현실의 고통이다. 이들은 천국을 믿음으로써 현재를 낭비한다. 이들은 천국을 믿음으로써 삶에서 도피한다. 이들에겐 천국이란 낙타가 짊어진 거대한 짐이다. 천국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겐 천국은 아무런 관심 사항이 아니다. 이들은 천국의 부재로 인하여 고통받지 않는다. 이들은 천국을 위하여 기도하지 않으며, 천국을 위하여 자신의 삶을 유예하지도 않는다. 릴케는 ‘두이노의 비가’에서 우리네 삶은 ‘오직 한 생’이라 그랬다. 인류의 수 많은 현자들은 릴케처럼 우리네 삶이 오직 한 번뿐이라는 걸 알았다. 다음 생이 기다리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오직 한 생인 지금 이 삶의 소중함을 놓칠 가능성이 크다. 다시 돌아오질 않을 이 한 번의 삶을 위하여 매 순간 최선을 다해야 한다. 도덕적 삶은, 천국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너무나 당연한 삶의 기준일 뿐, 천국의 문을 통과하기 위한 자격증이 아니다. 현자는 천국을 위하여 다음 생을 기다리지도 않는다. 나머지 삶을 천국에서 보상받겠다고 기대하면서 지난 삶을 살아왔던가! 그래도 늦지 않았다. 남은 삶을, ‘지금의 삶, 여기의 천국’에 아낌없이 투자하여야 한다. 후회할 일도, 후회할 필요도 없다. 천국이란, 인간이 지어낸 욕망의 끝판왕이다. 욕망은 결핍에서 시작된다. 현실 세계에서의 결핍과 불완전을 사후에 보상하려고 인간들이 만들어 낸 정교한 상징 체계가 천국이다. 과도한 욕망은 삶을 힘들게 하고 고통 속으로 몰아간다는 사실은 이미 상식이다. 천국에의 집착은, 욕망에 대한 집착과 동의어이다, 천국에 대한 믿음은 우리들로 하여금 현실 세계를 경멸하게 하고, 삶을 부정하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천국에의 집착은 오히려 우리의 삶을 지옥으로 몰아갈지 모른다. 이 세계 너머 저 세계는 없다. 천국을 찾고 싶다면 주위를 살펴보면 된다. 그냥 눈을 뜨면 된다. 여기저기 천국이 널려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죽은 이후에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상상해 보라. 천국에 대한 갈망도, 지옥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질 것이다. 죽음과 그 이후는, 산자의 인식(생각)일 뿐, 삶의 부분도, 삶의 연장도 아니다. 에피쿠로스는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존재 하는 동안 죽음은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고, 죽음이 올 때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라고. 천국을 믿는다면, 그대는 허무주의자일 가능성이 많다. 천국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당신의 주변에서 깨끗이 정리하시라. 그러면 새로운 세상이 열릴지니, 천국이라는. /공봉학 변호사

2025-08-18

보수와 진보, 그리고 좌파와 우파

일반적으로 보수(保守)란 전통과 질서를 중시하고, 급격한 변화보다는 점진적이고 신중한 변화를 선호하는 정치·사회적 태도를 말한다. 법과 질서, 가족제도, 시장경제의 자유, 국가 정체성 유지 같은 기존의 제도와 가치가 사회 안정의 기반이라고 보고 그것을 지키려는 성향이 강하다. 반면 진보(進步)는 사회의 불평등이나 부조리를 변화·개혁하려는 입장이다. 기존의 제도나 전통이 불합리하다고 판단되면 과감하게 바꾸어서 인권, 평등, 복지의 확대를 지향한다. 물론 보수와 진보에는 각기 장단점이 있다. 보수에는 급격한 변화로 인한 혼란을 막고 사회의 기반을 지키려는 장점이 있는가 하면, 변화가 필요한 상황에도 그에 대한 대처가 너무 느리거나 소극적일 수가 있다는 단점이 있다. 그에 비해 진보는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불합리한 점을 혁신적으로 개선한다는 장점과 함께 급격한 변화가 부작용과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현실 정치에서는 순수한 의미의 보수나 진보는 드물고, 상황과 사안에 따라 두 가지 성향이 혼합되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좌파와 우파라는 구분은 18세기 프랑스혁명에서 비롯됐다. 혁명 당시 국민의회의 좌석 배치에서 의장의 오른쪽에는 왕권과 전통질서를 지지하는 인물들이 앉았고, 왼쪽에는 공화주의와 개혁을 주장하는 인물들이 앉았던 것에 유래하여 우파와 좌파라는 개념이 생겨났다. 따라서 우파는 보수적 성향을, 좌파는 진보성향을 의미하게 되었다. 그 후 유럽에서 산업혁명과 민족주의, 사회주의가 확산되면서 보수와 진보가 본격적인 사상체계로 자리 잡게 되었다. 당시 보수는 귀족·지주·성직자들이 중심이 되어 왕정·교회·시장경제를 옹호하였고, 진보는 자유주의자·공화주의자·노동운동가를 중심으로 평등, 참정권 확대, 복지 등을 추구하였다. 그러나 이는 역사적 출발점일 뿐, 이후 각국의 정치 지형 속에서 좌·우, 보수·진보의 관계는 복잡하게 변해왔다. 오늘날 세계 각국은 다양한 형태의 보수와 진보가 공존한다. 미국에서는 작은 정부, 낮은 세금, 전통적 가치, 자유시장, 강한 국방을 중시하는 공화당이 보수 성향을 보이고, 복지 확대, 인권·환경 보호, 소수자 권익 확대를 강조하는 민주당이 진보성향이다. 영국은 보수당과 노동당이 교대로 집권하며 정치적 균형을 유지해왔고, 프랑스는 국민연합(RN)과 공화당이 우파, 사회당과 좌파연합이 진보진영을 대표한다. 독일은 기독교민주연합(CDU)이 보수, 사회민주당(SPD)이 진보지만, 녹색당과 자유민주당(FDP) 같은 제3세력이 정책 방향을 조정하는 중도 실용주의 성향이 강하다. 북유럽은 사회민주주의가 강세이고, 일본은 보수 실용주의가 대세다. 우리나라는 지금 보수와 진보라는 개념보다는 좌파와 우파의 이념적 대립이 극심하다. 정권을 잡은 좌파들은 진보는커녕 낡은 이념에 함몰되어 오히려 퇴행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이들은 결국 국가 정체성을 허물고 그동안 피와 땀과 눈물로 쌓은 공든 탑을 무너뜨리고 말 것이라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2025-08-18

포항의 새관문 복합환승센터 또 표류하나

포항시민의 오랜 숙원이던 남구 상도동 포항시외버스터미널 부지에 세워질 예정이었던 복합환승센터 건립 계획이 무산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시민들의 실망이 크다. 최근 본지 취재에 따르면 포항시 관계자는 “현재 복합환승센터 계획은 없다”고 밝히고 “막대한 사업비와 사업자 간 입장 차이 때문에 실질적인 사업 추진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새로운 대형 사업주가 나오지 않으면 복합환승센터 건립은 기약 없이 표류할 것이란 뜻이다. 1985년 건립된 포항 시외버스터미널은 현재 시설 노후화와 편의시설 부족, 주차장 부족 등으로 이용객의 불편이 이만저만 아니다. 근년 개통된 KTX 역사와 비교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는 실정이다. 35도가 넘는 폭염에도 대형 선풍기에 의존해 버스를 기다리며 더위를 식히는 이용객의 모습에서 낙후된 포항의 이미지가 겹친다. 포항시가 시외버스터미널 건립 30여년 만인 2017년, 민자 3341억원을 들여 지하 4층, 지상 20층의 규모의 복합환승센터를 짓기로 결정하고 경북도에 사업 제안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사업성 부족 등의 이유로 제안서가 반려됐다. 당초 포항시의 구상은 시외버스터미널과 남구 해도동에 있는 고속버스터미널을 함께 옮겨 포항을 대표할 만한 랜드마크 건물을 건립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백화점과 같은 유통시설을 가미하면 도심 재생 효과와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를 거둘 수 있고 또 한편으로는 포항시의 이미지 제고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는 것. 그러나 제안서가 경북도로부터 반려되면서 복합환승센터 건립 계획은 지금까지 수년간 표류하고 있다. 경북의 대표 도시이자 50만 인구 포항의 관문 역할을 하는 시외버스터미널의 노후 시설은 외지인에게 포항의 이미지를 불가피하게 훼손시키고 있다. 포항은 세계 제일 철강도시다. 이차전지를 중심으로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포항의 이미지와 연결될 관문으로서 터미널을 지금 상태로 그냥 둘 수는 없다. 포항시가 면밀한 대책을 세워 시민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2025-08-18

김건희와 뇌물 공여자들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유명 디자이너의 목걸이와 수백만원짜리 명품 가방, 그리고 또 무엇이 오갔을까? 윤석열 전 대통령의 아내 김건희 씨의 ‘뇌물 스캔들’이 차츰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지켜보는 국민들의 심정은 참담하다. 뇌물 공여는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이 크기에 처벌 수위 또한 높은 범죄다. 사적인 이익을 얻을 목적으로 관련된 직무에서 일하는 사람을 매수하려고 돈이나 물품을 제공하는 행위를 뜻 하는 뇌물 공여. 법적으로는 인사권과 정치적 결정권이 없지만, ‘영부인’은 그 명칭이 가진 힘만으로도 얼마든지 호가호위가 가능한 자리다. 그렇기에 더욱 몸을 낮추고 고개 숙여 겸양해야 하는 게 대통령의 아내가 아닐지. 그런데 김건희 씨는 어땠나? 최근 특검의 압수수색이란 초강수 앞에 긴장한 서희건설은 2022년 나토 순방 당시 김건희 씨가 착용한 목걸이, 브로치, 귀걸이를 자신들이 준 것이라 고백했다. 이는 김씨 구속의 결정적인 사유가 됐다. 이뿐 아니다. 또 다른 한 사업가는 방송에 출연해 김건희 씨의 요청으로 고가의 시계를 구입해 전달했다고 폭로했다. 김씨는 “시계를 사주면 나중에 돈을 주겠다”는 약속도 깨뜨렸다고 한다. 세칭 ‘건진법사’로 불리는 전성배 씨 역시 특정 종교단체의 이권 청탁을 받고 김건희 씨에게 고가의 목걸이와 가방을 전달했다는 혐의로 특검의 조사를 받고 있다. 비싼 선물을 사주고 부정한 청탁을 한다는 것, 심지어 그런 청탁이 현실에서 받아들여진다는 건 아직 한국이 후진국의 그림자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증거다. 나라 얼굴에 이처럼 먹칠을 했으니, 뇌물을 받은 사람은 물론 건넨 이들에게도 엄정한 수사와 법적 처벌이 있어야 마땅한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8-18

국민의힘 全大, TK 당원은 누굴 선택할까

국민의힘 새 지도부를 선출하는 8·22 전당대회가 사흘 앞으로 다가오면서 책임당원이 몰려 있는 대구·경북(TK)지역 표심에 관심이 쏠린다. TK지역 책임당원들이 ‘당심’과 ‘민심’ 또는 ‘찬탄파’(윤석열 대통령 탄핵찬성)와 ‘반탄파’(탄핵반대) 중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전대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당원들의 표심은 오리무중이다. 국민의힘 현역의원들조차 “깜깜이 분위기”라고 분석했다. 한국갤럽이 지난주(12~14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7명을 대상으로 ‘국민의힘 당 대표 선거에 나선 후보자 중 누가 선출되는 것이 가장 좋으냐’고 물어본 결과, TK지역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없음·의견유보’가 56%에 달했다. 지지층과 당원의 투표 성향이 비슷하다고 가정하면, 아직 절반 이상이 지지 후보를 결정하지 못한 것으로 짐작된다. 남은 변수는 후보단일화다. 지난 주말부터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를 중심으로 한 찬탄파 진영에서는 ‘후보 단일화(안철수·조경태)를 통해 결선 투표 진출을 모색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금까지의 당 대표 지지율 조사를 보면 반탄 주자인 김문수 후보가 당원 지지층에서 우위를 보이고 있지만, 과반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당 대표 선거에서 처음에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는다면 1·2위 후보가 재차 맞붙는 결선 투표가 실시된다. 만약 안철수·조경태 후보가 결선투표에서 지지 세력을 한 데 묶으면 김문수·장동혁 후보와 충분히 대적할 수 있는 분위기다. 이미 최고위원 경선에서는 찬탄파인 최우성 청년 최고위원 후보가 우재준 후보와 단일화를 선언하면서 자진 사퇴했다. 문제는 국민의힘의 이번 전대가 정치적 결집과 컨벤션효과(정당 지지율 상승)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대가 종반으로 갈수록 정책과 비전을 실종되고 점점 더 ‘윤석열 늪’으로 빠져드는 형국이다. 전대 이후 당이 쪼개질 것이라는 얘기도 나오는 실정이다. 이번 전대에서 누가 당권을 잡든 리더십을 발휘해서 당의 안정과 정체성을 확립하길 바란다.

2025-08-18

대통령이 경계해야 할 유혹들

영국의 사학자이자 정치가인 액튼(John E. E. Dalberg-Acton)은 “권력은 부패하는 경향이 있으며,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고 했다. 절대 권력을 가진 이재명 대통령이 명심 또 명심해야 할 가르침이다. 대통령이 ‘힘의 정치’에 대한 유혹을 경계하지 않으면 불행을 자초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먼저 경계해야 할 것은 ‘사적 이익’에 대한 유혹이다. 만약 이재명 대통령이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재판이 중단된 자신의 사법리스크를 해소하려한다면 국민이 납득할 수 있겠는가? 절대 권력은 그런 기도를 할 수 있고, 이미 그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 검찰을 지휘하는 법무장관에 측근을 임명했고, 자신의 변호인들을 법제처장·국정원기조실장·대통령실법무비서관 등에 포진시켜 놓았다. 마음만 먹으면 검찰인사권을 이용해서 수사검사들을 한직으로 날려버릴 수도 있고, 검찰과 사법부를 겨냥한 입법을 통하여 그들을 압박할 수도 있다. 민주당은 대장동 및 불법대북송금 사건이 조작되었으므로 공소를 취소해야 한다고 검찰과 법무장관에게 압력을 넣고 있다. 대통령과 민주당이 검찰개혁과 사법정의를 명분으로 ‘셀프 사면’하려는 유혹에 빠지면 어떻게 될까? 지금은 집권 초반이라서 역풍을 조심하고 있지만 적당한 시기가 오면 그 본색이 드러날 것이다. 자칭 ‘국민주권정부’라고하면서 민심과 상반되게 사법체계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흔든다면 국민이 용납할 수 있겠는가? 공정성을 상실한 당파적 이익추구도 문제다. 야당이었을 때는 전액 삭감한 법무부와 검찰의 특활비를 정권을 잡자 사과 한마디 없이 슬쩍 부활했고, 야당이었을 때는 복지부장관 후보 1명 청문회에 증인·참고인으로 25명을 채택했는데, 여당이 되자 장관 19명 청문회에 단 7명만 채택한 것은 국회를 장악한 민주당의 횡포다. 또한 김어준의 뉴스공장, 이상호의 고발뉴스, 장윤선의 취재편의점 등 친여 유튜버들은 대통령실기자단에 등록해주고, 야권 성향의 보수 유튜버들은 배제함으로써 공정성을 잃었다. 당파적 이익추구는 필연적으로 권력의 정당성 상실로 이어진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코드 인사와 권력 사유화’의 유혹도 경계해야 한다. 이진숙과 강선우의 인사 실패에서 보듯이 실용주의를 역설한 대통령이 코드 인사를 하는 것은 모순이다. 게다가 ‘권력 불나방들’은 또 얼마나 아첨하고 있는가. 인사 참사를 저지르고도 “대통령님의 인사 수준이 너무 높다”는 강훈식 비서실장, “이재명은 민족의 축복”이라는 최동석 인사혁신처장 등 수많은 간신들이 낯 뜨거운 아부 경쟁을 벌이고 있다. ‘예스맨(yes man)’들에 둘러싸여 사유화된 권력으로서는 정도정치(正道政治)가 불가능함을 알아야 한다. 성공하는 대통령은 ‘권력이 마약’임을 명심하고 절제하지만, 실패하는 대통령은 자제력을 잃고 권력을 남용함으로써 불행을 자초한다. 성공과 실패 중 어느 길로 가느냐는 대통령의 선택이다. 국민주권정부를 표방한 대통령으로서 주권자인 국민을 배신하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

2025-08-18

여행을 떠나요

곧 여행을 떠난다. 사실 이주 전쯤 급히 계획한 여행인지라 갑작스레 떠나는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래도 이왕 떠나는 여행, 그간 가고 싶었던 교토로 가기로 했다. 이 년 전 방문했던 교토의 여름은 뜨겁고 습했지만 아름다웠다. 오래된 담벼락과 새파란 하늘, 좁은 골목과 고택, 사이사이의 기찻길 등 마주하는 곳마다 오래된 것들이 많았고 내가 알지 못했던 한 풍경이 오랜 기간 그곳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단 점이 무척 경이롭게 느껴졌다. 나는 일본의 소도시에서 아주 느릿느릿 움직이며 내가 지금 어떤 걸 위해 살고 있고, 왜 살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을 끝마치기 위해 간다. 하루하루 같은 버스를 타고 같은 책상에 앉아 비슷한 업무를 하고, 비슷한 시간대에 퇴근해서 집으로 돌아온다. 잠자기 전까지 생각하는 것도 잠이 드는 자세도 모든 게 똑같은 하루. 비슷한 굴레 속에서 나는 너무나 많은 짜증과 화를 삼키고 있다. 급작스레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당황한 나머지 숨이 쉬어지지 않는 상황까지 미처도 그저 또다시 아침이 찾아왔고, 출근을 해야 하고, 정해진 업무가 있기 때문에 묵묵히 일을 한다. 작은 일에도 전전긍긍하고 사소한 것에도 화가 나고, 흔들리고, 또 단순한 것에 마구 웃어버리는 요지부동의 날들. 모두가 이렇게 산다면서, 모두가 비슷한 힘듦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의미 없이 도망을 치다보니 내 앞에 펼쳐진 이 광경은 퍽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많다면 많고 적으면 적은 나이. 어떤 이는 내게 새로운 도전은 너무나 늦었다고 말하고 어떤 이는 아직 한참 좋을 나이이기에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응원한다는 말을 한다. 타인의 말에 휩쓸리지 않아야 할테지만 나는 또 중심을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린다. 좋아하는 게 없어서 무슨일을 할지 모르겠는데, 어떡하죠? 말을 꺼낼 때마다 나보다 더 듣는 이가 난처해한다. 집으로 돌아와 소파에 앉아있는 것도 언제부턴가 편하지 않다. 집은 계속 살아가는 곳이기에 해결해야 할 집안일, 이메일 확인, 생활비 걱정 같은 현실적인 부담들이 언제나 쌓여있다. 우리 뇌는 매일 반복되는 환경과 자극에 익숙해지면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그 자극들을 ‘자동모드’로 처리한다고 한다. 이러한 뇌의 습관적 패턴은 우리가 매일 걷는 출근길의 행동을 자동으로 수행하면서 쓸데없는 에너지를 아끼고, 더 중요한 자극에 집중할 준비를 한다. 이러한 습관적 패턴이 많을수록 일상은 단순해지고 생각은 간결해진다. 익숙한 패턴 속에 갇히는 순간부턴 새로운 생각이나 깊은 사유, 내면의 감정을 깊게 들여다보는 일이 어려워지는 것이다. 그러니 일상 속 자기연민에 호되게 빠져 있다면, 호기롭게 쇼파에서 몸을 박차고 일어나 ‘때가 되었군’ 생각해야 한다. 잠들어있던 여권을 깨우고, 캐리어의 먼지를 닦고, 가장 요란스러운 네임택을 캐리어에 달고선 훌쩍 떠날 수 있는 여행지를 찾는다. 더는 지체 없이, 더 많은 인지 자원을 사용하기 위해 뇌를 깨워야만 한다. 여행은 일하지 않는 상태를 선언하기 위해 도망치는 것이 아닌, 삶의 방향과 속도를 조정하기 위해 택하는 것이다.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이 맞는 것인지, 현재 나에게 큰 문제가 생긴 것 같은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집중할 수 있는 힘을 준다. 나는 늘 삶의 방향을 정하기 전, 답답할 때마다 여행을 떠났다. 처음은 집 근방의 작은 소도시들, 그리고 점차 나아가 기차를 타면서 처음 들어보는 도시들을 골라 누볐다. 혼자 하는 여행은 때로 위험했고 외롭고, 맛있는 걸 생각보다 많이 먹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용기와 열망과 집요함을 주었다. 그렇게 해서 정말 내가 원하는 선택을 끝끝내 했고, 끝까지 행하면서 좋은 결과를 얻기도 했다. 삶은 원래 이런 것이라고, 꿈과 일상은 다른 것이라고 누군가 선을 딱 그으며 말해도 결국 내가 나의 삶을 결정하고 정의해야 하기에 또다시 중요한 여행을 앞두고 있다. 다가오는 가을엔 하프 마라톤을 뛸 것이다. 마라톤에서 가장 중요한 건 지속력이다. 단거리처럼 순간적인 속도가 아닌 오랜 시간 꾸준히 달리는 힘이 필요하기에 체력과 페이스조절이 핵심이다. 체력과 페이스조절을 하기 위해선 우선 같이 뛰는 라이벌들이 아닌 나의 호흡과 마음가짐에 집중해야 한다. 처음부터 너무 빨리 달린다면 후반에 지쳐버릴테고 너무 느린다면 제 시간 안에 도착하지 못할 것이다. 달릴 수 있는 체력을 기르고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힘은 결국 내 안에 있다는 것. 때론 일상에서 벗어나 아주 낯선 곳까지 찾아가 ‘나’를 집중하다 보면 결국 지금보다 훨씬 편안함에 이르를 수 있지 않을까? /윤여진(시인)

2025-08-17

유럽 콤플렉스 너머

여름방학을 맞아 지중해에 다녀왔다. 그리스 산토리니를 시작으로 아테네, 몰타 발레타와 고조섬 블루라군, 스페인 몬세라트와 바르셀로나까지 12일간의 여정이었다. 한국은 폭염과 폭우가 계속됐지만 지중해의 여름은 청량했다. 햇볕은 뜨거워도 습하지 않아 돌아다닐 만했다. 걷고 먹고 마시고 더우면 풀장이나 바다로 뛰어들었다. 직장생활 15년 만에 처음으로 2주 휴가를 얻은 친구와 동행해서 더 의미 있는 여행이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그리스인 조르바’에 이렇게 썼다. “죽기 전에 에게해를 여행하는 사람에게 복이 있다”고. 2005년, 2015년에 이어 2025년까지 10년 주기로 세 번씩이나 그리스를 여행한 나는 행운아인 셈이다. 처음 여행했을 때에 비해 지나치게 관광지가 돼 버린 산토리니가 생경하긴 했지만 깎아지른 칼데라 절벽에 금빛 폭포수처럼 넘쳐흐르는 석양은 역시나 장관이었다. 스무 살 무렵의 가난한 배낭여행은 이제 하려 해도 할 수 없다. 체력과 용기가 고갈됐기 때문이다. 돈은 좀 들어도 일몰이 아름다운 해안 절벽의 레스토랑에서 차가운 산토리니 와인과 함께 문어와 생선 요리를 먹었다. 일정 내내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마시고 싶은 거 다 마셨다. 예전에는 유럽에 가면 부러운 것만 보였다. 중세의 기억을 보존하고 있는 거리에는 음악과 예술이 가득하고 거길 걸어 다니는 사람들 얼굴엔 활력과 여유가 넘쳤다. 음식은 맛있고 맥주의 풍미는 그윽했다. 유럽 문학과 미술, 클래식 음악의 아우라에 기가 죽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 가 보니 오히려 한국의 좋은 것들이 먼저 떠오른다. 지금껏 열 번쯤 유럽을 여행했는데 20대와 30대 초반에 들끓던 선망이 이제 잔잔해졌다. 경험의 누적과 반복 탓만은 아니다. 여러 면에서 유럽보다 나은 나라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의 치안, 위생, 공중도덕, 환경, 경제력, 의료, 대중교통, 서비스업, 시민의식 등은 유럽 대부분 국가를 훨씬 상회한다. 그토록 기가 죽던 문화예술도 꿀리지 않는다. 노벨문학상을 배출한 나라다. 케이팝의 세계적인 인기야 더 말할 것도 없고,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방문객이 많은 국립중앙박물관도 있다. 제일 사무치게 감각한 건 음식이다. 예전에는 유럽 음식이 다 맛있었다. 여행 다녀온 후에는 왜 한국에는 유럽 맛을 내는 레스토랑이 없을까 아쉬워하며 입맛을 다셨다. 그런데 이제는 한국 음식이 훨씬 맛있다. 양식에 비해 한식이 맛있다는 게 아니라 한국에서 먹는 유럽 음식이 현지보다 뛰어나다는 말이다. 방문한 도시마다 심사숙고해 레스토랑을 골랐다. 잘한다는 집들 대부분 실망스러웠다. 짜거나 달거나, 파스타면에 소스가 배지도 않고, 식은 고기는 질기고, 해산물의 선도도 떨어졌다. 몰타 발레타의 페루 식당에서 먹은 남미음식 ‘상코초’, 바르셀로나에서 먹은 애저구이 ‘코치니요 아사도’와 먹물 빠에야, 아테네에서 먹은 베트남쌀국수 정도가 인상적이고 나머지는 그저 그랬다. 피자, 파스타, 스테이크, 스튜, 스시, 디저트 모두 한국이 더 잘한다. 그러고 보면 세계화를 향해 숨 가쁘게 달려온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은 경제, 문화, 예술, 스포츠 등 여러 면에서 유럽과 대등하거나 넘어섰다. 유럽의 전통과 근대성을 동경하는 데만 그치지 않고 열심히 학습해서 넘어서고 나아가 한국화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마저 따라하다 넘어설까 봐 걱정되는 게 있다. 그리스 국가부도 이후 아테네 경제는 거의 회복됐지만 중심지인 오모니아는 슬럼화되어 재생이 불가능한 지경이다. 번화하던 상점가는 온통 공실이고 젊은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거리엔 노숙인, 부랑자, 이민자들로 가득하다. 10년 전 참 활력 넘치고 아름답던 곳이 이제는 우리나라 외교부에서 방문 자제를 권하는 지역이 됐다. 하필 호텔을 그쪽에 잡았는데 대낮 길거리에 널브러진 채 팔에 주사기를 꽂고 마약을 투약하는 중독자들을 계속 마주쳤다. 겉으로는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룬 한국이지만 민생 경제는 갈수록 곪아간다. 상점들이 폐업하고 거리에 활기가 없고 청년들의 얼굴은 어둡고 출생률마저 바닥이다. 하물며 여러 어둠의 경로로 마약이 유통돼 여기저기서 범죄가 일어나고 있다. 피자, 파스타 맛있는 걸로 만족하고 싶다. 따라할 걸 따라하자. 오모니아 거리의 살풍경을 서울에서 보고 싶지 않다. /이병철(시인)

2025-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