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사람들은 깊이 생각하는 존재였다. 말에는 질문이 깃들었고, 눈에는 의심의 빛이 머물렀다. 그러나 이제 말하되 묻지 않고, 듣되 반성하지 않으며, 결론을 구하되 성찰하지 않는다. 도시는 여전히 북적이지만, 그 안의 정신은 고요히 사라졌다. 우리는 정보를 삼키지만, 그것을 씹지도, 되새기지도 않는다. 진실은 속도의 희생양이 되었고, 깊이는 비효율이란 이름으로 밀려났다. 이제 사람들은 무엇이 옳은가 보다 누가 말했는가에 반응하고, 무엇이 진실인가 보다 나의 기분에 맞는가를 묻는다. 우리는 진영이 요구하는 확신 속으로 조용히 길들여지고, 수용되고, 마침내 사라진다. 생각! 인간이라는 종들로 하여금 창백한 푸른 점의 주인으로 우뚝 서게 한, 보이지도 만질 수도 없는 이 신비한 능력은 어디로 가버렸을까.
생각은 나를 천국과 지옥을 하루에도 수천 번 왕래하게 하는 환상특급이다. 내가 생각이요, 생각이 나다. 환상특급의 승객에게는 티켓예약이 필요 없다. 목적지도, 승하차 시간도 랜덤이다.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탑승하고, 하차하게 된다. 휴게소에 들러도 쉴 틈도 주지 않고 곧바로 출발하는 경우가 허다하며, ‘다음 역에서 내려야 돼요!’라는 절규를 들어주는 승무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름도 풍경도 알 수 없는 이 정거장에서 저 정거장으로, 빛의 속도로 돌아다닐 뿐이다. 생각이라는 환상특급에 승차하지 않을 권리 따위는 민주공화국 헌법 조항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우리는, 대부분은, 생각이라는 환상특급의 ‘승객’으로, 가끔씩은, ‘기관사’로 탑승한다. 환상특급의 기관사는 어떻게 열차를 운전하여야 하는가. 기관사로서의 역할이 주어진 경우의 생각. 그것은 ‘열차를 안전하게 목적지로 운행하기 위하여, 올바르게 판단하는 것’이리라.
바른 생각이란 무엇일까? ‘자신의 견해를 내려놓고 생각하기!’ 이것이 전부이다, ‘견해들-이데올로기, 편견, 개똥철학, 증오, 시기, 따위들’은 내려놓아야 할 것들이다, 견해로부터 시작한 생각은 이해타산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의심하라. 견해라는 기초위에 세워진 생각이라는 건축물은 욕망과 집착이라는 이름의 방으로 가득차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된다. 그 방을 떠도는 증오, 폭력, 잔인성이라는 유령들을 보라.
사유의 부재라는 열차는, 편견과 증오를 자양분으로 피어난 악의 꽃밭을 지나 폭력과 잔인성으로 물든 종착역에 도달한다. 한나 아렌트가 본 악은 왜 그다지도 ‘평범’하였을까. 600만 유대인을 살상한 전체주의의의 근원은 사유의 부재였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분노가 진정 나의 생각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 흘린 독을 받아 삼켜서인지 사유해야 한다. 편견과 증오로 범벅된 몰염치의 광장에서 탈출하자. 질문하고, 의심하고, 천천히 결론에 이르는 길. 이 길만이 우리의 환상특급을 안전하게 목적지로 데려갈 수 있으리라.
2025-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