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대도(大盜) 조세형은 서울의 부잣집 금고에서 수백억원의 현금과 금품을 훔쳐 세상을 놀라게 한 적이 있다. 시민들은 그의 대담한 도둑질에도 놀랐지만 한편으로 서울의 부자들은 은행이 아닌 집안 금고에 이렇게 많은 돈과 귀중품을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에 쇼크를 받았다.
우리나라 부(富)의 대부분이 서울에 집중된 탓인지 서울 부자들의 금고 이야기는 꾸준히 우리 사회에 회자돼 왔다. 요즘은 가정집 금고가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형태로 아예 가구처럼 매립된 사례도 등장한다고 한다. 장롱 속에 숨겨진 금고나 그림 액자 뒤편에 숨겨진 금고가 실제로 있다는 것이다.
물론 과거와 달리 가정마다 금고에 보관해야 할 개인 소중품이 늘어나 금고를 비치하는 가정도 늘고 있다. 집안 주요 문서나 보험증서, 비상금, 심지어 배냇저고리, 태아초음파 사진 등도 보관하는 가정이 있다고 한다.
일본은 집안에 금고를 비치한 가정이 유난히 많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때는 쓰나미에 떠내려오거나 주택 잔해 속에서 발견된 금고가 경찰서 마당에 산더미처럼 쌓였던 사진이 공개된 적이 있다. 일본은행의 낮은 금리와 은행 가기를 꺼리는 노인가구가 많기 때문이라 한다.
김병기 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둘러싼 의혹을 수사하는 경찰이 김 의원의 개인금고 확보에 수사력을 집중한다는 소식이다. 경찰은 김 의원 부부가 귀중품을 보관했다는 금고에서 범죄를 입증할 증빙들이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는 것.
부자나 권력가의 비밀금고도 본인의 의지와는 달리 때로는 세상에 알려지기도 한다. 모든 재앙의 근원이 된다는 판도라 상자가 열리는 것처럼 말이다. /우정구(논설위원)